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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희망보고서 유한킴벌리

KBS 일요스페셜 팀·정혜원 지음 | 거름
대한민국 희망보고서 유한킴벌리

KBS 일요스페셜 팀․정혜원 지음

거름/2004년 6월/240쪽/10,000원



희망보고서 1 한국형 생활 모델 : 삶의 혁명! 4일 근무, 4일 휴식

한국 경제의 전반적인 침체 속에서도 탄탄하고 눈부신 성장을 계속해 온 유한킴벌리가 이룩한 신화는 1970, 80년대 삼성, 현대 등 대기업의 그것과는 다르다. 한국 사회의 새로운 모범기업으로 한국 경제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유한킴벌리의 가장 큰 성공요인으로 이 회사가 채택하고 있는 새로운 고용 패러다임을 손꼽는다.

유한킴벌리는 93년, 신설 공장인 대전공장을 시작으로 99년에는 군포, 김천공장에 4조 교대제라는 새로운 근무체제를 도입했다. 이는 생산직 근로자들을 4개 조로 나눠 예비조를 운용하는 근무체제다. 이 시스템이 모든 공장에 적용되어 본격적으로 가동된지 겨우 5년 정도에 불과하지만 이 패러다임은 근로자에게는 여가활용과 재충전, 교육 등 자기계발의 기회를 제공했고, 회사에는 고용안정과 생산성의 향상이라는 일거양득의 놀라운 성과를 가져다주었다.

유한킴벌리의 성공 사례는 직원들에게 무조건 적은 임금을 주고 많은 노동을 시켜야 기업의 이윤을 올릴 수 있다는 인식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었다. 또한 근로자들에게는 수당을 더 받기 위해 자기 시간과 가족을 희생하면서까지 초과 근무에 매달리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었다. 유한킴벌리의 4조 교대제가 사회적인 측면에서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심각한 일자리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유한킴벌리의 눈부신 성장 뒤에는 험난한 고난의 과정이 있었다. 그리고 4조 교대제라는 근무체제를 전 공장에 도입하기까지 회사와 직원들 사이의 첨예한 갈등과 그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끈질긴 노력이 있었다.

1993년 준공된 유한킴벌리의 제3공장인 대전공장은 생산직 근로자들의 근무체제로 4조 3교대제를 채택했다. 4조 3교대제는 직원들을 4개 조로 나눈 후 하루 24시간을 3개 조가 8시간씩 나누어 일하고, 나머지 1개 조는 예비조로 편성되어 휴식을 취하거나 교육을 받는 시스템이다. 간단히 말하면, 7일 일하고 2일을 쉬는 근무제다. 당시 대전공장에 4조 3교대제를 도입하게 된 것은 문국현 현 유한킴벌리 사장의 제안 때문이었다.

문 사장은 유한킴벌리에서 처음으로 안식년의 수혜자가 되어 1983년 2월, 해외연수를 떠났다. 그렇게 나간 외국에서 그는 외국 기업들의 기업 경영에 대해 공부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문 사장이 외국 기업에게서 배운 것은 사람의 능력을 최대한 존중하고, 그 능력을 최대한 끄집어내는 인간 존중의 경영 마인드였다. 이 마인드에는 직원을 회사의 주인으로 만들고 그렇게 대해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러면 직원들에게 주인의식을 심어 주고, 안전과 건강을 보장해 주는 새로운 근무 시스템은 무엇일까? 문 사장은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들이 실시하고 있던 4조 교대제에 주목했다.

대전공장의 설립과 함께 공장의 책임을 맡게 된 문 사장은 4조 3교대제를 도입하기로 결심했다. 1992년부터 대전공장에서 일할 신입 직원들을 뽑기 시작했다. ‘대전 공장은 4조 3교대제입니다.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입사는 불가능합니다.’ 라는 조건을 받아들인 지원자 중 60명이 대전공장 최초의 직원이 되었다. 문 사장은 공장이 정상 궤도에 오르자 인력을 충원해 직원 수를 110명으로 늘렸다. 4조 3교대제의 전면적인 시행 단계에 돌입한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직원들 사이에서 임금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근로자들이 제기한 임금 문제는 특근수당과 관련이 있었다. 임금 문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자 회사는 또 다시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명회를 열었다. 회사는 근로자들에게 4조 3교대제가 실시되더라도 특근이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4조 교대제가 계속 시행되면서 결국 직원들은 특근이 그렇게 많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임금이 조금 줄어들더라도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이 보장되는 4조 3교대제를 선호하는 직원들이 늘어났다.

문 사장은 대전공장에서 4조 3교대제가 성공적으로 정착되자 다른 공장에도 이 근무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그러나 새로운 제도를 시행해 보자는 문 사장의 건의는 간부와 직원 모두에게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다. 그리고 1994년 문 사장이 수석 부사장에 취임하면서 노조운동이 격해지기 시작했다. 경영진과 노조 간의 불신과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졌다.

95년 2월 27일. 이런 상황 속에서 문 사장은 드디어 유한킴벌리의 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사장으로 취임하자마자 군포와 김천 공장에도 4조 3교대제를 실시하기 위한 본격적인 시도에 착수했다. 먼저 군포공장에 4조 3교대제를 제안했다. 예상대로 노조의 반발은 거셌다. 문 사장은 바닥에 그들과 함께 앉아 노조를 설득했다. 그러나 노조의 입장은 강경했다. 문 사장의 노력은 실패로 끝났고, 결국 군포공장에 대한 4조 3교대제 제안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국 경제의 전반적인 위기와 함께 문 사장에게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1996년 초, 한국의 경제 상황은 급격하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외환위기의 징조가 나타난 것이다. 국제 경쟁력이 악화되면서 경기는 침체되었고, 이로 인해 기업들은 직원들의 감원을 단행했다. 유한킴벌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내수시장에 의존하고 있던 유한킴벌리로서는 국내의 소비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공장 기계의 가동률 역시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유 인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비율은 날이 갈수록 높아져 전체 직원의 40퍼센트를 넘어섰다. 직원들은 갈수록 해고의 불안을 느꼈다. 그러나 문 사장은 위기를 돌파할 방법으로 정리해고 방식의 구조조정이 아니라 ‘인간 중심의 경영’을 선택하기로 했다. 직원을 감원해서 여유인력을 줄이는 대신, 4조 교대제를 도입해 여유인력을 모두 예비조로 흡수시키기로 했다. 문 사장은 4조 교대제가 성공적으로 정착된다면 노조의 신뢰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는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1995년 사장으로 취임한 직후 4조 교대제 도입을 제안했을 때 노조의 반발이 엄청나게 거셌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적절한 시기를 노리고 있던 문 사장에게 노조 측에서 먼저 4조 교대제 도입을 제안해 왔다. 4조 교대제로 가되 대전공장에서 실시하고 있는 4조 3교대제 대신 더 좋은 제도가 있다면 그것을 군포와 김천공장에 적용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실 노조가 회사에 4조 교대제를 제안한 것은 노조 간부들만의 결정이었기 때문에, 우선 전체 노조원과 직원들의 동의를 얻어내는 일이 급선무였다. 노조는 일단 조합원들을 상대로 4조 교대제 도입에 대한 의견 수렴에 나섰다. 그러나 예상대로 대부분의 노조원들은 이 근무체제의 도입을 반대했다.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다.유한킴벌리 경영진과 노조는 1996년부터 시작된 나라 전체의 경제 위기를 힘겹게 헤쳐 나가고 있었다. 회사는 유휴인력을 재배치함으로써 남아도는 인력을 활용했고, 노조는 정리해고를 막기 위한 4조 교대제 시행 과정을 하나씩 밟아 나갔다. 그러나 이런 과정 속에서 노조와 노조 위원장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노조원들도 많았다. 문 사장 역시 노조원들의 동의를 어떻게 얻어 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결국, 문 사장은 직원들의 불신감을 해소하기 위해 평생고용을 보장하겠다고 천명하고 어떻게 하면 회사를 잘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같이 고민하자고 직원들을 설득했다. 직원들은 새로운 시스템에 대한 회사와 노조 간부들의 성의 있는 설명에 조금씩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1997년 말, 회사와 노조는 4조 교대제 활용방안에 대한 연구를 위해 신 근무체제를 디자인할 팀을 만들고, 1998년 초에 첫 회의를 열었다. 이 팀에는 노조와 회사 측에서 각각 3명씩을 파견했다. 노사는 더 좋은 방법을 찾기 위해 오랫동안 심사숙고했다. 신 근무체제 디자인 팀에서는 생산현장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4일 정도 일하고 휴식을 취하면 피로를 느끼지 않으면서 무난하게 근무할 수 있겠다는 결과가 나왔다. 일 년에 거친 논의와 연구 끝에 4일을 주기로 근무하는 새로운 4조 교대제를 착안해 낸 것이다. 그것은 바로 4조 2교대제였다.

4조 2교대란 두 조가 12시간씩 근무하고 맞교대하는 동안 나머지 두 조는 휴식을 취하고, 그 다음에는 쉬고 있던 두 조가 작업에 투입되고 이전에 근무한 조는 쉬는 시스템이다. 간단히 말하면 4일 일하고 4일 쉬는 근무체제다. 4조 2교대제를 선택한 것은 근로자들이었다. 노조는 노조 위원장이 일방적으로 4조 2교대나 4조 3교대 중에서 선택하기보다는 총회를 거쳐 조합원들의 의사를 묻고 결정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군포와 김천공장에서 노조원들의 투표가 실시되었다. 결과는 압도적이었다. 대부분의 노조원들이 4조 2교대제에 표를 던진 것이다.

이번에는 문 사장이 노조에게 그 제안을 재고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하루 8시간 일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그랬더니 그분들은 8시간씩 6일 동안 근무하고 2일 쉬는 것보다 12시간씩 4일 동안 일하고 4일 쉬는 것이 더 좋다고 하더군요. 사회적으로는 교통 수요가 줄어드니 환경보전에도 기여할 수 있고, 교통 체증도 줄어들고, 출퇴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니 삶의 질도 높아지고, 가정과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또한 기계도 하루에 주인이 세 번 바뀌는 것보다는 두 번 바뀌는 것이 낫지 않느냐고 하더군요. 그렇게 조목조목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 보니 모두 맞는 말이더라고요.”

문 사장은 하루 8시간 근무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여겼던 자신의 생각이 고정관념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몇 달에 걸쳐 노조의 논리 정연하고 확고한 설명을 들은 문 사장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1998년 말, 제1공장인 군포공장의 한 작업장에서 처음으로 원하는 사람들만을 모아 4조 2교대제를 시범적으로 실시했다. 근로자들의 만족도와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4조 2교대제가 제대로 정착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회사는 1999년 말까지 군포와 김천공장에 이 제도를 확대 적용했다.

4조 교대제는 회사와 노조의 설득과 협의, 실험의 과정을 거쳐 유한킴벌리의 근무체제로 자리 잡았다. 이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얻게 된 가장 큰 효과는 인력 고용과 감원 예방이며, 가장 큰 수확은 바로 생산성 향상이었다. 단순히 생산량이 늘었다는 것뿐만 아니라 제품의 불량률이 줄어들고 제품의 질이 향상되었다. 이는 직원들이 생산현장에서 제품을 대하는 태도와 관련이 있으며 또한 여유시간이 많아지고 조원들끼리 어울릴 시간이 늘다 보니 팀 의식이 생겨서 조끼리 경쟁도 붙었다. 이러한 선의의 경쟁은 자연히 제품의 품질 향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한 노조 간부는 생산성 향상의 또 다른 요인은 직원들의 안정감이었다고 말한다.

유한킴벌리 직원들은 4조 교대제가 도입된 이후 예전보다 많은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갑자기 여유시간이 많아지자 처음에는 대부분 직원들이 집에 있는 것조차 불안해 할 정도였지만 이 근무체제에 익숙해지고 난 지금, 그들의 마인드는 달라졌다. 이제 바쁘게 일하느라 자기 자신과 가족까지 희생해야 했던 과거의 시스템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유한킴벌리의 새로운 근무체제는 직원들에게 그동안 빼앗겼던 가족과 개인의 일상을 되돌려 주고 있는 것이다.



희망보고서 2 한국형 조직 모델 : 육체노동자를 지식노동자로 만드는 회사

유한킴벌리의 성장과 생산성 향상의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4조 교대제를 통한 자기계발과 평생직장의 보장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교육이다. 유한킴벌리는 4조 교대제를 도입하면서 다른 기업보다 50퍼센트 정도의 인건비를 더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유한킴벌리는 이것을 지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건비는 사람에 대한 투자이며, 동시에 회사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여기고 있다.

문 사장의 꿈은 평생교육을 통해 모든 근로자들을 단순한 육체노동자가 아닌 지식노동자로 만드는 일이다. 4조 교대제 도입을 통해 평생학습조를 만들고, 이를 통해 직원들이 새로운 지식을 끊임없이 학습함으로써 단순한 육체노동자에서 지식노동자로 탈바꿈하게 만들고, 이 지식노동자들에 의해 회사와 나라가 발전하는 것이 바로 문 사장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기업과 근로자 상이다.

4조 교대제를 가장 먼저 시행한 대전공장의 근로자들은 한 달에 4일 동안 교육을 받는다. 이 중 하루는 근무일에, 나머지 3일은 휴일에 실시된다. 물론 모든 교육은 의무사항이 아니다. 근무일에 이루어지는 교육은 필수지만 휴일에 이루어지는 교육은 선택이다. 그러나 자율적인 선택교육의 참여율은 7,80퍼센트에 달한다. 교육 참여율이 이처럼 높은 이유는 교육일에 주어지는 교육수당 때문이다. 휴일에 나와서 교육을 받는 직원들에게는 150퍼센트의 특근수당이 지급된다. 사람에 대한 투자가 그만큼 현장에서의 생산성 향상으로 나타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유한킴벌리의 교육은 크게 직무교육과 교양교육으로 나뉜다. 직무교육이 전체 교육 중 60퍼센트를 차지한다. 나머지 40퍼센트는 영어회화, 컴퓨터 교육, 전시회 관람, 봉사활동 등의 교양교육으로 이루어진다. 직원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전문가들을 ‘사내교수’라는 이름으로 유한킴벌리에서는 육성하고 있다. 생산현장에서 몸소 경험한 것들을 이론에 접목시켜 교육의 효과를 높이자는 목적으로, 경험이 많은 생산직 근로자들 중에서 교수를 뽑아 직원들의 교육을 맡기고 있다. 이런 사내교수 제도 덕분에 유한킴벌리의 생산현장에는 이른바 ‘노하우’가 없다. 이 말은 경험이 많은 선배나 혹은 특정한 몇몇 사람들만이 기술이나 지식을 독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유한킴벌리는 이러한 교육제도를 구축함으로써 기계 운전과 정비 능력을 비롯해 문제해결 능력 등 다방면의 전문적인 기술을 서로 공유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소기의 성과를 창출하고 있다.

또 유한킴벌리의 교육은 강의실 안에서뿐만 아니라 생산현장에서도 수시로 이루어진다. 생산직 근로자들은 이론 교육을 통해 기계의 전반적인 성능에 대한 교육을 받는 동시에 생산현장에서 직접 기계를 조립하고 분해해 보면서 자신의 기술을 높일 수 있는 교육을 받게 된다. 직원들은 이러한 교육과정을 통해 자기가 맡은 분야에 대해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을 기르게 된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본인 스스로 기계를 정비할 수 있는 능력이다.

유한킴벌리는 이런 교육과정을 거쳐 회사가 원하는 수준까지 직원들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데 7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판단하여, 교육의 단계를 7년으로 나눠 각 단계에 맞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런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유한킴벌리 직원들은 단순한 육체노동자에서 지식노동자로 거듭나고 있다. 지식경영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본받아야 할 핵심적인 경영 핵심 패러다임이다. 유한킴벌리의 경영방식이 우리나라 기업에 훌륭한 지식경영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대표적인 벤치마킹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또 유한킴벌리 직원들이 육체노동자에서 지식노동자로 거듭나고 있다는 사실은 직원들의 업무개선 제안 건수에서도 드러난다. 군포공장의 경우, 2002년의 1인당 제안 건수가 8.1개로, 98년의 4.3개보다 무려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러한 업무개선 제안은 현장에서 일하면서 얻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 이렇게 도출된 아이디어는 현장에서 곧바로 실시되기도 하고, 좀더 복잡한 아이디어는 개발실이나 관련 부서에 정식으로 제출되기도 한다. 이렇게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분출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유한킴벌리에서 실시하는 평생학습의 효과 때문이다. 즉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꾸준한 교육을 받고 끊임없이 지식을 습득하면서 직원들은 회사 발전의 주체로 활약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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