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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베이터

김영세 지음 | 랜덤하우스중앙
공상이 아니라 상상을 해라



상상은 너무나 재미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다 담임선생님께 칠판지우개로 한방 맞은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그렇게 창밖을 바라보며 상상하는 습관은 신기하게도 내 직업의 좋은 자양분이 되었다. 한 달에 한 번꼴로 한국에 출장을 나오는 나는 그 어느 곳에서보다 비행기 안에서 상상하는 것을 즐긴다. 10시간 넘게 걸리는 비행시간 동안 사람들이 하나 둘 담요를 덮고 잠자리에 들기 시작할 무렵, 나는 개인용 라이트를 켜고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스케치해 나간다. 실제로 그동안 진행해온 수많은 디자인 프로젝트 중에는 기내에서 냅킨이나 메모지에 스케치한 아이디어가 출발점이 된 경우가 많다.



상상은 사람들이 원하는 욕구를 재빨리 파악하고 그것을 만족시키기 위한 해결책을 그려내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머릿속에서 그리는 것만으로 끝내고 만다면 그것은 공상(空想)이 된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는 그의 회사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남에게 빼앗길 것을 두려워 하는 성격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자기가 어떤 새로운 생각을 했을 때 남들도 비슷한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빌 게이츠는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했던 것이다.



나는 종이와 펜을 준비하지 않고 다니는 버릇이 있어서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종이와 펜을 마련하느라 허둥대곤 한다. 비행기 안에서도 이러한 버릇 때문에 허둥대며 승무원을 부른 적이 많다. 만약 승무원이 종이와 펜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냅킨 없어요?"라고 묻곤 한다. '성공시대'라는 MBC프로그램에서 내 이야기를 다룬지 얼마 안 지났을 때였다.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나는 승무원으로부터 선물 상자 하나를 받았다. 집에 돌아와 상자를 풀어보니 항공사의 마스코트인 색동인형 한 쌍이 웃고 있었다. 그리고 인형 밑에는 스케치북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것을 본 아내와 아이들은 안 봐도 알겠다는 듯 깔깔대고 놀려댔다. 불행히도 나는 아직도 비행기를 탈 때면 매번 메모지를 찾곤 한다.



무난함을 버리고 확실한 차이를 만들어 내라



2001년 12월 '레인콤'이라는 당시에는 생소했던 한국기업의 대표가 나를 찾아왔다. 그는 나의 책『12억짜리 냅킨 한 장』을 보고 내게 디자인 파트너가 되어줄 것을 요청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지금은 세계 MP3 플레이어 분야의 선도 주자가 된 아이리버 브랜드와 이노디자인은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당시 레인콤은 주문자 생산 방식으로 MP3 CD를 미국업체에 납품해 오고 있었는데, 이제는 자사의 브랜드에 사운을 걸어보기로 한 것이다. 우리가 맨 처음 함께한 프로젝트는 미국 최대의 전자제품 유통사인 '베스트바이(Best Buy)'로부터 미국시장 진입 테스트제품으로 개발을 의뢰받은 '플래시 메모리 타입 MP3 플레이어' 개발이었다. 당시 레인콤은 플래시 메모리 타입 MP3 플레이어에 대한 생산 경험이 없었다. 게다가 개발 기간도 4개월 정도로 제한되어 있었다.



우선 첫 번째 해야 할 과제는 기존의 MP3 플레이어 제품과 사용자들의 취향을 파고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프리즘이었다. 이는 사각형 일변도인 기존의 MP3 플레이어 제품보다 더 작고 새로운 삼각기둥 형태의 제품이었다. 기존제품의 부품 배치와 기능의 한계를 벗어나는 개발이었으므로 개발 과정에 진통이 많았다. 기존의 부품사이즈와 배치를 고려해 디자인 했음에도 실제로 전혀 다른 형태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개발팀의 엔지니어들은 제품 사이즈를 1㎜라도 늘려줄 수 없겠냐고 요청했다. 그러나 레인콤의 경영진은 "꾸겨 넣어!"로 일관했다.



아직도 업계에서 "꾸겨 넣어!"신화로 회자되는 이 단호한 단어는 레인콤 경영진의 경영마인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1㎜의 크고 작음은 소형 디지털 디바이스에서는 그 차이가 엄청나다. 이 크기에 따라 전혀 다른 형태가 돼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베스트바이 측은 이 제품을 보자마자 '출시 후 6개월간 독점판매권을 달라'고 요구할 정도로 프리즘은 그 시작부터 승승장구하여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며 세계 젊은이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프리즘으로 불렸던 'IFP100' 시리즈 이후 레인콤과 이노디자인은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담긴 아이리버의 제품들을 잇달아 개발했다. 2002년 중반에 출시한 MP3 CD 플레이어 '슬림X' 개발과정은 프리즘 개발과 마찬가지로 어려운 결정 단계가 있었다. 당시 내가 제안한 레드와인 컬러는 기존의 전자제품에서는 볼 수 없었던 너무 과감한 컬러였다. 때문에 당시 레인콤 경영진은 나를 믿고 제품 출시를 결정하면서도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결국 나의 예측은 적중해 함께 출시된 '무난한' 컬러인 실버보다 판매량이 앞섰다. 이후 소형 디지털 디바이스 시장에 과감하고 화려한 컬러가 잇달아 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레인콤과 이노디자인의 만남으로 세계 MP3플레이어 시장이 재편된 지 3년이 흘렀다. 불과 매출 80억의 벤처 회사가 매출액이 수십 배로 증가하고 세계 1위 애플의 아성을 위협하는 존재로 급성장한 것이다. 레인콤 경영진은 마케팅과 고객 만족을 위한 기획 및 실천에 있어서도 매우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생면부지의 이노디자인을 찾아냈듯이 그들의 경영방식은 참으로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결정력을 가지고 있다. 오늘의 강자가 내일의 강자가 될 수 없는 다변화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단지 끊임없이 '차이를 만드는' 도전만이 그 해답이 될 것이다.



사소함에서 새로움을 창조하라



지난 2003년 여름, 나는 가족들과 함께 하와이를 찾았다. 그리고 하와이에 있는 지인과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호텔에 들어섰다. 딸 레아는 그날따라 자신이 애용하는 아이리버의 '프리즘 MP3 플레이어'를 내 목에 걸어주었다. 그런데 호텔에 들어서는 내 모습을 보고 호텔 입구의 종업원이 인사와 함께 말을 건넸다. "목에 건 디지털 카메라가 참 멋지네요!" 나는 '카메라가 아닌데'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지만 마음속으로 그녀에게 깊이 감사했다. 바로 신제품 아이디어를 얻게 된 것이었다. MP3 플레이어 밑에 조그만 디지털 카메라가 부착된 신상품을 떠올린 것이었다.



다음날 나는 MP3의 배터리 공간 중 남는 부분에 180도 움직일 수 있는 카메라를 넣어, 셀프카메라를 좋아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춘 신제품을 디자인하여 서울의 디자인 스튜디오로 팩스를 넣었다. 그렇게 세계 최초로 MP3 플레이어와 디지털 카메라가 결합된 제품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 이듬해인 2004년 4월, '프리즘 아이'라는 애칭을 가진 이 제품은 8개월 만에 전 세계 시장에 출시되었다. 그리고 미국 산업디자이너협회(IDSA)와 「비즈니스 위크」가 수여하는 세계적인 디자인상인 IDEA에서 2005년 소비재 부문 은상을 수상했다.



내가 아끼는 아이리버의 또 다른 MP3 플레이어 시리즈인 'N10'은 사소한 발견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였다. 2003년, 거리나 카페에서 내가 가장 유심히 본 것은 바로 MP3 플레이어를 가지고 다니는 젊은이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목에 MP3 플레이어를 걸고 다니기를 좋아했는데, 아무리 봐도 내 눈엔 뭔가 불편해 보였다. 목걸이 따로, 이어폰 따로, 주렁주렁한 느낌 때문에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목걸이에서 이어폰이 바로 빠져나오도록 하고 OLED 디스플레이 창이 달린 가장 작은 MP3 플레이어를 고안하여 레인콤에 제안했다.



패션과 테크놀러지의 절묘한 조화를 이뤄낸 N10은 쥬얼리 같은 느낌을 주는 MP3 플레이어로 탄생되었고, 2004년 7월에 출시되어 6개월 만에 약 25만대 이상이 팔리는 히트 상품이 되었다. 게다가 2005년 초에 유럽의 권위 있는 디자인상 '레드 닷 어워드(Red Dot Award)'를 수상하는 영예를 누리게 되었다. 이는 그 혁신성과 참신함 때문에 아이리버의 브랜드 이미지를 크게 상승시키는 영향을 끼쳤고, 내게도 무척 자랑스러운 프로젝트로 남아있다.



삼성의 PCS휴대폰을 위한 게임 패드 디자인의 경우도 비슷하다. 그날도 비행기 안에서 상상을 하거나 사람들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게임에 열중해 있던 앞자리의 소년이 눈에 들어왔다.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던 소년은 작은 휴대폰 위에서 손을 놀리느라 여간 애를 쓰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 번쩍 떠오른 생각이 '게임패드를 휴대폰에 부착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생산하게 된 삼성의 게임폰 SCH A-600모델은 휴대폰에 간단히 탈 부착하여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게임패드로서, 미국 스프린트 사를 통해 시판되어 큰 수익을 창출해 냈다. 생활 속에서 누구나 접하는 사소한 아이디어가 높은 부가가치 상품으로 돌변하게 된 것이다.



많은 클라이언트(client:의뢰업체)들은 일반적으로 이미 듣거나 접해본 경쟁사 제품을 취합해서 좀더 나은 디자인을 의뢰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에 부응한 디자인은 개발과 생산과정을 거쳐 시장에 출시하게 되면 이미 트렌드가 바뀌어 있을 수가 있다. 잘못하면 계속 뒷북을 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디자이너는 세계 시장의 흐름을 읽고 있어야 하고, 각 분야에 경험과 열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즉 가상적 신상품을 그리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때로 제조업체에 접근했을 때 기술진과 상품기획팀에게 더욱 혁신적인 영감을 줄 수도 있다.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가져라



어려서부터 나는 무엇인가를 만들고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림은 좋아했지만 화가가 되고 싶은 욕망은 없었다. 구체적으로 뭔지는 잘 몰랐지만 그저 더 신나고 즐거운,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일을 좋아했던 것 같다. 열여섯 살,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나는 드디어 '그 무엇'의 실체와 만났다. 나는 친구들과 어울려 한 친구네 집에 놀러가게 되었는데, 그 친구네 집은 골프를 칠 수 있는 정원과 지하실에 당구대가 있는 아주 부잣집이었다. 한참을 놀던 중 무심코 2층에 있는 친구의 형 방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그 형 방에는 이름 모를 서양 책으로 가득한 책꽂이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우연히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이란 잡지를 꺼내 보게 되었다. 한 장, 한 장, 별 생각 없이 넘겨보던 나는 눈앞에 펼쳐진 놀라움에 머리가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책에는 보기 좋고 쓰기 좋은 일상 생활용품을 생각하고 그려서 만들어 내는 일을 설명하는 그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생각을 그리는 엄청난 일, 그런 작업의 매력에 순간적으로 빠져들었다. 그 놀라운 첫 대면은 나를 미술대학 산업디자인학과에 진학하게 했고, 디자인 선진국인 미국으로 가 디자인을 공부하게 이끌었다. 나는 열여섯 살에 다시 태어난 것이었다.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한 나는 공부보다는 비틀스나 롤링스톤스의 팝송에 빠져 지냈다. 그래서 2학년 때는 친구들과 '다이아몬드 포'라는 그룹사운드를 조직하여, 학교소풍 때의 첫 공연을 시작으로 시민회관(지금의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에서 대대적인 공연을 하기도 했다. 내가 직접 디자인한 광고 전단을 만들어 뿌리고, 여러 고등학교 담벼락에 우리의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도 붙이면서 최초로 고등학생 그룹사운드 공연을 개최했다. 그렇게 엉뚱한 짓만 골라 하는 가운데 고등학생 시절은 훌쩍 지나갔다. 그리고 입시라는 괴물과 마주치게 되었다.



나는 산업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이 확고했기 때문에 미술대학에 가고자 했다. 그러나 부모님은 미술대학에 가겠다는 말만으로도 기겁을 하셨고 더구나 산업디자인이라는 생소한 이름을 들은 부모님은 "산업디자인인지 뭔지 나는 잘 모르겠다만, 그걸로 입에 풀칠이나 하고 살겠냐?"고 하시며 화를 내셨다. 그때 나는 자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살피지도 않고 당신 생각만 말씀하시는 부모님이 얼마나 야속했는지 모른다. 결국 부모님의 뜻에 떠밀려 공대에 지원을 한 나는 시험도중 시험장을 나와 버렸고, 다시 부모님을 설득하여 미술학원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디자인을 하는데 기초가 되는 그림을 배우면서 점점 더 '디자인이야말로 내가 앞으로 몸담아야 할 세계'라고 확신했다. 이듬해 나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학과에 합격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신입생 환영회에서 고등학교 동창 김민기(학전대표, 아침이슬 작곡자)를 만났다. 민기는 그때 회화과 2학년이었다. 둘 다 음악을 좋아했기에 우리는 대학에서도 쉽게 친해졌다. 민기와 나는 무교동에 있는 카페에서 연주를 하고 돈도 벌었다. 유학에 대비해 영어를 공부하거나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그 많은 시간을 친구들과 어울렸다. 그러다가 교내전시회에서 나는 지금의 아내인 첫사랑을 만났다. 우리가 만난 날은 7월 1일이었는데, 그녀와 사귄지 5년 후 7월 1일에 명동성당에서 결혼을 했다.



잘된 디자인만큼 멋진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없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나는 디자인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과 같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그래서 디자인 역량을 키우기 위해 유학을 준비했고, 결혼한지 얼마 안 돼, 잠깐 몸담았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아내마저 서울에 남겨둔 채 출국했다. 보통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가면 대학원에 진학하지만 나는 대학시절 학업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우선 일리노이 대학(시카고 캠퍼스)에 편입했다. 그리고 학부 과정에서 미국 학생들과 그룹 작품 활동을 하면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그곳 학생들과 자주 어울려 작품 활동도 하고 놀기도 하다 보니 어학연수를 따로 받지 않아도 자동으로 어학연수가 되었다. 그래도 미숙한 영어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한국에서는 강의식 수업이 많았다. 하지만 미국의 디자인 수업은 주로 디자이너 스스로 발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수업방식을 따라가자니 나의 짧은 어휘력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하지만 지도 교수는 '보기 드물게 창조적인 사람'이라며 나를 칭찬하더니, "너의 미숙한 영어가 오히려 다른 학생들보다 훨씬 더 창조적인 생각을 하도록 만들어주는 것 같다"라고 말해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미숙한 영어 때문에 내 아이디어를 그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온 열정을 다해 노력했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디자인을 통해서 자신의 뜻을 전달한다. 예를 들면 누구를 만나고 어떤 자리에 나가느냐에 따라 각각 다른 옷을 입는다. 입고 있는 옷차림과 그로 인한 전체적인 느낌을 통해 개인의 가치관 등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확장해서 생각해 보면 기업이 소비자의 시선을 끌거나 인정받고 싶을 때 잘된 디자인만큼 멋진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없는 것 같다. 멋진 디자인은 소비자에게 오랜 여운을 준다.



디자인은 자신감을 파는 일이다



미국 유학을 어렵게 마친 후, 미국에 남아서 실무 경험을 쌓기로 했다. 그래서 디자인 회사에 취직하기로 마음먹고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그동안 했던 작품들, 심지어 대학 시절의 작품과 유학 오기 전, 1년 동안 일한 프로젝트까지 주섬주섬 모아보았지만 포트폴리오는 별로 신통치 않았다. 그렇지만 희망을 안고 시카고 주변의 디자인 회사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열다섯 군데도 넘는 회사를 찾아다녔지만 경험 없는 동양인 신참 디자이너를 환영해 주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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