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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명저)최고 경영자 예수

로리 베스 존스 지음 | 한언출판사


최고 경영자 예수

로리 베리 존스/ 송경근. 김홍섭 옮김

한언 / 1999년 / 332쪽 / 9,800원



자아극복의 강점

예수님은 ‘ 나는’ 이라고 말씀하셨다.


만약에 예수님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몰랐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자신이 타고난 재능을 몰랐다면?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발견하기 위하여 광야로 들어가셨다. 광야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특별한 재능과 관련된 명확한 선택을 해야만 하셨다. 예수님이 40주야를 단식하시고 나서 몹시 시장하셨을 때 악마의 유혹이 있었다. 예수님은 그러한 유혹을 온전히 극복하셨고 40일간의 시험과 연단을 마친 후 자신이 누구이며 자신의 소명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인식한 ‘한 사람’으로 나타나셨다. 광야의 경험을 마친 후 예수님은 자신을 묘사할 때 비로소 ‘나는’이라고 표현하기 시작하셨다. 그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구약 성경에서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들이 들었던 대답은 “나는 곧 나다”였다. ‘나는’이라는 단어는 우주의 모든 창조적 힘을 반영한다.



예수님은 그의 상사이신 하나님과 지속적인 교제를 유지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상사가 누구인지 아셨고 매일 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하셨다. 〈USA Today〉의 창업자인 알 뉴하스(Al Newharth)는 전국을 돌면서 사람들에게 어떤 신문을 읽고 싶은지 물었다. 연봉 백만 달러였던 그는 신문 가판대에 25센트짜리 동전을 넣는 사람들을 자신의 상사로 간주했다, 그는 자신이 섬기는 사람들과 교제를 유지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예수님은 날마다 서너 시간씩 상사이신 하나님과 만나셨다. 그 어떤 것도 미리 정해놓은 이 고귀한 시간을 방해할 수 없었다. 리더로서 상사와 지속적으로 교제를 유지하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당신은 상사와의 교제를 통해 공중에서 조망하는 것과 같은 입체적이면서도 거시적인 관점을 배울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당신의 인생 행로를 훨씬 더 명확하게 이끌어 줄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에 충실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을 인간들에게 보다 나은 행로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선언하셨고 그 사명으로부터 일탈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광야의 시험에서 자신의 사명과 관련 없는 몇 차례의 기회를 제시받았다. 그러나 그러한 기회들은 자신의 사명과 합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단호히 거부하셨다. 하나님으로부터 무한한 능력을 부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명으로부터 벗어난 것은 단 한가지도 행하지 않으셨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전이나 회당을 짓지도 않으셨고 묘지에 내려가서 죽은 자를 살리지도 않으셨다. 예수님에게는 명확한 사명이 있었고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에 충실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을 믿으셨다.


예수님은 인류 역사상 가장 확신에 찬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을 인류를 위한 생명의 통로라고 믿었다. 자신을 믿는 것은 리더십의 핵심적 특성이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동요하는 리더는 초점 없이 흔들리는 신호를 보낸다. 만약에 사람들이 자신을 100% 믿는다면 세상이 어떻게 바뀌겠는가? 인류의 낮은 자부심으로 인해 날마다 발생하는 손해가 얼마나 될까?

나는 대학 진학 문제를 놓고 의논하기 위하여 아버지와 마주 앉았던 날을 잊을 수 없다. 그 날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로리 수업 시간에 배운 시들 중에서 유일하게 잊혀지지 않는 시가 하나 있단다. 그 시구를 들어 보겠니 ‘나는 인생을 돈버는 것으로 계약했었다. 단지 배우면서 당황한 것은 내가 인생에 요구한 액수만큼 인생도 나에게 지불한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네가 원하는 것을 찾으러 떠나거라 너는 네가 하겠다고 결정한 모든 것을 해낼 수 있어” 라고 격려해주셨다.

우리는 100%의 믿음은 교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교만은 자신감의 결여이지 자기 믿음의 결여는 아니다. 예수님은 누구에게도 교만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다고 자신의 힘을 부인하지도 않으셨다.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내려왔고 다시 하늘로 올라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며 인류가 어떻게 천국을 이룰 수 있는가를 가르치시기 위해 오셨다고 믿으셨다, 예수님은 자신을 100% 믿으셨다.



예수님은 대의를 위하여 열정적으로 헌신하셨다.

대의를 위해 열정적으로 헌신하지 않는 리더는 타인으로부터 헌신을 이끌어 낼 수 없다. 예수님은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라고 말씀하셨다(요한계시록 3:15-16). 예수님은 자신의 대의에 헌신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제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충고하셨다. 넬슨 만델라는 그가 미남이거나 카리스마를 지녔기 때문에 흑인 해방의 리더가 되지는 않았다.

그는 감옥 생활과 외로운 투쟁의 길을 통하여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타협을 거부하고 자유에의 헌신을 고집하며 20년 이상 감옥에서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대의에 대한 열정적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실제로 많은 리더들이 경험하듯 사람들은 잔치에서는 리더들의 옆자리에 앉기를 원하지만 그를 도와 지하실 청소를 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모든 사람들이 종려 주일(Palm Sunday: 부활절 직전 일요일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기념일)에는 예수님의 발 앞에 종려나무 가지를 놓고 찬양하는 행복감에 젖었지만 막상 예수님이 ‘골고다(해골)’ 언덕을 올라가기로 결심했을 때는 어느 누구도 함께 오르지 않았다. 리더는 혼자라도 기꺼이 그 언덕을 올라가야만 한다.



행동의 강점

예수님은 행동으로 옮기셨다.


하나님은 창조하셨고, 창조해오셨으며, 현재도 창조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창조의 힘은 결코 중단된 적이 없다. 나는 예수님이 새로운 사고 방식을 창조하고 우리에게 새로운 언약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고 믿는다.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하노라.”(요한복음 21:25) 또한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라고 말씀하셨다.(요한복음 5:17) 예수님은 심지어 죽음에 이르러서도 할 수 있는 모든 사역을 다하셨다. 사람들은 그가 더 이상 행동하지 못하도록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하였다. 예수님은 육신이 제자들과 함께 하지 못할 것을 아시고 제작들이 사역을 수행하기를 원하셨다. 예수님은 행동으로 옮기셨고 우리들이 행동할 것을 원하셨다.

예수님은 계획을 가지셨다.


어떤 컨설턴트가 말했다. “훌륭한 아이디어가 1달러의 가치를 지닌다면 그 아이디어를 실현시키는 계획은 1백만 달러의 가치를 지닌다.” 훌륭한 리더는 계획을 가진다. 예수님은 계획을 가지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라는 결과를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분명한 지침을 주셨다. 예수님은 세세한 모든 것을 알고자 하시지는 않으셨으나 전체적인 청사진을 확실히 염두에 두시고 내부 지침에 의거하여 하루하루 실천에 옮기셨다.

때때로 계획은 하나의 단순한 목표에서 출발할 수도 있다. 시민권리 운동은 ‘흑인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버스의 뒷좌석에만 앉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주장과 같이 단순한 것일 수도 있다. 동등한 권리란 보이지 않는 하나의 개념이다. 이처럼 구체적인 그림을 수반하지 않는 개념은 파악하기 어렵다. 그러나 ‘버스의 뒷좌석에만 앉아야 한다’는 사실은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하나의 그림을 창출한다. 이러한 그림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욕구가 하나의 계획으로 발전되는 것이다.

훌륭한 리더는 단순한 그림들을 훌륭하게 변화시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은 팀을 결성하셨다.


예수님은 본격적으로 일하기 시작하게 되었을 때 지체하지 않고 팀을 결성하셨다. 예수님은 호수에서 “나를 따르라”고 외치셨고 사람들은 주저하지 않고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도 혼자서는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음을 알고 계셨다. 리더나 경영자로서 어떤 중요한 일을 성취하려고 한다면 성공으로 가는 첫 단계는 팀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혼자서 모든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도움을 청하는 것은 나약함의 표시라고 생각하는 존 웨인이나 슈퍼 우먼 같은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의 개인주의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가 자신의 독특한 신념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 지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 고상한 의도, 눈부신 발명, 기적적인 발견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실행할 팀을 결성하지 않는 한 결코 의미 없는 일이라는 것은 진리이다. 결국 최고의 아이디어를 수행할 팀을 결성하는 사람이 승리한다.



예수님은 요약해서 말씀하셨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몰려와서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하고 물었다.(마태복음 22:36) 그들은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이 질문을 던졌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이 수천 가지 율법 가운데 적어도 하나 정도는 잘못 인용하실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수천 가지의 가르침을 정제하여 다음과 같이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하여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태복음 22:37-40) 만약 사람들이 핵심적인 가치를 이해할 수 있다면 삶의 방향을 찾느라 의심하고 혼란스러워하며 에너지를 잘못 사용하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인들이 표방하고 있는 모든 것의 정수는 ‘자유’라는 하나의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 미국인들은 지난 2백년 동안 그 ‘자유’라는 단어를 완성하고, 정의하고, 이해하고 그리고 실천해 왔다.리더들은 타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개념들을 확인하고 분명하게 말하며 그리고 요약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리더들은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아이디어로 요약한다는 점이다.



예수님은 후계자를 훈련시키셨다.


예수님은 “내가 한 일보다 더 큰 일을 너희들이 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며 제자들을 훈련시키셨다. 또한 예수님은 “너희들은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내 이름을 사용할 권리를 가졌다”고 말씀하시며 제자들을 훈련시키셨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 최고 경영자가 몰락하는 과정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는 12년 가까이 거대한 조직을 지배해왔다. 그러나 그가 무능력으로 좌절하고 통제권을 상실하게 되었을 때 조직은 엄청난 혼란에 빠졌다. 그는 자신에게 위협이 되지 못하도록 모든 분야에서 자신보다 능력이 모자라는 사람들은 고용함으로써 조직 내에 자신과 같은 사람들만 늘려 나갔다. 조직의 핵심에 자리잡은 무능력은 마치 암세포처럼 모든 부서로 침투해 들어가서 결국 전체 조직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던 것이다.

최고 경영자로서 예수님은 자신의 후계자가 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고용하였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힘을 가르치고, 공유하고 보여 주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이 예수님이 행하셨던 것을 행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도록 하였다.



인간관계 형성의 강점

예수님은 사람들과 그들의 아이디어에 개방적이셨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물으셨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원하는 것을 청하라고 격려하셨고 그 요구를 명확하게 표현하라고 고취하셨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마태복음 7:7-10) 창조주 하나님은 에덴 동산에서 들짐승과 공중의 새를 하나하나 흙으로 빚어 만드시고 아담이 부슨 이름을 붙이는가 보고 계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이디어를 기다리고 계시며 우리의 아이디어에 대단한 흥미를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이디어에 대해 그렇듯 개방적이시라면 오메가 리더 또한 마땅히 그의 사람들이나 아이디어에 대해 개방적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삶이란 상호 창조와 교제에 관한 것이다. 경청하면서 대답하는 리더들에 의한 상호 창조와 교제 보다 삶을 보다 잘 나타내주는 방법이 무엇이겠는가?

저술가이자 컨설턴트인 톰 피터스는 최근 발표된 혁신적 발명의 75%는 전문분야 밖의 사람들로부터 나왔다고 밝혔다. 예를 들면 애플 컴퓨터는 한 ‘어린이’(스티브 잡스)의 차고에서 탄생했다. 그 어린이는 ‘커다란 소년들(IBM, 휴렛 패커드 등)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곁을 떠났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그들의 아이디어에 대해 개방적이셨다.





예수님은 경영을 내부로부터 외부로 하셨다.


당신은 스프링쿨러 머리를 둘러싸고 있는 잔디들이 누렇다는 점을 발견한 적이 있는가? 강력한 에너지와 추진력에 의해 물이 정원의 먼 부분까지 나아가다 보니 정작 수원(水原)에 가장 가까이 있는 잔디는 물을 공급받지 못해 말라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종종 간과하고 있다. 대기업의 현관 안내원이 회사 내에서 거행되는 주요한 행사를 모르고 있다거나, 목사들이 정작 자신의 아이들을 돌보는 데는 소홀한 경우가 있다.

예수님은 우선 자신의 사람들을 먼저 교육하고 진리를 알려야 한다는 원리를 깨닫고 계셨다. 예수님은 파문(波紋) 형의 경영을 몸소 실천하셨다. ‘파문형 경영’은 작은 파문의 원이 퍼져나가면서 점차 큰 원의 파문이 되는 것처럼 주변부터 경영을 시작하여 점차 그 범위를 확대해 나가는 경영 원리를 의미한다.

최근의 한 연구조사는 환자들이 병원을 등지는 7가지 이유를 밝혀 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환자들이 의사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이었고 두 번째 이유로는 의사들이 함께 일하는 직원들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 밖에 대기실에 비치되어 있는 오래된 잡지, 그리고 수납 창구에서의 요금을 놓고 다투는 일 등을 들고 있다.

오메가 의사는 직원들이 업무 처리 과정에서 환자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일이 없도록 직원 교육에 시간을 투자한다. 이러한 교육을 통해 직원들은 고객인 환자를 보다 잘 이해하고 환자들의 요구를 보다 잘 수용하게 된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언제나 자기 주위에서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확실히 알도록 하셨다. 예수님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잔디를 항상 푸르게 가꾸셨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책임을 지우셨다.


책임감은 권한 부여와 함께 개인 성장의 초석이기 때문에 경영에 있어서 핵심 요소이다. 만약에 아무도 프로젝트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 프로젝트의 경험을 통하여 성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된다. 책임감은 비난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책임감은 개인과 회사의 성장에 관한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 달성된 과업은 자신감을 낳고 자신감은 성공을 낳는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마태복음 25:29) 내가 아는 한 젊은 여의사는 환자를 진단하고 나서 이렇게 말한다. “검사 결과가 이렇게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치료 방법들입니다. 어떤 치료 방법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이 경우 대다수의 환자들은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환자들은 의사가 “어떻게 하십시오” 라고 말하기를 기대한다. 그녀는 환자들에게 ‘이것은 당신의 건강이고, 당신의 삶이며 당신의 선택’이라고 부드럽고 확고하게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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