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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 리더십

김헌식 지음 | 북코리아



2인자 리더십



김헌식 지음

북코리아 / 2015년 1월 / 368쪽 / 15,000원





영웅의 허구성 간파 - 기본적인 리더상



영웅은 혼자다. 영웅은 1인자다. 그를 위협하는 이는 악당이다. 영웅은 수많은 악의 무리를 홀로 쳐부순다. 추풍의 낙엽처럼 악당의 무리는 흩날리고, 영웅은 그 사이에 고고하고 멋진 모습으로 굳건히 버티고 있다. 영웅은 홀로 서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그것을 인정받는 존재이다. 그 인정 속에서 자신의 존재적 가치를 느낀다. 영웅은 혼자 생각하고 행동하고 주도하고 사람들을 이끌고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자신의 입지를 구축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하는 영웅은 영웅의 반열에서 물러나야 한다. 영웅은 어려운 상황 속에 있는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는 구원자 역할을 맡는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어떨까. 1인자들은 그 역할이 쉽지 않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부담을 느끼고, 고통을 받는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숨긴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지켜보고 있으니 말이다. 이때부터 영웅의 위선이 시작된다. 그것이 세상과 사람들을 구원해야 할 영웅의 본분이라고 여긴다. 자신이 정말 영웅인가 자문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 되고 만다.

하지만 2인자 지향의 사람들은 섣불리 영웅이 되려고 하지 않으며, 영웅을 자신의 이상적인 모델로 삼지도 좋아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영웅이 갖고 있는 슬픔과 고독 그리고 스트레스를 알고 있다. 영웅은 온전히 혼자 존재할 수 없으며, 다른 사람들의 관계성이나 지지기반 없이는 존재할 수 없음도 잘 알고 있다. 자신이 정말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영웅인가 자문한다. 다시 반복하면, 영웅은 실제로 존재하기보다는 그런 존재가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다. 영웅은 문화콘텐츠 속에 존재한다. 그리고 많은 미디어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만들어내기도 한다. 즉, 영웅이 사는 공간은 가상의 공간이다. 하지만 우리는 실제 공간에서 살아야 한다. 조직은 더욱더 현실적이다. 그 현실적인 공간에서 영웅의 리더십보다는 비영웅의 리더십을 추구해야 한다. 탈영웅의 태도를 보일 때 리더십은 더욱 의미와 효과를 가질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2인자 지향의 리더십이다. 영웅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영웅이 우선이 아니라 영웅을 만드는 행위들이나 결과들이 우선될 뿐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조직을 약속의 땅으로 이끌 수 있는 혁신의 영웅이나 카리스마적 리더십은 없다.” 『살아 있는 리더십』에서 경영학자 조지 비니 등이 한 말이다. 그들이 유명 기업에서 활동하는 약 700명의 리더와 함께 생활하며 연구한 결과를 보면, 제아무리 뛰어난 리더도 혼자서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조직을 혁신하지 못했다. 이들이 보기에 리더십은 개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특정한 순간과 상황에서 이뤄지는 조직 내 상호작용의 결과다. 조직의 목표를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통합된 지혜가 필요하다. 특히,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내세워 끊임없는 혁신을 외치는 것은 기업과 개인의 정체성까지 흔들어놓는다.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바로 영웅적 리더십이다. 이것은 사람들을 이끌어 혁신을 이루려 하지만 개인이나 기업의 정체성을 흔들어 결국 혁신을 이루지 못하게 한다. 또한 영웅적 리더십은 답을 제시하고 사람들이 그것을 따르기를 강요한다. 그것은 일정한 방향을 정하고 오직 그곳으로만 달려갈 것을 강요하는 것과 같다. 여기에는 연속성이 없고 단일하며 변화도 없다. 조지 비니 등은 연속성과 변화를 적절히 결합한 리더십을 ‘살아 있는 리더십’이라고 했는데, 이는 답을 제시하고 그대로 따르도록 사람들을 설득하는 행태와는 거리를 둔다. 조직의 집단적 지혜와 통찰력을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이 진정한 리더십이라는 점은 영웅적인 1인자 리더십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견해로 해석할 수 있다. 영웅에 대한 숭배는 비도덕성과 비민주성을 불러올 수도 있다.

제임스 번즈 전 미국 윌리엄스 칼리지 교수가 쓴 『리더십 강의』를 보면 “대중에게 도덕적 판단과 시민정신 등을 교육해 영웅숭배나 무질서한 욕구 분출의 비도덕성과 비민주성을 깨치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대목이 있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영웅을 악용할 수 있고, 그것이 비도덕성이나 비민주성과 같은 도덕적 해이로 연결될 수 있다. 영웅적인 행동들은 또 다른 폭력과 억압을 낳기도 하기 때문이다.

초기에 히틀러와 처칠은 꾸준히 비전을 제시해 많은 팔로워를 얻을 수 있었다. 『CEO 히틀러와 처칠, 리더십의 비밀』에서 앤드류 로버츠가 밝힌 바에 따르면, 히틀러는 숭앙의 대상이 되는 영웅이 되고자 한 반면 처칠은 누군가를 북돋워주는 리더가 되고자 했다. 처칠은 문명화를 기반으로 한 가치 위에 강력한 대영제국을 건설하려는 비전을 국민에게 제시했다. 이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었다. 그러나 히틀러는 끊임없이 부정적인 공격대상을 만들어냈고, 이들에 대해 국민들의 적개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미래에 대한 공포와 불안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자신은 그것을 깨부수는 영웅이자, 불안과 공포를 거두어주는 메시아였다. 히틀러는 완전무결한 초인의 이미지를 형성시켜 스스로 숭배의 대상이 되려 했다. 그는 자신의 영웅적인 이미지를 위해 인위적으로 카리스마를 만들려고 했다. 반면 처칠은 인위적인 카리스마를 만들지 않았고, 국민에게 집중했다. 그는 자신을 우월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무엇이든 성취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려 했다.

오랫동안 리더십에 대해 연구해온 하버드와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은 리더십이란 ‘한 명 혹은 소수의 사람이 발휘할 수 있는 위대한 어떤 것’이 아니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들은 평범한 중간 리더들이 일상에서 보이는 작고 소박하지만 헌신적인 노력이 리더십의 본질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헌신적이고 작으며 소박한 것이 2인자의 태도이다. 거창하고 위대한 성과만 성취하려는 1인자의 태도는 오히려 피해만 낳는 결과에 봉착하게 된다.

물론 영웅은 있어야 하고 부정할 수 없다고 말하는 주장도 얼마든지 있으며, 이것이 전혀 의미가 없는 것도 아니다. 하나의 이상적인 모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모델을 인정한다고 할 때, 어떤 리더가 바람직할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서양인 최초의 동양불교 수행자이자 인권운동가인 미국 컬럼비아대 로버트 서먼 교수는 “지금은 차가운 영웅이 필요한 시대”라고 했다. 지성적이며 통찰력이 있지만 증오와 분노에 휩싸이지 않는 리더가 ‘차가운 영웅’이고, ‘뜨거운 영웅’은 군중을 움직이는 힘은 있지만 증오와 분노에 빠진 리더이다.



과거의 1인자 위치를 잊고 2인자에 맞게 미래 준비 - 반(反)허세



1인자 리더십을 취하는 이들은 몰락하거나 어려운 지경에서도 자신이 그동안 해왔던 행동방식을 유지하려는 습성이 있다. 그러나 상황이 변했을 때는 1인자의 태도를 계속 보여서는 답이 없다. 따라서 2인자의 태도로 빨리 바꾸어야 한다. 그러한 변화는 1인자의 태도로 사멸해가는 것을 막고 부활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한다. 개인이나 조직이 나아질 때는 부침(浮沈)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본인의 뜻이나 잘못일 수도 있지만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불가항력적일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패자 부활이다. 패자의 부활을 잘하기 위해서는 2인자 리더십이 필요하다. 반드시 패자라는 용어를 쓸 필요도 없다. 열세이거나 불리한 상황에 처하여 전과 같은 형세가 아닐 경우에는 2인자의 태도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2008년 12월, 스티븐 코비 박사는 “역사학자인 토인비는 새로운 도전과제에 직면했을 때 과거에 성공을 가져다준 방식은 성공이 아니라 실패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지적했으며, 토마스 쿤도 위기 돌파구는 기존과 단절하는 데서 왔다고 한 적이 있다.”며 “현재의 경제위기도 산업화 시대에 성공했던 방식으로 풀어나가면 오히려 실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기존 방식 탈피나 기존과의 단절이 새로운 돌파구가 되어준다는 점이다.

“죽지 않고 살아 있으면 언젠가는 또다시 기회가 찾아온다.” 위대한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의 리더십을 다룬 캐롤라인 알렉산더의 『인듀어런스』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배는 침몰하고 남극대륙 정복이라는 꿈이 사라져버렸을 때, 섀클턴은 스스로 생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극도로 막막한 상황에 처했다. 어느 방향으로 갈지 길은 알 수 없었고, 매서운 추위와 굶주림이 그를 괴롭혔다. 그러나 결국 634일간의 사투 끝에 단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탐험대원 27명 전원이 무사히 귀환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혹독한 시련에 직면한 섀클턴은 자신의 장기적 목표를 새롭게 정립했다. 그 목표는 대원 전원을 무사히 데리고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새로운 목표에 자신을 적응시켜야 한다. 과거의 목표는 사라졌다. 자,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

위기 상황에서 예정된 길이란 아무리 찾아도 없다. 그 상황에 맞는 길을 빨리 열어갈수록 그 상황을 좀 더 일찍 타개할 수 있다. 아니, 시간이 흘러갈수록 운명은 확연하게 달라지는 법이다. 그는 어려운 시기일수록 소극적이고 수동적이어서는 안 되며, 적극적으로 미래를 전망하고 발생 가능한 문제들을 차근차근 챙겨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저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패신화 신드롬은 ‘하면 된다’로 요약되는, 개발 독재 성공신화의 어두운 이면이다. 1971년에 개통된 경부고속도로는 그 영욕의 축소판이다. ‘한강의 기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성과이지만 한편으로 준공 첫날부터 보수공사를 하는 진기록도 세웠다. 기술도 돈도 없던 시절에는, 예컨대 10cm 두께로 건설해야 할 도로를 5cm로 줄이면 두 배로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경제 도로’ 개념이 통용됐다. 질을 따질 겨를은 없었다. 웬만한 건 묵인해가면서 목표를 향해서만 질주한 귀결이 하드웨어의 부실이었고, 대가는 컸다. 이제 그런 경제 모델의 시대는 유효기간이 다했다.



1인자가 되어서도 2인자의 태도



조조가 동시대의 다른 경쟁자와 눈에 띄게 다른 점은 ‘권력과 돈의 맛에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중원의 중심이 되는 정권이 무너졌기 때문에 각지에서 힘을 갖게 된 영웅호걸들은 권력의 맛을 보게 된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땅에서 웅거하면서 나라를 세우고 스스로 황제라 칭했다. 권력만이 아니라 쾌락에 맛을 들여 더욱더 영역을 확장하려 했다. 조조는 대의를 견지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초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물론 조조도 거대한 나라의 황제가 되어 통치하려는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나라와 민생 안정을 우선시했다. 연이은 전란으로 식량이 귀해지고 백성의 삶도 같이 피폐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조조는 둔전제(屯田制, 국영 소작제도)를 시행해 농경지를 개간하면서 식량난과 군량미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농민들의 살길을 일정하게 열어주게 되었다.

조조는 부정부패와 거리가 멀고 청렴했다. 그가 청렴한 삶을 보낸 것은 유언에서도 알 수 있다. 낙양에서 세상을 떠나면서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천하가 안정되지 않았는데도 예부터 내려오는 규정에 따라 장례를 치를 수는 없는 일이다. 나를 묻고 나거든 모두 상복을 벗도록 하라. 병사를 통솔하며 수비지에 주둔하고 있는 책임자들은 부서를 떠나지 말도록 하라. 그 같은 일은 내가 허락지 않는다. 담당 관리는 각자 자신의 직무를 다하는 데 우선하라. 내 시신을 의복으로 쌀 때에는 평상복을 사용하며, 금은보화를 묘에 절대 넣지 말라.” 조조는 충분히 쾌락과 호사를 누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고, 세상을 떠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그를 형식적인 1인자에서 실질적인 1인자로 만들어준 이유가 되었다.

진시황은 뛰어난 선견지명과 과감한 결단으로 천하를 얻었으나 지키지 못했다. 바로 1인자가 겸해야 할 2인자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천하를 통일했다는 스스로의 업적에 취해 있었다.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었기 때문에 권력과 쾌락에 빠졌다. 이 때문에 그가 세운 진나라는 불과 15년밖에 버티지 못했다. 권력과 쾌락에 취하니 그의 주변에는 그것을 이용하는 기회주의자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진시황은 천하통일의 뒤에 올 위험과 분란을 경계했어야 한다. 『주역』 ‘계사하전’에 보면 “군자는 편안해도 위기를 잊지 않고 존재해도 망함을 잊지 않고 다스려져도 혼란해짐을 잊지 않는다.”라고 했다. 리더는 편안할 때 위험한 때가 올 것을 경계하고, 스스로 잘 있어도 그것이 무너질 수 있음을 생각하며, 화평해도 분란이 일어날 상황을 항상 주의해야 한다. 평안, 안정, 번영, 화평은 모두 1인자가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취해 있으면 위험, 분란, 멸망에 이르기 쉽다. 진시황은 천하를 통일한 호걸이었지만 군자는 아니었던 것이다.

경영 컨설턴트 김우형 등이 저술한 『리더십 바이러스』에는 ‘리더십 RAV 바이러스’라는 개념이 나온다. 정의를 보면, “리더가 되는 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감(Responsibility)과 권한(Authority), 비전(Vision)에 대한 압박 때문에 책임감(R)을 부담감으로, 권한(A)을 권력으로, 비전(V)을 개인적인 야망으로 변질시키는 ‘리더십 RAV 바이러스’에 노출된다.”고 했다. 리더십 RAV 바이러스의 증상은 다음과 같다. “갑자기 인기에 민감해진다, 직원들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듣기 좋은 말만 골라 듣는다, 감정기복이 심하고 상황에 따라 말을 쉽게 뒤집는다, 자신은 보기만 해도 다 안다고 믿는다, 고집이 세지고 반대 의견이 나오면 상대방이 항복할 때까지 논쟁을 멈추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RAV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쉬운 것이 1인자 리더들이다. 따라서 그 상황을 현명하게 헤쳐나가야 하는 것이다. 만약 2인자의 태도를 유지했다면 권력이나 야망으로 변질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음에 소개하는 리 아이어코카의 사례에는 지금까지 말한 요소들이 모두 응집되어 있다.

리 아이어코카는 자동차회사 크라이슬러를 파멸 직전에서 구해낸 위대한 최고경영자(CEO)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크라이슬러 CEO 재임(1978~1992) 후반기 평가는 크게 달라진다. 후반기에 아이어코카는 스스로 스타의 위치에 군림하려 했다. 그는 자신을 ‘빛나는 CEO’로 부각시키는 데 집중했다. <투데이 쇼>, <래리킹 라이브> 등 TV 프로그램에 단골로 출연했고, TV 광고도 80여 편이나 찍었다. 대중적 인기를 얻으며 미국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크라이슬러의 기업 가치는 곤두박질쳤다. 이미 그의 기업인으로서의 가치가 폭락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어코카는 CEO 자리를 놓지 않았다. 자신의 리더십으로 회사를 이끌어갈 수 없었음에도 말이다. 그의 리더십이 역량을 발휘할 시점과 상황은 이미 끝나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 자리에 탐닉하고 집착하였다. 직원들의 불만도 커졌다. 직원들은 ‘Iacocca’가 ‘I Am Chairman of Chrysler Corporation Always(나는 항상 크라이슬러의 회장)’을 뜻한다고 비아냥댔다. 아이어코카는 은퇴 후 크라이슬러에 전용 제트기와 스톡옵션을 요구해 더욱 비난을 받았으며, 말년에는 돈만 밝히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그는 1인자가 되었지만 2인자 리더십을 제대로 보이지 못해서 결국에는 2인자 밖으로 밀려났다.

1인자가 되어 항상 조심해야 할 것은 경제적인 욕망으로 인한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이다. 『명심보감』에 “큰 집이 천 칸이나 되어도 밤에 눕는 곳은 여덟 자뿐이요, 좋은 밭이 만 평 있어도 하루에 먹는 것은 두 되뿐이니라.” 또한 “족함을 알고 즐기기를 하면 평생 욕심이 없고 부끄러울 것이 없다.”고 했다. 이러한 태도라면 1인자가 되어서도 2인자의 태도를 유지할 수 있으니 2인자의 위치를 지키는 데 문제가 없다. 진정한 부자들은 부자가 되고 나서도 부자가 되기 전의 생활태도를 유지하여 자신을 부자로 만들어준 재물을 지켜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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