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이동진 외 지음 | 미래의창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이동진 외 지음
미래의창 / 2014년 2월 / 308쪽 / 15,000원
정체성은 꾸준함에서 나온다: 자기 정체성을 지키는 결정들
티파니_ 티파니에서 100달러로 쇼핑하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광고업체 중 하나인 오길비 그룹의 부사장을 역임한 로리 서더랜드는 광고가 보이지 않는 가치를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즉 상품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만들어냄으로써 가치를 높인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가의 제품일수록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데 광고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런 광고들은 단순히 제품을 설명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스토리를 통해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그래서 일부 고가 브랜드들은 스토리를 풍부하게 전달하기 위해 광고의 일종인 브랜드 단편영화를 제작한다. 그중에서 인상적인 단편영화를 자주 제작하는 브랜드로 까르띠에(Cartier)를 주목할 만하다.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한 한 남자. 남자의 시선은 한 여자를 향하지만, 붐비는 하객들 때문에 두 사람은 엇갈린다. 친구들과 사진첩을 넘기다 발견한 그녀와의 옛 사진. 연인 시절을 그리워했던 남자는 마음을 굳힌 듯 까르띠에 매장으로 향한다. 웨딩링을 산 그는 친구의 결혼식으로 돌아와 중국인인 그녀에게 중국어로 프로포즈한다. ‘운명(Destinee)’이라는 브랜드 단편영화를 통해 까르띠에를 보석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가치를 파는 브랜드로 포지셔닝한 것이다. 또한 중국인 여주인공에게 중국어로 프로포즈를 하는 장면은 보석 판매의 거대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 소비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물론 20년 전으로 시간을 돌린다면, 중국인이 아닌 일본인이 등장했을 것이다. 경제 대국으로 주목받던 일본은 보석처럼 빛나는 시장이었다. 까르띠에보다 10년 먼저 설립된 티파니(Tiffany)는 이 시장을 본격 겨냥하고 있었다. 티파니는 오드리 햅번 주연의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통해 전 세계 여성들의 로망이 되었고, 티파니 블루(Tiffany Blue)라는 색깔의 상자로 여성들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영화와 상자의 후광으로 보이지 않는 가치를 높이는 데 성공한 티파니는 반짝이는 일본 시장에 정면 도전한다. 그러나 빛나는 모든 것이 보석이 아니듯, 일본 시장도 빛나는 것만큼 아름답지 않았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하지만, 시장은 영원할 수 없다. 일본 시장에서 승승장구하던 티파니였지만 시간이 흐르며 고민이 점점 늘어간다. 티파니 박스에 무슨 일이 생겼던 것일까?
티파니: 티파니는 일본에서 무슨 일을 겪은 걸까?
[상황] 급속한 경제 성장으로 일본이 보석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르던 1972년에 티파니는 미츠코시 백화점과의 협력 아래 일본에 진출했다. 세계적인 경제 불황에도 불구하고 1989~1990년 티파니의 일본 시장 매출은 매년 3,500만 달러(385억 원)씩 증가해 티파니 글로벌 매출 증가분의 절반을 차지하게 이르렀다. 1993년 티파니는 자회사 ‘티파니 재팬’을 설립하고 미츠코시로부터 일본 시장 경영권을 인수하며 본격적인 일본 시장 공략에 나섰다. 티파니 재팬의 성장은 하이엔드(high end), 특히 약혼반지 시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약혼반지는 경제 불황에 영향을 받지 않으며, 결혼 전의 설레는 감정과 연계되어 고객 충성도를 확보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전형적인 약혼반지의 가격은 3,000달러(330만 원) 선에서 형성되어 있었다.
[이슈] 티파니는 고객 기반 확대를 위해 하이엔드 고객 외 다양한 고객층을 끌어들이는 전략을 펼쳤다. 850달러(93만 원)의 저가 약혼반지를 적극적으로 광고했으며, 젊은 잠재 고객들을 ‘교육’하기 위해서 티파니의 디자인과 장인 정신의 가치를 강조하는 책자를 유포했다. 1999년에는 은제품, 펜던트, 열쇠고리 등 다수의 100달러(11만 원) 이하 제품들을 포함해 새로운 제품들을 소개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2002년에 전체 매출은 ?1%, 비교매장 매출은 ?8%(매장 단위 면적당 매출로 비교매장 매출의 감소는 매장 확장 속도 대비 매출 증가 속도가 낮음을 의미함)로 티파니 재팬은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약혼 보석의 수요 감소와 고급 시계 같은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 등 다양한 부정적 요인이 존재했으나, 무엇보다도 티파니가 럭셔리 이미지를 잃게 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일본 여성들은 티파니 브랜드 가치가 저렴한 은제품의 강한 존재감으로 인해 퇴색되었다고 생각했다. 컨설팅업체인 다비도비츠 앤 어소시에이트 회장 하워드 다비도비츠는 “대중화와 차별화를 조합하려 한 티파니는 더 이상 럭셔리 비즈니스가 아니다”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고민] 저가의 신제품 출시 등 공격적인 전략은 오히려 티파니에게 독이 된 것일까? 성공적으로 일본에 진출했으나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티파니 재팬, 이대로 괜찮을까?- IBS리서치센터(2009)
이 케이스는 경쟁 대응, 브랜드 이미지 관리, 제품 라인 확장 그리고 고객 기반 확대 등 티파니가 일본 시장에서 직면한 다양한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을 다루고 있다. 이 케이스에서는 일본 시장 내에서의 이슈로 한정하고 있지만, 위의 문제들은 티파니가 일본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당면할 수 있는 근원적인 문제들이다. 따라서 지엽적인 해석을 방지하기 위해 이 문제를 일본에 한정된 ‘티파니 재팬’ 차원의 문제와 티파니가 글로벌하게 전사적 관점에서 해결해나가야 할 ‘티파니 글로벌’ 차원의 문제로 나누어 보고자 한다.
▲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문제 인식이 필요하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의 패전 이후 경제 개발에 집중해 1980년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에 이르는 눈부신 성과를 기록했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 버블 경제 붕괴 이후 2002년까지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릴 정도로 지독한 불황을 겪었다. 보통 경기가 좋지 않으면 소비자들은 보석류 등 고가 제품의 소비를 줄인다. 당시 일본은 수많은 기업과 은행이 도산하고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된 상황이었다. 경기 침체가 티파니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는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그러나 당시 티파니 재팬이 안고 있던 일본 경제의 리스크는 전반적인 경기 불황뿐만이 아니었다. 티파니는 자회사 설립을 통해 일본 시장에 직접 진출했기 때문에 환율 리스크를 떠안아야 했다. 환율 변동이 큰 경우에는 일본 시장의 성과가 매우 불안정해 보일 수 있다. 미국 기업 입장에서는 엔-달러 환산을 거친 후에 경영 성과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 보석 시장은 고정환율 기준으로는 지속적으로 성장세를 보였지만, 변동환율 기준으로 보면 감소세를 보이기도 하면서 그 변동폭이 매우 컸다. 이처럼 환율은 시장 성과 측정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럴 때는 기대환율에 맞춰 연간 경영을 계획하고, 환 헤지(hedge)를 하는 등 적절한 환율 정책이 필요하다. 불행하게도 티파니 재팬은 이 부분에 능숙하지 못했고, 일본 시장에서의 성과가 더욱 악화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결과를 빚었다.
일본의 전반적인 경기 침체, 환율 리스크와 더불어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 또한 티파니 재팬의 발목을 잡았다. 일본에는 소비를 주도하는 두 세대의 베이비 부머(baby boomer)들이 있었는데, 티파니가 처음 일본에 진출했을 당시는 1947~1949년에 태어난 첫 번째 베이비 부머들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을 때였다. 이들은 높은 사회적 지위와 가처분 소득을 가지고 있었으며, 일본의 경제 성장을 이룩한 주역들로 검소했던 젊은 시절을 보상하려는 듯 소득의 상당 부분을 보석 구매에 사용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들의 자식 세대인 두 번째 베이비 부머들이 시장을 주도하는 시기가 왔다. 하지만 이 두 번째 세대들은 부모 세대와 달리 어릴 때부터 비교적 부유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고가품에 대해 상대적으로 무감각했고 실제로 보석 소비에 대한 지출액도 낮았다. 일본인들은 더 이상 힘들었던 젊은 날을 보상받는 심정으로 보석을 사거나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본의 사회적 분위기 자체가 티파니의 블루 박스에 지갑을 열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 부분 최적화보다는 전체 최적화
티파니가 일본의 경제 상황과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를 막을 순 없다. 그렇다고 해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상황에서 티파니는 제품 라인을 확장한다. 하지만 딜레마가 있다. 은제품 등 저가의 신제품들을 선보이는 것이 오히려 고급스러운 티파니의 브랜드 이미지를 훼손시키진 않을까?
1999년에 일본에서 티파니는 다양한 고객층을 끌어들이기 위해 새로운 제품들을 소개했는데, 대다수가 100달러(11만 원) 이하의 저가 제품이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약혼 보석류는 신제품 도입에 힘입어 소폭 성장했지만, 은제품 카테고리는 약세를 지속한 것이다. 불가리(Bulgari)나 까르띠에 등 경쟁사의 신제품 매출 비중이 20%가량인 데 반해 티파니의 신제품 매출 비중은 10% 수준에 불과했다. 신제품 판매가 저조한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티파니의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타격을 받은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은제품 카테고리는 일본에서만 부진했을 뿐 다른 지역에서는 강세를 보였다. 특히 유럽에서는 전체 매출의 45%가량을 은/금제품이 차지하는 등 큰 인기를 얻었다. 따라서 신제품(특히 은제품) 도입의 실패는 일본에만 국한된 결과였다. 결국 특정 제품군의 실적 저조는 지역 특색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오히려 티파니는 다양한 제품군을 보유함으로써 글로벌 시장에서 리스크를 줄이고 시장 지위를 강화할 수 있게 된다. 다양한 지역에서 각각 다른 주력 제품을 내세우며 현지 시장의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일본이라는 부분만 놓고 본다면 무리한 시도로 보이지만, 글로벌 시장 전체를 놓고 보면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기업은 의사결정의 순간, 부분 최적화보다는 전체 최적화를 추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 나를 알고 너를 알면 가야 할 길이 보인다
저가 제품 라인 확장을 통해 사업을 성장시켰듯이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티파니는 계속해서 제품 라인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제품 라인의 확장이 손익계산서를 빛나게 할지라도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저해한다면 지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성장과 브랜드 정체성 사이에서 티파니는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할까? 이 문제를 보다 본질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티파니는 어떤 ‘업’에 종사하고 있는지, 경쟁자는 ‘누구’인지, 고객들에게 어떤 브랜드로 ‘인식’되기를 원하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티파니 공식 홈페이지를 보면 티파니는 스스로를 ‘보석상’이 아니라 ‘미국의 대표 디자인 하우스’로 정의한다. 티파니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보석 제품, 특히 반지지만 티파니는 반지ㆍ귀걸이 등 다양한 보석 제품뿐만 아니라 시계ㆍ머니클립ㆍ카드 홀더ㆍ향수ㆍ가죽제품ㆍ문구류ㆍ주방용품 등 ‘디자인’이라는 정체성 아래 광범위한 제품 라인을 선보이고 있다. 1837년 뉴욕에서 티파니 앤 영(Tiffany & Young)이라는 문구ㆍ팬시 샵으로 시작한 티파니는 1853년 티파니 앤 코(Tiffany & Co.: 현재의 티파니)로 기업명을 변경하고, 1886년에 다이아몬드 결혼반지를 도입한 이후 금제품, 은제품 생산을 시작하는 등 지속적으로 다양한 방면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왔다.
누구와 경쟁할 것인가?: 티파니의 아이덴티티와 관련해 눈여겨봐둬야 할 또 다른 포인트가 있다. 티파니는 주요 경쟁자로 보석 전문 세공업체인 드 비어스(De Beers)나 블루 나일(Blue Nile)이 아닌 까르띠에와 불가리를 꼽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까르띠에와 불가리도 티파니처럼 전문 분야를 바탕으로 다양한 상품군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왔다는 사실이다. 티파니와 그 경쟁자들은 단순히 사치품을 만드는 장인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고급스러움’과 ‘아름다움’의 가치가 고객들의 생활 전반에 녹아들 수 있기를 원한다. 프로포즈의 순간뿐만 아니라 현재 시각을 확인할 때,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점검할 때, 근사한 저녁 식사를 할 때 등 매 순간순간이 티파니로 인해, 까르띠에로 인해, 불가리로 인해 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더 우아하게 느껴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 티파니같이 럭셔리를 지향하는 브랜드가 저가 제품을 출시한다는 것은 분명 위험이 따르는 일이다. 브랜드의 정체성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업을 재정의한다면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제품 라인 확장이 가능하다. 티파니가 ‘미국의 대표 디자인 하우스’를 표방하며 럭셔리 라이프 스타일을 제공하는 것으로 업을 재정의하면 오히려 제품 라인 확장을 통해 정체성과 사업성을 동시에 강화할 수 있다. 특별한 사람만이 특정 상황에서 구입할 수 있는 브랜드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이 특별한 브랜드가 선보이는 다양한 제품들이 고객의 생활 속에 녹아들면서 고객의 라이프 스타일을 특별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저가의 제품들은 잠재 고객을 선점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구매력이 낮은 연령층의 고객들이 티파니의 럭셔리 라이프로 보다 쉽게 진입할 수 있도록 장벽을 한 단계 낮춰주기 때문이다. 이런 잠재 고객의 조기 확보는 이들의 구매력이 높아졌을 때 티파니의 타 제품군으로 소비가 쉽게 확장되도록 해준다. 이들이 제품군을 확장할수록 럭셔리 라이프스타일을 제공하는 기업이라는 정체성이 분명해질 것이고, 손익계산서도 자연스럽게 화려해질 것이다. 보석 상인이 아닌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판매자의 입장에 선다면 이런 제품들을 출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업의 재정의가 성장의 동력이다
일본에서의 티파니 암흑기는 티파니의 사업 확장과 브랜드 포지셔닝의 문제라기보다는, 1990년대 경제 버블의 붕괴와 급격한 사회 변화 등 당시 일본 경제의 특수한 상황에 더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1990년대 일본은 미국을 제외한 티파니 글로벌 매출의 약 70%를 차지하는 매머드급 시장이었지만 현재는 33% 수준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티파니의 해외 시장 진출 상황과 당시 일본 경제 전반에 가득했던 거품을 고려한다면, 현재 일본 시장이 차지하는 글로벌 매출의 비중은 하락했다기보다는 적정 수준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해외 진출 과정에서 환율이나 유통 환경 등 일본 현지 상황의 변화에 보다 효과적이고 능동적인 전략을 펼치지 못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티파니가 제품 라인 확장, 새로운 소비자층 추구 등 사업의 경계를 넘어 지속적으로 성장동력을 찾고 있다는 점은 응원할 만하다. 특히 업의 재정의를 통해 정체성을 유지하는 성장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티파니가 정체성과 사업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다면, 티파니의 주가가 다이아몬드 가격과 비슷해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다이아몬드가 영원하듯, 영원한 티파니가 되기 위해서 티파니가 앞으로 블루 박스에 무엇을 담을 것인지 기대된다.
경쟁은 기업을 강하게 만든다: 경쟁의 패러다임을 바꾼 결정들
싱가포르 항공_ 퍼스트클래스도 할인해주나요
일상이 아닌 곳에서 우리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것, 그것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이자 여행이 주는 묘미다. 보들레르의 표현처럼 목적지는 문제가 아니다. 떠날 수 있으면 그로 족하다. 여행의 철학적ㆍ본질적 의미는 그러하지만, 막상 여행을 떠나는 과정은 생각만큼 낭만적이지 않다. 예를 들어 뉴욕으로 여행을 떠난다고 상상해보자. 어딘가로 떠나는 건 분명 즐겁지만, 좁은 이코노미 클래스에서 15시간을 버티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의 기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쩌면 비행기를 즐겁게 탈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여행을 떠나는 이들의 이러한 고충을 이해한 항공사가 있다. 싱가포르 항공이다. 좌석 앞에 주문형 비디오 스크린을 최초로 설치해 비행기 안에서 고객이 무료함을 달랠 수 있도록 한 항공사가 바로 싱가포르 항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