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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경

스유엔 지음 | 더난출판
호설암이 도제로 있던 청 말기는 도제의 신분이 가장 낮고 하는 일도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 호설암은 운명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기에 비록 도제에 불과했지만 자신을 경시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졌다. 그는 매일 남보다 먼저 일어나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빨리, 그리고 깔끔하게 처리했다. 전장의 주인도 그를 신임하여 수금사원으로 발탁했다. 수금업무가 어렵긴 하지만 하기에 따라서는 훌륭한 자기 수련의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호설암은 이 일을 통해서 대인관계의 기교를 터득하는 동시에 사람들의 성격을 폭넓게 경험할 수 있었다.



그는 친구 사귀기를 좋아했고 한 번 사귀면 끝까지 넉넉한 마음을 잃지 않았다. 주머니에 은자 다섯 냥이 있어 친구가 이를 필요로 하면 아낌없이 내어 주는 것이 그의 아량이었다. 이처럼 대인관계가 좋다 보니 수금도 비교적 순조로웠다. 사실 돈을 빌려간 사람들 중에는 무뢰한이나 건달이 거의 없었다. 그들은 돈을 빌리면 심리적으로 이를 부끄럽게 여겨 자신의 부채를 남이 알까 두려워했다. 수중에 여유 돈이 있어 부채를 갚으려 할 때도 돈을 받으러 온 사람의 태도를 먼저 보게 되어 돈을 받으러 온 사람이 위세를 떨며 강압적으로 나오면 돈이 있어도 갚기를 꺼려하지만 수금하러 온 사람이 자신의 체면을 세워주면 재촉하지 않아도 먼저 돈을 갚았다.



호설암은 기꺼이 상대방의 체면을 세워주는 원칙에 충실하여 다른 사람들에 비해 훨씬 수월하게 수금을 할 수 있었다. 한가한 시간이면 그는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친구들을 사귀었다. 수중에 넉넉한 돈은 없었지만 그는 돈 몇 푼이 급한 친구에게 자신이 가진 전부를 빌려줄 수 있다면 이것도 훌륭한 투자라고 생각했다. 호설암의 넉넉한 마음은 일하는 태도에도 반영되어 할 일만 생각하고 승진이나 보수는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다. 업무성적이 좋으면 승진은 주인이 알아서 생각하고 결정한 문제이고, 먼저 승진을 생각하고 일을 한다면 제대로 일에 전념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호설암은 발전의 기회가 주어지면 이를 포착하여 전력으로 매진했다. 하지만 결과와 수확은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이 그의 탁월함이라 할 수 있다.호설암은 사업을 진행하는 동안 매번 놀라운 민첩성과 탁월한 지략을 과시했다. 한 번 움직일 때마다 한 가지 지모가 뒤따랐고, 이러한 지모는 거대한 재산이 되어 돌아왔다. 그는 생사사업과 왕유령이 맡고 있는 호주 관부의 공무를 위해 여러 차례 호주를 드나들면서 이 지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호주 서방의 서판 욱사를 사귀게 되었다. 호설암은 의기와 식견을 십분 발휘하여 욱사의 집안일을 손쉽게 해결해준 덕분에 그에게서 확실한 신망을 얻고 있었고, 욱사는 욱사대로 호설암의 도움에 보답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나서서 젊은 과부인 부용을 호설암의 첩실로 맺어주었다.



부용의 삼촌인 유불재는 처음에는 조카사위인 호설암을 탐탁지 않게 여기며 친척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그는 가업의 비방이 남아 있는 한 자신의 집안은 아직 건재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다시 집안을 크게 일으킬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부용을 첩실로 맞은 호설암에게는 좀처럼 자신을 친척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유불재가 커다란 골칫거리일 수밖에 없었다. 이 때 호설암에게는 두 가지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 하나는 욱사의 말대로 서로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들처럼 모른 척하고 살아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용의 생각대로 그에게 거액의 은자를 주고 가업의 비방을 사들이는 대신 그로 하여금 스스로 장사를 하여 먹고살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호설암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유불재에게 친척으로 인정을 받는 것은 물론이요, 그를 이용하여 자신의 약방을 경영하겠다는 야무진 생각을 하고 있었다. 호설암은 약방이 대단히 유망하고 큰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민란이 빈발하여 도처에 싸움이 벌어지다 보면 역병을 예방할 약품이 필요할 것이고 병사든 민간인이든 간에 부상자가 많아져 그만큼 약품의 수요가 늘어날 것이 분명했다. 따라서 좋은 약재를 쓰면서 가격만 적당하게 책정해준다면 약방을 여는 것도 나쁠 이유가 없었다. 더군다나 좋은 약으로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구제했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게 되면 쉽게 관장의 지원을 받아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잡는 것은 물론 훌륭한 명성가지 얻게 될 터이나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호설암의 '호경여당'은 이렇게 하여 문을 열게 되었다. 몇 십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호경여당'의 명성은 널리 알려져 천하제일의 의약 명가가 되었고, 든든한 자금줄 역할도 해 주었다. 또한 호설암에게는 선행에 힘쓰는 훌륭한 상인이라는 명성을 안겨주면서 이후의 모든 사업에 긍정적인 역할을 미치기도 했다. 전장과 함께 생사사업까지 벌이고 있던 호설암이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약방을 시작한 것은 부단하게 이익을 좇는 뛰어난 기동성의 모범을 보인 것이다.



사실 사업이라는 것은 자신의 전문영역을 지켜내는 것도 힘든 일이고, 사업이 확대된다 하더라도 같은 업종과 방법에 국한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거부가 되긴 위해선 절대 한 가지 영역에만 집착해선 안 된다."시장이 활성화될수록 부강 전장의 사업도 번창할 것이다. 나는 내 시장을 북경은 물론이 요, 외국에까지 확대해 나갈 생각이다. 남들이 하지 못하는 일들을 나는 할 수 있다. 그 것이 바로 능력이다. 사업을 하려면 자신의 시면(市面-시장)을 조정할 수 있어야 하고 시 장을 활성화시키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시면을 조정할 수 있으려면 먼저 시장상황을 잘 파악해야 하고, 천하의 평정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천하가 평정되어야만 시장이 번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서양 사람들과 교섭하고 관부와 서양 상인들과의 관계를 조종하는 것도 모두가 천하를 평정시킴으로써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것이다. 시장이 커지고 안정되면 사업은 저절로 번창하게 된다.""작은 장사를 하려면 상황에 순응하면 되지만 큰 장사를 하려면 먼저 나라의 이익을 생각 해야 한다. 전체적인 상황이 호전되면 사업도 순탄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긴다. 세상이 태 평해지면 무슨 장사인들 못하겠는가? 그때가 되면 당신이 도와준 만큼 나라에서도 당연히 당신에게 보답할 것이니 서로 도움을 주고받게 된다. 장사를 하려면 우선 시장이 안정되 어야 하고 시장이 안정되어야 사업이 번창할 수 있다. 우리들이 좋은 일을 하려는 것도 바로 시장이 안정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또한 시장의 안정은 관장의 힘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가 협력해야 한다. 춥고 배고프면 훔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법이고, 이럴 경우 손해를 보는 쪽은 돈이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장사를 통해 큰 돈을 벌면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 줄 알아야 한다."부강 전장을 개업하면서 호설암은 '시면'을 다루는 뛰어난 수법과 기교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한 예로 호설암이 부강의 간판을 내건 후에 동항들에게 이를 알린 '수법'을 들 수 있다. 부강이 문을 열던 날 돌아가는 손님들을 다 배웅하고 나서 호설암은 유경생을 불러 자신이 뽑아놓은 명단대로 각각 은자 20냥씩 입금되어 있는 통장 열두 개를 준비하여 나눠주라고 지시했다. 이 통장의 예금주에는 절강순무 황종한의 문방을 주관하고 있는 유이를 비롯하여 절강무대와 번대 등 대관들의 부인들과 첩실 등이 고루 포함되어 있었다. 호설암이 이 사람들에게 공짜로 20냥짜리 통장을 만들어주는 목적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이를 미끼로 하여 그 사람들의 예금을 대거 유치하려는 것이었다. 이들처럼 신분이 높은 여인네들에겐 필경 쓰다 남은 사방전(私防錢, 봉건시대 여인네들이 수중에 지니고 다니던 비상금)이 있을 것이고 그 가운데 일부는 적지 않은 액수의 돈이었다. 이들에게 통장을 만들어주고 이자를 계산해 주면 돈이 늘어나는 맛에 자발적으로 가진 돈을 예금하려 할 것이고, 이것이 모이면 거대한 자금을 형성할 수 있었다. 이런 방법은 호설암이 처음 창시하여 시도하는 시장 활성화 전략이었다.



둘째는 이런 방법을 통해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것이었다. 호설암은 부녀자들의 사방전을 예금으로 유치하는 것이 부강의 사업에 큰 자금원이 되어주진 못하겠지만 이들이 입에서 입으로 부강의 명성을 널리 알리는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 생각했다.



이 외에도 호설암의 '시면' 수법은 다양하게 펼쳐졌다. 첫째는 세심하고 정확한 사업부지 선택이다. 호경여당은 대정항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뒤에는 오산이 있고, 그 위에는 사원과 묘당이 흩어져 있어 다양한 잡기와 연극이 벌어지곤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놀러 다니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또한 앞에는 청하방이 있고 그 좌우에는 점포들이 즐비하여 온갖 물건들이 사고 팔렸다.



둘째는 처음으로 우편 판매를 창시한 것이다. 보다 많은 환자들에게 약품을 보급하고 약방의 명성과 이미지를 널리 확산시키기 위해 호설암은 우편 판매 전담 부서를 설치했다. 덕분에 아무리 멀리 떨어진 지역에 사는 환자라 해도 편지 한 통만 쓰면 즉시 약을 받을 수 있었다. 환자들은 이런 방법이 매우 편리할 뿐만 아니라 호경여당에서 환자를 특별히 배려한 혜택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광고효과를 충분히 활용했다. 호경여당은 광서 초년에 설립되었는데 중국에는 바로 이 시기에 광고의 개념이 처음 도입되었다. 호설암은 광고의 효과를 깊이 체감하여 개업하자마자 「신보」에 연속적으로 광고를 게재하면서 호경여당의 설립 취지와 우편 판매 등의 영업 내용을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그 결과 아주 외딴 지역까지 서민 구제에 힘쓰는 호경여당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호설암의 이러한 상품판매 전략은 현대의 판매이론과 거의 일치한다. 그의 경영전략은 형식 효용, 임무 효용, 시간 효용, 장소 효용, 획득 효용과 현대 경영이론에서 고객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데 필요한 다섯 가지 효용을 고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설암의 시장 경영전략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시장의 규모와 안정성이 사회 치안과 정국 등 사회 외재적 환경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점을 깊이 있게 인식하여 사회안정과 정국안정의 유지에 적극 노력했다는 점이다. 오늘날 기업경영은 한 국가의 정치와 경제, 문화에 큰 영향을 받는다. 정국이 불안정하면 경제환경 열악하면 기업의 경영에 막대한 어려움이 초래된다. 따라서 환경이 안정되어야 개인의 사업도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정부를 지원함으로써 정국을 안정시킨 호설암의 전략은 이런 의미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7. 천하의 이익을 얻기 위한 계략



계략의 첫째는 시장을 키우는 것이다8. 천하를 걱정하는 마음



상인은 결코 간사하지 않다"상인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능력은 사람을 제대로 쓸 줄 아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남의 능력도 잘 활용할 줄 아는 법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경영자의 능력과 자질을 고루 갖췄다 하더라도 큰 일을 해내기 어렵다. 나는 사람을 쓰는 방법과 원칙이 남들과 다르다. 나는 아주 강한 사람들만 쓴다. 이 세상에 완전한 인재는 없다. 따라서 쓸 만한 구석이 있기만 하면 다른 단점들이야 전부 덮어두면 그만이다. 나무 한 그루로는 숲을 이룰 수 없다. 내가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주위의 인재들을 활용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성공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내 성공의 비결은 남들 이 감히 데려다 쓰지 못하는 인재들을 과감히 받아들인 덕분이다.""사업을 하려면 세상의 큰 흐름을 알아야 한다. 세상의 흐름을 모르면 뒤쳐지게 되고 나 중에 따라잡으려고 아무리 애써 봐도 소용없다. 시기를 기다리는 것은 흐름을 타는 것만 못한 법이다. 어려워 보이는 일들이 의외로 순조롭게 성취되는 것은 대부분 현실의 흐름 에 순응했기 때문이다. 원대한 안목으로 4∼5년 후의 일들을 내다보고 큰 흐름을 발견할 수 있어야 비로소 비상할 수 있다."호설암은 이름이 광용(光墉)이요, 자가 설암(雪巖)으로 1823년 휘주(徽州) 적계현에서 태어났다. 휘주는 예로부터 상인들이 많이 배출되던 지역으로 휘주 출신 상인은 중국 전역에 두루 퍼져 있었다. 이런 환경에 영향을 받은 호설암은 부친이 사망하고 집안이 몹시 어렵게 되자 열두 살의 나이에 홀어머니 곁을 떠나 항주(杭州에) 정착한 후 신화 전장의 도제가 되었다. 그는 주변 상황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사태의 추이를 한눈에 판단하는 능력을 갖춘 영특한 소년이었다. 또한 어려움 속에서도 배우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선한 일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사람들을 항상 웃음으로 대하는 아량이 있었다. 덕분에 대인관계가 매우 원만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그를 좋아했다. 이런 성품 덕택에 호설암은 도제생활을 시작한 지 3년만에 신화 전장의 정식 직원이 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다른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창구에서 손님을 맞는 일을 했으나 그의 성품과 능력을 인정한 주인은 마침내 그를 수금사원으로 발탁했다. 호설암은 일처리가 워낙 성실하고 꼼꼼하여 단 한번도 실수를 하거나 부정한 이득을 취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전장에서 결손 처리된 자금으로 왕유령이라는 사람을 도와준 사실이 드러나면서 전장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졸지에 직장을 잃게 되었지만 사실 호설암의 화려한 인생 역정은 왕유령의 연관(捐官)을 도와주는 것으로 시작되었고, 이것이 그에게 '홍정상인'이라는 지위와 명예를 가져다준 계기가 되었다.



어느 해 여름, 호설암은 '매화비'란 찻집에서 우연히 왕유령이란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가 이미 염대사란 자리를 연관해 놓았고, 곧 경사에 가서 '투공'하여 정식 관직을 얻으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형편이 어려운데다 힘이 되어 줄 배경도 없었던 왕유령은 매일 찻집에 앉아 싸구려 차로 빈속을 달래면서 세월을 허비하고 있었다. 왕유령은 아직 투공을 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보결은 생각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호설암은 비록 학문이 깊진 못했으나 "불행이 다하면 행복이 찾아오고 즐거움이 다하면 슬픔이 찾아온다."는 인생 철학을 깨닫고 있었다. 호설암은 관직에 오르는 것도 운세에 따라 돌고 도는 운명이라 생각했다. 또한 지금은 형편없이 몰락해 있지만 장차 왕유령이 부귀와 권세를 크게 누릴 인물이라 확신했다. 호설암은 이제 겨우 약관의 나이에 꿈 많은 시절을 보내고 있었고, 마음 속에 그리는 자신의 모습은 정의롭고 용감하여 어려운 사람을 구해 주는 호협의 모습이었다. 비록 자신이 귀인은 못 된다 하더라도 수중에 이미 결손으로 처리된 공금 5백 냥이 있는 만큼 남을 도와 대업을 이루는 데는 부족함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호설암은 일생의 중요한 기회를 왕유령에게 걸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에게 다가갔다. "형님, 뭐가 그리 바쁘십니까? 잠깐만 기다리세요. 한 가지 보여드릴 게 있습니다." 호설암은 허리춤에서 헝겊 주머니에 겹겹이 싼 5백 냥짜리 은표 한 장을 꺼냈다. 이 돈은 신화 전장에서 이미 결손 처리된 것으로 운좋게 수금을 하긴 했지만 전장에 돌려주지 않고 자신이 따로 전장을 차리는 데 자본금으로 쓸 마음으로 간직하고 있던 것이었다. 돈으로 돈을 버는 것보다 사람으로 돈을 버는 것이 훨씬 멋지고 고명한 방법이라 생각한 호설암은 자신의 전 재산을 왕유령이란 인물에게 투자하였다.



은표를 받은 왕유령은 정신이 나간 듯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렇게 큰 돈을 낯선 사람에게 아무 조건 없이 선뜻 건네준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호설암의 진심과 성의를 알고는 그만 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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