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지 못할 도전은 없다
임희정 지음 | 메디치미디어
이기지 못할 도전은 없다
임희정 지음
메디치미디어 / 2010년 11월 / 232쪽 / 12,000원
CHAPTER 1. 재벌가 며느리에서 '여장부 CEO'가 되다"믿겨지지 않았다"
2003년 8월 4일 새벽. 그룹 비서실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훗날 지인에게 "처음엔 애 아빠가 죽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가족들에게 정몽헌 회장의 갑작스러운 투신은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5남으로 태어난 정몽헌 회장은 아버지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황태자였다. 하지만 그는 남북경제협력 사업 과정에서 '대북 송금' 사건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던 중,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집무실 창밖으로 몸을 던지고 말았다. 아버지가 추진한 남북경제협력 사업을 열정적으로 추진하던 그였기에 안타까움이 더했다.
한때 자산 90조 원으로 재계 1위였던 현대그룹은 2000년 이래 숱한 우여곡절은 겪어 왔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손을 떼자마자 2남인 정몽구 회장(현대기아자동차 회장)과 정몽헌 회장간의 갈등인 '왕자의 난'이 일어났다. 그 후 정몽구 회장은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 인천제철 등을 갖고 현대그룹에서 분리해 나갔다. 이후 현대건설, 현대전자 등 우량 계열사들이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채권단의 손으로 넘어갔고, 그룹의 부실 규모는 34조 원이 넘었다. 그 와중에 현대중공업 계열사들까지 계열 분리되면서 현대그룹은 재계 15위권으로 주저앉았다. 이후에도 현대그룹은 대북송금, 정치권 비자금 등 여러 사건이 겹치면서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설상가상으로 정몽헌 회장이 "대북 사업을 강력히 추진해 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타계했다. 이후 현대그룹의 운명은 한 치 앞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의 관심은 "온갖 난제가 산적한 현대그룹을 과연 누가 이끌 것인가"에 쏠렸다. 정몽헌 회장은 부인과의 사이에 1남 2녀를 두었다. 당시 큰딸 지이 양은 26세, 작은딸 영이 양은 19세, 외아들 영선 군은 고등학교 3학년으로 그룹을 맡기에는 모두 너무 어렸다. 그래서 현대가인 정씨 집안에서 나선다느니, 새로운 전문 경영인을 영입할 것이라는 등 여러 가지 소문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정작 그룹의 방향키를 넘겨받은 사람은 바로 정몽헌 회장의 부인인 현정은 회장이었다. 취임식에서 그녀는 극히 절제된 말로 다음의 소감을 밝혔다.
"고 정몽헌 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현대그룹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계열사 경영에 일일이 간섭하지 않고 이사회 중심의 전문 경영인이 이끄는 책임경영체제로 그룹을 운영하겠습니다."
남편의 죽음이 있기 전 그녀는 1남 2녀를 둔 어머니로, 30년 동안 집안에서 살림만 해오던 평범한 주부였다. 한마디로 경영에 대해서는 무면허 운전자나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이런 현 회장을 걱정과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현 회장이 "두 달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얼굴 마담에 그칠 것이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남편이 남긴 부채, 깊어지는 골
1975년 초 현대중공업 선박 명명식이 있던 날. 당시 이화여대 사회학과 4학년에 다니던 현 회장은 신한해운 사장이던 아버지를 따라 울산으로 내려갔다. 그곳에 도착하자 한 어른이 직접 가방을 받아주며 안내하기에 그냥 현대 관계자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저녁 리셉션에서 그 어른이 정주영 명예회장이란 소개를 받고 깜짝 놀랐다. 훗날 각별한 정을 준 시아버지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날 정 명예회장은 그녀를 아들 몽헌의 배필로 낙점했다. 1976년 7월, 교제한 지 1년 만에 두 사람은 웨딩마치를 올렸다. 현 회장은 한국걸스카우트연맹, 대한여학사협회, 대한적십자사 등 여러 단체에서 활발히 활동했지만 결코 앞에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남편의 죽음 이후 그녀의 인생은 180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2003년 10월 21일, 현 회장은 급하게 현대그룹의 회장직에 취임한다. 현 회장이 갑자기 그룹의 총수로 나서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현 회장은 남편 사망 직후까지만 해도 자신이 직접 경영에 나설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위기가 그녀를 점점 깨어나게 했다. 남편의 죽음을 제대로 슬퍼할 겨를도 없이 시숙부인 KCC그룹의 정상영 회장이 경영권을 위협했다.
2001년 정몽헌 회장은 금호생명에서 290억 원을 대출받았다. 이때 정상영 회장은 보증을 서면서 담보를 요구했는데, 이때 정몽헌 회장은 장모인 김문희 여사(용문학원 이사장) 명의로 된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70만 주와 성북동 자택을 제공했다. 바로 이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70만 주가 "경영권분쟁" 발단의 씨앗이 되었다.
그런데 정몽헌 회장은 왜 하필이면 장모의 주식을 담보로 제공했던 것일까? 사정은 이러했다. 김문희 여사는 사위가 그룹 총수가 된 이후 돈에 쪼들리는 것을 보고는 마음이 아파 꼭 필요할 때 쓰라며 사위에게 1백억 원을 주었다. 그렇지만 정몽헌 회장은 이 돈을 받아놓고 한동안 쓰지 않았다. 그러던 중 주력 계열사인 현대건설과 현대전자가 채권단으로 넘어가고, 현대상선까지 위험한 상황이 되었다. 한국의 재벌기업은 대주주의 지분이 적기 때문에 경영권 방어 차원에서 순환출자 방법을 사용한다. 당시 현대건설은 현대상선의 최대주주였는데, 현대건설이 어려워지자 현대건설과 다른 계열사 지분을 현대엘리베이터에 팔았다.
그 후 정 회장은 장모에게 받은 1백억 원으로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70만 주(전체 지분의 18.5%)를 장모의 이름으로 사놓았다. 이때부터 현대그룹의 지주회사는 현대상선에서 현대엘리베이터로 바뀌었고, 김문희 여사는 현대엘리베이터의 최대주주가 되었다. 이와 동시에 서면상으로 현대그룹은 사실상 장모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김문희 여사는 사위의 조용한 우호세력일 뿐 현대그룹 근처에는 얼씬거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정 회장의 죽음으로 인해 모든 상황이 순식간에 변했다. 김문희 여사는 현대그룹의 운명을 좌우하는 주요 인물로 떠올랐다. 하지만 당시 김문희 여사가 75세의 고령이었고 현대그룹 경영에는 관심이 없었다. 다만 40대에 갑자기 홀로 된 현 회장이 애틋했기에 실의에 빠진 딸을 다독이면서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전체 의결권을 현 회장에게 모두 넘겼다. 그러던 중 정몽헌 회장의 상속 문제가 불거졌다. 남편이 현 회장에게 남긴 것은 용인 마북리 땅과 현대상선 주식, 그리고 어마어마한 부채였다. 이에 정상영 회장은 상중에 현 회장에게 상속을 포기하고 빚잔치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은근히 내비쳤다. 현 회장도 당시에는 정상영 회장의 걱정과 따뜻한 조언에 상속을 포기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일단 마북리 땅을 처분하여 대출금을 상환하고 숙부의 짐을 덜어주고 싶었다. "숙부님! 마북리 땅이 팔려야 되니 일단 정몽구 회장에게 사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이 말은 들은 정상영 회장은 굉장히 언짢아했다. 숙부의 어두운 표정에 영문을 알 수 없어 매우 의아해 했지만, 현 회장은 돈을 빨리 갚지 않아서 그런가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때까지도 현 회장은 정상영 회장이 어머니의 주식과 성북동 자택을 담보로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던 중 금호생명에서 빌린 대출금 원금 290억 원을 상환하라는 통지서가 날아왔다. 급한 대로 부분상환이라도 해야 하는 처지였다. 그나마 다행히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가격이 큰 폭으로 올라서 일부 변제가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290억 원 중 80억 원을 상환했다. 그런데 정상영 회장은 현 회장의 대출금 상환 소식에 또 다시 크게 화를 냈다. 돈을 갚았는데도 숙부가 화를 내자, 현 회장도 더욱 이상하게 여기고 대출 상환에 대해서 알아본다. 그리고 정상영 회장이 어머니 명의의 현대엘리베이터 주식과 성북동 집을 담보로 잡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결국 돈을 갚으면 정상영 회장은 현대엘리베이터 주식과 자택을 다시 돌려줘야 했다. 이때 처음으로 현 회장은 뭔가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 이후 정상영 회장의 상속 포기 요구는 더욱 노골적으로 변해갔다. 정상영 회장은 현 회장에게 모든 그룹 경영권을 현대 일가에 넘기고, 현대엘리베이터 하나만을 가지고 편히 살라고 요구했다. 현 회장은 계속해서 상속을 포기하라는 숙부의 말이 뭔가 석연치 않았다. 상속을 포기하면 채무에서 벗어나지만, 성북동 자택과 어머니의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은 정상영 회장의 것이 되는 것이다. 이는 현대그룹이 정상영 회장의 손으로 넘어가는 것을 뜻했다. "아, 이 분이 설마 회사를?"
현 회장은 그제서야 정상영 회장이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때부터 현 회장은 남편과 시아버지가 힘들게 이끌어왔던 현대그룹을 뺏길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강하게 들었다. 숙부가 현대그룹을 접수하기 전에 누군가 나서서 현대그룹을 지켜야만 했다. 현 회장은 무언가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 후 현 회장은 정상영 회장을 찾아가 "경영 일선에 나서겠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러나 정상영 회장은 우려를 표명하며 현 회장을 말렸다. "현대가에서는 여자가 밖으로 나선 전례가 없다. 이것은 내 뜻이기 이전에 정씨 일가, 즉 '범현대가의 뜻'이다. 경험도 없고 평생 가정에서 집안일만 하던 조카며느리가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인 현대그룹을 어떻게 끌고 갈 수 있겠느냐?"
그렇지만 현 회장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자 정상영 회장은 상속에 관한 문제로 화제를 바꿨다. "조카가 남긴 재산보다 부채가 훨씬 더 많으니 상속을 포기하고 빚잔치를 해라." 그러나 현 회장은 정상영 회장의 뜻에 수긍하지 않았다. "작은아버지! 어떠한 빚이라도 다 책임지고 제가 남편의 유지를 받들겠습니다." 자신이 상속을 포기하면 숙부가 현대그룹을 고스란히 가져가는 셈이었다. 계속되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현 회장은 남편의 백일 탈상이 끝나는 11월에 경영에 참여하기로 마음먹었다. 다행히 현대그룹은 각 계열사별로 전문 경영인 체제가 어지간히 정착되어 있었기에 자신이 나서기에도 덜 부담스러웠다.
이후 현 회장은 정상영 회장을 찾아가 다시 취임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숙부님, 애들 아빠 백일 탈상이 끝나면 나갈까 합니다." "그러지 말고, 내년 3월 주주총회에서 해라." "숙부님, 제가 대표이사를 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냥 회장에 취임하는 거니까 이사회 결의만 있으면 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날 오후 현 회장은 이상한 소문을 듣게 된다. 바로 정상영 회장이 임원들을 모아놓고 자신이 현대엘리베이터 이사회 의장을 하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더 이상 취임을 늦출 수가 없었다.
원래는 백일 탈상이 끝나고 경영에 나설 생각이었지만, 여기서 시간을 더 지체했다가는 그룹 전체가 넘어갈 상황이었다. 남편의 49재를 지낸 지 꼭 한 달 되는 날인 10월 21일, 현 회장은 서둘러 임시 이사회를 소집하고 전격적으로 회장 취임을 선언했다. 취임식도, 등기이사 등재도 생략했다. 한가하게 격식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남편의 죽음과 맞바꾼 그룹의 운명이 경각에 달려있었다.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취임 후 현 회장은 자신이 현대엘리베이터 회장으로 취임한 것이 아니라 '현대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바로 현대그룹의 계보가 '창업주 정주영 명예회장 정몽헌 회장 현정은 회장'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뜻했다.
이후 정상영 회장은 반격을 위한 물밑 작업을 시도한다. 투자회사를 활용하여 비밀리에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사들이는 등 비공개적으로 지분을 매수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기존 KCC 계열사 보유분 (3.1%), 투자회사 비분(12.5%), 현대가 지분(15.1%)을 모두 합하니 31%를 웃돌아 현 회장의 우호지분과 비슷한 수준이 되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현 회장은 별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다. 자금이라도 넉넉하다면 시장에서 주식을 높은 가격에라도 사겠지만, 그룹 전체가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기에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남편에게 상속받은 현대상선 주식이 3배 이상 오르면서 주식가가 5백억 원대에 이르렀다. 그래서 현대상선 주식 일부를 처분해 금호생명 대출금 중 남아있는 금액을 모두 상환함으로써 정상영 회장이 담보로 잡고 있는 어머니 명의의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은 모두 찾아올 수 있었다.
이에 정상영 회장 역시 그냥 바라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정상영 회장은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추가로 매수하면서 전체 지분을 40% 확보하고 현대그룹의 1대 주주로 올라선 것이다. 이에 비해서 현 회장 측 지분은 총 26.03%에 불과했다. 지분 구조를 따지면 현 회장이 경영권을 방어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정상영 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의 사실상 1대 주주가 되자 현대그룹 내부 분위기는 더욱 침체되었다. KCC 측에 그룹을 넘기자는 목소리도 나왔고, 일부 계열사는 현 회장과 정상영 회장 쪽으로 경영진이 갈리기도 했다.
특히 KCC는 현대그룹을 인수하면 대북 사업을 전면 재검토 내지는 포기한다는 입장이었다. 대북 사업처럼 50년, 100년 후에 이익이 돌아오는 사업은 국가가 맡아서 해야 하며, 사기업이 높은 시중금리로 돈을 빌려 계속할 수 있는 사업은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현 회장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대북 사업은 시아버지와 남편이 자신에게 남긴 일종의 유언 같은 것이었다. 그런 유언을 어떻게 포기하겠는가, 남편이 못다 이룬 꿈을 이어가야 하는 것은 자신의 운명이었다. 남편을 나약하거나 어리석은 사람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대북 사업은 반드시 성공해야 했다. 하지만 현 회장의 의지와 달리 난관을 돌파할 만한 뚜렷한 대책이 없었다. 이제 현 회장이 경영권을 뺏기고 일선에서 물러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국민기업화, 비장의 역습을 감행하다
당시 현 회장의 상황은 그야말로 사면초가였다. 현 회장은 현대가 집안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모두가 "비즈니스가 얽혀 있어 개입할 수 없다"는 냉정한 말만 돌아왔다. 결국 현 회장은 집안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정상영 회장과 정면으로 맞서야 할 상황이었다.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곤란한 상태였다. 그러나 극적인 반전이 시작됐다. 현 회장측이 비장의 역습을 감행한 것이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현대엘리베이터 국민기업화"라는 빅 카드를 내밀었다. 즉 현대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현대엘리베이터가 '국민주'를 발행하기로 결의한 것이다. 그러나 현 회장의 국민주 1천만 주 공모 계획은 결국 미완으로 끝나고 말았다. KCC가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신청'을 법원에 제출했고, 법원은 "신주 발행 계획은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며 KCC의 손을 들어주었다. 경영권 방어에 성공하는 듯싶던 현 회장이 다시 불리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현 회장은 법원의 결과에 실망하지 않았다. 이후 현 회장은 세심한 부분부터 반격을 시작했다. 우선 KCC가 특정 기업의 지분을 5% 이상 매입할 경우 5일 이내에 공시해야 하는 '5%룰'을 지키지 않은 것에 집중했다. 그 결과 금융감독원은 KCC 측의 지분 매입에 대해서 "적대적 M&A를 위한 의도적 행위"로 판단하고 사모펀드와 뮤추얼펀드를 통해 사들인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20.7% 전량에 대해 처분명령을 내렸다. 결국 KCC는 '5%룰' 위반으로 대주주 지위를 잃었다. 그 결과 KCC 측 지분은 24.48%, 이에 맞선 현 회장 측 우호지분은 24.41%이다. 어느 한쪽도 절대 우위를 점하지 못한 상황에서 양측의 지분이 막상막하로 박빙의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과연 이 싸움의 최후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그렇게 현 회장과 KCC의 경영권 분쟁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더욱 치열해져만 갔다.
소액주주 의결권 확보 전쟁
이제 과연 경영권 분쟁의 최후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양측의 지분이 큰 차이가 없는 이상 이제 방법은 하나였다. 바로 주주총회에서 최종 승자를 가리는 일이었다. 어느 한쪽도 절대 우위를 점하지 못한 상황이기에 양측은 또 다른 우호지분을 끌어들여야 했다. 자연히 소액주주들의 지분에 관심이 쏠렸다. 소액주주들의 지분은 전체 지분의 17%, 결국 소액주주들이 누구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그룹의 주인이 달라지는 것이었다. 이후 경영권 분쟁은 제2라운드로 접어들면서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현대그룹과 KCC는 금융감독원에 신고 절차를 완료하고 소액주주들의 위임장 확보 작업에 들어갔다. 현대그룹 계열사는 직접 방문 또는 우편 송부 등의 방법으로 의결권 확보에 나섰고, KCC 역시 소액주주의 표를 공략하기 위해 콜센터를 운영하고 신문광고, 인터넷과 이메일, 방문 권유 등으로 위임장 확보전에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