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불변의 법칙
조지 데이비드 스미스 지음 | 거름
위대한 기업가들에게 배우는 경영불변의 법칙
조지 데이비드 스미스, 프레더릭 댈즐 지음/고정아 옮김
거름/2001년 6월/228쪽/8,500원
1. 모험을 선택하라
위대한 기업가들은 스스로 모험을 선택한 자들이다. 그들은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 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해결한 것이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내면, 다시 새로운 방법을 모색했다. 그 결과 그들은 변화에 익숙하게 대응할 줄 알게 되었다. 적어도 변화에 저항하는 것은 변화를 끌어안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터득하게 된 것이다.
“안정성이라는 것은 시냇물에 떠내려가는 죽은 물고기와 같다. 이 나라에서 우리가 아는 유일한 안정성은 변화뿐이다.” - 헨리 포드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이다
포드는 자신이 세운 원칙 위에 기업을 세웠고,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보았던 제품의 대량 생산에 성공했다. 그는 치열한 신기술 연구로 자동차가 미국인들의 주류 소비품목에 합류할 수 있을 만큼 가격을 낮춘 것이다. 이러한 성공의 이면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세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구성해 보는 강인한 의지가 놓여 있었다. 포드는 주변 사람들에게 늘 변화를 맞을 대비를 하라고 채근했다. 자신의 눈에 띄는 사업적 가능성들을 그들이 깨닫게끔 해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기업이 한 번 세워지면 영원할 거라고 생각하던 시절은 이제 끝났다. 오늘날 사업의 성공은 유망한 모든 기회에 끝없이 도전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 위대한 인물 가운데 상식적 규칙을 깨고 스스로 새로운 규칙을 만들지 않는 자는 아무도 없다.” - 앤드루 카네기
모험과 변화를 선택하고 그것에 대응을 하려면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야 했다
급속한 변화는 인류가 농업시대를 벗어난 이후 잠시도 멈춘 적이 없었다. 새로운 상품은 기존 상품을 몰아냈으며, 새로운 사업 방식은 기득권자들을 위협했다. 신기술로 무장한 사람들은 수많은 기존 경쟁자들을 시장에서 내몰았다. 그러므로 기술적 변화를 숙지하는 것은 사업을 하는 데 특히 중요한 핵심 조건이 되었다. 사업이 탄탄대로로 나아가는 동안에도 카네기는 새로이 등장하는 혁신적인 기술을 꾸준히 도입했다. 화학자들을 고용하고 제련소에 실험 연구실을 세운 그의 시도는 기업 연구 개발의 선구적 사례가 되었다.
모험에 있어서 비전은 필수적이다. 그것은 위대한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때문이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은 비전을 갖고 있었다. 이미 1878년에 벨은, 당시의 전화가 전신과 경쟁이 가능한 수준으로 발전하리라 예측했다. 그는 ‘전화’가 ‘전기통신’으로 발전할 것임을 알았다. 그러나 그러한 비전은 너무나 시대를 앞섰기 때문에 그가 처음 이런 말을 꺼냈을 때 벨의 후원자들마저 좀처럼 그를 믿지 못했다. 그러나 벨과 그의 후원자들은 직접 사업에 뛰어들어 노력 끝에 마침내 장차 세계 최대의 전기통신 시스템(AT&T)으로 발전하는 기업의 토대를 놓았다. 1세기 전에 AT&T가 이룬 성과는 현재의 미국 연방정부와 인텔, 제록스 파크, 시스코, 넷스케이프를 비롯한 수십 개 기업들이 총력을 기울여 만들어낸 성과물, 즉 인터넷과 비슷한 것이었다.
시장은 태어나지 않고 다만 만들어질 뿐이다
새로운 상품을 구매하는 고객은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시장은 인공적인 창출을 통해 생겨나는 경우가 많다. 헨리 포드의 사업 또한 저렴한 자동차에 대한 수요가 보이지 않던 시절에 남들보다 몇 걸음 앞서 새로운 자동차 시장을 규정한 데서 시작되었다. 그가 모델 T를 선보였던 1908년 무렵에는, 자동차란 값비싼 사치품일 뿐이었으며 가격은 850달러나 되었다.
제품 개발 후, 그는 곧 생산 공정에 착수해서 리엔지니어링을 거듭해 나갔다. 그와 같은 집요한 노력으로 생산비용과 제품 가격은 꾸준히 줄어들었고 1924년, 당시의 엄청난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모델 T의 가격은 290달러로 떨어졌다. 그는 무려 천만 대가 넘는 차를 팔아치웠다. 이처럼 시장 개발은 신기술 창조만큼이나 많은 노력과 상상력과 비전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한 포드의 경쟁 수단은 가격 인하였다.
대담한 자는 새 길을 연다
궁극적으로 모험 사업의 기축 통화(通貨)는 대담함이다. 헨리 포드, 조지 이스트먼, 토머스 에디슨 같은 인물들 사이에 어떤 공통되는 특징적 인성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발전 단계가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대담함을 지니고 있었고 그것을 밑천으로 삼아 부를 얻었다. 비전이 없었다면 모델 T나 코닥 카메라, 알루미늄 같은 것들을 가능성 있는 사업 아이템으로 구상할 수 없었을 테고,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그것을 구체적인 현실로 실천해 낼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산업가들이 가진 모험가적 성질은 결국 전략이나 전술, 기술이나 시장 같은 것들보다 더 기본적인 것이다. 그들은 어떤 제품을 개발했는가 또는 어떤 사업계획을 구상했는가 하는 것에 상관없이 기존 상황의 범주와 한계들을 뛰어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들을 모험 사업에 뛰어들게 만든 것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자 하는 본원적 욕망이었다.
2. 경쟁을 두려워하지 마라
“우리는 돌과 바위투성이인 곳에서 우리가 갈 길을 새로이 만들어 나가야 했다. 우리에겐 사업을 지탱할 경험도 없었다. 자본을 얻기는 매우 어려웠고, 신용이란 신비 그 자체였다.” - 존 D. 록펠러
모험 정신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한 산업시대의 기업가들이 ‘도적 갑부(Robber Barons)'라는 호칭을 얻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위대한 기업가들은 대부분 냉혹하리만큼 가차없는 태도로 경쟁을 펼쳤기 때문이다. 그들은 전 시대의 작고 정체된 세계를 완전히 뒤엎어버리고 그 자리에 치열한 교환과 전투로 이루어진 전혀 다른 기업 환경을 창조하며 처절하게 경쟁했다.
그러나 최고의 역량을 갖춘 자들은 스스로 감지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 위에 새로운 종류의 사업을 구축하여 시장을 지배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기업 경쟁의 전술을 새로이 써나갔다. 그들은 규모의 경제, 중단 없는 공정, 대량 생산과 분배, 브랜드 마케팅과 같은 전략들을 움켜쥐고 그것을 사업의 지렛대로 삼았다. 그 결과 그들이 일으킨 기업은 오늘날 사람들의 일상에 깊이 침투한 친숙한 이름이 되었다. P&G, GM, 뒤퐁이 그것들이다.
가야 할 지점을 파악하고 나서 돌진하라
카네기 철강과 스탠더드 석유, 포드 자동차 회사를 세운 카네기, 록펠러, 포드는 언제나 회계 상황을 신중하게 점검했다. 그랬기 때문에 사업을 과감하게 재정비하고자 했을 때 그들은 이미 모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록펠러는 스탠더드 석유가 그렇게 빠른 속도로 시장을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항상 면밀하게 관리한 회계 덕분이라고 말한 바 있다. 록펠러는 스탠더드 석유회사가 석유를 담아 팔던 석유통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사업 초기에 록펠러는 클리블랜드의 다른 정유업자들과 마찬가지로 개당 2달러 50센트 하는 통을 구입해서 거기에 등유를 담아 팔았다. 이것은 록펠러에게 큰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자체적으로 석유통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재빨리 통 제조회사를 인수해 필요한 규모로 키웠다. 그러자 경쟁사들까지도 록펠러의 회사에서 석유통을 사게 되었다. 록펠러를 가장 혹독하게 비난하던 사람들도 그가 세심한 회계관리와 전략적 비전의 결합을 통해 업계의 독점자로 우뚝 서게 된 대목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찬사를 보냈다.
자원을 관리하지 못하면 기업도 관리하지 못한다
헨리 포드는 투자자들과 격렬한 싸움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투자자들이 대규모 공장을 신규 건설하는 계획에 뜨악한 태도를 보이자, 포드는 그들의 주식을 모두 사들여 회사를 개인기업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후 그가 건설한 광대한 리버루주 공장은 수직적 통합의 정점이 되었다. 리버루주 공장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산업 세계이다. 그것은 포드 개인이나 회사에 완전한 통제력과 최대의 효율성을 가져다주었다. 많은 기업가들이 포드의 말을 경청하고 거기서 가르침을 얻었다. 하비 파이어스톤 또한 포드의 전략적 태도를 깊이 존경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이다.
“내가 포드에게서 배운 교훈은, 공장은 원료에서 완제품에 이르기까지 전 공정을 한시도 중단 없이 수행해야 한다는 것과, 자원을 관리하지 못하는 사람은 기업도 관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업이 커질수록 절약할 수 있는 여지 또한 많아진다.” -하비 파이어스톤, 1926
새로운 시장은 결단력과 인내에서 나온다
위대한 산업가들은 공장에서뿐만 아니라 시장에서도 격렬하게 경쟁했다. 이들의 경쟁으로 대량 소비와 판매 방법에서의 혁명적인 기법들이 새롭게 등장했다. 시장을 전국적 또는 국제적 차원으로 확대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기업가 자신과 상품과 서비스를 널리 알릴 새로운 방법들을 실험하고 고안하고 확보하고 적용해야 했다. 이런 일에는 비전뿐만 아니라 결단력과 수완, 끈질긴 인내도 필요했다.
정직과 진실은 강하다
전국적 시장이 윤곽을 드러냄에 따라, 기업가들은 소비자들에게 제품과 기업을 확실하게 인식시키기 위해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예를 들어 P&G가 처음부터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는 상점들의 느슨한 연락망 사이에서 평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거래를 공정하게 했고 또 창업자 제임스 갬블이 자신의 일기에 기록한 바 있듯이 원칙을 충실히 지켰기 때문이다. P&G는 광고 마케팅을 할 때 신뢰성의 외피를 두르고, 강력한 캠페인과 환상적이고 달콤한 자극 사이에서 신중한 균형을 유지했다. 좋은 느낌을 전달함으로써 소비자를 유혹하기는 했지만 P&G의 광고는 언제나 진실했다.
“상품을 정직하고 충실하게 만들지 못할 바에는, 정직함이 통하는 다른 곳으로 가라. 설령 그 일이 사람들에게 천대받는 일이라고 해도.” - 제임스 갬블
창의적 아이디어가 결실을 배가시킨다
P&G는 트레이드마크- 초승달과 13개의 별 -를 활용해서 자사의 상품을 알려나간 최초의 기업 가운데 하나이다. 처음에 트레이드마크는 배송업자와 소매업자들에게 상품을 구별시켜 주기 위한 것으로 쓰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P&G는 비슷한 방법이 최종 소비자들을 유인하는 데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1878년, P&G는 흰색 비누를 선보이면서 사업의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P&G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 거기에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쏟아 부었다.
이들은 비누의 이름을 아이보리로 바꾸고 거기에 ‘물에 뜨는 비누’라는 문안을 붙였다. 하지만 P&G가 최고의 성과를 올린 것은 몇 년 후에 아이보리 비누에는 불순물이 1%도 들어있지 않다는 화학 분석 보고서를 공개하면서부터였다. “아이보리 비누는 99와 44/100% 순수합니다.” 순수한 것이 비누의 효능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분명치 않았지만, 이 광고는 효력을 발휘했다.
변화는 결정적인 기회이다
포드가 단순하고 튼튼하며, 수리하기도 쉬운 모델 T를 내놓자 자동차 시장에는 소비자 혁명이 일어났다. 포드는 끈질긴 노력을 통해 모델 T의 제조 과정을 지속적으로 단순화하고, 결국 경쟁자들이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가격을 낮추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런 아이디어를 취해서 합리적인 결론에 이른 사람은 그의 경쟁자인 GM의 앨프레드 슬론이었다. 1920년대 미국시장은 1인당 수입과 가정 소비품목 소비액이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었지만, 포드는 계속 검은 색의 단순한 모델 T만을 생산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슬론은 다양한 색상과 스타일 그리고 폭넓은 가격대의 제품을 줄줄이 선보이기 시작했다. GM은 이러한 시장 세분화 전략과 더불어 할부 판매, 중고차 보상 판매, 유개(有蓋)차라는 혁신적인 변화를 도입하여 미국 자동차 산업에서 포드 사를 멀찌감치 추월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렇듯이 아무리 위대한 기업가라고 해도 끊임없이 전략을 고쳐나가지 않고는 변화의 물결에 휩쓸리고 만다. 슬론은 “경직된 조직을 기다리는 것은 시장의 가혹한 처벌뿐이다.”라고 했다.
3. 관리가 경쟁력이다
“나는 우리의 이 비견할 데 없는 조직이 가진 가치는 공장의 가치 이상이라는 사실을 빈번히 상기시켰다. 내가 자본이라고는 한 푼도 없는 나의 협력자들과 공장 중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면, 나는 기꺼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우리 노동자들에게 갈 것이다.” - 앤드루 카네기
시장에서의 치열한 싸움에서 살아남은 후에 위대한 기업가들이 직면한 가장 큰 숙제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능숙하고 노련한 관리 기술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업을 세우는 것과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이다. 그들에게는 지침이 될 만한 관례가 없었고, 경영이론도 없었으며, 경험 또한 빈약했다. 그들은 현대적 경영이론을 스스로 만들어내야 했다.
진정한 자본은 사람이다
물론 개인적인 힘만으로 모험 기업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록펠러나 카네기와 같은 위대한 경영자들도 경영 관리의 능력 없이는 사업을 진전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주저 없이 인정했다. 카네기와 록펠러는 다음 세대의 기업가들이 인적 자본(human capital)이라고 이름 붙인 것의 중요성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록펠러의 경쟁자도 마찬가지였다. 1879년 송유관 회사의 입찰 경쟁에서 스탠더드 석유에 밀려 떨어진 경쟁자 윌리엄 H. 밴더빌트는 록펠러의 우수한 조직이 스탠더드 석유의 성공에 결정적 원인이 되었음을 인정했다.
훌륭한 기업 경영이란 간단하게 말하면, 특화된 전문 기술들을 효과적으로 결합해 내는 것이다. 록펠러나 카네기 같은 19세기 최고의 조직가들은 기업을 아이디어와 인력의 핵심적 결합으로 보았기 때문에, 기업 내부에 잠재된 재능을 인식하고 개발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록펠러는 이러한 원칙이 전략적 핵심 사항을 확고히 유지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체계적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조직 자체를 위한 조직은 경계해야 한다.
중앙 집권이라는 이름의 족쇄에서 탈출해야 한다
코닥은 내부의 두뇌를 최대로 활용하는 데 발군의 솜씨를 보였다. 결국 이들은 20세기 초반의 비즈니스계에서 가장 강력한 관료조직인 지식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 또한 E. I. 뒤퐁 드 느무르 화약 회사는 새로운 시스템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개별적 기능들을 서로 다른 관리 단위인 부서 속에 포함시켰다. 이렇게 함으로써 전문성은 강화되고, 난잡한 정보들은 제거되었다. 이것의 핵심적인 첫 단계로 각 부서의 대표들은 최대한의 의사결정 권한을 가질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부문 관리자들은 자신이 맡은 분야를 소기업처럼 ‘소유’하고 경영할 기회와 책임을 부여받았다. 이런 혁신적 변화를 도입함으로써 뒤퐁은 중앙 집권적 경영의 족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지식과 정보를 강물처럼 흐르게 해야 한다
슬론은 기업가의 심장을 가진 관료였다. 그는 MIT와 하이어트 롤러 베어링 회사를 거쳐 GM으로 왔다. 하이어트 롤러 베어링 회사는 윌리엄 ‘빌리’ 듀랜트가 공격적인 전략으로 오늘날의 GM을 이루는 여러 자동차 회사와 자동차 부품 회사들을 인수할 때 GM에 합병된 회사였다. 슬론은 듀랜트가 비전을 가진 모험 기업가이지만 경영자로서는 체계성이 부족하다고 보았다. 듀랜트가 마침내 밀려나고 슬론이 새로운 총수로 앉자, 그는 즉각 회사에 지속적이고 집단적인 전략 분석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회사의 정보 시스템을 재구축한 것이다.이후 슬론(GM)은 각 대리점마다 판매 동향 보고서를 작성하게 한 뒤, 이를 지사를 거쳐 본사로 지속적으로 올리는 시스템을 확립했다. 그러면 본사는 자료를 분석하여 수요를 예측하고, 이에 따라 부품 및 재료 구매 규모와 생산 일정을 조정했다. 결국 GM은 전 조직을 하나의 지식 시스템으로 만든 것이다. 슬론의 기업 재조직은 기업 내에서 정보를 더욱 원활하게 소통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회계체계의 질서를 잡고 재정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