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킹 경영학
올레 해드크비스트 지음 | 들녘
바이킹 경영학
올레 해드크비스트 & 가니 레이치로 지음 지음/이규원 옮김
들녘/2000년 11월/231쪽/9,000원
1. 바이킹의 후예, 세계 시장을 장악하다
“나침반도 없던 시대에 작은 보트를 타고 대해로 나가는 것은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스스로 체득한 지혜와 기술로 그 위험을 최소화해, 마침내 유럽 세계를 석권하는 데 성공한 바이킹의 존재는 역사의 기적 중 하나다.”
올해는 바이킹이 캐나다의 뉴펀들랜드에 도착한지 꼭 1천 년이 되는 해다. 콜롬버스보다 500여 년이나 앞선 서기 1000년, 레이브 에릭손이 지휘하는 일단(一團)의 바이킹들은 대형 목선을 타고 그린란드를 출발해 캐나다 북부 배핀 섬 연안을 따라 항해했다. 그들은 이때 아메리카 원주민을 만났는데, 이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구세계와 대서양 너머 아메리카 신세계가 조우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1천 년이 지난 오늘날, 화성 탐사선에 바이킹이란 이름이 붙은 데서 알 수 있듯이 이제 서구에서는 바이킹을 흉폭한 해적이 아니라 굳건한 모험자, 개척자로 재평가하고 있다.
볼보 자동차, ABB, 노키아 등 오늘날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바이킹의 후예들, 주변 민족의 기업에서 출발한 이들은 오늘날 세계의 중심부까지 큰 영향을 미치는 바이킹의 야만성 - 강력하다는 의미에서 - 을 발휘하고 있다. 혹독한 자연조건과 부족한 천연자원, 협동 인력의 부족 등 여러 제약을 극복하고 그린란드, 아이슬란드를 발견한 것은 물론, 해적으로 때론 상인으로 온 바다를 누비던 바이킹의 후예답게 그들은 지금 세계를 누비고 있다. 이들의 몸과 정신 속에는 왕성한 도전정신과 강렬한 개인주의라는 야만성의 바이킹 유전자가 그대로 간직되어 있음이 틀림없다.
인구 900만도 채 안 되는 스웨덴의 기업 문화와 그 조상인 바이킹에 우리가 주목하는 까닭은 그들의 기업 문화가 한마디로 바이킹의 전통을 이어받은 벤처문화라고 할 수 있으며 그 벤처 문화는 100여 년 이상에 걸친 스웨덴의 기업사에서 그 저력이 이미 검증된 것이기 때문이다. 토지가 척박해 농사를 지으며 평화롭게 사는 것이 불가능했던 스웨덴인들은 물자와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일찌감치 사나운 바다로 나서게 되면서부터 스웨덴 특유의 벤처 문화를 수립했다.
IT 혁명 시대에 세계 경제계의 총아로 주목받고 있는 시스코 시스템스의 경영 기법은 미국에서도 이단시될 만큼 혁신적인 경영으로 평가받는데, 그 시스코의 벤처 경영이 스웨덴계 기업들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자리잡고 있었다는 사실은 신선한 충격이다. 전문화된 기술, 대담성, CEO조차 수행 비서도 없이 이코노미 석으로 해외 출장을 가는 검약 경영, 철저한 고객 밀착, 과감한 아웃소싱 등 언뜻 매우 평범하게 들리겠지만 그 실천은 결코 쉽지 않은 경영이 바이킹의 후예들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2. 거친 파도를 넘어 미지의 땅을 개척했다
사나운 신을 섬기는 백성
‘바이킹’이라고 하면 흔히 다양한 요리 가운데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원하는 만큼 접시에 담아 먹는 바이킹 요리, 또는 유럽의 위험한 해역에 출몰해 약탈을 일삼는 북방의 야만족인 ‘해적’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바이킹은 로마 제국이 쇠퇴한 뒤 수세기에 걸쳐 유럽 전역을 무대로 활약하며 중세 이후 유럽 세계의 성립에 중대한 역할을 담당한 역사의 주역이었다는 사실은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유럽 역사의 중대한 전환기를 이야기 할 때, 상당한 기세로 당시의 유럽 제국을 뒤흔든 바이킹들의 활동을 빼놓을 수 없다.
바이킹이란 옛 노르드어에 공통된 뿌리를 둔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유틀란드 반도에 살았던 북게르만 족속들, 오늘날의 국가개념으로 말하자면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을 모국으로 하는 사람들이다. 북게르만에 전승되는, 오딘(Odin)을 비롯한 사나운 신을 숭배하는 것도 그들의 공통점이다.
8세기말부터 11세기까지 활발하게 해외로 진출한 그들은 처음에 약탈행위를 일삼는 해적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단순히 해적 노릇만 한 것은 아니었다. 경이적인 조선술과 타고난 항해술로 아이슬란드나 그린란드를 발견해 대규모 식민지를 거느리고, 러시아 내륙에 있는 키예프와 노브고로트 등 여러 도시를 건설했다. 그런가 하면 비잔틴 제국에서는 황제의 용병이 되어 사라센인과 싸우기도 했다. 또 각지의 요지에 교역도시를 건설하는 한편 교역 상인으로서 유럽 전역을 종횡무진 왕래했다.
바이킹의 강점
① 모험정신: 바이킹을 만드는 으뜸 요소는 바로 모험 정신이다. 침략이건 교역이건 식민이건 머나먼 바다로 원정을 나서는 데는 적지 않은 위험이 따른다. 바이킹에게는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려는 모험가 정신과 개척자의 기백이 왕성했으며, 이 점은 다른 모든 요소의 전제 조건이 된다. 덕분에 250년 동안이나 유럽의 바다와 강을 통해 내륙 구석구석까지 원정해 유럽 각지에서 패권을 쥘 수 있었다.
② 뛰어난 기술력: 그들은 단순한 무뢰배가 아니었다. 위험을 감수하려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뒷받침해 줄 기술력이 필요하다. 사납게 날뛰는 대양을 건너게 해줄 튼튼한 배, 오랜 항해를 가능하게 하는 뛰어난 항해술 등의 기술력이었다. 거친 바다에서 살아온 그들은 오랜 경험철칙과 전승을 통해 거리와 항로를 계산하는 등 독자적인 항해술과 지식으로 위험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③ 이문화 적응력: 바이킹이 상인으로 크게 성공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단순히 군사력이 뛰어난 ‘힘의 백성’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여실히 말해준다. 현지 언어 습득을 비롯해 이문화(異文化)에 적극적으로 융화하려는 자세를 보여주지 않으면 전혀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거래 상대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없었다. 바이킹의 융성이 극에 달했던 11세기 이후에도 그 전통을 계승한 스칸디나비아 상인들이 국제 교역에서 크게 활약한 사실은 바이킹 상인들이 보기 드문 이문화 적응력을 갖추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④ 자유로운 사회제도: 놀랍게도 아이슬란드에는 10세기에 ‘알싱(Althing: 전도(全島) 집회)’이라 불리는, 사법과 입법 기능을 갖는 기관이 존재하고 있었다. 전제 군주 없이 주민들의 참여로 운영되는 세계 최초의 공화국이 탄생했던 것이다. 군대에서는 계급이 극단적으로 생략된 조직이 채택되고, 전리품도 지위나 직위에 관계없이 평등하게 분배되는 등, 당시로서는 믿기 힘들 만큼 근대적인 계급 제도가 있었다. 이렇게 개인의 활력이 살아 있는 사회가 형성되어 있었다는 것도 바이킹 사회의 강력함을 뒷받침한 요소였다.
⑤ 자주독립 정신(강렬한 개인주의): 바이킹이 파리를 포위했을 때 서프랑크 왕국의 사자가 찾아와 물었다. “당신들의 지배자는 누구요?” 그러자 바이킹이 이렇게 대답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에게는 지배자가 없다. 모두 평등하다.” 그들은 전투에서 강력한 결속력을 보여주는 튼튼한 조직을 이루었지만, 그 조직을 구성하는 개개인들은 어느 것에도 예속되지 않는 자주 독립 정신이 투철한 사람들이었다. 이는 사회가 강렬한 개인주의를 기반으로 성립됐음을 뜻한다. 절대적인 지배자에게 복종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자가 많았던 것이 활발한 식민지 활동의 한 이유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바이킹 세력은 한 사람의 왕이나 권위자의 이름 아래 통일되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한 자주 독립 정신과 그 밑바탕에 흐르는 개인주의야말로 수많은 작은 조직들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3. 바이킹으로부터 배우는 7가지 교훈
교훈1 - 전문화된 기술로 무장해 세계 시장으로 나아가라
스칸디나비아인이 살던 곳은 인구밀도가 극도로 희박하여 이웃의 도움이 필요해도 도움을 청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따라서 믿을 것은 자기뿐이었고 창조성은 개인의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한 연구자의 말을 빌리자면 그들은 생활의 모든 면에서 ‘두 잇 유어셀프(do it yourself)의 백성’이었다. 이렇듯 북부 지역에서는 창조성을 발휘해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었다.
바이킹의 후손인 스웨덴이 기술종주국으로 발전한 역사를 살펴보자. 19세기 중반까지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농업국 가운데 하나였던 스웨덴은 급격한 인구팽창과 만성적 식량부족이라는 심각한 사태에 직면했고 그 때문에 1860년부터 1930년까지 약 1백만 명이 풍요를 찾아 해외로 이주했다고 기록되어있다. 당시 총 인구가 약 350만-500만 명이었다고 하므로 이주자의 숫자는 엄청난 것이었다.
공업화가 시작된 것은 19세기 후반으로 매우 늦은 편이었지만 다행히 스웨덴은 양질의 철광석과 삼림에서 벌채되는 목재라는 자원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공업화는 빠르게 진전되었다. 19세기 중반부터 스웨덴에서 기술력이 뛰어난 산업 기계 제조업들이 잇달아 등장한 것은 풍부한 철광석에서 고품질의 철과 철강을 추출해내는 기술을 개발한 것이 커다란 요인이었다.
공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된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스웨덴에서는 수많은 창업가가 나타났으며, 현재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웨덴계 다국적 기업은 대부분 이때 등장했다. 거대한 자본력을 배경으로 한 선진 공업국의 기업들이 힘을 휘두르기 시작하던 시대에 스웨덴인은 기술력을 무기로 삼아 세계로 나섰다.
주목할 만한 점은 스웨덴의 발명가들 중 대부분은 학술적인 기초 연구에 평생을 바친 학자가 아니라 산업 사회에서 보다 실용적 기술에 관심을 쏟고 그것을 바탕으로 기업을 일으킨 창업가였다는 것이다. 그런 전형적인 영웅 중 한 명이 바로 알프레드 노벨이었다.왕성한 바이킹 정신을 살리는 스웨덴의 기술전략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다음과 같다.
① 극도로 전문화된 기술로 ‘틈새 시장 전략’을 추구한다.
② 처음부터 세계 시장을 염두에 둔다
③ 발명해서 특허를 얻고, 라이선스를 제공해 제품화한다.
④ 가격 경쟁에 휘말리지 말고 고부가가치를 추구한다.
⑤ 조직시스템으로서 기술 개발에 적극적으로 임한다.
교훈 2 - 상대방을 이해하고 융화하려는 자세를 가져라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바로 제일 훌륭해 보이는 교회로 가라. 예배 시간에는 사람들이 올리는 기도 내용에 귀를 기울인 뒤에 너의 기도와 찬양을 드려라. 기도가 끝나면 서둘러 비즈니스를 시작하라. 그 마을의 상거래 관습에 어두울 때는 그곳에서 가장 위대하고 수완이 좋다고 알려진 사람들의 장사수법을 주의 깊게 관찰하라.” - 바이킹의 비즈니스 가이드
위와 같이 『바이킹의 비즈니스 가이드』라는 책에는 이국 땅을 여행하는 교역 상인이 낯선 나라에서 제대로 장사를 하기 위한 마음가짐과 행동 규범이 간단한 경구로 기록되어 있다. 사실 여기에 바이킹이 유럽 사회를 석권할 수 있었던 한 가지 비밀이 숨어 있다. 즉 그들이 이문화에 대해 유례없이 강한 적응력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또한 다음과 같은 말도 나온다.
“현지의 관습을 익히는 데 노력하라. 그 지방의 언어도 배워둬라. 다만 모국어는 잊지 말아라.”
문화적 배경이 전혀 다른 상대방과 제대로 비즈니스를 하려면 상대방의 문화를 잘 이해하고 융화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을 바이킹 상인은 체험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선조의 지혜를 오늘날 잘 활용하고 있는 스웨덴 기업을 살펴보자. 스웨덴계 기업에서 일하는 일본인 임원은 그 점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스웨덴 비즈니스의 특징을 들자면 모국의 비즈니스 관행이나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환경이 달라지는 데 따라 유연하게 방식을 바꿔 나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 스웨덴인은 내심으로는 자사 제품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히 강하지만 그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편입니다. ... 자사 제품이 외국 시장에 적응하지 못할 경우, 먼저 제품 특성을 어떻게 바꿔야 할 지를 고민하면서 그 나라에 맞는 방법을 모색해 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교훈 3 - 규칙을 지키고, 공정하게 거래하라
바이킹 집단은 출생이나 감정에 관계없이 개인적인 가치에 따라 모인 집단이다. 그들 공동체는 두려움 없이 떳떳하게 생활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맹세를 통해 결속해 있었다. 그들은 서로 형제처럼 대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며, 모든 정보를 독점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들은 전투에 임하고, 동료의 원수를 내 원수처럼 무찌르고, 지위나 직위에 관계없이 모두 평등하게 분배할 수 있도록 전리품을 ‘기둥 밑’에 가져다 놓아야 했다. 바이킹 전투 집단은 놀라울 정도로 서로를 공평하게 대했고, 모두가 그 원칙을 엄격하게 지켰던 것 같다.
이러한 규칙 준수와 공정성은 오늘날 스웨덴 기업의 특징이기도 하다. 스웨덴계 기업과 거래하는 일본인 경영인은 그들이 개인주의 사회이므로 규칙을 지키고 공정하게 처리하는 것을 매우 중시한다고 말한다. 세금을 어떻게든 줄여보려고 편법을 쓰는 일본 기업들과 달리 스웨덴 기업은 어디까지나 현지 법률에 따라 정정당당하게 사업을 하라고 지시한다. 매매를 할 때도, 자기에게 불리한 사항이라도 먼저 정확하게 설명하고 나서 당당하게 교섭한다.
또한 고객의 급한 사정에 대해 일본 기업들은 바가지를 씌우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스웨덴 기업은 그런 일을 절대 하지 않고 해당 비용만 정확하게 청구한다. 반대로 스웨덴계 기업은 급한 사정을 빌미로 불합리한 요구를 받으면 크게 화를 낸다. 유대인 상법과 마찬가지로 상호 신뢰를 중시하므로 그 신뢰를 배반하면 관계를 딱 자르고 거래처를 바꿔버린다.
교훈 4 - ‘혼자는 강하다’는 정신을 갖고 강렬한 개인의 힘을 발휘하라
바이킹들이 어려운 일을 혼자 힘으로 헤쳐나가려는 독립정신을 가졌듯이 오늘날 그들의 후손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주변 사람의 힘을 빌려 추진하려는 자세가 없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주변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려고 한다.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일본인은 친한 사람에게 상의하지 않으면 ‘건방지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스웨덴인은 ‘죽기 3초 전쯤 되어야 도와달라고 말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러한 스웨덴인의 개인주의를 표현한 말로 ‘혼자가 가장 강하다(Being alone is strong)’는 말이 있다.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자기 혼자 책임지고 결정한다는 그들의 강력한 자아가 잘 표현되어 있다. 참고로, 스웨덴어에는 은(恩)이라는 말이 없다고 한다. 그들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은 개인의 선의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시스템이 구제해야 한다는 합리적인 발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세계 최고의 복지가 실현된 스웨덴 사회를 만들어낸 비밀이다.
교훈 5 - 관료주의를 배제하고 속도를 중시하는 슬림화된 조직을 만들라
한 사람의 절대 군주가 이끄는 대군을 거느린 프랑크 왕국과, 작은 보트 단위로 편성된 소집단이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으로 속도감 있게 움직이는 바이킹 부대와의 전투에서 승리는 바이킹 부대의 몫이었다. ‘지휘관이라도 늘 다수 구성원의 비판적 심사에 의해 평가를 받고 있었다.’는 바이킹 군사조직은 일상적 활동에서는 톱다운 방식을 취했지만 조직 편성이나 지휘관 선임에서는 구성원들의 동의가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지휘관은 구성원들의 의견을 존중하며 결정을 내려야 했다.
이러한 바이킹 방식은 오늘날 스웨덴 기업에서도 계승되고 있다. 스웨덴 기업에서는 동료를 퍼스트네임으로 부르는 것이 관례이며, 설령 상대방이 상사라 해도 마찬가지다. 스웨덴 비즈니스맨은 지위나 직함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경의를 표하지 않는다. 설령 평사원이라도 사장과 대등하게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직위나 직함이 높다고 어깨에 힘을 주는 일이 없는 평등주의가 기업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침투해 있는 것이다.
스웨덴 기업들은 오픈도어 정책을 통해 중역이나 사장도 늘 자기 사무실 문을 열어두어 사원과 자유롭게 대화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미국 기업들도 한때는 그렇게 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실제로는 직위 사이에 높은 울타리가 있어서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스웨덴에서는 그것을 실제로 실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