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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장성군

양병무 지음 | 21세기북스
제1장 새로 태어난 장성군 주식회사



'장성'이요? 거기가 어디예요?


처음 만나는 사람들 사이의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듦으로써 가장 쉽게 친근감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방법으로 한국 사회에서 이보다 유용한 질문이 또 있을까. "고향이 어디세요?" 그런데 조심해야 한다. 상대방이 고향의 지명을 서너 번 반복해서 들려주어도 도무지 들어본 적 없는 낯선 곳일 때, 질문한 사람이나 대답한 사람이나 당황스럽고 난감할 수밖에 없다.

"고향이 어디세요?"

"혹시 장성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정선군이요?"

"아니요, 전라남도 장성군입니다."

"저, 죄송하지만 장성이 어디죠?"

"……."

'장성군長城郡'이라는 지명은 불과 10년 전만 해도 전국구라고 할 수 없는 철저한 지역구, 아니 강원도 산골의 어느 오지만큼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그래서 항상 마지막에는 말을 줄이는 것으로 설명을 포기하거나 마지못해 바로 옆의 광역시인 '광주'가 고향이라는 말로 지루하고 귀찮은 설명을 대신해왔다.



장성 사람들의 '말줄임표'는 광고 및 마케팅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한마디로 장성군이라는 브랜드의 '아이덴티티Identity'와 '파워Power'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 경제 무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양상을 살펴보면, 개인부터 기업이나 국가에 이르기까지 아이덴티티를 확립하고 브랜드 파워를 키우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성은 지방자치제 실시 이전까지 브랜드 파워, 혹은 장성을 한마디로 대표할 수 있는 이미지를 갖지 못했다. 부산 하면 '영화의 도시', 남원 하면 '춘향의 고장', 여주ㆍ이천은 '쌀'이라고 하지만 장성은 이들처럼 하나의 이미지로 대변할 수 있는 아이덴티티가 확립되어 있지 못했다. 그런데 지방자치제가 실시되기 시작한 1995년, 즉 민선 자치에 의해 민선 군수가 등장한 그 해 7월 1일 이후 장성군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그 어떤 기관이나 단체, 어떤 사람들도 전라남도 북단의 작은 군에서 시작되고 있는 놀라운 변화의 조짐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장성 사람들조차도.

대체 장성에서 무슨 일이?

일단은 장성군이 대한민국의 지자체 중에서 '전국 최초'로 이루어낸 일들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청와대가 홈페이지를 개설하기 일주일 전인 1995년 12월에 장성군은 전국 지자체들 가운데 가장 먼저 홈페이지(http://www.jangseong.jeonnam.kr)를 열었다. 대한민국 디지털 행정의 큰 걸음이 장성에서 첫 발을 뗀 셈이다. 디지털 행정의 첫걸음을 내디딘 장성은 이후에도 연이은 전국 최초의 실적을 과시했다. 대표적인 예가 홈페이지 개설과 함께 벌인 1인 1PC 운동이었다. 이어서 1997년에는 전국 최초로 전자 결재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다. 장성군은 또한 CI(Country Identity)를 군 단위 지자체 중에서 최초로 도입했으며, 토지민원행정 종합전산화를 최초로 추진했다. 장성군에서 다양한 실적들이 '전국 최초'로 이루어져 오고 있다는 사실은, 장성의 공직자들이 그만큼 자신의 업무를 개선하고 개발하여 끊임없이 '혁신'을 이뤄내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와 같은 변화와 혁신에 힘입어 장성군은 대통령 앞에서 세 번이나 업무 및 혁신 사례를 보고하였다. 또한 중앙 정부나 상위 지자체들로부터, 그리고 경실련을 비롯한 민간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각종 혁신 관련 상을 휩쓸어 지난 10년 동안 수상한 상금이 무려 100억원에 이를 정도이다. 장성군을 벤치마킹해 공무원의 의식을 전환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지자체도 이미 80여 곳이 넘는다. 그러다 보니 공무원들 사이에는 이런 우스갯소리가 유행하고 있을 정도이다. "장성군을 모르면 간첩이지!" 그만큼 장성군의 지명도와 브랜드 파워가 지난 10년 동안 엄청나게 격상되었다는 의미다. 이는 장성군을 배우기 위해서 다른 지자체나 기업체로부터 파견되고 있는 견학 인파를 보아도 증명이 된다.



'주식회사 장성군'을 부르짖는 CEO형 군수

21세기 지식ㆍ정보화 사회의 변화 속도는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다. 생각의 속도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런 까닭에 지구상의 모든 기업들은 '변즉생 불변즉사(變則生 不變則死)', 즉 변하면 살고 변하지 못하면 죽는다는 각오를 경영 마인드로 정립해 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공무원 조직은 아직도 변화에 둔감하다. 빠른 속도로 변화를 좇아야, 아니 변화의 속도를 앞질러야 생존할 수 있다는 기업들의 절대 명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4년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국가 경쟁력 부분에서 한국이 51개국 가운데 하위권인 35위를 기록한 데에는 공무원 사회의 이와 같은 폐단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IMD의 한국 측 책임자인 경쟁력평가원의 정진호 원장은 "대한민국의 변화와 발전, 그리고 혁신의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공무원 사회의 정체 현상과 경직성이다"라고 지적한다.



그런데 21세기 정보화 사회의 변화 속도와 대한민국 공무원 사회의 경직성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이를 바로잡아 변화와 혁신을 불러오겠다는 이가 있었다. 바로 초대 민선 군수로 당선된 이래 3선으로 10년 동안 장성군을 위해 일해오고 있는 김흥식 군수이다. 하지만 문제는 공무원의 변화 가능성을 어디에서 찾아 어느 방향으로 이끄느냐 하는 데 있었다. 그는 이 문제의 해답을 자신의 경험과 이력에서 찾아냈다. 바로 '고객 제일주의'와 '책임 경영'으로 대변되는 기업의 경영 마인드가 그것이었다. 즉 공무원의 장점을 살려 기업의 경영 마인드와 접목시킬 수 있다면 대한민국 공무원은 세계 제일이 될 수 있으며, 대한민국의 선진국 진입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발견한 것이다. 결국 그는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던 첫해인 1995년, 민선자치단체장 1기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당시 그가 내건 선거 전략의 모든 핵심은 이 한마디에 응축되어 있었다. '주식회사 장성군' 그는 스스로를 주식회사 장성군의 준비된 CEO로 자리매김함으로써 장성 국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규정과 관례의 벽을 무너뜨리며

주식회사 장성군을 만들기 위한 첫 번째 작업은 기업의 기획조정실에 해당하는 '경영관리팀' 구성이었다. 1995년 7월 1일 민선 군수 취임 후 닷새 만에 김흥식 군수는 전격적인 팀제의 경영관리팀 골격을 마련했다. 그러나 경영관리팀 운영 직후 김 군수는 견고한 벽에 맞닥뜨리게 된다. 위에서 시키는 일만 수동적으로 하면 아무 문제가 생길 리 없는 공무원의 입장에서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일은 잘해야 본전일 뿐이었다. 새로운 일에 의욕을 보였다가 잘못되는 경우 돌아오는 것은 감사와 징계뿐이라는 인식이 공무원들 사이에 팽배해 있었다. 그야말로 무사안일주의와 적당주의ㆍ복지부동ㆍ보신주의의 장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주식회사를 표방하며 변화와 혁신을 주장하는 초대 민선 군수와 기존 공무원들 사이의 갈등은 이미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김 군수 역시 처음 1년 정도는 공무원과 전쟁을 해야 할 거라는 각오를 하고 있었다.



김 군수는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우수한 인재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에게 지식ㆍ정보화 사회로 변해가는 세상의 흐름에 맞춰 방향을 제시하고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면, 1970년대 고도성장 과정에서 공무원에게 쏟아지던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그와 같은 확신 속에 김 군수는 경영관리팀뿐 아니라 군청의 모든 조직을 팀제로 개편하고 싶어 했다. 경영관리팀을 운영하는 6개월 동안 서서히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실무 과장 및 계장들이 솔선수범하며 열심히 일하는 풍토가 정착되고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개편된 조직에 맞게 인원을 정리하고 능력과 실적에 따라 유능한 인재를 과감하게 발탁해 적재적소에 재배치함으로써 연공서열 중심의 인사 관행을 탈피했다. 미흡하나마 기업형 인사 관리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공무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했던 것이다.



주식회사 장성군의 설립 밑천

사실 지방자치의 실시는 대한민국의 모든 지자체들에게 경쟁이라는 숙명을 받아들이라는 요구에 다름 아니었다. 주식회사가 무엇인가. 주주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인인 회사가 아닌가. 따라서 '주식회사 장성군'의 설립을 주장한 김 군수는 주식회사 장성군의 CEO로서 주주인 군민들을 자신의 주인으로 소중하게 섬기겠다는 맹세를 한 셈이었다. 그런 만큼 김 군수는 초대 민선 군수로 취임한 이후 군정의 기본 방향을 '군정의 경영화', '행정의 서비스화', '농업의 일류화', '지역의 균형화'로 정해 실천해오고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의문이 하나 생긴다. 장성군은 인구 5만여 명에 불과한 이름 없는 작은 군, 더구나 민선 군수 취임 당시의 예산 규모로 볼 때 전라남도에서조차 하위권에 머물던 보잘 것 없는 농촌이었다. 그런 그들이 주식회사 장성군을 설립할 수 있는 밑천, 즉 자본금으로 여겼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김 군수가 주식회사 장성군 설립을 위해 가장 먼저 주목한 밑천은 '교육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었다. 그는 평소 이렇게 말해 왔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사람이지만, 사람을 바꾸는 것은 교육이다." 주식회사 간판을 내건 장성군은 공무원과 주민의 의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교육과 연수를 중시하는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교육밖에 없다고 믿고 교육에 대한 투자를 과감히 실행한 것이다. 교육을 중시하는 정책 속에서 탄생한 장성의 명물이 바로 '장성 아카데미'이다. 다음으로 김 군수가 주목한 주식회사 설립 밑천은 문화 산업과 관광 산업 발전의 토대가 될 자원들, 즉 장성의 문화유산과 자연환경이었다. 또한 첨단산업을 유치할 수 있는 장성의 지리적 여건은 주식회사 설립의 또 다른 밑천이었다. 광주광역시의 하남공단과 첨단과학단지가 가까워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 주식회사 장성군의 마지막 밑천은 공무원의 열정과 헌신, 그리고 군민의 적극적인 협조였다. 이 밑천을 토대로 민과 관이 협력함으로써 주식회사 장성군의 혁신 경영이 성공에 이를 수 있었다.



'주식회사 장성군'의 혁신 경영

어떤 조직이든 리더의 생각과 철학이 중요하다. 조직은 리더의 생각의 크기만큼 성장하기 때문이다. 장성군의 경우도 역시 김 군수의 생각과 철학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 그가 어떤 철학과 비전 위에서 장성 호를 이끌고 있는지 먼저 살펴보는 것이 장성군의 혁신 사례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기본은 곧 상식'이라고 믿는 김 군수는 상식을 존중하는 경영 마인드로 군 행정을 펼치고 있다. 그는 행정이란 물이 흐르는 대로 가면 문제가 생길 리 없는데, 상식에 어긋나는 일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무리가 따른다고 말한다. 기본과 함께 그가 중요시하는 철학이 '원칙'이다. '원칙은 곧 진리'이기에 공평하다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어느 한쪽이 불합리하게 손해를 본다면 그것은 원칙이 아니라고 말한다. 원칙인지 변칙인지의 여부는 감추지 않고 공개해야 판가름이 난다고 믿는 그는, 지난 10년의 군수 임기 동안 원칙을 고수해왔기에 많은 어려운 결정들을 단호하게 내리고 추진할 수 있었다.



김 군수는 의사결정을 내릴 때 숙고 끝에 직관에 따라 움직인다. 따라서 빠른 결정과 신중한 결정이 조화를 이룬다. 그가 결정을 신속하게 내리는 경우는 대부분 원칙과 경험을 토대로 할 때이다. 원칙에 맞으면 '예스'이고 맞지 않으면 '노'라는 의사를 분명히 한다. 또 경험했던 일은 자신 있게 가부를 결정한다. 반면에 이해관계가 상충될 때에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뜸을 들인다. 이해 관계자의 의견을 전부 청취한 후에 결정을 내리기 때문이다. 어떤 일들은 결정을 내리는 데 한두 달이 걸리기도 한다. 그러나 일단 결정이 내려지면 무섭게 밀어붙인다.



군민들의 여론을 중시하는 그이지만 이런 경우에 있어서만큼은 절대로 여론에 휘둘리지 않는다. "여론에 항상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여론이 지나치게 현실타협적인 경우에는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는 "리더는 카이사르가 말했듯이 보고 싶은 현실만 보아서는 안 되며 보고 싶지 않은 현실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에게 '고집쟁이', '독선가', '불도저'라는 별명이 따라다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장성군 공무원은 결과적으로 그의 결단력에 놀라워한다. 지난 10년 동안 김 군수가 내린 의사결정에 큰 과오가 거의 없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제2장 변화는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중국에는 만리장성, 한국에는 아카데미장성


장성군은 1995년 9월 15일 이후 매주 금요일 장성 아카데미를 열고 있는데 2005년 현재 10년째를 맞고 있다. 어느덧 500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장성 아카데미를 수강한 인원만도, 총 21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이 수치를 단수 계산해 보면, 장성 군민 한 사람당 네 번 가량의 강의를 들은 셈이 된다. 1995년 9월부터 2005년 8월까지 장성 아카데미에서 강의를 한 총 448명의 강사들을 분야 별로 분석해보면 그 면면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그들 중 연구원이 106명, 대학교수가 106명, 전문 경영인이 49명, 대학 총ㆍ학장이 45명, 장ㆍ차관이 49명, 언론인이 24명, 국회의원이 14명, 문화예술인이 10명, 외교관이 6명이다. 말 그대로 우리 사회 모든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전국 자치단체와 공무원들 사이에 이런 말이 생겨났다. 중국에는 만리장성, 한국에는 아카데미장성. 이는 그만큼 장성군이 대한민국 공직 사회에서 학습하는 지방자치단체로 자리를 잡아 유명세를 치르

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장성 아카데미는 산업 사회에서 지식ㆍ정보화 사회로 넘어가는 21세기에 교육이 그 구성원을 변화시키고 재무장시키는 데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준다. 사람이 경쟁력인 지식ㆍ정보화 사회에서는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가장 위대한 상속이 물질이 아닌 지식과 정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생각이 변하면 행동이 변하고, 행동이 변하면 습관이 변하며, 습관이 변하면 운명이 변한다"고 했다. 장성 아카데미 강연을 들은 장성 군민의 말 속에서 느낄 수 있듯이 장성 사람들은 교육을 통해 생각과 행동과 습관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장성 군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러한 변화가 모여 장성군 전체의 운명이 바뀌는 기적을 이루어가고 있다. 장성군 공무원과 군민들의 의식은 이제 개별적이고 자체적인 학습 조직을 구축해 지식 근로자로 거듭날 만큼 성장해 있다. 그리고 장성군은 지식기반 산업의 메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제3장 사람이 세상을 바꾸고, 교육이 사람을 바꾼다



콩나물과 사람은 밑 빠진 독에서 자란다


조직의 힘은 그 구성원, 즉 사람의 경쟁력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에서 공무원 조직은 어느 조직 못지않게 우수한 인재들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그 인재들이 규정과 관행에 젖어 현상 유지에 안주하다 보니 자기계발과 발전이 없고, 심한 경우 21세기 지식ㆍ정보화 사회에서 무능한 사람으로까지 낙인찍히기도 한다. 그러나 김 군수는 어떤 사람이라도 얼마든지 변하게 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교육의 효과를 확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장성 아카데미 강좌를 비롯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안했을 때 대부분의 공무원과 군민들은 물론이고 장성군 의회와 지역 언론들까지 반대가 심했다. "장성군 같은 시골 농촌에서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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