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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의 감정사전

김연의 지음 | 플랜비디자인


팀장의 감정사전

김연의 지음

플랜비디자인 / 2023년 7월 / 236쪽 / 16,800원





1장 두려움



어쩌다 팀장 #당혹스럽다


‘저런 사람이 어떻게 팀장이 됐을까?’ 이런 생각 참 많이 했었다. 리더십은커녕 무능한 데다 인성도 별로라서 갖은 방법으로 팀원들을 괴롭게 만드는 사람. 그 밑에 있다 보면, 이런 사람을 팀장으로 세우게 된 경위가 진심으로 궁금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내가 팀장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팀장은 진짜로 자신도 모르게 ‘어쩌다가’ 된다는 것을. 드라마틱한 발탁 인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팀장 보임은 공석에서 시작된다. 어떤 팀장이 회사를 그만두거나 팀이 신설되었을 때, 비어 있는 팀장 자리를 채우기 위해 인사팀은 머리를 싸맨다. 외부에서 팀장을 데려올 수도 있겠지만 특별히 전문성을 요하는 직무가 아니라면 내부 인력을 활용하는 게 비용적인 면에서 효율적일 것이다.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다니는 회사는 10~15년 차 사이에 팀장이 되는 경우가 많다.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는 10년 차 이상의 과장, 차장들이 암묵적으로 팀장 후보이며, 그들 중 한 명이 비어 있는 팀장 자리에 앉는다. 말 그대로 ‘어쩌다 팀장’이다. 팀장이 되기 전에 철저히 훈련받고 준비하는 예비 팀장이 거의 없다는 건 이미 많은 리더십 책에서 증명한 바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실무자로서 가장 일을 많이 해야 하는 시기인 데다 이미 팀장이 된 사람들을 교육시키는 프로그램조차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상황 속에서도 훗날 자신이 리더가 될 때를 대비해 차근차근 준비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난 그러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나도 15년 차가 되어가니 마음 깊은 곳에서 ‘한 3년 안에는 팀장이 되어 있지 않겠어?’ 정도의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감정적인 기대일 뿐 현실에서 필요한 건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11월 초쯤, 갑자기 옆 팀의 팀장이 퇴사하면서 우리 팀 팀장이 그 자리로 가게 되었다. 갑자기 팀장 자리가 공석이 된 우리 팀에서는 직급이 제일 높은 내가 팀장이 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순식간의 일이었다.“12월 1일부터 팀장이야. 잘할 수 있지?”

부서장이 나를 불러 결정된 사항을 말해 주었을 때 순간적으로 표정 관리가 안 되었는지, 놀랍고 당황스러워 굳어버린 내 얼굴을 보며 부서장이 말했다.“왜, 싫은가?”

솔직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 이렇게 갑자기? 당장 다음 달부터? 잘할 수 있냐고요? ‘언젠가 되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그 언젠가가 이렇게 갑자기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몸도 마음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팀장이 뭐 하는 사람인지조차 명확한 개념이 없었다. 팀의 대표, 리더, 관리자, 감독, 선장? 그래서 그게 뭔데요. 뭘 하는 건데요!

직장인에게 승진이란 기쁜 일이고, 나 역시 갑작스레 씌워진 감투가 아주 싫기만 했다면 거짓말이다. 다만 기쁨을 만끽하기엔 부담이 너무 컸다. 준비할 시간이 없어서이기도, 잘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이기도 했지만 가장 어려운 건 이제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를 전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사원에서 대리가 되고, 대리에서 과장이 되면 일이 좀 많아지고 어려워질 수는 있지만 정체성이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팀원에서 팀장이 되는 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일하는 방식도, 말도, 행동도, 생각까지도 모두 다 달라져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는 모르겠는…. 참으로 난감한 노릇이다.

공식적인 팀장 발령 날짜까지 남은 시간은 3주, 이미 옆 팀의 팀장 자리는 공석이었기에 우리 팀 팀장은 옆 팀의 일을 챙기고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우리 팀의 일은 지금부터 당장 내가 챙겨야 하는 것 같아 보였지만 막막했다. 팀원들에게는 이제부터 어떻게 말을 하지?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일은 앞으로 누구한테 맡기지? 팀장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몸과 마음을 세팅하기에 3주는 턱없이 부족했다. 팀원들이 각자 해 왔던 일을 다 파악하는 건 고사하고 내가 원래 하던 일조차 다 마무리하지 못한 채 12월이 되었고, 그렇게 난 팀장이 되었다.

팀장이 될 만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기준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알았다. 누구에게나 시작은 이렇듯 갑작스럽고 당혹스러울 것이란 사실. 어쩌다가 팀장이 된 게 그 사람 탓은 아니라는 사실, 누구나 준비되지 않은 채로 갑작스럽게 팀장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나에게 달린 걸까. ‘어쩌다 저런 사람’이 될지, ‘팀장이 될 만한 사람’이 될지 말이다.

★ SUMMARY


실무자로서 인정받고 칭찬받았던 나름대로의 ‘성공 방정식’을 그대로 대입할 수 없을 때, 혹은 그대로 대입했는데 예상한 답을 얻지 못할 때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 성공 방정식을 『리더의 용기』를 쓴 브레네 브라운은 “두꺼운 갑옷”이라고 표현했고, 『팀장으로 산다는 건』의 저자 김진영 님은 “자기 확신 - 비극의 씨앗”이라고 했다. 그것은 라이언 홀리데이의 『에고라는 적』에서 설명한 “내가 가장 대단한 존재라고 믿는 믿음- 에고(ego)”이기도 했다. 아는 척, 멋진 척, 괜찮은 척하기 위해 갑옷으로 겹겹이 무장한다고 해서 진짜 괜찮아지는 것도 아니었고, 내 얄팍한 경험에서 비롯된 확신은 번번이 빗나갔다. 윗사람에게 맞추면 팀원들이 힘들어했고, 팀원들에게 맞추자니 상사나 동료와 부딪혔다. 지금까지의 회사 생활과는 차원이 다른 혼란스러운 시간이었다.

처음 무대에 설 때의 두려움이 ‘긴장감’ 수준이라면, 지금까지 내가 해 왔던 성공의 방식이 ‘더 이상 안 먹힌다는 걸’ 깨닫는 순간의 두려움은 훨씬 더 끔찍했다. 그렇다고 팀장이 되기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방법은 하나였다. 용기를 내는 것. 지금까지 내가 잘 해왔던, 나를 팀장으로 만들어주었던 실무자 시절의 경험치와 노하우를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는 용기와, 처음이라 실수투성이인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했다. 더불어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하나하나 부응하려는 시도를 멈추고, 내 가치관에 따라 맞든 틀리든 무언가를 결정해 나가는 용기까지 필요했다.



2장 불편함



길들이기 #어이없다


결혼하고 나서 얼마 안 되었을 때이다. 집안일을 가지고 네 일이니 내 일이니 옥신각신 다투는 건 으레 비슷한 신혼의 이슈이기에, 친구나 동료들과 이런 얘기를 하면 여지없이 나오는 말이 있었다. “신혼 때 길을 잘 들여놔야 돼.” 재미있는 건 남자도 여자도 각자의 입장에서 같은 소리를 한다는 거였다. 남자들은 아내를 길들이느라 일부러 늦게 들어간다고 했고, 여자들은 자기는 일부러 부엌에 안 간다며 남편을 길들이는 중이라고 자랑하듯 말했다. 그런데 잘 모르겠다. 길들인다는 표현은 상대방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한다는 건데, 애완동물도 아니고 사람을 길들인다고? 그것도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을? 이런 얘기를 하면 신혼이라 사랑 타령한다고 놀림을 받곤 했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서로가 서로를 길들이면, 결국 누가 누구한테 길이 드는 것일까. 그냥 그렇게 서로 길들이며, 길들면서 사는 게 부부인 걸까.

팀장이 되고 나서 오랜만에 이 얘기를 또 들었다. 친한 선배가 팀장 된 걸 축하한다며 밥을 사겠다고 해서 만났는데, 팀장은 할 만 하냐고 몇 마디 묻더니 대뜸 이런 말을 한다.“초반에 팀원들 길을 잘 들여놔야 돼.”

깜짝 놀라 물었다. “팀원을 길들이는 게 뭐죠?”

“팀장이 하라는 대로 하게 만들어 놔야 된다고.”

당연히 팀장이 하라는 대로 하겠지. 직장 생활이 다 그런 거 아니야?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으니 선배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다는 아니어도, 팀장이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하는 팀원이 하나쯤은 있어야 된다니까. 그래야 네가 편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슨 부정을 저지를 것도 아니고 회사 일인데 하라는 대로 하지 않을 팀원들이 있을까 싶기도 했지만 죽는 시늉을 대체 왜? 죽으라고 할 것도 아닌데. 길들인다는 것의 다른 표현은 ‘충성’이다. 나에게 충성을 바칠 한 사람을 만들라는 것, 내가 무슨 짓을 시켜도 두말없이 ‘yes’라고 말할 든든한 내 편을 하나 두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두면 혹시라도 정말 난처한 일을 맡게 되었을 때 그가 내 수족이 되어 줄 수 있고, 더불어 그 친구의 모습을 보며 다른 팀원들도 내게 호의적인 쪽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게 선배의 논리였다.

그런 게 요즘 세상에 가능할까? 충성하는 한 명을 어떻게 키우지? 밥 사주고 술 사 주면 길들여지나? 충성을 한다는 건 자기도 바라는 게 있다는 얘기인데. 결국 라인을 만들라는 건가? 어쩌지, 나는 해본 적이 없어 모르는데. 어떻게 하는지도 모를뿐더러 솔직히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데 팀장 생활을 조금 더 해 보니 무슨 뜻인지 조금은 알 것 같긴 하다. 든든한 내 편, 무조건 ‘yes’라고 대답하는 충성맨, 내 마음도 잘 이해해 주고 급한 일이 있을 때는 눈치 빠르게 대신 손발이 되어 움직여 주고 다른 팀원들과 나 사이의 교량 역할도 하는 그런 팀원이 당연히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건 길들여서 될 일은 아니지 않나. 억지로 한 명을 붙잡아 밥 사주고 술 사 준다고 될 일인지, 중요한 일을 한껏 몰아주고 무조건 평가를 잘 주면 길들여지는 것인지. 그렇게 가공된 관계가 진실될 수 있을까. 설령 나한테 충성을 한들, 그 속에 진심이 없고 자신의 필요에 의한 거라면 그건 더더욱 슬픈 관계란 생각이 든다. 원래 다 그런 거라고, 그런 게 사회이고 직장 생활이라고 말하면 할 말 없지만.

2021년 4월, MBC 예능프로 <아무튼 출근>에 등장한 카드 회사에 다니는 12년 차 직장인 이동수 씨는 자신의 삶을 일보다 중시하며 자유분방하게 살아간다는 점에서 ‘신인류 직장인’으로 소개되었다. 후에 그가 다른 곳에서 하는 강연을 들었는데, 나는 삶 자체가 자유이자 취미 생활인 그의 독특한 일상보다도 매 순간 모든 이들에게 진심인 그의 태도에 더 큰 매력을 느꼈다. 어쩌면 그의 자유로움은 그 진심에서 오는 게 아닐까 싶다. 윗사람이든, 동료든, 고객이든, 가족이든,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까지도 진심인 사람. 그저 매사에 진심이기에 솔직할 수 있고, 솔직하니까 자유로울 수 있는 그의 사고방식이 참 편안해 보였다. 그에게 만약 ‘길들이기’에 대해 묻는다면 뭐라고 답할까. “왜 길들여야 해요?”라고 되묻지 않을까.

나도 모르겠다. 순진한 허니문 같은 소리라고 해도 할 수 없다. 나는 충성맨은 필요 없다. 그저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알아가고, 맞춰가고, 가끔 삐걱대기도 하면서 익숙해지는 관계이고 싶다. 그렇게 서로 서서히 물들어가며 같은 팀에 있든, 다른 팀으로 가든, 회사를 떠나든 오래도록 만남을 지속하고 싶다. 그런 게 진짜 좋은 관계 아닐까? 부부든, 팀이든.

자유의 무게 #버겁다


팀원 시절에는 주어진 일만 하면 되었다. 물론 팀원이어도 시키는 일 이상을 해내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탁월한 열정과 실력을 인정받아 특진을 하거나 더 좋은 보직으로 옮긴다. 하지만 그건 순전히 개인의 선택이다. 시키는 일 이상을 하지 않는다고 잘리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시키는 일도 못하는 사람조차 꽤 오래 회사에 다니곤 한다.)

그런데 팀장은 다르다. 존재 자체가 새로운 일을 계속 만들어 내야 하는 사람이다. 시키는 일만 하고, 주어진 일만 하면 어느 순간 공격이 들어온다. 우리 팀의 일이었던 영역이 갑자기 다른 팀의 일이 되기도 하고, 조직개편으로 인해 갑자기 팀이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니까 쉴 새 없이 우리 팀의 존재 이유와 나라는 사람의 가능성을 윗선에 각인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문제는 무조건 영역을 넓히는 것만이 미덕이 아니라는 점이다. 위에서 시키는 일 이상을 하는 건 회사로서는 당연히 칭찬할 일이지만 동시에 팀원들의 원망을 들어야 한다. 지금도 충분히 바쁘고 힘든 것을 뻔히 알면서 팀장이 계속 일만 늘린다고 볼멘소리를 할 것이다. 내가 팀원 시절에도 거절하지 못하고 온갖 일들을 받아오는 예스맨 팀장은 무능하다고 욕을 먹었다. 차라리 그걸 왜 우리가 하느냐며 방어선을 단단히 구축한 팀장이 환영받았다. 팀원들의 생리는 원래 그렇다. 같은 월급을 받고, 최대한 적게 일하는 사람이 어쩌면 승자이다. 그런 상황에서 팀장이 자꾸만 엉뚱한 일을 벌이거나 우리 일도 아닌 일을 대책 없이 가져오는 건 정말 짜증 나는 일이다. ‘성과가 날 게 분명한, 도전적이면서도 재미있는 일’은 누구나 욕심내지만, 그렇지 않은 일은 언제나 회색지대로 남는다. 그러니까 팀장의 영역 싸움은 하기 싫은 일은 절대 맡지 않으면서 동시에 성과가 날 일들만 우리 일로 가져오는, 살벌한 눈치 게임이었다는 것을 팀장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우리의 일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또 하나는, 우리 팀에서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결정하는 작업이었다. 기존에 해 왔던 일, 위에서 시키는 일이라도 성과가 나지 않거나 우리 팀에서 해야 할 당위성이 없다면 하지 않는 결단이 필요했다. 모든 일은 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고 역사가 있지만 내가 팀장이 된 다음부터는 이제 내 머리로 그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 내야 했는데, 반대로 말해 내가 납득할 수 없다면 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팀에서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한 후,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과감히 없애는 것이 그 다음 숙제였다. 인원은 한정되어 있으니 일을 덜어내지 않으면 새로운 일을 할 수 없었다. 각각의 일에 대해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다시금 찬찬히 파악하는 건 팀원들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었고, 심지어 부서장이 시키는 일에도 촉각을 곤두세우며 경중을 판단해야 했다. 위에서 시키는 일이니 당연히 해야 하는 줄 알고 팀원들과 뚝딱뚝딱 자료를 만들었는데, 일주일 후에 부서장이 “그건 됐고!” 이 한 마디로 사장시키는 일도 허다했다. 이럴 거면 왜 한 거냐고 투덜거리는 팀원들에게 할 말이 없었다. 다른 팀장은 부서장 말 하나하나에 너무 신경 쓰지 말라는 조언을 한다. 그러나 위에서 하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인지, 귀담아들어야 하는 말인지 그걸 모르겠으니 전부 신경이 쓰인다. 나도 팀장 경력 5년쯤 되면 귀가 좀 트이려나.

선택할 수 있는 자유란 얼핏 굉장히 좋은 것 같지만 사실은 매우 어려운 권리인 것 같다. 시키는 일만 하면 편하다.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해야 하는 부담이 없으니까. 성과가 나고 재미있는 일을 계속해서 확장해가는 것과 동시에, 위에서 시켰지만 의미가 없거나 불필요해 보이는 일을 과감히 거부하고 덜어내는 것. 이처럼 능동적인 선택의 과정을 매 순간 밟아가야 한다니. 내 일과 남의 일만 구분하면 되었던 팀원 시절에는 상상도 못했던 자유의 무게가, 초보 팀장은 아직 참 버겁다.



3장 좌절과 분노



삽질 #괴롭다


삽질을 많이 하던, 아니 삽질만 하던 팀원 시절의 이야기이다. 팀장이 뭘 시켜서 하고 있는데, 2시간쯤 후 팀장이 갑자기 다른 걸 시킨다.“아까 그 일은요?”

“아, 그건 안 해도 돼.”

새로 시킨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회의에 다녀온 팀장이 또 부른다.

“아까 그건 일단 놔두고, 이것부터 해라. 급하다.”

하… 이거 했다 저거 했다 하는 것도 짜증 났지만, 나름대로 열심을 다하고 있던 모든 일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리는 팀장의 태도에 신경질이 났다. 모든 게 다 급하다고 해서 허둥지둥하고 있으면 잠시 후 다른 더 급한 일에 밀리고, 결국 하루 종일 이쪽저쪽 삽만 찔러보다 겨우 마지막에 떨어진 일 하나 간신히 처리하느라 내 소중한 시간을 다 보냈다. 그때 다짐했었다. 내가 나중에 팀장이 되면 절대 저러지 말아야지. 생각하고 일을 시키고, 팀원이 하는 어떤 일도 하찮게 여기지 말아야지. 최소한 삽질은 시키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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