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라인
댄 캐리슨 지음 | 미래의창
데드라인
댄 캐리슨 지음/이진원 옮김
미래의창/2003년 10월/352쪽/12,000원
로키산에 천둥소리를 낸 터너 건설
설계 프로젝트 매니저의 경험이 풍부한 설계사 테리 밀러는 "미국 미식축구리그(NFL) 스타디움은 르네상스 시대의 성당과 같죠. 일종의 공동체를 나타내는 상징이라고 할까요?“라고 말한다. ‘덴버에서 NFL 미식축구는 종교다’라고 말할 때 브롱코스팀은 덴버에서 종교 그 이상이다. 즉, 미식축구는 모든 것을 초월하는 열정인 것이다. 스포츠 오락에 관련된 프로젝트의 경우, 자금조달 과정과 허가 과정이 좀 더 복잡한 편이다. 스타디움을 지을 때 시공업체는 개인토지 소유자뿐만 아니라 지역 관계자들을 모두 상대해야 한다. 특히 후자의 경우, 프로젝트와 관련해 모두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며 프로젝트 진행 속도를 늦추거나 아예 프로젝트를 완전히 중단시킬 수도 있는 힘을 갖고 있다. 그래서 스포츠 시설을 건립할 때는 데드라인을 맞추지 못해서 발생하는 재정적인 부담이 상대적으로 훨씬 더 크다. TV 중계권과 광고, 장당 약 100달러에 팔리는 6만 장의 티켓, 엄청난 부가활동에 따라 발생하는 수익을 예상하면, 스타디움이 제 날짜에 문을 열지 못해 개막식이 하루만 늦어져도 그 손실액은 변상이 불가능한 수준에 이를 것이다.
터너 건설회사는 스포츠 스타디움을 지을 때 겪을 수 있는 이 같은 위험들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덴버 시민들에게 2001년 8월까지 새로운 NFL 스타디움을 지어주기로 계약했다. 그러나 덴버 스타디움 건설에는 다른 곳에서는 전례가 없는 어려운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었으며, 그 중 몇몇은 상당히 심각한 것들이었다.
* 공사가 시작도 하기 전에 건설 기간이 27개월로 단축되었다.
* 이번 프로젝트는 ‘설계와 건설을 동시에’ 해야 하는 일이었다.
* 목적이 다른 두 곳의 계약 발주자를 모두 만족시켜야 했다.
* 기존 스타디움 중 한 곳은 아직 철거 허가가 나지 않았고, 다른 하나도 스타디움 신축 공사가 시작된 후 1년 반이 지나서야 철거가 가능했다.
적과 파트너가 되라
이 정도 규모의 프로젝트에 미국 최대의 건설회사가 선정됐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설계회사로도 터너만큼이나 역량 있는 회사가 선정됐다. 바로 HNTB란 회사로 오클랜드 아레나, 오클랜드 스타디움, 퀄콤 파크, 자이언츠 스타디움, 애로헤드 스타디움, 폰티악 콜리세움, 켐퍼 실버돔, RCA돔, 알링턴 볼파크 등을 설계한 회사였다. 터너의 수석 부사장인 로드 미칼카는 “우리는 기존의 방법으로는 36개월이라는 촉박한 시간 내에 절대 일을 마무리지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라고 회상한다. 여기에서 ‘기존의 방법’이란 건설회사와 설계회사가 서로 적대적인 입장에서 일을 하는 방식을 말한다. 설계회사는 발주자가 원하는 대로 설계하고 발주자의 생각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이 설계가 궁극적으로 입찰에 붙여지게 되면 일반 시공회사들은 가장 적은 비용으로 발주자의 생각을 구체화할 수 있는 방법들을 내놓게 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일을 추진할 때 생기는 문제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점이었다. 설계에만 1년 반이 소요되고, 그 뒤로 건설에도 2년 이상 걸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두 회사는 설계를 하면서 동시에 스타디움을 짓는 방법을 채택함으로써 기존 방법을 썼을 때보다 6개월에서 많게는 8개월까지 단축시킬 수 있었다.
예전 같았다면 적대적 관계에 있을 뻔했던 상대와 힘을 합치는 일은 자유로우면서도 동시에 불안한 경험일 수 있다. 그러나 과거의 적을 우호세력으로 끌어들인다는 것은, 예전 같으면 싸웠을 법한 전쟁도 이미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게 만든 것이다. 물론 적과의 제휴가 가장 필요한 때는 어떤 프로젝트를 빠른 속도로 추진하면서 시간을 단축해야 할 때, 즉 양측이 데드라인을 지켜야 할 필요성을 함께 느낄 경우이다. 양측이 이에 따르는 위험에 대해 공동 책임을 지게 되면 제휴 명분이 더욱 확실해지면서 상호 신뢰와 공개의 필요성이 절실히 느껴진다.
팀이 구성되었다. 이제 시민들이 스타디움 신축을 허가해주는 일만이 남아 있었지만, 투표는 수개월 후에나 열릴 예정이었다. 터너와 HNTB는 투표 결과를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데드라인을 맞추기 위해서 그들은 투표 전날까지라도 건설을 승인받지 못한 상태로 일을 추진한 다음 투표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스타디움 계획안이 시민들의 승인을 받지 못할 경우 터너와 HNTB의 설계-건설팀은 투표 전까지 몇 달 동안 애쓴 설계와 사전 공사에 쓴 비용을 고스란히 손해볼 수도 있었다. 어떤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앞서 공식적인 승인을 기다리는 것은 신중한 일처리를 위해서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공식적인 승인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계약 조건에 대한 협상이 답보상태에 있거나 산발적으로만 진행될 수 있고, 또 일의 범위에 대해 막판에 변화가 일어날 경우 지금까지 해온 준비사항이 모두 허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로 잃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제대로만 준비한다면 위험은 크게 줄어든다. 터너가 현장에서 땅을 파는 작업을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터너의 작업은 내부적인 것이었고, 보험사는 터너가 준비하고 있는 것에 대해 충분히 보험을 들어주었다.
모든 의사 결정자들을 한 곳에 집결시켜라
터너는 자사를 포함해 미식축구 지부, 브롱코스팀, HNTB 4곳에서 각각 지명된 대표들을 한 곳에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렇게 대표들이 가까운 자리에 함께 모이는 경우에는 각자의 이익만을 내세우다가 자칫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올라가는 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의사 결정자들이 한 자리에 모일 경우는 서로 한 걸음 거리에 있기 때문에 정보의 흐름이 상당히 빨라진다. 이번 프로젝트의 경우, 향후 논란의 소지가 있는 문제들은 회의록에 일단 기록해두었다. 지체와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 건설회사와 설계회사 및 발주자 대표들은 모든 정보를 각 팀에서 지정된 한 명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달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규칙이 준수되는 이상 중복해서 일을 하는 번거로움은 피할 수 있었다. 설계와 건설을 동시에 작업을 하기로 한 중대한 결정을 제외하고, 의사 결정자들을 한데 모으기로 한 결정은 이들이 데드라인을 맞출 수 있게 된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모든 데드라인에는 그 중요성의 정도와 상관없이 전체적인 지도가 필요하다. 그런데 어떤 방법으로, 그리고 어떤 순서대로 마지막까지 가야 하는지에 대한 계획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 또 실제로 쉽게 변경이 가능해야 한다. 터너가 짠 스케줄은 앞으로 수십 개월 동안 일을 추진해나가는 과정에서 겪게 될 피할 수 없는 변수들을 고려하고 만든 ‘살아 있는 서류’이다. 터너의 스케줄 담당인 랜리 멘덴홀의 스케줄은 전체 프로젝트와 그 안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중요한 데드라인들을 표시하는 중간 목표들로 나눠진 미니 스케줄로 짜여져 있었다. 중간 목표가 위태롭게 되면 멘덴홀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다음 순서의 일들도 모두 암시적으로 위태롭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원래 속도를 되찾기 위해서 복구 스케줄이 개발되었다. 어떻게든 스케줄을 맞추는 방법 중 하나는 언제든지 스케줄을 앞당길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다.
데드라인을 유명한 프로젝트로 만들어라
브롱코스팀 신축 스타디움은 브롱코스팀 팬 일색인 지역 인부들에게도 일생일대의 기회나 다름없었다. 새 스타디움은 덴버 국제공항보다 더 유명해질 뿐 아니라 건설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존경의 대상이 될 것이 분명했다. “식별이 쉽지는 않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새 스타디움 이쪽 편에 있는 돌에는 사람 이름 약자가 새겨져 있고, 저쪽에 있는 돌에는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죠. 이름을 새긴 사람이나 구분하겠지만 아무튼 친구나 자식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죠. 스타디움 건설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누구나 그 일을 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합니다. 지금부터 몇 년 뒤 스타디움에서, 혹은 집에서 경기를 관람하면서 그들은 ‘그래 내가 지은 거야’라고 말할 수 있겠죠. 사정이 이러한데 어떻게 시간을 낭비하겠습니까?” 데드라인을 유명한 프로젝트로 만든다면, 프로젝트에 직접 관여하지 않은 사람들조차 의기양양해 하면서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회사가 맡게 된 프로젝트를 자랑할지 모른다.
거대한 회사 조직에서 얼마나 많은 직원들이 동료들의 위대한 모험에 대해 알고 지나가는지 솔직히 궁금하다. 회사의 위대한 모험에 대해서 알게 되는 직원들이 많을수록 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데드라인이 공개될수록 뛰어난 아이디어들이 제안함에 담겨진다. 직원들이 뭔가 정말로 중요한 일이 ‘진행 중에 있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들은 다른 회사에서 더 좋은 일자리를 제안받아도 관심을 덜 갖고, 자기가 다니는 회사가 회사 고객의 주식을 사게 된다. 많은 프로젝트들이 과거의 프로젝트들을 참고로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는 ‘역사적 감각’을 부여하며, 또 회사와 직원들에게 ‘역사적 감각’을 키우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해준다.
어떤 매니저도 데드라인처럼 대중적으로 공인된 도전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대다수의 위대한 기업에서처럼 현명한 매니저들은 데드라인을 위해 일하는 팀원들보다 데드라인 그 자체를 더 중요시하며, 모든 팀원들에게 적어도 프로젝트가 완료될 때까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가끔씩은 포기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둔다. 데드라인은 재원과 시간을 관리하는 능력뿐 아니라 팀원들의 성숙함도 함께 테스트하는 것이다. 어쨌든, 한시적으로라도 우선순위가 결정되면 그 순서는 바뀌어서는 안 된다. 대신 데드라인이 끝난 후 승리를 축하하는 회사와 단체 및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봉사했다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데드라인을 기꺼이 받아들여라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일을 마치는 날과 일을 시작하는 날이 상당히 유사합니다. 똑같이 일의 마지막 날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달리 생각해봅시다. 일을 끝내는 날은 축하를 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첫날과 반대로 즐거움의 시간인 것이죠. 이런 사실을 깨닫는다면 데드라인이 우리의 친구라는 것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데드라인은 우리를 최대한 빨리 그런 기쁨의 순간으로 데려다놓기 때문이죠. 제가 데드라인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데드라인을 무서워한다면 보험 상품을 팔러 다니는 편이 더 나을 겁니다.”
실제로 데드라인은 우리에게 축하와 승리의 기쁨을 준다. 데드라인은 우리 경력의 하이라이트가 되기도 한다. 축하의 순간이 되면, 처음에는 이런 힘든 프로젝트에 참가하지 않게 된 자신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 동료 직원들조차도 ‘나도 참가했었더라면’하고 아쉬워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터너 건설에는 소극적인 사람이 거의 없었다. 업계 1위로서 유명하고 가장 인정받는 프로젝트들을 맡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데드라인을 최우선에 두는 기업 문화를 만든 터너는 업계에서 가장 추앙받는 건설 경영팀을 개발할 수 있었다.
미국 영화배급산업의 스타, 에어본 익스프레스
제작이나 배급이 큰 관건이라 할 수 있는 영화산업은 데드라인을 지키는 문제에 있어 가장 무자비한 산업 중 하나이다. 1930~50년대의 할리우드의 황금시대부터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단 하나의 영화배급 서비스 회사가 줄곧 스튜디오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영화산업을 독점해왔다. 따라서 돈독한 관계가 중시되는 영화산업에서 이 ‘국립영화서비스(NFS)'와 경쟁을 벌이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NFS는 모든 영화들을 미국에 배급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에 ’테크니컬러(Technicolor)'라는 필름 복사 연구소는 영화 배급산업에 변화를 일으키기로 결정했다.
테크니컬러는 믿을 만한 전국 배송서비스가 필요하다고 판단, UPS와 페덱스에 접근했다. 그러나 두 회사는 그의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 테크니컬러의 급진적인 생각을 현실로 만든 것은, 국제적인 수송 및 물류 운송 업체 에어본 익스프레스(Airborne Express)였다. 그러나 이 회사조차도 당시에는 테크니컬러의 프로젝트를 납득하기 어려웠다. 테크니컬러의 데드라인은 간단히 말해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NFS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테크니컬러와 에어본 익스프레스가 시장점유율을 70% 가까이 끌어올리는 데 7년이 채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데드라인
테크니컬러는 20세기에 걸맞는 영화배급 체제를 갖추고 싶었다. NFS는 영화 필름을 넘겼다는 인수증을 쓰는 것이 전부였지만, 테크니컬러는 재고관리, 위치추적, 송장처리 등을 통합시킨 최신 온라인 시스템을 사용하겠다고 스튜디오들에게 약속했다. 테크니컬러는 새로운 비전을 갖고 있었지만, 대신 NFS는 구식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테크니컬러에 없는 본부와 트럭과 운전사를 갖고 있었다. 따라서 테크니컬러는 자체 비전을 현실화하기 위해 UPS나 페덱스 같은 인프라가 필요했다. 특송 업계 1위와 2위인 UPS와 페덱스가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테크니컬러는 3위 업체인 에어본 익스프레스로 눈을 돌렸다.
에어본은 자체 비행기를 갖고 운영하는 최초의 특송 업체였으며, 당일이나 다음 비행편 배달서비스를 최초로 제공한 회사였다. 에어본은 유연성 면에서도 업계 1위였다. UPS나 페덱스보다 규모가 작기 때문에 기업고객들과 특별 수송 계약을 체결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럴 능력도 있었으며, 이미 IBM, 컴팩,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제록스, 월마트, 푸르덴셜 등 많은 기업들이 요구하는 특별 취급 계약을 체결한 상태였다. 에어본의 시각에서 볼 때 다음과 같은 테크니컬러의 요구사항은 거의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 당시 에어본은 오전에 4시간 동안 주요 지역에 배달을 마쳤다. 테크니컬러는 에어본에게 2시간 내에 전국 수천 곳의 극장에 동시에 배달해줄 것을 요청했다.․ 에어본은 당연히 원래 정해진 장소로 배달하면 될 것으로 생각했으나, 스튜디오들은 극장 A로의 배달을 극장 B로 바꾸는 식으로 마지막 순간에 배송지를 바꿀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극장들도 다른 영화를 상영하기로 선택하면, 막판에 취소할 수 있었다.․ 에어본은 ‘최종 수요자까지의 배달’이라는 하나의 데드라인만을 생각했으나 테크니컬러는 세 가지 데드라인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첫째는 테크니컬러 연구소로부터 아직 완공되지 않은 두 곳의 배급 센터까지 프린트를 운반하는 일이었고, 둘째는 배급 센터로부터 전국 수천 곳의 극장으로 동시에 필름통을 배달하는 것이었으며, 셋째는 배급 센터로 정확한 시간에 프린트를 회수해오는 일이었다.
처음이자 가장 극적인 데드라인은 테크니컬러와 에어본 사이의 합의 그 자체였다. 에어본 경영진도 테크니컬러만큼이나 계약을 맺어야 할 이유가 분명했다. 테크니컬러와의 계약이 실패한다면 기회는 영원히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몇 년 만 지나면 에어본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평정하게 될 기회가 올 것으로 믿고 있는 경영진은 테크니컬러의 경영진만큼이나 이번 계약을 절실히 원했다. 양측의 계약은 에어본의 당시 부사장이나 에어본 물류 서비스의 총책을 맡았던 켄 맥쿰버와 테크니컬러의 새 비즈니스 개발 국장인 로렌 닐슨 두 사람의 상호 신뢰가 없었더라면 실패했을지 모른다.
위험을 받아들이는 문화를 만들자
에어본은 이렇게 위험한 사업을 위해 대규모 자금을 준비해둘 만큼 돈이 많은 회사는 아니었다. 비록 구두쇠적인 기업 문화를 갖고 있었지만 에어본의 경영진은 실패할 경우 조직으로부터 비난을 받게 된다는 두려움 없이 이 위험한 사업에 참여할 것을 결정했다. 에어본과 테크니컬러의 계약은 에어본이 스스로의 능력을 증명해 보이기 전에 체결됐다. 이것은 에어본에 대한 테크니컬러의 신뢰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케 해준다. 경영학 사례 연구의 관점에 테크니컬러와 에어본의 합작 벤처를 보면, 에어본은 마땅한 대비책도 없이 지속적으로 2시간 내로 수천 개의 필름을 배달하라는 테크니컬러의 도전을 받아들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