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렁청진 지음 | 더난출판
춘추전국시대의 종횡가는 학파의 명칭이 아니라 독특한 모사들의 무리였다. 소진과 장의는 당시는 물론 중국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종횡가였다. 전국시대 후기의 역사를 바라보면 당시의 국제관계가 이 두 사람의 언변에 의해 좌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소진의 ‘합종’으로, 나중에는 장의의 ‘연횡’으로 전국 칠웅을 마치 장기판의 장기알처럼 마음대로 가지고 놀았던 것이다.
소진은 먼저 진나라로 가서 혜왕에게 편지를 올렸다. “대왕의 나라는 진실로 땅이 비옥하고 백성들의 생활도 넉넉합니다. 만 량의 전차가 있고 백만의 군사가 있는 데다가 기름진 들판이 천 리나 이어져 있고 지세는 험하면서도 아주 편리합니다. 이는 천하를 지배할 나라로서 충분한 자격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대왕께서는 청컨대 제 소견을 들어주시어 천하를 장악하고 통치하십시오.”
소진이 이처럼 거시적인 배경을 설명했지만 진왕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했다. 그는 다른 나라에서 온 유세객을 그리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었으며, 근본적으로는 아직 시기가 무르익지 않았고, 소진이 한 얘기가 너무나 일반적이어서 구체적인 방법이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혜왕이 답장을 써서 말했다. “우리 진나라는 아직 선생의 의견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소!”
소진은 1년 넘게 진나라에 머물면서 10여 차례 연달아 서찰을 올려봤지만 진왕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소진은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소진은 권모지술을 전문적으로 서술한 책들을 공부하기 시작하였는데 특히 강태공의 병서 『음부(陰符)』는 암송하기까지 했다. 1년간의 고된 독서와 심리분석을 통해 여러 분야에서 능력을 향상시킨 소진은 이번에는 합종으로 진에 대항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기회를 얻어 연나라 궁중에서 자신의 생각을 펼칠 수 있었다. “연나라는 결코 큰 나라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영토는 2천 5백 리에 불과하고 군사력도 겨우 병거 6백 량에 기병 6천, 그리고 보병 10만 여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남쪽에 있는 제나라, 서쪽에 있는 조나라는 국력이 막강한데도 전란이 끊이지 않는 반면, 연나라만은 평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언지 아십니까? 서쪽 조나라가 강력한 진나라를 막아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연나라는 조와 외교가 없고 오히려 진과 연맹을 맺고 있는데, 이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우선 진과 절교하고 모두가 연합하여 진에 대항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고 바람직한 전략입니다.”
문공은 소진의 견해에 공감하긴 했지만 각 국의 생각이 과연 일치할 지가 염려되었다. 이에 소진은 자신이 직접 나서서 각 국을 연합시키겠다고 하였다. 이리하여 소진은 조나라로 가서 제후들을 한 자리에 모아 동맹을 맺고 6국이 힘을 합쳐 진에 대항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하여 조의 숙후에게 환영을 받았다.
당시의 급박한 정세 덕분에 한과 위, 제와 초 네 나라가 합종을 통해 진에 대항하는 데 순순히 동의하면서 소진의 유세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 결국 연, 한, 제, 위, 초, 조 여섯 나라는 혈맹을 맺고 형제가 되어 서로를 도우면서 진에 대항하기로 약속했다. 아울러 소진을 종약장으로 삼고, 6국의 상인을 걸어주어 합종의 임무를 전담케 했다.
진 왕은 6국이 합종의 동맹을 맺었다는 소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며, 이에 조나라를 공격하고자 했다. 조가 바로 합종을 발기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의가 황급히 나서서 반대했다. 6국이 방금 합종한 상태라 힘으로 제압하는 것은 너무 무모하고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일국을 공격하면 나머지 다섯 나라가 합세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문제가 더 심각해질 터이니 차라리 먼저 한두 나라를 설득하여 동맹에서 탈퇴하게 한 다음 나머지 나라들도 서서히 탈퇴시켜 동맹을 해체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장의의 책략이었다.
“먼저 위나라에서 받은 성들 가운데 몇 개를 반환하십시오. 그러면 위나라가 감격해 마지않을 것이고 다른 나라들은 이를 부러워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대왕의 따님을 연나라에 출가시켜 사돈을 맺으십시오. 그렇게 되면 6국의 합종책은 저절로 깨지고 말 것입니다.” 장의의 이러한 계책은 한편으로는 진 왕의 신임을 얻고, 다른 한편으로는 진이 조를 공격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소진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었다.
진 왕은 장의의 계획을 그대로 실행에 옮겼고 과연 연과 위는 진과 외교를 맺게 되었다. 성질이 급한 조나라 왕은 즉시 소진을 보내 연나라를 문책했다. 소진은 6국의 합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력 균형이며, 힘의 균형이 깨질 경우 합종은 오래 유지되기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소진은 연 왕과 의논하여 제나라로 건너가서는 겉으로 제나라를 위하는 것처럼 하면서 속으로는 연을 위해 힘쓰고자 했으나 이를 꿰뚫어본 전문(田文)이라는 신하가 보낸 자객에 의해 살해되고 말았다.
소진이 죽자 합종의 맹약은 더욱 빠른 속도로 와해되어 갔다. 특히 소진이 연을 위해 제를 약화시키려 했다는 소문이 전해지자 제와 연 사이에 갈등이 증폭되었다. 이때부터 합종을 해체하고 연횡을 이루는 것이 진의 가장 큰 외교 목표가 되었다. 진은 장의를 재상으로 중용해 연횡의 업무를 전담하게 했다.큰일을 할 인재는 따로 있다
진퇴가 자유로웠던 영재 - 한신과 장량주아부는 병법에 통달했고 군을 통솔하는 능력이 뛰어난 명장이었지만 황제와 황실 인척들의 뜻을 헤아리지 못해 굶어죽는 비참한 최후를 맞고 말았다. 한 문제 2년(BC 162), 주아부는 조후에 봉해졌고, 3년 전에는 하내 군수가 되었다. 문무를 겸비한 그는 민정과 군사 업무를 관장하는 최고 장관인 하내 군수로 부임하여 임기 동안 문무 양방으로 커다란 공적을 세웠고, 개인적으로도 군정사무 각 분야에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한 문제는 매우 검소하고 신중한 성품을 지닌 황제로서 중국 역사상 보기 드문 성군이었다. 국방에 신중을 기하기 위해 그는 직접 서군과 북군을 시찰했는데, 가는 곳마다 군대가 달려 나와 영접했다. 문제는 이럴 때 흉노가 기습해오면 어떻게 대적하겠느냐고 그들을 심하게 질책했다. 하지만 주아부의 군대를 방문했을 때는 상황이 전혀 달랐다. 문제 일행이 주아부가 주둔하고 있는 세류에 도착해보니 군사들은 모두 갑옷을 입고 날카로운 창과 활을 들고서는 황제의 행렬을 가로막았다.
황제의 수레를 책임지는 자가 “천자의 수레가 도착했다.”고 외쳤으나 영문의 출입을 책임지는 군사는 “장군의 명령을 들은 바 없기 때문에 문을 열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하는 수 없이 문제가 사람을 주아부에게 보내 “황제께서 친히 병사들을 위로하고자 안다.”고 말하자 그제야 주야부는 명령을 내려 영문을 열게 했다.
황제가 영내로 들어왔는데도 주아부는 무릎을 꿇어 예를 갖추지 않고, 문제를 향해 간단히 읍을 하면서 “갑옷을 입은 상태라 엎드려 절을 올리지 못하니 군중의 예로 대신 하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비로소 주아부의 투철한 군인 정신에 감동하여 표정을 누그러뜨리면서 장수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주아부에게 칭찬과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사실 문제는 주아부가 국가와 군주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의 태도가 너무도 지나쳐 내심 황제의 존엄에 손상을 입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결국 자존심이 상했던 문제는 주아부를 중용할 수는 있어도 그를 좋아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국가 대사를 고려하여 임종을 맞이하여서는 태자에게 “장차 나라에 큰 어려움이 발생하면 주아부에게 중임을 맡기도록 하거라.”고 유언하였다.한 경제 초년에 오와 초 등 7국이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위기가 닥치자 경제는 문제의 유언에 따라 주아부를 태위에 임명하여 군대를 이끌고 나가 반군을 진압하게 했다. 과연 주아부는 경제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출병한 지 3개월 만에 오와 초의 반군을 평정하고 나머지 다섯 나라의 군대도 괴멸시킴으로써 7국의 난은 완전히 평정되었다.
경제는 7국의 반란을 평정한 주아부를 중용하게 되었고, 경제 전원 7년에 주아부는 문관의 최고 관직인 승상이 되었다. 하지만 승상은 조금만 잘못해도 함정에 빠지거나 심지어 주살당할 수 있는 위험이 뒤따르는 자리이기도 했다. 주아부 같은 성격으로는 애당초 오래 보전하기 어려운 직책이었다. 가장 먼저 주아부를 골치 아프게 한 인물은 양왕 유무였다.
주아부가 반란을 평정할 당시 오초 연합군은 양왕을 공격하고 있었는데 위기에 처한 양왕은 한 경제에게 구원을 요청했고, 경제는 주아부에게 양왕을 지원하도록 명령했었다. 그러나 주아부는 전략상 양왕을 지원하는 것보다는 오초 연합군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고는 양왕을 내버려둔 채 오초 연합군의 보급로를 공격하였는데 이때 양왕과는 원수가 되고 말았다. 양왕은 매번 조회가 있을 때마다 태후에게 주아부에 대해 언급하면서 중상과 모함을 일삼았다.
경제는 장자 유영을 황태자로 봉하였으나 그의 모친에 대한 총애가 사라지자, 왕황후의 아들인 유철을 태자로 교체하게 되었다. 주아부는 태자에게 과실이 없는 한 마음대로 태자를 폐하고 세우다가는 큰 혼란이 생길 것이라며 반대했다. 성품이 강직하고 권모술수를 모르는 주아부는 고집스럽게 경제에게 맞섰으나, 경제는 태자를 폐하고 세우는 문제는 자신의 가정사인 만큼 다른 사람의 간섭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결국 주아부의 지나치게 강경한 성격이 황제로 하여금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하였던 것이다.
경제 중원 3년, 태후는 경제에게 왕황후의 오빠인 왕신을 제후에 봉해줄 것을 요구했다. 외척을 제후에 봉하는 것은 전례가 없던 일이라 경제는 주아부가 동의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고 예상하고 먼저 그를 찾아갔다. 과연 주아부는 단호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고조 황제께서는 유씨가 아닌 자가 왕이 되거나 공적이 없는 자가 제후에 봉해지면 천하가 함께 이를 공격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경제는 주아부의 반대에 크게 격분했지만 신하들 앞에서 내색하지 못하고 묵묵히 속으로 분을 삭였다. 주아부는 왕신을 제후에 봉하는 일을 저지하긴 했지만 이때부터 경제와 갈등이 깊어졌고 왕신에게도 커다란 미움을 사게 되었다. 그리하여 서로 사이가 좋았던 양왕과 왕신은 손을 잡고 주아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흉노의 여섯 부락 수장들이 투항해왔다. 경제는 몹시 기뻐하며 이들을 모두 열후에 봉했다. 그 가운데 ‘타인’이라는 자는 이전에 흉노에 투항했던 한나라 장수 노관의 손자였다. 주아부는 노타인을 열후에 봉해선 안 된다고 판단하고는 경제에게 말했다. “그의 조상은 한조를 배반하고 흉노에 투항했는데, 지금은 다시 흉노를 배반하고 한조에 투항하려고 합니다. 그를 열후에 봉한다면 신하로서 군주에게 불충했던 책임을 어떻게 물으시겠습니까?”
그러나 이번에는 경제의 반응이 전과 달랐다. 경제는 주아부의 건의를 묵살하고 여섯 사람을 전부 열후에 봉했다. 사실 주아부의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는 단정하기 어렵지만, 경제가 그의 주장을 단호하게 거절한 것은 그의 뜻대로 해서는 안 되겠다는 경계심이 작용한 결과였다. 주아부는 경제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자 사직 의사를 밝혔고 경제도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사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가 비록 황제의 미움을 사긴 했지만 적지 않은 공로와 위세와 명망이 있었기 때문에 경제는 그에 대해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주아부가 아들에게 자신의 장례 집기 등을 준비시킨 것이 화근이 되었다. 그의 아들은 호상에 사용하기 위해 5백 벌의 갑옷과 방패, 목재를 다량으로 구입했는데, 이것이 모반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이를 구실로 경제는 주아부를 당장 심문하라고 지시했다.
주아부는 투옥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아들이 장례 준비를 그처럼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문관이 물었다. “왜 모반을 획책했는가?” “내 아들이 사들인 물건은 모두 장례에 쓰기 위한 것인데 어찌 모반을 운운하는 것이오?” 심문관도 할 말이 없었지만, 그는 경제가 주아부를 죽이기를 바라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억지로 꼬투리를 잡아야 했다. 결국 그는 어이없는 억지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그대는 죽어서 모반하려 했던 것이 분명하다!” 주아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결국 닷새 동안 음식을 거부하다가 굶어죽고 말았다. 일대 명장의 안타까운 최후였다.
주아부가 간파하지 못했던 것은 국가와 군주가 별개라는 사실이다. 국가는 공적인 존재이지만 군주는 사적인 존재이다. 군주에 대한 충성이 반드시 애국인 것도 아니고, 애국이 반드시 군주에 대한 충성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예컨대 군주의 사욕을 희생시키면서 국가의 복리를 실현하려 할 경우 대부분 커다란 좌절과 함께 개인적 보복을 당했다. 결국 아무리 훌륭한 정책이라 하더라도 군주의 사욕을 합리화시킬 수 있을 때에만 정책으로 빛을 발할 수 있었다는 것을 주아부는 몰랐던 것이다.개국 초기에 유방은 한신을 비롯한 여러 장수들과 함께 장군들의 능력에 관해 논했다. 유방이 한신에게 말했다. “장군은 내가 백만 대군을 거느릴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한신이 망설임 없이 불가능하다고 대답하자 유방이 다시 물었다. “그럼 10만 대군은 어떨 것 같소?” “그것도 어렵습니다.” 유방은 화를 버럭 내며 따졌다. “그렇다면 내가 어느 정도의 병력을 통솔할 수 있다는 것이오?” “폐하께서는 1만이면 족합니다.”
“그럼 한 장군은 어느 정도의 병력을 이끌 수 있소?” 한신은 전혀 미안한 기색 없이 대답했다. “제게는 병력이 얼마나 되든지 문제될 게 없습니다. 많을수록 좋지요.” 유방은 노기를 띤 채 재차 따져 물었다. “그렇다면 병력을 다스릴 줄 모르는 나는 황제가 되었는데 병력을 잘 이끄는 그대는 왜 겨우 장군에 머무른 것이오?” “그야 당연하지요. 저는 병사들을 잘 통솔하지만 폐하께서는 장군들을 잘 통솔하시니까요.” 그제야 유방의 화가 풀렸다.
중국의 역대 통치자들은 인재를 모으는 데 주력했고, 인재의 수에 따라 자신의 덕행 유무를 판단하곤 했다. 하지만 인재를 식별하는 능력은 역시 지모에 있었다. 사람을 얻는 것은 덕에 달려 있지만, 사람을 알아보는 것은 지에 달려 있었다. 사람을 모을 줄만 알고 알아볼 줄 모른다면 평범한 인재에 불과하고, 사람을 알아볼 줄은 알아도 모을 줄 모른다면 쓸 만한 인재는 전부 다른 사람의 차지가 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사람을 모으는 것과 알아보는 것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진정한 지자(智者)는 맹목적인 교조에 빠지지 않고 세태에 따라서 기민하게 움직일 줄 아는 사람이다. 한나라의 장량이 바로 이런 인물이었다. 유방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장량의 분석과 예측 덕분이었다. 장량이 없었더라면 유방은 항우에게 패했을 것이 분명하다.
장량은 몸이 허약해 항상 병을 달고 다녔다. 때문에 단독으로 병력을 통솔하지 못하고 항상 모사로서의 역할만 충실히 수행했다. 한번은 항우가 유방을 형양에 가둔 채 겹겹이 포위하자 다급해진 유방은 여식기와 함께 초나라의 힘을 약화시킬 방법을 상의했다. 여식기가 말했다. “지금 진 왕조가 잔학 무도해져서 6국을 멸하자 6국의 후예들이 설 땅이 없어졌습니다. 만일 폐하께서 6국의 후손들을 다시 왕으로 봉하신다면 이들은 기꺼이 폐하의 신하가 되기를 자원할 것입니다. 각 제후들 사이에 폐하의 덕이 칭송되면 폐하께서는 서남 지역의 패자가 되실 것이며, 초나라도 예를 갖춰 폐하를 배알하게 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