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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김기영 지음 | 영진Biz.com
10년 전 가로수닷컴은 무료 생활정보지라는 개념조차 없던 때 이 사업에 뛰어든 용감한

벤처기업이다. 누구도 성공을 확신할 수 없던 사업, 그래서 이의범 사장은 리스크가 큰 사업을 "정보에 소외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생활정보를 제공하자!"라는 단순한 모 토로 시작했다.7. 이지선 드림커뮤니케이션즈 사장 - 항상 새로운 일을 하면 신이 나요"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그리고 잘하자.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이게 제 삶의 모 토예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요? 신나요. 새로운 것을 하잖아요.""지금 생각해 봐도 골드뱅크와 드림은 궁합이 잘 맞았어요.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열정, 대기업처럼 딱딱하지 않고 자유로운 분위기 등 비슷한 점이 많았죠. 기업과 홍보대행사, 둘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편안하게 통하는 대화거든요."6. 이의범 가로수닷컴 사장 - 살아남을 수 있는 틈새는 언제나 있다"실패할 수 있죠. 장담은 할 수 없다는 얘깁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기업은 비행기와 같아 요. 날아가면서 속도를 조절할 수는 있지만, 멈출 수는 없거든요. 멈추면 추락하고, 다 죽습니다."이것이 그가 가지고 있는 기업관이다. 이의범 사장의 끊임없는 변화는 이러한 그의 철학에서 발현되는 것이 아닐까?"1980년대 중반 당시에는 독재와 민주라는 대결구도가 명확했고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이 런 현실에 분노하는 그런 시기였습니다. 대다수 386세대가 그렇듯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자연스럽게 선배, 동료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학생운동의 세계에 들어서게 됐 습니다."그러나 그를 민중들 속으로 들어가게 해준 확실한 계기는 학창시절 다녀왔던 농촌봉사활동을 통해서였다. 그는 농활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엘리트 의식을 버렸고, 같은 능력이라도 처한 상황이 다르면 그 사람의 삶도 달라질 수 있음을 배웠다. 그러나 그가 운동을 계속하는 사이 투쟁의 수위는 점차로 높아져 갔고 자연히 목숨을 끊는 노동운동가, 재야운동가가 속출했다. 운동권은 스스로 혹은 타의에 의해서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강경대 군 사망 사건이 발생하고 이 사장은 안으로는 운동의 지도부로서의 무책임, 밖으로는 수배자 신세라는 멍에를 쓴 채 긴 도피에 들어간다. 4년간의 도피 기간이 끝나고 그는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 정책부장으로 재야에 입문하여 학생 시절 다하지 못한 운동을 계속하게 된다.

그가 운동을 접고 경영자의 길로 들어선 것은 '극과 극'으로 보여질 지도 모르지만 그는 둘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한다."사실 경영자가 반드시 엔지니어일 필요는 없습니다. 적재적소에 인력을 배치하는 코디네 이터 능력도 경영자의 능력으로 중요한 대목입니다. 학생운동과 재야운동을 거치면서 인 재 코디네이터에는 나름의 안목을 갖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처음 벌이는 사업인 만 큼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습니다."제조업 부분에서 벤처를 창업한 이철상 사장... 그는 스스로를 노동가치설의 신봉자라고 말한다. 그는 이런 맥락에서 나라의 실질 가치를 창출하는 제조업 벤처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사장은 국내의 실리콘밸리에 버금가는 에너지 밸리 구축이 목표이다. 과거에 신념 하나로 탄압 받는 계급의 민주적인 세상 만들기에 매진했던 그가 이제는 작은 전지로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또 하나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1998∼1999년을 관통하면서 우리 주변 3∼40대 가장들은 직장에서 쫓겨나고 가정에서도 소외당한 채 빚에 허덕이다 못해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자신은 노숙자로 전락하고 더 혹독한 경우 목숨까지 버려야 했다. 당시 평범한 중산층 가장이었던 비트뱅크의 임명수 사장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상업고교를 졸업, 은행원으로 19년간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던 중 IMF를 맞아 명예퇴직 후 친구 빚 보증을 선 것이 잘못되어 퇴직금과 집마저 날려버린, 전형적인 'IMF형 패가망신'을 경험한 인물이다.와우프리의 최용관 사장은 소위 엘리트 코스를 거쳐서 성공한 사람이 아니다. 어린 시절은 가난과 싸워야 했고, 현실의 절망적인 노동현장을 몸소 체험했다. 아니, 체험의 수준이 아니라 그에게는 그 자체가 삶이었다. 최 사장과 엮이려면 우선 서울공고 출신에 노동운동을 하다가 해고된 경험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는 결코 차별 받은 사람을 절대 차별하지 않는다. 그건 현실이 정직한 사람에게 알려준 간단한 진리일지도 모른다.



그가 설립한 와우프리는 정품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나눠주는 사이트로 유명하다. 물론 완전 무료는 아니다. 프로그램을 다운로드 하려면 5초짜리 동영상을 봐야 하는데 그것으로 비용을 대신한다. 또한 저작권 침해의 문제도 광고 이익금을 개발자와 반씩 나누어 갖는 것으로 해결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나눔'의 정신은 인터넷 문화의 본질이지만 지금까지 누구도 자본주의의 그늘에 가려 쉽게 실천하지 못했던 것이었다."무료로 사용하는 것과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은 의미가 다릅니다. ... 이걸 두고 소수 독 점 개발자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소비자들이 희생을 강요해선 안됩니다. 산소마스 크를 주고는 산소를 팔아먹겠다고 하는 것과 같은 거예요."넷포츠는 1999년 8월 설립된 대표적인 인터넷 초기 기업이다. 그러나 지난 2000년 1월∼3월 사이 인터넷 스키장 상품권 판매로 30억 원의 매출을 올려 주위를 놀라게 했다. 3월 결산기업인 넷포츠의 이번 사업연도 매출 목표는 2백억 원, 목표 순이익은 20억 원이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온라인 상에서 레저 비즈니스를 하는 사업모델은 이 회사가 처음이다. 넷포츠는 일약 세계적인 인터넷 기업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고단하고 암울한 소년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성공하는 사례가 많다. 박인철 사장 역시 불행을 성공으로 바꾼 사람이다. 그 역시 불편한 가난을 동기부여의 계기로 삼았다.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박 사장은 남들은 마지못해 시간 때우기 식으로 보내는 군대 시절을 평생의 사업 아이템을 수집하는 발전의 시간으로 만들었다. 시간 나는 대로 적어놓은 사업 아이디어 수첩은 아직도 그가 가장 아끼는 보물 1호이다.



그가 사업 아이템을 레저로 잡은 것은 인터넷 0세대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키노피아에서 근무하면서 휘닉스 파크, 에버랜드, 롯데월드 등 레저 관련 광고주들을 상대했던 경험 때문이다. 5개 스키장을 묶어 연합광고 형식으로 광고를 하겠다는 기획이 성공을 의심한 기업들의 반대로 무산되자 오기가 발동한 그는 혼자 시장에 뛰어들었고, 어머니가 쓰시던 안방에 자신의 사무실을 꾸렸다. 힘든 일도 많았지만 우여곡절 끝에 결국 그는 30억의 신화를 창조하며 아직도 성장 단계에 있는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낮잠을 자지 않는다', '일단 손들고 보자', '할 수 있는 일은 두 번 다시 하지 않는다' 이 세 가지가 박인철 사장의 인생 원칙이다. 그가 가난을 떨치고 일어설 수 있으며 앞으로도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향해 도전할 사람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그만의 독특하고 본받을 만한 인생철학 때문일 것이다.드림 커뮤니케이션즈는 벤처기업을 상대로 홍보 대행을 해주는 회사다. 벤처회사의 경우 기술 개발분야에 힘을 쏟다 보니 자연히 홍보 분야 쪽에는 자연히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기업비밀이 유출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홍보 대행 부분은 떠오르는 시장이 되고 있다. 신문사 기자 경력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얄밉지 않은 언론플레이를 펼치며 골드뱅크의 김진호 사장을 만나 '광고를 보면 돈을 준다'는 획기적인 아이템을 개발했다.임영주 사장의 PKO는 다분히 한국적인 기업이다. 세계 어느 곳에도 프로 게임리그가 존재하는 나라는 없다. 창업 1년 만에 자본금 16억 4천 5백만 원, 2000년 매출목표 35억 원의 중견 벤처기업을 일군 31세의 젊은 사장 임영주는 화장품 외판원을 하시던 어머니가 눈길에 넘어지는 광경을 가슴아프게 바라보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고졸 중퇴자였다. 해탈을 위해 절을 찾은 것은 아니었지만 절에서 생활하면서 그는 평범한 또래들이 좀처럼 하지 못한 생각을 하면서 성장했다. 그는 그곳에서의 생활을 이렇게 말한다.그의 말대로 우리는 가정을 벗어나면 제일 먼저 가는 곳이 학교이다. 자연히 동창은 가족을 제외하고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가장 친밀한 인간관계이다. 이런 원론적인 말보다 좋은 친구들과의 우정으로 넘쳐났던 그의 학창 시절이 "과연 동창 사이트가 사업이 될까?"라는 의구심을 잠재우면서 사업 개시 1년도 안된 2000년 9월 500만 돌파라는 기록을 세우며 '다음', '야후'를 추격하는 저력을 가진 성공을 가능하게 했다.



초기에 그는 '경영'이라는 것은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철부지 사장이었다. 회원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법인의 설립이 왜 필요하고, 투자를 받기 위해 사업계획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기초적인 경험조차 없었다. '근거자료' 없는 설득은 창투사들로 하여금 고개를 내젓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바로 그때 그는 '금양'이라는 원군을 만났다. 금양은 40%의 지분을 갖는 조건으로 10억 원의 자본을 제공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경영권에 간섭하지 않고 김 사장이 자신의 소신대로 사업을 계속할 수 있게 배려해 주었다.이철호 사장은 대형 건설업체를 운영하시던 아버지 덕에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업실패와 뒤이은 아버지의 작고는 고등학교 시절 그에게 우울한 기억만을 남겼다. 그는 재수를 하기 위해 산사로 들어갔으며, 그곳에서 끊을 때 과감히 인연을 버릴 수 있는 '이별법'을 배웠다. 그는 카이스트를 첫 번째 목표로 삼고 카이스트 진학률이 높다는 경북대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나 그는 한번에 성공한 케이스는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 성공은 세 번의 실패와 네 번의 창업 끝에 얻어진 값진 소득이다. '생존이 비전'이었을 만큼 어려웠던 회사를 정상화시키는 데는 이렇게 평탄하지만은 않았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된 셈이다. 그는 돈에 그리 연연하지 않는다. 그에게 돈은 꿈을 이루게 하는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돈을 소유한다고 생각하면서부터 문제가 생깁니다. 천 원짜리든 만 원짜리든 한번 꺼내 서 보세요. 누구 소유예요? 한국은행권이라고 되어 있죠? 내 손에 쥐어졌다 다시 나가는 것이 돈이지, 소유할 수도 없고 갖고 갈 수도 없어요. 돈은 관리능력, 분배능력이 뛰어난 사람에게 모이게 되어 있다는 것이 내 소신입니다.""내가 살아오면서 사회로부터 받은 은혜를 사회에 다시 돌려주고 싶어요. 돈이 필요한 곳 엔 돈을, 내 지혜가 필요한 곳엔 지혜를 주고 싶습니다. 이런 게 내 꿈이에요. 한국 땅에 서 태어난 한국형 기업들이 세계를 무대로 성장할 수 있는 전략을 세워주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죽을 땐 할 일을 했다는 소릴 듣고 싶어요.""1999년 3, 4월 두 달간 정부에서 무료 교육을 실시한다고 해서 참가했습니다. 아침 9시 부터 오후 1시까지 교육을 받았는데요, 사실 두 달 교육으로 능숙한 웹 마스터가 되기란 어렵죠. 그러나 배우면서 '이거만 제대로 하면 뭐가 되도 되겠다.'는 느낌이 들더군요.""비트뱅크는 전세계 금융시스템을 총괄 관리하는 회사가 되어 있을 겁니다. 조지 오웰의 소설에 나오는 빅브라더가 있다면 비트뱅크가 그 주인공일 겁니다. 나는 그때까지도 회사 를 키우고 있겠죠."어쩌면 용기보다 '언제나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이 시련에 더 잘 견디게 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며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3. 최용관 와우프리 사장 - 공고출신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나는 성공할 것이다"제 꿈은 간단해요.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그래서 번 돈은 사회에 돌려주는 것이죠. 우 리 사업이 공유의 정신에서 태어났듯이 열심히 자본을 분배하고 공유할 겁니다."임명수 사장은 은행원으로 보낸 19년의 중산층 생활의 파탄이후 수차례 좌절을 경험해야 했다. 그러나 자신과 자신을 의지하고 있는 가족을 생각하면서 무엇이라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결과 그가 선택한 것은 인터넷 기술이었고 비록 초보이지만 웹 마스터가 됐다는 자부심에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다시금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자심감을 얻게 되었다.



임 사장의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던 새로운 사업 아이템은 제1금융권, 즉 은행의 상품 정보를 다루는 사이트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그 동기가 자신이 그 동안 종사했던 곳이 은행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많은 사람들이 재테크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은행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지 못하는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임 사장은 쾌활하고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이는 그가 IMF라는 큰 시련을 잘 넘기고 오히려 한 단계 뛰어넘어 성공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이다. 그런 임 사장의 10년 뒤 모습은 어떨까? 임 사장의 대답을 들어보자."사실 그전까지는 모든 것을 내가 직접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이 바닥에서 꼭 성공하려 면 내가 부족한 부분을 메워줄 사람을 찾아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사용자가 컴퓨터나 인터넷 단말기를 켜면 바로 씽크프리 오피스가 뜨는 것이 제 꿈이에 요.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웹 기반의 오피스를 사용하면서 이용자들이 흥분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어요. 그래서 우리가 새로운 흐름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습니다."강 사장은 자신이 개발한 한글 워드 프로세서인 '한글2000워드'의 버그를 잡아주다가 오히려 '아래아 한글'을 발표해 스타덤에 오른 이찬진 씨에게 시장을 빼앗긴 셈이다. 그래서 주위에서는 강 사장이 한글 소프트웨어 시장의 주도권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번 빼앗긴 시장을 다시 찾기란 여간 힘들지 않다는 것을 강 사장은 뼈저리게 체험했다. 하지만 그는 이에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에게는 창업자 정신은 있으나 경영 마인드는 떨어진다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자신의 적성을 더 높게 평가했다.강 사장은 오피스 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또 실제로 그대로 되고 있다. 여기서 패러다임의 변화란 오피스 시장에서 오프라인 판매가 아닌 온라인 판매로 돌아서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 굴지의 거대 소프트웨어 회사, MS에 기죽지 않고 소신껏 뜻을 펼칠 수 있는 이유는 고객이 만족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흥분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그의 열정 때문인지도 모르겠다."제도에 얽매어 지레 안 된다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이를 뚫고 나가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중요합니다. 제도란 언제나 현실을 뒤쫓아오는 것 아닙니까? 요즘 수익모델, 수익모델 하 는데 답은 사이트 안에 있습니다. 자신이 왜 사이트를 만들었는지, 처음으로 돌아가 보면 그 안에 수익 모델이 있습니다."이철상 사장은 1987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하고 학교 생활을 시작하기도 전, 신체검사를 받으러 학교에 갔다가 경찰의 고문 끝에 숨져 전국을 술렁이게 했던 박종철 군의 대자보를 보게 되었다. 그 대자보는 그의 젊음을 민주화 투쟁으로 이끌어준 신호탄이었다."어린 나이지만 그곳에서 몇 가지 삶의 원칙을 세웠습니다."8. 임영주 PKO 사장 - 인터넷 게임으로 우주 제패를 꿈꾼다"코카콜라, 나이키 등 세계적 브랜드를 우리의 스포트로 구할 생각입니다. 그러나 언제까 지 유명 브랜드의 등에 업혀 다닐 생각은 없습니다. 언젠가는 PKO가 코카콜라에 버금가는 브랜드 가치를 갖는 날이 꼭 올 겁니다.가로수닷컴은 지난 1991년 서울지역에선 최초로 생활정보신문을 창간하였다. 중간브로커의 장난으로 교란된 중고유통시장의 권력구조를 소비자에게 돌려주기 위해 이 사장은 서울에선 최초로 강남에서 가로수를 발간했다. 물론 초기에는 갈등도 많았다. 배포방법에 대한 의견 대립, 창업주들간의 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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