일하기 좋은 기업
박재림ㆍ한광모 지음 | 거름
제1부 우리의 일터는 어떤 모습인가
제1장 일, 일터, 직업
몰입의 즐거움 / 돈 벌기만을 위한 노동인가일이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자.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은 종종 진정한 몰입의 상태에 빠져, 더운 줄도, 추운 줄도 모르고 열심히 뛰어 논다. 그런데 놀이에 몰입해 천진난만하게 뛰어놀던 아이들이 학교에 진학하게 되면, 이 때부터 새로운 형태의 일에 부닥치게 된다. 예컨대 숙제 같은 것이다. 내일까지 해야 하는 과제는 분명 익숙하지 않은 노동이라 할 수 있는데, 아이는 곧 익숙해진다. 뭔가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종종 몰입도의 하락과 같은 것이다. 그나마 초등학교까지는 형편이 나은 편이다. 아직까지는 그들의 왕성한 호기심을 충족해 줄 환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고등학교로 진학하는 순간, 대다수 학생들에게 신나는 공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좀더 나이가 들면, 이제 직업을 갖고 일을 해야 한다. 놀이와는 전혀 다르며, 공부와 비교해도 역시 차원이 다른 노동이다.
최근 일을 재미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업무도 놀이처럼 해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일을 놀이처럼 한다는 것은 결국 업무에 대한 몰입을 높이자는 의미다. 그러나 직업적인 일과 놀이는 속성상 큰 차이가 있으며, 그것을 수행하는 환경도 같지 않다. 어떤 물리적 환경보다도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환경은 함께 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다. 따라서 누구나 일하고 싶은 일터를 구현하려면, 상호관계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근본적인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참고로 직업과 직업으로서 일은 다의적 -경제적인 의미, 생명유지의 의미, 정신적인 의미, 사회적인 의미- 인데, 직업의 다중적인 의미 중에서 어느 쪽에 한층 큰 비중을 두고 일을 하는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일터와 직장의 차이 / 일터와 가정의 균형일터는 직업이 갖고 있는 다양한 의미가 구체적으로 펼쳐지는 장소인데, 일터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환경은 상호관계라는 부분이다. 상호관계는 장기적인 노력을 통해 개선될 수 있으며, 그 효과는 서서히 발휘되는데, 이 점은 늘 시급한 과제를 다루어야 하는 최고경영자들이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다. 그리고 일터와 직장은 거의 같은 뜻으로 사용되지만, 두 개의 단어가 갖고 있는 어감에는 분명 차이가 있는데, 일터란 표현은 직장이란 단어에 비해 대단히 정서적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직장이란 단어는 상대적으로 경제적 의미를 강하게 담고 있다.
직업이 많은 사람에게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듯, 일터도 그것이 구현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기능과 역할 -부가가치가 창출되는 곳, 끊임없는 학습과 교육이 실행되는 공간, 놀이터와 같은 역할이 병행되는 장소- 이 수행되어야 한다. 거꾸로 말하면 일터가 반드시 경제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장소로만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한편 사람들은 가정과 일터 사이에서 곡예를 하듯 인생을 살아가는데,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일터에서의 생활이 오히려 가정 생활보다도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따라서 일터는 삶의 터전으로서 한 인간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구체화하는 곳이어야 한다. 그래서 초일류기업들은 '일과 가정의 균형'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제도와 방침을 조금씩 늘려가고 있다. 그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우수한 인재를 끌어 모아 유지하기가 점차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제2장 사오정과 오륙도의 하루우리들의 대부분은, 상아탑을 나와 사회에 첫발을 내딛을 때는 지금의 생활과는 다른 꿈과 포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덧 젊음의 패기는 물론 과거의 예리함과 부지런함도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우리가 토로하는 일터에서의 생활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우선 매우 불안하다는 점이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몸은 있으되 자신의 일터에서 마음이 떨어져 있다. 일터를 사랑하지 않고, 몰입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소극적이다. '잘하는 것보다 실수하지 않는 것이 장수비결'이라는 말이 금언처럼 되어 버리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마음의 이반을 보여주는 대목은 현재의 일터에는 꿈을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 성과지상주의에 시달린다. 성과지상주의는 원칙을 무시하게 만드는데, 영업과 같이 성과를 분명하게 계산할 수 있는 분야는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지만, 사무직에서는 무엇으로 성과를 계산해야 하는지, 요구하는 윗사람이나 지시받는 아랫사람이나 불만이 쌓이기는 마찬가지다. 따라서 우리가 점검해 보아야 하는 것은, 일터의 문화와 제도가 높은 소명의식으로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사람이나 열정을 갖고 매진하는 사람을 외롭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들을 소수로 전락시켜 고립시키지는 않은지, 허탈하게 만들어 좌절시키고, 결국에는 포기하여 안주하게 만들고 있지 않은지 하는 점이다.
제3장 일과 일터를 보는 다양한 관점
과학적 관리이론 - 프레더릭 테일러상사는 고급의 지적인 일을 담당하고, 부하는 틀에 박힌 반복적인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가? 만일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당신은 필시 프레더릭 테일러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는 관리직으로 있으면서 작업 효율을 향상시키기 위한 실험을 거듭했으며, 그 결과로 『과학적 관리의 원칙(The Princi-ples of Scientific Management)』이라는 책을 썼다. 과학적 관리이론의 가장 큰 특징은 시간 - 동작의 연구인데, 기본적인 동작, 작업, 도구의 특성을 정확하게 연구하여, 가장 빠른 처리 방법을 뽑아내고, 이를 표준 작업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이때 기준이 되는 것은 숙련공의 작업이다.
아울러 테일러는 과업을 정하고 성과에 따른 보상을 주장했는데, 한 사람에게 부과되는 1일 과업량은 표준 작업량보다 약간 높게 설정하였고, 그 과업을 초과 달성했을 때는 시간당 임금을 높게, 미치지 못했을 때는 낮게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과학적으로 운영되는 조직에서는 근로자들이 효율 개선에 몰입하게 되어, 전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고, 회사는 효율이 높아진 만큼 노동 비용을 줄일 수 있어, 그것이 근로자들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과학적 관리기법은 아주 비극적이라 할 수 있는데, 테일러의 목표는 천성적인 게으름뱅이가 공장에서 도태되고 사라지도록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었고, 그 과정에서 근로자들을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을 통제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같은 관계는 양쪽의 조화를 낳기보다, 한쪽의 자부심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근로자는 자기 일에 대해 아무런 만족을 느낄 수가 없게 되었던 것이다.
심리학적 인간관계론 - 엘튼 메이오산업 심리학자 엘튼 메이오가 주창한 인간관계론은, 1933년에 출간한 『산업문명의 인간 문제(The Problems of An Industrial Civilization)』에 정리되어 있는데, 세계 경영학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메이오는 인간의 몸과 마음은 모든 변화에 대해 반응하기 때문에, 산업 피로라는 문제를 생리학적 측면으로만 파악해서는 안 되며, 심리학적ㆍ사회학적인 다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또 반복 작업이 주는 단조로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작업 행동의 변화, 시간 목표가 아닌 산출물 목표, 개인 작업보다는 그룹 작업, 그리고 휴식 시간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메이오가 경영학에 뿌린 씨앗은 심리 측정, 직무 심화를 위한 조사, 인간관계 스킬 교육 등 다양한 형태로 결실을 맺었다.
목표에 의한 관리 - 피터 드러커드러커의 경영 사상 중 가장 널리 퍼진 이론은 목표에 의한 관리(MBO, Management By Objectives)인데, 관리자가 구체적으로 목표를 설정해 관리 행동의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또 관리자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른 부서에게서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명확히 기술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드러커가 경영자들에게 경영 목표에 집착해, 냉혹하게 직원들을 착취하라고 권고한 것은 아니다. 그는 근로자들을 단지 비용이 아니라 자원으로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열정과 탁월함의 경영 - 톰 피터스피터스는 『초우량기업의 조건(In Search of Excellence)』이라는 책의 공동 저자인 워터만과 함께 미국에서 과거 20년간 탁월한 재무적 성과를 보여준 43개의 기업을 찾아내고, 이 기업들에서 8가지의 공통적인 특징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고객 밀착(Close to the Customer), 자율과 기업가정신(Autonomy and Entrepreneurship), 사람을 통한 생산성(Productivity through People), 가치 중심(Value-Driven), 작은 것에 대한 성실(Stick to Knitting), 단순한 형식(Simple Form) 등이었다.
피터스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비이성적 존재라는 성찰을 하고, 그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심리적 욕구(승자가 되고 싶어하는 욕구, 운명을 통제하고 싶은 욕구 등)를 이용하는 기술을 사용하라고 권했는데, 피터스가 주장한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탁월함의 경영'은 국내에서도 많은 영업조직의 관리이론으로 도입되었다.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경영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좋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구성원을 존중하지 않고, 오로지 심리적 욕망을 자극하는 관리로는 탁월한 기업이 될 수 없다. 이런 관리방식의 피해자는 헌신을 강요당하는 대다수의 구성원들이기 때문이다.
제2부 탁월한 기업문화를 찾아서
제4장 일하기 좋은 기업 모델사람들은 어디가 좋은 직장이자 훌륭한 일터(GWP;Great Work Place)인지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만큼 일터가 개인의 삶에서 중대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포춘 100대 기업'(미국의 경제 전문지인 <포춘(Fortune)>이 해마다 신년호 특집으로 선정 발표하는 기업)은 일반적으로 GWP의 대명사로 통하는데, 포춘 100대 기업의 정확한 명칭은 '일하기에 훌륭한 미국의 100대 기업(Fortune 100 Great Companies to work for in America)'이다. 이들이 눈길을 끄는 것은 훌륭한 시설뿐만 아니라, 그들의 제도나 방침 같은 것들이다. 포춘 100대 기업은 단지 일만 하는 곳이 아니다. 그곳에서 공부하고 휴식도 취한다. 먹고 마시고 놀고 사귀는 생활이 일터를 중심으로 영위된다. 이 같은 일터의 모습은 종종 최고경영자의 '튀는 행동'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중요한 것은 튀는 행동의 이면에 기업의 분명한 경영 철학과 가치 체계가 있다는 점이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을 살펴보자.
사우스웨스트 항공(Southwest Airlines)은 미국에서도 기업문화가 독특하기로 정평이 난 기 업이다. 창업자 허브 켈러허(Herb Kelleher)는 재미있는 일터를 추구했는데, 조직이 추구하 는 핵심가치는 사랑이다. 켈러허 회장은 유머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다. 나아가 사우스웨스 트 항공의 모든 직원들은 기본적으로 유머가 넘쳐야 한다. 어떻게 하면 승객들을 즐겁게 할 것인지 늘 궁리한다. 예를 들어, 승무원이 기내에서 승객의 생일 축하를 위해 기타를 치거 나 짐칸에 숨어 있다가 나와 승객을 놀라게 한다. 구성원들이 즐겁게 일하는 재미있는 일터 가 만들어질 때, 고객 만족도 가능하다는 것이 창업자의 경영 철학이었다. 켈러허 회장은 개인의 창의성과 아이디어를 최대한 존중했다.
포춘 100대 기업은 경영 철학과 가치 체계가 탄탄하기 때문에 한두 가지의 제도나 방침이 무너져도, 새로운 형태로 정비되어 다시 시행되고, 회사의 경영 철학, 가치 체계에 대한 구성원들의 신뢰는 변함없이 이어진다. 상기 내용 외에 이 장에는 컨테이너 스토어 사례, TD인더스트리즈 사례, SAS 사례, 시노버스 파이낸셜 사례, 에드워즈 존스 사례 등이 소개되어 있다.
제5장 GWP는 어떤 곳인가구성원의 입장에서 기업을 평가하는 작업을 최초로 시도한 사람이, 바로 현재의 포춘 100대 기업 선정 주관자인 로버트 레버링이다. 로버트 레버링은 초기의 공동 연구자였던 밀턴 모스코비츠와 함께 불황 속에서도 여전히 이익을 내는 기업들을 찾아, 이런 기업들의 공통점을 찾아내고자 했다. 그러나 취합한 인터뷰 결과로도 훌륭한 기업의 공통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사람에 따라 동일한 제도에 대해서도 상반된 견해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연구 기관이나 매스컴이 훌륭한 회사로 지목한 기업과 구성원들이 스스로 자랑스럽게 칭찬하는 회사를 차례로 방문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레버링은 하나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는데, 일하기 좋은 훌륭한 기업의 구성원들은 한결같이 경영진을 '신뢰'한다는 것이었다. 또 자신의 업무와 회사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아울러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응답했다. 레버링은 이 연구 결과를 묶어, 1984년 『미국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이란 책을 출판했는데, 이 책은 출판과 동시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로 선정될 만큼 독자들의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미국 기업과 독자들의 비상한 관심에 고무된 레버링은 다시 10년에 가까운 현장 조사와 연구를 거듭해, 1993년 『미국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속편을 출판했다. 이 책 또한 전편 못지않은 관심을 끌었다.
한편 레버링은 방법론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뿐 아니라, 조사 대상 기업의 수에 있어서도 제한이 따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레버링은 통계학 박사였던 부인 에이미 라이만(Amy Lyman)을 비롯한 여러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표준화 된 조사 도구를 개발하기에 이르렀는데, 바로 오늘날 포춘 100대 기업의 선정 도구인 '훌륭한 일터 신뢰경영지수'가 그것이다. 이것은 흔히 레버링의 신뢰경영지수(Levering's Trust Index)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신뢰경영지수는 조직 내부의 관계의 질을 파악하기 위해 설계된 55개의 설문 문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문항들은 구성원들의 상사 경영진에 대한 신뢰, 업무와 회사에 대한 자부심, 함께 일하는 동료와의 재미 수준을 측정할 수 있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신뢰는 다시 믿음(credibility), 존중(respect), 공정(fairness)으로 나눠진다. 결국 레버링의 신뢰경영지수는 믿음, 존중, 공정, 자부심, 재미를 5가지 범주로 각각의 수준을 측정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레버링이 신뢰경영지수를 하나의 표준화된 신뢰 수준의 측정 도구로 정착시킨 것은 큰 의미를 갖고 있는데, 그동안 비교 평가가 불가능했던 기업 내부의 신뢰 수준을 다른 기업들과 비교해 볼 수 있는 벤치마크를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뒤 레버링의 GWP 선정 작업이 많은 미국 기업들의 지지를 받고 있음에 주목한 <포춘>은 그에게 공동 작업을 제안했는데, 과거 10년에 한 번씩 발표하던 것을 매년 신년호 특집으로 조사 선정해 발표하자는 것이었다. '포춘 100대 기업'이란 명칭은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등장하게 되었다.
GWP 모델의 확산1998년부터 2003년까지 6년 동안 포춘 100대 기업의 리스트를 보면 등위의 부침이 꾸준히 있었다. 그러나 약간의 순위 등락에도 불구하고, 톱클래스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는 기업들 -페덱스(FedEx), 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