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란 무엇인가
조셉 자보르스키 지음 | 에이지21
리더란 무엇인가
조셉 자보르스키 지음
에이지21 / 2010년 8월 / 356쪽 / 16,000원PART 1 여행 준비
워터게이트 사건 / 성공한 인생 / 여행이 시작되다
1972년 9월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졌고, 이듬해 아버지가 특별검사직을 맡았으며, 1974년 닉슨 대통령이 결국 사퇴했다. 이 사건은 개인적으로 나에게도 깊은 흔적을 남겼다. 나는 대통령 자리에 있는 사람을 다시 온전히 신뢰할 수 있을까 의문스러웠고, 이는 정치 리더십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 리더십의 전반적인 문제라고 보았으며, 개인적으로 진정한 책임감을 느꼈다. 과연 어떻게 이런 문제에 대처하고 진정한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나의 남은 인생을 바칠 중대한 변화를 향한 씨앗은 이미 뿌려진 셈이었다. 하지만 내가 씨앗이 자랄 환경을 만들고 능력을 키우기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그동안 변호사로 일했고 누가 봐도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여자 친구 프랜과 결혼했고, 아들이 하나 있었다. 프랜과 나는 바쁜 생활을 그럭저럭 잘 헤쳐 나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1967년에 아버지와 나는 목장에서 단거리 경주마 사육 사업을 시작했고, 1970년에는 법률회사 일이 늘어나면서 동료들과 함께 장시간 휴스턴을 떠나 있는 일이 늘었다. 열심히 일하고 승리를 자축하는 파티에도 열심이었다. 게다가 우리가 방문하는 모든 지역에 애인을 두고 있는 동료들도 많았다. 이는 당시 생활방식의 일부였고, 나도 거기에 대해서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어떻게 파편화된 존재양식을 그렇게 오래 유지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성도 없고 헌신적인 마음 자세도 결여된 그런 생활을. 그때는 그것이 멋진 삶인 줄 알았다. 하지만 사실은 삶을 전혀 몰랐던 것이었다. 그때 나의 삶은 말하자면 디즈니월드 같은 것이었다. 보기에는 환상적이지만 진짜가 아닌 허구에 너무나 편협하고 빤해서 어떤 실질적인 의미도 찾기 힘든 그런 삶. 많은 사람들에게 그러하듯 환상의 끝은 개인적인 위기라는 형태로 나를 찾아왔다.
1975년이었다. 나는 주말에 목장에서 사냥을 한 다음, 일요일 저녁에 휴스턴으로 돌아왔다. 막 서재로 들어와 소지품을 내려놓는데 프랜이 말했다. “앉아 봐요.” 자리에 앉자 그녀가 말했다. “조, 이혼해요.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나한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당시 프랜은 휴스턴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수업에서 누군가를 만났고 사귀고 있다는 것이었다. 별거 기간에도 이혼한 다음에도 나는 사무실에 가서 일을 했지만 이른 아침과 늦은 밤이면 혼자였고 그런 시간이면 스스로를 곰곰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와보니 누나 조니에게서 작은 소포가 와 있었다.
휴 프레이더가 쓴 『조금만 더 일찍 나를 알았더라면』라는 제목의 책이 들어 있었고, 어쩌면 이것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는 누나의 메모가 곁들여져 있었다. 그날 저녁 읽기 시작했는데 다 읽을 때까지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 책은 자아발견을 위한 여행을 시작한 사람의 자아성찰 내용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자아성찰적인 글쓰기의 위력을 알 수 있었다. 나도 낱장 메모지에 같은 형식으로 글을 써서 매일 서류철에 보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중에 몇 달 전에 쓴 글들을 찾아 다시 읽어보곤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변해가는 모습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자유 / 사랑의 기술
1976년 9월 나는 회사에서 소송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담당 판사가 재판에 대한 7주간의 휴정을 명했다. 나는 생각지 않은 자유의 몸이 되어, 유럽 여행을 떠났다. 프랑스를 여행하는 동안 나는 성당들에 매료되었고, 주변을 서성이며 자유의 두 가지 개념에 대해서 생각했다. 첫 번째는 ‘벗어나는 자유’, 말하자면 환경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였다. 과거 15년 동안 내가 주로 느낀 것이 바로 순응하는 삶에서 벗어나고픈 욕구였다. 하지만 이즈음 또 다른 개념의 자유가 심연에서 의식의 표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전심전력을 다해 삶의 목표를 좇아가는 자유, 동시에 통제하거나 억지로 ‘만들어내지 않고’ 삶의 창조적 기운이 나를 통과하여 움직이도록 내버려두는 자유, 이런 자유는 찾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있다. 방법은 우리의 의식 수준을 바꾸고, 스스로에 대한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유럽 여행 도중 나는 많은 시간을 책을 읽고, 생각하고, 일기를 쓰면서 혼자 보냈는데, 결혼이 와해되기 직전까지 내가 아무런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이유는 뭘까 생각하며 읽었던 책이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었다. 프롬의 논지는 인간 실존 문제에 대한 유일하게 만족스러운 해답이 사랑이고, 사랑하는 것은 하나의 기술이며, 사랑의 이론뿐만 아니라 실천까지 숙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행 마지막 주에 나는 프랑스 칸에 도착해서 펠릭스라는 레스토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고, 그곳에서『사랑의 기술』을 다시 읽고, 내용을 꼼꼼하게 검토하고 완전하게 나의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때때로 책을 내려놓고 레스토랑 밖에서 걸어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봤다. 그 때 행인들 중에 커다란 갈색 눈을 가진 매력적인 젊은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무척 활기찬 걸음걸이로 내가 앉은 탁자 앞을 지나갔는데, 그녀가 지나가는 동안 눈이 마주쳤고 가벼운 미소를 교환했다. 10분쯤 흘렀을까?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그녀가 지나친 레스토랑으로 돌아와 탁자 옆에 서서 합석해서 저녁을 먹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내가 일어서서 앉으라고 권했고, 우리는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와인을 마시고, 해변을 함께 걸었다. 그녀의 이름은 버나데트였다. 뉴욕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며, 파리에서 있을 중요한 회의를 앞두고 1달간의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는 며칠 동안 함께하며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철학적인 사색을 하면서 보냈다. 무엇이 우리를 만나게 했는가도 이야기했다. 버나데트는 우연한 눈맞춤과 내가 뿜어내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예전까지 그녀는 낯선 남자에게 다가가 저녁을 먹자고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날은 왠지 그러고 싶었다. 아니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녀는 혼자 여행하는 데서 오는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고, 며칠 뒤 파리에서 있을 중요한 회의를 생각하면 걱정스럽다는 말도 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버나데트가 파리 행 비행기를 타는 날, 내 호텔 방으로 찾아와 지난 며칠 동안이 자신한테 얼마나 중요했는가를 말해주었다. 또 이제는 파리에서 있을 회의도 두렵지 않다고 했다.
10분 뒤에 버나데트가 떠났고 나는 다시 그녀를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방에 앉아 있는데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내가 다른 누군가의 삶에 심오한 영향을 미쳤다는 감격에서 흘리는 눈물이었다. 그런 경험은 난생 처음이었다. 물론 내가 버나데트를 도울 수 있었던 이유도 알고 있었다. 그녀의 행복이 나의 진정한 관심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관심을 갖고, 그녀를 이해하고, 내 지식을, 그리고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나눠주었다. 그것이 그녀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동시에 나 자신의 삶도 풍요롭게 해주었다. 프롬이 가르쳐준 사랑의 비법과 버나데트와 함께한 경험은 나에게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었다. 우리가 삶과 삶의 모든 가능성에 마음을 열고, 삶의 다음 단계를 주어지는 그대로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상태로 있을 때, 우리는 각자의 인생에 중요한 도움을 주는 훌륭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유럽에서 혼자 지내면서 삶의 더 큰 목표에 대해, 거기서 내가 얻고자 하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시야를 넓히고, 어쩌면 변호사라는 좁은 영역을 넘어서서 전체 사회에 공헌할 방법을 찾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내가 두려워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일체감 / 꿈
그랜드티톤 산맥으로 배낭여행을 떠나 3일째 되던 날, 낚시를 하러 가는데, 갑자기 산족제비 한 마리가 눈 속에서 튀어나와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나도 그녀석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윽고 녀석이 몸을 돌려 가는가 싶더니 다시 한참동안 나를 쳐다보고는 일종의 공중제비 ‘쇼’를 시작했다. “이거 어때?” 하고 묻는 것처럼. 녀석은 내 앞에서 같은 곡예를 서너 번 보여주었고, 곡예가 끝나면 항상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곡예에 대한 칭찬이라도 구하는 모양새였다. 처음에 나는 목석마냥 꼼짝도 안 하고 서 있었다. 그러다가 녀석의 곡예가 반복되자 마지막에는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녀석과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우리는 꽤 오래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나는 산족제비와 하나가 된 기분이었다. 잠시 뒤 녀석이 놀이를 멈추고 나를 한 번 더 보고, 눈 속으로 사라졌다. 혼자 남은 나는 한참동안 방금 전의 경험을 곰곰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시간을 초월한 느낌, 우주만물과 하나가 된 느낌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신비로운 느낌을 받았다.
버나데트와의 만남과 산족제비와의 조우는 내 삶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버나데트를 만난 일은 내가 만남과 관계에 대해서 전혀 새로운 태도를 갖게 된 첫 번째 경험이었다. 이로 인해 사람간의 경계가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고, 타인과의 소통 및 상호작용을 바라보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산족제비와 조우했을 때도 평소라면 절대 생각하지 못했을 경계의 초월이 일어났다. 당시 나와 자연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내가 자연의 일부가 되었다. 또 당시에는 몰랐지만 그것은 사물에 대한 나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어지는 몇 달에 걸쳐서 나는 유럽과 티톤 산맥에서 마주친 경험들을 계속해서 반추했고, 누구한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거리며 이해하느라 힘든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우주의 조직 원리는 ‘관련성(relatedness)’이며, 이것이 ‘객관적 실재성(thingness)’보다 근본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우리가 리더십을 고민하면서 빠뜨린 부분이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도 새록새록 들었다. 우리는 항상 리더들이 하는 행동에 대해서, 또 그들의 리더십 스타일과 작용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만, 리더십의 존재방식이라는 측면에 대해서는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몇 주 뒤, 리더십 관련 책을 닥치는 대로 읽고 있을 무렵, 우편으로 소책자가 하나 배달되었다. 저자는 로버트 그린리프였고, 제목은 『리더로서의 하인』이었다. 이 단어를 보는 순간, 즉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라는 개념은 나한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고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마치 갑자기 나타난 누군가가 내가 세상을 지각하는 렌즈를 세척해주고, 오랫동안 씨름해온 난제를 해결해준 느낌이었다. 그린리프는 해당 에세이에서 리더십의 본질은 서로에게 봉사하고, 자신을 넘어선 뭔가 고차원적인 목표에 봉사하고자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그린리프는 ‘서번트 리더십’이라는 아이디어를 헤르만 헤세의 책 『동방순례』에서 얻었다고 말했다. 『동방순례』에서 주인공은 깨달음을 찾아 일단의 남자들과 함께 여행을 한다. 레오는 무리에서 하찮은 잡일을 담당하는 하인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존재, 영혼, 노래로 그들을 북돋우고 격려한다. 여행은 여러 해에 걸쳐 계속되고, 무리는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며 여행을 계속한다. 레오가 사라질 때까지는 그랬다. 레오가 사라진 다음에야 사람들은 그가 있었기에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거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레오가 사라진 뒤에 주인공은 거의 죽을 뻔 하고, 몇 년을 헤맨 끝에 드디어 레오를 찾아내고 여행을 지원했던 결맹에게 안내된다. 주인공은 거기서 예전에 하인으로 알고 있었던 레오가 사실은 결맹의 최고 지도자이자, 위대하고 고귀한 리더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뒤 그동안 일어난 일들을 정리하고 앞으로 일어나려 하는 일들을 생각해볼 시간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나는 1977년 초에 2주 휴가를 내고 다시 산으로 갔고, 산을 떠날 무렵 ‘서번트 리더십’을 육성할 조직에 대해 기본적인 윤곽을 잡았다. 말하자면 훗날 ‘아메리칸리더십포럼’이라 부르게 되는 조직에 대한 대체적인 구상을 끝낸 것인데,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백악관 특별회원 연수프로그램을 본떠서 구상했지만 서로 다른 영역의 사람들, 공동체나 지역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청년층 지도자들 사이의 결합을 특히 장려할 생각이었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다원화된 사회에서 공적 책임 의식을 고양하고, 사람을 이끄는 능력을 키워줄 것이다. 또 오늘날처럼 새로운 시대의 진정한 권위는 참여자들을 풍요롭게 하고, 그들의 권한을 약화시키기보다 오히려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얻어진다는 사실을 명심할 것이다. 이는 ‘서번트 리더십’의 기본 원칙이기도 하다.
나는 기본 구상을 마친 아메리칸리더십포럼이라는 아이디어를 약 6개월 동안 혼자서만 품고 있었다. 그런데 1년 뒤에 고객이자 절친한 친구인 톰 팻초가 나를 찾아왔고, 톰이 자기 꿈을 이야기해서 나도 용기를 내어 내 꿈을 공유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며칠 뒤에 톰이 와서 검토 의견을 알려주었다. “조셉, 이건 자네의 꿈일세. 현장에서 꿈을 현실로 만드는 일에 100퍼센트 에너지를 바치고 나아가 110퍼센트 헌신해야 해. 그럴 생각이 없으면 꿈일랑 잊어버리게. 지금 다니는 법률회사도 그만두고 변호사 일도 접고, 모두 바쳐야 할 거야.” 그의 말은 전적으로 옳았다. 하지만 나는 변호사 일을 접고 그에 수반되는 모든 위험을 감수할 배짱이 없었다.
카이로 / 무너지는 경계
1979년 카이로에 있는 법률회사와 제휴할 일이 생겨, 변호사 앤서니 래드클리프와 나는 적지 않은 시간을 둘이서 보냈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그에게 아메리칸리더십포럼이라는 꿈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앤서니는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었고 우리는 며칠 동안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그는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이야기를 끌어내는 남다른 재주를 가진 사람이었다. 몇 년 전에 처음으로 톰 팻초에게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중에 그때 대화를 반추하다가 나는 앤서니야말로 진정한 ‘서번트 리더’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카이로 방문은 어느 날 새벽 5시에 걸려온 전화 때문에 갑작스럽게 끝났다. 수화기를 드니 누나 조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카 데이비드가 몇 시간 전에 사고로 죽었다는 것이었다. 장례식에서 관을 바라보는데, 문득 데이비드가 바로 옆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차로 돌아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관을 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 가던 걸음을 멈췄다. 눈길을 돌렸을 때 나는 분명히 보았다. 데이비드가 관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을, 팔짱을 낀 채로 엷은 미소를 띠고 나를 향해 단호한 목소리로 외쳤다. “힘내세요!” 순전히 내 머릿속에서 나온 상상이었다는 것을 알지만 지금도 마치 어제인 양 생생하게 당시 모습이 떠오른다. 데이비드가 나한테 마지막 축복을 빌어주는 것만 같았다.
PART 2 문턱을 넘다
헌신의 신비 / 안내자 : 데이비드 봄과의 만남 / 동시성 : 1세제곱센티미터의 기회
몇 주 동안 생각한 뒤에 나는 평생 가장 힘들었던 법률회사를 그만두는 결정을 내렸다. 회사를 나오자마자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분명 회사를 나올 때까지도 나는 향후 어떻게 진행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이나 계획이 없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런 순간에 꿈을 이루리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1980년 7월 27일, 나는 내가 설립하기로 마음먹은 새로운 기구의 철학적 토대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씨름하고 있었다. 특히 새로운 리더십 커리큘럼을 어떻게 할까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샤워를 한 다음 《선데이 타임즈》를 휙휙 넘겨보는데 교육면에 ‘우주의 협력 방법’이라는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기사는 런던대학 이론물리학 교수인 데이비드 봄의 신작 〈전체성과 감춰진 질서〉를 언급하면서 새로운 이론을 설명했다. ‘감춰진 질서’에 관한 봄의 이론은 무척 전문적이어서 기사 내용 중에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나는 내용을 모두 이해했다. 무엇보다 봄의 이론은 내가 찾고 있던 해답이었다. 갑자기 이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