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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 - 중국제일상인

구민 지음 | 삼진기획
경상의 원리를 알고 전략을 세운다



중국 최초의 경제이론가, 계연



미리 예측하고 대비한다 / '상술의 꽃'으로 불린 계연의 18책


진은 잉여 생산품을 여러 나라에 내다팔기 위해 각종 개방정책을 취했고, 그 결과 진나라 남쪽 일대에 거상(巨商)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계연은 당시 이런 기회를 이용해 염업으로 상당한 부를 쌓았다. 좌구명(左丘明)의 『좌전』에 계연에 관한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계연은 숙향의 조언을 받아 들여, 월나라로 망명했는데, 이때 그가 몸에 지녔던 책이 바로 경영관리를 다룬 『적저지리(積著之理)』이다. 참고로 계연은 월나라에서 범려(范려)와 교류하게 되었고, 범려는 구천에게 계연을 천거했는데, 계연이 범려와 함께 알현하자 구천이 계연에게 물었다. "오늘 특별히 청해 뵙고자 한 것은 선생의 고견을 듣고자 함입니다. 지금 우리 월국은 오국과의 전쟁 이후 힘을 잃고 피폐해져 있습니다. 우리 월나라를 다시 부강하게 할 수 있는 묘책이 없겠습니까?"



그러자 계연이 "『적저지리』에 의거하여 행한다면 불가능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구천이 "적저지리란 무슨 뜻입니까?"라고 되물어, "여기서 말하는 '저(著)'란 글을 쓰는 것을 뜻함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단계별 행위를 말합니다. 또한 '저'는 일을 도모하는 계책을 말합니다. 국가 경제를 관리하는 일도 결국 계책에 의존하기 마련입니다. 계책 한두 개는 효과를 발휘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많은 계책이 축적되면 나라가 부강해지고 원하는 목표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구천이 다시 "그럼 첫 번째 '저'는 무엇이 되어야 합니까?"라고 물어, 계연은 "우선 농업생산량의 주기를 정확히 파악하여 흉년이 드는 해를 대비해, 풍년이 들었을 때 양식을 충분히 비축해 두는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구체적인 실행방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국가경제를 관리하는 일이나 경상의 원칙은 서로 통하는 것이 많습니다. 우선 두 가지 다 예단력이 있어야 합니다. 허나 무조건 백성을 구제하거나 시주하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에 평적법(平糴法)을 이용하여 시기에 따라 적절히 조절하는 방법을 권하는 바입니다. 평적법은 국가가 양식의 수요와 공급을 관리하고 조절하는 최고의 방책입니다. 풍년이 들었을 때 국가에서 양식을 대량으로 사들여 가격이 떨어지는 것을 막음으로써 농민들이 손해를 입는 것을 방지하고, 흉년이 들었을 때는 적당한 가격에 양식을 대량 방출함으로써 난관을 안정적으로 넘길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구천이 계연에게 다른 물품에 대해서도 이와 동일한 방식을 적용할 수 있는지 물었더니, "평적법은 오직 양식에만 적용해야 합니다. 양식은 국가안위는 물론 백성들의 생사와 연관되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물품까지 평적법을 적용할 필요는 없겠으나, 시장에서의 수요공급에 관한 세부사항은 알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재물은 모아두고 사용하지 않으면 절대 늘어나지 않습니다. 물이 흐르듯 돈이 돌게 해야 비로소 부를 이룰 수 있습니다. 이 유통과정 중에 작용하는 수요공급의 원칙, 가격변동의 규칙을 이용함으로써 비로소 큰 재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10년이 지난 후 월나라는 부국강병을 이루었고, 구천은 때를 놓치지 않고 군사를 일으켜 오나라를 치고 부차에게 패배를 안김으로써, 회계(會稽:월의 수도)에서 당한 패배를 설욕하였다. 이후 범려는 관직에서 물러나 제나라로 가서 상업에 종사했는데, 『적저지리』의 도리에 근거하여 가업을 일으킨 결과 오래지 않아 거부가 되었다. 한 사람이 범려에게 비결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나는 주로 계연이 말한 경상이재(經商理財) '18책(十八策)'을 철저하게 적용했을 뿐이오. 계연은 나라를 다스리는 데 썼지만, 나는 그것을 가업에 적용한 것이지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계연의 18책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나태함을 경계하고 근면해야 한다. 둘째, 가격은 모호하지 않고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 셋째, 사치를 멀리하고 근검해야 한다. 넷째, 외상거래를 남용하지 않고 사람을 가려야 한다. 다섯째, 물건을 함부로 들이지 말고 직접 눈으로 검사해야 한다. 여섯째, 출납기록은 정확히 해야 한다. 일곱째, 사람을 쓰는 일은 올곧아야 한다. 여덟째, 물품은 질에 따라 구분해 놓아야 한다. 아홉째, 물품은 자리를 잘 정돈해두어야 한다. 열 번째, 기한은 정확하게 지켜야 한다. 열한 번째, 매매는 신속해야 한다. 열두 번째, 금전 관리는 명확히 해야 한다. 열세 번째, 물품장부는 철저하게 살펴야 한다. 열네 번째, 교역상대를 대함에 있어서는 겸허해야 한다. 열다섯 번째, 항상 마음을 안정되게 지녀야 한다. 열여섯 번째, 스스로 책임을 다해야 한다. 열일곱 번째, 일처리는 꼼꼼하게 해야 한다. 열여덟 번째, 말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



진상의 혼(魂)

봉건사회의 전통적 관념은 유학을 숭상하고 상업을 경시했다. 그러나 당시 상품교역 경제가 비교적 발달했던 산서의 사회 환경에서는, 학업에 정진하여 과거에 급제하는 것은 뒷전이고, 착실하게 상업과 매매업에 종사하여 부를 이루는 것이 정상적인 처세였다. 이런 진상의 사고방식은 그들을 뛰어난 상인으로 만드는 중요한 배경 중 하나가 되었다. 어느 직업이든 사회분업의 근거로 삼을 뿐, 그 상하귀천을 따지지 않는, 그들의 시대를 초월한 정신을 '진상의 혼'이라 할 수 있다.



남이 포기한 일에 기꺼이 뛰어든다



관계와 상계를 넘나든 전옥천



평범하게 길러 큰 인물을 만든다


전옥천은 명대 산서 포주(蒲州) 출신으로 그의 집안은 대대로 상업에 종사해왔는데,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고 명랑했던 전옥천은 어린 시절 염업에 종사하는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염장(鹽場)에서 뛰어놀며 자랐다. 한번은 아버지의 동료인 이씨가 옥천을 불러,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각각 녹슨 도끼 한 자루씩을 주며 이튿날 산에 올라 나무를 해오라고 했다. 그리고 둘 중 나무를 더 많이 해 온 사람에게 큰 상을 내리겠다고 약속했다. 다음날 형은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먹기가 바쁘게 도끼를 둘러메고 산으로 올라가 나무를 하기 시 작했다. 그러나 동생은 서두르지 않고 먼저 도끼를 숫돌에 갈아 도끼날을 날카롭게 세우고 나서야 집을 나섰다. 도끼를 가는 데 꽤 시간이 오래 걸려서 산에 올라가니 이미 정오가 가 까웠다. 동생이 산에 올라가 보니, 형은 이미 나무를 한 짐 크게 해놓고 있었다. 그것을 보 고도 동생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날카로운 도끼를 천천히 휘두르며 나무를 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자 형이 한 것보다 동생이 한 나무가 훨씬 더 높이 쌓였다. 나중에 아버지에 게 상을 받은 이는 결국 동생이었다.



이씨는 이야기를 마친 뒤 옥천을 바라보며 무엇을 느꼈는지 물었더니, 옥천은 "하나는 일을 반만 하고 그 공이 배가 된 반면, 하나는 일을 배로 하고도 그 공은 반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시간을 들여 도끼날을 세우는 것이 오히려 나무를 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라고 말하여, 어느새 가까이 와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옥천의 아버지를 흐뭇하게 했다. 이후 옥천의 아버지는 아들 교육에 더욱 정성을 기울였는데, 그는 어린 조충(曹沖)이 코끼리 무게를 알아낸 일, 공융(孔融)이 형제들에게 배를 양보한 일, 사마광(司馬光)이 독을 깨 친구를 구해낸 일 등 주로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 아들에게 들려주었다. 총명하고 활달한 옥천은 이렇게 아버지를 따라가 염장에서 놀던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세대의 사업 경험을 자연스럽게 체득했다.



남이 포기한 일에 뛰어든다 / 인재를 등용하여 귀중한 시간을 얻는다

당시 조정에서는 군사상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하여 '개중제(開中制, 상인들이 국가에 물품을 바치고 그 대가로 소금의 전매권을 얻는 제도)'를 만들어 소금의 생산과 전매권을 절대적으로 장악하고, 상인들을 모아 대리판매 했다. 그런데 명조 중엽에 이르러 이윤이 많이 남는 것을 알고 관료들의 자제들이 너나없이 염업에 뛰어들기 시작해, 결과적으로 사염(私鹽)이 나날이 늘어났고, 사염이 늘어나자 관염(官鹽) 판매는 자연 침체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염상들은 하나둘 창주 -명대 초기 포주의 염상들은 대개 회염(匯鹽: 강소성 소금)을 취급했는데, 전옥천의 아버지는 상대적으로 취급하는 이가 적었던 창주염(滄州鹽: 하북성 소금)을 취급했음- 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상인들이 너나없이 창주를 떠나자 전옥천의 아버지도 마음이 동요되어 창주를 떠나야 할지 아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옥천은 "창주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라며, 다음과 같은 논리를 이유로 제시했다.



첫째, 현재 사염이 증가하는 이유는 주로 염관들이 실정(失政)을 했기 때문이다. 둘째, 개중제는 조정에서 군비를 조달하기 위한 중요한 방책이다. 그러므로 조정은 폐단을 막기 위해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할 것이 분명하다. 셋째, 조정에서 개혁을 시작하면 현재의 판매지역 구조가 깨지고 새로이 지역분할이 이루어질 것이다. 넷째, 사염이 일으킨 풍파가 정돈된 후에는, 관염의 판매가 다시 크게 증가할 것이며, 지리적 위치나 여러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건대, 창주가 관염의 중추적 유통 기지가 될 것이 분명하다. 다섯째, 여러 가지 징후들을 두고 보건대, 지금이야말로 여명을 코앞에 둔 암흑기라고 할 수 있으며, 조만간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시기가 도래할 것이다. 여섯째, 일단 창주염의 유통이 다시 융성해지고 큰 이윤이 보장되면, 많은 염상들이 온갖 수단을 써서 다시 시장에 끼어들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거래처의 수에 따라 시장을 장악 여부가 결정될 것이며, 시장을 장악한 자는 큰 수익을 얻게 될 것이다.



전옥천의 아버지는 구구절절 합당하고 논리정연한 아들의 말을 듣고 나서, 다른 염상들의 뒤를 쫓지 않고 창주를 지켰다. 일정 기간이 지나자 과연 전옥천이 예측한 대로 창주의 염업이 다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다른 염상들이 창주를 떠나간 시기에 이곳을 굳게 지켰던 전씨 집안은 고정적인 거래처를 많이 확보하고 있었다. 하지만 창주가 다시 뜨자 뒤늦게 진출한 염상들은 새로운 거래처를 발굴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고, 새로운 거래처를 하나 만드는 데에는 기존 고정거래처 네 곳을 관리하는 데 소요되는 정도의 비용이 들었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용이 덜 드는 전씨 가게는 다른 염상들에 비해 훨씬 높은 이익을 유지할 수 있었다.



참고로 그 뒤 전옥천은 사업으로 상당한 자본을 축적했고, 자본의 가치를 증대시키기 위해 묶어두지 않고 끊임없이 회전시키고 운용했다. 그런 방식으로 원래의 사업기반을 공고히 하고 그 규모를 더욱 확대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동업자들을 찾아 나섰다. 예를 들어 사업수완은 있으나 자본금이 없는 사람이 있으면, 전옥천이 그를 대신해 출자하고 동업관계를 형성해 사업을 시작하게 해주었다. 이렇게 하면 상대는 지인을 만난 은혜에 감격하여 사업에 전심전력을 다하였다. 전옥천의 이러한 합작방식은 표면적으로는 상대방을 돕는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그 스스로를 돕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용을 버린 이익은 취하지 않는다 / 경영의 근본

전옥천은 소도 한 마리 키웠는데, 이 소가 병이 들어 곧 죽을 듯한 모습을 보였다. 당시 전옥천은 타지에 나가 있어, 전옥천의 아들이 어머니에게 소가 병들어 버린 이상, 아직 죽지 않았을 때 시장에 내다파는 게 좋은 것 같다고 말하고, 꽤 좋은 가격에 이웃마을의 농민에게 팔았다. 객지에서 돌아 온 전옥천이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아들로부터 병든 소를 팔아버린 이야기를 듣고, "너는 병든 소 한 마리를 팔아버린 것이 아니라, 우리 집안의 명예와 신용을 팔아버린 것이다."라며 아들을 크게 나무랐다. 아들이 잘못을 뉘우치자, 전씨 부자는 후한 예물을 준비하여 소를 산 이웃마을의 농민을 찾아 전후사정을 설명하고, 소를 팔았던 돈에 며칠 동안 소에게 먹인 초료(草料)값을 보태어 돌려주고 정중히 사과했다. 농민은 감격하여 그 후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옥천의 사람 됨됨이를 칭찬하여, 전옥천의 명성은 순식간에 인근에 널리 퍼졌으며, 크게 신용을 얻자 사업은 더욱 번창일로를 걷게 되었다.

경영에서 신용은 가장 근본이라 할 수 있다. 전옥천이 병든 소를 속여 판 일을 지나치지 않고 돈을 돌려주고 되찾아 온 일은, 그가 소비자에게 높은 신용도를 얻는 계기가 되었다. 현대의 광고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전옥천의 이러한 행위는 외부 경제 효과를 만들어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즉 적은 투자로 큰 광고 선전 효과를 얻은 것이다. 오늘날에도 신용은 많은 경영자들의 중요한 덕목이다.

상기 내용 이외에 이장에는 '빼어난 혜안을 지닌 범세규'에 대한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깨를 심어 수박을 거두듯, 작은 투자로 큰 성과를 만들어낸다



작은 이익을 버려 크고 원대한 목표를 이룬 왕해봉



가장 큰 수익과 가장 작은 손실을 취한다 / 모험은 기회를 만들어낸다


왕해봉은 산서 포주에서 태어났는데, 그곳은 땅이 척박하고 인구가 조밀했다. 그런 탓에 자연히 고향을 벗어나 바깥의 넓은 세상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외지에서 삶을 개척하는 것이란, 바로 상업의 바다에 투신하는 것을 뜻하는데, 평생 이곳에 묻혀 호구지책을 이어가고 싶지 않았던 왕해봉 역시 외지로 삶을 개척하러 떠나는 대열에 합류했다. 왕해봉은 '여러 가지 수익 중에서 가장 크고 분명한 것을 취하고, 여러 가지 손실 중에서 가장 작고 경미한 것을 취한다'라는 원칙 아래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을 한 다음, 가장 짧은 시간에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방법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는 모험과 기회를 결합하여 큰 수익을 이끌어 내었다.



신속하고 과감한 결단으로 두 배의 효과를 거둔다

산을 끼고 길게 뻗은 좁은 길 위에, 항아리를 잔뜩 실은 마차 한 대가 진흙 속에 바퀴가 깊이 빠져 나아가지도 못하고 뒤로 물러서지도 못하고 있었다. 마차가 길을 막고 있는 바람에 뒤에 따라오던 다른 마차들도 길을 통과하지 못해 순식간에 마차 대열이 산중에 길게 늘어섰고, 계곡 일대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때 왕해봉의 마차가 부근에 도착하여 길고긴 마차 대열 끝에 합류했는데, 왕해봉은 수하 한 사람에게 앞으로 가,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이렇게 길이 막혔는지 알아보도록 시켰다.

사정을 파악하고 돌아온 수하로부터 보고받은 왕해봉은 손수 앞으로 가 사고가 난 마차가 있는 현장을 둘러보고 난 후, 큰소리로 화주에게 물었다. "이 항아리 한 차는 대략 그 값이 얼마요?" 화주가 대답했다. "은자 60냥이 되지요." 왕해봉은 은자 60냥을 지불하고 난 뒤 사람을 시켜 마차 위로 올라가, 줄을 풀고 마차 위의 항아리들을 모두 계곡 아래로 던지게 했다. 그러자 마차는 진흙땅에서 빠져나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고, 뒤에 길게 늘어서 있던 백여 량의 마차들도 천천히 앞으로 움직였다. 왕해봉의 과감한 결단으로 이루어진 이 일은 상인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그의 명성이 더욱 높아졌으며, 이후 그가 사업을 전개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다.



먼저 주고 나중에 더 큰 것을 가진다

가정 42년(1563년) 70세의 나이로 왕해봉이 상계를 은퇴해 고향으로 돌아온 후 새집을 짓기 위해 좋은 집터를 물색했는데, 찾아낸 집터 한가운데 낡은 집이 한 채 버티고 있어 새 집을 설계하기가 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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