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베이션 스토리
박영택 지음 | 네모북스
Part 01 발과 땀과 눈물의 행정으로 거듭나고 있는 공공기관
행정 품질의 선구자 - 미국 매디슨 시청35세의 젊은 나이에 매디슨 시장으로 당선된 센센브레너는 데밍의 품질 철학을 시정의 기본 방침으로 도입했다. 현대 품질 경영의 선구자였던 데밍 박사는, 정작 자신이 가르쳤던 품질 경영의 원리를 경쟁 상대가 없는 관청에 성공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센센브레너 시장은 품질 경영이 공공 부문의 개혁을 위한 실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 주었다. 정부의 품질에 관한 가장 흥미 있는 사례로 손꼽히고 있는 매디슨 시청이 보여 주는 행정 품질 경영의 참모습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사람들은 기업과 관청을 비교하고 있다. 그들은 월요일에 아멕스에 신용카드를 신청하면, 며칠 안에 우편으로 카드를 받게 된다. 하지만 관청에 가서 별것 아닌 운전면허증을 갱신할 때는 그보다 몇 배의 시간이 걸린다. 관청의 운전면허과와 신용카드 회사는 서로 경쟁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서로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
센센브레너가 이러한 문제를 실감하게 된 것은, 1983년, 2년 임기의 메디슨 시장으로 처음 당선되었을 때의 일이다. 주(州)의 수도인 매디슨시는 행정 서비스 분야가 계속 증대됨에 따라 소요 비용도 증가했지만, 레이건 혁명으로 인해 세입은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었다. 그리하여 과세 대상이 될 수 있는 재산에 대한 세금 부과가 거의 한계에 이르자, 1983년부터 구급차 사용료와 같이 말썽의 소지가 있는 방법으로 재원을 염출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예산 청문회는 해마다 치러야 하는 악몽으로 변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행정 서비스의 축소나 세금의 인상 중 그 어느 것도 원하지 않았고, 심지어 그들은 세금 부과는 증가했지만, 시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는 오히려 줄어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센센브레너 시장은 궁지에 몰렸다는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런데 바로 그 때 그의 보좌관 중 한 사람이 데밍의 강연을 들어 보라고 권했다. 당시 82세였던 이 노학자는 일본이 세계 제2차 대전의 폐허를 딛고 기적적으로 부흥할 수 있도록 도와 준 장본인이었다. 데밍은 물건을 만들고 난 후에 이루어지는 사후 검사에 의존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것을 토스트 굽는 것에 비유하면, '너는 태워라. 나는 긁어내겠다.'라는 식이라는 것이었다. 이미 잘못된 것을 '하류(下流)'에서 바로잡으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상류(上流)'에서 제대로 관리하여 항상 기대한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데밍은 이를 위해서는 조직 안에 품질을 중시하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하고, 지속적인 개선을 통해 고객을 만족시키면서, 자신이 제공하는 서비스와 상품의 특성치에 대한 산포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센센브레너 시장은 품질 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조직의 변화에 대해 데밍의 설명을 들으면서, 자신이 모색하고 있던 것이 바로 그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그러한 것들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혁명적인 변화가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정비 대기중인 자동차로 혼잡한 시영 정비소를 데밍의 주장을 시험적으로 적용해 볼 만한 곳으로 생각하였다. 대다수의 정비소 직원들이 회의적인 태도로 임했지만, 시장은 노조 지도자인 홈즈 위원장을 만나 시장 자신이 직접 참여하겠다는 것을 진솔하게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의 참여가 없으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점을 설명하자 홈즈도 함께 참여하기로 동의했다. 그들은 팀을 구성하여 기술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정비 공장에서 직접 자료도 수집했다.
마침내 정비 작업이 지체되는 주된 이유가, 정비소에서 필요한 부품들을 제대로 구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부품 관리 담당자에게 문제를 제기했더니, 부품 확보에 문제가 야기되고 있는 것은, 시 당국이 매년 다양한 모델의 차량을 구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시청의 보유 차량을 형식, 제조업체, 모델, 연식 등으로 나누어서 살펴보았더니, 그 종류가 무려 440종이나 되었다. 부품 관리자의 말로는 어떤 차량이든지 구입 당일, 고시 가격이 가장 싼 것을 구매해야 한다는 시 당국의 방침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고 했다.
다음에 그들이 찾아간 곳은 부품 구매 담당자였는데, 그도 같은 견해를 갖고 있었고, "부품의 종류를 줄이면서 신뢰할 수 있는 소수의 공급자들로부터만 납품 받는다면, 부품 구매 담당자의 업무가 매우 수월해질 것이다. 그런데 구매 본부가 이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구매 본부를 찾아갔더니 "그 이야기라면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기존의 구매 방침을 바꾸기는 어렵다. 감사관이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라고 말하였다.
다음은 감사관의 말이다. "당신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그렇지만 시 법무관이 그러한 것을 인가해 주도록 허용하지를 않는다." 그래서 법무관을 찾아갔더니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천만에! 그렇게 해도 된다. 품질 보증, 정비의 용이성, 부품의 입수 용이성, 매각할 때의 잔존 가치 등에 대한 명세서만 작성하면 된다. 이러한 점들을 미리 분명히 하면, 문제될 것이 없다. 사실은 당신네들이 줄곧 그렇게 해 온 줄 알고 있었다." 이것은 실로 어처구니없는 발견이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센센브레너 시장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을 깨닫게 되었다. 첫째, 문제는 일선 직원들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결함 때문에 야기된 것이었다. 둘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팀워크와 부문 간에 있는 장벽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셋째,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일선 직원들을 문제 해결에 동참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 직원들은 자신들이 책망과 무시의 대상이 아니라, 상담자가 되고 협력자가 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그들의 사기와 생산성이 크게 높아졌다. 실제로 직원들은 의욕에 넘쳐 예방 정비를 통한 원가 절감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직원들의 노력 덕분에 정비에 소요되는 시간이 평균 9일에서 3일로 단축되었다. 그리고 예방 정비에 투입한 돈의 일곱 배가 넘는 수리비를 절감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1987년 센센브레너 시장은 가장 우수한 다섯 명의 관리자에게 그들의 공로를 인정한 뒤 봉급 인상을 제의했다. 놀랍게도 그들 모두가 봉급 인상을 사양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소속된 팀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는 듯한 인상을 풍기게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신 그들이 원하고 기대하는 것은, 잘 해 낸 일에 대한 일상적인 피드백으로서 그들의 어깨를 두드려 준다거나, 최고 경영자인 시장이 메모지에 그러한 뜻을 적어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1989년 센센브레너 시장이 시장직을 두 번 연임한 후 이임할 무렵, 매디슨 시청에서는 20~30건의 품질 개선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고, 시 당국은 전체 직원들에게 품질 개선을 위한 교육을 완료한 상태였다. 또한 시청 직원들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내부 고객들에 대한 서비스 개선책을 계속 찾아내고 있었다. 정부보다는, 시장에서 격심한 경쟁에 시달리고 있는 기업들이 품질 경영을 도입해야 할 필요성이 더 큰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정부 기관들도 경비 절감에 대해 많은 압력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중앙 정부의 심각한 재정 적자 문제뿐만 아니라, 지방 정부의 예산 균형 문제, 경제 위축이나 저성장에 따른 세금 확보의 어려움 등은 중앙 정부나 지방 정부의 관리직에 있는 사람들에게 앞으로 오랫동안 큰 도전이 될 것이다.
지방 자치 단체의 대변신 - 일본 이즈모 시청1991년 이즈모 시청은 일본 최우수 기업으로 선정되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즈모 시청은 소니, 도요타, 시세이도, 기린맥주 등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들과 함께 '베스트9'로 선정되었는데, 이들 가운데서도 1위를 차지하는 영광을 안았다. '경제는 1류, 행정은 2류, 정치는 3류'라는 일본에서 2류인 행정이, 그것도 시골의 작은 시청이 어떻게 세계적인 기업들을 모두 제압할 수 있었는지 살펴보자.
1988년, 인구 8만 명의 조그마한 이즈모시에서 당시의 시장이었던 나오라는 그 이듬해 봄 임기 만료에 맞추어 재출마를 포기하고 퇴임하겠다는 의사를 시의회에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그 후 일주일도 못 되어 세계적인 증권 회사인 메릴린치의 수석 부사장인 이와쿠니 데쓴도가 살고 있던 뉴욕의 한 고층 아파트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통의 전화가 계속 이어졌다. 전화의 내용은 자민당의 현 의원과 시의원 및 일반 시민들의 출마 권유였다. 1988년 11월 4일 자민당 시의원 22명 전원의 추천으로 이즈모시의 시장 후보가 된 이와쿠니는, 30년 만에 고향 이즈모로 돌아왔다.
이와쿠니는 지지자들의 양해를 얻어 사회당, 공명당, 민사당의 후보로도 추천을 받았는데, 이렇게 추천을 받은 것은 자민당 지지자들만을 향한 폐쇄된 행정이 아니라, 시민 모두가 참여하고, 책임도 함께 공유하는 열린 행정을 추진해 나가고 싶다는 그의 희망 때문이었다. 또한 다른 후보 없이 단독으로 출마하면, 유권자들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없어지고, 시민들로서는 내 손으로 뽑은 시장이 아니라는 기분이 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처음부터 공산당에게는 추천을 의뢰하지 않았다. 결국 그의 뜻대로 공산당에서 후보자가 나와 선거는 실현되었다.
이와쿠니가 시장으로 내건 슬로건은 '행정은 최대의 서비스 산업이다'라는 것이었는데, 그는 시청의 직원들을 일본 최강의 공무원 집단으로 만들기 위해, 취임 초에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의견을 제안했다. 첫째, 시내에서 최우수 기업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해 그는 발상을 바꾸어 민간 기업에서 '시청 본받기 운동'이 일어나게 해 보자고 시청 직원들을 설득했다. 그것은 시청 직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목표였다. 아울러 그는 인생의 진로를 선택할 때 공직을 선택한 이상, '시청은 민간 기업과는 달리 도산이 없다'는 등의 안일한 생각을 버리고, 시민의 기쁨을 자신의 기쁨으로 여기려는 마음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외쳤다.
둘째, 신나게 쉬고 신나게 일할 것을 강조하며, "휴식을 취하라. 그러나 직장 안에서의 휴식은 곤란하다. '바쁘다 바빠!'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직장 안에서 놀고 있는 사람이다. 휴식은 직장 밖에서, 계획적으로, 또 장기적으로 취하라."라고 말했다. 셋째,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행정 서비스를 할 것을 제안하며, "관청이라는 곳은 요구하지 않으면 해 주지 않는데, 그래서는 서비스가 될 수 없다. 요구를 받기 전에 해 주어야 그것이 진정한 서비스가 될 수 있다. '필요한 일이 있으면 찾아오십시오.'라는 것은 서비스가 아니다. 서비스라는 것은 손님을 찾아가는 것이다. 손님이 어디에 있는가? 바로 토요일, 일요일, 쇼핑센터에 있다. 그러므로 그 곳으로 찾아가서 하는 행정이 진정한 서비스이다."라고 말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이와쿠니 시장이 쇼핑센터에 서비스 코너를 개설할 방침을 밝히자, 이곳저곳에서 유치 운동이 벌어졌다. 그러한 행정 서비스를 제공할 장소를 자기네 쇼핑센터에 안에 두면, 손님을 모으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넷째, 관혼상제에는 참석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중간 관리직 이상의 행정인이 되면, 관혼상제에 참석하는 횟수가 늘어난다. 여기는 가고 저기는 못 가다 보면 입장이 난처해지기 때문에, 차라리 전부 참석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다 보면, 피해가 매우 커진다. 시민을 향한 행정 서비스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거꾸로 폐를 끼치는 것이다. 이렇게 선언한 지 3일째 되던 날 그의 처숙부가 돌아가셨는데, 이와쿠니 시장은 결국 시민들과의 약속을 지켰다.
한편 이와쿠니 시장은 '다정한 이즈모 만들기'의 일환으로 1991년 4월부터 이즈모시의 65세 이상 고령자들을 대상으로 '종합 복지 카드'를 발급했다. 신용 카드와 같은 이 한 장의 카드에 혈액형과 혈압, 병력, 연금 수첩, 보험증 등 모든 의료 데이터를 수록하여, 언제 어디에서든지 불의의 사고를 당해도 응급 처치가 가능하도록 만든 것이다.
종합 복지 카드가 고령자를 위한 것이라면, 나무 의사 제도는 청소년을 위한 것이었다. 사람이 아프면 병원에 가고, 동물이 병들면 수의사에게 간다. 마찬가지로 건강한 숲을 가꾸기 위해서는 나무 의사인 수의(樹醫)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1989년 12월 이와쿠니 시장은 여섯 명의 나무 의사를 지명하고, 다음 해 4월부터 이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거점으로 '수의센터'를 설립했다. 아울러 이와쿠니 시장은 학교 건물은 목조가 가장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돈이 더 들어도 신축하는 학교 건물은 가능한 한 목조 건물로 짓도록 했다. 왜냐하면 오늘날 아이들에게 성격상의 문제가 생기고 있는 것도, 콘크리트의 차가운 감촉만 느껴지는 학교에서 자란 영향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중앙 정부의 '종이와 연필의 행정' 대신, 지방 자치 단체의 '발과 땀과 눈물의 행정'이 나설 차례가 아닌가?" 이와쿠니 시장이 던지는 이 한 마디는, '말단 행정'이라는 말에 눌리고 기죽어 온 많은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앞장 서는 '선단(先端) 행정'이라는 새로운 자각과 용기를 주는, 당당한 '지방의 도전'이다.
상기 내용 외에 이 Part에는, '총체적 품질 조직의 결정판인 미국 국세청 오그덴 서비스 센터' 사례, '승전의 숨은 영웅인 미국 공군기동사령부' 사례, '우편 서비스의 챔피언인 영국 로열메일' 사례, '기업형 지방 행정의 선구자인 영국 완즈워스 구청' 사례 등이 소개되어 있다.
Part 02 최상의 고객 중심 정신으로 신화를 이룬 서비스 기업
MOT의(결정적 순간) 대명사 - 스칸디나비아항공1970년대 말 석유 파동이 일어났을 때 17년 동안 연속해서 흑자를 기록했던 스칸디나비아항공(SAS)도 1979~1980년에 3,000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하였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취임한 39세의 얀 칼슨 사장은, 고객이 직원들과 접하는 처음 15초 동안의 짧은 순간이 회사의 이미지와 사업의 성공을 좌우한다고 강조했고 결국 1년 만에 흑자로 바꾸었다. 또한 스칸디나비아항공은 1983년에는 '올해의 최우수 항공사'로, 1986년에는 '고객 서비스 최우수 항공사'로 선정되었다. 그러면 스칸디나비아항공이 단숨에 위기를 극복하고 최우수 항공사로 도약한 비결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스칸디나비아항공(SAS: Scandinavian Airlines)은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 3개국의 민간과 정부가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는 항공사이다. 칼슨은 MOT(Moments Of Truth)의 개념을 소개하기 위해 불결한 트레이(접시 또는 쟁반)의 예를 자주 들었는데, 만약 승객들이 자신의 음식 트레이가 깨끗하지 못한 것을 보게 된다면, 그들은 그 순간에 자신이 탑승하고 있는 비행기가 불결하다고 느끼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MOT는 서비스 제공자가 고객들에게 서비스의 질을 보여줄 수 있는 극히 짧은 시간이지만, 자사에 대한 고객의 인상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참고로 MOT란 스페인의 투우 용어인 'Moment De La Verdad'를 영어로 옮긴 말로, 원래 이 말은 투우사가 소의 급소를 찌르는 순간을 말하는데,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순간' 또는 '실패가 허용되지 않는 매우 중요한 순간'을 의미한다. 따라서 MOT란 '진실의 순간'이라는 통상적인 번역보다 '결정적 순간'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