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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신화 디즈니

아리마 데츠오 지음 | 북스토리
경영의 신화 디즈니

아리마 데츠오 지음/박영난 옮김

북스토리/2002년 2월/304쪽/12,000원



제1장 왕국의 계승자들

1966년, 월트 디즈니가 세상을 떠났다. 그가 만년에 온 정열을 쏟아 부었던 꿈의 결정체인 디즈니월드는 한창 건설 중이었다. 1971년, 이번에는 그의 형 로이가 동생의 곁으로 갔다. 그의 죽음은 1971년 10월 디즈니월드가 개장한 후 2개월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디즈니월드와 디즈니랜드라는 두 개의 테마파크와 월트 디즈니 픽쳐스라는 영화회사로 이루어진 ‘마법의 왕국’을 남겼다.

당시 이 왕국은 거대하기는 했지만 아직 개척해야 할 땅과 기회들이 널려 있는 공간이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디즈니월드다. 플로리다 주에 있는 디즈니월드의 부지는 1만 1331평방미터나 되는데도 불구하고 그 안에는 매직 킹덤이라는 호텔 3개뿐으로 그 밖의 부지는 개발의 손길이 전혀 미치지 않았다. 디즈니월드 안의 두 번째 테마파크인 에프콧센터가 완성된 것은 1982년이 되어서였다. 월트가 강조했던 미래도시를 위한 기본계획의 대부분은 아직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

로이의 사후 그 엄청난 가능성이 잠재된 ‘마법의 왕국’을 계승한 것은 커드 워커, 론 미러, 돈 티텀, 로이 에드워드 등의 디즈니 중역들이었다. 회사로서는 극히 불행한 일이지만 월트와 로이가 구축한 ‘마법의 왕국’을 이어받은 이 네 명은 각각 월트파와 로이파로 나뉘어 서로 대립하게 된다. 하지만 이와 같은 대립은 디즈니 형제 사후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생전부터 계속되어 왔던 것으로 왕국의 계승자들은 디즈니 형제의 막대한 유산뿐만 아니라 어둠의 유산까지도 물려받았던 것이다.

불화의 병력

원래부터 월트와 로이는 대조적인 성격의 소유자들이었다. 월트가 예술가이면서 몽상가적인 기질을 가진 인물이었던 것에 반해 로이는 현실적인 실무가였다. 이들은 정반대의 성격으로 인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균형을 유지해 왔지만 다툼 역시 끊이지 않았다. 특히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데 있어서 월트는 굉장히 자기중심적인 인물이었다. 형인 로이는 월트의 꿈을 이해하고 실현시키기 위해 언제나 분주했다. 그러나 거래 상대와 교섭하고, 자금을 조달하고, 거래를 성사시켜 하나의 사업이 궤도에 오르면 월트는 또 다른 꿈에 빠져들었는데 대부분의 경우 지금까지 쌓아올린 사업의 성과들을 위험에 빠지게 할 수도 있는 그런 것들이었다.

월트가 애니메이션과 영화제작뿐만 아니라 디즈니랜드에까지 손을 뻗자 눈에 띄게 악화되기 시작한 두 형제의 싸움은 수 년간 이어졌다. 종국에는 양쪽 모두 변호사를 선임하여 싸우게 되어 월트가 회사를 그만두고 독립 프로듀서로서 탤런트 에이전시에 소속되어 회사는 이 탤런트 에이전시를 통해 창업자인 월트를 고용한다는 우스꽝스러운 사태로까지 발전하였으나 최종적으로 형제가 서로 조금씩 양보하여 회사를 둘러싼 형제 간의 긴 전쟁은 끝이 났다. 월트는 로이의 63세 생일날 인디언의 풍습을 흉내내 ‘평화의 파이프’를 선물로 보냄으로써 표면적으로는 화해를 한다.

왕국의 황혼

디즈니 프로덕션즈는 1970년대 말까지 경영상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본업인 영화제작 부문과 주된 수입원이었던 테마파크 부분에서도 점차 수익이 오르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경영악화의 원인은 경영진의 불화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곳에 있었다. 디즈니 프로덕션즈를 거대화시키고 지탱해 온 이른바 시너지가 움직이지 않게 된 것이다. 디즈니 왕국의 후계자들은 왕국을 번영시켜준 이 시너지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그 결과로서 막대한 투자비용이 드는 영화제작을 꺼리고 소홀히 취급했다.

디즈니 프로덕션즈를 번영시켜준 시너지는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잇달아 히트하면서 테마파크나 디즈니 상품에 파급되고, 나아가서 다음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히트 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주는 형태로 움직인다. 영화도,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만들지 않는다면 디즈니 프로덕션즈에 대한 인지도와 애착도 잃게 되는 것이고,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도 엷어져서 관객, 시청자,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힘을 잃게 된다. 결국 그것은 테마파크의 입장료 감소로 이어지게 되면서 디즈니 상품의 매상도 저하되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월트 사후 영화제작 부문의 부진은 너무나도 심각했다. 특히 가장 자신했던 애니메이션 제작 부문에 있어서도 히트작이 나오지 않았다. 실사 부문도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보다는 히트작의 리메이크와 동시상영이 줄을 이었다. 영화제작 부문이 이와 같은 상태가 될 때까지 방치된 것은 디즈니가 테마파크 부문에서 안정적으로 거액의 이익을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해서 테마파크라는 안정된 수입원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작을 소홀히 하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제작 부문의 저조는 자연히 테마파크와의 시너지가 움직이지 않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2장 늑대의 표적이 된 왕국



왕국으로 몰려드는 늑대들

1980년대 미국 전역에서 기업합병, 매수가 활발히 행해졌는데 매수 대상 기업 중에 미디어 기업이나 영상 제작회사가 많았다는 것도 1980년대 매수 붐의 특징일 것이다. 영상 제작회사는 매입가가 싼 반면에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콘텐츠 부족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되었기 때문에 소프트 자산의 평가가 높고 동시에 제작 부문의 수입 증가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미디어 기업 쪽은 통신기술의 진보에 따른 규모 확대와 네트워크화가 수입 증대의 일익을 담당한다. 합병으로 기업이 커지면 커질수록 시너지가 움직이는 것이다. 당시 매수 붐을 타고 마이클 밀켄 등이 정크 본드(평가기관의 평가가 낮고 투자위험이 많은 채권)로 거액의 자금을 긁어모은 뒤 이것으로 레버리지드 바이아웃(매수목표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거액을 빌리는 일)을 짜 맞춰 수십억 달러의 거래를 성립시켰다.

마이클 밀켄은 월트 디즈니 프로덕션즈를 매수하기 위해 20억 달러를 융자해도 좋다고 로이 에드워드에게 제안했다. 로이는 1977년에 이사직을 사임한 뒤 당시 디즈니의 최고 경영 책임자였던 론 미러를 밀어 내고 회사를 자기 것으로 만들 방법을 궁리하고 있던 차였다. 디즈니 프로덕션즈가 소유하고 있는 두 개의 테마파크만으로도 20억 달러를 훨씬 웃도는 자산가치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밀켄은 돈을 떼일 염려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빌린 쪽은 이 정도의 자금을 빌리면 경영권을 손에 넣을 수는 있어도 필경 차입금 변제를 위해서 회사 자산을 조금씩 팔아야만 한다. 적어도 창업자의 일족인 로이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매입을 포기하고 그 대신 자력으로 회사 주식을 70만 주 더 사서 주식 보유율을 5%로 늘렸다.

로이에게 거절당한 밀켄이 순순히 물러날 리가 없었다. 로이 에드워드와의 협상과정에서 디즈니 왕국의 결코 순조롭지 못한 항해에 대해 알게 된 이상 이러한 정보를 최대한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이 정보는 내부자로부터 얻은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디즈니 주식을 사들이는 것은 명백한 위법행위였다. 그래서 밀켄은 기업탈취 전문가인 솔 스태인버그에게 로이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제안을 한다. 한편으로 밀켄은 확실한 돈벌이라고 여기고 친구인 아이반 보스키에게도 디즈니 주식을 은밀히 사들이게 했다. 하지만 아무리 비밀리에 해도 단기간에 대량의 주식이 움직이자 이윽고 디즈니 프로덕션즈에 기업탈취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소문이 월가와 투자가들 사이에 퍼져 나갔다.

한편 밀켄의 은밀한 유혹을 받은 스태인버그는 자신이 갖고 있던 주식을 처분해서 자금을 만들고 디즈니 주식을 마구 사들였다. 그리고 1984년 3월에 스태인버그는 연방증권 거래위원회에 그 보유율이 6.3%에 달했다고 보고했다. 그는 거기다 12억 달러의 자금을 준비하여 디즈니 주식을 공개 매수함으로써 높은 가격으로라도 사들일 의사가 있음을 표명하고 나섰다.

프로젝트 판타지

이에 놀란 디즈니 경영진은 투자회사인 모건 스탠리에게 대책을 상담했고, 그들은 우호적인 대주주를 만들 것을 권유했다. 경영진은 우호적인 주주에게 대량의 디즈니 주식을 넘겨주어 적대적인 상대에게 더 이상의 주식이 팔려 넘어가는 것을 막고, 동시에 우호적 대주주와의 연대로 자식의 주식 보유율을 적의 주식 보유율보다 웃돌게 해서 경영권을 지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우호적 대주주를 ‘백마의 기사’로 암호명을 붙이고 재빨리 ‘백마의 기사’가 될 수 있을 법한 코카콜라나 코닥 등에 연락을 취했다. 이 과정에서 떠오른 것이 플로리다의 토지개발회사인 아비다 사 주식과 스와프거래에 의한 매수였다. 부동산 출신인 부회장 레이 와트슨은 평소에 플로리다의 부동산 자산을 활용할 필요성을 통감하고 있었던 차였다.

아비다 사의 사주인 시트 바스에게 자신의 회사 주식을 디즈니 프로덕션즈에게 넘기고 그 대금을 디즈니 주식으로 받으면 디즈니 프로덕션즈에게 있어서는 부동산 개발을 위한 회사가 손에 들어오는 동시에 우호적인 대주주를 얻을 수 있다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생겼다. 한편 시트 바스 쪽은 주식의 교환이기 때문에 절세감면이라는 효과가 있고, 플로리다의 광대한 토지와 두 개의 테마파크를 갖고 있는 대기업의 필두 주주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결국 ‘백마의 기사’는 시트 바스가 접수하게 되어 거래는 성립한다. 시트 바스는 디즈니 프로덕션즈에 아비다 사를 건네주고 그 대신에 디즈니 전체 주식의 8.9%에 해당하는 3,130만 주를 손에 넣는다. 이것으로 보유 주식의 비율이 내려가게 되자 영향력이 약해진 로이 에드워드는 투자고문인 스탠리 골드와 자신의 처남인 피터 딜리를 이사 자리에 앉혔다. 이로써 ‘브레인 트러스트’는 타협을 한 것이다.

이제 솔 스태인버그는 ‘백마의 기사’ 등장으로 상황이 점점 불리해지자 슬슬 물러나야 할 시기라고 판단했다.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디즈니 주식을 3억 2500만 달러의 높은 가격으로 디즈니 프로덕션즈에 되팔고 탈취 레이스에서 물러난다. 그러나 바로 그 시기에 미니어폴리스의 어빈 제이콥스는 디즈니 주식을 6%까지 사들이면서 스태인버그를 대신해 탈취 레이스에 참가하였다.

커드 워커와 론 미러는 어빈 제이콥스가 여전히 대량의 디즈니 주식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더 사들이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그리팅 카드회사의 깁슨 그리팅과 제2의 합병을 추진하려 했다. 하지만 로이 에드워드를 비롯한 세 명의 이사들과 바스가 낮은 주식 보유율을 우려하여 합병을 반대하게 되고 결국 합병은 성사되지 못했다. 바스는 이 과정에서 로이 에드워드 등과 손을 잡고 그들이 권유하는 사람을 톱으로 앉혀 놓고 난 뒤에 상황을 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는 보스키와 멜켄이 사 모았던 주식을 당시 시장가격보다 2, 3달러 높은 주당 60달러에 사들인다. 그는 제이콥스가 가지고 있던 주식 역시 사들여 주식 보유율을 약 24.8%까지 끌어 올렸다. 그리고 탈취극은 완전히 막을 내렸다. 결국 이 소동으로 론 미러는 최고 책임자로서의 미숙함으로 일련의 기업탈취 소동을 불러일으켰다는 이유로 이사회를 통해 밀려난다.

친족회사로부터의 탈피

기업을 탈취당할 위험이 사라지고 사태가 수습되자 기묘한 상황이 벌어졌다. 월트파와 로이파의 오랜 불화가 원인이 되어 이런 일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수습되는 과정에서 양파의 대립구도는 흐지부지된 것이다. 월트파도 로이파도 분쟁 중에 여러 사람들을 끌어들인 결과 사태는 양파의 대립을 넘어서는 것으로 진전되었기 때문이다. 월트파가 회사를 적대적 매수에서 지키기 위해 끌어들인 시트 바스 일파는 깁슨 그리팅 매수 건을 계기로 탈취극의 원흉인 ‘브레인 트러스트’(로이 에드워드를 필두로 한)와 손을 잡았다. 즉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된 것이다. 그리고 시트 바스와 연대했던 ‘브레인 트러스트’는 최초의 계획을 변경하여 최고 책임 경영자로서 로이 에드워드가 아니라 회사 외의 다른 인물을 기용하려고 했다.

따라서 월트파가 패자라는 것이 분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누가 승자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확실한 승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월트파와 ‘브레인 트러스트’의 다툼으로 어부지리를 얻은 시트 바스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이 회사는 디즈니 가의 친족회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제3장 왕국의 개조

위기를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디즈니 프로덕션즈는 이미 월트파와 로이파라는 대립구도를 넘어선 곳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오히려 새로운 체제는 지금까지의 월트파와 로이파의 대립, 또는 거기서 파생된 복잡한 갈등관계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서 새로운 인물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누구를 뽑지 않을 것인지는 확실히 결정되었는데 정작 누구를 뽑을 것인지가 오리무중이었다. 구체제가 붕괴되고 톱을 비롯한 구체제의 주된 인물들이 무대에서 내려간 디즈니 왕국은 기묘한 진공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그 진공상태를 메워 줘야 할 세 세력이 복잡한 생각과 힘의 논리 속에서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들 세 세력이란 ‘브레인 트러스트’, ‘시트 바스’, ‘필 호리’였다.

아이즈너 취임의 의의

‘브레인 트러스트’와 로이 에드워드가 톱으로 뽑고 싶어했던 인물은 당시 파라마운트의 사장으로 지내며 제작의 길을 걸어왔던 마이클 아이즈너였다. 그들은 디즈니 프로덕션즈와 같은 회사의 최고 경영자로는 아이즈너처럼 창조적인 인물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이사의 한 사람으로서 디즈니 일족에게도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필 호리는 20세기 폭스의 최고 경영자였던 데니스 스탠필을 강력히 추천했다. 그 이유는 그가 당시 경영자들의 이상이었고 회사 경영에 있어서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최고 경영 책임자를 선출하는 이사회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얻으며 마이클 아이즈너가 왕국의 지도자로서 선출되었다.

디즈니가 경영자 타입의 웰스도, 스탠필도 아니고 창조적 타입인 아이즈너를 디즈니의 일인자로 기용했다는 것은 왕국의 재생을 플로리다의 부동산 개발보다는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작을 중점적으로 수행해 나가겠다는 것을 의미했다. 지금까지 축적한 것에 의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새로운 사업에 뛰어드는 일은 월트의 사후 시들어 버린 월트의 정신을 다시 한 번 되찾는 것을 의미했다. 단 월트에게 로이가 있었던 것처럼 아이즈너에게도 웰스가 따라붙는다. 디즈니 형제가 사라진 후 황폐해진 ‘마법의 왕국’은 디즈니 형제와 닮은 콤비를 기용하게 된 것이다. 이 콤비 밑에서 디즈니 왕국은 디즈니 시너지를 되찾고 예상하지 못했던 기적의 급성장을 이루게 된다.



제4장 회생하는 왕국

디즈니 프로덕션의 신 경영진은 당연히 지금까지와는 다른 체제를 수립하고 과감한 혁신을 해야만 했다. 『어둠 속의 왕자 디즈니』의 저자 마크 엘리옷은 디즈니의 체제 쇄신을 이처럼 표현했다.

아이즈너와 카첸버그는 디즈니 프로덕션즈의 방식을 완전히 바꿨다. 밀러와 그의 팀은 3시간 골프를 친 뒤에 2시간 점심을 먹는다는 한심한 라이프스타일에 익숙해 있었다. 스텝들은 나태한 경영진들의 흉내를 냈고, 이것은 영화 제작에도 반영되었다. 아이즈너와 카첸버그는 순식간에 쓸모 없는 종업원들을 내쫓았다. 그때까지 남아 있던 대부분의 관리직에게 퇴직을 권했고 남은 자는 해고 아니면 강등되었다. 1985년까지 400통 이상의 해고통지가 발송되었다. 해고된 사람들의 자리는 아이즈너 자신이 선택한 파라마운트 시절의 동료들로 채워졌다.

디즈니 혁명이 궤도에 오른 1986년, 아이즈너는 주주총회에서 사명을 월트 디즈니 프로덕션즈에서 월트 디즈니 컴퍼니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기존의 이름이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제작회사라는 것을 강하게 연상시켜서 그 외의 사업이 경시되기 쉽다는 것이 사명 변경의 이유였다. 그러나 경영진의 속내는 이 회사가 신체제 아래서 ‘디즈니 혁명’에 성공하고 다시 탄생했다는 것을 강력히 세상에 어필하고 싶다는 것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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