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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과 권력

엘리아스 카네티 지음 | 바다출판사
군중과 권력

엘리아스 카네티 지음

바다출판사 / 2010년 10월 / 658쪽 / 25,000원




1. 군중

인간은 언제 어디서나 낯선 것과의 접촉을 피한다. 밤에 또는 어둠 속에서, 전혀 예기치 못한 접촉에 대한 두려움은 심리적인 공황 상태로까지 치달을 수 있다. 인간이 주변 공간에 대하여 거리를 두는 것은 이 접촉에 대한 공포 탓이다. 우리는 아무도 못 들어오게 문을 닫아걸고 자기 집 안에 있을 때에만 어느 정도 안전함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이 접촉의 공포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군중 속에 있을 때뿐이다. 이때는 두려움이 오히려 정반대의 감정으로 변한다. 이때 인간은 ‘밀집된 군중', 즉 몸과 몸이 밀착되어 누가 누구를 밀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물리적으로 빽빽이 들어찬 군중을 필요로 한다. 군중 속에 놓이는 순간 인간은 닿는 게 두렵지 않게 된다. 이상적인 경우에 거기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어떠한 구별도 없으며 성별 차이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군중은 생겨나는 그 순간부터 더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가세하길 바란다. 성장하려는 욕구, 이것이야말로 군중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다. 그래서 자연적 군중은 ‘열린 군중'이다. 이 군중의 확장에는 한계가 없다. 이 군중은 집도, 문도, 자물쇠도 인정하지 않는다. 빗장을 채우는 자는 수상한 자이다. 여기서 ’열린‘이란 단어는 가장 완전한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열린 군중은 그 자체가 성장하는 한 존재한다. 성장을 멈추는 그 순간부터 열린 군중은 와해된다. 군중은 갑작스럽게 생겨난 것처럼 갑작스럽게 와해된다. 무한히 확장 가능한 ’열린 군중‘과 대조되는 것이 ’닫힌 군중'이다. 닫힌 군중은 성장을 포기하고 영속성에 역점을 둔다. 울타리는 무질서한 증가를 막기도 하지만, 일단 형성된 군중의 해산을 어렵게 함으로써 이를 지연시키는 역할도 한다. 닫힌 군중은 이런 방법으로 확장의 기회를 희생시키는 대신 영속성을 획득한다. 그 구성원들은 언젠가 다시 모일 기약이 있으므로 흩어짐을 용납할 수 있다. 그것이 있는 한, 그들은 동일한 방식으로 다시 모일 수 있을 것이다.



군중 내부에서 일어나는 가장 중요한 사건은 ‘방전(’구속상태로부터의 해방, 에너지의 폭발과 방출‘ 현상을 포괄적으로 함의하고 있다)이다. 방전이 일어나기 전의 군중은 본질적으로 군중이 아니다. 방전이 있어야만 비로소 군중이 생성된다. 방전의 순간에 군중의 모든 구성원은 그들간의 차이를 제거하고 평등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토록 염원하였고 그토록 행복한 이 방전의 순간은 자체 내에 위험성을 안고 있다. 방전의 순간은 근본적으로 환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람들은 갑자기 평등감을 느끼지만 그들이 실제로 평등한 것은 아닐뿐더러 영원히 평등해질 수도 없다.



군중의 특징으로 다음의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군중은 언제나 성장하기를 원한다. 둘째, 군중의 내부에는 평등이 지배하고 있다. 셋째, 군중은 밀집 상태를 사랑한다. 넷째, 군중은 하나의 방향을 필요로 한다. 군중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어떤 군중이고 모두 이 네 가지 특징을 지닌다. 네 가지 중 어느 특징이 더 강하냐에 따라서 군중의 분류가 이루어진다. 이 분류는 군중의 확장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그 확장에 장애가 없는 한 열린 군중이고 확장에 일정한 제한이 가해져 있으면 닫힌 군중이다. 군중의 또 다른 분류는 ‘율동적 군중'과 정체(停滯)된 군중'이다. 이것은 평등성과 밀도 두 가지 속성을 동시에 고려해서 행해진 분류이다.



군중이 자신을 존속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그리고 때로는 유일한 가능성은 그와 관련된 제2의 군중이 존재하는 데 있다. 두 군중이 운동 경기의 경쟁자로서 힘을 겨루건, 아니면 서로 심각한 위협을 주고받건 간에, 제2의 군중을 목격하는 것, 혹은 단지 그 강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제1의 군중의 와해가 저지된다. 사람들은 자기편 사람들과 육체적으로 서로 가까이 있게 됨으로써, 그들과 하나의 친근하고 자연스런 단위를 이룬 가운데 행동하게 된다. 한편, 모든 호기심과 기대 또는 모든 공포는 명백한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는 제2의 집단에게 향한다. 사람들의 모든 행동은 이 제2의 집단이 어떻게 행동하고 무엇을 의도하는가에 달려있다. 이 체계의 기원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세 가지 기본적인 대립 관계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 세 가지는 인간이 존재하는 곳이면 어디에나 있으며 우리가 아는 모든 사회 안에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이다. 첫째로 가장 두드러진 것이 남과 여의 대립이고, 둘째는 산 자 와 죽은 자의 대립이다. 셋째는 친구와 적의 대립인데, 이것은 오늘날 사람들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두 군중을 이야기할 때, 항상 마음속에 떠올리는 것이다.



2. 무리

군중의 오래된 단위 집단이 바로 무리이다. 무리는 인간이 10명, 20명씩 소규모의 떼를 지어 돌아다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공동체적 흥분의 형식이다. 무리의 특징은 성장할 수 없다는 점이다. 무리의 바깥쪽은 완전 공백이며, 거기에는 추가로 가담해줄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무리는 더 많아지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에 휩싸인 사람들의 집단이기도 하다. 이러한 집단들은 때때로 강력한 일체감을 발휘하는데, 이 경우의 집단이 바로 무리이다. 무리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제약을 받는다. 무리는 그 구성원 총수가 비교적 적을 뿐만 아니라 서로를 잘 알고 있다. 그들은 항상 함께 살아왔으며, 날마다 서로 만나고 여러 가지 일을 함께 해내는 동안 서로가 상대방의 가치를 정확히 알게 된다. 즉, 무리는 서로 잘 아는 자들로만 구성되기 때문에, 비록 적대적인 환경이 그들을 일시 흩어놓더라도 그들은 언제고 다시 모여 무리를 이룰 수 있다. 다시 말해, 무리는 구성원들이 생존해 있는 한 재회라는 방법을 통하여 그 지속이 보장된다.



무리는 발생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네 가지 다른 형태, 다시 말해 기능이 있다. 이 네 가지는 모두 유동적이고, 서로가 다른 것으로 쉽게 변화한다. 그러나 우선은 그들 각자가 개념적으로 어떻게 다른지를 확실히 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자연발생적이고도 순수한 무리 형태는 무리의 어원에 해당하는 사냥 무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무리는 한 사람 단독으로는 포획하기가 매우 위험한 맹수를 목표물로 하는 인간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형성된다. 무리의 둘째 형태는 전투 무리이다. 전투 무리는 당연히 적대적인 제2의 무리를 전제하고 있다. 설령 제2의 무리가 아직 형성되지 않은 상태일지라도 그런 무리가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느끼고 이 가상의 적에게 맞서려 한다. 셋째 형태는 애도 무리이다. 이 무리는 구성원중의 하나가 죽음으로 인해 집단에서 떨어져나갔을 때 형성된다. 넷째로, 증식되려는 욕망을 가진 일련의 현상들, 이것이 증식 무리이다. 이 무리는 동물이든 식물이든 의도하는 각종 생물들이 더 늘어나게 하기 위해서 형성된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 군중의 기본적 속성 중의 하나인 성장 욕구는 대단히 일찍, 그 자체로서는 성장 능력이 없는 무리의 상태에서부터 나타났다고 보아야 한다.



위에서 든 네 가지 상이한 형태의 무리를 검토해보면 놀라운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 네 가지는 하나가 다른 하나로 바뀌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 무리의 변환만큼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없다. 규모가 작고 비교적 고정적인 인적 구성 양식인 무리에서 이미 군중의 특징인 불안정성이 엿보이는 것이다. 무리간의 변환이 이따금 특이한 종교적 현상을 일으킨다.



3. 무리와 종교

무리가 추구하는 목표에 도달한다는 것 자체는 필연적으로 그 무리의 구조상의 변화를 야기하게 된다. 공동사냥은 성공할 경우 분배를 낳는다. 적을 살육하는 것이 목표인 ‘순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승리는 약탈이라는 것으로 변질된다. 애도는 죽은 자를 치움으로써 끝난다. 사람들이 원하는 장소로 죽은 자를 옮기고, 그래서 그들이 죽은 자로부터 다소 안전하다고 느끼게 되면 무리의 흥분은 가라앉고 무리의 구성원들은 흩어진다. 그러나 그들과 죽은 자의 관계는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사람들은 죽은 자가 어딘가 다른 곳에서 삶을 계속한다고 여기므로, 자기들을 돕거나 충고해줄 수 있도록 다시 불러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죽은 자를 불러오는 의식에서 애도의 무리가 재형성된다. 그러나 이제 무리의 목표는 원래의 목표와 정반대가 된다. 이 같은 변환 중 어떤 것들은 특별한 의미를 얻어 의식(儀式)이 된다. 여기서 의식은 모든 중요한 신앙 행위의 핵심이 된다. 무리의 동태성(動態性) 및 무리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독특한 종류가 세계종교의 발생 기원을 말해준다. 유사 이래 전 지구상에 확산되어 지구를 통합시킨 애도의 종교를 이해하기 위해 이슬람교의 한 종파와 기독교를 살펴보자.



전쟁의 종교로서의 이슬람교

독실한 이슬람교도들은 네 가지 방법으로 모인다. 첫째, 저 높은 곳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따라 매일 수 차례씩 기도를 위해 모인다. 둘째, 이교도를 상대로 한 성전을 위해 모인다. 셋째, 대규모 성지 순례 기간 동안 메카에서 모인다. 넷째, 최후의 심판일에 모인다. 모든 종교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슬람교에서도 보이지 않는 군중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이 보이지 않는 군중은 다른 어느 세계종교에서보다도 이슬람교에서 더욱 뚜렷하게 상호 대립하는 ‘보이지 않는 이중 군중’의 성격을 갖는다. 이슬람교에서 군중의 양분은 절대적인 것이다.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은 영원히 분리되어 서로 싸우도록 운명지워져 있다. 종교 전쟁은 신성한 의무이며, 따라서 최후 심판일의 이중 군중은 덜 포괄적인 형태이기는 하지만 속세의 모든 전투에서도 그 성격이 나타난다.



어느 탁월한 이슬람교 전문가는 이렇게 말한다. “마호메트는 전투와 전쟁의 예언자이다. 그가 아랍 세계에서 처음으로 행했던 것을 그는 자기 사회의 장래에 대한 성약(聖約)으로 남겨놓고 있다. 그것은 이교도들을 상대로 한 싸움, 즉 신앙의 확장이라기보다 알라신의 힘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일이다. 이슬람교를 위한 전사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교도들을 개종시키는 것보다도 그들을 정복하는 것이다.” 신의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예언서인『코란』은 이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신성한 달들이 지나면 이교도들을 죽여라. 어느 곳에서 그들을 발견하더라도, 그들을 체포하라, 그들을 포위하라. 그들을 매복하여 습격하라.”



카톨릭과 군중

편견 없는 관찰자에게 카톨릭은 완만함과 고요함, 관대함을 보여준다. 카톨릭이라는 이름 자체가 그들의 대의, 즉 누구라도 받아들일 여지가 있다는 보편성이란 어의를 지니고 있다. 카톨릭은 모든 사람이 카톨릭에 귀의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관대함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매력이 되고 있는 카톨릭의 고요함은, 카톨릭이 오랜 연륜을 갖고 있으며 떼지어 북적대는 모든 일을 싫어하는 데 기인한다. 군중에 대한 카톨릭의 의혹은 오랜 뿌리를 지니고 있어, 이에 대비한 갖가지 방안을 강구하게 되었다. 우선 제의 그 자체를 살펴보자. 이것은 신도들의 모임에 대해 가장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다. 카톨릭의 경우 이 제의는 다른 종교들이 감히 넘볼 수 없을 만큼 신중하다. 빳빳하고 무거운 의복을 걸친 사제의 둔중한 몸놀림과 신중한 걸음걸이며 끝을 길게 늘이는 말씨 등은 모두 애도감을 끝없이 묽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



신도간의 결합 역시 몇 가지 방식으로 방해를 받고 있다. 어느 신도가 다른 신도에게 설교하지 못한다. 평신도의 설교에는 아무런 신성함이 깃들지 못한다. 말씀의 신성함은 그 평신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두어야 한다. 그가 지은 죄까지도 사제에게만 고해해야 한다. 영성체를 행하는 방식에서도 함께 성체를 영하는 신도들이 그 자리에서 일체감을 느끼지 못하도록 만든다. 영성체를 하는 사람은 자신을 위해서 성체를 받는다. 성체에서 원망(願望)하는 것도 자신을 위해서이며, 성체를 지켜야 하는 것도 자신을 위해서이다. 카톨릭이 매우 중요시하는 이러한 절차 속에서, 우리는 군중의 기미를 보이는 모든 것에 대한 카톨릭 교회의 조심성을 엿볼 수 있다.



4. 군중과 역사

'국민이란 무엇인가‘를 규명해보려는 시도들 중 대부분은 본질적인 결점이 있었다. 즉, 그런 시도들은 국민성의 일반적인 개념을 정의하는 데 그쳤다. 사람들은 옳은 정의만 찾아내면 만사가 해결된다고 믿으면서, 국민은 이러저러한 것이라고 말해왔다. 일단 그런 정의가 발견되면, 그것이 모든 국민들에게 동등하게 적용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언어나 영토, 문학, 역사, 정부 형태 또는 이른바 국민감정들을 인용했다. 그런데 어느 경우에나 예외가 원칙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겉으로 보기에는 객관적인 이 같은 접근방법과는 달리 단 하나의 국민, 즉 자기 국민에만 관심을 두고 나머지 모든 국민에게는 무관심한, 좀더 순진한 또 하나의 접근방법이 있다. 이 방법은 자기 국민의 우월성, 즉 자기들의 위대함에 대한 예언적 비전과 도덕적인 것과 잔인한 것이 뒤섞인 자부심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 자신이 관계되어 있다고 느끼는 더 큰 단위는 언제나 ‘군중’이거나 ‘군중 상징’이다. 그 단위에는 언제나 군중이나 군중 상징의 몇 가지 특징, 다시 말하면 인구 밀도, 성장 및 무한한 개방성, 매우 놀라운 결속력, 공통된 리듬이나 갑작스런 방전이 있다. 그러나 이런 군중 상징들이 적나라하게 또는 고립된 상태로서는 절대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한 국민의 모든 성원은 항상 자기 국민에게 가장 중요한 것으로 된 특정 상징과의 뗄 수 없는 관련 속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어느 순간 필요할 때마다 그 상징이 정기적으로 나타나는 데서 국민 감정의 영속성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한 국민의 자의식은 그 상징이 변할 때 바로 그때라야만 변한다. 그것은 생각보다는 잘 변하는 편이다. 바로 그런 사실이 인류가 계속 존속할 수 있다는 희망을 조금이나마 갖게 해준다.



5. 권력의 내장

한 동물이 다른 동물에게 적대적인 의사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은 몇 가지 분명한 행동으로 나뉜다. 우선 먹잇감을 엎드려 기다리는 잠복이 있다. 우리는 기꺼이 만족스러운 감정을 가지고서 그것을 생각하고 응시하고 감시한다. 다음의 단계는 먹잇감과 최초의 ‘접촉’이다. 한쪽의 다른 쪽에 대한 의도는 접촉하는 순간부터 구체적인 것이 된다. 접촉의 다음 단계는 붙잡기이다. 손가락을 우묵하게 만들어서 접촉된 대상의 일부를 움켜잡으려 한다. 이 단계에서 그 먹잇감이 다치든 말든 그것은 상관없다. 다만 먹잇감의 몸의 어떤 부분을 전체에 대한 담보로서, 손 안의 공간 속으로 집어넣어야만 한다. 인간의 경우, 한 번 잡으면 절대로 그대로 놓아주는 일이 없는 손이 바로 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그는 그의 손에 넘겨졌다.”, “그는 그들의 수중에 들어갔다.”, “그 일은 신의 손에 달려 있다.” 이상과 같은 표현에서 손은 공통적으로 권력을 의미한다.



먹잇감의 실제적인 ‘흡수’는 입에서 시작된다. 손에서 입으로 이르는 과정은 우리가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이 통과하는 통로이다. 붙잡을 팔이 없는 많은 동물의 경우에는 그 과정이 입 자체나 이빨, 아니면 입에 튀어나온 부리로 시작된다. 사람이나 많은 동물들의 신체에서 가장 현저한 권력의 도구는 이빨이다. 이빨의 가지런함이나, 반짝거리면서도 매끄러운 모습은 신체의 다른 어떤 부분과도 완전히 다르다. 이빨은 모든 질서 중에서 으뜸가는 것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빨의 명백한 특성인 매끄러움과 질서는 바로 권력의 속성이 되었다. 그런 특성은 권력의 본질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며, 권력이 출현하면 언제나 그런 특성들이 가장 먼저 정립된다. 권력과 이빨의 그런 특성 사이의 관련은 원시시대의 도구들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그러나 권력이 성장함에 따라 이런 도구들이 가진 초기의 특성도 성장하였다. 돌로부터 금속으로의 도약은 매끄러움이 증가하는 방향으로의 가장 큰 도약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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