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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변화시킨 리더들의 힘

무굴 판댜, 로비 셸 지음 | 럭스미디어
세상을 변화시킨 리더들의 힘

무굴 판댜, 로비 셸 지음

럭스미디어 / 2012년 6월 / 340쪽 / 16,000원



리더십과 기업 문화



메리 케이 애시

도전과 위기_ 영업사원 수천 명에게 동기를 부여하다: 메리 케이 애시의 아들이면서 후계자인 리처드 로저스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대부분 기업의 경우 자사 제품을 더 많이 팔기 위해 영업 조직을 이용하지만, 메리케이에서는 뛰어난 영업 조직을 충분히 활용하기 위해 제품을 만들고 있다."

메리케이의 전설적인 영업 조직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 예다. 1963년 메리 케이 애시가 가정 방문 영업이라는 방식을 앞세워 창업한 이래 이 회사는 현재 30개국에서 110만 명에 이르는 영업 대리인들이 일하고 있다. 매년 여름이 되면 이들 중 수천 명의 스타급 영업인들이 댈러스에 모여 3박 4일간 합숙하며 세일즈 세미나를 여는데, 이 모임에서 이미 고인이 된 창업자를 기리는 행사뿐 아니라 최신 세일즈 기법과 경험을 공유하는 액션 러닝이 이루어진다. 이 행사의 절정은 마지막 날 밤 최고의 실적을 올린 영업인들을 발표하는 순간이다. 뽑힌 사람에게는 모피, 특급 패키지여행, 다이아몬드, 핑크색 캐딜락 등의 상이 주어진다. 나아가 이들은 회사로부터 인정받고, 동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게 된다.

중년의 나이 45세에 겨우 5천 달러의 적금 통장을 가지고 시작한 메리 케이 애시는, 과연 어떻게 30년이 넘는 긴 시간에 걸쳐 대부분 가난하고 취업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보잘것없는 여성들로 하여금 세일즈 퀸으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했을까? 이 회사에서는 동기 부여를 위해 보너스, 스톡옵션 또는 금전적 보상을 쓰지 않았다. 비밀은 바로 영업 대리인으로 일하는 여성들에게 마치 스스로 연예인이 된 것처럼 느끼게 했고, 작고 큰 선물을 비롯하여 그들이 마음껏 메리케이 화장품을 팔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데 있다. 실제로 그의 자서전에서 메리 케이 애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메리케이에서는 칭찬하는 문화가 곧 칭찬받는 이로 하여금 성공하게 만든다. 이 점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마케팅 전략의 출발점이다."

아울러 대부분의 여성들이 학교 졸업식 이후 아낌없는 칭찬을 들어본 기억이 거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서 인정받고, 스스로 가치를 느끼는 것이 돈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여성이 대다수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메리 케이 애시는 일찍부터 이 점을 깨달았다고 한다. 1964년 창업하던 해 댈러스의 어느 창고에서 처음 연 세일즈 세미나에서 2백 명의 영업인들에게 젤라틴 샐러드와 가정식으로 구운 닭고기를 대접했다.

2년 후 같은 모임에서는 월 기준 1천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린 영업인에게 금을 입힌 술잔을 선물했다. 또 여러 계단에 온갖 크기와 색깔 보석을 심어 넣을 수 있는 금 브로치를 만들어 '성공의 사다리'라고 이름 지었다. 영업인들이 한 단계씩 성취도를 높여갈 때마다 이 사다리는 더 한층 빛났다. 그리고 1968년에 이르러서는 최고의 경지를 돌파한 영업인들에게 상징성을 살려 말벌 모양의 다이아몬드 핀을 선물했다. 이 핀은 훈장과도 같아서 회사 내 누구나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기념 선물이 리본 모양이든, 별 모양이든, 빨간색 재킷이든, 최고급 명품 브랜드 드레스이든, 사보에서 큼직한 사진과 함께 특집기사에 나오는 것이든, 다른 이름의 상이든 이런 것들이 아니었다. 메리 케이 애시의 대저택에 초대받는 영광도 아니었고, 영업 실적 돌파를 축하하는 회장의 자필 축하 메시지도 아니었다. "그런 것들은 단지 상징일 뿐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작은 성취라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열정과 사랑을 가지고 서로 격려하고 축하해줍니다. 이것이 쌓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큰 성과를 이루게 됩니다." 메리 케이 애시의 말이다.

아들이자 후계자인 리처드 로저스에 따르면, 1980년대에 이르러 메리 케이 애시는 '다른 사람들을 리더로 키우는 사람이 리더'라는 철학에 기초한 세일즈 왕국을 일구어냈다. 이와 같은 경영 철학을 뒷받침하는 인사 제도와 프로세스는 매우 정교한데, 개별적인 경력 관리에 초점을 맞추어 실적에 따라 점차 더 큰 책임과 권한을 부여했다. 회사 역사상 3백 명밖에 오르지 못한 전국 총괄 세일즈 임원 자리는 그 사다리의 최고점이었다. 아울러 메리 케이 애시는 끝없는 성취를 요구했다. 더 많은 신규 영업인을 모집하고, 더 높은 매출을 달성하고, 다음번 승진을 위해 매진하라는 식이었다. 서로 격려해주고 칭찬해주라는 메시지를 넘어 서로의 장점을 배우기 위해 노력하라는 주문을 했다.

기업 공개를 한 지 17년 만인 1985년 메리케이는 자사 상장 주식을 모두 매입하는 형식으로 전격 비공개 기업으로 되돌아가는 결정을 내린다. 같은 해 메리케이는 기업 이미지를 혁신하는 결정을 내리고 회사의 가장 소중한 고객, 다름 아닌 영업 조직에 역량을 집중한다. 메리 케이 애시는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누굴 만나든 나는 그 사람이 말을 하지 않아도 '나는 소중한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것을 느낍니다."

리더십 교훈_ 누구든지 톱에 오를 수 있고 보스가 없는 조직 문화: 메리 케이 애시의 천재성은 독특하고 결정적인 제품을 만든 데 있지 않고, 메리케이 제품을 소화할 수 있는 두 가지 차원의 시장(자기 일처럼 마케팅과 영업을 자원한 뷰티 컨설턴트 조직과 이들로부터 제품을 구입하는 수억 명의 소비자들)을 개척한 점에 있다.

1963년 창업했을 때, 메리 케이 애시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별다른 교육을 받지 못한 대부분의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일 뿐만 아니라 직업 세계가 아닌 가정을 꾸리는 데서 스스로 가치를 찾도록 훈련받고 자랐음을 알고 있었다. 애시가 이들에게 제시한 길은 또 다른 길, 즉 파트타임으로 자유로운 시간에, 아이들이 학교에 간 사이 틈틈이 일하면서도 성과에 따라 장래를 설계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들 가운데 화장품을 팔고 더 많은 뷰티 컨설턴트를 키운 이들은 대기업 전문 경영인들 못잖은 수입을 올리기도 한다. 어느 신문에서는 메리케이에 대해 '여성들에게 보이지 않는 승진의 천장도 없고, 굽실거려야 하는 보스도 없는' 최고의 기회를 제공하는 기업이라고 평한 바 있다.

2001년 애시 회장이 눈을 감았을 때, 전 세계 곳곳에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조문이 밀려왔다. 21년간 메리케이 제품을 팔아 총 250만 달러의 수입과 열세 대의 핑크색 캐딜락을 상으로 받은 안젤라 스토커(Angela Stoker)는 애시 회장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회장님은 여자를 깊게 이해한 분이었습니다. 회장님은 여성들도 가정과 가족을 유지하면서 직업을 갖고 지역 사회에 참여하여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회사를 세우고 키운 분입니다." 메리케이의 성공은 포부와 열망으로 일하는 뷰티 컨설턴트들과 그들로부터 메리케이 제품을 구입하는 소비자들의 니즈가 메리 케이 애시라는 뿌리 깊은 리더에 의해 잘 빚어진 결과다. 애시 회장은 사업을 통해 많은 이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직업을 만들었고, 그들로 하여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화장품을 제공했다. 자서전에서 애시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여성들을 돕고 싶은 마음에서 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여성들로 하여금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는 용기를 주고, 스스로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말입니다."

보이지 않는 시장을 뚫어본 비전



테드 터너

도전과 위기_ 변화 속에서 큰 그림을 놓치지 않다: CNN을 비롯한 미디어 제국을 일군 테드 터너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선례라는 본보기가 없었던 때, 나는 모든 걸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 누구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나는 용감히 나아갔습니다." 테드 터너는 남들이 미친 짓이라고 쳐다보지도 않던 아이디어를 가지고 케이블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미디어 제국을 건설한 인물이다. 미래에는 인공위성을 통해 프로그램을 배급하는 케이블 텔레비전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자신의 직관을 어떻게 사업 기회로 연결할 것인지 테드 터너는 고민을 거듭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 어디에도 청사진은 없었고, 따라서 무엇이 성공이고 실패인지 가늠해보거나 비교해볼 대상이 없었습니다."

테드 터너 미디어 제국 건설의 첫발은 1970년 그가 인수한 애틀랜타 소재의 UHF 채널 17이었다. 당시 빈사 상태에서 겨우 연명하던 텔레비전 방송국을 사들인 테드 터너의 결정은 업계 사람들로부터 말도 안 되는 바가지를 쓴 데다가 이루지도 못할 일을 벌이는 헛된 꿈이라는 평을 들었다. 그러나 그때 인수한 방송국을 토대로 터너는 텔레비전 방송업계의 기술적 변화를 등에 업고 차례차례 성공 신화를 만들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내가 CNN을 시작한 일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정작 내가 큰 성공을 이룬 것은 통신 위성을 이용하여 텔레비전 방송을 바꾼 일입니다. 러시아 과학자들이 마침 지구 상공에 정지 위성을 띄우는 기술을 개발했을 때 나는 애틀랜타에서 인수한 방송국과 관련하여 정지 위성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지를 놓고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그의 비전은 당시 상식에 비추어 무모한 일이었다. 테드 터너 소유의 채널 17을 포함해 텔레비전 방송국들은 방송 신호를 지상 중계 타워를 거쳐 멀리까지 전송하는 기술에 의존하고 있었다. 터너는 이미 중계 타워를 여러 개 확보하고 반경 40마일을 넘어 애틀랜타와 이웃한 5개 주로 방송을 내보내고 있었다. 그보다 멀리 신호를 보내기에는 기술적인 문제뿐 아니라 법적인 규제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통신 위성을 이용하면 1970년대에 우후죽순처럼 미국 전역에서 생겨나던 케이블 텔레비전 방송사에 직접 콘텐츠를 공급할 수 있었다. 애틀랜타의 소규모 방송사였던 채널 17을 미국 전역에 걸친 네트워크로 키운 후 그는 슈퍼스테이션 TBS(TBS, the Superstation)로 이름을 바꿨다.

"군용 방송을 제외하고는 내가 처음으로 인공위성을 이용한 방송 사업자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이런 결정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공중파 방송사들이 정부와 의회에 강력한 로비를 벌여 자신들의 시장 지배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에 제동을 걸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테드 터너는 예상했던 것보다 큰 리스크를 경험했다. 1979년 12월 CNN 뉴스를 실어 보내기로 했던 통신 위성이 궤도에서 이탈하여 실종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자 인공위성을 제공하기로 계약했던 RCA는 갑자기 태도를 바꿔 대체 인공위성을 마련할 수 없다고 했다. 터너는 즉시 소송을 걸어 CNN 뉴스와 경쟁 관계에 있는 NBC 방송을 자회사로 거느린 RCA 측이 의도적으로 사업을 방해하고 있다며 시정을 요구했다. 결국 소송에서 이긴 CNN은 스케줄에 맞춰 인공위성을 타고 전국 방송을 시작했다.

그러나 TBS 방송 프로그램이 전국으로 뻗어나가는 순간에도 한물간 2류 프로그램만 내보내던 케이블 방송사들은 콘텐츠에 목말라했고, HBO나 TBS 같은 방송 제작사에 의존하려 했다. 테드 터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섰다. 메이저리그 소속 애틀랜타 브레이브스(Atlanta Braves) 야구단을 1천만 달러에 인수한 그는 야구 경기 중계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했다. 안타깝게도 17경기 연속 패배를 기록하며 고전을 면하지 못하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딱하게 여긴 그가 직접 코치 역할을 자원하기까지 했다는 일화도 있다. 터너는 이렇게 말한다. "그때는 팀의 성적에 비관했던 적도 있습니다. 깊은 근심에 빠지기도 했고, 걱정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발을 빼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 순간도 들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는 마침내 1991년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면서 부진을 벗어난다. 터너는 훗날 야구뿐 아니라 농구, 아이스하키 구단까지 인수한다.

1985년 테드 터너는 MGM 영화사가 소유한 콘텐츠 전부를 15억 달러에 사들이는 결정을 내린다. 당시 업계 전문가들은 그가 바가지를 썼다고 입을 모았다. 터너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어 3천 편이 넘는 30분짜리 만화 영화 콘텐츠를 보유한 한나-바베라 카툰을 인수했다. 덕분에 단기 채무는 급격히 늘었고 터너는 일부 투자자 그룹에 경영권을 빼앗길 위기에까지 몰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터너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정신이 돌아버린' 사람이 아니면 생각하지 못할 일을 두 건이나 더 벌였다. 종일 만화 영화만 방영하는 케이블 채널(카툰 네트워크)과 흑백 영화를 비롯하여 옛날 영화만 방영하는 채널(TCM, 터너 클래식 무비)이었다. 케이블 텔레비전에 의해 수세에 몰리기 시작한 공중파 방송사들은 계속 터너를 폄하했다. 그들이 시류에 맞춰 뉴스 편성을 줄이고 오락 프로그램을 늘리는 동안 터너는 CNN 뉴스 지국을 늘리고 해외로 확장하는 데 투자했다. "내가 가진 것 전부, 아니 그 이상을 털어서 도박하는 심정이었습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1년 걸프전이 터지면서 이와 같은 투자는 빛을 발했다. 콘텐츠 확보에 끊임없이 눈을 켜고 있던 테드 터너의 의지와 한 차원 더 높은 텔레비전 뉴스를 갈망하던 시청자의 욕구가 제때 결합하여 탄생한 성공이었다. 터너는 비즈니스 리더로서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의식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나는 달려오면서 매우 바쁘게 살았습니다. 부족한 점이 있었다면 결과적으로 이겨냈다고 말해야겠지요. ……나는 전문가가 아니라 멀리 크게 보는 사업가입니다. ……만일 재무 또는 기술에 정통한 전문가였다면 나는 큰 그림을 보지 못했을 겁니다. 여러 가지 닥치는 대로 배우다 보니까 어느 순간 흩어진 점들을 연결했던 겁니다."

리더십 교훈_ 만화 영화에서 노다지를 발견하다: 테드 터너는 프로그램 편성의 귀재였다. 한물간 옛날 영화와 프로그램의 숨겨진 가치를 끄집어낸 일은 남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인공위성을 통해 미국 전역에 콘텐츠를 공급해야 했던 테드 터너로서는 이 프로그램들을 일찌감치 새로운 콘텐츠 공급원으로 점찍었다. 1970년대 TBS의 전신인 WTCG 방송을 경영할 때 그는 영화 방영권을 빌려 방송에 내보내는 업계의 관행과 반대로 생각했다. 영화 방영권을 잠시 빌리지 않고 아예 소유권을 사서 언제든 방영할 수 있게 하자는 생각이었다. 게다가 소유권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방송사에 방영권을 빌려줄 수 있는 선택도 가능했다. WTCG는 이렇게 사들인 <왈가닥 루시(I Love Lucy)>, <비버 이야기(Leave It to Beaver)>를 끊임없이 되풀이 방영했다.

그로부터 십수 년이 지나 테드 터너는 같은 전략으로 더 많은 콘텐츠를 확보한다. 1985년 그는 15억 달러에 영화사 MGM을 송두리째 샀는데, 너무 높은 가격이라는 월스트리트의 판단과 함께 정크 본드 발행을 감수하면서까지 사들인 무리한 인수였다. 그의 전략을 비웃다시피 조롱하는 많은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테드 터너는 또다시 1991년 한나-바베라 스튜디오를 사들여 30분짜리 만화 영화를 3천여 편이나 추가로 확보했다. 연거푸 인수 전쟁을 치른 TBS는 단기적으로 자금난에 봉착하지만 여기서 테드 터너는 두 가지 괴짜 아이디어를 짜낸다. 첫 번째는 종일 만화 영화만 내보내는 카툰 채널(Cartoon Network)을 새로 만드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흘러간 옛날 영화만 방송하는 터너 클래식 무비(Turner Classic Movie Channel) 채널이었다. 아이들은 같은 만화 영화를 몇 번이고 되풀이 보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24시간 만화 영화 채널과 클래식 영화 채널은 그가 사들인 콘텐츠를 현금으로 바꿔주는 역할을 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풍부한 콘텐츠는 사업의 글로벌 시대를 열었다.

사업 초창기에 테드 터너는 자신의 괴짜 성격을 앞세워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곤 했다. 1970년대 중반 WTCG 방송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광고주들을 찾아다니며 컬러TV 광고를 돋보이게 하려면 WTCG 케이블 방송에 내보내야 한다고 설득했다. 왜 공중파 방송도 아닌 케이블이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왜냐하면 우리 방송은 전부 흑백이니까 컬러로 광고를 내보내면 눈에 띄지 않겠습니까!" 이렇듯 우여곡절을 치르면서 테드 터너는 TV 시청자 수를 늘렸고, 마침내 당대 최고의 미디어 제국을 거느리는 황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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