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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 평전

신동준 지음 | 리더북스



관자 평전

신동준 지음

리더북스 / 2017년 11월 / 448쪽 / 20,000원





관중의 생애



소절의 포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 불수소절(不羞小節)

군주의 횡사가 잇따르다: 기원전 771년 제장공의 재위 때 주유왕이 견융에 의해 피살되는 일이 일어났다. 이듬해에 뒤를 이은 주평왕이 도성을 서쪽 호경에서 동쪽 낙양으로 옮겼다. 이른바 동천이다. 주나라 왕실은 천도 이후 권위가 크게 땅에 떨어졌다. 천자를 대신해 제후들을 호령하는 패자(覇者)가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주나라가 동천할 당시 제나라에서는 제장공이 죽고 그의 아들 녹보가 제희공으로 즉위했다. 당시 제희공에게는 선강과 문강이라는 두 명의 딸이 있었는데, 선강은 위선공, 문강은 노환공에게 시집을 갔다. 사달이 난 것은 제희공의 태자 제예 때문이었다. 그는 호색한이었다. 문강의 이복오빠인 제예는 어렸을 때 문강과 사통했다. 이것이 훗날 커다란 화를 불렀다.

제희공의 사후 제양공으로 즉위했다. 당시 위나라에는 제양공의 이복누이인 선강과 위선공 사이에서 태어난 삭이 위혜공으로 즉위해 있었는데, 위혜공의 즉위는 떳떳치 못했다. 자객을 보내 태자로 있던 이복형 급자와 동복동생 공자 수를 죽이고 보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자객에게 죽임을 당한 급자에게는 천자의 사위인 친동생 검모가 있었다. 위나라 신하들이 이내 위혜공 삭을 몰아낸 뒤 검모를 맞아들여 보위에 앉혔다. 쫓겨난 위혜공 삭이 곧 외숙인 제양공이 있는 제나라로 달아났다.

당시는 마침 제양공이 매부인 문강의 남편 노환공을 통해 주 왕실의 공주에게 청혼을 한 상태였다. 얼마 후 주 왕실로부터 제양공과 공주의 혼인에 대한 허락이 떨어졌다. 문강이 이를 빌미로 친정에 가고 싶어 했고, 노환공이 동조했다. 제양공이 크게 기뻐하며 잔치를 성대하게 차려 노환공 부부를 크게 대접했다. 잔치가 파한 후 문강은 궁에 머물렀다. 노환공은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일이 거듭되자 노환공도 이내 내막을 알게 되었다. 그가 부인 문강을 크게 꾸짖은 뒤 장차 본국으로 돌아가 다스리고자 했다. 문강이 곧바로 정부(情夫)이자 이복오빠인 제양궁을 찾아가 이를 고했다. 그러자 제양공이 공자 평생을 불러 지시했다. “송별연이 끝나는 즉시 모든 것을 소리 없이 마무리 짓도록 하라.” 결국 무쇠 같은 평생의 주먹을 옆구리에 맞은 노환공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제양공이 병사들을 시켜 노환공의 영구를 노나라로 호송케 했다. 기원전 694년 4월 10일의 일이다. 당시 노나라 대부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전말을 짐작하지 못할 리 없었다. 그러나 현장을 목격한 사람도 없는 만큼 곧바로 제양공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일 또한 쉽지 않았다. 결국 고육책으로 호송을 책임진 팽생을 죽이는 것으로 사태를 마무리 짓기로 의견을 모았다.

당시 제양공은 생질인 위혜공 삭을 복위시킨 뒤 낙읍으로 추방된 동서 검모가 이내 장인 주장왕을 부추겨 토벌군을 이끌고 오지나 않을까 크게 걱정했다. 그래서 기원전 687년, 대부 연청과 관지보에게 명해 도성 임치성으로 들어오는 동남쪽 길목을 지키게 했는데, 두 사람이 제양공에게 물었다. “언제쯤이면 만기가 되어 돌아올 수 있겠습니까?” “내년 7월쯤 교대할 사람을 보낼 것이오.” 그런데 1년이 지난 기원전 686년 7월, 만기가 지났는데도 아무런 기별이 없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반기를 들었고, 제양공을 죽인 뒤 공손 무지를 새 군주로 옹립했다. 그런데 공손 무지는 보위에 오른 지 얼마 안 되어 죽었다. 아무튼 공손 무지의 즉위는 제양공 제예의 이복동생인 제환공 소백(小白)에게 하나의 기회로 다가왔다.

주군을 모시고 달아나다 / 혁대 갈고리를 맞추다: 당시 공자 소백에게는 한 명의 서형(庶兄)이 있었다. 공자 규(糾)이다. 『춘추좌전』의 기록에 따르면 제양공 즉위 후 제나라 정치가 매우 어지러운 모습을 보이자 포숙아가 소백에게 말했다. “군주가 백성들을 방종하게 만들고 있으니 곧 변란이 일어나고야 말 것입니다.” 그러고는 곧 공자 소백을 받들고 거나라로 달아났다. 참고로 관중과 소홀은 제양공이 시해된 후 비로소 공자 규를 받들어 노나라로 망명한 것으로 되어 있다.

『춘추좌전』에 따르면, 당시 옹름을 추종하는 대부들은 노나라에 가 있는 공자 규를 부르고자 했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소백이 보위에 오르게 된 것일까? 바로 고혜 덕분이다. 당시 옹름을 추종하는 대부들은 공손 무지를 제거한 직후 노장공과 지금의 기(?) 땅에서 만났다. 이 자리에서 노장공은 곧 공자 규를 제나라로 호송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래서 고혜가 은밀히 소백에게 사람을 보내 급히 돌아올 것을 재촉한 이유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모든 면에서 공자 규가 유리했다. 단 한 가지 불리한 점이 있었다. 임치성을 기준으로 할 때 거나라가 노나라보다 가까운 것이 그것이다. 잠입을 무사히 할 수만 있다면 소백이 역전승을 거둘 소지가 컸다.<제태공세가>에 따르면 노나라가 이내 이 사실을 알아챘다. 노장공이 급히 관중에게 명해 별도로 경병을 이끌고 가 거나라에서 제나라로 통하는 길목을 차단하게 했다. 양측의 속도 경쟁은 이해 여름에 판가름 났다. 소백이 한 발 빨랐던 것이다.

소백이 제환공으로 즉위할 당시 노나라의 상황이 매우 급박하게 돌아갔다. 대군을 동원한 노장공이 소백의 즉위를 묵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간발의 차이로 자신이 미는 공자 규가 ‘속도 경쟁’에서 패한 사실을 놓고 노장공은 통탄했을 것이다. 당사자인 공자 규와 그를 모시던 관중과 소홀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다음은 『춘추좌전』<노장공 9년> 조의 기록이다. “가을, 노나라 군사가 간시에서 제나라 군사와 접전했다가 패했다. 노장공이 패해 전차를 잃고 다른 전차를 타고 돌아왔다.”

『춘추좌전』 <노장공 9년> 조에 따르면 당시 제나라 군사를 이끈 사람은 포숙아였다. 다음 기록이 그 증거이다. “이때 포숙아가 승세를 몰아 군사를 이끌고 노나라로 들어간 뒤 노장공을 만나 이야기했다.” 『춘추좌전』에 수록된 포숙아의 언급이 이를 뒷받침한다. “공자 규는 우리 군주의 육친이니 청컨대 군주가 그를 죽이기 바랍니다. 그러나 관중과 소홀은 우리 군주의 원수이니 청컨대 그들을 산 채로 넘겨주어 저희 군주가 친히 그들을 죽여 분을 풀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당시의 정황을 종합해 볼 때 포숙아가 노장공에게 노골적인 협박을 가했을 공산이 크다. 노장공이 곧바로 사람을 보내 공자 규를 죽인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공자 규를 죽이도록 강압한 것은 제환공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하나, 관중을 제나라로 보내 달라고 압박한 것은 전적으로 포숙아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다. 당시 소홀은 공자 규가 죽자 곧바로 그의 뒤를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관중은 포숙아에게 자신을 묶어 갈 것을 청했다. 이는 포숙아와 관중이 서로 교신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포숙아가 임치성으로 돌아와 제환공에게 고한 내용이 이를 뒷받침한다. “관이오의 정치적 재능이 상경인 고혜보다 뛰어나니 그를 재상으로 발탁해 쓰는 것이 가할 것입니다.” 『춘추좌전』은 당시 제환공이 자신을 옹립하는 최고의 공을 세운 포숙아의 건의를 좇아 관중을 재상에 발탁했다고 짤막하게 기록해 놓았다. 당대의 명군 제환공과 현신 관중의 만남은 이런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졌다.

향을 쏘이고 몸을 씻다: 관중과 포숙아가 각자 자신이 모시는 주군을 옹립하기 위해 치열한 각축을 벌이다가 제환공의 즉위로 사안이 매듭지자 이내 ‘관포지교’의 우의를 발휘한 대목은 감동적이다. 한편 제환공은 관중을 영접하기 위해 몸에 훈향(薰香)을 여러 번 쐬었다.『국어』 <제어>의 해당 기록이다. “관중이 제나라에 이를 즈음 제환공이 관중을 영점하기 위해 ‘삼흔삼욕(三?三浴)’을 행했다.” ‘삼흔삼육’은 삼국시대 당시 유비가 제갈량을 찾아간 삼고초려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당시 제환공은 ‘수어지교’의 상대인 관중과 함께 궁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은 뒤 곧바로 가르침을 청했다. 관중이 말했다. “전에 우리의 선왕 주소왕과 주목왕은 세대에 걸쳐 모두 주문왕과 주무왕 당시의 업적을 본받아 공업을 세웠습니다. 그러니 응당 연륜 있고 덕이 높은 분을 부르고, 백성 가운데 덕이 높은 사람을 선별해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법률을 제정해 사람들의 행위가 준칙을 따르게 하고, 민력을 이용해 반드시 고르면서도 적의한 것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법도를 이용해 백성을 조직한 뒤 우선 근본을 정해 다시 세부 사항을 바르게 하고, 상사(賞賜)를 이용해 선행을 장려하고, 형벌을 이용해 악행을 다스리고, 노소에 따라 윤리강상의 차서를 정해야 합니다. 이로써 백성을 다스리는 기상을 세울 수 있습니다. 예(禮), 의(義), 염(廉), 치(恥)는 나라의 네 가지 근본입니다. 나라의 기강을 세우고자 하면 이 네 가지 근본부터 바로 펴야 합니다.” ‘예의염치’는 관중사상의 핵심에 해당한다.

이를 이른바 ‘사유(四維)’라고 한다. 제환공은 관중으로부터 ‘사유’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는 곧바로 부국강병의 방략을 물었다. “어떻게 해야 능히 백성을 동원할 수 있소?” “먼저 백성을 사랑해야 합니다. 연후에 백성이 처할 길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백성을 사랑하려면 어찌해야 하오?” “항상 백성과 함께 서로 손을 잡고 일하며 그 이익을 나눠 주면 백성과 서로 친할 수 있습니다. 일단 선포한 법령은 경솔히 고치지 않고 공평히 집행해야 합니다. 그러면 백성들은 절로 정직해집니다.” 이는 관중사상 중 법가사상과 맥을 같이하는 대목이다. 부국강병은 법가사상의 요체에 해당한다.

제환공이 이어 재정에 관해 물었다. “재정은 어찌해야 효과적으로 조달할 수 있겠소?” “산에 있는 광물을 녹여 돈을 만들고, 바다를 이용해 소금을 구우면 그 이익이 천하에 유통됩니다. 천하의 모든 물품을 거두어 두고, 때맞추어 무역하게 하면 장사하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자연히 재화도 모일 것입니다. 그들로부터 적당한 세금을 징수해 군용을 돕는다면 어찌 재용을 걱정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는 관중사상의 재정경제사상을 요약한 것이다.

제환공이 군사에 관해 물었다. “군사는 어찌 조직하는 것이 좋겠소?” “원래 군사란 정예한 것을 중시할 뿐 숫자가 많은 것을 중시하지 않습니다. 군사는 힘보다 마음이 강해야 합니다. 만일 군사를 기르고 무기를 준비하면 천하의 모든 제후들도 군사를 기르고 무기를 준비할 것입니다. 그같이 해서는 승리를 거둘 수 없습니다. 군사를 강하게 하려면 먼저 실속을 튼튼히 해야 합니다.” 부국이 이뤄져야 강병이 가능하다는 논리를 전개한 것이다.

당시 제환공과 관중은 3일 밤낮을 논의했다. 크게 탄복한 제환공이 관중을 곧바로 상국으로 삼으려 하자 관중이 사양했다. “신이 듣건대 ‘큰 집을 지으려면 한 나무의 재목만으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는 마치 큰 바다도 한 줄기의 흐름만으로 이뤄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군주는 꼭 그 큰 뜻을 성취코자 하면 동시에 많은 인재를 등용해야 합니다.” 이에 습붕과 영월, 성보, 동곽아, 빈수무 등이 중용되었다. 제환공은 관중을 상국으로 삼고 조세 1년분을 녹봉으로 주었다. 이후 관중이 포숙아와 습봉 등과 함께 제나라의 정치를 가다듬었다. 군사를 체계적으로 조직하고, 화폐를 만들고, 제염과 광물제련 등의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조치를 하고, 빈궁한 자들을 구제하고, 능력 있는 현사를 등용했다. 이에 제나라 사람들이 모두 크게 기뻐했다. 이상은 『국어』와 『사기』 등의 기록을 종합한 것이다.

한 번의 거병으로 천하를 바로잡다 - 일광천하(一匡天下)

끊어진 후사를 잇다: 『춘추좌전』은 제환공이 비록 미흡하기는 했으나 초나라를 제압한 이후에 보여준 일련의 패업 행보를 상세히 기록해 놓았다. 관중의 헌신적인 보필 덕분이다. 대표적인 예로 주 왕실을 받들고 사방의 오랑캐를 물리치는 이른바 존왕양이(尊王攘夷)와 패망한 중원의 제후국을 일으켜 세우고 끊어진 후사를 잇게 하는 존망계절(存亡繼絶) 행보를 들 수 있다.

제환공이 ‘존망계절’의 업적을 처음으로 세운 것은 기원전 661년에 제후들의 군사를 이끌고 가서 북적(北狄)의 침공을 받아 위기에 처한 형(邢)나라를 구한 일이다.<내언> ‘대광’에 따르면 이보다 1년 앞선 기원전 662년 송나라가 약소국인 기(杞)나라를 친 적이 있다. 제환공이 관중과 포숙아에게 물었다. “저 송나라는 과인이 진즉 치고자 했으나 제후들을 어찌할 수가 없었소. 저 기나라는 성왕인 우왕의 후예가 다스리는 나라요. 지금 송나라가 침공했으니 내가 구해 주어도 가하지 않겠소?”

관중이 대답했다. “안 됩니다. 신이 듣건대, ‘내정을 다지지 않은 채 외정(外征)에 나서 의를 행하면 사람들이 신복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군주가 장차 외정에 나서 의를 행하고자 하면 먼저 내정부터 다져야 합니다. 그래야 제후들을 친부(親附)토록 만들 수 있습니다.” 제환공이 말했다. “지금 구하지 않으면 나중에 송나라를 칠 명분이 없어지게 되오.” 관중이 말했다. “제후국의 군주는 다른 나라 영토를 탐내서는 안 됩니다. 그러려면 반드시 많은 무력을 동원해야 하고, 그러면 백성에게 큰 해를 입히고, 백성이 큰 해를 입으면 사술이 횡행하게 됩니다. 사술을 쓰지 않고 용병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사술을 쓰면 백성의 신뢰를 잃게 됩니다. 그러면 혼란이 빚어지고, 군사를 동원해 이를 진압하면 군주 자신이 위험해집니다. 선왕의 도를 들은 옛 군주들이 군비경쟁을 벌이지 않은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오?” 관중이 대답했다. “신의 생각으로는 먼저 사람을 시켜 송나라에 값진 예물을 보내십시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기나라 제후를 맞아들인 뒤 봉토를 내리도록 하십시오.” 제환공이 포숙아에게 물었다. “어찌하는 것이 좋겠소?” 포숙아가 대답했다. “군주는 관중의 말대로 하십시오.” 제환공이 조손숙을 송나라에 사자로 보냈다. 송나라가 듣지 않고 기나라를 쳤다. 제환공이 연릉에 성을 쌓은 뒤 기나라 군주를 봉하고 전차 100승과 병사 1천 명을 보냈다.

이듬해인 기원전 661년 봄, 북쪽의 적인(狄人)들이 형(邢)나라를 쳤다. 형나라 군주가 황급히 제나라로 피신했다. 구원을 청하자 제환공은 곧 관중을 불러 대책을 상의했다. 관중이 건의했다. “모든 제후들이 우리 제나라를 섬기며 존경하는 것은 우리 제나라가 천하의 재앙과 환난을 구제하기 때문입니다. 전번에 때맞추어 위나라를 돕지 않았는데, 이번마저 형나라를 돕지 않는다면 군주의 패업에 차질이 생길까 우려됩니다.” 이상은 <내언> ‘대광’의 기록이다.

이적의 침공을 막다: 춘추시대의 패자는 반드시 ‘존왕양이’의 명분을 얻어야만 했다. 말할 것도 없이 춘추시대의 첫 패자인 제환공의 패업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크게 존왕과 양이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왕명을 내걸고 제후들의 연합군을 구성한 뒤 무도한 나라를 토벌하는 것은 ‘존왕’에 속한다. 내부를 다스리는 일종의 안내(安內) 작업에 해당한다. 이에 반해 ‘양이’는 외부를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일종의 평외(平外) 작업에 해당한다. 양자 모두 안팎을 평안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존왕’의 대상은 제후이나 ‘양이’의 대상은 사방의 오랑캐인 이적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제환공과 관중이 행한 최초의 ‘양이’ 행보는 기원전 664년에 행한 산융 정벌이다. 이때 현재의 북경 인근에 도성을 두고 있는 연나라 사자가 제환공을 찾아와 산융의 침공 사실을 알리면서 급히 구원을 청했다.

제환공이 관중에게 자문을 구했다. 관중이 대답했다. “지금 제나라 남쪽에는 초나라, 북쪽에는 산융, 서쪽에는 적인이 있습니다. 이는 모두 우리 중국의 우환입니다. 제후들의 맹주인 군주가 이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번에 산융이 연나라를 침공하지 않았을지라도 오히려 그들을 응징해야 하는데, 더구나 그들이 침공하여 연나라가 구원을 청하고 있으니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제환공이 이를 좇았다. 이에 곧 사자를 노나라로 보내 군사지원을 청했다. 노장공이 이를 받아들였다. 얼마 후 제환공이 친히 제ㆍ노 두 나라 군사를 이끌고 서북쪽을 향해 나아갔다. 산융은 제나라 군사가 구원 차 온다는 것을 알고 이내 포위를 풀고 달아났다. 제환공이 연나라 도성인 계성의 관문에 이르자 연장공이 영접했다. 관중이 제환공에게 간했다. “산융이 아무런 병력 손실도 없이 물러갔으니 우리가 물러나면 다시 연나라를 칠 것입니다. 그러니 이 기회에 그들을 무찔러 우환을 아주 덜어 버리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이에 제환공이 연나라 군사와 합세해 북진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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