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딕
디 혹 지음 | 청년정신
1973년, 카드 이름은 시스템 성장을 방해하는 문제로 제기되었다. 세계 공통으로 쓰이는 건 파란색, 회색, 황금색 테가 있는 디자인 하나뿐이었다. 상품 이름은 나라마다 달랐으며 어떤 나라에서는 그 이름이 몇 가지나 되었다. 미국에선 뱅크 아메리카드라는 한 가지 이름으로 불렸다. 캐나다에선 차지스로 통했다. 나머지 국가에선 일본의 스미토모카드, 영국의 바클레이카드처럼 대개 발행은행의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일단 카드가 특정 은행의 이름으로 소개되면, 다른 은행들은 참가하기를 싫어했다. 상인들은 많은 카드 이름에 혼란을 겪었다. 카드 이름이 여러 가지라는 사실은 국제시장을 만들어 어디에서든 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보장성을 방해하는 원인이었다.
1974년 6월, 이제 갓 부화한 국제조직은 '이반코(Ibanco)'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고, 이 광대하고 복잡한 문제에 접근 가능한 지배적 메카니즘을 가지게 되었다. 그 동안 NBI와 이반코의 최대 관심이 완전히 대립될 때도 있었다. 이반코 창립을 위해 2년 동안 조직 대리인 일을 하면서 이익문제 때문에 빚어지는 갈등을 수없이 보아왔다. 이에 한 가지 특이한 안이 나왔다. 같은 직원과 같은 임원이 이반코와 NBI 모두에 봉사하는 경영 협약서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나는 6년 동안 그렇게 일을 해왔고, 아주 큰 성공을 거두었다. 우리는 NBI와 이반코 양쪽 이사회에게 전세계적으로 공통으로 쓰일 이름을 결정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이름을 바꾸는 이런 거대한 변화는 반드시 일어나야 할 뿐만 아니라 폐쇄된 방식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이름을 짓는 원칙부터 정하기로 했다. 특정 언어권이나 문화권을 알려서는 안 되었다. 전 세계에서 가치를 교환할 수 있으며 모든 관련 행사를 보호하는 상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했다. 자기조직화된 그룹이나 흥미를 느끼는 개인이면 누구나 어떤 방법으로든지 이름짓는 일에 참가할 수 있었다. 상금은 50달러 수표로, 어디까지나 순수한 상징이었다. 그후 놀랄 만한 폭발적인 반응이 있었다. 올라온 이름 후보는 여러 방법으로 조합되었다. 그 중에서 너무도 흔한 단어여서 목적과 원칙을 충족시킬 수 없는 것으로 평가절하 받았던 단어가 있었다. 그럼에도 그 이름은 계속 나타났고 강력한 후보가 되었다. 바로 '비자(VISA)'였다. 그렇다면 50달러 수표는 누가 받아야 하는가? 비자라는 이름이 언제 누구에게서 어떻게 나왔는지에 대한 기억이 사람들마다 달랐다. 정확하게 밝혀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이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았다.
많은 나라에서 외국에 들어가기 위한 입국 사증으로 상징되는 이 평범한 이름이 과연 세계적인 상표 보호권으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최종 결정은 하와이 국제멤버회의에서 내리기로 되어 있었다. 회사 이름을 이반코에서 비자 인터내셔널 서비스 협회로 바꾸는 데 만장일치가 이루어졌다. 동시에 모든 상품을 비자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이렇게 해서 회사 이름들과 상품 이름들은 하나로 통일되었다. 그로부터 비자는 상당한 이익을 남기며 모든 라이벌들을 능가하게 되었다.카드발행 은행들은 해당 지역위원회에 대표를 임명할 권리를 가질 것이다. 지역 집행위원회는 기능위원회의 의장과 다른 상임위원회에서 선출된 사람들로 구성될 것이다. 지역위원회의 의장들은 전국위원회를 구성한다. 이 개념을 문서화된 제안으로 정리했다. 면허인 위원회가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서 열렸다. 이 제안은 통과되었다. 자기조직화로 지역위원회와 전국위원회를 묶는 과정에서 나는 북서태평양 지역 행정위원회와 전국 행정위원회 의장직을 제의받았다. 나는 이미 내셔날 은행 카드운영팀 책임자로 힘들게 일하고 있었지만, 생색도 나지 않고 급료도 없는 이 일이 좋았다. 하지만 문제점이 드러났다. 손실액은 수억 달러였으며 게다가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조직의 새로운 개념과 그것을 시도하기 위한 발판이 필요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이렇게 썼다. "처음부터 올바르게 진단되지 않는다면, 병은 치료하기 어렵다.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기구나 조직도 마찬가지다. 어떤 조직이 변화하는 사회환경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그 기능을 최상으로 서비스 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고 계속 발전해야 한다. 생물학적 유기체와 건강한 조직은 혼돈과 질서를 이루며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지구가 그렇고, 우주도 그렇다. 모든 것은 카오딕이다. 변화하는 사회환경을 거부한 조직들은 경제적으로 파괴된다. 생물학적이건 사회적이건, 혹은 유기체건 조직이건 간에 모든 것은 짜맞추어진 기계가 아니다. 살아있고 변화하는 과정이다. 올드 몽키와 나는, 조직에 대한 끝없는 탐색에 빠져들었다. 사물을 바라보는 네 가지 방법 - 과거, 현재, 가능한 모습, 그리고 마땅히 되어야 할 모습 - 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문제의 발단은 기구를 실체로 받아들이는 왜곡된 습관에서 시작된다.
당신이 다니는 회사를 생각해 보라. 그것의 이름, 고용인들, 또는 사무실 등과 같은 것이 아니라 회사 그 자체를 생각하라. 모든 기구는 사람이 공동의 목적 - 공동체라고 불리었던, 아주 오래되고 아주 강력한 아이디어의 개념적 구현물 - 을 추구하기 위해 끌어들인 정신적인 구조물일 뿐이다. 건강한 조직은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비전과 가치를 찾게 하는 관계성과, 다같이 그것들을 추구하는 자유라는 정신적 개념이다. 조직의 성공은 돈이나, 경영관례보다 구성원들이 나눈 목적, 모두가 인정하는 법칙들, 그리고 그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믿음의 힘에 훨씬 많은 영향을 받는다.
올드 몽키와 중년에 들어선 나는 이상한 모험을 시작했다. 은행, 돈, 신용카드의 가장 근본적인 기능은 무엇인가? 그 본질적 본성은 무엇인가? 이 질문을 풀기 위해선 세계의 과거 모습과 현재와 가능한 미래와, 꼭 이루어야 할 모습을 생각해야만 했다. 절망적이었다. 하지만 천천히 몇 가지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돈은 찍혀진 숫자의 데이터를 보장하는 한 나라의 통화의 상징이다. 그리고 은행은 보장된 이 데이터의 보관, 대부, 그리고 교환하는 기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우리는 그 데이터가 무엇이 될지 알아내야 했다. 이 작업은 울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은 것들과 연결시켜 보아야 한다. 우리가 속해 있는 이 산업의 본질은 신용인가? 고객이 상인에게 은색 플라스틱을 내놓을 때 일어나는 거래는 무엇인가? 카드의 기능은 구매자를 구입자에게 증명하고, 보장하는 것이며, 가치 데이터의 발생과 이동이었다. 이것은 그 당시 새롭게 드러나는 의식 변화였다. 우리는 신용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카드는 통화가치의 교환을 위한 상징을 안고 있는 발명품일 뿐이며, 시대와 상황의 돌발성이 빚어낸 우연이었다. 우리가 하는 진짜 일은 통화가치를 교환하는 사업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은행이 한 군데도 없었다. 내가 만들어 낸 생각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은행들의 자원을 전부 계산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할 수 있다고 가정해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다양한 기구와 개인들이 집합한 총체를 연결시킬 수 있는 초월적인 조직이 탄생되어야 한다.
그때, 나는 이것이 가능하리라 생각했던가? 나는 이것이 마땅히 되어야 할 모습이라 믿었던가? 조직과 경영관리에 대한 내 믿음을 실현하는 기회로서, 이 일을 시도하여 실패한들 더 이상 그 무엇을 잃겠는가? 이번에 내 신념에 따라 행동하여 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리라. 이제 사장과 담판을 지을 시간이 되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드디어 나는 위험하긴 하지만 시도를 할 수 있는 발판과 자유를 얻게 되었다. 올드 몽키와 나는, 은행은 가치교환을 위한 세계적인 시스템을 만들어 낼 수는 없지만, 모든 금융기구가 가지고 있는 자금 일부와 그 기구들에서 일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성실성을 조금씩 보탠다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연결이 가능하더라도, '어떻게'라는 방법론적 문제가 남아 있었다. 진화를 생각해 보자. 조직이 생물학적 개념과 양식을 따를 수는 없을까? 이 질문 자체에 답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기구를 어떤 유전 코드를 가진 것으로 생각해 본다면? 기구의 유전코드는 목적 그리고 원칙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닌가? 우리는 목적과 원칙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고 토론했다.
참가자 중 한 사람은 12년 후 하버드 비즈니스 사례 연구에서 "디 혹은 광신에 가까운 아이디어들을 실현시키는 열정의 소유자였다"라고 썼다. 비자가 생겨날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가 아이디어, 개념 그리고 믿음의 힘에 매달렸기 때문이었다. 절박한 필요성 때문에 비자는 만들어졌다. 전통적인 세계에서 통하던 권력, 자본, 지위, 영향력과 같은 것이 없었기에 우리는 의식의 변화를 감내하는 길을 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 당시는 알지 못했지만 우리는 한 번에 하나씩, 아주 조금씩 자기조직화로 진화해 나가는, 지금 이 순간도 완성되지 않는 하나의 예외적인 기업의 기초를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는 인터넷도, 월드 와이드 웹도, 동맹도 없었고, 정보 사회도 아니었지만 나는 그 아이디어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은 이성과 합리성 너머에 있는 희망, 믿음 그리고 결심의 영역에서 이루어내는 일이었다.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포기하는 심정이 들 때마다 어딘가에서 부드럽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지금은 아냐. 믿음만 있다면, 한 발자국 앞만 보인다면, 가! 앞으로 가는 거야!"3. 더 이상 잃을 것은 없다4. 회사인가 자연의 지팡이인가?6. 이름에 무엇이 들어 있나?7. 숨어 있는 보석 같은 사람들2. 이상한 은퇴지금은 1993년, 내가 흙을 밟고 사는 삶을 위해 비즈니스 세계와 관계를 끊은 지 9년이 되었다. 내가 그 세계와 갑작스럽게 완전히 결별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 산업주의가 남겼던 낡은 유산과 명령과 통제로 이루어진 회사들에서 격렬한 갈등을 겪으며 보낸 16년. 새로운 조직 개념을 꿈꾸고 그 꿈을 실험하는 데 보냈던 35년. 그리고 그 꿈 중 하나를 실현시키기 위해 불가능에 도전했던 2년. 그 모든 세월 중에 내 꿈을 성숙시키기 위해 14년을 혹사한 다음 가장 화려한 성공의 정점에서 비자(VISA)에 등을 돌리고 물러난 일은 분명 내 평생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1984년, 나는 "내 인생을 새로운 가능성에 열어 두어야 한다"는 한 마디 말을 남기고 비자를 떠났다.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은 확신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올드 몽키 마인드 - 내 기억이 미치는 한 아주 오래 전부터 나를 괴롭히던 나의 이성 - 와 내가 비자를 떠나 새로운 삶의 가능성에 뛰어든 9년은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세월이었다. 그것은 내가 정말로 깊이 사랑하는 것들인 가족, 손자들, 자연, 책, 고독, 은밀한 생활, 무한한 상상력에 빠지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그때 나는 흙을 밟고 사는 삶이 이루어 줄 가능성만을 믿으려 했다.
그런데 오늘 새벽이 밝았을 때, 삶을 이루는 다른 실들이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문양을 짜려고 할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올드 몽키 마인드는 생각의 잡목 숲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모든 곳에서 불가분성과 통일성이 이루어지고 있다. 바람, 새, 햇빛, 땅, 인간 이 모든 것이 서로의 존재를 밝혀주면서 서로를 연결하고 있다. 모든 것은 경쟁하는 동시에 협동하고, 분리될 수 없는 존재인 동시에 개별적이며, 부분들로 이루어진 하나인 동시에 전체의 부분들이고, 그 어느 누구도 지배하지 않으면서도 질서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왜 인간은 기구와 제도를 만들었는가? 왜 사람을 예측 가능한 톱니바퀴와 바퀴처럼 만들려고 애쓰는가? 완벽한 명령과 통제를 할 수 있는 능력자가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트럭과 연장을 헛간에 갖다 놓은 다음, 나는 서재에서 책 한 권을 뽑아들고 서문을 훑어보았다. 『복잡성(Complexity)』. 이 책은 서로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과학자들과 학자들이 새로운 과학은 복합적이고 자기 조직적이며 적응력이 있는 시스템 연구에서 나오리라는 공동 인식 아래 작은 연구소를 만들게 된 이야기다. 그들이 생각하는 새로운 과학의 특성은 '복잡성'이란 단어로 정리된다. 지난 200년 동안 정밀하고 선형적 인과 법칙에 따른 기계론으로 우주를 설명하려고 했던 과학의 시도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특수성, 분리성, 개별성의 추구는 인간의 이해 능력을 막다른 골목으로 이끌었으며, 이제는 정신과 육체를 통일체로 보는 접근법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복잡한 연결성은 자생적인 질서를 만들어낸다고 믿는다. 모든 복잡한 적응 시스템은 카오스의 언저리에 있으며 거기서 우리가 질서라고 부르는 인지 양식들을 만드는 자기 조직화가 이루어진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개념은 나를 매료시켰다. 조직은 자연을 따라야 한다는 사회조직 개념에 대한 것이었다. 이 책은 나에게 미래의 모습을 알려주는 보석 같은 작품이었다.
40년 동안 나는 자신에게 묻는 세 가지 질문이 있었다.
· 왜 조직은 정치적이든, 상업적이든, 사회적이든 상관없이 관리능력을 잃어가고 있는가?
· 왜 개인은 자신이 참여하는 조직들과 갈등을 빚고 소외되어 가는가?
· 왜 사회와 생물권은 혼란스러워지는가?
조직은 애초의 설립 목적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마구잡이로 자원을 집어삼키고, 인간 정신을 천박하게 만들고, 환경을 파괴시키고 있다. 이처럼 기구들이 무너지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사회관계의 질서 세우기에 근본적인 오류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 새벽의 고요 속에서 책을 거의 읽어갔을 때, 아주 길게 이어 붙여진 형용사들이 내 마음을 당황하게 만든다. '자가촉매작용의, 비선형성의, 유기체를 닮은, 복잡한, 적응하는, 정신과 육체가 일체를 이루는' 그러니까 과학자들은 새로운 과학을 이런 형용사들의 합으로 설명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전부를 내포하는 꼭 알맞은 단어가 없을까? 이런 시스템들이 카오스(혼돈)와 오더(질서)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각 단어의 첫 음절들을 뽑아 연결시켜 보면 어떨까. 나는 chaos에서 cha, order에서 ord를 골라 chaord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단어의 정의를 적기 시작했다. 자연을 향한 평생의 애정, 조직을 만들기 위해 이상한 방식으로 준비했던 16년의 세월, 책에서 배웠던 생각들, 그리고 기구의 본성에 대한 나의 믿음을 하나의 단어 속에 모두 집어넣고 싶었다.1965년 나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대학을 다니는 아내, 어린 세 아이, 저당 잡힌 집, 실직, 그리고 은행에는 쥐꼬리만큼의 돈만 남아있는 어려운 상황 속에 있었다. 나는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더 이상 회사에 매달려 발버둥치지 않겠다는 결심이었다. 한 마디로 '현직에서 은퇴'하는 것이었다. 대신 나는 현대 조직에서 가장 진부한 부문에 내 뜻을 세워 갈 것이며, 신용을 다루는 일이면 된다는 원칙을 세워 이런 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내쇼날 은행의 연락은 예기치 못한 것이었다. 사회에 나온 지 16년 만에 처음으로 직책도 권한도 없는 이상한 방식으로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어떤 보장도 없다. 서른 여섯의 나이에 직업훈련을 받는 셈이다. 하지만 나는 직업 선택에 있어서 평생 처음으로 논리와 이유를 쓰레기통에 던졌으며, 직관적인 느낌과 믿음으로 결정을 내렸다. 나는 신용 부서, 지사, 부동산 부서, 융자 부서 등 여기저기로 옮겨다녀야 했다. 이 시기에 나는 '이끌다, 따르다, 관리하다'라는 조직에 대한 단어를 탐구하고, 다양한 조직에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사람들과 형식이 없는 토론을 자주 가졌다. 이 토론은 대개 매니저와 매니지먼트라는 주제로 모아졌다.
매니저의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책임감은 자기매니지먼트(self-management)이다. 자신의 머리,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