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합병의 천재들
커트 슬레이어 지음 | 좋은책만들기
1997년 마이클 암스트롱이 AT&T의 새로운 경영자로 영입되었을 때 회사는 한 마리 병든 개와도 같은 상태였다. 치유불능의 말기 상태에 이른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만약 그대로 방치한다면 AT&T 역시 한때 역사를 빛낸 위치에 있다가 망각 속으로 사라져 간 다른 회사들의 전철을 밟았을 것이다. 그런 암울한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는 기업의 경영자로서만이 아니라, 위생병 역할까지 맡아야 했다. 당시 통신업계는 지진을 겪고 난 후의 도시처럼 지각변동이 심했다. AT&T는 거기에 적응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문제는 우리가 성장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세계적으로 가장 큰 성장 분야인 통신산업에서 말이죠."
자연스럽게 암스트롱은 상황이 예전과 같지 않음을 깨달았다. 장거리 전화 시장 점유율은 1990년대 초반의 약 80%에서 1990년대 후반 들어 60%로 폭락한 상태였다. 게다가 신규업체들로 인해 곧 20% 정도의 시장을 더 잃게 되리라는 분석도 나와 있었다. 게다가 AT&T는 소비자와 차단되어 있었다. 1984년 분할 이후 고객과 접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과거의 자회사들을 통하는 것이었다. 이들 자회사들은 일반 가정에 선을 넣어주는 대가로 연간 150억 달러가 넘는 액수를 요구하고 있었다. 암스트롱은 자전적으로 물었다. "소비자의 의견이 만약 경쟁업체를 통해 온다면 효과적으로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앞으로 '돌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CEO로 취임한 후 처음 90일간을 경영진들과 함께 회의실에 틀어박혀 회사의 현재 위치와 성취해야 할 목표, 그리고 그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방법들을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전략은 간단했다. 바로 광대역 전송망이란 마차에 올라타 돌진하고 싸워서라도 맨 앞 마부 자리를 탈환하는 것! 새로운 목표 역시 간단했다. 전화 서비스, 비디오, 초고속 데이터를 통한 모든 방법으로 개개인과 접속하는 것! 구리선에 의존하는 대신 AT&T는 가정에 파고들기 위해 케이블 산업의 배선조직을 사용하기로 했다.
마이클 암스트롱이 하려는 일은 위험한 일이었다. 그 일은 거의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회사 안팎으로도 완벽한 태도의 변화가 수반돼야 하는 것이다. 또한 새로운 AT&T는 새로운 회사들을 인수하고 시설을 늘려야 했다. 수익을 내려면 시간도 걸린다. 그러나 개선된 부분들이 정착되면 돈이 들어오기 시작할 것이다. 이것은 단기적으로는 어려움이 있지만 바로 암스트롱이 좋아하는 종류의 도전이었다.
이전에도 암스트롱의 진가를 볼 수 있는 전력이 있다. 암스트롱이 처음 항공모함에서 군살 빼는 것을 가능케 한 것은 휴즈 일렉트로닉스라는 미사일을 주력 사업으로 하는 기업의 경영을 맡았을 때다. 사람들은 냉전이 끝나면서 휴즈도 끝날 것이라 예견했다. 그러나 암스트롱은 경비를 30% 삭감하고 미사일 부문과 자동차 부문을 매각했다. 대신 다이렉트TV 사업을 위해 위성사업에 주력했다. 2억 달러를 들여 4년에 걸쳐 만들어진 위성들을 하늘 위로 쏘아 올린다는 것은 전부가 아니면 아예 포기해야 하는 심각한 도박과도 같았다. 그러나 위성사업은 성공했고, 그의 계획도 성공가도를 달렸다.
암스트롱은 앞에 있는 장벽을 극복하는, 혹은 뛰어넘는 능력을 보여주었는데 이것은 어린 시절에 키운 능력이다. 그는 왼손잡이인 탓에 어린 시절 글씨를 쓰는 일에 부닥쳤다. "어머니께서 매일 밤 나를 데리고 식탁에 앉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하고 반복하면서 글씨 쓰는 연습을 시키셨습니다. 어머니는 내게 어떤 일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셨습니다." 고교 시절에는 작은 키로 미식축구팀에 들어갔으나 필드에 내보내주지 않자 하루 5끼에, 웨이트트레이닝으로 168의 키를 183에 근육질의 몸으로 바꾸어 3학년 때는 주장을 맡기도 했다.
AT&T에서 암스트롱은 휴즈에서와 같이 경비 절감부터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는 재직 기간의 첫 12개월 동안에 간접비에서만 16억 달러를 줄였고, 다음 1년간 추가로 5억 달러를 삭감했다. 암스트롱은 비용 절감 전략에 대한 직원들의 호응을 이끌기 위해 현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실수와 지연이 발생하는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직접 고객 서비스센터에 앉아 주문을 처리하기도 했다. 또한 의무와 책임의 정신을 강조했고 두려워하는 정신이 미국의 기업가들을 좀먹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전략의 핵심은 케이블 회사들을 인수하는 능력이었다. 암스트롱은 많은 회사들을 인수했다. 첫 해에는 케이블 거물인 텔레커뮤니케이션(TCI),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화 회사인 텔레포트 커뮤니케이션 그룹, 그리고 몇몇 휴대폰 회사들도 사들였다. 그는 또한 영국의 브리티시 텔레콤과 조인트 벤처를 만들어 국제전화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합했다. 그리고 그 해 말에도, 그 다음 해에도 계속해서 IBM 글로벌 네트워크 사업 부문과 케이블 운영업체인 미디어원 등을 인수했다. 미디어원은 AT&T를 국내 최대 규모의 케이블 운영업체로 만들었다.암스트롱은 장기적인 관점을 택하고 있었다. 그는 장거리 전화처럼 신규업체가 계속 등장하여 AT&T가 통제하지 못하는 분야에서 점유율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항하기 위해 소중한 인적 자원과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봤다. AT&T가 브리티시 텔레콤과 만든 조인트 벤처는 2001년 7백억 달러의 수익을 올리면서 상장될 예정이다.1. 해고 없는 기업합병의 철학 - 존 챔버스(시스코 시스템 회장 겸 CEO)2. 전 직원이 기업합병의 전사로 나서다 - 데니스 코즐로스키(타이코 인터내셔널 CEO)3. 기술이 만드는 미래 세상 - 스티브 케이스(아메리카 온라인 회장 겸 CEO)"AOL의 목표가 단순화인 반면, 컴퓨터 맹신자들은 최대한 많은 기술을 원하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실리콘 밸리 자체의 신드롬이 있습니다."매일매일 펼쳐드는 신문의 경제면에서 우리는 하루가 다르게 규모가 커져 가는 기업합병에 대한 소식을 접하곤 한다. 이제 기업합병의 열풍은 단순한 경제현상의 차원을 넘어 일종의 광란현상처럼 무섭게 번지고 있다. 왜 그럴까? 닷컴 때문인가? 몇 달 사이에 두세 배씩 치솟는 신기술 주식들을 보면서 투자가들은 오프라인 회사의 경영진을 향해 당신들은 왜 저렇게 못하느냐고 잔소리를 해댄다. 그러나 대부분의 회사들이 이러한 종류의 고성장을 요구하는 투자가들의 요구에 부응하기가 어렵다. 때문에 일부 경영자들은 시장에서 요구하는 숫자를 맞추기 위해서라도 무조건 합병 쪽으로 눈을 돌리곤 한다. 성공 여부는 뒷전인 채...
혹은, 기업합병의 열풍이 세계화 탓인가? 시장의 확대 전략을 마련하려는 경영자들은 각 지역마다 사무실을 두어야 할지 고민하게 마련이다. 그런 이유로 많은 미국계 회사들은 시장 진출의 최우선 전략의 일환으로 유럽 및 아시아에 있는 로컬 기업들을 집어삼키고 있으며, 미국 시장을 노리는 유럽계 또는 아시아계 기업들 역시 같은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아니면, 단지 우월하게 보이려는 욕심 때문에? 많은 기업들은 저마다 업계에서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경쟁자를 제치고 최고가 되기 위해 인수나 합병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적어도 그런 경향 자체는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기업합병 전략이 미국 기업이 보여주는 우월한 성과의 비법인 양 무조건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기업합병은 생산라인의 확장을 위한 전략으로 도입되기도 했다. 처음부터 자체 생산라인을 구축하기보다는 다른 회사가 이미 구축한 생산라인을 사들이는 것이 시간적으로나 비용적으로 더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서로 다른 두 회사를 통합함으로써 교차판매나 교차마케팅과 같이 개별적으로는 불가능했던 시너지 효과를 얻기 위해 기업합병이 시도되는 경우도 있었다.
외국의 기업합병 역사는 매우 길고 오래 되었으며, 그만큼 축적된 지식과 경험도 많은 반면 우리의 경우 최근 인터넷 중심의 닷컴 가운데 몇 개의 벤처기업이 활발한 기업합병 거래를 통해 거대한 기업군으로 도약했다느니, 사상누각으로 일순간에 주저앉았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오갈 정도다.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모든 경영자들이 충분히 현명하고 그들의 논리도 충분히 설득력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합병이 실패로 끝났다는 점이다. 인수합병 분야에서 자문 경험이 많은 회계법인 KPMG의 조사 결과, 기업합병 사례 중 약 70% 정도는 실패한다고 한다. 또한 17%의 기업만이 합병으로 이루어진 회사의 가치를 상승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가 기업합병을 바라볼 때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시장이란 변화무쌍한 곳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어제의 결합이 성공적이었다고 해서 내일 또다시 나눠지지 말라는 운명은 없다. 어떤 기업도 영원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시장 표면 아래로 보이지는 않지만 면면히 흐르는 무엇이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시장을 지배하는 시대정신이다. 그것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참된 미학이자 참여 주체, 즉 시장을 선도해 나가는 리더들의 교훈적인 철학이며 경영원칙의 정수(精髓)인 것이다. 이제 기업합병의 천재들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합병 소식이 발표된 날, 시스코는 새 가족이 될 직원들에게 주주 자료, 최고경영진 7명의 전화번호와 이메일 주소, 다양한 복지프로그램이 담긴 파일을 나눠주었다. 그 후 이틀 동 안 세렌트 직원들이 느끼는 불안감을 줄이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없앰으로써 새로운 환 경과 업무에 몰두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일련의 질의응답 시간을 제공했다. 그리고 합병이 공식적으로 이루어진 후 1주일 동안 직원들은 새로운 ID와 명함, 새로운 소프트웨 어가 깔린 개인 컴퓨터, 심지어 시스코 시스템에 연결된 새로운 음성 메일 계정까지 할당 받았다.시스코의 100% 고용 보장 때문에 비전의 공유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만약 두 회사가 실질적으로 결합하기 전부터 기본적인 철학에 있어 의견일치를 보지 못한다면, 신혼여행은 물론 그 이후로도 잘 지내지 못할 전조가 되기 때문이다. 힘을 합쳐 함께 일하는 대신 끊임없이 말다툼이 벌어지고, 정치적으로 긴장감이 고조된 분위기가 팽배해질 것이 분명하다. 이런 분위기는 역효과를 가져와 결국 시장점유율과 경쟁우위의 상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챔버스는 "우리는 회사의 장기적 전략도 검토하고, 그 전략이 우리와 어떻게 잘 어울릴지 검토합니다. 주주와 직원, 고객과 사업 파트너의 구성원 모두를 위해 반드시 장기적인 성공이 보장돼야 합니다. 우리는 또한 사내 문화와 분위기가 서로 유사한지도 살펴봅니다. ... 사내문화가 전혀 다르다면 절대로 성공적인 통합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시스코는 적절한 합병 대상을 가려내는 데 뛰어난 역량을 갖추고 있지만, 우수한 인력을 유치하는 능력 또한 남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회사가 경영진과 엔지니어 관리에 무엇보다 관심을 쏟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회사의 성공 때문에, 그리고 인수한 회사의 직원들이 시스코에서 환영받을 것을 알고 있기에 결과적으로 전체적인 합병 절차가 훨씬 더 수월해진다. 그 결과 챔버스와 시스코의 경영진들은 이미 경쟁자가 인수를 시도하고 있는 회사들로부터 상담 전화를 받는 일이 많다고 한다.신문의 경제면이나 경제잡지를 펼치면 어디에서나 칭찬과 숭배의 표현들로 장식된 존 챔버스라는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시스코 시스템의 회장이자 CEO인 그가 이번 분기에도 또 한 번의 기록적인 이익을 냈다거나, 두세 개의 회사를 더 인수했다는 기사가 실려 있는 것이다. 1995년 그가 CEO로 취임할 당시 시스코의 시장 가치 규모는 90억 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는 당시 가치의 50배 수준을 넘나들고 있다. 이러한 실적을 보고 누가 찬사를 아끼겠는가?
물론 챔버스의 성공에는 행운도 따랐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알맞은 때(인터넷 혁명기)에 알맞은 곳(인터넷 네트워킹 분야)에 있었던 것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인터넷 관련 사업은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여간한 경영자가 아니면 회사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챔버스는 경쟁력 유지의 핵심을 양질의 고객 서비스와 신중한 기업합병 전략에서 찾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수합병 전략이 제대로 진가를 발휘할 수 있도록 인수회사를 시스코와 완벽하게 통합시킨 일이었다.
챔버스는 남달리 유대감이 강한 집안에서 자랐다. 또한 그는 어린 시절에 경미한 독서 장애 증상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역경을 극복하고 인디애나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인디애나 대학을 졸업한 챔버스는 IBM의 세일즈맨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 이후 찰스 왕이 이끌던 '왕 연구소'로 옮겨 8년간 근무했지만 회사가 어려워져 5천여 명의 직원을 해고해야 했던 쓰디쓴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인수기업의 직원을 해고하지 않는다는 시스코의 방침이 이때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수 합병에 대한 챔버스의 경영철학은 간단하고 정확했다. 팔고자 하는 상품을 자가 생산하여 소비자들의 요구를 완벽하게 충족시킬 수 있는 회사는 존립할 수 없으며, 그렇게 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 낭비도 크다는 것이었다. 즉, 그의 철학은 모든 것을 다 스스로 만들 수는 없는 만큼, 밖에서 찾을 수 있는 기회들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인수를 할 때에는 사람도 인수해야 한다. 사람을 잃게 되면 기업인수는 곧 실패한다. 시스코는 회사를 인수할 때 100% 고용승계를 보증한다. 지금까지 기업인수를 통해 시스코에 새로 합류한 직원의 이직률은 업계 평균치의 10%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시스코는 새로운 직원들을 계속 고용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인수의 핵심 요인으로 바라본다. 시스코는 기업을 인수한 후 인수된 기업의 직원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미래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시스코가 광섬유장비 생산업체인 세렌트를 인수했을 때의 일이다."3년 내에 10억에 이르는 인구가 인터넷에 접속할 것이며, 그들 중 대다수가 새로운 무선 장치들을 사용할 것입니다. 인터넷은 전세계 소비자들에게 보급될 것이며, 그들 중 대부 분은 어디서나 매일 온라인 상태에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소비자들을 위한 경쟁은 더 욱 높아질 것이 분명합니다."1977년 데니스 코즐로스키가 타이코 인터내셔널에 입사했을 때 첫 직함은 인수합병 특별 보좌관이었다. 그에게 맡겨진 일은 당시 타이코가 막 인수한 다이나코의 현황을 분석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회사는 예상보다 큰 상각 규모와 엄청난 재고부담을 안고 있었다. 그 사실을 보고 받은 사장은 그에게 말했다. "전화 끊고 뛰어내려!" 이것은 코즐로스키가 입사 후 2주만에 겪은 일이다. 1992년 타이코 CEO에 오른 그는 그 후 8년 동안 1백 건이 넘는 기업합병을 성사시켰다. 그리고 30억 달러 규모의 회사 매출을 220억 달러로 늘려놓았고, 시장가치 또한 18억 달러에서 840억 달러로 올려놓았다.
처음에 그가 다닌 회사는 타자기 회사인 SCM이었고, 두 번째 회사는 화학사업 분야의 유망주 캐벗이었다. 그러나 그 두 회사는 시너지 효과나 연관성은 전혀 없는 기업들을 인수하려고 했었다. 그것은 기업합병에 대해 설익은 코즐로스키의 시각에서도 분명히 보이는 상황이었다. 젊은 코즐로스키에게 이것은 아주 유용한 경험을 제공했다.
1977년 그가 타이코에 입사했을 때 그것은 기업합병의 천국처럼 보였다. 한때 타이코는 마지못해 인수합병 사업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가 입사했을 당시만 해도 이미 60여 개에 이르는 비관련 사업을 정리하고 핵심사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후 세 명의 CEO를 거치는 동안 타이코는 재편된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