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경영
보스턴컨설팅 전략연구소 지음 | 21세기북스
전쟁과 경영
보스턴컨설팅그룹 전략연구소 편저/보스턴컨설팅그룹 서울사무소 옮김
21세기북스/2002년 1월/245쪽/13,000원
경영자를 위한 전략론
비즈니스는 전쟁이 아니다
비즈니스는 전쟁이 아니다. 때로 치열한 경쟁을 강조하기 위해 비즈니스를 전쟁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과장된 말이다. 물론 비즈니스와 전쟁은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현상으로 봤을 때 비즈니스와 전쟁은 명백히 구별되는 개념이다.
그러므로 전쟁을 있는 그대로 비즈니스에 대입하거나, 반대로 비즈니스를 있는 그대로 전쟁에 대입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총체적인 왜곡을 초래할 수 있고, 일부 의미론상의 즐거움과 잊혀지기 쉬운 몇 가지 진부한 이야기 외의 다른 혜택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즈니스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이 새로운 버전의 ‘전쟁론’을 제공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전략 때문이다. 클라우제비츠의 사상을 고찰하면 전쟁과 비즈니스 활동의 공통적인 한 가지 핵심요소, 즉 전략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확실성
과거의 불확실성은 주로 외부에 그 원인이 있었다. 그러나 미래에는 내부에서 그 원인을 찾게 될 것이다. 이제 불확실성의 주요원인은 자유경제 주체들이 그들이 선택한 방식으로 그들간의 관계를 어떻게 재편할 것인가에 있다.
불확실성이 없는 전략의 개념은 공허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불확실성의 질적 변화는 전략의 본질에 반드시 영향을 미친다. 이제 불확실성을 비즈니스의 방해물로 보는 시각을 버릴 때가 왔다. 그리고 탈근대적인 새로운 성질의 불확실성이 변화의 원동력이며,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의 지속적인 근원이라는 좀더 발전적인 전략적 시각을 가질 때가 되었다.
규칙을 파괴하기 위한 규칙
혁신가들도 규칙을 존중하지만 때때로 그들은 이를 위반한다. 심지어 이들은 기존에 정립된 규칙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이는 ‘어떻게 하면 이 규칙들을 가장 잘 피할 수 있을까’하는 전혀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다.
르네상스 도래 이후 규칙을 위반하는 사람이 예술적 명성과 부를 얻었다. 안정을 유지하는 역할을 했던 조합은 개인주의가 등장함에 따라 무너졌다. 중세시대에 추방과 죽음의 대상이었던 이단자와 인습 타파주의자, 갖가지 말썽꾸러기들이 영웅이 되었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에서 이와 유사한 변화를 보았다. 르네상스가 예술을 정복한 후에도 전쟁은 수백 년 동안 여전히 중세시대에 남아 있었다. 모든 초점이 전쟁의 대본인 전술에 놓여 있었고 마지막 결과는 신의 뜻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클라우제비츠는 2명의 독창적인 규칙 파괴자의 출현과 성공을 목격했다. 바로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제와 나폴레옹이었다.
전략: 게임의 끝은 곧 게임의 시작이다
훌륭한 체스 게임은 훌륭한 이야기처럼 시작과 중간, 그리고 끝이 있다. 게임이 복잡한 만큼 차례로 이어지는 단계들은 각 단계마다 구체적인 기술과 기교가 있으며 선수, 구경꾼, 이론가 모두에게 믿을 만한 방향을 제시한다.
비즈니스도 이와 유사했다. 게임이 끝나려면 정해진 규칙이 있어야 했다. 과거에는 그랬다. 혁신의 초기 단계에 뒤이어 경쟁과 강도 높은 경쟁 역학이 나타났다. 이는 마침내 거의 독점자에 가까운 소수나 실질적인 하나의 독점자가 궁극적인 상을 받을 수 있는 합병으로 이어졌다. 이 궁극적인 상은 사실상 게임을 일시 중지시키고 승리자가 경쟁자가 없는 상태에서 투자의 열매를 즐기는 것이었다.
오늘날 소비자와 시장은 더 이상 승리자에게 이런 상을 주지 않는다. 또, 경쟁자와 신규 업체들도 쉽게 빨리 항복하지 않는다. 게임을 끝으로 이끌었던 규칙들은 더 이상 작용하지 않는다. 이제 게임의 종결이나 영원한 승리와 같은 궁극적인 상은 아무리 많은 투자를 하고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하더라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소비자와 경쟁자, 야심 많은 경쟁상대 모두 게임이 지속되기를 원한다. 결국 게임의 끝은 다음 라운드의 시작일 뿐이다.
경쟁자: 아군으로서의 적
전투에서는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매우 분명하다. 아울러 이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확장된 범위의 비즈니스에서는 이와 같은 명확한 구별이 기회를 가로막고 몰락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과거의 경쟁자가 특정 분야에서는 동맹자가 되는 시대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눈에 띄는 객관적인 요인은 다음과 같다.
즉 급격히 짧아진 제품 개발 사이클로 발생한 예측 불허의 상황,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의 중요성 부가, 글로벌 스탠다드(standard)의 필요성 등이다. 한편, 참여자들이 동맹을 결성하고 해체할 뿐만 아니라 다른 동맹을 분열시키는 것을 허용하는 게임의 경우 이러한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게임보다 더 풍부하고 흥미진진한 전략이 나올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동맹이란 더 높은 차원의 경쟁적인 행동으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경쟁자들은 현재는 비록 적이지만 미래의 또는 다른 분야에서는 잠재적인 동맹자로 바뀔 수 있다. 아마 그 반대의 경우도 배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군과 적이라는 양극의 대립된 개념은 이제 구분하기 애매해졌다.
고객: 카멜레온
군주, 왕 또는 황제라는 사람을 자세히 조사한 결과 이들이 고객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인자한 통치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고객들은 수시로 바뀌는 카멜레온과 같은 존재이다. 고객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그들이 변덕을 부릴 때마다 대응하는 것이 전투의 전술로서는 유용할지 모르지만 현명한 전략은 될 수 없다. 고객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은 과거에 귀를 기울이는 것과 같다. 과거에 안주하는 이들에게 이는 아주 좋은 발상이다. 그러나 엄청난 위기 상황에 있는 사람들은 미래를 향한 자신의 직관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전략적 도구는 없다
클라우제비츠의 철학은 궁극적으로 사령관과 임원들은 단순히 전략을 세울 때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전략을 생각하는’ 단계에 도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같은 논리의 완전한 의미를 생각한다면 ‘전략적 도구’라는 개념은 존재할 수 없다.
적절한 전략적 도구는 훌륭한 경영과 동일시되는 것이 현재의 추세이다. 또 실제로 이 도구들이 많은 이점을 제공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전략적 도구라는 개념이 전략의 세계에 적용되기 시작하자 전략적 정신의 순수성은 희석되었다.
군사전략에서 클라우제비츠가 실증적인 교리를 부정한 것은 핵심적인 인식이자 도구와의 작별이다. 이제 비즈니스도 도구와 작별을 해야 한다. 도구의 타당성은 도구를 과거의 안정적인 현상이라는 일부 부류에 적용할 때에만 인정된다. 안정의 시대에는 도구를 믿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급격히 변화하는 시대에는 이러한 확신이 더 이상 보장되지 않는다.
제1장 천재는 전장에서 만들어진다
희미한 빛을 찾는 힘
전쟁은 불확실성의 세계다. 전쟁에서 행동의 기반이 되는 요소 중 3/4는 불확실성의 안개 속에 있다. 그래서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 진리를 감지하려면 섬세하고 날카로운 지적인 힘이 필요하다. 평범한 정신도 우연히 이 진리에 도달할 수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불완전한 이성은 평균적인 결과만을 낳는다.
따라서 정신이 이 불확실한 상황과의 끊임없는 전투에서 살아 남으려면 두 가지 특성을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 첫 번째는 이러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진리로 인도할 수 있는 내적인 빛의 흔적을 발견하는 이성이며, 두 번째는 이 희미한 빛이 인도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가겠다는 용기이다. 전자를 ‘혜안’이라 하며 후자를 ‘결단력’이라고 말한다.
전쟁을 위해 어느 정도 수단이 필요한지 파악하려면 우리는 우리와 적의 정치적 목적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는 적국과 자국의 능력과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는 적국의 정부와 국민이 지닌 특성과 역량은 물론 자국의 정부와 국민이 지닌 특성과 역량을 감안해야 한다. 다른 국가들과의 정치적인 관계와 전쟁이 이 관계에 미칠 수 있는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이 모든 복합적인 것들을 가려내고 여러 가지 요소들을 한데 엮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신속하게 정답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진정한 천재의 번뜩임이 필요하다.
한편, 결단력은 특정한 경우에 나타나는 용기 있는 행동을 말한다. 불확실한 상황을 극복하는 결단력은 이성, 즉 이성의 매우 특수한 성향을 통해서만 나올 수 있다. 단순히 더 높은 차원의 식견과 감정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결단력을 이끌어낼 수 없다. 예를 들어 가장 어려운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탁월한 지적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자. 그리고 이들은 많은 일들을 해결할 수 있는 용기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상황이 어려워지면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이들의 용기와 통찰력은 서로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둘이 서로 다가서지 않기 때문에 제 3의 성질인 결단력을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결단력의 존재가 정신의 특수한 성향에 기인한다고 본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성향은 똑똑한 정신보다 강력한 정신에 더 가깝다. 낮은 지위에서 최고의 결단력을 보였던 사람들이 높은 지위에 오르면 이 결단력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결정을 내려야 할 필요성을 인식함과 동시에 ‘잘못된’ 결정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을 본다. 그리고 당면한 문제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이성이 본래의 힘을 잃는 것이다.
이론은 교리가 아니다
과거에는 ‘전쟁술’과 ‘전쟁학’이라는 용어가 단지 물질적인 목적과 관련된 지식과 기술만을 일컫는 것이라고 여겼다. 이 지식과 기술의 목적은 무기조달과 준비, 무기의 사용, 요새나 보루의 축조, 군대의 조직, 그리고 군대 기동의 메커니즘 등이었다. 전체적인 접근방법은 오직 물질적인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칼을 만드는 대장장이의 기술을 펜싱에 적용할 수 없듯이 이 기술은 새로운 전쟁에 적용할 수 없었다. 새로운 전쟁은 중세시대의 백병전으로부터 보다 질서정연하고 조직적인 형태로 발전했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서서히 전쟁의 여러 가지 사항들을 고찰해야 했다. 그리고 의견 충돌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도록 일련의 원칙과 규칙이 필요하였다. 그래서 원칙이나 규칙, 또는 심지어 전쟁의 운영에 대한 전체적인 체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사업가들은 기존의 비즈니스에 대한 규칙파괴라는 가치를 잘 알고 있다. 즉 비즈니스 혁신을 통해 과거를 타파하고 새로운 규칙을 도출할 수 있는 것이다. 당연히 전략의 핵심 부분은 새로운 게임의 법칙에 따른 업계의 지속적인 변화이다. 비즈니스계의 인습 타파자들은 과거의 규칙을 타파하는 데 성공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새로운 기술 표준을 정립하거나, 새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거나, 전혀 새로운 제품군을 개발했다. 또한 이들은 대부분 예외 없이 해당업계의 신출내기들이다. 왜냐하면 법칙을 위반하고 기존의 믿음을 무시하는 것은 이를 만들고 이를 통해 혜택을 보았던 사람들에게는 가장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클라우제비츠가 비난하는 주요 대상은 상투적인 이론과 이를 무조건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기존의 규칙을 이론의 영원 불변한 요소로 성문화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규칙 위반을 알 수 없는 원인과 영감에 의한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제2장 불확실성 속에서 빛나는 이성
내가 적을 지배하는 것만큼 적도 나를 지배한다
전쟁은 기술과 학문이라는 영역의 일부가 아니다. 전쟁은 잔인한 방식으로 해결되는 거대한 이해와 충돌이다. 바로 이 점에서 전쟁은 다른 충돌과 구별된다. 전쟁은 기술에 비교하는 것보다 오히려 무역에 비교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왜냐하면 무역도 인간의 이해와 활동의 충돌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심지어 전쟁과 더욱 가깝다.
전쟁은 힘의 행동이며 그 힘의 적용에는 한계가 없다. 각 당사자는 상대방을 자극하고 이론적으로는 극단적일 수밖에 없는 상호작용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군사행동을 사용하여 적이 우리 뜻대로 행동하게 하려면 우리는 적이 완전히 방어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또는 적이 그 결과에 의해 사실상 위협을 받는 상황에 처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전쟁은 죽은 집단에 대한 살아 있는 힘의 행동이 아니다. 오히려 전쟁은 언제나 살아 있는 두 힘의 충돌이다. 여기서 다시 상호작용이 등장한다. 내가 적을 타파하지 못하는 한, 나는 적이 나를 타파하지 않을까를 두려워해야 한다. 따라서 나는 적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적을 지배하는 것만큼 적도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마찰을 알아야 승리한다
전쟁에서는 모든 것이 매우 단순하다. 그러나 가장 단순한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계속 논의되는 이 어려움이 실제로 어디에 존재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또 사령관이 왜 반드시 뛰어난 재기와 비범한 정신적 능력을 소유해야 하는지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전쟁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이 모든 것을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변화를 일으키는, 보이지 않지만 도처에 존재하는 요인을 설명하는 것은 여전히 힘든 일이다.
예를 들어 한 여행자가 어두워지기 전에 두 역을 더 가겠다고 오후 늦게 결정했다고 생각해보자. 포장도로로 4~5시간만 더 가다가 도중에 각 역에서 말만 갈아타면 된다. 그러나 다음 역에 도착했을 때 그는 역에 말이 없거나 병든 말들만 남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지형은 험하고 길은 황폐하다. 날은 점점 어두워진다. 이렇게 힘든 여정 후, 다음 역에 이르렀을 때 보이는 것이라곤 볼품없는 숙박 시설이라 할지라도 그 여행자는 기쁠 것이다.
전쟁도 마찬가지다. 결코 이론상 적절히 고려될 수 없는 수많은 사소한 사건들로 효율성이 저하된다. 그리고 인간은 언제나 계획한 목표에 훨씬 못 미친다. 이러한 어려움은 되풀이해서 발생한다. 그리고 전쟁을 경험한 자만이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일종의 마찰이 일어난다.
대대장은 주어진 명령을 수행한다. 대대는 높은 사기로 매우 단결되어 있으며 지도자는 헌신적으로 의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상황은 다르다. 이론상으로는 터무니없고 진리가 아닌 모든 것들이 전쟁에서 실제로 나타난다. 대대는 항상 많은 사람들로 구성된다. 그리고 이들 중에서 가장 하찮은 사람이 일을 중단시키거나 그르치게 할 수도 있다.
이러한 마찰은 기계학에서와 같이 몇 개의 지점에만 집중되지 않는다. 곳곳에서 우연과 접촉하기 때문에 그 결과는 계산할 수 없다. 하지만 훌륭한 장군이라면 이러한 마찰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마찰을 극복하고 마찰 때문에 작전의 정확성이 훼손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한편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소식보다는 나쁜 소식을 믿으며, 나쁜 소식을 다소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이 나쁜 소식들은 파도처럼 빨리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으로 보고된 위험은 분명한 이유도 없이 파도처럼 계속 밀려든다. 밀려오는 파도에 맞서는 바위처럼 사령관은 자신의 내적 신념을 확고히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이는 결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사령관은 스스로 두려움을 버리고 희망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만 그는 적절한 균형감각을 유지할 수 있다. 확고한 자신감을 통해 이 순간의 압박에서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이처럼 ‘상황을 정확하게 보기’가 어렵다는 것이 전쟁의 가장 큰 마찰 중의 하나이다. 이로 인해 상황은 원래 생각했던 것과는 매우 다른 것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제3장 전략: 전체 행동의 조용한 조화
전술과 전략
전쟁을 한다는 것은 전투를 계획하고 수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전투는 ‘각각 그 자체가 크고 작은 수많은 개별 행동들 - 교전’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교전’이라고 하는 이 개별 행동은 새로운 것을 구성하여 전혀 다른 활동을 유발한다. 즉, 이 교전들을 ‘개별적으로 계획하고 수행하는 것’과 전쟁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교전들을 결합하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를 ‘전술’, 후자를 ‘전략’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