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상
자구어씨·장쥔링 지음 | 더난출판
1장. 자생 - 자신의 운명과 미래는 스스로 개척한다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분투하라
독립심이 강하여 의존할 줄 모르다 : 남의 부축을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손과 발이 돼라. 이것이 거대한 부를 창조하는 온주인의 보편적인 마음자세이다. 온주인들은 딸이 아버지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 동생이 형에게 빌붙지 않으며 아내가 남편에게 기대지 않는다. 온주인들은 거의 천성적으로 이러한 자유의지와 자유정신을 갖고 있는데, 이러한 기질은 창업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이다. 의존하는 마음을 버리고 자강불식(自强不息, 스스로 노력해서 힘을 기른다는 뜻)하는 것, 이것이 바로 창업자들이 반드시 갖춰야 할 심리적인 조건인 것이다. 중국인들은 지난 1990년대 후반의 몇 해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에는 적지 않은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거나 폐업했고, 기업간에 M&A가 성행했다. 퇴직자와 실업자들은 기업을 향해 부모관父母官(청대 말까지 지방의 관료들이 백성들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의미에서 '부모관'이라 불렸다)이 되어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온주인들에게는 이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고, 심지어 이런 현실에 대해 원망을 늘어놓는 사람조차 없었다. 그럼 온주인들 중에는 퇴직자가 없었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온주의 일부 기업들도 장기적인 불황에 시달렸고, 문을 닫거나 생산을 중단하는 기업도 다른 지역에 비해 적지 않았다. 관계 부서에서 조사해본 결과, 이들은 모두 자신이 직접 출자해서 공방을 차리거나 외지로 나가 소규모 사업을 시작했다. 외지 공무원들은 자기 지역의 퇴직자들도 온주 사람들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민영기업의 번영이 온주시에 200만 개가 넘는 일자리를 제공했는데, 이는 다른 지역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처럼 온주 퇴직자들의 자강불식하는 정신은 놀랄 만한 일이었다. 온주인들은 중국에서 독립심이 가장 강한 사회집단이다. 지나치게 빈궁한 자연 조건이 이들에게 외지 사람들에 비해 월등히 강한 생활력을 갖게 했다. 덕분에 이들은 천성적으로 철저한 독립정신과 뛰어난 상인 기질을 갖게 되었다. 온주인들에게서 자기 자신만을 의지한다는 것은 일종의 전통이다.
온주상인에게 배우는 경영전략 - 자기 운명의 주인 되기 : 사회학에서는 '천부적 요인'과 '자생적 요인'이라는 표현을 흔히 사용한다. 천부적 요인이란 출신·성별·출생 지역 등 선천적인 자연 요소들을 의미하고, 자생적 요인이란 성장하면서 스스로 노력해 얻는 능력을 가리킨다. 전자가 주도적 작용을 하는 메커니즘은 비시장화된 상황으로 불공평한 측면들이 돌출될 수밖에 없는 반면, 후자는 시장화된 메커니즘으로 공평과 경쟁의 기제가 된다. 기업이 도태되어 직업을 잃은 사람들이 이러한 분위기에서 탈피하지 못해 기억 속의 과거를 사수하려 한다면, 이 또한 고착화되고 건강치 못한 기제의 소산인 것이다. 어떤 처지에 놓이든지 간에 신속하게 자신의 위치를 찾아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사회의 중견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경제 분야에서는 누구나 자발적이고 지위적인 의식을 지녀야 한다. 온주인들이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부를 쌓아나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생적 요소가 중요하게 작용한 덕분이다.
세계를 온통 'china' 물결로 만들다
'Made in China'의 중심에 선 온주상인들 : 온주인들이 타지 사람들과 다른 점은 전 세계를 무대로 돈 벌 기회를 찾는다는 것이다. 온주인들은 예로부터 사해四海를 집으로 삼아 "천하의 돈을 천하가 쓴다"고 생각하면서 어디를 가든 생존의 공간을 개척했다. 중국인이 처음 유럽에 들어간 것은 약 3,4백 년 전이라고 한다. 그들은 마카오 때문에 포르투갈을 거쳐 유럽에 들어간 것이다. <화교경제연감>의 기록에 따르면, 청 광서 연간에 호북 천문 사람들과 절강 청전 사람들이 이탈리아에 처음 정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편, 청전 사람들은 1900년부터 프랑스 파리의 크고 작은 거리와 골목을 누비기 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중국은 동맹국에 가입해 독일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면서 수만 명의 중국인 노동자들을 유럽으로 보내 참전하게 했다. 그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대로 남아 유럽 화교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다. 유럽에 남아 있던 이들의 영향으로 1920,30년대에는 중국 연해 지역, 특히 온주 지역을 중심으로 출국 붐이 일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유럽 경제의 재건에 화교들과 현지 국민들의 공동 창업이 주요 현상으로 나타나면서, 중국인들의 생존 수단 확보에도 중대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피혁 제품과 의류제조, 식당업 등이 크게 발전하면서 제2의 출국 붐이 일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정식으로 수립되자 중국에 새로운 분위기가 일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도 출국 행렬의 흐름은 꾸준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1978년 출국 러시가 정점에 이르면서 이미 외국에 나가 있던 화교들의 자제와 친척들이 해외로 진출하게 됨에 따라, 기존의 화교 사회는 엄청난 무상 노동력을 공급받게 된 것이다. 그때 청전·문서·서안 등지의 온주인들이 대거 출국 행렬에 가세함에 따라, 기존 유럽 화교들의 지역 분포가 완전히 바뀌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중국의 개혁개방이 본격화되었고, 크고 작은 규모의 장사를 위한 사람들의 출국이 잦아졌다. 오늘날 온주상인들의 경영 촉각은 전 세계 각지로 뻗어 있다. 이미 'Made in China'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인쇄된 온주의 소형상품들은 온주상인들의 경영지혜를 나타내는 지표가 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Made in China'라는 표시를 부착한 온주의 소형 상품들은 거센 불길처럼 이집트 시장을 장악해나갔다. 일부 완구나 문구에 국한되어 있던 중국 상품들이 지금은 일용품과 가전제품으로까지 범위가 확대되어 엄청난 수량으로 이집트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2001년 말, 이집트인들이 연말연시에 쓸 다양한 물건들을 중국에 주문해놓고 있을 때였다. 한 신문에 '메이드 인 차이나가 이집트를 침략하고 있다'는 제목의 칼럼이 게재되어 카이로에서 공부하고 있던 중국 유학생들을 긴장하게 만든 일도 있었다. 알고 보니 이집트의 명절용품 시장을 대부분 중국 상품이 점령하고 있었던 것이다.
온주상인에게 배우는 경영전략 - 하늘 아래 시장 아닌 곳 없다 : 미국에서도 온주인의 인구는 이미 23만 명을 넘어섰고, 이들이 운영하는 크고 작은 사업도 각 도시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온주인들은 스스로 고생을 자청해 시련을 참고 노력하면서 서로를 돕고 단결함으로써 이국땅에서 자신들의 새로운 전기를 열어가고 있다. 미국에 거주하는 온주인 절반이 뉴욕시에 집중되어 있다. 이들 재미 온주인들은 이미 중국 본토와의 무역도 시작해 농산물과 일용잡화 등 상당량의 교역이 이뤄지고 있다. 소자본으로 장사를 시작했다는 것이 미국 온주상인들의 공통적인 특징이자, 이들을 성공으로 이끈 첩경이었다. 온주인들은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빠른 시간에 소규모 자본을 마련해 곧장 사업에 뛰어들었다. '같은 고향, 같은 업종끼리는 경쟁하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온주의 동향인들은 서로 협력하면서 함께 발전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빠른 시간에 자신들의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어냈다.
2장. 혜안 - 정확한 정세와 시장의 흐름을 읽다
돈벌이에 눈이 예리한 장사꾼들
시장경쟁에서의 빠른 대응이 최고로 만들다 : 온주인들의 뛰어난 점은 남들이 좀처럼 발견하지 못하거나 쉽게 무시해버리는 것에서 이익을 창출할 기회를 찾아내는 예리한 눈에 있다. 그들은 적당한 분석과 고찰을 통해 어느 정도 확실하다는 판단이 서기만 하면, 과감히 지금 있는 곳을 접고 다른 곳으로 가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 1980년대 온주 태순의 농민들은 건축 사업이 한창 붐을 이루자 건축에 사용되는 도기 공장에 열을 올려 일시적으로 큰 활황을 맞이했다. 그러나 1980년대 말로 접어들면서, 광동의 도기 산업이 크게 발전하자 온주 도기는 커다란 타격을 입게 되었고, 급기야 도기 생산이 전면 중단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도기 생산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수만 명의 온주인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들은 억울했지만 힘들게 하던 사업을 유지하면서 근근이 살아갈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태순의 농민들은 자신들보다 기술력과 자금력이 월등한 광동 사람들과 경쟁하는 것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묵묵히 힘든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에너지를 생산보다는 판매 쪽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물건을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남이 만든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먼저 상해로 가서 면적이 400무에 달하는 홍도 건재시장을 세워 도기 판매에 나섰다. 그 결과 시장의 60퍼센트를 점유하게 되었다. 변화에 대한 반응이 빠른 온주상인들은 중국 비즈니스계에서 말초신경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온주인들은 어떻게 이런 자질을 갖게 된 것일까? 새롭고 낯선 지방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새로운 사람들과 그들의 방언을 접하면서 환경과 생존의 조건에 적응하는 능력이 배양되었고,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임기응변의 기질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과감하게 변화를 추구하는 온주인들의 지혜는 바로 격렬한 시장경쟁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온주상인에게 배우는 경영전략 - 실리적으로 사업하기 : 온주인들은 이익이 있어야만 변화에 따른다. 사실 이는 모든 중국 기업과 상인들의 눈앞에 놓인 새로운 사고이자 진로이다. 국가가 투자를 하지 않으면 스스로 건설하고, 자본이 부족하면 안경이나 라이터, 단추같은 소형상품을 경영한다. 과학교육 수준이 낮으면, 낮은 대로 수공업으로 제품을 생산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사업을 시작하려면 기존의 상황을 변화시켜야 하고, 돈을 벌려면 현실에서 실리적인 계획과 행동을 전개해야 하는 것이다.
3장. 선점 - 한 발 앞서 시장을 공략하다
기회를 선점한 자가 황금을 캔다온주인들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좋아하는 반면, 시류에 따르는 것을 꺼린다. 실천력이 풍부한 온주인들은 항상 남보다 한 발 앞서는 것이 장사의 기회를 독점하는 것이라는 대단히 직감적이고 질박한 인식을 갖고 있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대부분의 온주인들은 격렬한 시장 경쟁 속에서 장사의 기회를 식별해내는 예리한 안목을 갖춰 항상 새로운 사업의 선두주자로 활약해 왔다.
상업의 처녀지를 찾아 시장을 세우다 : 확실히 비즈니스 세계에는 전장에서 쓰이는 병법의 원리들이 작용하고 있다. 현대의 상업활동에서 사업의 기회를 잡는 것도 전쟁에서 승리의 기회를 잡는 것과 같은 이치로 이루어진다. 전쟁과 마찬가지로 장사에도 주도권의 장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기회를 선점한다는 것은 아무런 경쟁 없이 독점적으로 사업을 전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품의 질이나 양에 관계없이 무조건 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다른 상인들이 들어오기 전 까지는 힘 안 들이고 여유 있게 넉넉한 이윤을 챙길 수 있는 것이다. 어째서 온주인들이 성공의 열매를 독차지하고 있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바로 남들보다 한발 앞서 기회를 잡는 데 있다. 1960년대에 300여 명의 온주인들이 신강에 들어가 신강 지역 최초의 온주상인들이 되었다. 이들은 그곳에서 치약과 칫솔, 바느질 도구 등을 팔았고, 이발을 하거나 신발을 수선했다. 지금은 8만여 명의 온주상인들이 활동하고 있다. 온주인들은 신강 시장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신강 지역이 8개 국가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국경선이 5천 킬로미터에 달해 동서 교통의 교두보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강은 제10차 5개년계획 기간동안 34개의 중요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 이러한 대형 프로젝트들은 신강성 중부권 경제의 초점이 될 전망이다. 온주상인들이 신강으로 진입한 것이 중국 서부대개발의 선두 진지를 차지하기 위한 것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온주인들은 신강을 거점으로 하여 모스크바와 알마아타, 타슈겐트 등 국제시장에 진출할 속셈인 것이다. 온주인들의 활약은 국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몇 년 전부터 온주인들의 출국 러시는 뉴욕과 파리, 밀라노 등 세계적인 대도시로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온주인의 출국 러시에는 남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낙후된 국가나 지역을 찾아가는 것이다. 낙후된 국가일수록 사업의 기회가 더 크고, 발전 공간이 더 넓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온주상인에게 배우는 경영전략 - 먼저 내민 손이 가장 큰 떡을 친다 : 남들보다 먼저 기회를 잡으면 무조건 성공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온주인들은 기회를 잡은 다음 자금을 비롯한 제반 조건, 사업 경험 등에서 충분한 사전준비를 갖추지 않고는 절대로 일을 시작하지 않는다.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을 경우에는 먼저 이를 해결한다. 기회 선점에 이은 충분한 준비가 성공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치열한 시장 경쟁에서 남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먼저 생각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선수를 치는 일은 먼저 생각하고 난 다음의 일이다.
소비자 욕구에 관심을 기울여 시장을 살피다
수요의 흐름에 따라 민첩하게 움직인다 : 비즈니스 기회의 발견은 중국의 경영학에서 '고양이가 쥐를 잡는 계책'으로 비견되기도 한다. 어떤 상황이나 환경이든지 고양이가 쥐를 잡는 방식으로 '한 걸음 다가설 때마다 한 번씩 살피는' 경영 및 파냄 방식이 바로 온주인들의 주특기이다. 사실 비즈니스의 기회라는 것은 소비자의 수요에 다름 아니다. 수요가 있어야만 사업의 기회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어떤 욕구는 소비자 자신들도 인식하지 못할 때가 있고, 그만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일상에 젖은 사람들은 잠재적인 욕구를 전혀 감지하지 못하다가 누군가가 개발한 어떤 상품이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고 삶의 질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게 되면 그제야 감지한다. 다시 말해서, 때로는 생산자의 적극적인 개발과 유도를 통해서 소비자의 수요가 형성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온주상인들은 시장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상황을 정확하고 냉철하게 인식하고 있다. 비즈니스의 기회는 이미 경영자들이 주도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제시하는 방향을 따라가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사업의 기회가 도처에 널려 있는 상황에서 잠재적 기회는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발견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안목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 아니다. 잠재적 기회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남다른 관찰과 노력이 필요하다.
온주의 한 가전제품 공장에서 전기오븐을 생산하고 있었다. 이는 온주 특산물인 오리구이를 위해 설계된 제품이었다. 이 제품을 상해 시장에 내놓았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문제는 제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해 사람들의 기호에 있었다. 상해 사람들은 오리구이를 즐겨 먹지 않기 때문에 이런 전기 오븐을 살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 공장은 상해 사람들이 닭구이는 즐겨 먹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재빨리 닭구이용 오븐으로 개조해 시장에 내놓았다. 이번에는 반응이 완전히 달랐다. 오리구이용 오븐을 닭구이용 오븐으로 개조해 출시한 덕분에 상해 사람들은 음식점에서 사먹는 것과 거의 같은 맛의 닭구이를 집에서도 해먹을 수 있게 되었다. 물건이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간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온주 공장은 이에 그치지 않고 오리구이용 오븐과 바비큐용 오븐을 연달아 생산해 각지 사람들의 서로 다른 구미에 맞게 다른 상표를 붙여 시장에 내놓았다. 나중에는 신강 지역에 양고기구이용 오븐을 판매하기도 했다.
온주상인에게 배우는 경영전략 - 숨어있는 기회를 찾아내는 법 : 세심한 연구와 분석을 통해 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