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의 리더십
김영수 지음 | 원앤원북스
사기의 리더십
김영수 지음
원앤원북스 / 2010년 12월 / 400쪽 / 16,000원
PART 1 이상적 리더와 리더십, 그 실체를 밝힌다상탕, 법망이 아닌 덕망의 리더십을 보여주다
사마천의 리더 자질론: 사마천의 『사기』를 통해 일관되게 제시하는 이상적인 리더의 모습은 덕을 갖춘 리더다. 더 구체적으로 사마천은 덕을 갖춘 리더의 자질로 다음 세 가지를 말하고 있다.
1. 자현自賢 : 리더 자신의 유능한 자질과 능력
2. 구현求賢 : 유능한 인재를 갈망함
3. 포현布賢 : 리더와 리더가 발탁한 인재가 자질과 능력을 실천함
특히 세 번째 '포현'의 핵심이자 마지막 단계는 백성들에게 널리 이익이 미치도록 자질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에서 '자현'과 '구현'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서로 작용하면서 세 번째 '포현'을 이끌어낸다. 말하자면 이 세 가지 리더의 자질은 리더십의 단계이며, '포현'은 리더십의 완성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리더와 리더십에 관련된 모든 논의의 핵심은 유능한 인재를 기용하는 '용인用人'의 문제로 귀착된다. 인재를 기용하는 리더의 자세가 곧 백성들에 대한 리더의 태도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중국 역사상 하나라에 이어 두 번째 왕조인 상商을 건립한 상탕은 이런 문제와 관련해 귀중한 사례를 보여준다.
혁명을 성공시킨 리더, 상탕: 상탕은 하 왕조에서 상 또는 은 종족을 이끌던 제후로서 하 왕조의 마지막 왕인 걸傑을 내쫓고 이른바 '혁명'을 성공시킨 리더다. 천자는 하늘의 명을 받아 하늘을 대신해 인간 세상을 다스리는 존재이므로 절대 바꿀 수 없다는 '천명'을 바꾸고 최초의 변혁을 이룬 것이다. 당시 걸 임금은 그의 폭정에 "지금 잘못을 바로 잡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한 이윤의 충고에 "백성에게 군주는 하늘의 태양과 같은 존재다. 태양이 없어져야 나도 없어지는 것이다"라는 말로 일축해버렸다. 이 이야기를 들은 백성들은 일제히 "태양아, 빨리 없어져라. 우리도 너와 함께 망하련다"는 노래로 걸 임금의 오만함을 비꼬았다. 민심은 이미 걸에게서 떠나 있었다.
걸 임금은 갖가지 가혹한 형벌을 만들어 자신에게 반항하거나 비판하는 사람들을 죽였다. 하루는 혹형을 지켜보던 걸이 대신 관용봉에게 즐겁고 통쾌하지 않냐고 물었다. 그러자 관용봉은 "이 형벌은 마치 봄날에 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위험스럽기 짝이 없습니다"라는 말로 에둘러 비판했다. 그러자 걸은 "다른 사람의 위험만 눈에 보이고 네 자신의 위기는 보이지 않느냐"며 관용봉을 활활 타오르는 불더미 속으로 처넣어 죽였다. 관용봉은 중국 역사상 바른 말을 하다가 죽임을 당한 최초의 충직한 신하로 기록되었다. 걸의 이 같은 악정을 예의주시하던 탕은 착실하게 세력 기반을 넓혔다. 아울러 걸에게서 떠난 인재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인재회유책도 함께 실행해나갔다.
이윤을 발탁하다: 탕은 많은 인재를 발탁하고 기용했다. 그중에서도 이윤과 중훼仲 를 좌상과 우상으로 기용한 것이 가장 돋보이는데, 출신과 지위를 불문하고 능력 위주로 선발했다. 특히 하 왕조의 속국이던 유신 부락의 이윤을 발탁한 것은 탕이 혁명을 일으키는 데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 탕이 이윤의 유능함을 알고는 그를 얻기 위해 사람을 보냈으나 거절당했다. 탕은 포기하지 않고 다섯 번이나 사람을 보내 끝내 이윤을 맞이했다. 마지막에는 탕이 직접 이윤을 찾았다는 기록도 있다. 훗날 유비가 제갈량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제갈량의 초가집을 세 번 찾았다는 '삼고초려'의 원형이 바로 탕이 이윤을 맞이하는 이 대목이다. 당시 탕이 이윤을 직접 모시러 갈 때 탕의 수레를 몰던 자가 이윤처럼 비천한 자를 왜 귀하신 몸께서 직접 가서 데려오려 하냐고 물었다. 이에 탕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기 눈과 귀를 밝게 하는 영약이 있다면 누군들 먹으려 하지 않겠는가? 나라도 기꺼이 먹을 것이다. 지금 내가 이윤을 모시러 가는 것은 이런 뛰어난 의사에 비할 수 있다. 그를 모셔오지 못한다면 얼마나 큰 손실이겠는가?" 그러고는 행여나 대사를 그르칠까봐 그 마부를 도중에 내려놓고 이윤에게 갔다고 한다.
여론 조성과 정보 수집으로 집권하다: 탕의 지극한 정성에 감동한 이윤은 탕을 따라 상으로 왔다. 그러고는 하나라로 다시 가서 하나라의 동정을 살피겠다고 자청했다. 말하자면 첩자 노릇을 자청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탕은 하나라 내부의 정세에 대한 정확하고 상세한 정보를 입수했다. 이를 바탕으로 탕은 하나라의 실력을 몇 차례 시험한 끝에 정벌을 결정하게 되었다. 한편 탕은 주변 제후국들의 동향과 민심의 향배를 알아보기 위해 자신의 덕을 선전하는 이벤트 성격의 세련된 정치술을 연출하기도 했는데 이것이 이른바 '덕망'의 리더십이다.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한다.
하루는 탕이 교외에 나갔다가 사방에 그물을 치고 "천하의 모든 것이 내 그물로 들어오게 하소서"라고 기원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탕은 "어허! 한꺼번에 다 잡으려고 하다니"라며 그물의 세 면을 거두게 하면서 "왼쪽으로 가려는 것은 왼쪽으로 가게 하고, 오른쪽으로 가려는 것은 오른쪽으로 가게 하오. 내 명을 따르려 하지 않는 것만 내 그물로 들어오게 하오"라고 축원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제후들은 탕의 덕이 금수에까지 미쳤다며 감탄했다. 이것이 그물의 세 면, 또는 자신이 원하는 한 면을 거두게 했다는 '망개삼면網開三面' 또는 '망개일면網開一面'이란 고사성어의 기원이다. 이 고사는 흔히 저인망식으로 백성들의 소소한 범법 행위를 훑어 단속하는 야박한 '법의 그물', 즉 '법망'이 아닌 덕으로 백성들을 감싸는 '덕의 그물', 즉 '덕망'의 정치를 강조하는 이야기로 남아 있다. 상탕은 이런 덕망의 정치로 민심을 얻었던 것이다.
언제나 백성을 보라: 탕은 덕망의 정치로 민심을 얻어 하나라 걸왕을 내치고 혁명을 성공시켰다. 덕망은 탕의 리더십을 대변하는 용어로 정착했다. 탕의 덕망은 늘 백성을 향하고 있었다. 그가 자신의 노선을 방해하는 갈이란 제후국을 징벌하기에 앞서 천명한 다음과 같은 말은 탕의 리더십을 단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맑은 물을 바라보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인시수견형 人視水見形
백성을 살펴보면 그 나라가 제대로 다스려지는지 알 수 있다. 시민지치부 時民知治不
탕은 이윤을 기용해 하나라의 정세를 살피는 첩자로 활용하기도 했고, 자신의 덕을 선전하기 위해 그물의 세 면을 트게 하라는 '덕망'의 이벤트를 연출해 여론을 자기 쪽으로 유도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그는 노회한 리더의 표본이었다. 하지만 탕의 리더십의 근저에는 늘 백성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백성을 보면 그 나라가 제대로 다스려지는지 알 수 있다"는 그의 말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그 울림이 더 크게 느껴질 정도로 강한 인상을 준다. 정치가 유별난 것인가? 정치가 어려운 것인가? 정치는 바른 마음가짐으로 백성을 위해 봉사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백성을 보라, 그러면 정치가 보인다. 백성을 고달프게 하지 않는 '덕의 그물', 즉 '덕망'을 강조했던 상탕의 리더십이 던지는 메시지다.
주 문왕, 인내와 기다림 리더십의 모범이다
폭정을 지켜보며 탄식하다: 우리가 앞에서 검토하고 분석했던 상 왕조의 마지막 임금 주紂는 하왕조의 마지막 임금 걸과 함께 흔히 '걸주桀紂'라고 해 포악한 통치자의 대명사로 불린다. 주 임금은 술과 놀이, 그리고 여자를 탐해 자제할 줄 몰랐다. 그는 자질이 뛰어난 통치자였지만 이 때문에 자기과시에 빠져 충고에 귀를 닫았다. 백성들에게는 과중한 세금을 매겨 자신의 사욕을 채웠다. 사구라는 곳에 엄청난 규모의 악단을 부르고, 술로 연못을 채우고 나무에 고기를 매달아 숲처럼 만들어놓고는 나체의 남녀들에게 숨바꼭질 놀이를 시키며 밤새 마시고 놀았다. 폭정과 폭군을 대변하는 주지육림酒池肉林이란 고사성어가 여기서 나왔다.
백성들 사이에서는 원망의 소리가 높아져갔고 제후들은 등을 돌렸다. 그러자 주는 형벌을 더욱 강화해 포락이라는 혹형을 만들어냈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잡아 시뻘겋게 불에 달군 쇠기둥 위를 걷게 했다. 쇠기둥 아래에는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불에 달구어진 쇠기둥 위를 어떻게 걸을 수 있겠는가? 몇 걸음 내딛지 못하고 불 속으로 떨어져 타죽을 수밖에. 구후는 아리따운 딸을 주에게 바쳤는데 딸이 주의 음탕한 짓거리에 동참하길 거부하자 주는 그녀를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그 아버지 구후까지 죽였다. 그냥 죽인 것이 아니라 포를 떠서 젓갈을 담갔다. 이에 항의하는 악후까지 포를 떠서 죽였다.
훗날 주나라 건국의 터전을 닦아 문왕으로 추증되는 서백 희창은 이런 참담한 현실에 탄식했다. 희창을 감시하던 숭후호라는 간신이 잽싸게 주 임금에게 이를 고자질했다. 주는 희창을 잡아들여 유리성에 구금했다. 희창은 유리성에 7년을 억류당한 채 수많은 백성들이 폭정에 신음하며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들 삶은 국을 다 마시다: 주는 희창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 희창의 큰아들인 백읍고를 잡아다 끓는 물에 던져 푹 삶아 곰탕을 만들었다. 주는 이것을 희창에게 보내면서 고깃국이라며 마시게 했다. 희창은 그것이 아들을 삶은 국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희창은 말할 수 없는 비통함을 속으로 삭히며 다 받아 마셨다. 희창은 유리성에 7년을 갇혀 참고 기다렸다. 그는 유리성에 구금된 7년 동안 전설시대부터 전해오던 8괘를 64괘로 늘리고 각각의 괘를 나름대로 해석하는 일을 했다. 이것이 바로 『주역』이다. 즉 전설시대의 성인 복희가 발명했다는 8괘를 주 문왕 희창이 64괘로 풀이했다고 해서 『주역』이란 이름이 붙은 것이다. 희창은 『주역』을 지으면서 만물의 이치와 변화, 그리고 통치에 대해 깊게 생각했다. 통치자의 자질에 대해서는 더 많은 고민을 했다. 인내는 자연스럽게 터득되었다. 그는 그렇게 7년을 기다렸다.
상대적 기다림: 희창의 측근인 굉요와 산의생은 은둔 생활을 하고 있던 강태공을 찾아내 그와 상의한 다음 주 임금에게 진귀한 보물과 여자를 바치고 희창을 석방시켰다. 풀려난 희창이 맨 처음 한 일은 폭군 주 임금에게 낙수 서쪽에 있는 자신의 땅을 바치며 포락이란 형벌을 폐지시켜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뇌물과 희창의 땅을 받은 주는 경계심을 늦추고 희창에게 다른 제후들을 정벌할 수 있는 권리를 주면서 서백으로 삼았다. 그러는 사이 주 임금의 폭정은 점점 더 심해졌다. 강력하게 충고하던 비간은 "성인의 심장에는 구멍이 일곱 개나 있다던데"라면서 심장을 갈라 죽였다.
주 임금은 인심을 잃었다. 백성들은 주 임금이 얼른 죽기를 갈망했다. 민심이 기울자 제후들도 하나둘 주 임금 곁을 떠났다. 예악을 담당하고 있던 태사와 소사는 국가의 상징물인 제기와 악기를 들고 주나라의 희창에게로 도망쳤다. 갈수록 서백의 세력은 점점 커져 주 임금을 압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서백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주 임금에게 충성하는 기국 같은 나라를 정벌하면서 세력을 확대했지만 주 임금을 직접 자극하는 행동은 삼갔다.
주 임금의 충직한 신하인 조이는 천하 대세가 희창에게로 넘어가고 있음을 직감하고는 주 임금을 찾아가 천명이 바뀌고 있다며 이렇게 충고했다. "하늘이 우리 은의 명을 끊으려 하기 때문에 형세를 아는 자가 거북점을 쳐봐도 좋은 것은 아무것도 안 나옵니다. 선왕들께서 우리 후손을 돕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왕이 포악해 제 손으로 끊으려 하기 때문에 하늘이 우리를 버리시는 것입니다. 백성을 편히 먹이지도 못했고, 하늘의 뜻도 제대로 살피지도 못했으며, 선왕의 법도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지금 우리 백성들은 하나같이 멸망을 바라면서 '하늘이시여, 어찌하여 천벌을 내리시지 않는 것이며, 어찌하여 천명은 빨리 오지 않는 것입니까?'라고 말합니다. 이제 왕께서는 어찌 하시렵니까?"
이 절박한 충고에도 불구하고 주는 "내가 바로 천명이거늘 무슨 걱정인가?"라고 반응했다. 결국 조이는 "주 임금은 말로는 안 되겠다"며 물러났다. 정권교체의 시기가 무르익었다. 하지만 희창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조용히 덕을 닦고 선정을 베풀면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독기가 서린 기다림: 주 임금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사람은 희창이 아니라 그 아들 발이었다. 때는 희창이 세상을 떠난 뒤였다. 발이가 바로 주 왕조를 건국한 무왕이다. 무왕도 아버지 희창의 지혜를 전수받아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동방을 정벌하고 맹진에 이르렀을 때 무려 800명이 넘는 제후들이 모여들어 내친 김에 주 임금까지 징벌하자고 외쳤지만 무왕은 때가 아니라며 군사를 물렸다. 그 후 주 임금이 완전히 민심을 잃었다고 확신하자 무왕은 지체 없이 주 임금을 공격했다. 주 임금은 목야에서 무왕과 맞붙었지만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무너졌다. 민심이 떠난 권력은 들판에 뒹구는 해골만도 못한 것이다. 주 임금은 자기 생전에 만들었던 호화스러운 녹대에 올라가 보물로 장식된 옷을 입고 불에 뛰어들어 자결했다. 집권 30년의 영욕이 잿더미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탐욕의 찌꺼기에 집착하는 추악한 모습을 보였다.
주 문왕 서백 희창은 생전에 주 임금을 얼마든지 제거하고 자신의 나라를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7년 동안 유리성에 갇혀 있으면서 '기다림과 인내의 리더십'을 터득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더 완벽한 기회를 만들어주는 '사다리 리더십'을 체득한 것이다. '소나기는 피해가라'는 말처럼 그는 가능한 백성들에게 피해가 덜 가도록 주변 여건을 조성하면서 주 임금이 스스로 무너지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통치의 본질은 안정감이다. 제 아무리 뛰어난 인재들로 구성된 정권이라도 불안정하면 성공할 수 없다. 안정의 척도는 민심이다. 주 왕조를 세우는 데 결정적인 기반을 닦은 서백 희창은 안정감을 전제로 한 기다림의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그의 기다림은 수수방관이 결코 아니었다. 자신을 수양하고 선정을 베풀며 민심을 다독이면서 기다렸다. 백성들도 미래의 리더와 함께 차분하게 기회를 기다렸다. 그것은 정말 무서운 기다림이었다. 무왕의 단 일격을 견디지 못하고 주 임금이 쓰러진 배경에는 다름 아닌 서백 희창과 백성들의 무서운 기다림이 있었던 것이다.
독기가 서늘하게 서린 기다림을 통치자는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백성들은 참을 때까지 참는다. 하지만 그 인내와 기다림 뒤에는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이 함께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백성을 마냥 허탈하게 기다리게 해서는 큰일 난다.
PART 2 진시황 리더십, 그 실체를 집중 분석한다진시황, 권력에 접근하기까지의 리더십을 살펴본다
즉위와 노심초사: 기원전 247년 장양왕이 즉위 3년 만에 죽었다. 이제 겨우 열세 살인 영정이 그 뒤를 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조나라에서 귀국한 지 불과 4년 만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에 아버지와 떨어졌고 6년 만에 아버지 나라로 와서 세 가족이 함께 산 지 4년 만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실권은 여불위에게로 돌아갔다. 즉위하자마자 진왕 정은 상국으로 있던 여불위를 '중보'로 높여 불렀다. 여불위를 아버지처럼 대하겠다는 의미였다. 나라 일은 형식적으로 어머니인 조태후와 대신들에게 위임했다. 이듬해에는 여불위의 식객으로 있던 이사를 발탁해 장사에 임명하고 자문 역할인 객경으로 모셨다. 기록상으로 진왕정과 이사의 첫 만남이었다.
얼떨결에 보좌에 오르긴 했지만 안팎의 상황은 어린 왕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우선 권력 행사는 여불위에 의해 이루어졌고, 여기에 품행이 방정치 못한 어머니까지 끼어들었다. 실권을 쥔 여불위와 태후는 옛정을 되살렸다. 꺼릴 것이 없었다. 실제 권력을 쥔 여불위, 한때 여불위의 애첩이었던 태후,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왕, 이런 최악의 조건도 없을 것이다. 한창 나이에 과부가 된 태후는 자신에게 주어진 뜻밖의 권력을 만끽하려 했고, 여불위는 자신의 입지를 확실하게 굳히기 위해서라도 태후의 유혹을 물리치기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