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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CEO

니토리 아키오 지음 | 오씨이오(OCEO)



거북이 CEO

니토리 아키오 지음

OCEO / 2017년 6월 / 192쪽 / 13,500원





서장 - 거북이 속도? ‘이룸’을 위한 최고의 속도!



생각의 방식이 바뀌면 인생의 방향이 바뀐다

우리가 책상 위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힘과, 실제 사회에서 이를 활용하는 힘은 전혀 다르다. 아무리 좋은 학교를 졸업해도 막상 사회에 나오면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게 된다. 니토리에는 교토대를 비롯한 소위 명문대 출신 엘리트들이 꽤 많지만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중졸이나 고졸 학력이라 해서 선입견을 갖는 일도 없다. 나 역시 지원한 고등학교에 모두 떨어져 쌀 한 가마니로 겨우 입학했으니, 실상 중졸 정도의 학력이라 해야 맞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학력으로도 나는 성공을 거두었다. 단언컨대 ‘공부를 못하니 성공할 수 없다.’는 생각은 틀렸다. 중요한 건 ‘사안을 보는 시각’, 그리고 ‘생각하는 방식’이다.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항로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

니토리를 이끈 성공의 다섯 가지 요소

성공의 다섯 가지 요소는 내 인생의 스승인 고 아쓰미 슌이치 선생의 가르침을 내 삶에 비춰 ‘어떻게 해야 성공할 수 있는가.’ 하는 원칙으로 풀어낸 것이다. 원래는 니토리의 신입 사원들을 위해 마련한 내용이지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이렇게 공개하려 한다. 내가 생각하는 성공의 다섯 가지 요소란 다음과 같다. ‘① 큰 뜻 ② 비전(중ㆍ장기 계획) ③ 의지 ④ 집념 ⑤ 호기심’ 이것만 있다면 나 같은 낙오자도 충분히 성공을 거둘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큰 뜻, 그 다음이 비전이다.



큰 뜻. 껍질 속의 거북이를 깨워 먼 바다로 이끄는 힘



희망이 안 보이던 학창시절 / 내 꿈은 ‘나 혼자 먹고 사는 것’

니토리에서는 ‘큰 뜻’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창업 후 첫 20년간 니토리의 큰 뜻은 ‘미국과 유럽의 풍요로운 주거 문화를 일본에 제공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해외로도 진출했기 때문에 일본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풍요로운 주거 문화를 제공하는 것’을 큰 뜻으로 삼고 있다. 이는 니토리라는 회사뿐 아니라 나 자신의 큰 뜻이기도 하다. 내가, 그리고 니토리가 여기까지 걸어온 길을 처음부터 찬찬히 되짚어볼까 한다.

나는 어린 시절, 머리가 썩 좋지 못해서 선생님의 말을 바로바로 이해하지 못했고, 기억력도 나빠 교과서를 읽어도 내용을 금세 까먹기 일쑤였다. 그래서 고등학교 입시 때 시험을 치른 고등학교를 전부 떨어지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야간학교에 가야 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내가 시험을 쳤던 고등학교 한 곳의 교장 선생님이 마침 어머니에게 쌀을 배달시켜 먹는 손님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이 묘한 우연을 놓칠세라 어머니는 그 집에 쌀 한 가마니를 몰래 보내어 입학을 간청했다. 그것이 효과가 있었던지, 나는 ‘결원으로 인한 추가 합격’이라는 명목으로 그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아버지는 ‘대학에 가지 말고 아버지 일을 이어 받으라’고 권했다. 하지만 나는 대학에 가서 공부하겠다고 무작정 고집을 부렸다. 아버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지만, 이번만큼은 어머니가 내 편을 들어줬다. “대신에 학비나 생활비는 스스로 알아서 해라. 집에서는 하숙비 정도만 보태줄 거야.” 나는 어머니가 내민 조건을 무조건 받아들이기로 하고서 대학 진학을 허락받을 수 있었고, 겨우 단기대학에 들어갔다. 졸업 후 회사에 취직을 해보았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절망에 빠져 있던 나는 아버지 회사인 ‘니토리 콘크리트 공업’이 보유한 삿포로 시내의 30평(약 99제곱미터) 토지를 빌려 가구점 사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젊을 때 나는 ‘그저 나 혼자 먹고 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가구점을 시작한 것도 오로지 먹고 사는 게 목적이었다.

망하기 직전의 가게를 뒤로하고 떠난 여행

실패 투성이의 내 인생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한 건 아내와 결혼하고부터였다. 1967년 현재의 니토리로 이어진 최초의 가구점을 시작했을 때 나는 스물세 살이었다. 당시 나는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것 자체를 힘들어해서 접객 자체를 거의 하지 못했다. 다행히도 아내는 사람을 상대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내가 손님맞이를 할 때면 금세 자리를 떠나던 사람들도 아내가 나서면 곧 단골 고객이 되었다. 아내 덕분에 그 전까지 40만 엔(약 400만 원) 수준이던 매출은 두 배 이상 증가했고, 적자에 허덕이던 가게가 순식간에 흑자로 돌아섰다. 1971년에는 2호점을 출점했고 1972년에는 주식회사까지 설립했다. 하지만 2호점이 생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근처에 1,200평(약 3,967제곱미터) 상당의 대형 가구 매장이 들어서면서 매출이 급감하기 시작했다. 적자가 이어졌고 은행에서 신규 융자도 중단되어 가게는 도산 위기에 처했다. 나는 우울증에 빠져 매일같이 극단적인 생각에 시달렸다. 그런데 그즈음 ‘가구실내연구소’라는 컨설팅 회사가 초청장을 보내왔다. ‘미 서부 지역 시찰 세미나가 열리니 참가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막다른 길에 내몰린 나는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심정으로 참가 신청을 했다.

훔치고 싶은 풍요로움

이 여행에서 나는 인생관 자체가 뒤바뀌는 충격을 받았다. 무엇보다 미국은 물건 가격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저렴했다. 또 가구의 품목이나, 책상, 사이즈 등도 일본에 비해 훨씬 다양했다. 쇼룸에 제품을 전시하는 모습도 색달랐다. 미국의 경우 가구만이 아니라 커튼을 비롯한 다양한 인테리어 소품들까지 조합하여 ‘토털 코디네이션’을 선보였다. 가구의 품질이나 기능에도 차이가 있었다. 일본의 경우 제작자나 업체의 견해 위주로 가구를 만드는 반면, 미국에서는 구매자의 니즈에 입각하여 제품을 설계하고 고객 위주의 마케팅 용소를 최대한 반영한다. 또 가구 소매점들은 모두 체인화되어 있었고 100개, 200개의 매장이 미 전역에 포진된 경우가 허다했다. 이로써 대량 구입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이는 비용 절감으로 이어져 품질이 좋은 제품을 더 저렴하게 제공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이렇게 유통뿐 아니라 상품 기획의 주도권까지 쥐어야 토털 코디네이션이 가능해진다. 커튼부터 애완동물 용품까지, 가구 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제조사를 참여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팔자대로 살자’에서 ‘뜻을 위해 살자’로

미국에 가기 전, 나는 스스로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며 내 인생을 지레 포기했다. ‘열심히 해봤자 사람은 결국 팔자대로 될 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여행을 마친 뒤로 ‘미국과 같은 풍요로움을 일본에도 확산시키고 싶다.’는 꿈, 즉 큰 뜻이 내 안에서 싹텄다. 그리고 앞으로는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살아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큰 뜻을 갖게 되면서 그 외에 다양한 것들이 연쇄적으로 바뀌어 갔다. 예를 들어 미국에 다녀온 뒤로는 ‘일하는 보람’에 ‘사는 보람’이 더해졌다. 그때까지 내가 일하는 목적은 ‘나 자신이 즐겁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일하는 목적이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된 뒤로는 모든 게 바뀌었다. 나 하나만 득을 보고자 노력하던 데서 내 일이 더 많은 사람들의 행복으로 이어지도록 노력하기 시작하자, 일하는 방식과 의욕의 수준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업무를 진행하는 방식 또한 한층 계획적인 형태로 바뀌었다. ‘가장 먼저 방향이 올바른지를 확인하고, 이어 어떤 방법을 사용할지를 결정한다. 그리고 순서에 따라 각 단계에 필요한 일들을 착실히 이행해나간다.’

히트 상품을 개발하려면 다중인격이 되어라

풍요로운 주거 환경을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싶다는 큰 뜻을 갖기 전까지 나는 매출이 얼마이고 전년 대비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매일, 매주, 매달 확인했다. 하지만 그런 습관은 큰 뜻을 갖게 된 뒤로는 점차 사라졌다. 항상 내 중심이던 시선이 고객들에게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고객들은 어떤 것에 만족하고 어떤 점을 불편하게 여기는지 구매자 및 사용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지금 내 마음속에는 니토리 아키오라는 자아 대신 고객들의 시선이 자리하고 있다. 그때그때 아이가 되었다가, 여성이 되었다가, 때로는 노인이 되어 철저히 고객의 눈으로 각 장소에 필요한 것은 없는지, 문제는 없는지를 살피고 또 살핀다.

큰 뜻은 그저 바라는 것이 아니라 몰입하는 것

큰 뜻과 비전을 달성하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해내겠다.’라는 굳은 각오가 필요하다. ‘나 아니어도 누군가가 하겠지. 나는 거기에 편승하면 돼.’ 하는 안일한 사고방식으로는 절대 큰 뜻을 가질 수 없으며,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인생도 바뀌지 않는다. 다른 누가 아닌 내가 하겠다는 마음, 실패하더라도 내가 책임지겠다는 각오가 있을 때 비로소 큰 뜻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회사의 큰 뜻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회사에 있을 때만, 혹은 월급을 받을 때만 그것을 생각해서는 부족하다. 출근하기 이전과 퇴근 이후, 개인적인 시간 속에서도 그 큰 뜻을 실현하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회사 일을 사적인 영역까지 끌고 오고 싶지는 않다는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그런 경우는 솔직히 성공할 확률이 거의 없다.

성공하는 사람의 중요한 자질, 정

누군가는 말하기를 “경영이란 오른손에 주판을, 왼손에는 의리와 정을 쥐는 것”이라 했다. 엄격함과 부드러움,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추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큰 뜻과 비전도 마찬가지다. 그저 수치상의 목표만을 들어선 안 된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마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뜻은 ‘정’으로 나타나고, 비전은 ‘수치’를 통해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모두가 기뻐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강하다. 일을 할 때는 이런 마음가짐이 큰 도움이 된다. 고객을 기쁘게 하고픈 마음이 있기에, 그들이 어떤 점에 불만을 느끼고 불평하는지 유심히 살피게 된다. 고객만이 아니다. 직원들 역시 더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회사 차원에서 그들의 고민을 해결해주고자 노력한다. 좋은 실적으로 주주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상대방의 기쁨’이 내 모든 행동의 근원이자 밑바탕이 되는 셈이다.



비전. ‘기한 있는 목표’로 추진력을 더한다



숫자 1로 시작하는 일곱 개의 목표

큰 뜻과 더불어, 성공으로 나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또 한 가지가 바로 ‘비전’이다. 비전이란 ‘20~30년의 시기 동안 달성할 목표’를 말한다. 만약 큰 뜻이 ‘사람들에게 주거의 풍요로움을 제공하는 것’이라면, 다양하고 폭넓은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주거와 관련된 모든 상품을 기존의 3분의 1 가격으로 제공한다거나, 필요한 모든 제품을 자유롭게 코디네이션하게끔 하겠다는 수준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이는 계획의 규모 자체가 달라 1,000호점, 2,000호점 수준의 매장이 필요하며, 기간도 몇 십 년이 걸릴 수 있는 대작업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30년에 걸쳐 매장을 100개까지 늘리겠다.’는 식의 비전이 필요하다.

내가 장기 계획을 처음 세운 건 스물여덟, 그러니까 미국 시찰 여행에 참가했을 때였다. 당시 나는 ‘일본은 미국에 50년 이상 뒤처졌다. 그 격차를 따라잡고 앞서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하며, 그 과정을 구체적인 수치로 나타내보고자 했다. 그렇게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앞으로 30년 동안 달성해야 할 목표’를 고민했고, 그것을 반드시 달성하겠다는 결의서를 작성했다. 이것이 ‘제1기 30년 계획’이다. 이때 나는 ‘첫 10년간 사람을 만들고, 다음 10년간 매장을 만들며, 마지막 10년간 상품을 만든다.’고 구상했다. 우선 ‘사람 만들기’란 대졸 사원들의 정기 채용을 시작하고, 직원 교육에 적극 투자해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것이다. 이어 10년간은 신규 매장을 연속적으로 출점해 대형 체인스토어 형태를 구축한다. 그렇게 어느 정도 매장의 규모가 갖춰져 구매력이 생기면 ‘토털 코디네이션’을 제안할 수 있는 독자 상품을 개발하겠다는 발상이었다. 1972년 말에 세운 이 30년 계획의 최종 기한은 2003년 2월이었다. 당시는 매장이 아직 두 곳밖에 없던 상황인지라 30년 후의 목표도 소박했다. 목표로 삼은 매장의 수는 30개, 매출은 100억~200억 엔이었다.

그때만 해도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5년 뒤 아쓰미 선생의 페가수스클럽에 가입하고 ‘장기 계획 세미나’를 수강한 적이 있는데, 나는 ‘장기 계획의 비전을 제출하라’는 과제를 받고서 전에 이미 만들어둔 30년 계획을 그대로 냈다. 그런데 아쓰미 선생은 ‘너무 적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목표 점포 수를 50개로 수정해서 제출했지만 다시 반려되었다. 그는 말하기를 “페가수스클럽에서는 100배 발상이 기본”이라고 했다. 그의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기존의 두세 배 정도 되는 목표라면 지금껏 해오던 방식을 지속해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 하지만 100배 정도가 되면 과거와 동일한 방식으론 결코 달성할 수 없다. 그렇게 높은 목표를 세우고 돌진하는 것이 바로 비전이다.

아쓰미 선생의 말대로 하자면 당시 일곱 개에 불과했던 매장 수가 30년 후 700군데로 늘어야 했다. 솔직히 ‘그건 무리 아닐까? 불가능할 거 같은데?’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내가 과제를 놓고 씨름하는 동안 함께 수강하던 다른 이들은 모두 선생의 승낙을 받고 돌아간 터였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100개 매장, 1,000억 엔(약 1조 원) 매출’이라고 목표를 고쳐 적고 나서 비로소 OK 사인을 받았다. 아쓰미 선생은 일정한 매장 수를 보유한 체인이 되어야만 진정한 사회 공헌을 할 수 있으며 한 자릿수, 두 자릿수가 아닌 적어도 세 자릿수 매장은 필요하다는 게 선생의 생각이었다.

내가 세운 ‘100개 매장, 1,000억 엔 매출’이라는 목표라면 아쓰미 선생이 말하는 ‘사회 공헌’이 가능한 최소한의 조건이 충족되었다. 게다가 딱 떨어지는 수치라서, 나와 임직원 모두 기억하기 쉽고 말하기도 쉬웠다. 물론 매장을 100군데 내기 위해서는 사업의 강도를 훨씬 높여야 한다. ‘100개 매장, 1,000억 엔 매출’과 더불어 생각한 또 한 가지 목표가 있었는데 바로 ‘매장당 면적을 1,000평 수준으로 높이자.’는 것이었다. 당시 니토리 매장 일곱 군데의 평균 면적은 450평, 매장당 매출은 6억 엔 대였다. 하지만 ‘100개 매장, 1,000억 엔 매출’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매장당 매출을 10억 엔 대로 끌어올려야 했다. 그러자면 한 매장의 면적이 1,000평은 되어야 한다는 계산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임직원 대우 면에서도 업계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연봉 1,000만 엔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처음부터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50세쯤이 되면 연봉 1,000만 엔 정도는 받을 수 있는 회사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더불어 지주회사를 설립해 직원들에게 회사 주식을 나눠주고, 이들이 60세 정년을 맞이할 즈음에는 하나 사람당 1억 엔 정도의 주식을 보유하게끔 만들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100개 매장, 1,000억 엔 매출, 점포당 면적 1,000평, 평당 매출액 100만 엔, 매장당 매출 10억 엔, 직원 연봉 1,000만 엔, 직원 당 보유 주식 1억 엔. 이렇게 나는 앞에 1자가 붙은 수치상의 목표 일곱 개를 만들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선언은 ‘일본 최초의 홈퍼니싱 업체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본거지 홋카이도 지역에 한정돼 있던 데서 벗어나 전국구 체인으로 도약할 것, 그리고 도쿄증권거래소 1부 상장도 목표로 삼았다.

기한 있는 목표의 힘

‘큰 뜻’이란 궁극적인 지향점이자 언제까지나 바뀌지 않는 것이다. 반면에 ‘비전’은 10~20년 동안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니토리는 현재 ‘2022년 국내외 1,000개 매장, 1조 엔 매출’, ‘2032년 국내외 3,000개 매장, 3조 엔 매출’이라는 원대한 비전을 들고 있다. 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2007년 대만 가오슝에 첫 해외 매장을 출점했고, 이후 대만 여러 지역에 24개 매장을 연달아 오픈했다. 2013년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교외 지역 출점에 성공했으며, 이듬해인 2014년에는 중국에서도 영업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리먼 쇼크나 엔저 같은 역풍이 닥칠 때마다 우리는 그것을 견디며 조금씩 성장했고 또 멋지게 극복해냈다. 앞으로의 비전 또한 반드시 달성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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