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숙의 섬김 리더십
양병무 지음 | 21세기북스
이경숙의 섬김 리더십
양병무 지음
21세기북스 / 2008년 4월 / 227쪽 / 10,000원
1부 교육혁신의 대표브랜드, 숙명여대
1. 이경숙 총장 숙대에 비전을 품다1994년 3월 31일 이경숙 총장의 취임식이 있었다. 이 총장은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모교 총장이 된다는 것은 기쁜 일이기도 했지만 영광된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취임식을 마치고 집무실로 들어온 그녀는 책상 위에 놓인 흰 봉투를 발견했다. 봉투 안에는 '7억 8천만 원짜리 세금 고지서'가 들어 있었다. 며칠 뒤 2억 3천만 원의 연체료, 1억 2천만 원의 범칙금 고지서가 연이어 날아들었다. 학교 건물은 오래되어 으스스했고 어떤 건물은 붕괴 위험마저 안고 있었다. 발목을 잡고 있는 세금 폭탄과 낡은 건물들은 숙대의 쇠락을 보여주는 것 같아 그저 마음이 아플 뿐이었다.
한때 이화여대와 쌍벽을 이루는 한국 여성 사학의 명문이었던 숙명여대는 1960년대 중반 이후 학교재정은 부실해졌고 운영은 어려워졌다. 허울뿐인 학교 모습에 학생들의 자부심은 무너졌고 교수들은 무기력한 모습으로 일관했다. 직원들은 대학 최고의 강성노조를 결성했고, 동문들 역시 점점 초라해지는 모교의 모습에 실망해 등을 돌리고 있었다. "어쩌다가 우리 학교가 이렇게까지 무너졌단 말인가?" 이 총장은 어떻게든 운명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총장은 우선 교수, 직원, 학생, 동문회의 현주소를 구체적으로 진단하기로 했다. 교수들은 열악한 학교재정과 보이지 않는 미래에 절망했다. 학생회도 부정적이고 냉소적이었다. 자부심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학생들은 스스로 방치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동문회 분위기도 다르지 않았다.
이 총장은 당시 심경을 이렇게 말했다. "문제를 찬찬히 들여다보자 답이 보였다. 걸림돌로 생각했던 문제들이 디딤돌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많은 문제들을 디딤돌 삼아 나가겠다고 마음먹으니 뜨거운 도전정신이 가슴에서 용솟음쳤다. 모든 문제는 보기 나름이다." 세계 최고의 명문여대를 만들겠다는 꿈이 드디어 용트림을 시작한 것이다. 지금까지 숙대는 현모양처를 배출하는 학교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현모양처는 더 이상 숙명인의 모습이 될 수 없었다. 과감한 변신이 필요했다. 이 총장은 전통을 계승하면서 시대정신을 반영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섬기는 리더십을 갖춘 세계 속의 한국여성"이란 인재상을 내세웠다. 전통과 여성이라는 장점을 살리면서 세계로 뻗어나간다는 방향을 설정함으로써 혁신의 첫 단추를 성공적으로 끼운 것이다. 이어서 이 총장은 "세계 최상의 명문여대" "섬김 리더십" "세상을 바꾸는 부드러운 힘" "세계 최고의 리더십 대학"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정했다. 그리고 목표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리더십 특화, 글로벌화, 융합화의 전략으로 학생들의 독특한 재능과 무한한 잠재력을 키우고 인격을 함양토록 지원할 것임을 천명했다.
2. 숙대를 혁신으로 이끈 섬김 리더십취임 이후 이 총장은 '12년 마스터플랜'으로 이름 붙여진 발전계획안을 만들었다. 계획을 세우지 않은 조직은 없다. 그러나 5년, 10년의 장기 계획은 구체성이 결여된 막연한 주장에 그치기 십상이다. 그런데 숙대는 세계 최상의 명문여대 진입을 목표로 설정한 후 그 목표달성을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달성 시한을 구체화함으로써 경영학의 원리를 그대로 실천했다. 하지만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많은 구성원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특히 12년 동안 학교발전기금 1천억 원을 모금하겠다는 비전은 비웃음을 사기까지 했다. 어떤 조직이든 위기 상황에서는 리더의 생각과 철학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숙명여대를 혁신으로 이끈 이경숙 총장의 리더십의 핵심은 무엇일까.
이 총장의 리더십은 섬김 리더십이다. 섬김의 리더란 명령, 군림하는 리더가 아닌 공감하고 설득하고 낮아지고 먼저 행동하는 리더를 말한다. 수평적인 관계에서 배려와 존중을 실천해 구성원의 마음을 움직여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리더를 말한다. 이 총장은 섬김 리더십의 구체적인 행동전략으로 VICTORY(Vision, Intelligence, Communication, Time Management, Open-mind, Responsibility, Yes)를 실행한다. 여기서 VICTORY 하나하나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첫째 Vision(꿈과 비전을 판다). 이 총장은 숙대를 세계 최상의 명문여대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졌다. 그녀는 조직의 정체성이 표류하고 있을 때 최상의 명문여대, 1천억 원 모금, 최고의 리더십 대학 등과 같은 비전을 제시하며 구성원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꿈과 비전과 목표가 분명해지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둘째 Intelligence(전문가를 인정한다). 이 총장이 보직교수로 임명한 사람 중에는 개인적 친분이 전혀 없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임용 6개월만에 교수학습센터장으로 보직을 받아 주위를 놀라게 한 이재경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총장님과 개인적 인연은 전혀 없습니다. 저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임명해 주셨으니 더욱 열심히 임무를 수행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총장은 말한다. "나를 싫어하고 좋아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전문성을 갖추고 열정이 있다고 판단되면 그 일을 맡아줄 것을 요청한다."
셋째 Communication(총장이 알면 말단 직원도 안다). 조직구성원들을 조직의 목표에 자발적으로 집중하게 하려면 원활한 의사소통이 필요하다. 이 총장은 총장이 알면 말단 직원도 안다는 소통의 원칙을 세우고 투명경영과 윤리경영을 실천했다. "숙명의 자랑은 깨끗함과 정직함입니다. 총장님은 이 아름다운 전통을 인터넷이라는 시스템과 연계해 투명경영으로 더욱 발전시키셨습니다. 이런 의사소통은 구성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고 혁신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넷째 Time Management(질적인 시간 관리를 한다). 이 총장의 하루 일정은 굉장히 빡빡하다. 매일 새벽 4시 반에 교회에 나가 기도를 하면서 하루의 시간 계획을 세우고 해야 할 일을 정리한다. 원칙을 지키고 삶을 단순화하는 것도 시간 관리의 비결이다. 또한 권한위임을 잘 한다. 목표관리를 철저히 하면서 일단 위임을 하면 믿고 맡긴다. 불필요한 시간요구에 대해서는 단호하지만 지혜롭게 거절한다.
다섯째 Open-mind(섬김은 열린 마음에서 나온다). 이 총장은 섬김 리더십 모델을 성경에서 찾는다.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 섬김은 정직과 겸손, 언행일치에 뿌리를 둔다. 또한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 인내와 사랑을 바탕으로 한다."
여섯째 Responsibility(모든 책임은 리더에게 있다). 이 총장의 머릿속은 숙대로 가득 차 있다. 항상 숙대 배지를 달고 다니고, 총장 차량 번호는 2006번이다. 2006년은 창학 100주년이 되는 해이고 1천억 원 모금을 달성해야 하는 목표연도이다. 총장이 숙대에 느끼는 책임감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교수는 "총장 자리가 4번을 할 정도로 매력적이지는 않다. 총장은 많은 사람을 상대하고 기금을 마련해야 한다. 조건이 열악한 상태에서 그렇게 오래 총장의 역할을 한다는 것은 사명감과 책임감이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라고 설명한다.
일곱째 YES(긍정은 찾는 게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이 총장은 한마디 말에 창조의 능력과 파괴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취임 초 어려움이 가중되던 때 각 처장들은 총장실에 들어오면서 한숨부터 쉬었다. "아이고, 죽겠네요!" 총장은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죽겠다고 말할 사람은 총장실에 들어오지 말라"고 요청하고, "어휴, 죽겠네!" 대신 "어휴, 살겠네!"라는 말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랬더니 들어오는 사람마다 "어휴"라고 부정적인 말을 하려다가도 총장 얼굴을 보는 순간 "살겠네요!"라며 말꼬리를 바꿨다. 교직원들의 그런 모습에 총장도 박장대소를 했다. 웃으니까 분위기도 달라지면서 힘든 일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눈이 생겼다. 힘든 상황에서도 웃으며 칭찬하다 보니 새로운 격려 문화가 학교를 생기 있게 만들었다.
2부 혁신의 깃발을 올리다
3. 마인드 프레임을 바꿔라비전 성취에 필요한 1천억 원의 발전 기금을 모으겠다고 하자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당장 1994년 한 해 예산만 적자가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학교 발전을 위해 어떻게든 방안을 찾아봐야 했다. 숙대가 손을 내밀 첫 번째 대상은 동문이었다. 동문들의 애교심에 불을 붙일 캐치프레이즈가 필요했다. 고민 끝에 <등록금 한 번 더 내기 운동>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150만원을 내면 <숙대 100년사>에 이름을 명시하고, 300만원을 내면 제2창학 조형물에 이름을 새겨 영구 보존한다는 조건도 제시했다. 문제는 동문 소재 파악이었다. 2개월 동안 밤을 새워 2만 6천 명을 찾아냈다. 이들에게 소식지를 보내 학교의 변화를 알림과 동시에 인사를 전했다. 이어 단과대와 졸업기수 대표 120명을 초청해 학교의 비전과 목표를 설명했다. 1995년 2월 22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제2창학 선언 발기인대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초청인원은 창학 200주년이 되는 2006년에 맞춰 2006명으로 결정했다. 대단한 모험이었다. 가정주부가 된 동문들이 등록금 한 번 더 내기 운동이라는 엄청난 부담을 안고 참석할 수 있을지 말이 안 되는 도전이었다. 홍보를 위해 12개 신문에 광고를 싣고 총장이 직접 KBS <뉴스광장>에 출연해 기부금 모금 운동을 설명했다.
행사 전날 힐튼호텔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이 실무자들의 불안을 자극했다. "내일 저녁 도시락 몇 개 준비할까요?" "2006개 준비해 주세요." "졸업생이 20만 명이 넘는 K대, Y대가 비슷한 행사를 했는데 1천명을 넘지 못했거든요. 1500개를 준비하면 어떨까요?" 도시락 500개가 남을 경우 1600만원의 손해를 입는다. 그러나 의미를 부여해 정한 숫자를 바꿀 수는 없었다. 그것도 '인원이 다 차지 않을까봐'라는 이유로 말이다. 총장은 "그냥 2006명 분 준비해 주세요!"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드디어 운명의 날이 밝았다. 행사장에 나가있던 선발대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큰일 났어요. 사람들이 파도처럼 모여들고 있어요!" 그동안 가정에서 현모양처의 위치를 지키던 동문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모여들고 있었던 것이다. 행사장에 도착한 총장은 용광로처럼 타오르는 격정의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행사장을 찾은 사람들의 수는 2,500명이 넘었다. 총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신나고 힘찬 목소리로 제2창학 선언문을 읽어나갔다. 이 날 약정된 모금액은 62억 원이었다. 과거 2억 원 모금이 최고 실적이었던 것에 비해 하루 60억 원은 기적이었다. 숙대가 과거의 영화를 되찾고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된 기적 같은 날이었다.
5. 블루오션을 찾아라이 총장은 미국 유학생활을 통해 영어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평소에 "제대로 된 영어 교육을 할 수 없을까?" 고민을 하곤 했다. 그래서 영어영문학부 황선혜 교수에게 미국 명문 TESOL 대학원인 메릴랜드 대학의 프로그램 도입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렇게 해서 국내 대학 최초로 영어교사 교육과정인 TESOL이 탄생했다. TESOL 과정은 1997년 3월 첫 학기를 시작했다. 5개월 과정으로 "영어교사 교육 제대로 하기"를 기치로 내걸고 학생모집에 들어갔다. 교수진 전원을 영어교육 경력과 자격을 갖춘 원어민으로 충원하고, 오직 영어로만 교육을 진행하고 철저하게 예습 복습을 해야만 수업을 따라갈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설계했다.
1997년 12월 외환위기가 터져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예상했지만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명예퇴직과 정리해고 등으로 인해 실력이 없으면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과정을 수료한 학생들의 만족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내친 김에 석사학위까지 받고 싶다는 꿈을 내비쳤다. 그 결과 1999년 TESOL 석사 과정이 개설됐다. TESOL 대학원은 해가 갈수록 인기가 높아졌고 타 대학에서 숙대를 벤치마킹해 TESOL 대학원이 전국적으로 생겨나게 되었다.
6. 캠퍼스에 미래와 문화를 담아라이 총장은 학교 건물 벽에 균열이 가고 땅이 내려앉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노후한 배수로 때문이었다. 문제는 50년 전에 만들어진 배수로가 묻힌 땅이 학교 소유가 아니라는 이유로 공사허가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총장은 공사허가를 받기 위해 관계부처를 찾아다니며 호소했다. 그러나 불법공사를 허가할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장마철에 심한 비라도 내리면 어떻게 될지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용산구청장을 만나 담판을 했으나 시원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이에 총장은 "공사를 허가하지 않아 발생하는 불상사에 대한 모든 책임은 용산구청에 있다"는 공문을 보냈다. 며칠 후 다급한 목소리로 구청장이 전화를 걸어 왔다. 구두로 허가할 테니 빨리 공사를 끝내라는 것이었다. 숙대는 가장 크고 좋은 드럼통과 동 파이프를 묻으면서 100년 숙명의 꿈을 실천하기 위한 인프라도 함께 묻었다. 이왕 땅을 판 김에 첨단전산망과 방송망도 설치했다. 숙명 모바일 캠퍼스의 기초는 이때 마련된 것이다.
3부 세계를 향해 비상하다, 숙명여대
7. 숙명은 자랑스러운 이름이다2001년 이 총장이 처음으로 학생들 앞에서 춤을 췄을 때, 대학사회에서는 너무 가벼운 처신이 아니냐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숙대 학생들은 "총장님이 너무 멋져요. 춤추시는 총장님을 보니까 언니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며 열광했다. 총장의 춤은 매년 성년식과 함께 하는 <청파은혜제>에서 볼 수 있다. "학생들에게 눈높이를 맞추라고 하면 거리는 더 멀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학생들과 맞추는 거죠. 어설프지만 그런 모습을 보며 가까이 다가오는 것 같아요." 총장이 춤을 춘다는 것은 그 자체가 섬김 리더십의 표현이다. 매년 함께 춤을 춘 정보통신처 최종원 처장은 "총장님의 상상력과 열정에 감동할 따름입니다. 학생들의 기쁨은 곧 교수들의 기쁨이죠"라고 말한다.
8. 대한민국 교육에도 희망이 있다
1996년 대학개혁 평가에서 우수대학으로 뽑혀 자신감을 갖게 된 숙대는 1997년 8월 약학대학이 최우수 대학으로 평가를 받음에 따라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자신감과 확신은 1997년 10월 대학종합평가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2006년을 목표연도로 제2창학 운동을 전개해 온 숙대는, 이번 평가를 대학발전계획의 진척상황을 중간 점검하고 개혁내용을 충실하게 다듬는 계기로 삼았다. 그래서 준비작업의 기준은 평가가 아닌 학교발전에 둔다는 기본 방침을 정했다. 예를 들어 아무리 평가 점수가 높은 항목이라도 숙대 입장에서 투자 우선순위가 뒤지는 부분은 과감히 포기하고, 대학의 장단기 발전방향에 부합하는 경우에는 무리를 해서라도 보완토록 하자는 것이었다. 이런 원칙은 평가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평가위원들이 보고서 내용 전체의 신뢰성에 높은 점수를 준 것이다. 정직과 투명성을 강조하는 조직문화가 제대로 평가를 받는 순간이었다. 평가를 마치고 평가단장이 총장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