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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리더

강관수 지음 | 한국표준협회미디어


인생리더 - 역사 속에서 리더를 만나다

강관수 지음

한국표준협회미디어 / 2019년 5월 / 280쪽 / 17,000원



역사가 들려주는 리더의 조건


옛날의 임금들은 백성들이 먹고 사는 일, 즉 농경과 치수에 가장 큰 정성을 들였고, 순임금과 우임금도 황허의 치수를 잘한 덕에 임금이 될 수 있었다. 요임금은 아들이 아닌 순임금에게 보위를 물려주었고, 순임금도 아들이 아닌 우임금에게 보위를 물려주었는데, 그 이유는 황허의 물 관리를 잘하여 백성들이 먹고 사는 데 어려움이 없게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임금은 아들 계에게 물려줘 보위를 세습하는 왕조가 탄생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중국 역사 최초의 통일왕국이라 일컫는 하(夏)나라다.

기원전 2100년경에 하나라가 건국되어 약 500년간 17명의 왕을 배출해 내려오다, 기원전 1600년경 하나라는 상(商)나라 탕왕에게 망하게 된다. 상나라는 이후 30명의 임금이 재위하면서 기원전 1100년경까지 약 500여 년을 이어갔고, 기원전 1100년경 문왕(文王)과 아들 무왕(武王)은 상나라를 무너뜨리고 주(周)나라를 건국한다. 주나라를 건국한 주역은 크게 4명이다. 문왕과 그의 큰아들 무왕, 넷째 아들 주공 단(周公 旦), 그리고 마지막으로 책사 강태공(姜太公)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주나라의 건국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주공은 형님 무왕이 죽고 무왕의 어린 아들인 성왕이 보위에 오르자 조카를 곁에서 보좌하며 정치의 틀을 세워 나갔다. 주변에서는 시기와 의심의 눈초리로 주공을 오해하기도 했지만, 주공은 어린 성왕(成王)이 어른이 되면 모든 통치권을 조카에게 넘겨주고 물러나겠다는 약속을 하며 의연하게 정무를 살폈다. 중국 역사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며 강조되는 중화사상(中華思想)이 바로 주문왕과 주공 단의 시대로 돌아가서 예(禮)와 인(仁)의 도리를 되찾는다는 의미다.

공자는 유학의 복잡한 사상들을 종합하여 정리한 사람이고, 그 사상을 최초로 만들어내고 이론화시킨 사람은 다름 아닌 주문왕과 강태공, 그리고 주공 단이었다. 그들의 생각은 간단했다. 하늘에는 하늘을 다스리는 도리가 있고( ̄ ), 땅에는 만물을 소생시키는 기운이 있으니(_ ), 이 도리와 기운을 하늘과 땅 사이에서 조화롭게 하는 것이 바로 사람의 역할(?)이고, 이 역할을 잘 수행하는 사람이 곧 어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기에서 비로소 인(仁)의 사상이 탄생하게 되었다. 특히 주문왕과 아들 주공 단은 복희씨가 고안했던 주역을 완성했으며, 주례(周禮)와 의례(儀禮)에 대한 저술을 통해 궁궐 건축부터 예와 의식에 이르는 거의 모든 통치의 기준과 지침을 마련한 인물이다.

자기관리 리더십 - 매미와 익선관(翼蟬冠)


임금이 머리에 쓰는 관은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신하들로부터 하례를 받을 때 쓰는 원유관을 비롯해서 면류관과 익선관이 바로 그것이다. 면류관은 혼례나 기우제 등 나라의 공식 행사 때 쓴다. 한편 익선관은 임금이 평상시 시무복으로 입는 곤룡포와 함께 쓰는 관으로, 뒤쪽에 매미 날개를 닮은 모양의 얇은 검정색 망사 두 개가 붙어 있다. 그런데 이것은 평생 임금이 매미에게 배우는 다섯 가지의 자세와 마음가짐을 표현한 것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스스로 떠날 때를 알고 실천하라. 매미는 무더위가 끝나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스스로 사라진다. 왕이 노쇠하여 판단력이 흐려지면 국정 운영 능력이 떨어지고 동시에 객관적인 통찰을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임금은 미리 자신의 뒤를 이를 후계자인 세자를 정하고 학문 정진과 심신 수양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염치를 알고 군자의 도(道)를 실천하라. 매미는 자기가 노력하지 않은 결과물에 욕심을 내지 않는다. 남의 것을 탐내지 않고 이슬과 수액만 먹으면서 본분과 분수를 지키며 살아가는데, 이것이 선비가 배워야 할 정신이며 군자가 가야 할 길이다. 셋째, 무소유(無所有) 정신으로 자기를 절제하라. 집이 없는 매미처럼 왕은 청빈한 생각을 가져야 하며 백성이 가진 것에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

넷째, 공부하는 선비의 자세를 닮아라. 매미 얼굴은 정면에서 보면 역삼각형인데, 여기에 갓을 씌우면 글월 문(文)자가 된다. 이것은 영락없이 갓을 쓴 선비의 모습이다. 얼굴 모양 자체가 글공부(文)를 상징하는 매미를 통해서 임금도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 존재임을 잊지 않도록 스스로 독려한 것이다. 다섯째, 인내와 수양을 배워라. 매미는 지상에서 단 7일을 울다가 사라지기 위해 7년을 땅 속에서 애벌레로 지낸다. 길고 긴 인내와 시련이 강인한 매미를 만드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인내와 수련이 필요하고 만인의 지존인 왕이라고 해도 여기서 예외일 수는 없다.

사람관리 리더십 - 공자의 정명사상(正名思想)과 삼적(三適)의 도(道)


공자의 사상 중에 리더가 제대로 알고 실천해야 할 중요한 기본이 정명사상(正名思想)이다. 공자는 정치의 요체를 ‘정(正)’이라 보았다. 한번은 노나라 제후 애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백성들이 잘 복종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에 공자가 대답하길, “정직한 사람을 등용하여 사곡(거짓되고 표리부동한 사람)한 사람들 위에 배치하면 백성이 저절로 복종하고, 사곡한 사람을 뽑아서 정직한 사람 위에 놓으면 백성이 복종하지 않는다. 정직과 사곡을 구분하여 실행하는 것이 곧 지혜이며 정치의 요체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리더는 사람을 보는 안목을 가지고 적재(適材)를 적시(適時)에 적소(適所)에 배치하는, 이른바 ‘삼적(三適)’의 ‘도(道)’를 실천하는 것이 정치의 요체라는 것이다.

한편 공자는 제나라를 다스리던 제후 경공과 재상 안영을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된다. 먼저 경공이 공자에게 “선생, 정치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공자가 “예. 천하를 아름답게 하는 것이 바로 정치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경공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선생. 천하라는 말은 바로 이해가 되는데, 아름답다는 말은 너무 추상적이고 막연하지 않습니까? 어떤 상태가 아름다운 상태입니까?”라고 재차 물었다. 그러자 공자가 웃으며 말하길, “예. 아름다운 상태란 자기 자리에서 자기다움에 충실한 상태를 말합니다. 아버지는 아버지 자리에서 아버지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의 자리에서 자식다워야 하며, 임금은 임금의 자리에서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의 자리에서 신하다워야 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이 ‘다움’에 충실할 때 천하는 아름다워지고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여기에서 그 유명한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가 유래하게 된다. 공자의 말은 임금과 신하가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답게 행동해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뜻이다. 신하가 자기 자리에서 자기다움에 충실하게 하려면 임금은 먼저 ‘곁에 둬야 할 사람과 두지 말아야 할 사람을 구분해서 각자 제자리에 두는 것’을 실천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정치하는 사람은 자연히 스스로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정자정야(政者正也)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 공자의 생각이었다.

공자는 이 정명사상과 더불어 ‘잘 다스려지는 나라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백성이 정치에 대해 논하지 않는 나라’라고 강조했다. 리더가 인(仁)과 예(禮)로써 모범을 보이면 백성 또한 스스로 예를 지켜 범법하지 않으니 이것이 바로 ‘무치(無治)의 도(道)’이고, 이것이야말로 하늘 아래 가장 아름다운 다스림이라는 리더십의 이상향을 제시했다. 기법은 변해도 진리는 영원한 것처럼 몇 백 년 몇 천 년이 흐른 먼 훗날, 그때도 필시 우리 후손들은 사람을 이끌고 조직을 관리하는 리더의 역할에 대해 공부할 것이고, 그 리더십 교육에서도 앞서 말한 이 ‘삼적의 도’와 ‘정명사상’은 똑같이 강조될 것이다.

성군(聖君) 리더십 - 세종(世宗)과 한글창제


동서고금 역사를 통틀어 인(仁)과 덕(德)으로 나라의 골격을 세우고, 문(文)과 예(禮)로써 국정의 표준을 만든 왕을 꼽으라면 단연 세종대왕이 독보적이라 할 것이다. 세종의 가장 큰 업적은 훈민정음 창제를 필두로 한 과학기술의 발전이고, 리더로서 세종의 가장 큰 덕목은 인재 등용과 애민정신이라 할 수 있는데, 세종대왕이 새로운 문자를 만들게 된 이유는 글을 모르는 평민들이 탐관오리와 양반들의 계략에 의해 지속적으로 노비로 전락하니 한시바삐 이를 막을 제도적 보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리더로서 세종의 탁월한 능력 중 하나가 신하의 마음을 사로잡는 감성이었다. 어쩌면 세종의 이 감성 리더십 때문에 서른 살 이상 나이 차이가 나는 황희나 맹사성 같은 노신들을 훌륭하게 이끌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편 세종 곁에는 뛰어난 신하들이 많았는데, 그 중 예학에서는 이조판서 허조를 따를 자가 없었다. 세종이 스물여덟 살 되던 해인 1424년 종묘에서 신년 대제를 지내게 되었는데, 이때 허조는 신(神)께 술잔을 올리는 세종 옆에서 술을 따르며 잔을 건네주는 찬작관 역할을 맡게 되었다. 당시 허조는 환갑의 나이에 몸이 불편한 상태였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한창 신관례와 천조례가 진행되고 있을 때 술을 따라 잔을 세종에게 건네려던 허조가 그만 정전 계단에서 미끄러져 굴러 떨어졌고, 동시에 그가 들고 있던 술잔도 돌바닥에 나뒹구는 사건이 발생했다.

제를 올리던 문무백관들 모두 아연실색해서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세종이 침착하게 “이판이 다치지 않았느냐?”며 오히려 허조의 몸을 걱정하며 물었다. 그러고는 이어서 “계단이 좁아서 이런 불상사가 일어났다. 계단을 넓혀 차후에는 또 다시 몸을 상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라고 하명했고, 그 자리에 있던 문무백관들은 젊은 성군의 마음 씀씀이에 가슴 깊이 감동했다고 한다.

혁신(革新) 리더십 - 정조(正祖)와 금난전권(禁亂廛權) 철폐


창덕궁에 정조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은행나무 앞에 존덕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예로부터 은행나무 주변에 있는 정자는 학문하는 장소의 대명사로 알려져 왔다. 공자가 제자들을 은행나무 아래에서 가르쳐 행단이라는 말이 생겨났듯이, 정조도 은행나무를 심고 존덕정을 수리하면서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라는 제목의 글을 짓고 그 내용을 현판에 새기게 했다. 이 글에서 평소 정조가 가지고 있는 인재관을 엿볼 수 있는데, 정조는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특징과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특성과 기량에 맞춰 너그러운 마음으로 적절하게 활용해야 한다고 적어놓았다.

정조의 덕은 따뜻한 애민사상에도 묻어난다. 옛날에는 임금의 행차 때 길을 가로막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백성들이 간혹 있었는데, 이것을 격쟁이라 했다. 원칙적으로 이것은 위법이고 격쟁을 한 백성은 엄벌에 처해지지만, 정조는 오히려 이를 활용해 백성들의 소리를 직접 듣고자 했고, 나아가 백성들의 격쟁 내용과 건수를 왜곡하는 관리들을 엄벌에 처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백성들과 소통하고자 했다.

한편 당시에는 금난전권이라하여 한양 중심가 육의전과 시전에 점포를 가진 상인들만 장사를 할 수 있고, 난전에서의 장사는 엄격히 금지하는 법이 있었다. 이 금난전권 때문에 지방의 상인들이 한양으로 특산물을 가져와 팔 때도 반드시 시전 상인들에게만 팔아야 했고, 그 반대로 한양에서 물건을 떼서 갈 때도 시전 상인들을 통해서만 구입해야 했다. 당시 조정에서는 필요한 주요 물품을 육의전이나 시전 상인들을 통해 구입했고, 시전 상인들도 세금 납부를 통해 국가 재정에 기여하는 바가 있었기에 난전이 난립하면 시전이 위축된다는 시전 상인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난전을 금지했다. 하지만 이 같은 금난전권 때문에 가난한 백성들은 어려움이 극에 달했고 시전 상인들의 횡포는 갈수록 심해졌다. 정조는 이 같은 백성 수탈의 악순환을 끊어내고자 시전 상인들과 노론세력들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1791년 ‘통공발매 정책’을 시행하여 육의전을 제외한 일반 시전이 가진 금난전권의 특권을 철폐함과 동시에 육의전에서 취급하던 상품을 제외한 다른 모든 상품들의 자유로운 판매를 허가하였다.

한편 정조가 백성을 위해 과감한 혁신 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곁에서 보필한 사람이 채제공이다. 채제공은 영조와 정조 2대를 이어 보필한 명신으로 수원화성 축조에서부터 금난전권 철폐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개혁 정책이 그를 통해 실시될 만큼 정조가 신임하는 최측근 신료였다. 정조와 채제공의 이러한 혁신과 평등사상은 당시 기득권 세력인 노론들의 엄청난 반대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정조는 김홍도의 그림인 〈군선도〉를 보며 개혁 의지를 다지곤 했다. 군선도는 나귀를 타고 곤륜산에 사는 서왕모의 생일 잔치에 놀러가는 열아홉 명의 신선들을 그린 그림이다.

참고로 곤륜산은 중국 쓰촨성 끝에 위치해 있으며 도교 사상의 성지인 산이다. 당시 유교사상은 백성들을 인(人)과 민(民) 두 종류로 나눠 인(人, 양반/지배층)이 민(民, 평민/피지배층)을 부리는 이분법 계급 사상이었던 반면, 도교는 계급과 신분을 부정하고 일하지 않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는 무소유 평등사상을 주장했다. 따라서 조선의 양반 지배 계층은 평등주의를 지향하는 도교를 싫어하고 천시했다.

전략(戰略) 리더십 - 이순신(李舜臣)과 한산도대첩(閑山島大捷)


조직에서 최고 리더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역량은 바로 ‘전략 설정과 의사 결정’이다. 조직에서 최고의 리더가 갖춰야 할 첫 번째 역량인 ‘탁월한 전략 설정과 의사 결정’을 이해함에 있어 1592년 7월 8일 벌어졌던 ‘한산도대첩’보다 좋은 교재는 없을 것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음력 4월 13일, 당시 이순신은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부임해 있었다. 전란이 발생하자 경상좌수사인 박홍은 곧바로 달아났고 경상우수사인 원균은 대패를 거듭하니, 그야말로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의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순신은 전열을 정비해 옥포, 합포, 적진포, 당포, 율포 등에서 왜 수군을 맞아 연전연승을 거두며 전기점을 마련해 나갔다. 그러다 7월 8일, 그야말로 전란의 분위기를 바꿔놓을 수 있는 해전을 치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세계 4대 해전 중에 하나인 한산도대첩이다.

한산도대첩의 3대 핵심은 ‘거북선’과 ‘학익진’, 그리고 ‘화포 공격’이다. 학익진은 아군의 배를 학의 날개 모양으로 배치해 적선을 반원 형태로 둥글게 포위해서 공격하는 진법으로, 훗날 청ㆍ일전쟁과 러ㆍ일전쟁을 치르는 일본 해군의 진법 형성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참고로 당시 조선 수군의 배는 판옥선이라 불렀는데, 밑바닥이 평평하여 제자리 선회가 가능한 평저선이었다. 평저선은 속도가 느리고 노를 젓는 격군들이 많이 힘들어하는 단점이 있었으나, 선체가 단단하여 해전에서 화포를 쏴도 그 반동을 견뎌낼 내구성을 가지고 있었다. 또 제자리 선회가 가능했기 때문에 한쪽 측면에서 화포 사격을 하다가 재장전을 해야 될 때 배를 180도 돌려 반대쪽에서 곧바로 사격이 가능한 구조를 가졌다.

당시 왜선은 아다케부네와 세카부네라는 두 종류의 전선으로 구성되었는데, 이 두 가지 모두 선체가 가볍고 바닥이 뾰족한 첨저선이었다. 첨저선은 속도는 빠르나 제자리 선회가 안 될 뿐만 아니라 화포의 반동을 견딜 수 없는 구조였다. 결정적으로 이순신은 결전지를 견내량으로 정했다. 물살이 급한 이 견내량에서 이순신은 학익진을 펼치고 기다리다가 유인선에 현혹되어 좁은 견내량을 빠져나오는 적선에 화포 공격을 퍼부어 왜군들을 전멸시켰다. 왜장은 조선 수군이 화포 공격 후 재장전하는 시간을 틈타 도선을 하고 갑판 위에서 백병전을 벌일 생각이었으나, 조선 수군은 제자리에서 배를 회전시켜 공격함으로써 재장전으로 인한 시간 지체를 최소화시켰다. 결국 좁은 해협에 갇힌 적군은 달리 도망갈 길이 없었고, 특히 첨저선인 왜선은 제자리 선회가 어려워 치명적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거북선이 투입되어 포를 쏘고 종횡무진 휘젓고 다니니 왜군은 전의를 상실하고 달아나기에 바빴다. 참고로 거북선이 돌격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거북선의 격군들이 빠른 속도로 노를 저어야 했다. 또 결정적으로 거북선은 침몰하면 그 안에 탑승한 수군은 누구도 살아나오기 힘든 구조였다. 결국 노를 젓는 격군이 감수해야 할 최악의 조건들을 모두 갖춘 배가 거북선인 것이다. 따라서 거북선은 수군들 사이에서 기피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결국 거북선의 격군을 죄수 중에서 차출하기도 했고, 전란 중에는 노비나 의병들로 구성하기까지 했다. 아무튼 동기부여될 여지가 없는 이런 조직원들과 함께하며 23전 23승 신화를 일궈낸 이순신의 가장 큰 역량은 조직원들이 무조건 믿고 따를 수 있는 탁월한 전략 설정과 그에 따른 정확한 의사 결정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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