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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바닥에서 일어선 구인 열전

마성만 지음 | 지상사


고수, 바닥에서 일어선 구인 열전

마성만 지음

지상사 / 2011년 12월 / 264쪽 / 14,000원



김학구 대표_ 실패를 정복한 진정한 성공의 고수




당신은 100억(億)의 카페(Cafe)를 아시나요?: 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동 618-11번지, 바로 그곳에 '100억 카페'가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1년 365일 언제나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한 사람이 있다. 그곳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실패를 극복하고 성공하는 비법'을 일러주는 사람이며, '인생의 참다운 가치'를 일깨워주는 도인이자 그 카페의 주인장인 김학구 대표다. 김 대표는 또한 맨손으로 시작해서 현재 100억 원이 넘는 부를 일궈낸 입지전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카페 직원들 모두가 각각의 손님들을 100억 원을 가진 회장님처럼 극진히 대접하고 모신다. 그런 이유로 카페의 상호가 '100억 카페'가 된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 하나는 그곳에 일반인들이 현금 100억 원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도록 '현금으로 100억을 쌓아놓은 금고'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많은 양상군자(梁上君子)님들께서는 현금 100억이란 단어가 비록 귀를 솔깃하더라도 무모한 시도는 하지 말아주시기 바란다. 그 공간은 카페를 찾는 모든 사람들이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주인장인 김 대표가 만든 가상 체험 장소이기 때문이다.



부자가 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자네가 부자가 되고 싶으면 부자와 친해지면 되네!" "네~ 예?" "자네가 장사를 하려면 장사하는 사람과 친해지면 되고, 사업을 하려면 사업을 하는 사람과 친해지면 되는 걸세……, 더 큰 부자가 되고 싶으면 더 큰 부자를 만나면 된다는 말이지! 허~허~허~" 나는 한동안 무언가에 홀린 듯 어안이 벙벙해져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동안 내가 즐겨 읽어왔던 무협지에서나 나올 법한 엄청난 내공을 지닌 고수를 만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김 대표가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 언어는 함축적이되, 상대방의 의중을 파고들어 핵심을 찌르는 답이었기 때문이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를 잘 다뤄야 하네. 그건 바로 은행과 세금, 그리고 부동산에 관한 것들이지. 내가 가진 돈을 저축하고 또 필요할 때 빌릴 수도 있는 은행과 친해져야 하고, 그 다음으로는 내가 내야 할 세금 문제를 잘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일세. 그건 세금을 한 푼도 안 내고 회피하는 방법을 찾으라는 말이 아니야. 당연히 내야만 하는 세금도 그 시기나 절차에 따라 정상적인 절세나 감세의 길이 있으니, 그걸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말라는 것이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동산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투자를 잘 해야만 한다는 것이네."



나의 꿈은 사업가: 전형적인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김 대표는 집안에서 농사일을 도우며 어린 시절을 보낸다. 매일매일 지게를 진 채 땔감을 마련하기 위해 나무를 베어 나르고, 집에서 키우던 두 마리 소를 위해 꼴을 베어야만 하는 힘든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일의 무게가 커지면 커질수록 김 대표의 꿈도 더욱 커지고, 그의 눈은 더욱 먼 곳을 향하게 된다. 당시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엄격한 자녀 교육 덕분에 노동의 참 가치를 일찍 깨우친 김 대표는 조직에 얽매이고 같은 일과가 되풀이되는 직장생활보다는 자신이 노력하고 일한 만큼의 대가를 얻을 수 있는 사업가의 길을 택한다.



34가지 직업으로 나를 만들다: 김학구 대표는 자신의 사업을 구체적으로 구상하고 미래를 계획하기 위해 영업의 세계에 첫발을 들여놓는다. 영업사원만 70~80명이 근무하는 제법 규모가 큰 업체에 입사한 그는 불과 3개월 만에 입사 동기들과 10여 년 영업 선배들을 제치고 영업 1위 실적을 올렸다. 김 대표가 조심스럽게 밝힌 판매 1위의 비결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성실함이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움직이면 된다. 발을 움직이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 성공은 의외로 간단하다'는 것이었다.



눈이 무릎까지 쌓이는 추운 겨울이면 그 많은 영업사원들 중에서 출근하는 사람은 고작 8~9명에 불과했고, 그들마저도 날씨를 탓하면서 고스톱이나 치자며 다른 사람들을 유혹해 결국은 자신을 포함한 한두 명만이 20kg이 넘는 물건을 짊어지고 영업 전선에 나섰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을 박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저에게 죄가 있다면 이렇게 물건을 팔러 다니는 죄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서 오늘 이 자리에 왔습니다."라며 정중히 인사를 했다. 그러면 상대방들은 호기심에서라도 김 대표의 물건에 한 번 더 관심을 보였고, 그 관심은 곧바로 판매로 이어졌다. 그렇게 그날 번 돈에서 식사비와 교통비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날마다 단돈 1만 원이라도 저축했다.



김학구 대표는 자신이 계획한 삶의 목표에 가능한 빨리 도달하기 위해서 다양한 일들을 시작했고, 또 배워가면서 자신의 사업을 위한 경험들을 쌓았다. 김 대표는 자신이 맡거나 해내야만 하는, 자기 자신과 관계되는 모든 일에 임하는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 마음가짐에 의해 뒤따라오는 일의 과정과 결과의 차이는 상상 이상으로 크고 엄청날 수 있다고 한다.



그동안 김학구 대표가 몸담았던 직업들은 사회의 흔히 밑바닥이라고 표현하는 막노동 일꾼을 비롯하여 영업사원, 판매사원, 서점 주인, 노래방 사업주, C.F 모델을 거쳐, 오늘날의 특급 초빙 강사, 일간 신문의 칼럼니스트, 100억 카페 대표에 이르기까지 총 34개에 달한다. 과연 그의 노력과 능력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인지 도무지 짐작되지 않는다. 그 누구와의 대화에서도 빛을 발휘하는 김 대표의 해박한 지식과 따듯한 미소 뒤에 감춰진 부드러운 카리스마는 자신에 대한 끝없는 도전과 뼈를 깎는 노력, 그리고 몸소 계획하고 직접 실천해본 경험의 총체적 산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즐거운 실패론: 김학구 대표도 몇 차례 가슴 쓰라린 실패를 겪어왔다. 하지만 김 대표는 한 번의 실패에서 최소 10가지 이상의 성공 노하우를 배웠다고 한다. 김 대표는 자신의 실패를 그렇게 가치 있는 소중한 경험으로 겸허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김학구 대표는 "앞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신의 소중한 꿈을 버리지만 않는다면, 이미 실패를 겪었거나 지금 겪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실패의 과정에서 스스로 체득한 그 노하우가 다음에는 반드시 성공의 커다란 밑거름이 되어 돌아오니 희망과 긍정적인 생각을 절대 버리거나 잃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말을 덧붙인다. 김 대표는 실패라는 고통스러운 늪에 빠져 있을 때에도 자신감만큼은 절대로 잃지 않았다. 그리고 실패의 이유와 원인 등을 낱낱이 분석해 완전히 자기만의 지식과 정보로 만들었고, 마지막에는 실패 자체를 집어삼키고 정복해버렸다. 그러니 성공이 자연스럽게 뒤따라올 수밖에…….



상경한 이후 온갖 업종의 일들을 경험하면서 크고 작은 성공과 실패를 되풀이했던 김 대표는 실제 40대 초반까지 반지하 단칸방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았다. 그 후 10년 세월이 지나자 그는 100억 이상의 자산을 가진, 소위 부자가 된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돈도 없이, 더군다나 로또 복권과 같은 요행수에는 체질적으로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김학구 대표가 어떻게 10년 만에 그 많은 부를 일궈낼 수 있었던 것일까?100억은 꿈의 숫자가 아니다!: 김 대표는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을 성공한 사업가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김 대표에게 지금의 '100억'은 꿈의 숫자가 아니고, '1,000억'이라는 또 다른 목표를 향한 단단한 디딤돌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지난 10년에 걸친 재산 형성과정을 살펴보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부자가 되는 마법과 같은 기술을 자네에게 알려줄까? 자네가, 아니 다른 모든 사람들도 이 방법대로만 한다면 세월이 흐르고 난 뒤 틀림없이 부자가 되어 있을 것일세!" '세상에 부자가 되는 방법이라니…….' 내가 그토록 여기저기를 찾아다니며 듣기 원했던 바로 그 방법을 알려준다니, 하지만 그 기대감은 곧바로 실망으로 이어졌다. "그래, 아주 손쉬운 방법이 있지……. 20대에는 한 달에 20만 원, 30대 땐 한 달에 30만 원, 40대에는 한 달에 40만 원을 꾸준히 저축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부자가 되는 세계에 들어서고 있는 거라네. 꼭 저축을 하시게!"



"돈은 부모나 형제, 심지어는 아내에게도 빌리면 안 된다!"고 외쳐온 김 대표가 자신의 실패를 성공으로 뒤바꿀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가 바로 저축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지금도 김 대표가 자신의 연령대에 맞게 매달 빠짐없이 저축하고 있다. 물론, 늘 빈곤에 시달리던 누군가가 단순히 저축으로만 100억이란 거금을 모았다고 한다면 어느 누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겠는가? 지금부터 김학구 대표가 알려준 저축 이외의 부를 축적하는 방법들을 그대로 옮겨 적어본다.



"소위 우리들이 투자라고 말하는 것들, 뭐랄까~ 예를 들어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경우를 포함해서 모든 투자에는 서로서로 비슷한 구석이 있네. 기본적으로는 전 세계시장의 흐름, 특히 미국 시장 음~, 요즘에는 유럽 시장과 일본 중국까지도 알고서 분석해야 되지 않겠는가? 우리나라의 국내 정책이나 시장 상황은 당연히 꿰차고 있어야겠지. 그리고 좋은 물건을 파악하는 눈도 반드시 갖추어야겠지. 투자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 소위 '고수'라고 하는 사람들은 시장의 흐름, 달리 말하자면 시장이 오를 때나 떨어질 때나 절대로 가볍게 흔들리지 않고 냉철하게 투자의 기회를 발견하네. 그들은 거의 변함이 없이 항상 그래 왔어!"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처음부터 지나친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네. 자신의 능력에 맞게 모든 일을 벌이고, 도전을 시작한다면 사람들이 피할 수 없는 장애물이란 없을 거야. 설령 장애물을 만나더라도 당연히 뛰어넘어야지! 누구나 자신의 분수를 알고, 그 분수에 알맞은 꿈과 목표를 정해 스스로의 인생을 설계하라는 말이지.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 문제도 그렇고, 무슨 일이나 자신의 과욕이 마지막에는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불러온다네!"



젊은이들에게 건네는 말: "젊은 시절에는 주어지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고, 매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김 대표는 자신의 직원들에게 단 하루를 근무하더라도 임시직이라 생각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또 김학구 대표가 진정 모두에게 전하고자 하는 말은 '100억은 부자의 동의어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보통 강남의 좋은 집들은 100억 원대이고, 강남에서 부자라는 소리를 들으려면 최소한 500억 원 이상은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100억이란 부자의 상징이 아니라, 지금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희망과 목표를 전하는 숫자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저는 반지하에 살면서도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 번도 내 사업을 하겠다는 각오를 잊지 않았고 제가 바라는 목표를 기필코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성공에 다가가려면 자신의 육체가 고통스러워야 합니다. 부자들은 여러분들의 생각 이상으로 많은 일을 합니다. 부자들도 육체적인 고통이 있어야 앞서갈 수 있는 것입니다. '100억'은 누구나 노력하면 얻을 수 있는 숫자라는 것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송종관 대표_ 건강한 식문화 유통 사업의 고수




소백산에 남긴 기억들: 송종관 대표가 태어난 곳은 경상북도 영주에서도 전기나 교통 등 문명의 혜택이 가장 늦었던 산골동네였다. 작은 규모로 농사를 짓는 부모와 할머니,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9남매라는 대식구는 송 대표에게는 언제나 따듯함을 제공하는 안식처이면서도 동시에 자생력을 키우도록 끊임없이 자극을 전해주는 원천지였다. 그러나 하나의 의문만큼은 어린 송 대표의 마음에서 오랫동안 떠나지 않았다. '왜 이렇게 가난한 것일까?'



타고난 명석한 두뇌에 끈질긴 노력이 더해지면서, 송 대표는 초등학교 내내 거의 학교에서 선두자리를 놓치지 않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송 대표는, 육군사관학교 입학을 바라던 아버지의 권유와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진로를 두고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일종의 절충책으로 경찰대학교에 진학한다. 그러나 정해진 틀에 꽉 짜인 대학 생활이 자신의 적성에는 전혀 맞지 않다는 판단을 내리고 학업을 포기해 버린다. 그리고 졸지에 군에 입대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지만 운 좋게도 때맞춰 모집 중이던 '카투사'에 지원하여 영어시험을 통과해 주한 미군들과 함께 생활하며 군복무를 마친다.



세상을 향해 꿈꾸는 시간: 병역의 의무를 마치고, 다시 새로운 각오로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송종관 대표는 미국 남가주(USC) 대학교와 중국 청화(淸華) 대학교에서 경영학 관련 공부를 계속한다. 그 후 한국 대기업에서 10여 년, 미국 대기업에서 10여 년을 근무하면서 영업 분야에서 송종관 대표의 존재감은 가히 전설적이었다고 표현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송 대표와 관계되는 사람들 사이에서 "영업에 들어가면서 나갈 때까지 '송종관'을 빼놓고서는 이야기하지 말라!"라는 수식어가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의 명성이 어느 정도였는지 충분한 설명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송종관 대표는 IMF로 나라 전체가 흔들리던 어려운 경제적 상황에서 제과 제빵업계에 일대 지각변동을 일으킨다. 동물성 가공품이 우리나라 전체를 장악하고 있던 생크림 시장에 야자유로 만든 식물성 크림을 최초로 도입한 것이다. 송 대표는 식물성:동물성을 10:90에서 출발한 지 4년 만에 90:10으로 생크림 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역전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러한 성공의 이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송종관 대표의 치밀한 전략과 아이디어가 요소요소마다 적절히 포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송 대표는 정형화된 것들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항상 '창조적 파괴'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한다.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지 못한 자신만의 '창조적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송 대표는 제과 제빵, 레스토랑, 커피, 각종 원재료와 부재료를 유통하는 전문기업으로서 국내 최고의 베이킹 포털사이트를 목표로 한 '쿡앤베이킹(www.cooknbaking.co.kr)'을 설립하고, 용인에 1만 평 규모의 물류창고를 운용한다. 또 건강한 식문화를 위해 1,000여 가지에 이르는 식자재를 공급하는 일도 하고 있다. 요즈음에는 '안전한 먹거리' 즉, '엄마가 손수 만들어 주시는 안심할 수 있는 음식'이라는 개념이 새로운 문화적 콘텐츠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다른 업체와 협력해서 '홈 카페 사업 - 집에 카페를 만들어 문화적으로 즐기자는 사업'에 매진하고 있다.



양규영 대표_ 창의적 조직구성과 소통의 고수




그가 찾는 사람, 그를 찾는 사람들: 오늘도 양규영 대표의 주위에는 언제나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간다. 사람들이 양규영 대표를 찾는 진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에 대한 진솔한 관심'때문이라고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는 양규영 대표는 중 장년기에 접어든 지극히 평범한 사회인이나 직장인들의 인생 여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바로 그 점이 양 대표가 감추고 싶은 중요한 비밀 중 한 가지이다.



양규영 대표는 지난 25년간 건설자재업계의 영업 구매 컨설팅 업무에 직접 종사해오면서도, 총 70여 개에 달하는 영업 노하우를 주제로 여러 관련 단체 및 유관기관에서 공개강의를 통해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원하는 모든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국내외 미디어 전문가들과 국내 최고의 무선호출기 제조사가 서로 힘을 모아 세계 최초의 신개념 영상매체를 개발한 '큐블릭(Cublic)'이란 새로운 미디어 기업으로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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