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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파괴

리처드 포스터 지음 | 21세기북스
창조적 파괴

리처드 포스터․사라 캐플런 지음/정성묵 옮김

21세기북스/2003년 3월/463쪽/18,000원



불연속성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1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인 1917년, 「포브스」는 미국 100대 기업리스트를 작성했다. 그리고 1987년, 「포브스」는 ‘포브스 100 리스트’를 다시 출간하면서 1917년의 리스트와 1987년 당시의 상위 기업을 비교해 보았다. 그 결과 1917년의 ‘포브스 100대 기업’ 중 61개 기업이 이미 사라져버렸으며 겨우 18개 기업만이 상위 100대 기업 안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맥킨지가 미국 기업의 탄생과 생존, 죽음을 장기적으로 연구한 바에 의하면, 주식시장보다 좋은 성과를 꾸준히 낸 황금기업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투자자들의 소망일 뿐이었다. 심지어 최고의 기업조차 생존만을 위한 경영으로는 장기적으로 주주에 대해 시장수익률 이상의 높은 투자수익률을 보장해주지 못했다.

기업과 자본 시장의 근본적 차이는 다음과 같다. 기업은 연속성을 가정한 후 운영에 초점을 맞춘다. 반면 자본시장은 불연속성을 가정하며 창조와 파괴에 초점을 맞춘다. 자본시장은 빠르고도 광범위한 창조 활동을 통해 더 많은 부를 창출한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기업들은 장기적으로 볼 때 가까스로 생존할 수 있을 뿐 평균 이상의 주주수익률을 달성하지 못한다.

미국의 주요 기업들이 오랫동안 의지해왔던 연속성 개념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불연속성 개념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현재 S&P 500대 기업 중 2020년에도 살아남는 기업은 현재의 기업 생존자들과는 다른 특성을 띌 것이다. 즉, 창조적 파괴와 불연속성 개념을 받아들이고 시장 변화에 발맞추어 나가는 기업만이 살아남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기업이 시장 변화에 적응할 수 있을까? 답은 현재의 사업을 잘 관리하면서 창조적 파괴의 속도를 시장의 변화 속도에 맞추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이미 몇몇 기업이 변화의 물결에 편승했다. 잭 웰치가 이끄는 GE는 변화에 순응한 결과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다. 존슨&존슨도 변화를 꾀하고 있다. 코닝은 소비 내구재 위주에서 창조적 파괴를 통하여 첨단 광학 섬유분야의 리더로 변화했다.

바이엘 아스피린은 존슨&존슨이 타이레놀을 출시하기 전까지, 스털링 드러그 사의 성장을 이끌었다. 그런데 당시 스털링 드러그 사는 유럽 시장을 주도한 비 아스피린 계통 진통제인 파나돌을 제품으로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자사의 아스피린 시장의 잠식을 두려워하여 파나돌을 미국 시장에 출시하지 않은 채 아스피린의 해외 사장 확대에만 열을 올렸다. 결국 이 때문에 스털링 드러그 사는 코닥에 인수되고 말았다.

스털링 드러그 사는 효과적으로 변화하지 못했다. 그들은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반세기 동안 쌓아온 습관을 버릴 수 없었다. 이처럼 분명한 시장 위협에도 기업 문화를 바꾸지 못하는 것을 ‘문화적 폐쇄성’이라고 한다. 문화적 폐쇄성은 기업 구조가 점점 경직되고 의사결정 방식과 통제 시스템, 정신 모델이 하나로 고정한 데에서 기인한다.

기업이 나이를 먹어 가면 관료주의가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열정은 식고, 이성적 의사결정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러한 이성적 의사결정은 기껏해야 과거에 해오던 방식을 정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시점에서 미래에 두려움을 느낀 기업은 파멸하지 않으려고 틀에 갇혀 방어에만 급급해진다. 이제 경영진은 희망보다는 고난으로 가득 찬 미래를 보게 된다. 결국 문화적 폐쇄성이 심해질수록 기업을 파멸에서 구원해 내기가 어려워진다.



창조적 파괴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헨리 허드슨 로에서 센트럴 파크로 향하다보면 암스테르담 로와 웨스트 96번 가의 교차로에 고색창연한 은행 건물이 나타난다. 매우 견고해 보이는 인상적인 건물이다. 이 거대한 단층 건물의 벽에는 ‘1849~1926’이라는 연도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그 연도 표시 좌우에 저축이 미덕이라는 토머스 제퍼슨과 링컨의 금언이 장식되어 있다. 이 건물 앞에 서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은행에 돈을 맡기면 언제까지나 안전할 거야.’

그러나 암스테르담 로를 건너서 보면 이 건물이 지금은 은행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현재는 의약품 소매업체인 CVS가 그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이 은행은 매우 강하고 영원할 것처럼 보이는 어떤 기업이라도 한 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이스트리버 저축은행은 1848년 설립되어 뉴욕과 함께 성장했다. 대공황이 미국 전역을 휩쓸면서 많은 은행이 파산했지만, 이스트리버 저축은행은 계속해서 번성해나갔다. 하지만 이스트리버 저축은행도 1970년대에 닥친 위기는 비켜가지 못했다. 1970년대에 금리가 치솟으면서 개인주택 대출이 크게 줄어들자, 사업 다각화로 이 위기를 극복하려고 이스트리버 저축은행은 저축대부조합을 2개나 인수했으나 부실대출로 말미암아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되었다.

웨스트 96번 가의 이스트리버 저축은행과 같은 경우는 운이 나빴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그리 드물지 않다. 미국의 거대 기업이 파멸한 것이 단지 인터넷의 등장이나 신경제 때문만은 아니다. 이것은 이스트리버 저축은행의 파멸이 시작되기 훨씬 이전인 1920년대부터 서서히 진행되어온 현상이다.

변화의 속도는 강력하게 떠오르는 신생 기업들이 급속하게 S&P 500 리스트에 오르고 유서 깊은 전통 기업들이 그와 비슷한 속도로 리스트에서 쫓겨나는 현상에서도 가늠할 수 있다. 그리고 S&P 500리스트에 진입하는 신생 기업들의 수를 보면 이러한 변화가 지난 70년 동안 계속 진행되어 왔으며 점차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가속화의 주요 이유는 신생 기업이 오랜 생존자보다 더 높은 총 주주수익률을 보이기 때문이다. 신생 기업이 없었다면 시장 전체, 어쩌면 경제 전반의 성과가 지금보다 훨씬 못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S&P 500 기업들이 1957년의 기업들과 동일하다면 시장 전체적인 성과는 지금보다 훨씬 낮았을 것이다.지난 38년간 자료를 수집한 맥킨지의 ‘기업성과 데이터베이스’를 보면 새로 진입하는 기업은 수가 점점 늘어나는 반면 장기 생존자는 점점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다. 컴퓨터 하드웨어나 이동통신, 의료기기 같은 몇몇 분야들은 더욱 빠른 변화 속도를 보이고 있다. 미국 경제의 이처럼 강력한 창조적 파괴 작용은 미국 자본 시장의 장기적인 호황을 직접적으로 지원해왔다.

슘페터는 이러한 변화를 이렇게 말했다. “산업의 변화 과정은 끊임없이 경제 구조를 혁신한다. 끊임없이 늙은 기업을 파괴하고 새로운 기업을 창출하고 있다. 이러한 창조적 파괴 과정이 바로 자본주의의 현실이다. 이는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기반이며 모든 자본주의자들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대상이다.”

뛰어난 기업이 언제까지나 뛰어난 성과를 거두며 투자자들에게 평균 이상의 수익을 안겨준다는 이론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창조적 파괴 기술이 뛰어나 지속적인 변화를 완벽히 통제할 수 있는 기업만이 지속적으로 탁월한 성과를 낼 수 있는 모델을 자본시장은 제시하고 있다. 변화의 규모와 속도에 대한 표준을 설정하는 것은 바로 자본시장이다.

결론은 분명하다. 시장과 같은 속도로 변화하는 기업만이 시장 전체의 성과를 따라가거나 앞지를 수 있다. 반면 시장과 같은 속도와 규모로 변화를 꾀하지 않는 기업은 평범한 기업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기업의 핵심은 시장 변화의 속도와 규모를 따라가는 일이다.

향후 수십 년 동안 창조적 파괴의 속도는 계속해서 빨라질 것이다. 따라서 연속성만을 바라보는 기업은 점점 궁지에 몰릴 것이다. 기업이 변화에 적극적으로 편승하지 못하는 이유는 결코 단순하지 않겠지만 그러나 강력한 리더십만 있으면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어렵더라도 창조적 파괴를 제대로 다루려면 새로운 경영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 불연속과 창조적 파괴를 무시하는 기업은 결국 이스트리버 저축은행과 같은 파멸을 맞을 것이다.



변하지 않는 비전은 기업을 망친다

수십 년 동안 IBM은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기업이었다. IBM은 기술혁신, 미국 특유의 공격적인 정신, 미국 경쟁력의 정수를 대변했다. 그러나 존 에이커스가 지휘봉을 잡은 1980년대는 생존마저 어려울 정도가 되어버렸다. IBM은 서서히 침몰한 것이 아니라 크고 극적인 실패를 맛보았다. IBM이라는 비행기는 존 에이커스와 최고경영진을 태운 채 추락하고 말았다.

이처럼 우수한 기업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파멸을 피하지 못한 걸까? 그토록 뛰어난 지식을 자랑하는 중역들이 회사 상황을 전혀 몰랐단 말인가? 존 에이커스처럼 활동적인 리더가 어떻게 다가올 미래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까? 단순히 너무 거대해진 탓일까? 마케팅에 투자하지 않아서인가? 아니면 고객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일까?

이러한 문제들은 진정한 원인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업의 ‘마음가짐’이 문제였다. 즉,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미래라는 복잡한 모자이크를 그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1980년대 IBM은 이미 예전과는 다른 사업 환경에 직면해 있었다. 퍼스널 컴퓨터 시대로 돌입하면서 사실상 불연속의 한복판에 서게 된 것이다. 시장의 불연속성은 경영 이론의 거의 모든 측면을 바꾸고, 세계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옛 방법을 구식으로 만들어버렸다.

불연속에 직면한 최고경영자들은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앨리스 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 그 나라에서는 낯익은 사람들이 전혀 다른 역할을 한다. 즉, 약자는 강자로, 강자는 약자로 바뀐다. IBM이 휘청거린 원인은 바로 존 에이커스의 세계관, 즉 정신 모델이었다. 에이커스는 변화가 점진적으로 쌓이는 연속성을 굳게 믿었다. 그러나 그의 믿음과 달리 세계는 불연속을 겪었다. 메인프레임 컴퓨터의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퍼스널 컴퓨터의 시대가 도래했던 것이다.

불연속은 시장의 경쟁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면서 기업들의 성과까지 변화시킨다. 투자자들이 향후 주가 동향을 예측하는 모습도 크게 달라진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정신 모델의 변화를 촉구한다. 정신 모델이라는 개념은 1943년 스코틀랜드 심리학자 케네스 크레이크가 최초로 창안했다. 그는 정신 모델을 ‘외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하는 내적 표상을 다듬은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인간은 모든 사물에 대해 정신 모델을 만든다. 예를 들어, 자동차, 비행기, 시장과 그 발전과정, 경쟁, 기업 운영, 고객 충성도, 소비자 마케팅, 지식 개발과 지식 경영 등에 대한 정신 모델을 가지고 있다. 시장, 경쟁 환경, 경제 전체, 세계 전체에서 기업의 위상과 역할을 명시하는 정신 모델이 없이는 사업전략을 수립할 수 없다. 물론 정신 모델은 대개 암시적이고 불분명하며 감추어져 있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럼에도 정신 모델은 분명 존재한다. 정신 모델이 없으면 어떤 기능도 수행할 수 없다.

물론 기업의 정신 모델은 하나가 아니다. 실제로 기업 안에는 다양한 정신 모델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제조업체는 계산서를 작성하고 어음과 채무를 처리하는 동시에 상품을 제조하는 프로세스를 기초로 기업의 정신 모델을 설정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컴퓨터회사는 상호 연결된 노드(nod)의 네트워크가 정신 모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정신 모델은 문제 해결, 특히 기업의 의사결정자가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때 유용하다. 정신 모델을 이용하지 않으면 인간의 인식체계는 과중한 데이터로 마비되어 올바른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 결국 정신 모델의 가장 큰 장점은 복잡한 상황을 단순화하고 의사결정을 분배 가능하게 해준다는 점이다.

이처럼 유용한 정신 모델도 분명 어두운 이면을 가지고 있다. 존 에이커스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사람들이 경험과 전문 기술, 지식, 학식을 바탕으로 선택한 정신적 요소들은 불연속 상황에 직면하면 역효과를 낸다. 경영에서는 매우 중요한 정신 모델이 단절되었을 때가 가장 위험하다. 그런데 오늘날의 시장 환경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점점 더 많이 발생하고 있다.

물론 정확한 정신 모델을 세우면 미래를 올바로 예측하여 남다른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그러나 정신 모델이 매력적일수록 경영자는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부정확한 정신 모델은 판단과 체제 구축에 오류를 퍼뜨리고 그릇된 행동을 유발하여 결국은 부실한 성과를 낳게 한다. 게다가 정신 모델 하나를 바꾸려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므로 수많은 정신 모델을 이면에 감추고 있는 기업은 활동 진로를 바꾸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지난 수십 년 동안은 안정적이고 때로는 보이지 않는 정신 모델에 무의식적으로 의존해도 아무 탈이 없었다. 미래나 과거나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의 변화 속도가 극도로 빠른 오늘날에는 아무 생각 없이 안정적인 정신 모델에만 의존했다가는 큰 코 다친다. 변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미래에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창의성이 살아 있는 운영 시스템

컴퓨터 기억장치 제조업체인 스토리지 테크놀로지는 1969년 네 명의 IBM 출신 기술자들이 설립했다. 그 기술자들은 IBM보다 저렴한 가격에 디스크와 테이프 드라이브 시스템을 만들어 IBM에 판매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스토리지 테크놀로지는 IBM에 도전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IBM에서 가장 먼저 독립한 회사였다. 1972년 최초로 순익을 기록한 후 큰 폭으로 성장하여 1982년에는 연간 매출액이 10억 달러를 넘어섰다.

창립자이자 최고경영자였던 제시 아외이다는 효율적인 운영과 ‘적당한’ 혁신만으로 IBM을 앞설 수 있다고 믿었다. 구조적 혁신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소규모 기업이 IBM과 같은 공룡과 경쟁하려면 테이프 드라이브 같은 세부 시장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장에서 기술 혁신에 주력해야 한다.”

초기에는 아외이다의 전략이 그대로 통했다. 1970년대 내내 스토리지 테크놀로지는 IBM 제품보다 15% 낮은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했다. 그러자 스토리지의 시장점유율이 올라갔고 IBM에 필적하거나 더 우수한 품질의 장비를 제조한다는 평판을 얻었다. 그들의 매출 성장률은 컴퓨터 산업의 평균을 상회했다.

스토리지 테크놀로지가 성공한 데는 혁신이 한몫을 했다. 스토리지가 처음 개발한 테이프 드라이브는 IBM의 신제품을 능가하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또한 1970년대에 IBM이 오늘날의 하드 드라이브를 개발하자, 사용자들은 더 이상 디스크를 삽입하는 간단한 방법으로 하드 드라이브의 데이터를 백업할 수 없게 되었다. 이는 디스크 드라이브로 사업 확장을 꾀하던 스토리지 테크놀로지로서는 정말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회사가 성장을 거듭하자 운용 효율과 혁신 사이의 균형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외이다는 그 이상의 성장을 모색하고자 회사의 비전을 바꾸었던 것이다. 이번 목표는 스토리지를 ‘작은 IBM'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스토리지는 메인프레임 분야에서 IBM과 경쟁한다는 폭넓은 비전으로 바꾸고 새로운 길을 떠났다.

자사의 연구 능력만으로는 IBM과 맞설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IBM 호환 메인프레임과 소형 컴퓨터를 제조하는 기업인 매그너슨 컴퓨터를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스토리지는 메인프레임 개발을 위해 1억 2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아외이다는 또한 광학 기억장치 개발에 집중 투자했다. 광학 기억장치 개발을 시도하면서 스토리지의 운영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드디어 균형이 깨지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IBM의 신제품 디스크 드라이브 출시가 늦어져 판매 공백이 생기자 스토리지는 생산하는 제품을 모두 판매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우리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시장을 2배로 키울 기회가 왔다. 그리고 내친 김에 생산량을 3배로 늘렸다. 이것이 실수였다.” 후일 아외이다는 이렇게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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