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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각네 야채가게

김영한·이영석 지음 | 거름
당신의 마음과 춤을 춰라

스승을 만나다


이영석 사장의 가게는 내 사무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강남 대치동에 있는 은마 아파트 후문이 바로 그 곳이었다. 거기서 나는 여남은 명의 총각들이 뿜어 대는 신명 넘치는 에너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귀로 듣고 온몸으로 느꼈다. 내가 그에게 매력을 느낀 첫 번째 이유는 동시대의 다른 젊은이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일에서 성공을 했다는 점이었다. 보통의 젊은이들이 벤처다 IT산업이다 하면서 거창하고 새로운 일만 쫓아다닐 때, 이 젊은이는 야채장수로 트럭을 몰고 아파트 단지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다. 두 번째 이유는 그가 지닌 성공노하우였다. 그의 성공노하우는 기발하고 충격적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결국엔 마케팅의 기본을 충실히 실행하는 것이었다. 그는 장사를 잘할 수 있는 복잡한 이론 따위는 몰랐다. 하지만 알 필요도 없었다. 필요한 모든 것들이 이영석 사장에게는 이미 내재화되어 있었고, 총각네 야채가게에 고스란히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싱그러운 젊음이 만들어 가는 감동의 일터. 내가 지금껏 경험했던 그 어떤 성공 스토리보다도 생생하고, 저마다 새롭다고 하는 그 어떤 이론보다도 신선하게 다가온 총각네 야채가게의 이야기를 이제 시작하려 한다.



이영석의 대학시절 전공은 레크리에이션이었다. 대학 졸업 후 기획사에 입사하여 일은 힘들고 보수는 적었지만, 경험을 쌓고 일을 배운다는 데 의미를 두고 즐겁게 일했다. 하지만 입사한 지 얼마 안되어 처음으로 자신이 직접 작성한 기획안을 올리려고 며칠밤을 샌 후 브리핑 전에 선배에게 보여주었다. 그런데 기획안을 보는 선배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급기야 고래를 설레설레 젖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브리핑을 하지 못했는데, 다음날 그 선배가 자신의 기획안을 그대로 베껴서 브리핑을 하는 게 아닌가.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영석은 그 길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때 그의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은 하나였다. '즐겁고 정직한 일은 없을까?'



이영석은 머리를 식히기 위해 한강 둔치로 나갔다. 그리고 그날 그곳에서 자신의 스승을 만나게 된다. 한강 둔치에는 오징어가 가득 실린 1톤 트럭이 서 있었다. 하지만 오징어 행상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무심히 바라볼 뿐 장사에 별로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이영석은 트럭으로 다가가 "안녕하세요. 저, 혹시 제가 이 오징어를 좀 팔아보면 안 될까요?" 이영석은 자신도 모르게 즉흥적으로 내뱉은 말이었지만, 막상 오징어 행상이 거절할까봐 거듭 부탁했다. "바람 쐬러 왔는데, 한번 해보고 싶어서요.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그러시게." 의외로 오징어 행상은 선선히 승낙했다. 이영석은 오징어 행상에게 원가로 오징어 2만원 어치를 받았다. "사람들에게 이걸 팔려면, 이 오징어의 좋은 점을 말해줘야 하잖아요.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좀 가르쳐 주세요." "그러지. 여기 오징어 몸통의 세로로 붉고 굵은 줄이 나 있지? 이 줄은 오징어가 죽으면 이삼 일 만에 사라지는데, 이렇게 붉고 굵다는 건 싱싱한 상태에서 말렸다는 걸 뜻하지. 그리고 만져 보면 알겠지만 오징어 살이 두껍고 푹신푹신하지. 이것도 싱싱한 오징어를 말렸다는 표시야. 냉동 오징어를 말리면 살이 축 처지면서 크기만 커지거든. 그리고 다리 열 개가 이렇게 다 벌어져 있어야 잘 마른거야. 다리가 들러붙어 있으면 그 부분이 상하거든. 이만하면 됐나?" "예, 고맙습니다." 정말 그가 보기에도 오징어의 품질은 좋아 보였다. 거기다 설명을 들으니 확신이 생겼다.



그는 오징어를 들고 주변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방금 울릉도에서 올라온 오징어! 대한항공 타고 올라온 오징어! 새벽에 오징어 잡으러 갔다가 물에 빠질 뻔했습니다! 오징어 사세요, 오징어! 쥐포도 아니요, 낙지도 아니요, 오직 울릉도에서만 잡히는 싱싱한 마른 오징어! 오징어가 왔어요!" 이영석의 커다랗고 익살스러운 목소리는 단번에 한강에 놀러 나온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그는 제자리에 있지 않고 사람들이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의외로 사람들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한강을 찾은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잘 받아 주었다. 그렇게 이영석은 30분 만에 2만 원어치의 오징어를 다 팔았고, 손에는 4만 원이 쥐어졌다. 정확히 두 배였다. "이거 재미있네." 흔히들 하는 말처럼 장사란 남을 속이는 게 아니었다. 정말 좋은 품질의 오징어를 알아보는 건 손님들이었다.



다 팔고 오징어 행상에게 돌아오니 손님 몇이 트럭 주위에 몰려 있었다. 아까 그에게 오징어를 사간 사람들이 오징어가 맛있어서 또 사러 왔다고 했다. 힘을 얻은 이영석은 이번에는 4만 어치의 오징어를 받아 다시 팔러 나섰고 한 시간만에 다 팔아버렸다. 처음 2만 원으로 시작한 장사가 두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네 배나 늘어 8만원이 되었다. 이영석은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고는 바로 장사에 승부를 걸기로 마음먹었다. 그 때가 1993년도였다. 그때부터 무작정 일 년여동안 그를 따라다니며 장사의 기본을 배웠다. 사람들을 상대하는 법, 좋은 물건을 고르는 법, 목 좋은 자리들…. 비록 보수도 없는 조수 역할에 불과했지만, 그에게는 온몸으로 장사를 체험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길잡이를 만난 셈이었다.



최고에게 배워야 최고가 될 수 있다

나무는 큰 나무 아래서 자랄 수 없지만, 사람은 큰 사람 밑에서 그보다 더 큰 사람으로 자랄 수 있다. 이영석은 오징어 행상을 뛰어넘고, 그와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만난 수많은 고수들을 뛰어넘는 것을 목표로 정하고 나름대로 전략을 세워 보았다. 1994년, 은행에서 300만 원을 빌려 수중에 있던 2백 50만 원과 합쳐 트럭을 한 대 구입하였다. 본격적으로 홀로서기 장사가 시작된 것이다. 이영석은 1톤 트럭을 몰고 전국에 안 가본 데가 없을 정도로 사방을 누비고 다녔다. 그는 각 분야의 최고들을 수소문하며 직접 찾아다니기로 했다. 우선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의 도매상인들을 붙잡고 하나하나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귀찮다며 뿌리치기 일쑤였고, 심한 경우는 뭇매를 맞기도 했다.



이때 그에게 도움을 준 사람은 가락시장 하나상회의 한 아주머니. 좋은 과일 고르는 법은 따로 있었다. 이를테면 곶감, 수박, 포도 등의 껍질에 묻어 있는 흰 분은 농약이 아니라 당분이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 또한 일반인들은 수박에 칼을 댔을 때 쩍 소리를 내며 갈라지는 것을 좋은 수박으로 알지만, 사실 그렇게 갈라지는 수박은 상인들 말로 '물을 빤' 수박이다. 재배과정에서 공기 중의 수분을 빨아들인 껍질이 무르기 때문에 쉽게 갈라지는 것이다. 그렇게 물을 먹은 수박은 당도가 낮게 마련이다. 이영석의 스승은 한 명이 아니었다. 누가 어느 지방의 무슨 과일이 좋다고 하면 이영석은 밤을 새워서라도 트럭을 몰고 그 곳에 갔다. 그는 이 모든 과정들이 다소 고됐지만 늘 신이 났다.

무조건 시선을 끌어야 한다

이영석이 독립해서 장사를 하기 위해 주로 돌아다닌 대치동 일대에는 이미 수십 개의 야채가게가 있었고, 주부들은 나날이 커져 가는 백화점과 대형할인점의 야채, 과일 코너로 여전히 몰리고 있었다. 그는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손님들이 찾아 올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어느 날 이영석은 가락시장에 나가 한창 출하중인 바나나를 샀다. 그리고 동대문 황학동 도깨비 시장을 가서 원숭이를 한 마리 샀다. 이영석은 바나나와 원숭이를 실은 트럭을 몰고 대치동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녔다. "원숭이가 좋아하는 바나나, 원숭이도 맛없는 바나나는 먹지 않습니다. 원숭이와 바나나가 왔어요!" 원숭이라는 말에 먼저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한참을 지켜보던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져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엄마의 손을 붙잡고 돌아왔다. "내 말이 맞지, 엄마? 진짜 원숭이잖아." "정말이네. 아유 귀여워라." "엄마, 나도 저 바나나 사 줘!" "그래, 맛있겠다." 처음에는 아이들 성화에 못 이겨 끌려 나왔던 어머니들도 원숭이가 바나나 먹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 했다. 원숭이를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은 모두 즐거워 했고 한 다발 혹은 몇 다발씩 바나나를 사갔다. 예상을 뛰어넘는 열렬한 호응이었다. 이영석은 여느 날보다도 훨씬 일찍 바나나를 다 팔 수 있었고, 아직도 해는 높다랗게 떠 있었지만 그는 웃으며 그 날의 장사를 정리했다.



좋아하는 일에는 목숨을 걸어라

이영석이 트럭 행상으로 야채장사를 하면서 항상 순조로웠던 것만은 아니다. 이영석이 트럭 행상을 하던 시절 은마아파트 담 밖에는 많은 노점상들이 있었다. 죽 늘어선 노점상들의 끄트머리에 트럭을 세우고 자리를 잡자, 처음 이틀은 누구도 그를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나 손님이 그의 트럭으로만 몰리자, 사흘 째 되던 날 노점상 가운데 덩치가 좋은 사내 셋이 다가와 야채와 과일을 바닥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이영석은 울컥 분노가 치솟았지만 그냥 참았다. 다음 날 다시 그 자리에 나타난 이영석을 본 노점상인들은 이제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그는 그때도 반항하지 않고 그냥 맞았다. 그 다음 날고, 그 다음 날도 이영석은 그 자리에 있었다. 노점상인들은 젊은 게 독종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며칠을 버텼더니 노점상인들은 더 이상 그를 괴롭히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구청 단속공무원들이 찾아왔다. 평소 노점상은 단속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기에 공무원들은 일정 수의 노점은 묵인해 주고, 그 대신 노점상들로 하여금 더 이상 다른 노점이 생기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노점상인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해결하지 못하자 구청단속반에 고발했던 것이다. 이영석은 트럭에 실린 야채와 과일을 모두 빼앗겼다. 그렇게 빼앗긴 물건을 찾아오려면 벌금을 2십 만원이나 줘야 했지만 다시 그 물건들을 찾아 은마아파트 담 아래로 갔다. 또 빼앗기면 벌금을 내고 찾아오고 다시 또 빼앗기면 찾아오고를 반복하자 구청 공무원들도 두손 두발 다들었다. 결국 이영석은 끈질기게 버틴 덕분에 그 곳의 노점상인들 뿐만 아니라 구청 단속반들에게도 암묵적인 인정을 받기에 이르렀다.



매일매일 맛있게

가락시장의 무법자 '칼잡이'


이영석은 트럭 행상 시절에도 해마다 1억여 원의 수입을 올렸다. 대체 어떤 트럭 행상이길래 해마다 그렇게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었을까. 나로서도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물론 이영석은 바나나와 원숭이를 함께 생각해 내기도 했고, 이동식 점포의 개념도 고안해 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해 보인다. 나는 이따금 총각네 야채가게에 들르는데, 그때마다 매번 놀라곤 한다. 한번은 총각네에서 수박을 고르고 있었는데, 빛깔도 좋고 모양도 좋은 수박이 1만 5천원 이었다. 바로 그때 수박을 가득 실은 트럭이 확성기를 울리며 가게앞을 지나갔다. "수박, 맛 좋은 수박이 5천 원! 5천 원입니다." 짐칸에 실린 수박들은 총각네 수박보다 조금 작았지만 별 차이가 없어 보여서 저렇게 싼 수박이 왔으니 총각네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직원들은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 듯이 보였다. 또한 손님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이유를 보자면 총각네 야채가게는 가격이 비싸더라도 최고의 제품만을 떼어 온다. 그렇다고 폭리를 취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제값을 받을 뿐이다. 총각네에는 늘 그만큼의 신선도와 그 이상의 맛이 보장되었다. 한마디로 선순환이다. 품질이 보장되니 손님들이 그만큼 많이 찾게 되고, 그래서 순식간에 팔려 버리는 야채와 과일들은 그만큼 보관기간이 짧아져서 신선도는 늘 두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품질이 좋은 야채와 과일을 고르고 사 오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다음 날 새벽 3시, 가락동 농수산물 도매시장에서 물건을 고르는 이영석을 쫓아가 보았다. 여기저기서 이영석에게 아는 체를 했고, 어떤이는 '칼잡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칼잡이라니?



가락시장은 총 16만여 평인데, 하루 15만여 명의 사람과 5만여 대의 차량이 출입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으니 자연 사람들의 기운도 억세게 마련. 이영석은 자신이 직접 맛보고, 상자를 뒤집어 밑바닥의 과일을 확인하는데 도매상인들은 무턱대고 수박을 반으로 쪼개 맛을 보고 사지도 않고 가버리는 이영석을 곱게 볼 리가 없었다. 그 탓에 이영석은 도매상인들에게 몰매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대들지 않고 때리는 대로 다 맞고 다시 시장을 찾았다. 그렇게 해서 모든 점포들이 칼잡이 총각 사장을 알아보기까지는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영석은 하루에 종잡아 열여덟 시간씩 일하는 괴물이다. 그의 하루 일과는 대충 이렇다. 새벽 2시 반에 자리에서 일어나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락동 시장에 닿는 시각은 새벽 3시 무렵. 그때부터 예닐곱 시간동안 그는 발품을 팔아 과일과 야채, 생선 등을 고른다. 이영석이 구매한 물품들은 중앙청과의 288번 도매상인 하나상회 앞 혹은 가게 안의 냉동창고로 옮겨지고, 배달 트럭이 와서 그것들을 싣고 야채가게로 향한다. 그가 그러고 있는 사이 여덟 명의 야채가게 총각들은 오전 10시 개장을 위해 재빨리 가게 내부를 청소하고 물건을 진열한다. 장사를 시작하면 점심시간이 따로 있지는 않고 한가한 틈을 타 교대로 먹는다. 오후 6시. 영업이 끝나고 매장은 셔터를 내리지만 그 후의 시간은 직원들과 의견을 나누기도 하고 그날의 매출을 계산하기도 한다. 일러야 저녁 8시, 아니면 10시쯤에 잠자리에 누울 수 있다. 스스로 즐기지 않고서야 도저히 버티기 힘들다.



나는 이영석과 새벽 3시, 중앙청과 3번 게이트 앞에서 만났다. 이영석은 칼잡이라는 별명이 붙은 사람답게 과도 하나 들고 중앙상회의 골목골목을 누볐다. 그가 과일을 고르는 기준은 무척 까다로와 종종 사려다가도 그러지 못하고 허탕을 치고 마는 품목도 있다. 그는 마치 제집처럼 아무 도매상이나 성큼 들어가 수박을 반으로 쪼갰다. 도매상인들은 늘상 겪는 일이라는 듯 무심했다. 사실 이영석은 도매상인에게 큰 고객이다. 그는 마음에 드는 물건이면 반드시 대량 구입하고 그 자리에서 현금으로 값을 치루기 때문이다.



내가 맛보기엔 다 맛있는데 이영석은 벌써 몇 십군데의 도매점을 돌아다니며 수박을 가르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먹은 수박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더는 못 먹을 것 같았다. 내 얼굴이 달아올랐는지 이영석은 내게 화장실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사실 이영석도 새벽 3시부터 아침 10시까지 먹는 과일의 양이 사과 두 상자 분량쯤 되고 보니 초창기에는 서너 번씩은 화장실을 찾았는데, 3년쯤의 세월이 흐르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익숙해졌다고 한다. 총각네 야채가게를 이용하는 손님은 하루에 약 천 명가량이다. 이영석은 그 천 명의 입맛을 대표하는 사람이므로 자연 그의 입맛도 까다로워지게 되었다.

이영석의 물건을 고르는 요령을 좀 더 살펴보면 예를 들어 수박을 반으로 가르면 가운데 부분을 먹지 않고 가장자리 부분을 껍질과 함께 먹어본다. 수박은 가운데 부분으로 갈수록 당도가 높기 때문에 껍질 부분을 먹어 보았을 때 맛이 좋아야 이 수박 자체의 맛이 좋다고 믿을 수 있다. 사과를 고른다면 상자를 뒤집어서 칼로 사정없이 테이프를 그어 내용물을 꺼내 본다. 이제 한 상자 안에서 가장 맛없어 보이는 사과를 세 알씩 고르고 먹어봐서 그 사과가 평균치 이상이면 좋은 사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가장 맛없어 보이는 사과 세 알과 가장 맛있어 보이는 사과 한 알을 먹어서 그 맛의 차이가 가장 적은 사과상자를 선택한다. 그리고 또 같은 생산자의 사과상자라도 일일이 뜯어 맛을 본 뒤에야 구매 결정을 내린다. 이만하면 꼼꼼하다 못해 악착같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악착스러움 덕에 손님들은 맛있는 과일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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