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기 전에 배워야할 서른살 리더십
백기락 지음 | 라이온북스
더 늦기 전에 배워야할 서른살 리더십
백기락 지음
라이온북스 / 2010년 11월 / 271쪽 / 13,000원Part 1_ 서른, 리더가 되다
위대한 리더의 조건
AVIS 렌터카의 CEO였던 로버트 타운젠트의 말은 위대한 리더가 조직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단적으로 표현해 준다. “사람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일터에 나온다면, 일을 함에 있어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재미를 느낀다면, 리포트나 회의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일에 집중한다면, 어딘가에 리더가 있는 것이다.”
과연 위대한 리더란 어떤 사람일까? 리더십의 정의에 비추어 볼 때 위대한 리더란 탁월한 성과를 내는 사람이다. 그것도 올바른 방법, 즉 도덕적으로 탁월한 결과를 낸 사람이다. 비록 탁월한 성과라 하더라도 부정한 방법으로 얻어냈다면 위대한 리더가 아니다. 범법자일 뿐이다. 그런데 올바른 방법으로 탁월한 성과를 내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뛰어난 성과를 내기 못하면 위대한 리더라 할 수 없다. 리더의 역량을 판가름할 수 있는 기준은 어쩔 수 없이 눈에 보이는 성과이다. 결국 어떤 조직이든 그 조직에 최상의 성과를 가져다주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그래서 리더에게는 탁월한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위대한 리더는 공통적으로 자기, 환경, 미래를 인식하고 비전 제시를 해야 한다. 먼
저 자기를 인식해야 한다. 자기를 인식해야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다.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한 채 다른 사람을 이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것은 자기 관리와 일맥상통한다. 위대한 리더들은 대부분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 자기 관리의 대가로 일컬어지는 벤저민 프랭클린은 절제, 정숙, 질서, 결심, 절약, 근면, 정직, 공정, 중용, 청결, 침착, 순결, 겸손과 같은 13덕목을 정하고 매일 지키려고 노력했다. 자기의 약점을 누구보다도 잘 파악하여 고치려고 노력해야 한다.
다음으로 환경을 인식해야 한다.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파악해야 거기에 맞는 전략을 구축할 수 있다. 즉 목적에 따라 전략의 형태가 달라져야 한다. 전시와 평화시의 전략이 같을 수 없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전략이 같을 수 없다. 걸프 전쟁 중에 대통령 선거를 치르게 된 미국 부시 대통령은 “전시에는 장군을 바꾸지 않는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어 대통령 연임에 성공했다.
또한 리더는 미래를 인식해야 한다. 위대한 리더는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다가올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20대 초반에 자신들의 사업을 구상했다.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어 판다는 목표였다. 1970년대 당시 사람들은 집에 컴퓨터를 들여 놓는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컴퓨터가 무척 컸기 때문에도 그렇고 그럴 필요를 느끼지도 못했다. 그러나 두 명의 스티브는 모든 사람의 개인 책상에 컴퓨터가 놓이는 세상이 올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가진 돈을 털어 허름한 창고에 컴퓨터 회사를 차렸다. 처음에는 목표를 이루는 것이 힘들어보였다. 그러나 모든 개인이 컴퓨터를 가지게 될 때를 대비해 저렴한 개인용 컴퓨터를 만든다는 비전을 실행했다. 그리고 6년이 지난 뒤 65만대의 개인용 컴퓨터를 팔았다. 그들은 미래를 내다 볼 줄 아는 훌륭한 리더다.마지막으로 리더는 조직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비전이 큰 사람이 리더십을 발휘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비전을 사람들에게 계속 전파하고 공유하도록 설득시켜서 함께 가도록 유도해야 한다. 조직 내에서도 개인과 조직의 비전이 충돌하기 때문에 리더는 그것을 잘 조화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리더는 야망을 가져야 한다. 지금은 우리 회사가 구멍가게지만 10년 뒤에는 큰 기업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 비전을 조직원들과 공유하고 함께 성공을 나누자고 제시해야 한다.
혹시 “난 리더의 자격이 없어”, “난 팀을 이끌고 있지 않으니 리더가 아니야”라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인간관계를 맺으며 사는 모든 사람은 기본적으로 리더십이 필요하다.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리더십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좁게는 상대방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에서부터 넓게는 상사와 부하직원을 상대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인간관계를 통해 ‘원하는 성과’를 얻어내는 모든 활동이 리더십이다. 성과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리더십이 반드시 필요하다.
리더의 4가지 유형
최근까지도 리더십은 유명한 리더들의 공통점을 분리해 내는 데 치중했다. 그러나 비록 공통점이 있다 해도 그 공통점을 골고루 갖춘 리더십이 실제 현실에서 완벽하게 들어맞는 경우는 없고, 대부분의 리더들도 완벽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은 성과를 내는 리더는 존재한다. 리더십의 가장 큰 원칙은 팔로어들을 목표에 참여시키고, 목표 달성을 통해 성과를 내는 것이다. 이 점만큼은 어떤 리더십이라도 부정할 수 없는 핵심 원칙이다. 그런데 목표를 실현하는 리더들이 모두 같은 행동을 취하는 건 아니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필자는 리더의 유형을 ‘사고’, ‘감정’, ‘행동’, ‘환경’에 따라 나누고자 한다. ‘사고의 유형’은 다시 직관적 리더와 합리적 리더로, ‘감정의 유형’은 직선적 리더와 공감적 리더로, ‘행동의 유형’은 주도적 리더와 동행적 리더로, ‘환경의 유형’은 위기 상황과 기회 상황에 맞는 리더로 나눈다. 이렇게 하면 8가지로 리더의 유형이 분류된다.
사고의 유형으로 본다면 합리적인 리더가 있고 직관적인 리더가 있다. 스티브 잡스는 어디에 들어갈까? 그는 직관적 리더이다. 그는 스스로도 시장 조사 같은 것은 안 믿는다고 얘기한다. 자신의 직감과 감각을 믿었다. 가령, 마차만 존재하던 시절에 소비자들에게 ‘어떤 교통수단이 있었으면 좋겠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 더 빨리 달리는 마차’라고 말할 것이다. ‘자동차’라는 창조물은 탄생할 수 없다. 그러나 세상을 변화시킨 창조적인 제품은 과거가 아닌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에 의해 개발된다. 스티브잡스가 고정관념을 깨는 창조적인 제품을 생각해 낸 것도 미래를 예측한 자신의 감을 믿었기 때문이다. 직관적인 리더가 합리적인 리더보다 ‘훌륭하다’는 것이 절대 아니다. 급변하는 글로벌 비즈니스 사회에는 잡스와 같은 직관적인 리더가 빛을 발한 확률이 더 크다는 것이다.
감정의 유형에는 직선적인 리더가 있고 공감적인 리더가 있다. 공감이라는 것은 조직원들과 함께 웃고 함께 우는 것을 말한다. 반면 어떤 사람은 감정에 변화가 없다. 이순신 장군의 경우는 직석적인 리더다. 감정을 거의 표현하지 않았다. 그가 임진왜란 중에 쓴 〈난중일기>를 읽어보면 굉장히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겉으로 그 감정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가 인간관계에서도 감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노약자와 어린이를 불쌍히 여기고 부하들을 자기 자식처럼 아꼈다. 단 자신이 수행해야 하는 일을 함께 있어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감정 상태를 잘 드러내서 조직원들을 리드하는 리더도 있다.행동의 유형에는 일을 벌일 때 주도하는 리더가 있고 묵묵히 조직원들과 함께 하는 리더가 있다. 주도하는 리더의 대표적인 경우가 ‘나를 따르라!’ 형이다. 이를테면 나폴레옹 같은 사람이다. 그는 전투 상황이 위기에 빠질 것 같으면 자기가 깃발을 들고 앞장섰다. “나를 따르라!” 하며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가는 장수를 따르지 않을 군인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그는 전장에서 위대한 리더였다. 그의 지휘 아래 프랑스는 군사 수가 열세였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을 제패하는 나라가 되었다.
환경 측면에서 보자면 기회를 실현하는 데 위대한 리더가 있고 위기를 극복하는 데 위대한 리더가 있다. 이순신 장군은 당연히 위기를 극복하는 데 위대한 리더다. 만일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이순신 장군이 오늘날과 같은 영웅이 될 수 있었을까? 임진왜란 전과 후의 그를 비교해 보자. 평시의 그는 평범한 장군이었다. 실제로 썩 훌륭한 장수는 아니었다. 28세라는 늦은 나이에 무과에 급제했고 그 뒤에도 불의에 타협하지 않은 올곧은 성격으로 변방의 낮은 직급에만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가 전쟁이 나자 갑자기 그의 리더십이 발휘된다.
위기에 빠진 조직이라면 리더는 비전을 줘야 한다. 위기에 빠진 조직은 스스로 비전을 만들 수 있는 역량이 없다. 임진왜란 때 일본에 계속 패하기만 했던 조선 수군을 이순신 장군은 그대로 놔두지 않았다. 평시와는 다른 엄격한 규율을 적용하고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했다. 육군이 대패했던 당시 상황에서 해전에서의 패배는 곧 국가가 망하는 것을 의미했다. 한 마디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따라서 단 한 번의 패배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 그러나 위기가 없는 평시에는 잘 나가는 조직은 그냥 두어도 알아서 잘 된다. 이런 조직에 리더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고 나설 필요가 없다.
리더가 어떤 리더십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성과는 극과 극이 될 수 있다. 필자는 리더의 유형을 8가지로 나눠 보았는데, 그것을 ‘보다 더’라는 뜻이지 한쪽으로만 그렇다는 것은 아님을 명심해주기 바란다. 또 모든 리더의 유형에 우열은 없다 주변의 환경, 조직원의 특성, 인간관계 등에 따라 적용되는 리더십이 다르기 때문이다. 단, 자신에게 맞지 않는 리더십을 좆는 것은 결과적인 측면에서 그다지 좋은 접근법이 아니다. A라는 회사의 경영자가 훌륭한 성과를 냈다고 해서 무작정 그를 따라 해서야 되겠는가. 내가 이끄는 조직에도 잘 맞고 내가 발휘할 수 있는 역랑에도 잘 맞는 리더십 유형을 찾아야 한다, 만약 그게 어렵다면 역할 모델을 설정하는 것도 좋다, 나의 역량과 주어진 조건 등에 부합하는 리더를 찾고, 그의 전철을 밟아가는 것도 좋은 리더가 되는 한 방법이다.
이제 역사상 존경받는 위대한 리더 9명을 이 4가지 유형에 따라 분류해보고 그들이 사고, 감정, 행동, 환경 유형에 따라 어떤 리더십을 발휘했으며, 그로 인해 어떤 ‘위대한’ 성과를 냈는지 살펴보자.
Part 2_ 위대한 리더 9인의 위대한 리더십
위기극복형 리더 -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다
[윈스턴 처칠: 독한 시가를 물고서 영국을 구한 불굴의 리더]: 얼마 전 영국 BBC방송국에서 최고의 정치가를 묻는 설문에서 처칠은 1위를 차지했다. 처칠은 전쟁과 위기 때 리더십을 발휘한 20세기 최고의 지도자이다. 오늘날에도 영국 국민들은 가장 존경하는 리더, 위기 상황에 가장 훌륭한 리더십을 발휘한 리더로 처칠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처칠은 위기 상황에 처한 국민들의 사기를 높이고 용기와 희망을 갖게 한 지도자였다. 그는 승리를 믿었다. 승리를 믿는 사람은 승리할 수밖에 없다. 뜻하지 않은 위기 상황에 맞닥뜨린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처칠은 위기 상황을 통해 더 강해질 수 있음을 역설했다. 최악의 상황을 최고의 상황으로 역전시킨 처칠에게는 어떤 리더십이 있었을까?
첫째, 치밀한 외교술을 발휘했다. 처칠은 뛰어난 외교가였다. 그는 겸손하고 관대했으며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다. 어머니가 미국 출신이었던 그는 미국이 얼마나 강한 나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참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었다. 처칠은 미국을 전쟁에 끌어들이기 위해 미국 지도층과 관계를 돈독히 했다. 특히 용기를 좋아하는 미국인들의 특성을 이용, 결코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비굴하지 않았다. 진주만 사건 이후 바로 루즈벨트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고, 끝없는 대화를 통해 미국의 참전을 이끌어냈다. 마침내 영국은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인적, 물적 자원을 지원받아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사실 당시의 미국은 유럽과는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전쟁에 참전할 의사가 없었다. 무엇보다 미국은 영국에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프랑스처럼 영국도 나치 독일에 항복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제공한 군수물자는 모두 날려버리게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처칠도 그러한 미국의 갈등을 꿰뚫고 있었다. 그는 새로운 동맹자인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영국이 결코 지지 않는다는 것을 강력하게 피력했다.
둘째, 패배와 좌절에서 배움을 얻었다. 처칠의 용기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는 이전에 겪은 수많은 패배와 좌절에서 배움을 얻었다. 유력한 가문 출신이었던 처질은 25세라는 젊은 나이에 하원의원에 당선되고 이후 해군장관까지 올랐지만 성공은 오래가지 못했다. 1915년 제1차 세계대전 와중에 다르다넬스 전투에서 참패를 당하고 해군장관직에서 해임되었다. 그 후 재무장관으로 복귀했지만 경제침체와 대량실업 문제가 발생하자 그 자리에서도 물러나야 했다. 그의 불운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도 불운이 겹쳤다.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대공황으로 인해 재산마저 탕진하고 간신히 생활해야 했던 것이다. 상황이 불리했지만 그는 용기를 잃지 않았다. 실패와 좌절 속에서 주저앉는 대신 상황을 분석하는 힘을 길렀다. 그리고 세계정세를 냉정하게 분석했다. 1930년대 영국에서는 히틀러를 중요하지 않게 생각했지만 처칠은 히틀러를 위험인물로 판단했다. 하지만 그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치 독일의 힘이 강해지고 마침내 전쟁이 일어나면서 그의 판단이 옳았음이 입증되었다.
셋째, 긍정적인 마인드를 잃지 않았다. 처칠은 역사상 위대한 리더 중에서도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위트와 유머,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는 나치 독일의 런던 대폭격이 있는 와중에도 승리에 대한 확신을 잃지 않았다. 그는 피폭 지역을 찾아가 연설을 하며 항상 손으로 승리의 V자를 지으며 웃음을 잃지 않았다. 사람들은 수상의 그런 모습을 보며 용기를 가졌을 것이다. 또 어떠한 위기 상황에서도 유머 감각을 발휘해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나치 독일과의 전쟁을 앞두고 겁에 질린 그의 며느리가 “전쟁이 일어나면 저는 무엇을 해야 하나요?” 하며 묻자, “독일 공수 부대가 우리 집에 쳐들어올 것에 대비해 부엌칼이라도 준비해두렴”이라고 대답했다.
넷째,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처칠은 아무리 상황이 절박하더라도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굴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절대로 굴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크든 작든 간에 어는 것에도 절대로 굴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명예와 선의를 제외하고는 어느 것에도 굴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처칠이 1941년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자신의 모교인 해로우 학교에서 한 연설이다. 이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처칠은 어떤 악조건에 서도 강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결코 항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영국이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한 순간도 버리지 않았다. 전 유럽이 나치 독일에 점령당한 절망스러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처칠은 패배의 가능성이 더 높았던 때에도 승리를 외쳤다. 그는 ‘우리의 목표는 오로지 승리’라며 ‘승리가 없으면 생존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섯째, 내 편을 격려하고 칭찬했다. 처칠은 전시라는 위기 상황을 지휘하는 리더였기 때문에 철저하고 엄격했다. 그러나 한편 칭찬의 중요성도 잘 알고 있었다. 직위에 상관없이 격려하고 칭찬했는데, 이는 조직원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처칠은 군수장관이었다. 그는 군수품을 조달하면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근로자들도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1918년 그는 의회에서 탄피를 여성노동자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군수공장을 방문하면 항상 모든 직원들의 노고부터 칭찬했다.
헌신형 리더 - 희생으로 세상을 밝히다
[테레사 수녀: 지극한 헌신을 통해 지극히 강한 영향력을 얻다]: 테레사 수녀는 종교와 인종을 떠나서 한 인간을 하느님 대하듯 섬기고 참사랑을 몸소 실천했다. 그녀는 겉으로 보기에는 늙고 연약했지만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의 위로자이자 전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 위대한 리더였다. 뚜렷한 비전과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남을 섬길 줄 알았던 그녀의 리더십의 비결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