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4.0시대의 유학 리더십
권경자 지음 | 원앤원북스
자본주의 4.0시대의 유학 리더십
권경자 지음
원앤원북스 / 2012년 12월 / 420쪽 / 15,000원
1부 공자와 맹자에게 리더십을 묻다
공자, 조화로운 세상을 꿈꾸다
공자, 사상혁명의 문을 연 철학자: 오늘날 세계는 경쟁 논리로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경쟁은 끝이 없다. 성공했나 싶다가도 또 다른 봉우리가 눈앞에 펼쳐지기에 잠깐 정상에 올랐다고 해서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수많은 실패자를 양산하는 제도다. 그래서 21세기를 진단하는 전문가들은 앞으로의 세상은 과거와 달라야 한다고, 무엇보다 서로에게 의존하고 협동하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점점 개체화되고 고립되어 1인 가정이 늘고, 각각 자신의 삶을 꾸려야 하는 사회로 바뀌고 있지만, 협동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함께’와 ‘같이’의 집단협업이 중요해졌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좌표를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점’에 세웠듯이, 인문학과 기술이라는 다른 영역이 만나 서로에게 바탕과 줄기가 되어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 것이 협업이고 인(仁)이다. 인은 나와 네가 ‘함께’하고 ‘같이’해서 하나가 되고 한마음을 이루는 것으로, 모두가 나인 것을 의미한다. 각각의 존재들이 조화를 이루어 함께함으로써 좀 더 큰 ‘나’인 ‘우리’가 되고, 우주가 되며 한마음을 이루는 것이다. 21세기가 ‘함께’와 ‘같이’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그것이 상처로 얼룩진 세상을 통합하는 힘이 될 수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공자의 핵심 테제, 인: 공자는 인(仁)을 모든 덕을 통합하는 도덕적 가치이자 생명을 뜻하는 철학적 개념으로 격상시켰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인’ 해야 하는 것이다. 인 할 때 사람을 좋아할 수도 미워할 수도 있으며, 올바르고 진정성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럴 때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도 세워주고, 자기가 통달하고자 하면 남도 통달하도록 한다. 이것이 경쟁이 아닌 협업이고, 닫힌 마음이 아닌 열린 마음이며, 미움이 아닌 공감으로 상대방을 대하는 능력이다. 인 해야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은 남에게 하지 않으며, 남을 자기처럼 여기고, 나와 너를 하나로 여기는 실천적 행위 또한 가능해진다. 공자는 리더, 윗사람, 군자라면 이러해야 한다고 여겼다. ‘나’라는 닫힌 존재가 아닌, 조직이 곧 나인 열린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의 리더다.
인이 처음 등장한 경전은 『서경』이다. 주나라를 세운 지 3년이 되는 해에 무왕이 병에 걸리자 주공은 선조들에게 무왕 대신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기도한다. 왜냐하면 혁명으로 세운 나라이기에 무왕의 병은 자칫 혁명을 실패로 끝낼 수 있는 위기였기 때문이다. 형과의 하나 됨, 주나라와 자신을 하나로 여긴 주공에게서 인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인은 ‘몸 나’를 벗어난 ‘참 나’이며 ‘우리’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몸에 한정해서 생각해보면 사람은 각각의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주어진 성(性)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존재가 나이며 하나다. 공자가 안연에게 “사사로운 자기를 극복해 예를 회복하는 것”을 인이라고 한 것은 ‘몸 나’를 넘어 ‘참 나’로 돌아옴이 세계의 질서이며 조화인 예(禮)가 회복될 수 있는 길이고, 천하를 인 하게 하는 길임을 말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인은 리더가 실천하고 걸어야 할 구체적 강령인 것이다.
수신, 리더의 첫걸음이다: 일반 종교와 달리 유학은 스스로의 노력과 실천으로 누구나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통치자나 리더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성인이 될 것을 요청한다. 성인이면서 왕이라는 의미의 내성외왕(內聖外王)이 그것이고, 요와 순이 대표적 모델이다. 요와 순은 수양으로는 성인이었고, 직위로는 통치자였으며, 가장 높으면서도 가장 낮은 삶까지 헤아려 천하를 안정시킨 인물이다. 이 때문에 유학에서는 특히 리더의 수신을 강조하고 있다.
수신의 리더는 자신의 가(家)를 조화롭게 하며, 나라를 다스리고 더 나아가 천하를 고르고 평화롭게 할 수 있는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수신은 자신을 닦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그 힘은 천하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공자는 이처럼 자기의 수양을 위해 공부하는 것을 위기(爲己)라고 했다. 반면에 남에게 보이기 위한 공부, 즉 남의 눈을 의식하고 과시하며 높아지려고 애쓰는 공부를 위인(爲人)이라고 해서 구분 지었다. 오늘날 스펙에만 치중하고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고자 노력하는 것이 바로 위인인 것이다. 시대를 거스를 수는 없지만, 만일 리더가 위인에 치중할 경우 그 조직은 갈라지고 흩어져 자멸한다는 점에서 리더의 수신은 매우 중요하다.
맹자, 왕도경영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왕도 리더십, 이것이 리더의 길이다: 맹자가 세상을 다니며 군주들을 설득하고 강조한 것은 왕도(王道)였다. 왕도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삶을 보장해주는 것으로, 제때 먹고 제대로 입으며 가족이 함께 거주하는 편안한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특히 백성들이 부역과 군역에 끌려다니지 않아 농사철을 어기지 않는 것, 제철에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이 왕도의 출발이다.
그럴 경우 곡식이 남아돌고, 연못에 그물눈이 촘촘한 그물을 넣지 않으면 어린 물고기가 성장할 수 있어 항상 물고기가 가득하다. 함부로 나무를 베지 않고 합당한 때에 나무를 베면 목재가 그득하게 되어 살아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에게도 넉넉하게 마음을 쓰게 된다. 그러면 천하의 벼슬하는 자와 현자, 농민과 기술자, 상인과 백성, 여행자들까지 몰려오게 된다는 것이다. 당시 군주들이 그토록 바라던 부국강병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왕도는 백성들이 삶의 자연스러운 모습대로 살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위와 아래, 통치자와 백성, 지배자와 피지배자는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산다. 그로 인해 단절되어 있거나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그런가 하면 지배자는 피지배자를 착취하고, 피지배자는 두려워하면서도 속이려 든다. 그들은 서로를 무시하고 경멸하며 기회만 되면 공격한다. 이러한 관계에는 진정성도 믿음도 신뢰도 없다. 다만 꼼수와 계산만 있을 뿐이다.
맹자가 가장 많이 만난 왕은 제선왕(齊宣王)이었다. 제선왕은 맹자의 왕도 정치보다는 춘추시대의 패자였던 제환공과 진문공의 업적에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맹자는 제선왕에게 패도(覇道)가 아닌 왕도를 이야기하며, 그도 왕도를 펼칠 수 있음을 설득했다. 덧붙이면 맹자는 흔종(?鍾, 새로 종을 만들 때 소를 잡아 그 피를 종에 바르고 제사 지냄을 이름)을 위해 끌려가는 소를 불쌍히 여겨서 풀어주라고 한 제선왕 자신의 일화를 상기시키면서, 왕이 소에게 가졌던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백성들에게까지 넓힐 것을 설득했다. 그것이 왕도인 것이다. 현실에 적용하기에 너무 이상적이라는 왕도는 이처럼 매우 현실적인 것이다.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은 상대방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여겨 상대방의 불편을 헤아려주는 것이다.
2009년 기준 전 세계 기아 인구가 10억 명을 넘어섰다. 오늘날 애완동물 산업이 급성장하는 가운데, 굶어 죽은 사람들이 지구 인구의 1/7이나 되는 기현상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멀리 갈 것도 없이 거리에서 줄을 서서 밥차를 기다리는 노인들과 방학이 되면 끼니를 거르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현실을 접할 수 있다. 이를 맹자는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해 동물에게 베푼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넓힐 것을 주장한 것이다. 그 마음을 넓히면 깃털 하나를 들고 한 수레의 땔감을 보는 것처럼 쉽게 사람들의 필요를 볼 수 있고, 삶을 살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맹자의 왕도정치는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하다. 통치자와 백성의 상호신뢰가 우선인 것이다. 그럴 때 리더의 말이 값을 하고, 백성들은 충실한 삶을 살 수 있다. 천하의 뛰어난 인재들과 경영자와 여행객들이 찾아오는 이유다. 오늘날 리더들이 맹자의 마음을 갖게 되면, 맹자가 외친 인의의 길을 갈 수 있고, 왕도에 귀 기울일 때 켜켜로 쌓인 갈등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2부 통치자의 리더십, 리더의 모범답안을 제시한다
요임금, 문명의 불을 놓다
겸양의 리더십, 받드는 것은 기본이다: 흔히 통치자가 지녀야 할 덕목으로 카리스마를 든다. 지난 역사는 카리스마적 리더의 역할이 컸다. 특히 변환의 고비에서 역사의 틀과 패러다임을 바꾼 존재는 카리스마적인 리더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카리스마적 리더 중에는 목적을 이룬 후 막강한 권력과 힘으로 독재를 해, 구성원의 마음을 잃고 권력도 잃게 된 경우가 많다.
이와 달리 미래에 대한 뚜렷한 비전으로 조직에 꿈과 희망을 주고, 겸양과 신뢰로 중심을 잃지 않은 통치자는 역사에 성왕(聖王)으로 기록되었다. 성왕들은 구성원들이 최상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해 조화로운 세계를 영위했는데, 바로 요임금이 그랬다. 백성을 향한 열린 마음과 한결같은 경건함, 겸양과 배려의 진정성은 신뢰를 낳았고 문명세계를 여는 힘이 되었다.
요임금이 통치의 핵심으로 삼은 것은 ‘중(中)’이었다. 중은 ‘중간’ 혹은 ‘무엇과 무엇의 가운데’를 의미하면서 합당함과 적합함,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과 형평성, 사(私)가 아닌 공(公), 마땅함의 의(義ㆍ宜)를 의미한다. 리더가 중을 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사로운 마음과 편견이 없어야 하고 귀가 열려 있어야 한다. 그것이 중을 행할 수 있는 기본요건이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언제나 모자라거나 지나치기 쉽다. 그 때문에 중을 행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요임금은 중을 천하를 선양(禪讓)하는 요체로 삼았다. 백성들은 그렇다 해도 통치자는 중을 통치의 중심에 두어야 중에 합당한 세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윤집궐중(允執厥中), “진실로 그 중(中)을 잡아라.”가 그것이다. 요임금은 이 네 글자를 통치의 핵심이며 기본정신으로 제시했다. 중으로 통치한다는 것은 공(公)의 입장에서 바름을 펼치고 인을 행하는 것이다. 그를 통해 백관과 백성들의 마음과 신뢰를 얻게 되고 나라가 다스려진다. 공자가 요임금에 대해 감탄했던 것도 바로 적합하고 알맞은 중의 통치를 감탄한 것이다. 이것이 요임금이었다. 경건함과 밝음, 교양과 사려, 편안함과 안락함, 공손과 겸손함으로 중을 행했기에 백성들을 인으로 거느릴 수 있었고, 가장 위에 있었지만 가장 아래에까지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문명의 길이 되었다. 이후 중은 요임금의 통치철학이자 선양의 핵심이며 유학의 중심사상이 되었다.
순임금, 최고의 팔로워에서 위대한 리더로
요임금이 순을 발탁한 것은 위대한 미션이었다. 순은 서른 살에 요임금의 부름을 받은 후 28년간 섭정을 통해 후계자 교육을 받았으며, 요임금 사후 삼년상을 지낸 후 제위에 올랐다. 그는 섭정 기간 동안 백성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윤리적 바탕을 만드는 것부터 행정과 외교능력의 배양, 위기극복 능력까지 수성을 위한 교육을 전 영역에 걸쳐 받았다. 최고의 팔로워였던 순은 요임금의 이상을 잇는 최고의 인물이 되었고, 유학의 이상인 대동사회를 펼칠 수 있었다.
덕의 리더십, 세상을 바꾸는 힘이다!: 순의 칭호는 중화(重華)다. ‘거듭 빛내다’라는 의미인 중화는 요임금이 문명을 일으켰다면, 순은 그 업적을 빛냄으로써 백성의 삶을 더욱 탄탄하게 했음을 의미한다. 순은 덕이 깊었다. ‘마음이 곧게 발휘되는 능력’인 덕은 마음의 뿌리인 성(性)이 왜곡되지 않고 곧게 발현되어 남에게 미치는 능력이다. 덕을 베푼다는 것은 모든 존재를 하늘로 여기고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것이 신뢰를 낳고 조직의 비전을 이루게 한다는 점에서 덕이 있는 리더가 조직의 수장이 될 때, 최악의 상황에서도 놀라운 힘을 발휘해 임무를 완수할 수 있게 된다.
특히 덕의 리더는 일에 앞서 명철하게 판단하고, 일을 할 때는 문채가 나고 분명하며, 사람을 대하는 자세는 온화하고 공손하며 성실하고 독실하다. 이것을 갖춘 사람이 바로 순이었다. 그래서 순의 열악한 신분과 환경도 천자가 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았고, 요임금 사후에 백성은 물론 벼슬아치와 덕을 찬양하는 모든 자들이 순을 따랐던 것이다. 맹자는 순의 궁핍한 환경을 하늘이 위대한 인물을 내기 위한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하늘이 큰 인물을 낼 때는 먼저 그 뜻을 고달프게 하고, 근육과 뼈를 고통스럽게 하며 피부를 굶주리게 하고, 몸을 궁핍하게 해 단련시킨다는 것이다.
오늘날 자신의 조건과 환경을 탓하며 한탄과 분노로 세월을 보내는 젊음이 있는가 하면, 더 나은 스펙을 갖추기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젊음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덕의 여부다. 덕은 본래 자신 안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덕을 밝혀서 확고히 하면(명명덕, 明明德) 절로 남에게 베풀어져 하나가 될 수 있으며(친민, 親民), 그를 통해 세상이 하나가 될 수 있다(지어지선, 止於至善). 세상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사람들이 바라고 추구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덕은 상대방의 마음을 열고 일을 성취하며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능력인 것이다. 즉 덕은 각종 위험과 불신, 미움과 갈등이 가득한 세상을 편안하고 넉넉하게 하는 따뜻한 리더십이며 상대방을 자신에게로 이끄는 힘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지도자가 갖춰야 할 첫 번째 능력을 덕으로 여겼고, 덕의 여부를 리더십과 연결하고 있다. 덕 있는 자는 귀가 크다는 특징이 있다. 그들의 열린 귀는 들리지 않는 소리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헤아려, 어느 누구도 억울하거나 소외되지 않도록 한다. 순임금은 더 나아가 백성들에게 묻기를 좋아하고, 백성들의 단순하고 의미 없는 말까지도 잘 살폈으며, 남의 치부는 감추고 그들의 좋은 점을 드러냄으로써, 그들을 자신과 동일시했다. 그리고 그러한 임금의 모습은 백성들의 마음을 얻고 하나 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백성들이 주인이고 하늘이며 나인 세상을 만든 것이다. 그것이 무위이치(無爲而治)의 정치를 할 수 있는 힘이다.
3부 재상의 리더십, 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한다
고요, 리더십의 틀을 세우다
순임금의 통치를 이상사회라고 하는 것은 대신들과 대화하며 자신을 성찰하는 임금이 있었고, 임금에게 쓴소리를 하는 대신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순임금은 오늘날의 국무총리에 해당되는 백규와 농사, 교육, 형벌, 공업, 환경 등 국가운영에 필요한 22명을 선택해 그들에게 ‘하늘의 일’을 밝히도록 했다. 그리고 수시로 그들과 대화하고, 그들과 대화한 것을 정사에 반영했다. 바로 ‘그 사람’들이 있었기에 이상사회가 가능했던 것이다. 어떤 곳이건, 무슨 일이건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그 사람’이다. 공자도 맹자도 순자도 한결같이 ‘그 사람’을 강조했다. “그 사람이 있으면 정사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는 ‘그 사람’이 중요하다. 정치는 불특정 다수의 온갖 사람들의 삶을 살피는 자리다. 그 때문에 자리에 합당한 ‘그 사람’을 제대로 쓸 때 신뢰와 소통으로 정책이 이루어진다. 세상의 혼란은 ‘그 사람’이 아닌데도 등용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순임금 당시 백규는 우(禹)였다. 우는 현장에서 살면서 산까지 덮친 거대한 물이 흐를 수 있도록 산길을 정비하고 물길을 내, 홍수에도 흔들리지 않는 인프라를 구축했다. 그로 인해 중원에서는 이후 성대한 역사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우가 치수를 통해 국가 통치의 하드웨어를 마련했다면, 형법을 관장하는 사사(士師)인 고요는 국가의 안정과 조화, 통치의 중심에서 백성들을 덕으로 감화해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마련했다. 법을 담당했지만 그가 추구한 것은 형벌 없는 삶이었는데, 그는 죄의 경중(輕重)에 따른 다섯 가지 형벌인 오형(五刑)을 밝혀서, 백성들이 사람다움의 품격인 오품(五品)에 맞는 삶을 살도록 했다. 즉 중도(中道)에 맞는 삶을 통해 형벌이 필요 없도록 한 것이다.
통치의 근본을 세우다: 고요가 바란 범죄와 형벌 없는 나라는 바른 통치를 통해 통치자와 백성들이 서로 소통하고 믿으며, 제 역할을 할 때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런 나라는 통치자만 애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요, 백성 중 몇몇이 올바르게 산다고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통치자의 진정성과 신뢰, 백성들의 안정된 삶과 믿음이 조화를 이룰 때 가능한 것이다. 이를 위해 고요 또한 순임금에게 덕과 관용의 통치를 요청했다. 상벌을 알맞게 시행하되, 벌은 죄를 지은 자에게 한정시키고, 상은 대대로 이어지도록 하며, 고의와 실수를 구별해 벌을 주고, 죽이기보다는 살리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