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다움 리더십
박정열, 박선웅 지음 | 흐름출판
자기다움 리더십
박정열 외 지음
흐름출판 / 2025년 5월 / 240쪽 / 21,000원
1부 _ 빅블러의 시대, 조직 체질 예보
조직 성장은 리더의 인간관이 결정한다
담 쌓으면 죽는 시대가 되었다: 사전에서 찾아보면 ‘블러(blur)’는 ‘희미한 것’이라는 의미다. 과거에는 분명했던 업종 간 경계가 4차 산업혁명을 거치며 혁신적인 기술 발전으로 희미해졌다. 사물인터넷, 핀테크, 인공지능 같은 기술의 변화로 산업 간 장벽이 무너지며 비즈니스를 구별하는 일 자체가 모호해지고 있다. 단순한 기술적 측면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혼합되면서 기존 경계가 희석되거나 융화되는 현상을 ‘빅블러(Big Blur)’라고 부른다.
온라인으로 도서를 팔던 아마존은 정보기술을 기반으로 전자상거래, 미디어 유통기업을 넘어 금융사로 확장하는 길도 모색하고 있다. 전기차 기업 테슬라는 인공지능 기술로 차량의 주행 데이터를 분석하고 개별 운전자의 사고 위험을 계산해 보험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모바일 메신저로 시작한 카카오도 쇼핑, 커머스, 뱅킹까지 산업 전반으로 영역을 넓혔다. 이러한 빅블러 현상은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고 이 변화가 또 다른 빅블러를 불러오며 이른바 빅블러 생태계가 태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이 빅블러 생태계를 맞이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빅블러는 쉽게 경계가 융화되는 현상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경계의 제한을 전제하지 않는 창의적 사고로 실험과 탐색에 나서며 ‘경계 허물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유연하게 고객의 소리를 경청하며 자신의 테두리를 스스로 극복하는 기업, 창의성을 발휘하며 고객 중심주의를 지향하는 구성원을 보유해야만 여전히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 시작은 기존에 우리가 지니고 있는 생각의 틀을 깨는 것이다. 빅블러 시대에는 기존의 고정관념이 최대의 적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유연하고 창의적인 시각이 강물처럼 흐르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 허물어야 할 고정관념의 담은 무엇일까?
사람에 대한 관점 혁신이 먼저다: 진정한 변화와 혁신은 모든 조직의 로망이며, 조직의 리더에게 요구되는 핵심 책무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수많은 변화와 혁신의 노력이 불발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바로 ‘관점의 혁신’이 없기 때문이다.
런던대학교 보 로토 교수는 “가장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변화의 혁신은 기술과 제품, 서비스의 혁신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관점의 혁신이다”라고 지적했다. 이는 성공적인 혁신을 이루려면 그 주체자들이 먼저 스스로가 지닌 기존 시각을 혁신해야 한다는 뜻이다. 리더십을 혁신하려면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묻는 본질적인 관점, 사람을 대하는 근본 철학, 구성원의 역동성과 조직의 활력을 바라보는 시각을 먼저 혁신해야 한다. 그렇다면 새로운 리더십으로 혁신과 변화를 모색하기 위해 어떤 관점을 들여다보아야 할까? 바로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사람과 관련해서 내려놓아야 할 기존 관점은 무엇이고 새로이 장착해야 할 관점은 무엇인지 살피는 일이야말로 빅블러 시대를 본질적으로 준비하는 조직과 리더십이 내딛는 혁신의 첫 걸음이다.
20세기의 경영: 테일러리즘, 포디즘, 슬로어니즘: 1960년 미국의 경영사상가인 더글러스 맥그리거는 리더가 사람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가에 따라 경영 방식, 조직 문화, 리더십의 모든 것이 달라진다며, 이를
와 라는 두 가지 관점으로 나누어 세상에 제시했다. 는 사람이란 본질적으로 이기적이고 게으르며 일하기를 싫어하기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자극이 필요하고, 또 사람이란 꾸준히 감독하고 규율로 관리하며 결과에 따라 상벌을 내려야 한다는 관점이다. 반면 는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와 잘 연결되기만 하면 사람은 자신의 목표는 물론 조직의 목표에도 기꺼이 관심을 기울이며 도전을 추구하고, 비록 불완전하며 실수가 많더라도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자기 지시와 자기 통제로 이를 보완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맥그리거는 팽창적 성장을 구가하던 20세기에는 조직이 주도하는 생산성 극대화가 설득력을 얻으며 관점이 득세했지만, 복잡성과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21세기에는 직원이 이끌어 나가는 생산성 극대화가 지속가능성의 관건인 만큼 관점이 부상하리라고 전망했다.
20세기 경영의 토대인 테일러리즘(“노동자란 생산수단에 불과하다.”), 포디즘(“어떤 일도 작은 일로 쪼개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슬로어니즘(“중앙집권적 사업부제만이 비효율을 막을 수 있다.”)은 20세기에 고속 성장을 견인하며 거스를 수 없는 기업 운영의 모델이 되었다. 그런데 이 모델에는 중요한 가정이 한 가지 있다. 바로 경영자가 생각하고 노동자는 그것을 행동에 옮긴다는 전제이다. 이에 따라 직원들은 일터에서 정해지고 주어진 대로 불량 없이 업무를 해내기만 하면 되기에, 자의적으로 업무 표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통제 및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됐다. 결국 이 전제는 조직이 왜 사람을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지를 정당화해준 것이다. 이처럼 관점이 과학적 관리와 함께 20세기 경영관을 지배했다.
그러나 21세기에는 세상이 변했다. 20세기 직장인들은 출근할 때 자신의 머리와 가슴은 회사 정문 앞에 두고 들어가서 경영자와 리더들이 생각해놓은 업무내용을 그들의 손발이 되어 처리하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자기 의견을 밝히고 싶어 하고, 일방적인 지시는 따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20세기에 태어나 관점이 배어 있는 리더들에게는 리더십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
문제는 빅블러 현상이 심화되는 21세기에는 리더 혼자만의 능력으로 혁신을 주도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복잡하고 불확실하고 변동성이 커서 애매모호한 상황이 잇따르는 터라 현장에서 주도적으로 변화를 관리할 필요가 생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성원이 혁신의 객체가 아닌 주체가 되도록 리더십을 발휘하는 역량이 더욱 절실해졌다. 이제 관점으로 사람을 대하도록 리더십을 혁신하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결국 리더십의 모든 것은 인간관에서 시작된다. 인간이 스스로 가치를 느끼는 일에 헌신하고, 그 일을 제대로 완수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존재라고 믿는다면 리더는 구성원에게 그런 토양과 기회를 기꺼이 마련해줄 것이다.
일하는 인간의 욕구를 읽어라: 결국 리더십의 모든 것은 인간 본성을 바라보는 관점, 즉 인간관에서 시작된다. 관점처럼 인간 본성이 이기적이고 게으르다고 믿는 리더라면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반면 관점처럼 인간은 스스로 의미와 가치를 느끼는 일에 헌신하고, 그 일을 제대로 완수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한다고 믿는 리더라면 각 구성원이 그런 능동성을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토양과 기회를 마련할 것이다. 어느 쪽이 옳을까?
조직의 리더는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아야 한다. 스스로를 자발성과 능동성을 지닌 존재라고 믿는다면 리더는 구성원에게도 그런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열어주어야 한다. 조직이 구성원의 성장을 돕는 비옥한 토양이 될 때 조직도 성장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2부 _ 고해상도의 렌즈로 구성원을 들여다보라
정체성, 사람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
정체성에는 방향성이 있다: 한 개인으로서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것은 진정한 자신이 누구인지 이해하고 그에 걸맞은 방향을 따라 살아가기로 결단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정체성이라는 개념에는 특정 방향에 대한 동기 부여가 이미 포함되어 있다. 특정한 목표와 방향성을 설정했을 때 그 목표를 향한 에너지가 솟아난다. 하지만 사람들, 특히 한국인들은 대개 자신과 상관없는 목표를 설정하곤 한다. 부모님이 원한다거나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특정한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 안에 뿌리박히지 못한 목표는 오래도록 추구하기 힘들고, 설사 목표를 달성한다고 해도 행복한 삶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그래서 특정한 목표와 방향을 바라보며 결단을 내리기 전에 자기 자신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며,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삶의 방향을 설정할 때 강력한 힘이 생겨날 뿐 아니라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이 따라온다.
정체성의 힘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선교사이다. 선교사들은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 오지에 가서 짧게는 몇 년, 길게는 몇십 년을 보낸다. 그러다 풍토병에 걸려 죽기도 하고 현지인에게 처형을 당하기도 한다. 막대한 돈이나 명예가 보장된 일도 아닌데 이들은 왜 그토록 목숨을 걸고 선교의 길을 걷는 것일까? 자신이 신의 뜻을 전하는 신의 사도라는 정체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 정체성에는 돈과 명예, 안정적인 삶으로도 이끌어낼 수 없는 강력한 힘이 담겨 있다.
일의 정체성에 우리의 정체성이 담길 때: 한국의 조직, 특히 공공 조직에서는 순환근무를 원칙으로 삼으며 구성원의 선호와 역량에 상관없이 이른바 뺑뺑이를 돌리곤 한다. 과거에는 이런 근무 방식이 나름의 역할을 했을 테지만, 구성원 개개인에게 고도의 전문 지식과 창의성이 요구되는 오늘날에는 그런 근무 방식이 구성원 개인은 물론 조직의 성장도 방해할 가능성이 크다.
사람들은 자신이 재미를 느끼고 잘하며 의미도 느끼는 일을 할 때 훨씬 더 몰입하고 만족하며 높은 성과를 낸다. 그래서 리더는 구성원들을 고해상도 렌즈로 들여다보고 구성원 개개인의 정체성에 걸맞게 업무를 맡겨야 한다. 하지만 구성원이 자신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열정적으로 일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전제 조건이 하나 있다. 조직에서 수행하는 일이 구성원 개개인이 정체성을 발휘할 수 있는 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리더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조직 내에서 돌아가는 일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의해서 그 일에 공명할 수 있는 구성원의 에너지를 끌어내는 것이다.
조직과 구성원 정체성의 교집합을 만들어라: 리더와 구성원 사이에 생기는 불만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정체성 이슈가 그 핵심이다. 리더가 제대로 의사소통하지도 않고 어떤 맥락에서 수행해야 하는 업무인지 설명하지도 않은 채 구성원에게 특정 업무를 맡기면, 구성원은 그 일의 정체를 모르니 “이걸요? 제가요? 왜요?” 하고 묻게 된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업무를 처리하다 보면 번아웃이 찾아오고 이직도 고려하게 된다. 이런 문제를 피하기 위한 단기적 해결책은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의사소통에 나서는 것이다. 각 구성원에게 맡기는 업무가 크게는 전체 조직, 작게는 해당 부서에서 추구하는 큰 그림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설명하며 구성원들이 일의 전체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하지만 빅블러 시대를 선두에서 이끌어 나갈 조직을 만들고 싶다면 긴 안목으로 근본 체질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물질적 보상을 제공해서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일을 시킨다는 관점이 지배적이었지만, 이제는 조직 내에서 구성원 개개인이 하기를 원하고 잘하고 의미 있다고 여기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관점이 필요하다. 조직의 정체성과 구성원의 정체성 사이에 교집합을 만들어서 개인을 위한 일과 조직을 위한 일의 경계를 허물고 순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그러자면 크게 세 가지가 필요하다. 먼저 최고경영자와 각 부서의 리더는 조직이 추구하는 궁극의 목적은 무엇이고, 각 부서는 그 목적 달성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직관적이고 구체적인 언어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조직의 정체성을 바로 세워야 한다. 둘째, 조직의 정체성에 공감하는 인재를 선발해야 한다. 따라서 구성원을 선발할 때 지원자의 스펙과 업무 경험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지원자가 조직이 추구하는 궁극의 목적을 공유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구성원 개개인을 이해하고 충분히 의사소통을 하면서 누가 어떤 업무에 공명하며 몰입할 수 있을지 파악해야 한다.
필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신과 조직이 추구하는 가치가 서로 일치한다고 생각하는 구성원은 자신의 정체성과 조직의 정체성이 서로 강하게 얽혀 있다고 인식했고, 업무 만족도가 높고 업무에 몰입하며 이직을 고려하지 않았다. 구성원 개개인의 정체성과 조직의 정체성 사이에 교집합을 만드는 것은 구성원의 행복을 증진하는 동시에 구성원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폭발시키는 길이기도 하다. 개인의 정체성과 조직의 정체성이 공명할 때 조직과 구성원이 함께 성장할 수 있다.
정체성이 만개한 모습, 자기다움
조직이 고유함을 존중할 때: 과거에는 평균주의 덕분에 기업들이 번창을 누렸고, 소비자들은 더 양질의 상품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었다. 또한 대학 지원자와 구직자들이 평균화된 시험을 치르면서 족벌주의와 연고주의가 줄어들었고, 출신 배경이 불리한 학생들에게도 전례없는 출세 기회가 돌아갔다. 이렇듯 평균주의는 비교적 안정되고 부유한 사회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1세기의 세 번째 10년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도 여전히 수많은 기업 조직에서 구성원 개개인보다 평균주의와 테일러리즘에 기반한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신념 하에 평균을 토대로 구성원들을 평가한다. 왜냐하면 평균주의는 성공 방정식이었고, 그래서 빠져 나오기 힘든 안전지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 환경이 복잡하고 불확실하게 흘러가며 경계가 사라지는 때일수록 생존을 위해 집단지성이 극대화되고 다양한 소리가 모여야 한다. 다시 말해, 권위와 통제 위에 구축된 기존의 평균주의 시스템을 해체하고 구성원의 독특함에 기반한 새로운 경영철학을 재정립해야 한다.
영향력을 체감하면 생산성은 폭증한다: 사람은 시스템의 부속품이 아닌 독립된 존재로서 정체성을 갈구한다. 이런 개별화 경향은 일터가 생계에 필요한 자원을 공급하는 곳을 넘어 자신만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세상과 의미 있는 관계를 최대한 형성해가는 기회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심어준다. 다시 말해 ‘나는 일하면서 존재감을 만끽하고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명확한 답을 얻고 싶은 것이다. 이렇게 직장인들은 이른바 ‘일터에서 행복한 나와 마주하기’ 같은 개인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미래의 조직 리더들은 구성원들의 이 개인 프로젝트를 진심으로 인정하고 매끄럽게 업무와 연결하는 역할로 빠르게 옮겨가야 한다. 이런 변신에 성공한다면 그 조직과 리더들은 앞으로 더욱 심화되는 빅블러 국면에서도 여전히 혁신의 주체로 나서는 구성원들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일터에서 행복한 나와 마주한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조직심리학자 로라 로버츠 교수는 ‘일터에서 자신의 최고 모습(Best Self Portrait)을 발휘한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최고 모습’이란 자신이 가진 것으로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위해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자신의 최고 모습을 구성한다는 의미이다. 즉, 일터에서 자신의 최고 모습을 동료들에게 드러내 보이며 일과 연결해서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칠 때 존재감이 최고조에 달한다는 얘기이다. 자신을 진정으로 존중해주는 커뮤니티에서 자신이 어떤 모습을 보였던가 잠시 떠올려본다면 일터에서 최고의 모습을 발휘하고 이를 뒷받침해주는 주변의 지지가 만들어낼 생산적 역동성과 활력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최고 모습’의 실체는 무엇일까? 로라 로버츠 교수는 자질이나 특성이 최고조로 발휘된 상태라고 설명했는데, 그러려면 무엇을 자신의 자질이나 특성으로 보아야 할지 구체적으로 살필 필요가 있다. 여기서 잠깐 아리스토텔레스의 도움을 받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