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10년 불황을 이겨낸 힘 도요타
김태진· 조두섭· 전우석 지음 | 위즈덤하우스
제1부 세계가 주목하는 도요타 경영
세계 최강의 생산방식으로 승부한다도요타자동차 경쟁력의 원천은 도요타 특유의 생산시스템(TPS ; Toyota Production System)에 있다. TPS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시키는 일만 수동적으로 해내는 기능적 인간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업무의 개선점을 찾아내는 능동적 인간(이를 '전원 참가형 경영'이라고 칭한다)으로 보고 있다. MIT대학의 국제자동차산업 조사그룹은 도요타 생산방식을 린 생산방식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했는데, 이 생산방식은 1990년대 이후 포드 컨베이어 시스템을 대체하는 새로운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 잡기 시작했고, 현재는 세계 최강의 생산방식으로 인정받고 있다. TPS는 수많은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요소 중 두 가지 기둥은 저스트 인 타임(JIT)과 사람 인(人) 변이 붙은 자동화(自 化)다.
JIT는 '필요한 것을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생산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그 유명한 간반 시스템 - 우리말로 직역하면 '간판'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음 - 으로 세계적으로 'KANBAN'이라는 말로 통용된다. 도요타에서 사용하는 모든 부품 상자에는 어른 손바닥 크기보다 조금 큰 전표 같은 것이 함께 부착돼 있다. 이것이 간반이다. 작업자는 간반을 통해 앞 공정에서 사용한 부품의 수량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다음 공정에서 얼마만큼 부품이 필요할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납품업자의 경우, 간반을 보고 오늘 조달해야 할 부품이 몇 개나 필요한지 확인하고 그만큼의 부품을 생산해 공급한다. 따라서 불필요한 재고 비용이 'O'이 되는 것이다. 부품을 조립하는 시점에서 조금이라도 불량한 부품이 공급되면 조립 중 생산라인 전체가 서버릴 수 있는 극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 상황은 부품 공급업자에게 품질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도 가져온다. 아울러 다량의 부품 재고로 인해 놓치기 쉬운 생산라인의 문제점 발견도 보다 쉬워져 생산성도 향상된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자동화(自動化)'에서는 움직일 동(動)자를 쓰지만, 도요타에서 사용하는 '자동화(自 化)'에서는 일할 동( )자를 쓴다. 일하는 것은 실제로 물건을 가공하거나 조립하는 생산 활동이지만, 움직이는 것은 물건의 운반이나 순서를 바꾸는 등의 '부가가치를 만들지 않는 단순히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은 한마디로 말해서 조립라인에서 문제가 생기면 생산라인 전체를 세우고 그 자리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런데 도요타의 생산성을 벤치마킹하는 다른 기업들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도요타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는 도요타의 생산시스템이 그들만의 독특한 기업 문화를 바탕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자생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도요타는 철저하게 현장, 현물, 현실의 3현주의를 추구한다. TPS의 형성 과정도 가장 말단 현장에서부터 시작된다. 우선 조립라인의 공정 단계에서 생산성을 방해하는 문제점을 찾아내 그것부터 고치는 것이다. 또 작업자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키우기 위해 오노 다이이치가 강조한 것이 바로 그 유명한 "'왜?'를 다섯 번 반복해 보라"였다.
가장 기초 단계에서 찾아낸 '곤란한 상황'이, 현장 직업자들이 짜내는 지혜에 의해 해결되면서, 공정의 한 부분을 바꾸면 자연히 다른 부분들과 충돌하는 현상 역시 자연스럽게 해소되고,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조립라인에서 시작된 변화가 라인 전체의 변화를 유도해내는 것이다. 나아가서는 공장 전체, 그리고 연구개발 부문이나 구매, 판매 부문까지 변화가 파급된다. 더 나아가서는 도요타에 부품을 공급하는 관련 부품 회사까지 변화가 이어진다. 이를 두고 한 도요타의 연구자는 TPS란 단순한 생산방식이 아니라 개선방식, 기업의 혁신방식, 진화를 거듭하는 생산 시스템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TPS의 본질은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근로자를 만들어내는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에 있다. 또 TPS의 성공 뒤에는 도요타의 막강한 판매력이 있다. JIT나 간반이 좋다는 것을 경쟁사인 닛산이나 혼다가 모를 리 없다. 그들이 도요타 생산방식을 흉내낼 수는 있을지언정 똑같이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판매력의 차이 때문이다. 이런 판매 시스템을 구축한 일등공신은 바로 가미야 소타로 사장이다.
인간 중심이 경영의 기본이다도요타의 경우, 회사에 거짓 보고를 하거나 돈을 횡령하는 등 큰 '사고'만 치지 않으면 적어도 60살까지 정년을 채울 수 있다. 이 같은 정년 보장에는 덴소가 30% 이상 지분을 투자한 80여 개에 달하는 부품 관련 자회사도 큰 몫을 한다. 즉 승진 적체가 심할 경우, 50대 이후에 이들 자회사로 옮겨 60세까지는 모두 떳떳하게 일을 할 수 있다. 도요타자동차가 세계 최고의 생산성을 유지하는 비결 중 하나는 이 같은 종신고용주의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즉 종업원을 비용이 아니라 투자 개념으로 인식하고, 존중해야 최고의 품질이 나온다는 것이다.
필자가 다녀 본 도요타자동차 공장의 경우, 조립라인 근로자와 이를 감독하는 현장 관리자의 인간관계가 인상적이었다. 현장 관리자들은 자신이 일했던 현장에서의 노하우를 그대로 전해 주면서 가족 같은 신뢰를 쌓는다. 그리고 이 신뢰를 현장 개선 활동으로 연결시킨다. 생산 현장의 분위기와 근로자의 태도도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 2시간 일하고 15분 쉬는 도요타 근로자는 휴식시간에 다음 작업을 위해 화장실에 다녀오고 간단한 볼일을 본다. 작업 중 화장실에 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도요타의 생산성은 이처럼 조립라인 근로자의 성실한 자세와 가이젠(개선, 改善) 활동에서 나오고, 평생고용과 가족 같은 현장 관리자, 그들의 제안을 믿고 서슴없이 받아들이는 경영층이 뒷받침하고 있다.
신뢰하는 노사 관계로 경쟁력을 키운다일본 최고의 기업인 도요타에서는 노사가 서로를 불신하며 싸우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회사가 잘 될 수 있도록 노조는 경영진에게 조언을 하고 경영진은 노조의 조언이 맞으면 스스럼없이 받아들인다. 도요타의 노사 관계를 보면 '세계 최고의 품질 뒤에는 조화로운 노사 관계가 밑거름'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된다.
2000년 이후 세계 자동차 업체 가운데 가장 많은 이익을 내고 있는 도요타는 4년째 기본급을 동결했다.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해외 경제 환경 변화에 따른 위기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도요타 경영층은 이런 위기감에 고통 분담으로 화답했다. 또 도요타의 임금 동결에는 이밖에도 다른 여러 가지 요소가 있다. 기본급 인상은 물가 인상률과 연동되어 있는데 2002년 물가는 마이너스를 기록했기 때문에 기본급 동결은 당연한 것이라는 얘기다. 도요타의 기본급 동결은 불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기업의 임금 협상에 이미 영향을 미쳤다. 큰 돈을 벌어들인 도요타가 위기를 강조하며 임금을 동결한 판에 어느 기업이 순순히 임금을 올리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도요타 노사 화합의 비결은 일단 동종업체 최고의 임금을 준다는 데 있다. 그래서 노조가 갖고 있는 가장 막강한 권한인 임금쟁의의 빌미를 줄 여지가 적다. 또 한 가지는 현장 중심 경영이다. 도요타는 현장의 작업 환경 개선이나 생산성 향상 제안이 관리자에게 보고되어 즉각 경영층 귀에 들어가는 보고 체계를 갖고 있다. 경영층의 도덕성과 창업가에 대한 존경심 등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신중한 투자와 보수적인 경영을 고수한다도요타의 보수 경영은 유명하다. 이는 새로운 분야의 차를 먼저 개발한 경우가 거의 없는 데서도 알 수 있다. 경쟁사에서 그럴 듯한 차를 만들어 시판하면 도요타는 이를 꼼꼼히 분석해 더 싸고 편리한 기능을 장착한 비슷한 차를 내놓는다. 해외 시장 개척도 마찬가지다. 절대 먼저 나서서 공략하지 않는다. 먼저 하는 것보다 한발 늦어도 제대로 한다면 언제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한 이유다.
도요타가 이렇게 보수적인 신중주의를 견지해올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도요타의 40%에 육박하는 일본 국내 시장점유율을 들 수 있다. 일본 내에 확고한 이익 기반을 갖추고 있는 도요타로서는 해외 진출을 서두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아울러 도요타는 일본인, 아니 도요타 인이 아니면 수행할 수 없다는 생산시스템 때문에 해외 진출을 신중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해석도 있다. 도요타의 경쟁우위는 도요타 생산시스템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 이를 현지에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장기간 사전 준비작업과 교육훈련이 필요하다는 점이 도요타 신중주의의 배경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런 신중한 해외 진출은 중국 진출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도요타는 본격적인 승용차 공장의 설립에 앞서 1995년 중국 국산화 기술 지원센터를 먼저 시작했다. 그 후에는 자동차의 기간 부품을 만드는 4개 부품 회사를 순차적으로 설립했다. 또 텐진도요타 공장을 설립한 2000년까지 매년 '도요타 생산방식 강좌'를 열었다. 이와 같은 7년에 걸친 주도면밀한 사전 작업 끝에 도요타는 중국에서 승용차 생산을 시작했다. 연간 생산 5만 대 규모의 승용차 공장으로 성장하기까지 무려 9년이 걸린 셈이다. 현대자동차 중국 공장은 2002년 2월 북경기차와 합자 의향서를 체결한 지 1년이 채 안 된 12월에 생산을 시작했다. 무려 9년과 1년의 차이가 난다. 매년 100만 대씩 수요가 늘어나는 중국 시장에서 도요타의 신중주의 현지화와 현대자동차의 초 스피드경영 중 어느 것이 효과가 있을지 궁금하다.
든든한 파트너십으로 품질 안정을 유지한다도요타에서 생산하는 자동차를 뜯어보면 덴소 부품 비율이 20% 이상이다. 자동차의 가장 중요한 부품인 공조, 동력 장치를 모두 덴소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덴소는 세계 자동차 부품업체 중 매출액 순으로 GM의 델파이, 포드의 비스테온, 독일의 보쉬에 이어 4번째로 큰 회사이며, 덴소 역시 종신고용의 안정적인 바탕 아래 가이젠 문화로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덴소의 우수한 경쟁력에는 뒤를 받쳐 주는 73개의 자회사와 우량한 2,3차 하청업체가 있다. 모두 덴소가 30% 이상 지분을 출자한 자회사다.
우리나라는 공정거래법상 대기업의 자회사 출자를 제한하고 있는 반면, 덴소는 자회사를 통해 안정적인 부품을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자회사는 회사 인력 수급에도 도움이 된다. 또 한국의 대기업처럼 하청업체에게 일방적인 코스트 다운을 강요하지도 않으며, 적절한 구매 단가를 통해 경영 안정과 기술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생의 삶이 철저한 품질을 낳는 바탕이다. 국내 대기업의 경우, 노사 분규 끝에 임금이 올라가면 상당 부분을 그대로 납품업체에 전가한다. 그래서 납품업체 근로자들은 본사 기업에 비해 최저 절반의 임금을 받는 열악한 환경 속에 근무한다. 그런 하청 업체에서 어떻게 기술력 향상과 양질의 품질을 기대할 수 있을까? 덴소는 막대한 흑자에도 불구하고 올해 임금을 동결했다. 일부 성과급만 지급했을 뿐이다. 아마도 이 점이 우리와 가장 다른 현실일지 모른다. 우리가 노사 갈등으로 에너지를 소비하는 동안 덴소는 노사 협력을 바탕으로 코스트 다운과 신기술 개발에 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제2부 존경받는 도요타 경영 철학
도요타의 모태가 된 선각자 - 도요타 기이치로 회장일본 경제학자들은 도요타 성공 요인 가운데 하나로 창업 이래 70여 년간 철저히 도요타 일가가 중심이 되어 유지해 온 경영권 안정을 꼽고 있다. 먼저 창업자 도요타 기이치로를 살펴보자. 1910년대 당시 도쿄대학 기계공학과를 다니던 그는 유럽, 미국의 자동차 업체들이 일본에 무혈 입성하는 것을 보고 자동차 산업의 꿈을 불태웠고, 1929년 35세 때 아버지가 발명한 자동직기 특허권(당시 10만 파운드)을 영국 회사에 팔아 본격적으로 자동차 공장을 준비했다. 다음해 도요타자동직기의 한 사업부로 자동차 연구소를 개설한 것이 도요타자동차의 시발점이다. 그 해 그의 아버지 사키치는 사망했다.
도요타 기이치로는 고객 만족을 창업 때인 1930년대부터 도입했다. 그의 납품업체에 대한 철학도 남달랐다. 도요타는 생산 대수가 증가하더라도 불필요하게 구매처를 늘리거나 가격 인하에 눈이 멀어 납품업체를 쉽게 변경하지 않도록 했다. 그는 평상시 "사람을 해고하지 않는 것이 경영자의 도리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다. 하지만 패전 후 미 군정의 디플레이션 정책으로 판매가 급격히 줄면서 회사가 어려워졌고, 1949년에는 도산 지경에까지 몰렸다. 그는 융자를 받기 위해 결국 감원을 단행했고 노조는 이에 반대해 파업에 돌입했다. 그러자 그는 책임을 지고 사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의 사임 이후 도요타 자동직기 사장이던 이시다 다이죠가 후임사장으로 취임했다.
이듬해 연말 기이치로는 다시 사장으로 내정됐지만, 1952년 3월, 갑작스런 뇌일혈로 사망했다. 항상 시대를 앞서가려 했던 그의 인생은 최고를 추구하는 도요타 경영이념의 밑거름이 됐다. 또 감원에 대한 책임을 지고 창업자가 스스로 물러났던 전통은 훗날 도요타 노사 화합의 전통으로 계승됐다. '순수 일본의 두뇌와 기술로 자동차를 만들겠다.' 이것이 도요타 창업자인 도요타 기이치로의 창업이념이다. 그가 남긴 정신은 오늘날까지 그대로 전수되어 도요타만의 성공 유전자로 계속 복제되고 있다.
도요타를 세계 무대로 - 도요타 쇼이치로 명예회장창업자 도요타 기이치로의 장남인 쇼이치로는 1982년 자동차 판매를 담당하고 있던 도요타자판과 제조를 맡았던 도요타자공과의 합병으로 탄생한 도요타자동차의 신임 사장으로 경영 전면에 등장했다. 그는 1992년까지 사장을 맡아 생산과 판매의 유기적 결합을 이끌고, 해외로 진출해 글로벌 도요타의 토대를 다졌다. 이후 친동생 다츠로에게 사장을 승계하고 대외 사업을 챙기는 회장으로 승진, 도요타를 도쿄 재계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도요타 쇼이치로의 가장 큰 공적은 판매와 제조를 다시 합친 신생 도요타자동차의 안정화에 있다. 그는 도요타 가(家)의 대표로 당시 30만 도요타 그룹의 구심점을 확보, 새로운 비전과 전략을 제시해 위기를 헤쳐나갔다. 일본 내 1등에 만족하지 않고 '글로벌 톱10'을 내세워 미국 진출을 성공시켰고, 럭셔리 브랜드 '렉서스'의 탄생을 진두 지휘했다. 2000년 명예 회장으로 경영일선에 물러난 그는 일본의 공교육 개혁과 세계박람회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명예회장으로 물러난 뒤에는 현재 경영진에게 부담을 줄까 봐 도요타 경영에 관련한 언급은 일절 하지 않는다고 한다.
변화와 개혁의 최고 경영자 - 오쿠다 히로시 회장2000년대 도요타자동차가 최강의 회사가 된 데는 바로 오쿠다 히로시의 힘이 컸다. 그는 1995년 8월, 도요타 다츠로 후임으로 사장 자리에 올랐다. 그는 1955년 히토츠바시 대학을 졸업한 뒤 도요타자판에 입사해 20여 년간 경리와 해외 영업을 맡아온 영업통이었다. 오쿠다 역시 종신고용제 신봉자다. 도요타의 가이젠도 바로 이 같은 종신고용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또 하나 그의 철학은 '빚의 무서움'과 '본업 충실주의'다.
그가 사장 자리에 앉은 1995년 8월, 도요타의 재무 상태는 순이익과 캐시플로 등에서 눈에 보일 정도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대기업 병(관료주의)에 걸린 것이었다. 오쿠다는 사장 취임과 함께 거침없이 개혁의 칼을 빼들었다. 그의 개혁 목표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전략', '일본 시장 점유율 40% 사수', '세계 시장을 목표로 하는 자동차 개발'이었다. 연공서열제 폐지, 성과급제 실시, 사내 벤처 육성 등 충격 요법을 잇달아 도입했다. 젊고 활력 넘치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 차기 사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