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드러커
존 플래허티 지음 | 예지
피터 드러커
존 플래허티 지음/송경모 옮김
예지/2002년 12월/562쪽/27,000원
1부 경영정신의 형성
드러터는 초등학교 시절 훌륭한 교사 두 사람을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한 사람은 아주 엄한 교사였는데, 드러커의 기본 문장력을 길러 주었고, 다른 한 사람은 아주 온화하고 친절한 여교사였는데, 전통적으로 강조해 오던 정형화된 기법과 딱딱한 학문적 관행을 무시하고, 개성의 발현을 통해 상상력과 개념적 사고능력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드러커를 북돋아 주었다.
드러커는 고등학교 교육의 그 막힐 듯한 억압의 분위기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지만, 진정한 교육기회는 학교 밖에서 찾았다. 드러커는 자식된 도리를 다하려고 학교에서는 그럭저럭 좋은 성적을 내기는 했지만, 그의 학문적 수업의 진정한 원천은 어디까지나 독학이었다. 그는 문학에 대한 취미와 역사에 대한 감각이 있었기 때문에 매일같이 어려운 책들을 읽곤 했다.
드러커가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대학의 전통적인 전공 분야(법학, 정치학, 사회학, 경제학 등)를 택했더라면 아마 그의 부모님은 매우 기뻐했을 것이다. 그러나 드러커는 대학에 가는 것은 청년기를 연장하는 구실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의 지적 관심이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한 분야의 학문에 전문적으로 몰두하기가 어려웠다는 이유로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전 생애를 통해서 단 하나의 직업을 유지한다는 것은 드러커에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로 규정되는 것을 거부했다. 평론가들은 그를 저널리스트, 정치과학자, 경제학자, 통계학자, 역사가, 철학자, 예술비평가, 교사, 비즈니스 컨설턴트라는 다양한 범주로 분류했다. 그는 새로운 기회에 대응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뭔가를 배워야 할 필요성을 항상 언급했다.
드러커는 17살의 나이에 함부르크의 한 상점에 견습사원으로 처음 취직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얻은 직장은 조그만 은행의 증권 애널리스트 자리였다. 그 후, 당시 유력 신문이었던 「프랑크푸르트 게네랄 안차이거」의 금융 담당 기자로 취업할 수 있었으며, 비즈니스와 해외소식을 담당하는 선임 편집위원으로 승진하였다. 드러커는 신문사 일을 하면서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의 법학과정에 등록하여 지적 능력을 더욱 계발해 나갔다.
1930년대에 들어 히틀러가 등장하면서 드러커의 주변 환경도 급격히 변하기 시작했다. 전체주의를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드러커는 자유의 가치를 추앙하는 사회로 이주할 것을 깊이 고려했다. 그로 하여금 이민을 하도록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발단은, 당시 베를린 대학의 철학교수로서 헤겔의 계승자로 알려진, 프리드리히 율리우스 슈타알에 관한 연구 논문을 출간한 데서 비롯된다.
드러커가 슈타알의 여러 정치학적 개념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동의했는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지만, 드러커의 정치사상은 슈타알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강화되었다는 사실은 비교적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정치사상가로서 드러커의 모습이 보수적 혁신가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은 바로 슈타알로부터 받은 영향에 연유한다. 드러커는 1933년에 영국으로 건너가서 한 소규모 상업은행의 사무직원으로 취직했다. 1936년에 파트너의 지위까지 올랐지만 그는 미련 없이 그곳을 떠났다. 은행업무라는 것이 드러커의 지적 재충전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1937년 드러커는 도리스 규미츠와 결혼하였으며, 결혼 후 영국 신문의 프리랜서 통신원 일을 하게 되었는데, 주로 하는 일은 미국의 경제적 이슈, 정치동향, 사회현상 그리고 고등교육 현황에 관하여 기사를 쓰는 것이었다. 드러커는 그러한 일을 하면서 미국을 그의 영원한 고향으로 삼기로 하고 결국은 미국의 시민이 되었다.
드러커는 여간해서는 정규직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의 관심분야가 너무 다방면에 걸쳐 있었고, 열정 또한 끝이 없었기 때문에 기질적으로 어느 한 전문직에 눌러앉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남을 가르치는 일에 대해서는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1939년 새러 로렌스 칼리지의 전임강사가 되면서, 그 이후로 오늘날까지 베닝턴, 뉴욕 대학교, 그리고 클레어먼트 칼리지에서 정규 교수직을 맡아 왔다.
학계에서 드러커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일종의 아이러니를 느낄 수 있다. 드러커가 현대 경영원리의 기반을 닦은 인물로 이미 인정받았고, 수십 년에 걸쳐 경이로운 학문적 성과를 내놓았으며,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스탠포드 같은 명문대학에서 교수직을 제의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어떤 사람들은 드러커를 저널리스트로 간주하고 있다.
2부 현대 경영의 발견
산업인의 미래
대기업의 경제적 지배력과 세력 확산을 인지한 사람은 드러커가 처음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대기업의 비경제적인 특성이 외부 사회와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고 거기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분석한 것은 드러커가 최초였다. 그는 현대의 대기업이 과거의 어느 사회적, 정치적 조직과도 구별되는 전례 없는 제도적 현상이라고 보았다.
드러커에 따르면, 현대의 대기업은 새로운 사회질서를 대표하는 상징적 제도였다. 20세기의 대기업들이 축적한 막대한 권력이야말로 드러커가 기업의 정당성을 분석하는 출발점이었다. 드러커는 대기업의 경제력이 끼친 사상 유례없는 영향력을 인정하면서, 당시 대기업들이 정치세력보다 더 많은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드러커는 “정당성이 결여된 사회적 권력은 절대로 지속될 수 없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했다. 기업의 권력은 정당한가? 만일 기업경영이 그 정당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기업의 권력은 부패하고 타락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산업사회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자본주의 사회는 거의 전체주의에 가까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분열될 것이다.
재화와 일자리와 부를 창출해야 할 경제적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기업에게는 경제적 권력이 필요하다. 거기에 덧붙여, 기업은 직원의 생계를 조정하고 고용의 규율을 정립한다는 면에서 정치적 권력도 필요하다. 끝으로 근로자들에게 사회적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사회적 권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 세 가지 서로 다른 차원에서 구사해야 할 권력이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한 조직이 이런 세 가지 영역의 권력을 어떤 식으로 적절히 조화롭게 구사할 수 있을 것인가는 드러커에게도 아직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드러커는 기업의 정당성 문제에 대해 정확한 해답을 찾지 못했음을 솔직히 고백했다.
드러커는 만일 기업이 단 하나의 목적만을 지닌 경제조직이라면 직원 복지를 증진시켜야 하는 의무라든지 주변사회에 미치는 환경적 악영향 같은 문제로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런 입장을 견지한다면 기업은 사회를 병들게 하면서 자신만은 경제적으로 좋은 성과를 내는 주체가 되고 만다. 그러나 이런 입장은 기업의 장기적인 생존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모순될 뿐 아니라 용인될 수도 없는 것이었다.
한편, 정신적 불안과 노동자의 소외를 막기 위해 경영자들은 노동자의 지위와 역할을 정해줄 책임이 있었다. 노동자의 지위와 역할을 인식한다는 것은 직원들이 산업사회의 시민으로서 인정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자가 사회체제상 진정한 근거를 갖추지 못한 상태로 기업조직 내에서 활동한다면, 거기에 사회는 없고, 아무 목적 없이 우주를 배회하는 사회적 원자들의 덩어리만 있을 뿐이다.
드러커는 노동자의 지위와 역할을 개선할 수 있는 처방으로 기업 내 자율성을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노동자가 노동조건 전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노동규정, 안전상황, 휴가계획 수립, 그리고 그 밖의 문제들에 대해서 권위를 부여받을 수 있다면 노동자의 자존심과 존엄성은 향상될 것이다.
기업의 개념
드러커는 GM의 홍보 담당 부사장이었던 폴 개럿으로부터 GM의 기업 지배구조와 관리운영 실태를 정밀하게 분석, 연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드러커는 GM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는데, 그것은 유명 대기업에 대해 경영분석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을 뿐 아니라 가장 성공한 세계 최대의 제조업체의 제안이었기 때문이다.
드러커는 GM이 이익의 실현, 엔지니어링 능력, 그리고 재무적 방법론과 같은 영역에서 거둔 탁월한 성과가 그 회사로 하여금 세계 최대의 제조기업이 될 수 있도록 기능한 핵심적 요소이지만, 그 밖에 여타 기업들에서 발견할 수 없는 두 가지의 남다른 특성을 갖추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것은 바로 연방분권화와 우수한 경영진이라는 것이었다.
GM은 조직구조의 설계방식으로 연방분권화의 원리를 채택했다. 이 개념에 따르자면 우선 최고경영자는 기업의 비전과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그리고 각각의 자율적인 경영진을 갖추고 있는 전국의 수많은 지사들은 회사 전체의 성과에 책임 있게 기여해야 한다. 중앙의 지휘통제와 지사의 권위 및 참여적 의사결정이라는 두 가지가 잘 결합되면 몇 가지 큰 장점을 낳을 수 있다.
첫째, 기업은 전체 규모를 통해 누리는 편익을 상실하지 않으면서도 자율적 운영단위의 유지를 통해 크기에서 오는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둘째, 경영자가 기업의 지배자가 아니라 봉사자가 되게 함으로써 기업 정권의 순기능적 형태를 발전시킨다. 셋째, GM의 기술구조가 비교적 단순했고 집중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연방분권화는 그 회사에 특별히 더 잘 부합됐다.
한편, 알프레드 슬로언이 GM의 최고경영자로 취임할 무렵 그 회사는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경영진도 외곬들로 구성된 오합지졸에 불과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카레이서 출신이기도 했다. 슬로언은 개성이 독특하고 자기 분야의 특기를 갖춘 핵심 인력 5명을 선별해서 경영진을 재구성했다.
슬로언은 의사결정과 관련된 두 가지 분야에서 드러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중 하나는 인재를 고르는 탁월한 능력이었다. 슬로언은 인사정책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는데, 그 이유는 그릇된 의사결정을 한번 내리면 회복이 지극히 어려울 뿐 아니라 회사 역시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입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슬로언의 의사결정 과정에 나타나는 비범한 면모 중 다른 한 가지는, 하나의 사업계획을 제안할 때 가능한 대안들을 함께 제안할 것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슬로언은 다양한 대안들을 깊이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하게 합의된 사항은 실질적인 의사결정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위험을 감수하는 의사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슬로언은 우선 가능한 여러 대안을 충분히 숙고하기를 원했다.
드러커는 GM에 대하여 두 가지 차원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하나는 기업의 정당성의 원천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외부적 사건에 대한 경영자의 자세였다. GM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막대한 권력의 정당성을 주로 자신의 탁월한 경제적 성과가 사회에 기여하는 정도를 가지고 합리화했다. 드러커는 이런 식으로는 당시 사회의 최대 자율조직이었던 법인기업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에는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기업은 정치적, 사회적 영역에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필요가 있다. 첫째, 기업은 정치적 영역의 행동주체로서 노동자의 직업 안정성에 대한 통제권을 쥐고 있다. 둘째, 기업은 노동자가 소속 기업으로부터 받는 대우에 책임을 져야 하며, 기업의 행동이 주변 환경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한다. 드러커는 깊이 병들어 있는 사회에서 기업은 결코 건강한 조직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경제적 차원에서의 이윤 창출 이상의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3부 전략과 기업가 정신
변화경영
드러커는 기업의 초기 성공에 필요한 요소들이 미래에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조직의 갱신이라는 정치학의 원리를 현대의 기업체에 적용했다. 생존을 유지하기 원하는 경영조직은 오늘은 존재를 추구하지만 내일은 변화를 추구해야만 한다.
변화에 대한 체계적 대처의 중요성을 지적하기는 쉽지만, 그 실행 프로그램을 구체화시키는 일은 매우 어렵다. 드러커는 기업의 미래, 즉 기정사실은 없고 예상으로만 가득 찬 영역과 맞닥뜨릴 때 피해갈 수 없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예리하게 간파하고 있었다.
경영자는 그들의 기업을 이끌고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망망대해를 해도(海圖) 없이 항해할 수밖에 없다. 항해 도중에 기업은 경쟁의 격랑, 소비자 수요의 예측이라는 재난, 예상치 않은 사회․경제적 돌풍, 앞이 안 보이는 기술혁신의 안개 속에서 전략을 수립해야 하며, 그리고 폭풍이 몰아칠 위급상황에 대비해서 선원들을 훈련시켜야 하는 과제 등을 수행해 나가야 한다.
변화를 체계적으로 경영하는 방법론의 하나로서 하나의 패러다임을 구상해 볼 수 있다. 드러커에 의하면, 자유기업은 세 개의 시간영역인 과거, 현재, 미래 속에 동시적으로 존재한다. 이 세 가지 차원에서 기업은 각각 전통적, 이행적 그리고 변형적이라는 변화를 모색하게 된다.
현재 주변 기업에서 볼 수 있는 전통적 경영형태는 주로 사고의 경직성, 수동적인 업무처리, 그리고 현상유지 선호 심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드러커에 따르면, 모든 사업체가 과거의 결정을 고수하고 변화의 여지를 차단한 결과, 온통 비효율성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한다. 따라서 미래의 사업기회에 자원을 투입하고 변화를 장려하기 위해서는 비생산적인 성과부문에서 생산적인 성과부문으로 자원을 이동시키는 방향으로 운영의 초점이 바뀌어야 한다.
이행적 사업의 운영기조는 새로운 사업기회에 대한 적응이다. 본질적으로 여기에는 아직 충족되지 못한 고객 욕구의 충족과 새로운 고객의 창출이 포함된다. 경영자는 이행적 사업의 단계에서 처음으로 미래의 문제와 대면하게 되므로, 전통적 사업의 경우에 비하여 이행적 사업에 적용할 원칙과 기법은 아직도 부족하다 하겠다.
한편, 드러커는 변형적 사업의 특성을 주의 깊게 분석했다. 이행적 사업에 필요한 정보가 개략적인 상태로 존재한다면, 변형적 사업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정보는 사실상 전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드러커는 완전히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서는 시장조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완전히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에 바탕을 두고 제대로 계획된 변화를 가져오려면, 본질적으로 기업가는 상상 가능한 미래의 모습을 설정한 다음 거꾸로 그 비전에 맞추어 현재를 만들어 가야 한다.
혁신은 단순한 개선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에 이행적 사업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변형적 사업의 성공도 선형으로 발전해 가는 환경에 잠복한 불연속 또는 단절을 얼마나 잘 인식하느냐에 달려 있다. 변형적 사업이 성공을 거두려면,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그 누구도 막상 실천에 옮기지 않는 사업기회를 인식하는 것 외에도, 혁신하는 개인은 자신의 비전에 대해 몰두해야만 한다.
모든 사람이 그 일은 안 된다고 말할 때, 누군가는 밀고 나가서 그 일을 해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도가 성공할 경우, 플라스틱, 항생제, 레이저, 트랜지스터, 생물유전학, 우주탐사, 마이크로프로세서, 첨단의료장비 등의 몇 가지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결과적으로는 새로운 산업이 등장한다.
패러다임의 또 하나의 구성요소는 기업문화다. 기업문화란 기업이 실천하는 가치와 신념의 체계이다. 드러커는 어떤 기업이든 보수와 승진패턴에 그 회사의 가치가 잘 드러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회사가 무엇을 중시하는가를 가장 잘 알려면 어떤 사람이 승진했는지를 보면 된다. IBM에서 임원으로 승진하는 사람들은 영업인력 출신이고, 듀퐁과 AT&T에서는 화학 및 전기 엔지니어이다.
기업문화에 나타나는 보상패턴은 전통적, 이행적, 그리고 변형적 사업부문 사이의 긴장을 반영한다. 그리고 그 보상패턴은 현재의 사업상황 개선을 원하는 경영자적 유형의 인간과 새로운 미래를 창출하고 싶어하는 기업가적 유형의 인간 사이의 긴장 역시 반영한다. 과거의 의사결정으로부터 혜택을 보는 사람에 대한 보상과 미래에 가시화될 불확실한 성과를 바라보고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한 보상을 어떻게 차등적으로 실시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일종의 문화적 딜레마를 발생시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