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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읽는 CEO

김진애 지음 | 21세기북스
도시 읽는 CEO

김진애 지음

21세기북스 / 2009년 8월 / 302쪽 / 16,000원



호기심을 깨우라



첫 경험의 생생함을 기억하라 - 종로통 + 전주 + 보스턴


집에서 나고 골목에서 놀다 동네 학교에 간다. 어린 시절의 세계다. 아이들의 세계는 아직 작다. 그 작은 세계를 헤쳐 나가는 것만 해도 벅찬 시절이다. 그러다가 그 순간이 온다. 훨씬 더 큰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다. 아직 이름을 붙이진 못하지만 바로 '도시'라는 존재를 발견하는 순간 말이다. 보지 못했던 세계, 알지 못하던 세계, 느끼지 못했던 체험이 성큼 다가온다. 첫 경험을 떠올린다는 것은 이른바 초심의 그 두근두근함, 아직 뭣도 모르고 저도 모르게 마음이 흔들리던 순간의 그 전율을 다시 기억해내는 것이다. 그 첫 경험은 당신의 기억 깊은 곳에서 잠자고 있다. 그 생생함을 다시 끄집어내 보자. 당신은 언제 '도시'를 처음으로 발견하였는가?

생애 첫 도시, 종로통: 아버지는 종로통에서 가게를 하고 계셨다. 엄마 손을 잡고 그곳에 가본 것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서였다. 펄펄 날리던 눈발, 즐비하던 이층 한옥, 유유하게 달리던 전차, 수많은 사람들, 거인처럼 보이던 아버지의 뒷모습, 그리고 천국 같은 맛의 요리, 나는 종로통을 통해 도시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다. 아직 무섭진 않았다. 엄마는 내 손을 꼭 잡아주었고 아버지는 우리를 가이드 해 줬으니까. 그 세계는 컸다. 신기했다. 근사해 보였다. 종로통의 옛 이름은 '운종가(雲從街)'다. 구름처럼 몰려드는 사람들의 거리라니. 뜻이 너무 멋있잖은가? 조선시대 운종가에는 가게들이 줄을 이었다. 가게의 어원은 '가가(假家, 가짜 집, 지금으로 말하면 포장마차식)'이다. 지금 종로통에 이층 한옥은 한 채도 남아 있지 않다. 동대문을 벗어나면 그나마 몇 채 남아 있었는데, 이제는 한 채도 찾아보기 어렵다. 일곱 살에 처음으로 '도시'의 존재를 발견한 후, 나에게 도시는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다른 도시의 발견, 전주: 처음으로 다른 도시를 발견한 건 전주에서였다. 전주는 지금도 성벽이 도시 한가운데 있는 아주 신기한 도시다.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시대의 읍성 도시들이 대개 성벽을 허물고 길을 냈는데, 전주는 그 일부가 살아남았다. 8월의 찌는 폭염 속 나른한 오후, 기다란 그림자를 던지던 경기전 앞의 아름드리나무들과 전동성당의 탑은 한가롭고 느릿느릿한 아름다움이 풍겼다. 이곳은 전주 한옥마을이 있는 곳이다. 교동, 풍남동에 약 700여 채의 한옥이 남아 있다. 전주의 토종 자본이 만든 이 동네는 1930년대 한옥의 혁신이 이루어지던 동네로, 전주의 자존심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동네다. 지금은 한옥보존지구로 한옥 보전에 각별한 노력이 기울여지고 있는데 향기로운 찻집들, 맛깔스런 전통음식점들,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문학관, 전통술박물관, 전통한지박물관, 전통여관이 한옥으로 복원되어 있다. 전주의 경기전과 전동성당이 나에게 그렇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우리 도시 한가운데에 우리의 전통 건물과 근대 건물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다는 놀라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 이 동네를 찾는 사람들은 어떤 이미지를 가지게 될까? 나처럼 그렇게 늘씬한 기품이 풍기는 이미지로 다가갈까?

도시는 함께하는 공간이다: 이십 대 말 유학 갔던 첫해, 미국은 무서웠다. 차를 타야만 다닐 수 있는 도시는 가장 나쁜 도시다. 이 점에서 대부분의 미국 도시들은 좋은 도시라 보기 어렵다. 그래도 보스턴 지역의 도시들은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다. 보스턴 도심이나 케임브리지 학교촌은 상대적으로 거리를 걷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다만, 우리 도시들과 비교할 때 그 밀도는 천양지차이니 한적한 거리에 내가 겁을 집어먹은 것도 이해가 갈 만하다. 그러다 그 날이 왔다. 불꽃놀이를 한단다. 저 멀리 보스턴 항구에서 불꽃을 쏘아 올리면 강 가까운 쪽에서 또 쏘아 올리며 화답하는, 불꽃의 합창이다. 강이 구불구불해서 생기는 현상이다. 마치 불꽃과 사람들의 오케스트라 공연이 펼쳐지는 느낌이었다. 점점 클라이맥스로 올라가다가 마지막은 불꽃 없이 하얀 섬광과 마치 북소리처럼 고막을 때리는 탕탕 소리만 이어지다 일순간 소리가 꺼지며 적막, 그리고 몇 초 후 사람들이 한꺼번에 내지르는 뜨거운 함성. 그 아름다운 밤하늘 아래에서 나는 도시가 온통 다 함께 기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느꼈다. '도시란 이렇게 환희의 공간일 수도 있구나', 짜릿짜릿한 느낌이었다.

첫 경험은 한 폭의 그림으로 남는다. 종로통의 이미지는 나에게 낡은 사진 속의 이미지다. 흑백사진, 바랜 갈색사진이다. 지금도 서울의 옛 사진을 보면 일곱 살 무렵의 가슴 두근두근함이 다시 살아난다. 전주의 이미지는 초록색과 기와색과 벽돌색이 대비되는 오후의 이미지다. 마치 선이 생생히 살아 있는 수채화 같다. 유럽의 도시 풍경화에는 유독 선이 강조된 수채화가 많은데 그런 느낌이다. 전동성당의 늘씬한 자태가 더욱 그런 수채화 느낌을 강하게 했을 것이다. 케임브리지 찰스 강변의 검푸른 하늘, 검푸른 강, 그리고 화려한 불꽃과 사람들의 환호 소리는 찰칵, 한 커트의 영상 이미지다. 환희의 순간이란 바로 그렇게 캄캄한 속에서 화려한 불꽃과 귀청을 뒤흔드는 소리가 나는 것이리라. 마치 빅뱅하는 우주의 탄생처럼. 첫 경험은 그렇게도 생생하다. 당신에게도 분명 첫 경험이 있다. 첫 경험의 생생함을 기억해내라. 다시금 그때의 열정이 불붙을 것이다.

지적 감동의 순간을 축복하라 - 런던 + 파리 + MIT 강의

느낌이 살아 움직이면, 즉 '감(感)'이 '동(動)'하면 갑자기 달라진다. 바로 전의 내가 아니다. 알고 있던 것도 달라 보인다. '감동'이라면 대개 우리는 감성적인 상황에서 마음이 움직이는 현상을 연상하기 쉽다. 지극히 인간적인 감동,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감성적 감동은 물론 삶의 축복이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머리를 냉철하게 움직이는 상황에서 감동을 받는다면 그 이상의 축복은 없다. 이른바 '지적 감동'이다. 마치 계시를 받은 듯 번쩍 빛나는 순간이 되는 것이다.

마음을 온통 흔들어 놓았던 90분 강의: 번쩍 하던 그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떨린다. 유학 첫 학기였다. 영어는 귀에 들리지 않고 입은 열리지 않는 답답한 시절을 보내던 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 강의에 완전히 넋을 잃어버렸다. 강의는 '도시형태이론(Theory of City Form)', 교수는 줄리앙 바이나트(Julian Beinart). 90분 강의는 독특했다. 세계의 도시들을 넘나들며 도시의 형태 속에 숨은 이론들을 짚어내는 구성이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런던과 파리에 대한 강의였다. 사전 지식은 나름 있었다. 워낙 유명한 도시들이니 그 도시계획이나 역사에 대해서 배웠던 바 있다. 그런데 달랐다. 처음으로 그 도시들이 내 머리에 그려졌다. 조각조각 알고 있던 파편들이 갑자기 짜임새 있게 전체 그림으로 맞춰졌고 이 엄청난 크기의 도시가 갑자기 하나의 그림으로 다가온 것이다. 어떻게 런던은 런던이 되었나, 어떻게 파리는 파리가 되었나, 그 까닭이 한 편의 소설처럼 들어맞는 것이었다. 그 파워는 바로 통찰력에서 나온다. 핵심 개념을 세우고 개념을 스토리로 전개하는 파워, 어떻게 90분 동안 이렇게 마음을 흔들어놓을 수 있나? 통찰력이란 그렇게 중요하다. 전체를 통찰하는 힘, 구조를 파악하는 힘, 핵심을 파악하는 힘, 개념을 세우는 힘, 전체와 부분의 연관성을 이해하는 힘, 통찰력은 우리 모두 지향해야 할 파워다.

런던, 카오스 속의 질서: 머릿속에 런던은 그려졌지만 실제 런던을 가본 것은 몇 년 뒤다. 과연 내가 개념으로 알고 있는 그 런던일까? 내가 생각하던 그 런던과 같을까 다를까? 머릿속에 있는 그림과 현실의 그림을 맞춰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런던은 카오스다. 이 도시가 한때 세계의 절반 가까운 영토를 손아귀에 넣었던 제국의 수도였던가 의문이 날 정도다. 논리 정연한 정치이론, 사회이론, 도시계획이론을 발달시키고 영국에서 생산한 각종 정책 모델을 세계 각국에 수출한 나라의 수도 치고 런던은 정말 카오스로 보인다. 일례로 런던의 제1명소인 트래펄가 광장을 가보라.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등의 광장들과 비교가 안 된다. 이탈리아처럼 오리지널의 힘찬 단순미도 없고, 프랑스처럼 화려한 그랜드 디자인도 아니고, 스페인처럼 라틴 특유의 독특한 분위기도 아니다. 도로들이 에워싸고 교통이 복잡하고 넬슨 제독이 우뚝 올라선 탑과 여러 분수들은 무질서하게 널려 있는 듯하고, 관광객과 시민들이 들끓는 가운데 수시로 각종 시민단체들의 시위가 열린다.

런던의 보통 지역을 다녀보면 그 복잡성에 놀라게 된다. 19세기에 만든 지하철과 새 지하철이 엉키며 복잡하기 짝이 없고, 도로는 끊임없이 구불구불하다. 영국은 평지에도 구불구불한 도로 만들기를 좋아한다. 직선보다 곡선을 선호하는 전원도시 전통의 영향을 받은 탓이다. 하기는 이 카오스적인 특성이 런던의 매력이다. 2차 세계대전 중 폭격으로 런던의 상당 부분이 폐허로 변했는데, 런던은 다른 유럽 도시들과 달리 복원보다는 신개발을 택했다. 보수적이고 신중하면서도 또한 혁신적이고 전위적인 면을 가끔씩 발휘해 깜짝 놀라게 하는 영국 문화의 속성이 작용했는지도 모르겠다.

파리, 높이 모를 자존심: 파리는 런던과 전혀 다르다. 파리는 도시가 전체적으로 균질하다. 정연한 질서가 눈에 확연하고, 그런가 하면 어디나 다 비슷비슷하게 보인다. 세 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다. 첫째, 도시가 평평하다. 몽마르트 언덕을 빼고는 전체적으로 평지다. 둘째, 건물 높이가 균일하다. 파리 도심 내의 건물 높이를 20미터, 30미터 등으로 정확하게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 데팡스 신도심 지역을 빼고는 전혀 높은 건물을 허용하지 않는다. 셋째, 웅장한 도시의 가로가 극도로 정연한 축을 이루고 있다. 런던이 복잡다단한 도시 구조를 개조하지 못한 대신 지하철과 버스와 택시 등의 운영 시스템을 발달시켰을 때, 파리는 가로축을 강화하면서 도시개조에 나섰던 것이다. 런던이 소프트웨어적이라면 파리는 하드웨어적이라고 할까. 라 데팡스 지역도 개선문과 상젤리제 거리를 연장시킨 것이고, 방사상으로 만든 가로축은 도심에서뿐 아니라 새로운 확장 시가지에도 적용되며 전체적으로 균질한 도시를 만들었다. 동서남북으로 연결되는 리옹 역, 몽파르나스 역, 북역, 동역, 생 라자르 역 등이 여전히 중심 역할을 하고 동으로 가면 어디로 갈지, 서로 가면 어디로 갈 수 있는지 금방 알 수 있고, 그 한가운데에 세느 강이 나침반 역할을 해주는 파리는 참 이해하기 쉬운 도시다. 방문객에게는 더욱.

성찰하며 선택하라



지속 가능할까? 묻자 - 쿠리티바 + 두바이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인이나 게르만인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지는 로마인들이 어떻게 커다란 문명권을 형성하고 그토록 오랫동안 그것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시오노 나나미는 이 의문을 풀기 위해 《로마인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도대체 도시라는 문명은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어떤 양태로 도시는 살아가야 할까? 20세기 말, 21세기 초, 세계 도시 중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아온 브라질의 생태 도시 쿠리티바, 그리고 아랍에미리트의 신기루 도시 두바이를 통해서 이런 의문을 던져보자. 도시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다.

신기루 도시 두바이: 21세기 초에 두바이만큼 엄청난 관심을 받은 도시도 없다. 특히 우리나라 언론들은 두바이에 '환상의 도시, 최고의 창조력, 최고의 상상력'이라는 찬사를 보내곤 했다. 정말 두바이가 그렇게 온통 찬사를 받을 만한 도시인가? 자연의 섭리가 있다. 보통 땅은 자칫 사막화해 버리지만 사막은 절대 보통 땅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두바이는 막대한 관리 비용을 계속 투입하지 않는 한 유지될 수 없는 구조적 특성을 안고 있는 도시인 것이다. 짧은 기간 동안 '월드 스타 마케팅'으로 아주 특별한 도시가 되려는 것이 두바이의 의도적 전략이었다. 사막이 90퍼센트이고 자체 인구는 약 150만에 불과한 아랍에미리트의 일개 주(洲)인 두바이는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장소, 하나뿐인 건축, 쇼핑 천국을 만들고 중동권 다른 지역과 달리 치안 안전과 무한 자유를 보장하고, 기업세와 부동산세를 없애주고, 허브공항을 만들고, 중계무역 천국을 만들며 급속히 성장했다. 불과 10여 년 만에 세계 유일, 세계 최고, 세계 최호화의 개발이 들어서며 두바이의 지도가 바뀐 것이다. 하지만 예상 시나리오대로다. 위험비용이 클 수밖에 없는 두바이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몰아친 후 가장 큰 타격을 받는 도시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부동산 가격은 40퍼센트나 떨어졌고, 미분양이 쌓이고, 덤핑 분양이 난무하고, 사치스런 개발 프로젝트들은 추진 동력을 잃었다. '바이 바이 두바이(Bye, Bye, Dubai)'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돈 빠지고, 투자 빠지고, 사람 빠지고, 미분양의 덫에 빠지고 나면 더 이상 운영되기 어려운 두바이는 자칫 '유령도시'가 될지도 모른다.

꿈의 도시 쿠리티바: 쿠리티바는 사실 두바이보다 먼저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인구 180만의 중소 도시 쿠리티바가 '꿈의 도시'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얻은 것은 1990년대부터다. 쿠리티바의 도시계획 혁신의 핵심 내용은 시민이 참여하는 실생활 생태 혁명, 버스 중심 대중교통 시스템, 저비용의 도시개발과 도시경영 이렇게 크게 세 가지다. 쿠리티바가 이룬 생태혁명 중 쓰레기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동시에 저소득층의 재활용 쿠폰과 연결시켜 소득증대와 환경정책을 동시에 정착시킨 것은 유명한 사례다. 강둑을 조성하는 토목사업으로 값비싼 물길과 조경에 투자하는 대신에 쿠리티바는 도시 곳곳에 자연 습지에 가까운 호수와 자연 도랑을 만들어 홍수를 방지하고 시민녹지를 조성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음으로써 미세 기후 조정과 공해 방지에 큰 효과를 거두었다. 이 방식으로 쿠리티바는 30여 년에 걸쳐 무려 20배 이상의 녹지를 만들었다. 쿠리티바는 적은 비용으로 도시를 개발하고 관리하는 수많은 아이디어들을 실천에 옮겼다. 쿠리티바를 보면 도시계획에 대한 희망이 다시 솟을 법하다.

자이메 레르네르 시장과 셰이크 모하메드 총리: 바로 여기에 도시 리더십의 역할과 도시 리더의 역할이 있다. 리더는 그래서 중요하다. 쿠리티바와 두바이의 리더는 여러모로 대비된다. 쿠리티바의 리더는 전설적인 자이메 레르네르 시장이다. 레르네르 시장은 저소득층 출신의 건축가, 도시계획가로서 젊은 시절부터 동네 현장과 전문 현장의 아이디어를 정치 현장과 행정 현장에 열정적으로 연결시킨 인물이다. 그의 비전은 언제나 지속 가능성에 있었고 그의 인식은 현실적이고 그의 실천은 끈기 그 자체였다. 레르네르 시장의 '거리는 도시와 사회의 종합체'라는 발언대로 그는 '거리의 시장'이라 할 만하다. 반면 두바이의 리더는 왕족이자 엘리트이며 갑부로 세계적으로 수많은 뉴스를 뿌린 셰이크 모하메드 총리다. 선왕의 승계자였고, 자국아랍에미리트연합과 중동지역의 자본과 국제 자본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본가이자, 그 자신의 거대한 개발회사 '나이킬'의 소유주로 개발사업을 직접 추진하는 사업가다. 두바이의 초고속 개발성장모델은 상대적으로 모방이 쉽다. 금융과 부동산과 쇼핑 관광을 활용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 경쟁자들이 등장한다. 벌써 중동권의 다른 도시들, 특히 아랍에미리트연합의 다른 도시인 아부다비가 두바이를 따라잡으려 엄청난 투자를 시작했고 중동의 다른 도시들도 두바이 성장모델을 베끼려 든다. 어떤 모델을 선택해야 할까? 두바이형 초고속 개발성장모델을 택할 것인가, 쿠리티바형 지속가능한 성장모델을 택할 것인가?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지속 가능성을 끊임없이 묻자.

복잡한 도시역학에 눈을 뜨다 - 임시행정수도와 행복도시

도시는 복잡하다. 이 복잡한 도시를 운영하는 것은 아주 복잡한 일이다. 그래서 도시는 전문 노하우를 필요로 한다. 도시역학을 이해하고, 기술 기반을 이해하고, 문제를 예측하고, 사후를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도시계획, 도시행정, 도시관리, 도시경영, 도시경제, 도시사회, 도시교통, 도시주거, 도시설계, 도시복지, 도시안전, 도시문화 등 다양한 전문 분야들이 존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른 한편 도시는 전문 분야 이상의 이슈를 제기한다. 도시가 인간 사회를 담는 그릇인 만큼 정치, 경제, 산업, 안보 등 거시적 이슈들이 도시와 얽히는 것이다. 그래서 도시는 종종 사회 이슈의 한가운데 서게 된다. 일단 이슈화가 되면 전문적 판단을 넘어선 논쟁으로 비화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른바 정치화하는 것이다. 수많은 이해집단들이 관여하고 그들의 다양한 가치들이 충돌하면서 좋고 나쁨, 옳고 그름, 최선과 최악, 차선과 차악을 놓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논쟁이 붙게 되는 것이다. 도시의 복잡한 역학에 대해서 눈을 떠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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