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판 명저)위대한 CEO 엘리자베스1세
앨런 액슬로드 지음 | 위즈덤하우스
위대한 CEO 엘리자베스1세
앨런 액슬로드 지음/남경태 옮김
위즈덤하우스/2000년 10월/355면/13,000원
1. 내 작은 힘 - 리더의 첫째 교훈: 생존리더의 첫째 의무는 생존이다. 일반적인 경영자나 CEO에게 이 말은 기업의 존속을 의미하는 것이겠지만 엘리자베스에게는 문자 그대로 목숨을 부지하는 일이었다. 겁을 먹으면 생존할 수 없다. 냉정을 유지해야 한다. 엘리자베스는 냉정을 유지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두려움에 빠지는 것에 대한 거부, 공포에 떨지 않음을 선택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열 여섯 살의 엘리자베스가 토머스 시모어의 음모에 연루되어 고된 심문을 당했으면서도 무사히 석방될 수 있었던 것은 무릇 냉정을 유지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리더에게는 우선은 살아남아야 할 생존의 의무가 있다. 영국이 로마 카톨릭 신앙으로 복귀하면서 공개적으로 신교도들을 처형했다. 이 시기에 엘리자베스는 대외적으로 카톨릭을 따랐으며, 메리1세를 비난하지도 않았다. 진심으로 내키지 않는 신앙이므로 종교적으로 그녀의 태도는 거짓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은 장차 상황이 개선될 때까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죽은 자는 리더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자.
우리는 할리우드 서부 영화 <하이눈>에서의 결투처럼 정면대결을 통해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는 방식을 좋아한다. 물론 그런 게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러나 대결을 강행하기 전에 먼저 그 결과가 자신의 뜻에 맞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재치 있게 피하는 것도 훌륭한 방책이다.
카톨릭 예배 절차를 규정하는 법안이 있었다. 1년에 한 차례 이상 성찬식을 치러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무거운 벌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의 법안이었는데 엘리자베스는 그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 법안을 시행하면, 국교회의 예배에는 참여하면서도 성찬식에는 반대하는 은밀한 카톨릭교도가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엘리자베스는 그런 식의 정면 대결을 강행하고 싶지 않았다. 교황주의자 대 국교도 간의 극단적인 대결이 벌어지면 누가 승리하게 될 것인가? 그 결과를 확신할 수 없었으므로 엘리자베스는 법안을 거부한 것이다.
2. 사생아에서 처녀 여왕으로 - 리더십의 이미지를 창출하라리더십은 복합적인 행동과 이미지의 총체다. 엘리자베스는 버림받은 사생아로서 삶을 시작했고 제 목숨을 부지하기에도 벅찬 신세였다. 여왕에 오른 뒤 즉각 자신의 이미지를 죄 많은 여인에서 처녀 여왕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역사상 가장 효과적인 리더십의 이미지를 창조해 냈다.
엘리자베스는 평생 동안 결혼을 피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이유야 어떻든 독신을 택한 엘리자베스는 처녀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애썼다. 르네상스 시대에 여성의 처녀성은 동정녀 마리아의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고귀한 이념이었다. 카톨릭 교도들은 특히 마리아에게 기도를 많이 하는 편이었는데, 이를 이용하여 엘리자베스는 카톨릭을 버린 영국 국민들의 텅 빈 마음속에 새로운 동정녀로 자리잡기를 희망했다.
외모에 있어서도 엘리자베스는 성스러운 처녀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려 노력했다. 르네상스 시대에서 여성의 미의 기준은 창백할 정도로 흰 피부와 밝은 금발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흰 피부를 한껏 과장하여 시대의 미적 감각에 맞추도록 애썼다. 피부에는 석고를 갈아 만든 분말을 발라 더욱 희게 했으며, 치아의 표백을 위해 아쿠아 포르티스라고 불리는 질산을 사용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엘리자베스는 오늘날의 리더들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미지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리더도 살과 피로 된 인간이며 생각하고 고통받는 똑같은 인간이지만, 그와 동시에 기업 전체를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이다. 엘리자베스는 그런 측면을 고려하여 자신의 이미지를 그에 걸맞도록 완벽히 다듬는 일에 최대한의 노력을 경주했다.
대관식 전날 저녁 엘리자베스는 런던 시가지에서 마차에 오르기 직전 군중을 향해 즉흥 기도를 드렸다. “전능하신 주님! ... 주님께서는 사자의 굴에서 다니엘을 구해주셨듯이 늘 제게 자비와 은총을 주셨나이다. ... 주님께 무한한 감사와 영광과 찬송을 드립니다. 아멘.” 이 기도에서 다니엘을 언급한 것은 아주 효과적이었다. 설사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한 사람들이라도 이 기도의 의미를 충분히 알아들었을 것이다.
그녀의 기도는 다니엘처럼 자신은 신의 선택을 받아 백성들을 올바른 종교의 길로 인도할 인물이라는 뜻이다. 오늘날의 리더들은 연극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CEO들은 단지 숫자만 보고 싶어한다. 물론 숫자는 중요하다. 그러나 숫자에만 집착하면 인간 본성과 동기에 관해서는 무시하게 된다. 엘리자베스 역시 한 푼의 정부 지출이라도 아끼기 위해 숫자에 세심하게 신경을 썼지만, 상상력과 볼거리와 언어의 영역을 소홀히 하지 않고 때로는 자신의 이미지 관리를 위해 연극적 연출을 시도했던 것이다.
기운이 없다고? 피곤하다고? 푸념은 그만하고 숨을 깊이 들이마신 다음 기운을 되찾은 것처럼 행동하라. 사람들은 리더인 여러분에게 의지하며, 여러분을 지켜보고 있다. 엘리자베스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일흔 살까지 살았다. 여왕은 늘 활기가 넘쳤으며, 뛰어난 활력과 건강으로 강한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사실 건강이 썩 좋지 않았고 이따금씩 몹시 아프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상태에 처했어도 그녀는 몸져눕지 않으려 했다.
한 나라의 리더는 매일, 매순간 바깥 세계와 접촉할 때마다 새로운 힘을 발산해야 한다. 궁정 조신이었던 로버트 세실은 한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쓴 바 있다. “여왕께서는 지금 오른손 엄지에 큰 통증을 느끼고 계시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른다네. 통증도 무서워서 감히 더 이상은 나오지 못할 테니까!” 리더십은 마음에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신체와도 관련이 있다. 리더십은 지속적으로 강력하고 생생한 인상을 창출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엘리자베스는 영원히 소녀처럼 살 수 있다는 환상을 가졌던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마음과 몸의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3. 백성들을 대함에 있어 - 리더십에 소박한 풍모를 결합하라여왕은 대관식을 앞두고 런던 시가지를 행진하는 동안 펜처치에서 한 아이의 영접을 받았다. 그러나 군중의 소리가 너무 커서 아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엘리자베스는 군중을 조용히 시킨 다음 그 소녀가 준비했던 환영의 말을 처음부터 다시 세심하게 들었다. 당시 여왕의 ‘진지한 태도’와 ‘아이의 말을 들으면서 짓는 표정의 변화’에 그 광경을 지켜본 모든 사람들이 감탄했다고 한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지위에서 거만을 떠는 법이 없었고 언제나 인간적인 면모를 잃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영국에서는 여행이 더디고, 지루하고 매우 불편했으며 비용도 많이 들었다. 한 번 여행을 할 때마다 400대의 마차와 2,400마리의 말들이 동원되었으며 하루에 기껏 12마일 정도 진행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럼에도 엘리자베스는 왜 거의 매년 여름 그 어려운 여행을 강행했을까?
기업 내부의 시시콜콜한 실태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편안하게 경영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그런 태도를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불편하고, 돈이 들고,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해도 그녀는 매년 여름 나라 안을 직접 돌아보았다. 백성들에 대한 자신의 애정, 관심, 배려를 전달하려면 직접 접촉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 기업경영자나 간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복잡다단한 현실을 직접 체험하면서 리더 자신도 직원들을 만나고, 직원들도 리더를 보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에스파냐 무적함대의 총공격이 있기 전날 밤 엘리자베스는 틸베리 진지에서 기병대 장교의 갑옷을 입은 차림으로 병사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의 사랑하는 백성들이여 .... 여러분 모두와 생사를 함께 하려고 여러분 속으로 왔습니다. 나는 약하고 힘없는 여성의 몸이지만. ... 유럽의 어느 군주든 감히 내 왕국을 침범한다면 직접 무기를 들고 여러분의 장군이 되어 전장으로 나갈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직원들은 회사를 경영하는 리더와 유대감을 느끼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직원이 해고되고, 간부는 좌천되지만 CEO는 최악의 상황에도 고급 낙하산을 타고 사뿐히 지면에 내려않는다. 엘리자베스는 병사들 앞에서 결코 그런 일이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4. 신앙의 유지 - 전횡을 피하면서 대의명분을 창조하라엘리자베스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곧바로 수많은 문제에 맞닥뜨렸다. 그녀는 가장 시급한 문제로 두 가지를 설정했다. 하나는 유럽의 가장 강력한 세력인 에스파냐나 프랑스와의 관계를 정립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교회에서 여왕이 수반이 될 수 있도록 교리를 확정하는 것이었다.
에스파냐와의 관계에서는 메리1세의 남편이었던 펠리페2세가 엘리자베스에게 청혼을 한 상태였으므로 이 결혼이 이루어지면 동맹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펠리페는 카톨릭이었기 때문에 영국이 애써 이루었던 종교개혁은 무산되어 버릴 것이고 영국의 주권 자체가 애매해질 수도 있었다. 또한 그 시점에서 영국은 프랑스와 평화협상을 상당히 진행하고 있었던 상태였다.
결국 엘리자베스는 프랑스와 협상이 타결될 때까지는 펠리페2세의 청혼에 명확한 확답을 하지 않은 체 에스파냐와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영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카토 캉브레시 조약으로 영국, 에스파냐, 프랑스 사이에 평화가 이루어졌다.
대외적인 문제가 수습되자, 그녀는 왕권의 문제로 관심을 돌렸다. 신앙심이 깊은 영국인들은 사도 바울이 얘기한 여성은 결코 사도, 목자, 의사, 설교자가 될 수 없다고 한 말에 집착하고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법률가들에게 이 딜레마를 해결해 달라고 의뢰했다. 그들은 ‘교회의 최고 수장’이라는 문구를 없애고, ‘교회의 최고 통치자’라는 문구를 도입했다. 이것이 의회에서 통과되어 결국 교황의 권한이 폐지되고 교회에 대한 왕권의 지배가 공식화되었다.
실망스러운 사건이 연속적으로 터지면 경영자들이나 CEO들은 대개 상황에 압도당한다. 그래서 사건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어떻게든 처리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런 충동은 대개는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경우도 많다. 우선 순위를 분석하는 일은 적극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대단히 적극적인 행동이며, 귀중한 자원을 보존하고 자원의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행동이다.
아버지 헨리 8세와는 대조적으로 엘리자베스는 신학적 논쟁을 회피했다. 일부에서는 신학에 관해 지식이 부족한 게 아니냐는 비난도 있었지만, 그녀는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신학 이외에 공부한 게 없다.”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녀가 신학 논쟁을 피한 이유는 종교 분쟁을 재연시켜 자신이 이루려는 종교적 합의를 해칠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합의를 유도하려는 리더는 차이점보다 일치점을 강조해야 한다. 합의를 이루는 과정에서 설사 주제의 일부가 누락된다고 해도 리더는 기꺼이 이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5. 좋은 조언 - 충직한 측근과 충직한 반대파를 동시에 구축하라“나는 내 모든 행동을 좋은 충고와 자문에 따라 행하려 합니다.” 엘리자베스는 추밀원 첫 회의석상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새 여왕은 자기 주위에 늘 현명하고 신중하며 유능한 자문관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엘리자베스는 새로 추밀원 위원을 보충하기도 했지만, 항상 기존의 인력 중에서 최선의 인물들을 계속 유임시켰다. 우선 그들은 연속성과 경륜에서 나오는 성실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정부가 역동적이어야 한다는 점도 알고 있었으므로 최근에 나라를 위해 이바지한 사람들을 추가로 임명하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엘리자베스는 전대부터 내려온 추밀원 위원들을 무조건 ‘해임’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 그 대신 그녀는 자신의 측근 그룹을 점차적으로 키워 꾸준히 옛 요소와 새 요소, 즉 물려받은 인력과 자신이 직접 선발한 인력을 결합했다. 그런 방식을 취하면 연속성도 보장되고 인력 정체현상도 피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이러한 방식을 취함으로써 엘리자베스는 충성스러우면서도 자신의 뜻에 무조건 순종하는 예스맨이 아닌 바람직한 참모진을 구축할 수 있었다.
정부든 기업이든 대개의 조직들에서는 측근 그룹이 형성되어 있고, 그들이 배타적인 의사결정의 핵심으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런 조직 구조의 결과는 최선의 경우라 해도 비측근 그룹의 능력을 생산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게 된다. 게다가 최악의 경우라면 측근 그룹과 비측근 그룹간에 증오와 적의까지 생겨난다. 비측근 그룹은 권력의 원천으로부터 유리되기 때문에 동기와 의욕을 잃고 겉돌다가 결국은 한데 뭉쳐 측근 그룹에 맞서게 되는 경우도 있다. 정부의 경우에 혁명, 내란, 쿠데타 같은 게 그러한 예이다.
그러나 측근 그룹을 육성할 가치는 충분히 있다. 믿을 만한 자문집단으로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의견과 판단을 내릴 수 있으면서도 관리하기 버겁지 않을 만큼 작은 규모의 측근 그룹은 리더에게 아주 중요하다. 엘리자베스는 추밀원을 그러한 측근 그룹으로 육성했지만 그 집단의 외부에 있는 사람들을 소외시키지 않으려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유능한 리더는 선정된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때도 선정되지 않은 사람들이 소외감을 느끼거나 의욕을 잃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6. 신세계, 새 시장 - 기업을 성장시켜 경쟁자를 분쇄하라오늘날에는 기업이 대규모 자금 동원, 거액의 투자, 기업 합병과 인수 등을 하려면 먼저 여러 가지 법적 규제를 뚫어야 하고 수많은 정부기관들을 돌아다녀야 한다. 그러나 엘리자베스의 시대에는 비즈니스의 규칙이라는 게 거의 없었다. 규칙이란 그것을 철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자들에게는 깨어지라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1577년 엘리자베스는 용감한 선장 프랜시스 드레이크에게 ‘발견의 항해’라는 공식명칭의 임무를 맡겼다. 드레이크는 재무대신의 승인은커녕 그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원정을 시작하여 해적질로 노획한 물건들을 잔뜩 싣고 무사히 영국으로 귀환하였다. 그는 엘리자베스의 지시로 에스파냐 펠리페2세의 보물선을 강탈한 것이다.
엘리자베스의 시대에도 비록 ‘국제법’은 없었지만, 공통적으로 합의된 규칙은 있었다. 그에 따르면 평화시에 다른 나라의 재산을 빼앗는 행위는 해적질이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언제라도 필요하면 규칙을 변경할 줄 알았을 뿐 아니라 규칙을 철폐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사실 엘리자베스가 즉위하던 무렵 영국은 작은 섬나라에다 군대도 미약한 상태였으며 해군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것은 거의 없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군대의 자원과 국가의 재정이 가지고 있는 것을 극대화시켰으며 그것으로 다른 나라들을 능가하고자 하는 의지를 에스파냐 선박을 습격함으로써 보여준 것이다. 당시 영국의 군사력으로는 에스파냐에게 전쟁을 선포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으므로, 엘리자베스의 해적질은 분명 예외적인 행동이었으며 사고방식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지극히 어려운 상황에서 난관을 뚫기 위한 리더의 독창적인 행동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전통적으로 군주들이 전쟁을 벌이고 정복을 이루는 데는 막대한 군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레버리지의 원리를 이용했다. 그녀는 대규모 군대를 파병하는 대신 소규모 함대를 이용하여 에스파냐 본토가 아닌 에스파냐의 경제를 파탄시키려는 시도를 하였다. 드레이크는 에스파냐 보급선들만 집중적으로 침몰시켜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힘으로써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원천적인 힘을 파괴하였던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드레이크가 마음껏 활약할 수 있도록 시종일관 그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드레이크는 여왕의 지배 영토를 신세계로 확장시키고 영국의 라이벌인 에스파냐를 물리쳤지만 그가 그 모든 업적을 이루도록 실질적으로 도움을 준 사람은 바로 엘리자베스 여왕이었다. 이렇게 리더의 역할은 자신의 부하가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해주는 데 있다. 리더는 그 정의상 혼자일 수 없다. 리더가 이룬 성과는 사실 다른 사람들이 함께 참여한 결과이며, 때로는 거의 다른 사람들이 이룬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