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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숨은 법칙

리정 지음 | 미래의창
권력의 숨은 법칙

리정 지음

미래의창 / 2011년 8월 / 368쪽 / 15,000원



비극은 반복된다



황제가 죄인이라면 죄인일 수밖에_ 팽월과 유방

천하를 평정한 후, 유방은 대대적인 논공행상을 시행했는데 그중에서도 후방에서 온 힘을 기울인 소하의 공을 으뜸으로 치하했다. 하지만 이에 불복하는 자들이 적지 않았다. 이에 유방이 군신들에게 물었다. "그대들은 사냥에 대해 아는가?"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냥개도 알고 있는가? "물론 잘 압니다." "잘 되었구나. 사냥을 할 때, 사냥개는 전력을 다해 목표물을 포획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하지만 이 또한 반드시 사냥개를 부릴 줄 아는 사람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대들이 용맹하기 그지없는 사냥개와 같다면, 소하는 바로 사냥개를 부릴 줄 아는 사람이다."

다른 건 차치하고라도 신하를 바라보는 유방의 관점만큼은 짚고 넘어갈 만하다. 유방은 신하를 그저 목표물을 쫓는 사냥개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단지 비유일 뿐이라고는 하지만 분명 황제의 교만이 절로 묻어난 말이다. 결국은 유방 또한 고대의 수많은 지도자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고대의 황제치고 천하를 천하인의 것이라 생각한 인물은 극히 드물다, 유방 또한 천하를 유씨의 것으로 여겼고, 자신을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한 양장과 모신들은 그저 자신이 이용한 사냥개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미 천하가 태평해진 지금에 와서 사냥개는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게 된 것이다. 따라서 유방의 사냥개들 또한 잡아먹히는 운명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초와 한이 자웅을 겨룰 때, 팽월이 장기간 초나라에 머물면서 유격전을 벌였다. 때문에 항우는 매번 승리를 눈앞에 두고도 후방이 불안하여 퇴각하기를 되풀이하다가 결국 해하에서 패망하고 말았다. 비록 팽월의 공로가 한신에 못 미친다고는 하나 개국공신이라 칭하기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장오와 한신이 잇달아 죽임을 당하자, 팽월은 자신에게도 화가 닥칠 것을 염려하여 매사에 각별히 주의했다.

그즈음 팽월의 부하 중 대죄를 지어 사형선고를 받은 태복 하나가 장안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그는 유방에게 팽월이 반란을 꾸미고 있다고 고발했다. 이에 진평은 유방에게 이렇게 고했다. "팽월은 한신의 죽음을 슬퍼해왔으나 모반의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일단 그를 궁으로 불러들여 만약 그가 스스럼없이 입궁한다면 모반의 뜻이 없는 것이니 관직을 빼앗아버리면 그만이고, 만약 오지 않는다면 모반이 분명하니 군사를 파견하여 정벌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명분 또한 분명해집니다."

그리하여 유방은 대부 육가를 보내 팽월을 데려오도록 했다. 팽월이 육가를 따라 도읍에 다다랐을 때, 저만치서 성문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호철이 눈에 들어왔다. 놀란 팽월은 황급히 다가가 주위사람들에게 그를 끌어내리도록 명했다. "대부께서는 어찌하여 이런 황망한 일을 당하였습니까?" 팽월이 묻자 호철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오늘 대왕께서는 위험한 지경에 있는 저를 구해주셨습니다. 헌데 대왕께서 지금 성에 들어가시면 필경 위험한 지경에 빠질 텐데, 그땐 아무도 가서 구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한신의 경우를 면하시려거든 부디 발길을 멈추시어 돌아가십시오!" "대부의 말씀은 참으로 고마우나 황제의 부름을 거역할 수는 없소이다."팽월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고, 육가와 가던 길을 재촉했다. 호철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팽월이 입궁하자 유방이 엄하게 문책했다. "내가 친히 진희의 난을 평정하고 있을 때 그대는 어찌하여 도우러 오지 않았는가?" "당시 신은 정말로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폐하의 명을 어기려던 뜻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흥, 그대의 수하에 있던 태복이 그대가 모반을 꾸미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할 말이 있다는 말인가!" "그 자는 공무를 게을리하여 제가 처벌하려 했습니다. 때문에 앙심을 품고 저를 모함한 것이니 폐하께서는 부디 소인에게 속지 마시고 저와 정면대질을 시켜주십시오."

그러나 유방은 더 이상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정위를 불러다 팽월을 심문하도록 했다. 이때 근신이 다가와 어떤 자가 급히 황제를 뵙기 원한다고 고했다. 누구냐고 물으니 대부 호철이라 했다. 유방은 호철을 들게 한 후 물었다. "무슨 일로 예까지 왔는가?" "일찍이 황상께서 형양에 포위당하셨을 때, 팽월이 초군의 군량 보급로를 끊고 유격전을 벌여 구해드렸습니다. 이토록 큰 공을 세운 팽월을 이제 와서 소인배의 참소를 믿고 죽이려 하십니까? 이 일로 천하 사람들이 겁을 먹고 황상을 멀리하게 될까 심히 두렵습니다." 호철의 말에 유방은 한참을 생각한 후 입을 열었다. "내 본디 팽월의 죄를 엄히 다스리려 했으나, 그대의 말도 일리가 있으니 목숨만은 살려주어라, 단 그의 왕작을 몰수하고 서민으로 강등하여 촉땅으로 귀양보낼 것이다." 단 한시도 모반지심謀反之心을 품어보지 않았던 팽월로서는 청천벽력과 같은 말이었다. 크게 상심한 그는 눈물을 삼키며 귀양길에 올랐다.

그런데 이튿날 팽월은 낙양으로 돌아가던 길에 여후의 행차를 만났다. 여후를 본 팽월은 복받치는 슬픔을 억누르지 못하고 바로 길가에 엎드려 통곡했다. 여후가 다가와 묻자 그는 그간의 일을 낱낱이 밝히며 하소연했다. "부디 신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황상께 잘 말씀드려 고향 창읍昌邑으로 가게 해 주십시오." 여후는 짐짓 그를 달래어 함께 장안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여후는 궁에 돌아오자마자 곧장 유방에게 이렇게 말했다. "폐하, 팽월은 천하의 명장입니다. 그런 자를 불러왔으면 당장 제거하여 후환을 방지해야지 어찌하여 살려서 촉땅으로 가게 하셨습니까? 이는 덫에 걸려든 호랑이를 다시 산으로 보내는 것과 같으며, 그랬다가는 훗날 분명 폐하를 해하려 들 것입니다. 마침 제가 도중에 그를 만나 다시 데려왔으니, 주저 마시고 그를 죽여 화근을 없애버리십시오!"

유방이 듣고 보니 여후의 말 또한 옳았다. 이에 그는 곧 팽월을 끌어다가 정위 왕염王恬에게 모반죄의 여부를 심문하도록 했다. 그제야 팽월은 가까스로 사지를 벗어났다가 또다시 제 발로 호랑이굴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염원이 팽월에게 말했다. "폐하께서는 진희의 반란 때, 그대가 병을 핑계로 출정명령을 따르지 않자, 그때부터 그대를 죽일 마음이 있으셨다. 그러나 어제 폐하께서는 옛 일을 생각해 목숨만은 살려주는 큰 은혜를 베푸셨거늘, 그대는 욕심에 눈이 어두워 여후를 따라 뒤돌아오고야 말았다. 때문에 황상께서는 자네가 분명 모반지심을 품었다고 판단하신 것이다. 이제 그대는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원래 '회복은 절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초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대의 죽음은 폐하께서 각박해서가 아니라 그대가 자청한 것이나 다름없다."

유방은 한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팽월의 목을 베고 삼족을 멸했다. 고대에는 황제가 죄인이라면 무조건 죄인이 되어야 했다. 황제가 내린 죄명은 결코 피할 수도, 씻을 수도 없었다. 팽월의 '모반' 또한 팽월에게는 너무나도 억울한 일이었다. 그러나 팽월은 황제의 근심을 해소하기 위해 어떻게든 죽을 운명이었던 것이다. 제아무리 양장이나 모신이라고 해도, 전횡과 권모술수가 들끓는 정계에서 정세를 관찰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처신하지 못했다가는 한순간에 필생의 공업을 무너뜨릴 수 있다. 관직을 잃는 것은 둘째 치고 경우에 따라서는 생명을 잃는 치명적인 손상도 입을 수 있다.

정치적 승리를 위하여



세치 혀로 정계를 휘어잡다_ 이임보와 당 현종

영국인 데니스 트위체트Denis Twitchett의 저작 『케임브리지 중국사』 「수당편」에서는 당唐 현종玄宗 시절의 이임보에 대해 매우 노련하고 치세에 재능을 갖춘 인물이라 평가한 반면, 그의 숙적인 장구령張九齡에 대해서는 속이 좁고 사소한 원한도 반드시 갚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데니스 트위체트의 평가에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분명 일리 있는 평가임에 틀림없다. 이임보, 그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수단을 사용했든 결과적으로 황제의 총애를 얻어 무려 19년 동안이나 재상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그가 누구보다도 뛰어난 정치능력을 지녔음을 증명하는 사실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임보는 중국 역사상 최고의 간신 중 하나로 알려진 인물이다.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별다른 학식이나 재능도 없으면서 오로지 영합에만 능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요행히 그의 아첨이 당 현종의 입맛에 딱 들어맞았던 것이다. 당 형종은 보기 드문 성세를 이룩한 유능한 황제 중 하나였으나, 말년으로 갈수록 향락에 빠지게 된 그는 결국 망국을 초래하였다. 한편 당 현종이 안일해지기 시작한 틈을 이용하여 정계에 진출한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이임보이다. 초기에 이임보는 환관과 비빈들을 회유하여 당 현종의 일거수일투족, 심지어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염탐해냈다. 그리하여 당 현종이 논하는 일마다 그의 마음에 꼭 들어맞는 대답을 하곤 했다. 때문에 당 현종은 말끝마다 반대의견을 내며 옳은 소리를 하는 장구령보다 이임보를 훨씬 더 총애하기에 이르렀다.

당 현종은 이임보를 재상으로 승진시켜 장구령과 나란히 정사를 담당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미 이임보가 간사한 인물임을 간파한 장구령은 반대의견을 피력했다. "무릇 재상은 국가의 안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이임보가 재상이 되면 장치 나라에 재난이 닥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이임보는 매우 분해하며 이를 갈았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 당시 삭방 지역에 우선객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그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를 만큼 무식했지만 재정에는 밝아 군비를 절약하고 항상 풍족한 군수물자를 비축해놓았다. 이를 기특히 여긴 당 현종이 그를 승진시키려 했으나, 이번에도 장구령의 반대에 부딪혔다. 그때 이임보가 기회를 놓칠세라 장구령을 비난하고 나섰다. "우선객은 실로 현실감각이 뛰어난 인물로 재상이 된다 해도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하나 장구령은 그저 죽은 지식에만 연연하는 책벌레와 다를 바 없습니다."

하지만 장구령이 계속하여 의견을 굽히지 않자 당 현종은 마침내 대노하고야 말았다. 이 일로 당 현종은 무엇이든 자기주장만 고집하는 장구령을 증오하게 되었다. 결국 계속되는 이임보의 비방에 넘어가 장구령을 파직하고 대신 이임보를 재상으로 임명했다. 재상이 된 이임보는 즉시 문부백관의 언로言路를 차단하기 위해 간관들을 소집하여 이렇게 선포했다. "황상께서 말씀하시길 군신들의 의견이 분분한 것이 싫으니 이제부터 모든 신하들은 어명에만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의장마儀仗馬는 평소 삼품관三品官에 못지않은 대우를 받는다. 하지만 일단 의식 중에 쓸데없이 울었다가는 당장 내쳐지게 되어 있다. 이 도리를 명심하길 바란다."

한 간관이 이 말을 무시하고 황제에게 상주문을 올렸다가 다음날 바로 외지의 현령으로 강등되었다.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이임보의 농간임을 알았고, 그 뒤로는 어느 누구도 감히 황제에게 간언하지 못했다. 이임보는 이어서 능력이 뛰어나고 강직하며 자신을 반대하는 자들을 교묘한 수법으로 하나하나 제거해나갔다. 그 중에는 엄정지嚴挺之라는 자가 있었는데, 성품이 강직하다는 이유로 이임보의 미움을 사서 지방의 자사刺史로 밀려나 있었다. 하루는 당 현종이 갑자기 생각난 듯 물었다. "지금 엄정지는 어디에 있는가? 재능이 많은 자이니 불러다 요직에 앉히려 하노라."

이임보는 시치미를 떼고 자신이 알아보겠노라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당장 엄정지의 동생을 찾아갔다. "형님에게 이렇게 전하게. 병을 고쳐야 하니 경성으로 돌아오게 해주십사 하고 상주문을 쓰라고 말일세. 그러면 곧 황상을 뵐 수 있을게야." 며칠 후 이임보는 엄정지가 올린 상주문을 들고 가서 당 현종에게 고했다. "이 상주문을 보니 엄정지는 지금 병이 위독하다 합니다. 안타깝지만 공무를 맡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당 현종은 애석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지만, 이후로는 엄정지를 떠올리지 않았다. 엄정지처럼 이임보에게 당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임보의 수법은 교묘하기 짝이 없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람들도 그의 간악함을 눈치 채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두고 '입은 달지만 뱃속에는 비수를 품고 있는 자'라고 말했다. 이임보가 재상으로 있던 19년 동안 재능 있고 정직한 대신들은 모조리 배척당하고, 권세에 빌붙어 아첨하는 간신들과 중용되었다. 그와 함께 성세를 이루었던 당 왕조도 점차 쇠퇴일로를 걷다가 결국은 '안산의 난'을 초래하고 말았다.

여인천하



여성의 손아귀에 놀아난 황제_ 안녹산과 당 현종

'안산의 난'은 역대 최고의 흥성을 누린 당 왕조를 몰락의 길로 이끈 결정적인 사건이다. 대반란의 배후에는 한 여인, 즉 그의 의모가 있었다. 안녹산은 원래 범양절도사의 수하로 있다가 우연한 계기를 통해 당 현종의 중용을 얻어 평로절도사로 발탁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범양절도사까지 겸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지고무상한 권력을 지닌 황제의 눈에만 든다면 무한한 부귀와 권세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안녹산은 갖은 방법을 동원해 당 현종의 환심을 사는 데 전력하였다.

안녹산은 배가 무릎에 닿을 만큼 뚱뚱했는데, 어느 날은 당 현종이 그 배를 가리키며 놀리는 투로 물었다. "그대의 배에는 대체 무엇이 들어있기에 그리도 큰가?" 이에 안녹산이 자못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오직 폐하에 대한 충성이 들어 있을 뿐입니다." 당 현종은 매우 흡족하여 껄껄 웃었다고 한다. 안녹산이 당 현종의 비위를 맞추고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당 현종의 애첩 양귀비였다.

당 현종은 양귀비에 대한 총애와 안녹산에 대한 신임의 표시로 양귀비의 형제자매와 안녹산으로 하여금 의형남매를 맺도록 했다. 그런데 안녹산은 양귀비를 포섭하고 궁중 출입의 편리를 위해 그녀의 수양아들이 되길 청했다. 이때 양귀비의 나이가 29세, 안녹산은 40세였다. 아들이 모친보다 나이가 많은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양귀비가 황제의 아내이므로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 당 현종은 이를 허락했다.

당 현종과 양귀비가 함께 할 때면, 안녹산은 언제나 양귀비에게 먼저 절을 올린 후에야 당 현종에게 절을 올렸다. 당 현종이 이를 이상히 여겨 묻자 안녹산은 이렇게 대답했다. "저희 호인들은 먼저 어머니에게 예를 갖춘 후에야 아버지께 예를 올립니다. 그저 저희 호인의 습관에 따랐을 뿐입니다." 이에 당 현종은 더 이상 따지지 않고 그대로 하여도 좋다고 허락했다. 사실상 당 현종은 안녹산의 가식과 모반지심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하루하루 멸망을 앞당기고 있었다.

안녹산은 당 현종과 양귀비의 환심을 얻기 위해 어떠한 일도 서슴지 않고 행했는데,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천보 10년(751년) 정월 1일, 안녹산의 생일에 당 현종과 양귀비가 각각 대량의 의복과 보물, 술, 음식 등을 하사했다. 이 같은 대우는 왕족이나 귀족들조차도 평생에 한번 누릴까 말까 한 파격적인 대우로 당 현종과 양귀비가 안녹산을 얼마나 총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로부터 3일 후, 후궁 연회에 초대된 안녹산은 양귀비가 만들어놓은 커다란 기저귀를 두르고 아기 흉내를 내며 궁녀들과 어울려 놀았다. 양귀비와 궁녀들이 즐거워하는 웃음소리가 후궁 밖으로 퍼져나갔다. 그 소리를 들은 당 현종은 친히 왕림하여 그에게 또다시 큰 선물을 내렸다고 한다.

안녹산은 양귀비와의 특수한 관계 덕분에 조정에서 점점 더 큰 대우를 받게 되었다. 천보 7년(748년) 6월, 당 현종은 안녹산에게 철권(鐵券: 신하가 특권을 누릴 수 있음을 증명하는 증서)을 내린 데 이어, 천보 9년(750년) 5월에는 동평군왕에 봉했다. 당 왕조에서 장수를 왕에 봉한 일은 전례 없던 일이었다. 같은 해 8월, 안녹산은 또 하북도 채방처치사를 겸하게 되었고, 천보 10년(751년) 정월에는 안녹산이 하동절도사를 겸하게 해줄 것을 청하니 당 현종이 이를 허락했다. 그해 2월, 당 현종은 현임 하동절도사 한휴민을 좌익임장군으로 발령하고 안녹산을 후임으로 임명했다. 이로써 안녹산은 평로, 범양(북경), 하동 지역의 절도사를 겸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천보 10년, 안녹산은 광대한 근거지와 10만 병력의 힘을 이용하여 도당을 결성하고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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