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왕도

왕박 지음 | 시그마북스
왕도

왕박 지음

시그마북스 / 2012년 2월 / 368쪽 / 15,000원



시세(時勢)편 - 대세를 장악하는 제왕술



따뜻한 술을 앞에 두고 영웅을 논하다 : 도광양회의 제왕술

영웅은 출신에 구애받지 않는다: 유비는 어려서 집안 살림이 몹시 곤궁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아무리 힘들어도 가르침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 유비가 15세가 되자 구강 태수를 지낸 노식에게 아들의 교육을 부탁했다. 그러나 유비는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건달 같은 생활을 했다. 하지만 유비는 성질 급한 보통 건달들과는 달리 '말수가 적고 아랫사람에게 호의적이며 기쁨과 노여움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범상한 면모가 있었다. 때문에 어린 나이에도 무척 어른스러웠고 자신감, 겸손함, 포용력 등이 기질을 보여 일대의 젊은이들이 다투어 그에게로 모여들었다.



그 무렵 황건적의 반란이 일어나 의병을 모집했는데, 유비는 관우와 장비 등을 이끌고 황건적 토벌에 뛰어들어 큰 공을 세웠고, 논공행상을 통해 안희현의 현위가 되었다. 그 뒤 일시적인 충동을 못 이겨 사건을 일으킨 유비는 관직에 머물 수 없어 관우, 장비등과 함께 달아났다. 하지만 얼마 후 운이 좋아 다시 고당현의 현위에 임명되었다가, 곧이어 현령으로 승진해 지역의 최고 관원이 되었다. 그러나 고당은 곧 황건적의 침략으로 황폐해졌고, 이에 유비는 북방의 유주에 있는 동문 공손찬을 찾아갔다. 공손찬은 기쁘게 맞이하고 말과 병사를 내어주며 청주 자사 전해와 연합해 원소에 대항하도록 했다. 하지만 곧 원소가 공손찬을 쳐, 유비는 전해와 함께 동쪽으로 후퇴해 제군(齊郡)으로 가야 했다.



겸허함으로 서주를 얻다: 이 무렵 조조는 서주정벌에 나섰다. 이에 서주의 도겸은 황급히 전해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전해가 유비와 함께 지원군을 이끌고 왔다. 이 때 도겸은 유비의 기품 있는 자태와 너그러운 인품에 반해 그 자리에서 유비에게 병마 4,000을 내주었다. 그러자 유비는 그 길로 아예 전해의 곁을 떠나 서주 땅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유비는 조조의 선봉대와의 싸움에서 작은 승리를 거두어 서주의 위기를 조금이나마 완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에 도겸이 기뻐하며 유비의 공을 치하하고 서주를 맡아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유비는 사양했다. 그 뒤 여포가 연주를 습격했다는 소식에 조조의 군사가 물러가자, 도겸은 재차 유비에게 서주를 맡아달라고 청했으나 유비는 한사코 마다했고, 결국엔 유비가 인접지역인 소패에 주둔하며 서주를 보살펴 주기로 했다. 얼마 뒤, 도겸이 병으로 죽자 후계자 문제가 논의되었는데, 공융까지 나서자 유비는 못 이기는 척 서주목의 인장을 받아들었다.



교만한 명문 출신의 몰락: 원술은 유비가 서주의 주인이 되자 몹시 배가 아팠다. 그래서 원술은 유비를 공격했고, 유비는 응전에 나섰다. 마침 그때 여포가 동탁의 잔당들에 쫓겨 유비를 찾아 왔고, 유비는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하지만 유비는 여포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비는 원술을 치러 나가면서도 여포에게 동행을 청하지 않았고, 또 장비를 남겨 서주성을 지키도록 했다. 그런데 장비와 조표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고, 화가 난 조표가 여포에게 사람을 보내 자신이 내응할 테니 서주성을 치라고 종용했다. 이에 여포는 주인이 없는 틈을 타 서주성을 탈취하기 위해 출정했고, 수세에 몰린 장비는 혼란을 틈타 도망쳐 나왔다. 여포의 배신 소식을 전해들은 원술은 기뻐하며, 여포에게 사자를 보내어 유비의 뒤를 공격해 주면 많은 재물과 군량 및 말을 주겠다고 했다. 여포는 즉시 이에 응했고, 결국 유비는 싸움에 패해 후퇴했다.



그 뒤 여포가 원술에게 약속한 것을 내놓으라고 하자, 원술은 유비를 완전히 격파한 후에야 주겠다고 했다. 이에 노발대발한 여포는 직접 원술과 결판을 내려 했다. 그때 모사 진궁이 나서 "원술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섣불리 그에 맞서기보다는 차라리 유비와 화해하고 함께 원술을 치도록 하십시오."라며 말렸다. 이에 여포는 유비에게 사람을 보내 화해의 뜻을 표하고 소패에 주둔하라고 했다. 원술에게 쫓겨 오갈 데 없던 유비가 여포의 제안에 응하려 하자 관우, 장비 등이 반대했으나, 유비는 곧장 서주로 회군하여 여포와 화해했다.



서주로 돌아온 유비는 이전과는 서로의 입장이 뒤바뀌었음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했다. 사실 유비는 여포를 응징할 뜻이 없던 것이 아니라, 아직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동안 몇 차례의 위기를 겪은 유비는 정권을 지키려면 강한 군사력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어, 자신의 명망을 이용해 병사를 모집하고 군마를 사들여 얼마 안 가 다시 1만 군사를 거느리게 되었다. 이를 본 여포는 자신이 호랑이 새끼를 키우는구나 싶어 재빨리 유비를 정벌했다. 애초 여포의 상대가 되지 않았던 유비는 서주지역 밖으로 쫓겨났고, 곰곰이 생각한 끝에 수하들을 데리고 조조에게 의탁했다. 유비가 찾아오자 조조는 '인재를 예우한다'는 명성에 걸맞게 기쁘게 맞아주었다. 한편 197년 2월, 원술은 즉위식을 올린 뒤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 이 소식에 조조는 화가 치밀어 올라 유비, 여포, 손책 등과 함께 연합군을 결성한 뒤 원술 토벌에 나섰다. 결국 원술은 참패하여 남은 군사를 이끌고 회하 남쪽까지 퇴각했다.



험난하기 이를 데 없는 창업의 길: 조조는 원술을 회하로 쫓아버린 뒤, 유비를 계속해서 소패에 주둔하게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여포를 칠 계획을 세운 조조는 이를 유비에게 알리기 위해 사자를 보냈는데, 그 사자가 여포에게 잡히는 바람에 계획이 탄로 나고 말았다. 여포는 곧장 군사를 일으켜 소패성을 공격해 함락시켰고, 유비는 달아났다. 그러자 조조가 친히 공격에 나섰고, 마침내 하비성에서 여포를 사로잡아 교수형에 처했다. 그리고 조조는 유비와 함께 허도로 돌아왔다. 비록 싸움터에서 능력은 그리 훌륭하다 할 수 없었지만, 조조는 유비의 인물됨을 매우 중요시했다. 그래서 조조는 황제의 명의로 유비를 좌장군에 임명했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모습일 뿐, 실제로는 한시도 유비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유비 또한 지금껏 단 한 번도 조조의 후대를 진심으로 감사히 여기지 않았다. 그것이 단지 세상에 보여주기 위한 정치적 행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조조가 유비를 치켜세울수록, 유비는 더욱더 몸을 낮추어 행동했고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탈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마침 원술이 원소에게 의탁하고자 북상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조조가 이 문제를 놓고 골치 아파하고 있는데, 유비가 찾아와 종군을 자청했다. 당시 조조는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여러 말 없이 바로 유비의 청을 허락했다. 유비는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군마를 이끌고 서둘러 허도를 떠났다. 마침 외지에 나가 있던 조조의 책사 곽가와 정욱이 뒤늦게 유비의 출정 소식을 듣고 급히 찾아와 즉시 명령을 거둬들이라 말했다. 조조는 그제야 퍼뜩 정신이 든 듯 자기 머리를 치며 사자를 보내 유비를 뒤쫓게 했다. 그러나 이미 허도를 벗어난 유비는 조조가 보낸 사자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싸움터에서 장수는 군명도 거스를 수 있다. 더구나 이번 출정은 조승상이 명한 것이지 않느냐고 돌아가서 전하거라!" 이렇게 해서 유비는 무사히 그의 본거지인 서주로 돌아갔다.



유비가 돌아오자 진등, 손건, 미축 등의 지방 세력가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와 크게 환영해 주었다. 그리고 서주에 도착하자마자 유비는 조조가 자신을 견제하기 위해 딸려 보낸 부장 주령을 돌려보내고, 원소를 회유해 자신의 동맹군으로 끌어들였다. 얼마 후, 허도에서는 한헌제의 밀서사건이 발각되어 한바탕 난리가 일어났다. 동승과 동황후를 비롯한 가담 인물들이 조조에게 모조리 죽임을 당한 것은 물론이고, 유비가 동조했다는 사실 또한 밝혀졌다. 조조는 몹시 분노하여, 유대와 왕충을 보내 그를 정벌하게 했다. 하지만 유비는 손쉽게 조조의 군사를 격파하고, 두 장수를 사로잡았다가 다시 조조에게 돌려보냈다. 유비의 영웅본색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조조는 몸소 정벌에 나섰고, 다급해진 유비는 원소에게 조조가 없는 틈을 타 허도를 공격해 줄 것을 청했으나, 원소는 우물쭈물 군사를 일으키지 않았다. 결국 유비는 조조에게 패해 서주성을 버리고 달아났고, 원소에게로 갔다.



8년 동안 웅크리고 있다가 단숨에 승천하다: 그 뒤 원소는 관도에서 조조와 악전고투를 했다. 한편 유비는 '원소는 분명 조조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결국 또다시 달아나야겠지. 설령 원소가 이기더라도 이곳에서의 나날은 그리 편치 못할 것이야. 차라리 기회를 봐서 여길 빠져나가는 편이 낫겠군. 조조와 원소가 싸우는 동안 나는 다시 군사를 모아 힘을 키워야겠어.'라고 생각하고, 원소에게 자신이 남쪽 유표를 찾아가 함께 조조를 공격하겠다고 말했다. 원소는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허락했고, 유비는 여남으로 가서 그곳의 비적을 끌어 모아 군대를 편성하고 군량을 사들였다.



그 뒤 조조는 북방을 평정하자마자 유비를 토벌하려 했다. 유비는 안 되겠다 싶어 유표에게로 내뺐다. 유표는 유비를 신야에 주둔하게 했는데, 말하자면 그곳을 조조를 방어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삼은 셈이었다. 유표는 그 뒤로도 유비를 형주로 불러들이지 않고 계속해서 신야의 작은 성에 머물게 했다. 그 기간이 무려 8년이나 되었다. 가슴속에 큰 뜻을 품은 유비는 언제까지고 좁은 신야에 살며 만족하고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유비는 조조와 맞서 싸우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러한 때에 제갈량의 출현으로 유비는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조조가 직접 남벌에 나서자 유비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패전을 거듭했으나 적벽대전을 계기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고, 형주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파촉을 넘어 한중까지 진출해 마침내 꿈에 그리던 제왕의 터전을 일궈냈다. 드디어 도광양회하고 몸을 낮춤으로써 생존을 도모하던 유랑생활과 작별을 고하게 된 것이다.



왕도: 참을 인(忍) 자에는 칼날(刃)의 의미가 들어 있다. 오늘 귀빈 대접을 받다가도 내일 갑자기 칼을 맞게 될지도 모를 유랑생활을 하면서 유비는 어떻게 내로라하는 영웅들 틈바구니에서 끝까지 버틸 수 있었을까? 유비가 도광양회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몸을 낮추는 것은 굴욕이 아니라, 그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일 뿐이고, 끝까지 살아남아 최후의 승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했기 때문이리라.



인화(人和)편 - 화합을 조성하는 제왕술



역대 최다 인재를 거느린 한무제 : 틀에 얽매이지 않은 한무제의 인재기용술

사방에 잠복한 위기들: 젊고 혈기 왕성한 한무제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대대적인 정치개혁을 계획했다. 사가들은 한무제의 이 개혁을 '건원신정(建元新政)'이라 말한다. 그러나 당시 실질적인 황실의 주인은 젊은 한무제가 아니라 황로사상(黃老思想, 중국의 전설상의 제왕인 황제와 노자의 사상을 뜻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도가사상과 법가사상을 결합한 정치사상)에 심취한 태황태후 두씨를 필두로 하는 황친 귀족들이었는데, 이들은 강렬한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태황태후는 한무제에게 신정을 폐하라고 했다. 하지만 무제는 거절했고, 오히려 그의 스승인 조관의 진언을 받아들여 이제 정사에 관해서는 더 이상 '동궁(태왕태후를 말함)'에 보고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에 분노한 두태후는 사람을 시켜 조관을 규찰해 있지도 않은 탐욕죄를 뒤집어 씌워 옥에 가두고 핍박했다. 결국 무력한 한무제는 자신의 스승을 구해내지 못했고, 강요에 못 이긴 조관은 옥에서 자살하고 말았다. 이것으로 만족하지 못한 두태후가 신정을 지지한 관원을 모조리 파면하자, 거창했던 개혁의 기세도 순식간에 꺾이고 말았다. 그 뒤 건원 6년, 태황태후가 죽자 마침내 한무제는 전면적인 개혁을 실시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원광(元光)결책'이다. 여기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한무제가 일개 평민 출신의 학자인 동중서라는 자가 수립한 정치사상을 전격 수용해 이를 바탕으로 중대 개혁을 실시해 나갔다는 것이다.



운이 나쁜 어느 늙은이와 한 행운아의 시대: 사람들은 자신의 운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해서 사회를 탓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무제는 불공정한 인사체제가 재능은 있어도 기회를 만나지 못하는 비극을 낳는 것이라 여겼고, 그래서 인재선발제도를 개혁하기로 하고, 출신과 가문을 따지지 않고 "어질고 현명하여 바른 말을 하고 간언을 꺼리지 않는 자를 천거하라"는 새로운 기준을 선포하고, 제도화된 인재추천제도를 수립했다. 이 제도를 통해 재능과 높은 덕을 갖춘 많은 말단관리와 평민이 천거되어 중앙관리로 임명되었는데, 이런 시류에 편승해 중앙정계에 진출한 뒤 작게는 서한의 치국책에서 크게는 중국의 민족성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 있다. 바로 동중서다.



현량의 자격으로 한무제를 만난 동중서는 한무제가 세 번 연이어 묻는 말에 세 번 연달아 대책을 내놓았는데, 그 중심의제가 하늘과 사람의 관계라 하여 '천인삼책(天人三策)'이라 불렀다. 천인삼책에서 후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 중 하나는 "백가를 배척하고 유가만을 중시하자"는 주장으로, 사람들에게 유가의 정치사상을 주류 의식으로 주입하자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시험을 통한 문관선발제도를 수립해 평민 유생에게도 정치참여의 길을 열어주자는 것이었다. 세 번째는 제왕이 하늘의 뜻에 어긋나는 정치를 펼치면 하늘은 재해나 변괴를 보여주어 제왕이 함부로 권위를 내세우는 일을 막아준다는 것이었다. 천인삼책을 읽는 동안 한무제는 감탄을 연발했고 대부분의 제안을 수용했다.



기원전 106년, 무제가 현자기용 조칙을 반포했다. 이때 전국 각지에서 선발된 각양각색의 인재들은 한무제를 도와 중앙집권제도를 수립하고 시행하는 데 공을 세웠다. 정치 분야에서 한무제는 주부언이 제안한 추은령을 추진했는데, 이는 제후왕으로 하여금 장자 외의 아들에게도 영토를 나눠주도록 규정해, 제후국의 영토는 갈수록 작아지고, 상대적으로 중앙의 힘은 더욱 강대해지도록 한 조치였다. 군사 분야에서는 흉노의 소왕이었으나 싸움에 패해 항복한 조신을 임용하고, 흉노의 종마를 들여오는 등 말 사육을 적극 장려했다. 그 결과 한나라는 전투마의 열세를 극복하게 되었다. 경제 분야에서는 관직을 사서 정계에 발을 들인 상홍양을 중용해 재정을 정비했다. 아울러 소금과 철의 전매제를 실시하고 개인이 돈을 주조하는 행위를 전면 금지한 데 이어, 수리시설을 확충하는 등 농업발전에도 힘썼다.



노비 장군 위청 / 기마부대로 흉노를 무찌르다: 평양후 조수의 집에 여종이 하나 있었는데, 남편의 성이 위라 모두가 그녀를 위온(위씨 어멈이라는 뜻)이라 불렀다. 후에 남편이 죽자 위온은 평양후의 관저에서 일하던 정계와 사통하여 위청을 낳았다. 위온은 위청을 정계의 집에 보냈고, 그곳에서 위청은 노비와 다름없는 대우를 받았다. 그 뒤 힘이 매우 센 젊은이로 자라난 위청은 더 이상 정계의 집안에서 모욕을 참으며 지내지 않기로 마음먹고, 어머니 곁으로 돌아가 평양후 집의 경비를 맡았다.



이 무렵, 한무제의 누나인 양신장 공주가 평양후 집에 시집와 있었는데, 위청은 그녀의 기노가 되어 출행 때마다 말을 타고 호위를 맡았다. 생활환경이 조금 나아진 위청은 틈틈이 독학으로 학문과 예의범절도 조금씩 익혔다. 그러던 중에 기원전 139년, 위청의 누나 위자부가 입궁하여 한무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게 되자, 위청도 궁으로 불려 들어가 건장궁에서 일을 하다가 후에 한무제의 눈에 들어 중용되었다. 기원전 129년, 흉노가 한나라의 영토를 짓밟고 약탈을 자행하자, 한무제는 거기(車騎)장군 위청을 상곡으로 급파했다. 위청은 첫 출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용성을 함락시켰다.



승전 소식을 듣고 기뻐한 한무제는 위청을 관내후에 봉했다. 한나라 군사가 몇 차례나 타격을 입혔음에도, 흉노의 침략행위는 그칠 줄 몰랐다. 이에 기원전 119년, 흉노의 주력을 궤멸하기 위해 한무제는 '막북 대전'을 일으켰다. 이때 위청의 외조카 곽거병은 흉노의 주력군을 급습해 7만이 넘는 적군을 섬멸했다. 같은 기간 위청도 기병대로 적의 후방을 기습해 아무런 방비도 없던 흉노군의 수장 선우는 달아났고, 남은 흉노군도 수장이 달아났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다. 이 대전으로 인해 흉노의 주력부대는 회복할 수 없는 손상을 입어 다시는 한나라에 대규모의 침공을 할 수 없을 만큼 약해졌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