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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 리더십

크리스 워너, 단 슈민케 지음 | 비전과리더십
극한의 리더십

크리스 워너, 단 슈민케 지음

비전과리더십 / 2011년 1월 / 384쪽 / 17,000원



위대한 리더십의 천적, 죽음의 공포




2007년 7월 20일 K2 파키스탄, 정상을 향한 마지막 오르막길이 보인다. 그것은 비뚤비뚤한 눈의 골짜기, 돌출한 빙하 밑에 펼쳐진 수직의 지그재그 길, 칼날처럼 날카로운 융기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 위 30미터 지점에서 한국 팀이 눈 속을 헤치고 나아간다. 한국 팀이 첫 번째 세트의 로프를 장착하며 우리 모두의 안전을 보장한다. 나는 장비를 매만지며 위를 쳐다보았다. 그때 갑자기 한국 팀의 전문 리더이자 에베레스트를 6번이나 정복한 니마 누르부 셰르파가 미끄러지며 추락했다. 그는 벼랑 끝 너머로 미끄러지며 어둠 속으로 굴러 떨어졌다. 모두 오싹해진다.

산 위에서나 일터에서나 남을 리드하다 보면 어렵고 위험해질 수 있다. 다행히 우리 대부분은 실족하여 넘어진다 해도 죽음의 골짜기로 추락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실적인 위험을 맞아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리더로서의 나를 규정한다. 대단한 아이디어나 계획이 죽어 나갈 때 리더십은 편안한 회의실의 임원들 모두를 파괴한다. 기대했던 승진이나 프로젝트가 물거품이 될 때 위험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이것이 바로 극도의 공포다. 바로 이때 나의 진정한 위대성이 본 모습을 드러낸다.

사무실에서든 산 위에서든 안전한 세계에 안주하기로 선택하는 것은 전략의 최대 적인 두려움에 엄청난 기회를 빼앗기는 지름길이다. 그것은 위대한 의사결정을 방해한다. 니마가 K2에서 추락했을 때 안전한 정상 등정을 위해 필요했던 900미터 로프를 고정시킨다는 전략도 함께 추락해 버렸다. 인간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두려움이 지배적인 생물학적 반응이 된다. 이것은 온갖 종류의 문제를 유발하며, 장기적으로 인간을 파괴한다. 공포의 감정이 휘감을 때 팀원들은 움츠러들고, 사기는 떨어지며, 은밀한 대화가 불신을 조장한다. 결국 팀은 자멸한다. 리더로서 우리는 이러한 마비 반응과 싸워야 한다.

깨달음의 순간 나는 니마의 죽음과 앞에 놓인 위험을 받아들이기로 선택했다. K2는 이미 64명의 산악인들의 목숨을 거두어갔다. 니마는 65번째였다. 지금은 슬퍼할 때가 아니라 행동할 때다. 누군가 리더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나는 니마의 네팔 동족과 한국 팀원들이 있는 곳에 도착해 경의를 표하고 그가 추락했을 때 떨어져 나간 로프를 풀어 새로운 구간에 동여맨 후 정상을 향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에 행동을 선택함으로써 18명의 산악인들은 13시간 뒤 세계의 지붕 위에 설 수 있었다. 그날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산인 K2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정상 등정일이 되었다.

나는 예고도 없이 상황에 떠밀려 들어갔지만,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니마가 죽었을 때 니마의 영혼과 그의 친구들에게 경의를 표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고통과 슬픔을 무시한 채 내 갈 길만 가는 것은 등반을 개인적인 실패작으로 만드는 행위였을 것이다. 니마의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더 높은 차원의 리더십으로 도약했고, 역사적인 사건을 만들어냈다. 죽음을 수용한다는 이 오래된 비밀은 우리가 초고도 리더로서 신념에서 우러나온 행동을 발휘하게 해 준다. 실패를 하나의 옵션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집단의 목표를 마비시키는 공포의 파괴력을 무력화할 수 있게 된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나만 살면 된다는 이기심



오후 4시 30분 우리는 드디어 K2 정상에 이른다. 그러나 이 순간을 즐기기에는 시간이 별로 없다. 동쪽 수평선으로는 어둠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오후 5시 30분, 길을 내려오다 계속 올라오고 있는 이탈리아 산악인 두 사람과 마주친다. 우리는 모두 놀란다. 나는 베이스캠프에 무전을 쳤고, 그곳에 있는 그들의 팀도 충격을 받은 듯 했다. 몇 시간 전 이들 중 한 사람이 돌아서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그들은 무시하고 계속 올랐다. 사람이 이기적인 자아에 지배당할 때 결과가 아름다운 경우는 없다. 그들은 등산에서 최악의 실수 중 하나(해가 진 이후에 등반하기)를 저지르고 있다.

밤 11시 30분 이탈리아 팀원 한 사람이 무전을 쳐 온다. 텐트를 찾을 수 없어 방향 안내가 필요하단다. 그는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다. 속도가 더딘 그의 동료는 혼자 알아서 내려오게 내버려둔 것이다. 새벽 1시 그 이탈리아인은 캠프 4에 있는 팀의 텐트로 기어들어온다. 그는 대장에게 마지막 팀원은 몇 분 안에 도착할 거라고 말한다. 새벽 3시 이탈리아 팀원 한 사람이 사라진 동료를 찾아 수색에 나서지만 성과는 없다. 그들은 모두 잠자리에 든다. 다음 날 오전 8시 30분 폭풍이 다가오는 가운데 이탈리아인들이 우리에게 캠프 3까지 안내해 달라고 간청한다. 그때서야 이탈리아 팀장은 마지막 팀원이 텐트로 돌아오지 못했다는 사실을 밝힌다. 우리는 충격을 받는다. 어떻게 잠 좀 자겠다고 동료의 안전을 무시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우리에게 말하지 않음으로써 이탈리아인들은 동료를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완전히 잃었다.

이기심은 사람, 이익, 가능성을 죽인다. 당신은 모든 조직에 만연해 있는 이 끊이지 않는 위험을 알고 있을 것이다. 기업에서 목격되는 이기심의 행태는 파괴적이고 비생산적 환경에서 등장하며 소위 DUD(Dangerous, Unproductive, Dysfunctional: 위험하고, 비생산적이고, 역기능적인) 행동으로 나타난다. DUD 행동은 자체의 생명력을 갖고 CEO, 임원, 직원들의 노력을 좌절시킨다. 고산 등반에서는 부상과 죽음의 위험이 명백하기 때문에 DUD의 피해를 탐지하는 일이 쉽다. 이런 환경에서는 이기적인 행동이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다. 그러나 조직에서 그 피해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때가 많다. 피해의 정도는 손익계산서에 표시되지 않지만, 이기심은 수익성에 가장 위험한 타격을 준다.

DUD 행동들은 교육을 통해 조직에서 몰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기심의 근본 원인은 문화적인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 요인에 그 뿌리가 닿아 있다. 산 위에서건 기업에서건 이 원초적인 동기가 우리에게서 리더십 능력을 빼앗아 가고 위대한 성과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자유를 박탈한다. 조직에서 DUD 행동을 줄이는 데 성공하려면 이 생물학적인 동기의 갈고리를 벗겨내야 한다.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리더들은 위대한 성과를 창출하며 유지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등반이 끝나고 나서 미국인 팀장이 약간 우울해 보이는 것에 주목했다. 무슨 일이 있는지 묻자 그가 말했다. "대부분의 원정팀이 올라갈 때가 아니라 내려가는 길에 문제가 생기죠." "하지만 우린 문제 없잖아요. 응급상황도 잘 처리되었고요." "그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 그룹에 대해 말하는 거지요. 둘러보세요. 이건 더 이상 협력하고 도와주는 팀이 아니죠. 더 이상 열정도 없고요. 모두가 끼리끼리 파벌을 형성하고, 온갖 것에 대해 불평과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하죠."

그의 말이 맞았다. 등반이 끝나자 그룹은 고효율 팀에서 우리가 기업에서 흔히 목격하는 냉담하고 무관심한 분위기가 지배하는 팀으로 돌변했다. 대답은 간단했다. 이제 앞에는 통과해야 할 산길이 없기 때문이다.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사라졌을 때 모든 팀원은 집단의 목표보다 개인의 욕망을 앞세우고 본래의 이기적인 행동으로 복귀하기 시작한다. "인간의 이기심은 더 위대한 열정이 이기적인 동기를 압도할 때만이 극복될 수 있다." 이렇게 간단한 건가? 성과 달성에 장애가 되는 이기심을 정화하는 것이 결국 더 위대한 공동의 열정을 관리하는 문제란 말인가? 우리는 이 이론의 정당성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조직인 군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군대에서 장군은 기업의 리더들보다 훨씬 더 열정을 중요시한다. 사기가 높은 군대는 그렇지 못한 군대보다 전투에서 더 많이 승리하며, 때로 무기의 열세도 극복한다. 왜 리더는 전투 전에 항상 병사의 사기를 점검하는가? 당신이 군대를 지휘하든 산에 오르든, 또는 팀을 이끌든 결정적인 요소는 바로 열정이다. 열정은 고대의 통치 지혜이기도 했다. 역사를 통해 위대한 리더들은 끊임없이 신과 영웅들의 이야기를 지어냄으로써 열정에 불을 지피는 일에 골몰했다. 매혹적인 이야기는 사람들이 개인의 자아보다 더 큰 대의를 향해 정렬하도록 한다. "인간에게는 매혹적인 이야기가 필요하다. 이것은 인간 본능인 이기심을 압도하는 열정을 고무하며 전략적인 성과를 얻게 하는 이야기나 드라마다."

등산에도 매혹적인 이야기 공식은 존재한다. 우리는 분명한 목표(산), 뛰어난 기술을 가진 강인한 인물(산악인), 세 가지 주요 문학 유형(인간 대 자연, 인간 대 인간, 인간 대 그들 자신)의 구색을 갖추고 있다. 우리가 갖지 못한 것은 명확하게 정의된 가치와 신념에서 우러나는 용기와 함께 필승 전략에 대한 열정을 고무할 수 있는 언어이다. 이런 언어를 갖게 될 때 우리는 큰 변화를 실현할 수 있다.

K2에서 우리 팀은 이탈리아 팀과 다르게 행동했다. 부상당한 동료와 거의 죽어가던 체코인을 발견하고 그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왔다. 장비는 도난당했고, 동료는 부상을 입었고, 눈보라는 몰아치고, 배고프고 피곤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팀은 이타적으로 행동했다. 우리에게는 매혹적인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출발 전부터 공식 전략과 공유된 공통의 가치를 갖고 있었고 가치들 간에 우선순위를 명확히 정해 놓았다. 그것은 안전(모두가 원정 여행에서 살아남기), 정상(직업적인 명성을 고려하여 정상을 정복하기), 스타일(할 수 있는 가장 모험적인 방법으로 K2 정복하기)의 순이었고, 우리는 정확히 그 순서에 입각하여 행동했을 뿐이다.

지나친 자신감을 갖게 하는 도구의 유혹



1999년 9월 해발 8201미터의 세계 6번째 고봉인 초오유 산 베이스캠프에 거의 400명의 산악인이 몰렸다. 초오유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초오유가 세계 최고봉 중에서는 제일 만만한 축에 들기 때문이다. 초오유의 인기는 대단하여 에베레스트에 마련된 것과 같은 수준의 기반시설이 봉오리 오르막길에 구축된다. 수십 명의 셰르파를 고용하는 대규모 상업 원정대는 훌륭한 설비의 베이스캠프 하나와 그보다 작지만 역시 좋은 설비를 갖춘 캠프 세 곳을 산에 설치한다. 각 캠프 사이에는 수천 피트의 로프를 달아 이동을 쉽게 한다. 텐트는 호텔방처럼 꾸며지며 침낭, 소형 스토브, 식량자루, 산소통 등이 구비되어 있다.

우리가 더 높은 곳으로 이동하여 캠프를 먼저 세울 때마다 주변으로 계속 다른 상업 원정대의 텐트들이 들어섰다. 장비를 적게 지니고 기본 시설도 불필요했던 우리는 빠르게 이동했다. 하지만 규모가 큰 팀들은 장비가 훨씬 많았기 때문에 뒤처졌다. 그해 9월 중순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 계절풍이 변덕을 부려 북쪽을 들이친 것이다. 그때 우리는 7,000미터 고도에 설치한 텐트에 있었다. 맹렬한 눈보라의 공격에 우리는 짐을 꾸리고 베이스캠프로 내달리다가 눈사태를 만났다. 내가 눈사태로 눈에 파묻혀 사라졌음에도 살아 있는 것을 보고 동료들은 크게 놀랐다.

당시 초오유에 도전했던 다른 산악인들은 그것을 하나의 징조로 받아들여야 했다. 만약 그들이 그날 짐을 쌌더라면 많은 고생을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이 폭풍의 사이클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결국 폭풍은 잠잠해졌다. 하지만 셰르파들이 많은 장비를 옮겨야 했기 때문에 귀중한 시간이 낭비되었다. 그 결과 큰 그룹들은 멀리 나아가지 못했다. 드디어 날씨가 잠깐 좋아졌을 때 온갖 도구와 편의품이 필요하지 않았던 우리를 포함한 소수의 사람들만 정상에 올랐다. 대규모 팀들은 베이스캠프에서 절망적인 시선으로 그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그 시즌은 대대적인 기습 폭풍으로 막을 내렸다. 히말라야 전역에서 거의 30명의 산악인들이 목숨을 잃고 수십 개의 원정 여행이 좌절되었다. 가장 큰 재난을 불러온 시즌 중의 하나였다. 초오유는 최고급의 멋진 등산장비로 무장한 산악인들의 90%에게 정상을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는 최고의 리더십 도구로 무장하기 원한다. 수천 권의 책, 교관, 전문가들이 그것을 가르친다. 하지만 답은 도구에 있지 않다. 산을 탈 때 셰르파, 온갖 장비, 그리고 기반 시설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재능 있는 등산가들을 구속한다. 이와 비슷하게 최신 도구와 이론으로 무장한 컨설턴트 군단은 오히려 발전을 가로막고 기업이 중요한 문제에 집중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물론 도구는 중요하다. 죽음의 지대에 오르기 전에 우리는 장비를 시험하고 기술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경영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최고의 도구들도 고장이 나거나 제 구실을 못하고 기대했던 상황도 현실화되지 못한다. 그래도 당신은 살아남아야 한다.

도구는 희망을 준다. 그것은 우리가 올바른 답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문제는 직원들이 도구를 안전한 답을 위한 버팀목으로 이용할 때 발생한다. 베스트셀러 경영서가 제시하는 아이디어에 누가 감히 토를 달 수 있겠는가? 그러나 베스트셀러 아이디어, 전문용어, 근사한 개념에 유혹될 때 결과는 아름답지 않다. 도구의 유혹은 출혈이 많고 위험하다. 풋내기 산악인이 도구의 유혹에 빠지는 것을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까? 우리는 등산 서적을 집어치우라고 말한다. 이런 책은 초심자에게 두 가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첫째, 자신이 실제보다 잘났다는 착각을 하게 한다. 둘째, 등산객들을 불안하게 한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실패로 이어진다. 오늘날의 기업에도 똑같은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죽은 산악인과 파산한 기업 모두 굉장한 도구들을 손에 쥔 모습으로 발견된다.

그 당시 히말라야에서 우리를 구해준 것은 도구가 아니었다. 우리에겐 도구가 없었고, 있는 것도 잃어버렸다. 우리를 살아남게 한 것은 우리가 내린 결정과 그에 기초한 행동이었다. 초고도 리더는 행동을 토대로 성과를 창출함으로써 도구 유혹의 위험에서 벗어난다. 산 위에서나 기업에서 도구에 유혹당하지 않는 길은 적절한 결정, 행동, 새로운 상황에 대한 적응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



수직의 좁은 융기선이 네팔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의 위압적인 서벽 중앙을 바닥에서 정상까지 잇고 있다. 이 산은 아마 다블람으로 추정되며 특히 서벽은 전설을 담고 있다. 이곳에 제일 먼저 도전했던 피터 힐러리가 이끄는 팀은 눈사태가 팀원 한 사람을 산에서 쓸어내리면서 등정을 포기해야 했다. 떨어지는 과정에서 그는 다리와 늑골이 부러졌고, 다른 한 사람은 사망했다. 구조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한 이탈리아 산악인이 힐러리의 여자 친구에게 접근했다. 이 원정은 불가능한 목표, 탐욕스런 정사, 끔찍한 죽음, 믿을 수 없는 영웅적 행동 등 위대한 소설의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

이번 우리의 도전은 겨울에 단 두 사람이 도전하는 만만치 않은 여정이었다. 우리는 베이스캠프에서 여러 날을 보내며 쌍안경으로 지형을 살폈고 눈사태와 낙석의 패턴을 숙지하면서 마치 미로를 따라 연필로 줄을 그리는 아이처럼 등정 루트를 추적했다. 우리는 바닥에서 정상까지 36시간이 걸릴 것으로 확신했다. 하지만 그것은 치명적인 오판이었다. 지나친 자신감이 우리를 거의 죽일 뻔했다.

우리가 택한 루트는 상상보다 훨씬 험악했다. 이틀째에 식량이 바닥났다. 3일째는 연료가 떨어져 눈을 녹여 물을 얻을 수가 없었다. 수직의 바위벽 때문에 영하의 온도에서 맨손으로 기어올라야 했다. 우리는 4일째 정오에 정상에 도달했고, 5일째 저녁 베이스캠프로 돌아왔다. 텐트로 돌아와서야 나는 손가락 9개가 동상에 걸린 사실을 알았다. 동상과 혈액 흐름의 차단으로 살이 죽어버렸다. 나는 손가락을 잃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서럽게 울었다. 내 친구들 중에는 그루터기만 남은 손가락과 발가락 없는 발을 지닌 이들이 적지 않다. 혹시 정말 운이 좋다면 나는 손가락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 어떤 정상도 내 손가락만 한 가치는 없다. 언론은 서벽을 치고 올라간 우리의 노선을 그 시즌에 히말라야에서 시도된 가장 어려운 루트였다고 평가했다. 누구도 그 루트를 재시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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