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벌써 절망합니까
정문술 지음 | 청아출판사
나는 전북 임실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어찌어찌해서 원광대학교 종교철학과에 간신히 진학했지만 2년 동안 허송세월만 하다가 결국 군 입대를 결심했다. 신병훈련이 끝나가던 어느 날, 적성검사와 지능검사가 있었다. 그 후 나는 육군행정학교에 배속되었고 거기에서 기획관리, 문서관리 등 서구식 행정실무를 체계적으로 배우게 되었다. 후반기 교육이 끝나자 나는 육군본부에 배속되었다. 육군 부관 감실 통계과에서 일하면서 당시 육군업무 전산화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거기에서 나는 컴퓨터와 통계, 분석작업의 기초 등을 습득하게 되었다. 군복무 중이던 1961년에는 5.16 쿠데타가 일어났다. 어쨌든 다행히 반역자(?)로 몰려 처단되는 일 없이 나머지 군 생활을 거기서 보냈다. 간부들은 나를 중앙정보부로 데려갔고 5급 공무원(현재 9급)을 거쳐 1976년 7월 부이사관으로 승진했다. 나는 거기서 정말 순조롭게 지냈었다. 1979년 12.12 쿠데타가 일어나기 전까지 말이다. 1980년 5월 나는 강제퇴직을 당했다. 그 때 내 나이 마흔 셋이었다.
이후 아는 사람의 소개로 풍전기공을 인수하게 되었다. 그런데 출근한지 일주일도 안 되어 문제가 생겼다. 빚쟁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채권자들이 한두 달 사이에 셀 수 없이 드나들었다. 알고 보니 공장에 있는 기계들까지 담보로 걸려 있었다. 순식간에 2천만 원을 날리고, 껍데기뿐인 공장을 인수한 것이 내 경영의 시작이었다. 허수아비처럼 자리만 지키고 있던 중에 옛 은사의 소개로 백정규를 만났다. 그를 얻은 후 현장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현장경험은 백정규가 보완하고 관리업무는 내가 보았다. 우리는 본격적으로 금형사업을 시작했다.
기술력 확보를 위해 고심하던 나는 수소문 끝에 시오이 세이치라는 일본인 퇴역 기술자를 초빙해 왔다. 풍전기공 직원들은 그로부터 고도의 금형기술을 새로 익혔다. 오래지 않아 '잘 안 되는 게 있으면 풍전기공으로 가라.'는 말이 부천공단에 나돌 정도로 우리의 기술력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금형제작은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대신 사업적인 안정성과 비전이 없었다. 게다가 빚쟁이들과 많은 배신, 가슴 아픈 일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났다. 이쯤에서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직원들에게 미안했다. 나는 훗날을 기약하며 풍전기공을 포기했다. 물론 얻은 것도 많았다. 주먹구구로나마 사업과 경영이란 것을 배웠고 많은 사람들을 겪었다. 그리고 몇 명의 사람도 얻었다. 나는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스스로를 격려했다.
그 후 나는 공무원 시절에 공식, 비공식적으로 알던 각계 각층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밥과 술을 내는 대가로 잡다한 정보들을 수집했다. 한동안은 증권 객장에 출근하다시피 나가면서 증권의 흐름과 원리에 대해서도 배워두었다. 자칫 느슨해지기 쉬운 일상이었지만 와신상담의 고사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새로운 아이템을 고민하는 동안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결론은 반도체였다. 반도체 제조장비 쪽이라면 내가 뛰어들 만한 사업도 있을 것 같았다. 관심을 갖고 시장을 분석해 본 결과 굳이 외국에 의존할 필요가 없는 몇 가지 제조장비들이 전량 수입되고 있음을 알았다. 꼭 필요한 물건이지만 모두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제품들이 절박한 내 눈에 걸려들었던 것이다.
나는 '미래산업'이라는 이름으로 사업자등록을 마치고 풍전기공 식구들을 다시 불러들였다. 총 자본금 8천만 원에 사장까지 포함해서 전 직원이 여섯 명밖에 안 되는 아주 조그만 회사였다. 1983년 2월이었다. 3개월도 되지 않아 우리의 제품이 시장을 온통 장악했다. 대여섯 명의 직원들로는 터무니없는 주문물량이 몰려들었고 우리는 급하게 사람을 충원했다. 순식간에 매출액이 억 단위로 뛰어올랐고 미래산업은 일약 반도체 조립장치 업체의 반열에 올랐다. 참으로 살맛 나던 시절이었다.
이렇게 회사가 제대로 굴러가기 시작하자 나는 또다시 뭔가 획기적이고 새로운 일을 벌여보고 싶었다. 모험과 도전이 그리워 새로운 장비 개발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자만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 자만으로 인해 얼마 되지 않아 빚은 산더미처럼 불어났고 집은 날아갈 판이 되었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몇 년이 지나도록 눈에 보이는 성과도 없고 의욕도 없어 포기하려던 중 개발 중인 장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기계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러나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사람이 일하는 것보다 4배나 느린 멍청한 기계... 이것을 누가 사준단 말인가. 눈앞이 캄캄했다. 패기와 만용을 착각한 결과였다. 너무나 괴로웠다. 그래서 죽을 결심을 하고 소주 한 병과 수면제를 챙겨들고 청계산을 올랐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마음 한쪽에서 설명할 수 없는 희망 같은 것이 생겨나고 있었다. 이대로 실패한 인생으로 마감되기도 싫었다. 잃었던 오기도 다시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는 뛰듯이 산을 내려왔다.
비록 다년간의 연구는 수포로 돌아갔지만 그 동안 축적했던 기술력만은 믿음직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기술력보다 한 단계 낮은 제품을 선정해서 남들보다 잘 만들어보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핸들러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도 같았다. 우리는 여기저기서 입수한 핸들러 관련 자료들을 참고로 해서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1차분 설계도와 개발계획서를 작성했다. 나와 백정규는 이것을 들고 부천의 S사로 찾아갔다. 샘플을 검토해 보더니 그들은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거래의 시작을 위해 우리는 프로토타입을 차에 싣고 그 곳으로 찾아갔다. 시험가동에 들어가자 감동스럽게도 테스트 결과는 매우 훌륭했다. 당시 그 곳에서 사용하고 있던 일본 태섹의 'TO-92'보다 생산량이 오히려 훨씬 높게 나왔던 것이다. 하늘이 도운 덕분으로 우리는 그 자리에서 3대의 주문을 받을 수 있었다. 기술지원 차원에서도 계약조건도 우리측에 매우 유리하게 떨어졌다. 그들로서도 우리의 가능성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미래산업은 오랜만에 활기를 되찾았다.2. 마흔 셋의 절망미국의 홈런왕 베이브 루스는 총 714회의 홈런을 기록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무려 1,330여 회에 달하는 삼진아웃을 당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삼진 한 번을 당할 때마다 그는 반드시 실패요인을 분석하고 문제점을 고치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삼진을 당할 때마다 느꼈을 심한 외로움과 열패감은 결과적으로 그를 강인하게 키워냈다. 1,330여 회의 삼진아웃은 714회의 홈런을 가능하게 했던 밑거름이었던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자에게 미래는 없다. 나는 우리 엔지니어들에게 무엇이건 하고 싶은 대로 해 보라고 권하고 실패하더라도 진심으로 격려한다. 그리고 '연구개발에 있어서는 경제 개념을 갖지 말라.'고 말한다. 경제 개념을 없애라는 말은 어떠한 실패도 추궁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연구개발에는 언제나 열 번의 실패와 한 번의 성공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열 번의 실패가 무섭다는 이유로 단 한 번의 시도조차 포기한다.
우리 공장의 한 구석에는 개발에 실패한 장비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다. 실패를 잊지 말자는 뜻이기도 하지만 실패와 익숙해지자는 뜻이기도 하다. 미래산업이 그 동안 개발한 장비들은 대략 30종류 가량 된다. 그 중에서 20여 종은 기계라고 할 수도 없는 것들이다. 대여섯 종은 그럭저럭 개발비 정도는 건졌다. 나머지 서너 종의 장비들이 결국 지금까지 미래산업을 먹여 살리고 있는 셈이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어떤 성공도 없다. 또한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한계와 단점들에 쉽게 좌절하면 아무런 발전도 없다. 탈무드에서 말하는 '가장 유능한 사람'이란 '모든 경우로부터 배우는 사람'이다. 그 '모든 경우'란 긍정적인 것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것들을 같이 일컫는 말이다. 움직이는 모든 행위에는 흑자가 숨어 있다. 그것을 발굴하여 곱게 갈무리할 능력과 안목만 있다면 어떠한 실패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흑자경영법'이다.
1995년 12월, 모 대기업이 실시하는 협력업체 사업실적 평가에서 미래산업이 국산화 부문 금상을 수상하여 상금 1억 원을 받았다. 그 돈으로는 첨단측정기를 구입했다. 별도로 회사 돈 2억 2천만 원을 들여 전 직원에게 200%의 특별보너스를 지급했다. 이런 기분 좋은 '빌미'를 미래산업은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중소기업이 대기업 흉내내다가 가랑이 찢어진다며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엄밀히 말하면 흉내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경쟁하는 것이다. 어느 회사가 더 직원들을 위해 노력하는 회사인지 한 번 판가름해 보자는 것이다. 이런 선의의 경쟁이라면 충분히 의미도 있지 않은가. 회사가 발전해야 직원들의 삶의 질도 발전할 수 있다. 직원복지는 회사에 재투자하고 남은 돈에 대한 직원들의 권리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가능하다면 회사는 고급스럽고 기능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참아주어야'하는 회사보다는 '자꾸만 출근하고 싶은' 회사를 만들고 싶다. 우리 직원들은 간혹 '해피한 우리 회사'라는 표현을 쓴다. 이런 말을 듣는 사장의 기분은 최고다. 그래서 더 '해피'하게 해 주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 '해피한 회사'를 만들겠다는 내 노력을 직원들도 알아주어서인지 14년 동안 우리 회사에서 일하다가 떠난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1. '미래'라는 에너지이 땅에서 장사를 하려면 사기꾼이 되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사실 돈 좀 벌었다고 하는 사람들 치고 구린 구석 하나쯤 없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거꾸로 경영'에 입각해서 다시 말해 본다면 믿음과 자율, 도덕은 회사의 일용할 양식이다. '열심히 일해봐야 나는 맨 날 요 꼴'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면 자기가 다니는 회사가 현재 위험한 상태라고 짐작하면 대충 맞다. 이미 직원과 회사 사이에는 믿음도, 자율도, 도덕도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미래산업에서는 사내 네트워크를 통해서 누구라도 재무구조를 열람할 수 있다. 자기가 벌어들인 돈들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얼마든지 살펴볼 수 있다. 서로를 공개하고 그만큼 서로를 믿으며 일하자는 뜻이다. 기업 내에 믿음이 확보되면 이어서 자율이 생겨난다. 믿기 때문에 알아서들 움직이는 것이다. 잔소리하고 통제하지 않아도 내가 일하는 만큼 투명하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하는 일에 신명을 바치게 된다. 믿음과 자율이 자리를 잡으면 기업은 정직해지고 선해진다. 숨기고 속이기 때문에 매정하고 이기적으로 흘러가는 것일 뿐 사람들의 모임이란 근본적으로 정의롭고 선한 쪽으로 움직이게 마련이다. 결과적으로 착한 기업이 튼튼한 기업이고, 튼튼한 기업이기 때문에 돈도 잘 벌 수 있다. 편법이나 부도덕한 방법으로 돈을 버는 기업들도 우리 사회에는 많지만 결국 역사와 국민들이 그들을 심판하고 응징한다. 굳이 열거하지 않아도 비근한 예는 수도 없이 많다.
배신과 부도덕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그러한 상식을 인정하고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나는 도무지 그러한 태도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무도 착해 보지 않고서 그저 착하면 당한다는 말만 무성하기 때문이다. 그런 어리석은 말들이 어디 있는가. 나는 정말 착한 기업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악한 것이 상식이라면 그 상식으로부터 한 번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거꾸로 경영의 진정한 목표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말 거대한 상식을 거슬러 보는 것, 그래도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는 것이다.나는 언제나 사업을 예술행위처럼 이해했다. 계산과 원칙보다는 낭만과 열정을 보다 중시했다. 돌아가거나 머뭇거리기보다는 부딪치고 실험하는 것을 좋아했다. 기업행위는 실로 예술적 창작의 연속이다. 실패의 고통과 성취의 카타르시스에 있어서도 기업행위와 예술은 일맥상통한다. 기업경영은 매우 고독하고 피 마르는 작업이다. 단 한순간을 방심해도 감각을 잃고 둔해진다. 기업가는 예술가처럼 부단히 노력하고 고민해야 하며, 항상 새로운 것에 대해 마음의 문을 열어두어야 한다. 처세로서의 경영이 아닌 창조로서의 경영이 필요하다. 수입선 다변화 정책을 거부함으로써 단기적인 이익을 포기하고 장기적인 발전가능성을 선택한 것이야말로 '창조적 선택'이었다고 나는 스스로 자부한다. 기업가는 끊임없이 발상을 전환하고 새로운 것을 꿈꿔야 한다. 상상력은 예술가에게 뿐만 아니라 기업가에게도 매우 중요하다. 사업상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나는 간혹 미술잡지를 뒤적이거나 화랑을 둘러본다. 괜한 소리가 아니라 나는 실제로 그림을 보다가 가끔 사업적 영감을 얻는 편이다. 새로운 기법, 구성, 색채 등에서 개척자들의 투지와 모험심을 본다. 그것을 통해 새로운 용기와 기발한 착상을 얻게 되는 것이다.
예술창작에서나 기업경영에서 핵심은 창의력이다. 남들과는 다른 무엇을 항상 찾아내고 끊임없이 그것을 추구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직업이다. 창의력을 잃어버린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창의력을 잃어버린 경영자는 도태되기 마련이다. 훌륭한 경영자들은 저마다의 독특한 예술적 감각을 가지고 있다.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는 항상 자신만의 예술적 감각에 따라 행동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다.
예술창작과 기업행위의 또 다는 공통점은 '항상 최초만이 의미 있다.'는 것이다. 모방과 추종, 혹은 2위나 차석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최초가 가져다주는 성과에 비해 너무나 보잘 것 없다. 미래산업은 얼마 전 액면분할을 시도했다. 우리가 최초로 시도한 액면분할은 전체 주식시장과 미래산업에 엄청난 긍정적 파장을 몰고 왔다. 이후에 액면분할을 시도한 업체들은 모두 미래산업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했다. 최초와 차석의 차이 때문이다.
예술창작자와 경영자의 마지막 공통점은 '돈맛을 알면 퇴보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림을 수집해도 가난한 화가의 초기작들을 수집한다. 그런 그림들에서 나는 고독한 예술혼과 넘치는 상상력을 발견한다. 그러나 미술계에서 자리를 잡고 돈도 벌만큼 번 사람들의 그림은 재미없다. 색채부터 화려해지고 반복되는 매너리즘이 생기는 것이다. 경영에 있어서도 그렇다. 장사하는 사람이 '돈맛'을 모르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경영자들에게는 항상 '헝그리 정신'이 필요하다. 어려운 시절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인지는 몰라도 소위 '성공했다'는 기업가들은 개척하기보다는 '지키기'에 고심한다. 그런 경영자가 운영하는 기업에는 더 이상 발전과 모험이 없다. 다시 말하지만 경영은 창작행위다. 창작하는 자가 알량한 돈맛에 취하면 창작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기업행위에 안정은 없다. 기업행위에 성공은 없다. 과정의 아름다움을 아는 자가 진정한 경영자다.나는 기술개발에 몰두하는 재미로 사업을 했다. 그래서 사람 욕심도 유별난 편이고 기술교육에도 유난히 신경을 쓰는 편이다. 그러나 사람을 구했다고 끝은 아니다. 그들이 자신의 재능을 더욱 계발하고 꽃피울 수 있도록 풍요로운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리더에게는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제대로 키워낼 배포도 필요한 것이다.
스위스 다보스에는 세계경제포럼이라는 기구가 있다. 여기서 1996년에 펴낸 '초고속 성장 기업에 대한 보고서'를 읽어 본 적이 있다. 여기에 따르면 이들 기업의 공통된 특징은 매출액 증가를 절대절명의 과제로 선정한다는 것이다. 그럴 듯한 말이다. 초고속 성장이라면 미래산업도 결코 빠지지 않는다. 우리의 고속성장을 두고 어느 경제지는 '한국은 벤처기업이 유일한 희망'이라고까지 극찬한 일도 있다. 그런데 미래산업은 단 한 번도 매출액 신장을 기업목표로 내세운 적이 없다. 목표가 있다면 기술력 신장 쪽이 맞다. 미래산업은 기술개발비를 충당하기 위해서 돈을 벌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기술개발에 몰두하다 보니 돈은 훗날 저절로 굴러 들어온 셈이다.
많은 기업들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기술도입 등으로 손쉽게 돈을 벌고 안정궤도에 오르고 나서야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