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합병의 천재들
커트 슬레이어 지음 | 좋은책만들기
왜 기업합병 붐이 일고 있는가?매일매일 펼쳐드는 신문의 경제면에서 우리는 하루가 다르게 규모가 커져 가는 기업합병에 대한 소식을 접하곤 한다. 이제 기업합병의 열풍은 단순한 경제현상의 차원을 넘어 일종의 광란현상처럼 무섭게 번지고 있다. 왜 그럴까? 닷컴 때문인가? 몇 달 사이에 두세 배씩 치솟는 신기술 주식들을 보면서 투자가들은 오프라인 회사의 경영진을 향해 당신들은 왜 저렇게 못하느냐고 잔소리를 해댄다. 그러나 대부분의 회사들이 이러한 종류의 고성장을 요구하는 투자가들의 요구에 부응하기가 어렵다. 때문에 일부 경영자들은 시장에서 요구하는 숫자를 맞추기 위해서라도 무조건 합병 쪽으로 눈을 돌리곤 한다. 성공 여부는 뒷전인 채...
혹은, 기업합병의 열풍이 세계화 탓인가? 시장의 확대 전략을 마련하려는 경영자들은 각 지역마다 사무실을 두어야 할지 고민하게 마련이다. 그런 이유로 많은 미국계 회사들은 시장 진출의 최우선 전략의 일환으로 유럽 및 아시아에 있는 로컬 기업들을 집어삼키고 있으며, 미국 시장을 노리는 유럽계 또는 아시아계 기업들 역시 같은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아니면, 단지 우월하게 보이려는 욕심 때문에? 많은 기업들은 저마다 업계에서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경쟁자를 제치고 최고가 되기 위해 인수나 합병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적어도 그런 경향 자체는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기업합병 전략이 미국 기업이 보여주는 우월한 성과의 비법인 양 무조건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기업합병은 생산라인의 확장을 위한 전략으로 도입되기도 했다. 처음부터 자체 생산라인을 구축하기보다는 다른 회사가 이미 구축한 생산라인을 사들이는 것이 시간적으로나 비용적으로 더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서로 다른 두 회사를 통합함으로써 교차판매나 교차마케팅과 같이 개별적으로는 불가능했던 시너지 효과를 얻기 위해 기업합병이 시도되는 경우도 있었다.
외국의 기업합병 역사는 매우 길고 오래 되었으며, 그만큼 축적된 지식과 경험도 많은 반면 우리의 경우 최근 인터넷 중심의 닷컴 가운데 몇 개의 벤처기업이 활발한 기업합병 거래를 통해 거대한 기업군으로 도약했다느니, 사상누각으로 일순간에 주저앉았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오갈 정도다.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모든 경영자들이 충분히 현명하고 그들의 논리도 충분히 설득력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합병이 실패로 끝났다는 점이다. 인수합병 분야에서 자문 경험이 많은 회계법인 KPMG의 조사 결과, 기업합병 사례 중 약 70% 정도는 실패한다고 한다. 또한 17%의 기업만이 합병으로 이루어진 회사의 가치를 상승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가 기업합병을 바라볼 때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시장이란 변화무쌍한 곳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어제의 결합이 성공적이었다고 해서 내일 또다시 나눠지지 말라는 운명은 없다. 어떤 기업도 영원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시장 표면 아래로 보이지는 않지만 면면히 흐르는 무엇이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시장을 지배하는 시대정신이다. 그것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참된 미학이자 참여 주체, 즉 시장을 선도해 나가는 리더들의 교훈적인 철학이며 경영원칙의 정수(精髓)인 것이다. 이제 기업합병의 천재들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1. 해고 없는 기업합병의 철학 - 존 챔버스(시스코 시스템 회장 겸 CEO)신문의 경제면이나 경제잡지를 펼치면 어디에서나 칭찬과 숭배의 표현들로 장식된 존 챔버스라는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시스코 시스템의 회장이자 CEO인 그가 이번 분기에도 또 한 번의 기록적인 이익을 냈다거나, 두세 개의 회사를 더 인수했다는 기사가 실려 있는 것이다. 1995년 그가 CEO로 취임할 당시 시스코의 시장 가치 규모는 90억 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는 당시 가치의 50배 수준을 넘나들고 있다. 이러한 실적을 보고 누가 찬사를 아끼겠는가?
물론 챔버스의 성공에는 행운도 따랐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알맞은 때(인터넷 혁명기)에 알맞은 곳(인터넷 네트워킹 분야)에 있었던 것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인터넷 관련 사업은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여간한 경영자가 아니면 회사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챔버스는 경쟁력 유지의 핵심을 양질의 고객 서비스와 신중한 기업합병 전략에서 찾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수합병 전략이 제대로 진가를 발휘할 수 있도록 인수회사를 시스코와 완벽하게 통합시킨 일이었다.
챔버스는 남달리 유대감이 강한 집안에서 자랐다. 또한 그는 어린 시절에 경미한 독서 장애 증상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역경을 극복하고 인디애나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인디애나 대학을 졸업한 챔버스는 IBM의 세일즈맨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 이후 찰스 왕이 이끌던 '왕 연구소'로 옮겨 8년간 근무했지만 회사가 어려워져 5천여 명의 직원을 해고해야 했던 쓰디쓴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인수기업의 직원을 해고하지 않는다는 시스코의 방침이 이때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수 합병에 대한 챔버스의 경영철학은 간단하고 정확했다. 팔고자 하는 상품을 자가 생산하여 소비자들의 요구를 완벽하게 충족시킬 수 있는 회사는 존립할 수 없으며, 그렇게 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 낭비도 크다는 것이었다. 즉, 그의 철학은 모든 것을 다 스스로 만들 수는 없는 만큼, 밖에서 찾을 수 있는 기회들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인수를 할 때에는 사람도 인수해야 한다. 사람을 잃게 되면 기업인수는 곧 실패한다. 시스코는 회사를 인수할 때 100% 고용승계를 보증한다. 지금까지 기업인수를 통해 시스코에 새로 합류한 직원의 이직률은 업계 평균치의 10%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시스코는 새로운 직원들을 계속 고용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인수의 핵심 요인으로 바라본다. 시스코는 기업을 인수한 후 인수된 기업의 직원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미래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시스코가 광섬유장비 생산업체인 세렌트를 인수했을 때의 일이다.
합병 소식이 발표된 날, 시스코는 새 가족이 될 직원들에게 주주 자료, 최고경영진 7명의 전화번호와 이메일 주소, 다양한 복지프로그램이 담긴 파일을 나눠주었다. 그 후 이틀 동 안 세렌트 직원들이 느끼는 불안감을 줄이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없앰으로써 새로운 환 경과 업무에 몰두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일련의 질의응답 시간을 제공했다. 그리고 합병이 공식적으로 이루어진 후 1주일 동안 직원들은 새로운 ID와 명함, 새로운 소프트웨 어가 깔린 개인 컴퓨터, 심지어 시스코 시스템에 연결된 새로운 음성 메일 계정까지 할당 받았다.
시스코의 100% 고용 보장 때문에 비전의 공유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만약 두 회사가 실질적으로 결합하기 전부터 기본적인 철학에 있어 의견일치를 보지 못한다면, 신혼여행은 물론 그 이후로도 잘 지내지 못할 전조가 되기 때문이다. 힘을 합쳐 함께 일하는 대신 끊임없이 말다툼이 벌어지고, 정치적으로 긴장감이 고조된 분위기가 팽배해질 것이 분명하다. 이런 분위기는 역효과를 가져와 결국 시장점유율과 경쟁우위의 상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챔버스는 "우리는 회사의 장기적 전략도 검토하고, 그 전략이 우리와 어떻게 잘 어울릴지 검토합니다. 주주와 직원, 고객과 사업 파트너의 구성원 모두를 위해 반드시 장기적인 성공이 보장돼야 합니다. 우리는 또한 사내 문화와 분위기가 서로 유사한지도 살펴봅니다. ... 사내문화가 전혀 다르다면 절대로 성공적인 통합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시스코는 적절한 합병 대상을 가려내는 데 뛰어난 역량을 갖추고 있지만, 우수한 인력을 유치하는 능력 또한 남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회사가 경영진과 엔지니어 관리에 무엇보다 관심을 쏟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회사의 성공 때문에, 그리고 인수한 회사의 직원들이 시스코에서 환영받을 것을 알고 있기에 결과적으로 전체적인 합병 절차가 훨씬 더 수월해진다. 그 결과 챔버스와 시스코의 경영진들은 이미 경쟁자가 인수를 시도하고 있는 회사들로부터 상담 전화를 받는 일이 많다고 한다.
2. 전 직원이 기업합병의 전사로 나서다 - 데니스 코즐로스키(타이코 인터내셔널 CEO)1977년 데니스 코즐로스키가 타이코 인터내셔널에 입사했을 때 첫 직함은 인수합병 특별 보좌관이었다. 그에게 맡겨진 일은 당시 타이코가 막 인수한 다이나코의 현황을 분석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회사는 예상보다 큰 상각 규모와 엄청난 재고부담을 안고 있었다. 그 사실을 보고 받은 사장은 그에게 말했다. "전화 끊고 뛰어내려!" 이것은 코즐로스키가 입사 후 2주만에 겪은 일이다. 1992년 타이코 CEO에 오른 그는 그 후 8년 동안 1백 건이 넘는 기업합병을 성사시켰다. 그리고 30억 달러 규모의 회사 매출을 220억 달러로 늘려놓았고, 시장가치 또한 18억 달러에서 840억 달러로 올려놓았다.
처음에 그가 다닌 회사는 타자기 회사인 SCM이었고, 두 번째 회사는 화학사업 분야의 유망주 캐벗이었다. 그러나 그 두 회사는 시너지 효과나 연관성은 전혀 없는 기업들을 인수하려고 했었다. 그것은 기업합병에 대해 설익은 코즐로스키의 시각에서도 분명히 보이는 상황이었다. 젊은 코즐로스키에게 이것은 아주 유용한 경험을 제공했다.
1977년 그가 타이코에 입사했을 때 그것은 기업합병의 천국처럼 보였다. 한때 타이코는 마지못해 인수합병 사업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가 입사했을 당시만 해도 이미 60여 개에 이르는 비관련 사업을 정리하고 핵심사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후 세 명의 CEO를 거치는 동안 타이코는 재편된 비즈니스 모델을 갖추게 되었다. 이 비즈니스 모델은 그 후로도 잘 다듬어졌는데 거기에는 8가지 핵심 지침이 있다.
① 절대로 부담감 때문에 인수합병을 해서는 안 된다.② 현재 타이코가 진출하고 있는 네 가지 핵심사업 분야 안에서 인수대상을 찾는다.③ 운영 담당 임원으로 하여금 인수 관련 업무 및 추후 통합 업무를 앞장서서 이끌도록 한다.④ 인수 대상은 같은 분야에서 1,2위를 다투는 회사로 한정한다.⑤ 모험을 해서는 안 된다. 제품의 수명주기가 짧은 첨단기술 분야는 피한다.⑥ 광범위한 기업실사를 한다. 즉, 제공받은 수치와 정보가 실제로 정확한지 확인한다.⑦ 정리해고가 필요하면 재빨리 실행한다. 대개 첫 달 안에 마무리한다.⑧ 회사의 새로운 경영자를 찾는다. 대개 내부에서 선택해 승진시킨다.
코즐로스키는 일부 경영자들이 그림의 떡과 같이 비현실적인 목표를 세우는 어리석음을 보이거나 불가능한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위해 현명치 못한 선택을 저지른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그는 인수 대상을 물색할 때 우선 타이코가 그 분야의 전문가를 확보하고 있고 이미 진출해 있어 충분히 익숙한 사업으로 제한한다. 즉, 어떤 회사들이 인수할 가치가 있는지, 그리고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지를 이미 잘 알고 있거나, 의사결정에 필요한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는 경우에 국한하는 것이다.
또한 코즐로스키는 수익성에 기여하지 못하는 거래는 하지 않는다. 그는 사들인 회사들이 즉시 타이코의 순이익에 보탬이 돼야 한다고 본다. 그는 지금까지 이 원칙을 지킴으로써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희망적인 시너지 효과나 세입 증대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대개의 경우 회사를 어렵게 만들지요.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비용을 대비한 수익에 즉각적인 변화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라고 밝혔다.
물론 타이코가 실수를 모두 피해 간 것은 아니다. 1992년 소규모 파이프 제조업체를 인수할 때 만만치 않은 경쟁자들 때문에 실패를 한 일이 있었다. 코즐로스키는 이 경험을 좋은 교훈으로 생각하고 있다. "1위 혹은 2위가 아니라면 쓸데없이 손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타이코는 그 회사를 청산했고 재고를 헐값에 팔아치웠으며, 엄청난 상각을 감내해야 했다.
그후 1백 건이 넘는 기업인수가 이루어졌다. 코즐라스키는 모든 인수에 있어서 기업 실사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해야만 의심이 풀리지요. 그 결과 나는 자산실사에 엄청난 시간을 투자하고 세세한 부분까지 질문을 많이 합니다."라고 말할 정도다. 그리고 그 실사는 대부분의 회사들이 본부에 있는 사람들이 인수절차를 시작하고 운영 부서에 넘기는 방식이 아니라 운영 부서 직원들 스스로 첫날부터 인수 활동에 발을 담그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직원들을 인수합병의 주체가 되도록 부추기며, 이러한 실적을 보너스와 인센티브로 연결시킨다. 타이코는 이러한 자산실사 후 10건 중 9건의 인수를 포기한다고 한다. 자산실사에 드는 비용 30만 달러를 고려하면 아주 값비싼 대가를 치르는 셈이다. 그러나 코즐로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그 회사의 성장 가능성이 우리의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충분히 밝혀지지 않으면 거래 자체를 포기합니다."
타이코는 또한 적대적 인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1981년 적대적 거래로 인수한 플라스틱 회사 루들로에서 필요한 인재들이 반감과 증오로 회사를 떠났기 때문에 회사를 정상으로 돌리는 데 상당한 시간이 들었기 때문이다.
3. 기술이 만드는 미래 세상 - 스티브 케이스(아메리카 온라인 회장 겸 CEO)1980년 초 스티브 케이스는 그의 컴퓨터에 전화선을 연결해 온라인에 접속하려고 시도했다. 그 후로 세상은 너무나 빨리 변했다. 모뎀을 사용하여 접속하던 것조차 최첨단 기술이었던 당시를 이제는 기억하기조차 하기 어렵다. 누가 자신들의 삶이 이메일, 채팅룸, 그리고 컴퓨터를 통해 전세계와 연결될 수 있다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셀 수 없이 많은 책과 경제잡지에 끊임없이 인용되고 있는 아메리카 온라인에 대한 일화들은 다름 아닌 케이스와 그의 통찰력에 대한 교훈적인 스토리이다.
1990년 중반, 스티븐 케이스가 몇 년 후면 AOL이 인터넷 분야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거대한 영향력을 떨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을 때, 모두가 그를 비웃었다. 막대한 자본을 쏟아 넣은 대기업들-타임 워너, 텔레커뮤니케이션-조차 양방향 게임 시장에서 실패하지 않았던가! 더구나 이미 진출한 모든 분야에서 최고 위치를 장악한 마이크로소프트가 진출할 예정이라고 선언한 바로 그 시장에서 말이다. 그러나 그는 성공했다. 2000년 1월 AOL은 타임워너를 인수했다. 그의 예상은 현실로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그가 꿈꾸었던 것보다 더 빨리 이루어졌던 것이다.
미래에 대한 그의 빼어난 비전은, 그가 바라보는 미래뿐 아니라 기술에 문외한인 사람들의 눈을 통해 걸러진 미래도 동시에 보는 방식에 있었다. 케이스는 AOL이 소비자와 소비자의 요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초점은 일반 통념에 도전하는 것이며, 최신 기술을 보유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망할 것이라는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들의 견해에 반하는 것이다.
"AOL의 목표가 단순화인 반면, 컴퓨터 맹신자들은 최대한 많은 기술을 원하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실리콘 밸리 자체의 신드롬이 있습니다."
사실 AOL의 성공 핵심에는 컴퓨터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보다는 버튼을 클릭해서 작동하게 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갖는 케이스 같이 단순한 사람들이 컴퓨터 엘리트보다 훨씬 더 많다는 데 있다. 케이스는 기술의 마법사가 아니었다. AOL의 성공의 핵심에는 케이스가 '기술의 잠재력을 깨닫고, 그것을 어떻게 대중들에게 연결시킬 수 있을까?'를 알아내는 능력에 있었다.
청년 시절 케이스는 월리엄스 칼리지를 졸업하고 코카콜라, P&G, 피자헛을 거치면서 마케팅과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지식을 얻었다. 이후 1985년 "커모도어 64" 사용자들을 위한 온라인 게시판을 운영하는 퀀텀의 창업에 참여했다. 1987년 중반 회사는 얼마간의 수입을 올리고 있었지만 커모도어는 빠른 속도로 시장점유율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안 되어 퀀텀이 다른 컴퓨터의 플랫폼과 연결되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그 후 몇 년 동안 회사는 몇 가지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회사명을 아메리칸 온라인으로 변경했다.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대기업으로부터의 합병 제안을 거절하는 대신, 일반 사용자들이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단순하고 편리한 공간을 만들겠다는 비전을 실천하는 데 충실하게 임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