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생태학
폴 호켄 지음 | 에코리브르
괴로운 아이러니비즈니스는 서비스, 창조적 발명, 윤리관을 통해 인류 보편의 복지를 증진하겠다는 약속이다. 지금처럼 복잡하게 뒤얽혀 몰락해가는 세계에서 돈벌이의 추구 그 자체는 별 의미가 없는 일이다. 우리는 불안하고 불길한 산업 문명의 전환점에 이르렀다. 지금의 산업 문명을 상징하는 두 가지 사실이 있다. 하나는 미래의 질병 연구를 목적으로 만들어낸 '면역 체계 없는 쥐'가 사상 두 번째로 특허를 취득한 동물이라는 사실이고, 또 하나는 만약 모유를 포장된 제품으로 팔고자 한다면 산업화한 국가의 식품안전법에 의해 금지될 거라는 사실이다. 모유 그 자체에 무슨 문제가 있단 말인가? 우리의 면역 체계를 억압하는 문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산업'이라는 문제 -산업의 부산물, 폐기물, 독성물질- 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 이 모든 것을 회복시키는 방향으로 비즈니스를 변화시키고 우리 사회를 이끌어나가야 한다는 결론에 이를 수박에 없다. 지금 비즈니스는 거대한 변화에 직면해 있다. 그것은 더 이상 무시할 수도, 미룰 수도 없는 사회적·생태적 힘이 몰고 오는 변화이자, 수십 년 후면 지금의 비즈니스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될 정도로 철저하고 광범위한 변화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산업화의 물결은 수십억 년간 저장된 자원을 파내고 짜내고 가공하면서 전 세계를 휩쓸었다. 그러면서 각국의 수도, 지배 종족, 힘 있는 정부, 엘리트 집단을 부유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모든 자원 문제와 사회적 불평등은 발전, 발명, 대자본, 지속적인 성장 등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지배적인 비즈니스 문화가 탄생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현재의 부를 분배하기보다 미래의 부를 훔쳐다 현 사회를 풍요롭게 하고 있다는 점이며, 이 사회는 '훔친 부'로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적 자본주의는 인류의 미래에 대해 여전히 풍요롭고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하고는 있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전쟁보다도 더 참담한 미래를 불러올 수도 있다. 환경과 비즈니스가 서로 끊임없이 싸우는 동안, 우리는 계속 잘못된 질문을 던져왔는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우리는 '어떻게 환경을 구할 것인가?'하고 물어왔다. 처음에는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릴지 몰라도, 이제는 '비즈니스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하고 물어야 할 것이다. 비즈니스가 문제이자 해결책의 일부임이 분명하다. 최악의 상태인 비즈니스가 아름답고 조화로운 자연과 대조를 이루며 더욱 추악해 보이지만, 비즈니스를 재편하고 세계를 회복시키는 데 필요한 많은 아이디어와 기술은 이미 우리 손에 쥐어져 있다. 남은 일은 다만 뜻을 모으는 일이다.
쓰레기의 생산자연환경은 쓰레기를 재배치하고 무해한 형태로 전환해 흡수할 수 있지만, 재생 가능한 자원을 생산하는 능력에도 한계가 있는 것처럼 쓰레기를 흡수하는 능력에도 한계가 있다. 독성이 높은 쓰레기를 흡수하는 능력은 사실상 전무하다. 1990년 지구의 날 이후, 산업은 이미지 개선을 위해 쓰레기에 관한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냈다. 산업경제와 생물학 간의 사고방식 차이를 보여주는 이 신화들 중 결정적인 것은 우리가 환경을 '정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충분한 기술과 매립지만 있으면 오염물질을 열심히 쓸어 담음으로써 자연환경을 오염시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을 '사후 관리end-of-pipe'방식이라고도 한다. 우리가 집에서 늘 하는 일과 비슷하기 때문에 그럴듯하게 들릴 수도 있다. 집 안의 쓰레기를 봉지에 담아 구청에서 실어가도록 일정한 장소에 내다놓는 식으로 말이다. 이는 잘못된 추론이다. 지구 생태계는 인간 부의 원천이며, 인간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가져다쓰는 '자본'이다. 생태계를 독성물질과 쓰레기로 오염시킬 때마다 우리는 천연의 자본을 파괴하고, 우리의 문명을 지탱할 능력을 감소시키고 있는 것이다.
정말 근본적인 문제는 유해 폐기물의 '생산creation'이다. 유해 폐기물을 '생산'하는 시스템은 자원과 에너지를 투입해 만든 최종 생산물이 자원과 에너지로 재활용되거나 원상 복구되지 않는 선형적 시스템이다. 반면 순환적 시스템인 자연에는 다른 생태계의 먹이가 되지 않는 쓰레기란 존재하지 않는다. 쓰레기 문제가 합성수지 기저귀, 폴리스티렌 컵처럼 비교적 덜 심각한 가정 쓰레기에 국한된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2분 만에 먹어치울 제품을 두 달간 선반에 보관해 두려고 400년 동안 썩지 않는 포장재를 만드는 일도 무분별하지만, 쓰레기에 관한 가장 골치 아프고 심각한 문제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다. 우리가 손을 대기 전까지는 전혀 해가 될게 없는 단순한 소금물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소금물을 구성하는 나트륨과 염소 분자 간의 결합이 전기분해로 깨지면 염화가스가 발생한다. 염소와 탄화수소의 화합물은 '유기염소계' 화합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대규모로 팔리고 또 사용되고 있다. 생물학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용해제, 제초제, 살충제, 냉각제는 제조되는 그 순간에 바로 폐기물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이 물질들은 지구상 어떤 유기체의 순환 과정에도 편입되지 않는다. 유기염소계 화합물이 인류의 진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한 최근의 연구들은 우리 인류에게 '생물학적 오존 구멍'이 뚫렸으며, 이제 그런 화합물의 생산을 모두 중단한다고 해도 앞으로 수십 년간 구멍이 커져갈 거라고 말하고 있다.
환경 정화 산업을 가리켜 '성장 산업'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지한 것보다 더 나쁘다. '환경 지향적인' 매립지, '환경 지향적인' 유해 쓰레기 소각은 산업 쪽에서 보면 매력적인 생각이다. 최소한의 변화만 감수하면 산업의 목표를 그대로 유지할 수도 있고, 산업 폐기물도 더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계는 쓰레기 배출에 관해 당장 급한 사안만 다루면서 높아지는 사회적 관심에 부응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행동은 '쓰레기의 생산'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회피하는 행동이다. 결국 우리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하천, 습지, 농경지, 식량 등에서 독성물질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더 강화하지 않으면 기형 출산, 암, 폐 질환 등의 피해가 더 악화되지는 않더라도 여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산업이 경제 및 사회의 '가치를 높이지' 않기 때문에, 환경오염을 억제하기 위해 들이는 비용은 허비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요컨대 우리는 돈을 써도 진정한 가치를 얻지 못하고, 돈을 쓰지 않으면 너무 많은 가치를 잃게 돼 있다. 이런 난국을 해결할 방법은 생물학적으로 무용한 유해 쓰레기를 만들어내지 않도록 생산 시스템을 다시 짜는 길밖에는 없다. 순환적인 기업은 완전히 무해한 성분으로 분해되고 목표한 기능에만 충실한 제품을 생산함으로써 부작용이나 쓰레기, 독성물질로 고통받는 어떠한 생명도 만들어내지 않을 것이다.
요람에서 요람으로비즈니스가 뭐라고 항변하든 머지않아 우리는 비즈니스에 생태적인 원칙이 전무하며, 비즈니스에 이로운 거의 모든 것이 자연에는 해롭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정직과 공정 거래라는 비즈니스 원칙이 아무리 결연해 보여도, 비즈니스의 방식과 자연계의 존재 방식이 얼마나 다른지 일단 깨닫기만 하면 비즈니스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생물학적인 삶을 배제한 산업의 생산 및 유통 시스템을 말이다. 비즈니스의 윤리를 회복해야 한다거나, 재활용 제품을 쓰고 카풀을 장려하자고 말하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지금과 같은 비즈니스 방식이 지구상의 생명들을 절멸시키고 있다는 분명한 과학적 사실들 앞에서, 우리가 할 일은 비즈니스가 의미하는 모든 것을 새롭게 규정하는 일이다. '회복restoration'은 비즈니스 용어가 아니다. 그렇다고 '파괴'가 비즈니스 용어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 '회복'이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공통된 테마는 하나이다. 회복하려는 행동은 무언가가 없어지고 고갈되었음을 인지하는 데서 나온다. 회복이란 어떠한 개인, 집단, 장소를 건강한 평형 상태로 되돌려놓는 일이다. 회복이란 무언가를 다시 바르게 만드는 일이며, 세상을 개선하는 일이다. 미래를 꿈꾸려면 새로운 구조가 필요하다.
2,000년 전, 과학자이자 철학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가 경제에 관해 중요한 틀을 제시한 바 있다. 그는 '오이코노미아oikonomia'와 '크리머티스틱스chrematistics'의 개념을 구분했다. 존 코브와 허먼 댈리는『공공선을 위하여For the Common Good』에서 이 개념들을 이렇게 설명한다. "'오이코노미아'는 '이코노미economy'라는 말의 어원이고, '크리머티스틱스'는 요즘 대사전에서나 찾을 수 있는 생소한 말이다. 정치 경제학의 한 갈래인 '크리머티스틱스'는 한 개인의 재산 가치를 단기간에 최대한으로 불리는 것을 말하고, '오이코노미아'는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오래오래 도움이 되도록 가계를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가족'의 범주를 땅, 공동 가치, 자원, 생물군, 제도, 언어, 역사 등을 기준으로 하는 더 큰 공동체로 확장하면 '공동체를 위한 경제'라는 좋은 의미가 된다. 현재 '이코노미'라는 말을 쓰지만, 지금의 산업사회는 '가계를 관리한다'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크리머티스틱스'를 행하고 있다.우리는 산업 시스템의 역기능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산업경제는 불가피한 형태가 아니다. 회복의 경제로 가기 위해서는 전 세계의 기업들이 현 세계의 변화 요구에 부응해 변화해 나가야 한다."
지속가능한 산업을 위한 가장 포괄적인 방법론 중 하나가 '산업생태학industrial ecology'이다. 이 용어는 1989년 로버트 프로슈와 니콜라스 갈로풀로스가〈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발표한 '생산의 전략Strategies for Manufacturing'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처음 사용한 말이다. 유해물질과 쓰레기를 쏟아내는 산업 공정이 당연히 비경제적이고 장기적으로는 손해라는 사실을 깨달은 기업들은 폐기물의 흐름과 원료의 흐름을 연계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한 공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이 다음 공정의 원료가 되도록 처리함으로써 환경오염을 줄이는 이런 방식은 환경 위생적 쓰레기 감축 수준을 뛰어넘어 쓰레기(쓰레기라고 할 수도 없지만)를 활용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원료가 쓰레기로 흘러나가지 않도록 함으로써 과거에는 지출로 나가던 돈을 매출액으로 바꾸는 것이다. '산업생태학'의 개념을 창안한 하딘 팁스Hardin Tibbs가 말한 것처럼 "비즈니스는 실행을 선호하고 예측된 위험을 기꺼이 받아들임으로써 낙관적이고 진취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비즈니스는 실재성, 기술, 측정 가능한 기준을 선호하며 창조적이고 독립적이다. 산업생태학은 이와 같은 비즈니스 본래의 성향은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기업들에게 환경론적 요구를 제기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다.
산업생태학은 일부 경제학자들이나 생물학자들의 믿음과 배치되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 예컨대 자원 부족 문제를 바이오테크놀로지 같은 기술로 해결할 수 있고, 세계경제가 성장을 계속해 나가면서도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파괴된 생태계 -토양, 바다, 숲- 를 예전 상태로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산업생태학은 최초로 산업의 구조를 '전 지구적 자연 생태계와 조화를 이루면서 서로 맞물려 있는 일련의 인공 생태계'와 같은 구조로 만들어줄 광범위하고 통합적인 수단이다. 또한 최초로 '라이프사이클 분석'방법론을 뛰어넘어 한 기업의 '물질대사'와 다른 기업의 '물질대사'를 연계하는 식의 생태계 개념을 산업 전체에 적용하려는 것이다. 산업생태학적 협력의 전형적인 사례는 덴마크의 칼룬보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칼룬보르에서는 화력 발전소, 정유업체, 바이오테크놀로지 전문 제약업체, 시트록 공장, 콘크리트 제조업체, 황산 제조업체, 도시난방 시설, 양어장, 온실, 농장 등이 상호 협력하여 돌아가고 있다. 이러한 상호 협력은 1980년대에 아스네스 발전소가 증기 형태로 나오는 폐열을 재활용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오늘날 산업경제에서는 '요람에서 무덤까지cradle-to-grave'라는 사고방식이 기준이 되고 있다. 화학물질을 만든 회사가 최종 소비자에까지 관여해서 화학물질이 적절하고 안전하게 폐기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종전의 '일단 팔면 끝'이라는 사고방식보다는 발전한 것이지만, 문제는 어쨌거나 기업이 계속 독성물질을 제조하도록 용인한다는 점이다. 이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독성물질을 없애는 방법을 택할 때가 되었다. 혁신을 이끌어내고, 고용을 보장하며, 환경을 회복시키는 방법 말이다. 순환적인 회복의 경제에서는 '요람에서 요람으로cradle-to-cradle'라는 사고방식이 기준이 될 것이다. 모든 생산물과 부산물을 만들 때, 재활용될 다음 형태까지 고려한다는 것이다. 회복의 경제에서는 제품 생산에서 가장 돈이 덜 드는 방법이 환경에서도 가장 피해를 덜 주는 방법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까지 비즈니스 자체의 결함, 즉 '경제성'과 '지속가능성'간의 갈등과 불화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피구의 해결책자유시장 제도가 그토록 효율적이라면, 어째서 전체적인 경제 제도는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서 보듯이 그토록 비효율적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자유시장이 가격 책정 기능은 뛰어난지는 몰라도 비용을 파악하는 능력은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자유시장은 진정한 생산 및 서비스 비용을 반영하지 못함으로써 자연과 인간 사회 모두에게 피해와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현대의 글로벌 시장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자유는 환경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든 상관없이 무한 성장하려는 자유이다. 산업혁명으로 시장의 상품들이 생활필수품이 되고부터 '규모의 경제'가 점점 더 중시되었다. 기업 자본주의에 막대한 자유를 허용함으로써 잃는 우리 자신의 자유는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우리의 삶, 우리의 사회, 우리의 땅에 대한 지배권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그 답은 결코 추상적인 정치철학 속에 있지 않다. 비록 재래시장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어도 '완전한 비용'을 반영하게 만들면 시장을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이 답이다.
고전 경제학에 따르면, 물가의 상승은 자원의 감소를 반영하는 현상이며, 물가가 상승하면 수요가 억제되고 대체 자원이 장려된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대부분의 물가가 대공황 수준까지 떨어져도 수요는 늘고 인구는 팽창했다. 고전 경제학 이론에 의하면 이렇게 낮은 물가는 자원이 바닥나고 있는 현실과 모순되는 것이다. 우리가 자동차, 강철 등 풍족한 물자에 파묻히는 동안 매장된 자원은 엄청난 속도로 바닥나고 있지만, 자원 감소는 물가에 반영되지 않는다. 단기적인 공급 증대로 물가는 떨어지지만 환경 파괴는 더 심해진다. 자유시장주의자들은 정부가 가격 결정에 관여할 때마다 시장의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반박한다. 하기야 정부가 비즈니스의 거래와 가격을 조절할 수 있다고 자만한 소비에트 체제의 종말이 금방 잊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시장이 외부 비용을 반영할 수밖에 없게끔 시장의 여건을 조성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지금은 시장에서 인간을 거래하지 않지만 19세기까지만 해도 인간은 합법적으로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었다. 정부는 시장 스스로 노예제도를 규제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는 간단한 이유로 노예제도를 폐지했다. 시장 거래가 해악과 고통을 야기하는 부분이 있다면 시민을 대표해 정부가 어떤 식으로라도 폐해를 막아야 한다.
정부가 이 임무를 달성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비용/가격 통합'에 있다. 이 개념을 처음 제기한 사람은 1920년 『후생 경제학The Economics of Welfare』을 펴낸 영국의 경제학자 피구A. C. Pigou이다. 피구는 생산자가 자신들이 야기한 오염, 질병, 환경 파괴를 비롯한 생산의 모든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 한 시장이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피구가 제시한 해결책은 '비용/가격 통합'을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