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군수, 김흥식 리더십
김흥식 지음 | 비전과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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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군수, 김흥식 리더십
김흥식 지음
비전과리더십 / 2008년 5월 / 264쪽 / 13,000원
제1부 교육, 사람을 변화시키는 무한 에너지
가슴으로 느끼고 배우고 실천하라 / 생각을 바꾸고 관행을 바꾸자민선자치 원년인 1995년부터 장성군은 전 직원을 대상으로 공무원 해외 배낭연수를 실시했다. 이유는 딱 하나,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는 직원들에게 주로 유럽이나 미주 등 선진국을 돌아보라고 권했는데, 그 이유는 선진국을 돌아보면 우리가 지금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 정확하게 알게 되고, 또 선진사회의 시스템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해외 배낭연수를 다녀온 공무원들의 생각의 경계는 더 이상 장성군에 머물러 있지 않고, 세계로 날고 있었으며, 생각은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바뀌었으며 자신감이 넘쳐 났다.
하지만 해외에 자주 나갈 수는 없는데, 국내에서도 역동적인 세계의 흐름을 엿볼 수 있는 곳이 서울 삼성동에 있는 코엑스다. 그래서 민선군수 시절 나는 토요일마다 코엑스 견학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직원들과 군민들로 하여금 전시장을 둘러보게 하여 오늘의 트렌드를 읽고 미래를 읽게 했다. 한편 나는 코엑스 견학을 가는 공무원과 군민들에게 별도로 "코엑스 둘러보고 그냥 내려오지 마시고, 코엑스 바로 옆에 보면 세계적인 체인을 가진 호텔이 있는데, 그곳 로비 커피숍에 가서 꼭 커피 한 잔씩 마시고 오세요. 여러분이 장성에서 마시는 다방 커피와 서울의 유명 호텔에서 마시는 커피가 어떻게 다른지, 왜 다른지 꼭 알아야 합니다"라고 당부했다. 왜냐하면 장성역 앞 다방에서 파는 1,500원짜리 커피와 1만원이 넘는 커피가 어떻게, 왜, 얼마나 다른지 느껴야 하고, 또 1,500원짜리 커피를 경쟁력 있는 커피로 만들려면 거기에 어떤 것을 더 넣고 무엇을 빼야 하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교육과 관련된 평소의 내 소신은 이렇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사람이지만,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교육뿐"이고, 또 "똑똑한 몇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 조직이 변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50%가 넘는 사람들을 교육시켜야 그 조직이 달라진다. 왜냐하면 그래야 교육받지 못한 소수까지 교육받은 다수가 이끄는 변화의 흐름에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생각으로 나는 민선군수 11년 동안 공무원과 군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서비스를 한시도 멈춘 적이 없다. 공무원이든 군민이든 장성군에 살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장성 아카데미를 통해 이른바 의식변화를 위한 총론교육을 받았고, 일반 군민, 여성, 농민 등 각 집단의 특징에 따라 각론교육을 실시했다.
그리고 의식의 변화와 함께 또 하나 필수적인 항목은 바로 외국어였다. 그래서 영어, 일어, 중국어 과정을 개설해 1년 과정 주 3회 80분씩 희망자에 한해 외국어 교육을 실시했는데, 2002~2005년 사이에 이 과정을 거친 장성군 공무원이 311명이므로, 전체 공무원의 절반 이상이 교육을 이수한 셈이다. 아무튼 장성군이 달라졌다면, 그것은 장성군민과 공무원들이 교육을 통해 변화의 씨앗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한편 장성군의 첫 번째 민선군수로서 본격적으로 직무가 시작되자, 그 어떤 일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수십 년 동안 굳어진 공무원들의 관행과 업무 스타일을 바꾸는 일이었다. 예로 "군청 앞 매화동쪽 말입니다. 여성회관 있는 곳이요. 거기 길이 너무 좁지 않습니까? 거기에 소방도로를 개설할 수 있도록 한번 해보세요"라고 지시하면, "예산이 없어서 곤란합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오곤 했는데, 직무를 시작한 이래 한 달 동안, 나는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해 "예산이 없어서 어렵습니다", "그런 관례가 없습니다", "규정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야 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확실한 변화가 필요했다. 즉 공무원 생각을 바꾸는 일 - 안 된다, 불가능하다, 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을 버리고, 무엇이든 잘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와 자신감을 갖게 하는 일 - 이 급선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장성군 공무원을 혁신시키기 위한 행정 내부의 창조적 파괴 작업에 돌입했다.
지식발전소 : 최고의 강사, 최상의 강의가 있는 장성 아카데미 / 장성 아카데미의 숨은 힘
교육을 통해 사람이 변화되고 성장하는 것도 콩나물을 기르는 것과 같다. 열심히 물을 빨아들인 콩이 맛있는 콩나물이 되듯, 끊임없이 배운 지식은 평범한 사람을 특별한 사람으로 만든다. 즉 21세기가 필요로 하는 공무원으로 거듭나도록 하기 위해서는 콩나물시루에 물을 붓듯 꾸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성 아카데미를 시작했는데, 1995년 9월 15일 시작하여 지금까지 13년째 하고 있고, 장성 아카데미를 다녀간 강사도 500명을 넘으며, 강사의 면면 또한 국내 최고를 자랑한다. 한편 내가 장성 아카데미 강의를 빠지지 않고 듣는 데는 2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공무원과 군민 앞에서 군수가 열심히 듣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강의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강조할 수 있고, 또 하나는 그 강의를 군민과 공무원과 군수가 함께 들어야 의식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강의가 끝나면 2차가 이어졌는데, 여기서 2차는 술자리 2차가 아니라, 장성의 진미가 차려진 밥상에 마주 앉아 또 한 번의 특별강의를 듣는 시간이었다.
장성 아카데미에 최고의 강사를 모시기 위해서는 일개 군청이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예산이 소요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방법을 찾아야 했는데, 답은 의외의 곳에서 풀렸다. 우리가 직접 할 수 없다면 우리를 대신해서 장성 아카데미를 꾸려나갈 대상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즉 사회 교육 프로그램 운영 자체를 다른 기관에 맡기는 용역을 주는 방법을 택한 것이었고, 적임자로는 내가 기업에 몸담고 있을 때 오랫동안 내게 새로운 지식의 수원이 되어준 인간개발연구원이 선택되었다. 그런데 장성 아카데미의 교육을 통해 얻은 변화는 공무원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생각하는 폭이 넓어진 것은 군민들도 마찬가지였는데, 그것은 군정과 군 살림살이에 대한 신뢰와 이해로 이어졌다.
한편 십 수 년 전만 해도, '장성'이란 곳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하지만 이제 사정은 달라졌다. 대다수 국민들이 전라남도에 있는 장성 아카데미, 홍길동의 고장 장성으로 장성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이렇게 장성을 알린 데에는 장성 아카데미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왜냐하면 장성 아카데미에서 강의를 하고 간 500명이 넘는 일류 강사들이 하나같이 장성 홍보대사를 자처하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군수인 나는 장성 아카데미 하나를 통해 생각을 바꾸는 교육 효과뿐만 아니라, 장성군 홍보, 기업 유치 효과, 세일즈 행정 등 일거다득의 효과를 톡톡히 보았던 것이다.
제2부 청렴, 투명함과 올바름을 지킨다
저녁식사는 반드시 집에서 / 바른 원칙, 바른 생각나는 민선군수로 일하면서 11년 동안, 장성 아카데미 강사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2차 강의를 듣는 금요일 밤을 제외하고는, 외부의 저녁식사 요청과 초대를 정중히 거절하고 언제나 집에서 하려고 노력했다. 주변 사람들이 볼 때는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 너무 유난을 떤다는 반응을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는 저녁식사를 같이 한다는 것에는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고, 한 사람에게 저녁식사 자리를 내주면, 그것이 빌미가 되어 열 사람에게 저녁식사 자리를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군 행정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 기준이 보다 엄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내가 군수로 출마하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였다. 1992년, 전라남도 교육위원으로 계시던 큰형님이 타계하면서 장성군 교육위원 자리가 공석이 되었는데, 당시 장성군의회 의장과 부의장은 사범학교 출신인 나의 교단 경력을 고려해 비어있는 장성군 교육위원에 출마해보라고 권유했고, 그해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교육위원을 3년 동안 하게 되었다. 이어 지방자치 시대가 개막되면서, 당시 박태영 국회의원으로부터 장성군수 출마를 권유받고 고심 끝에 이를 승낙했다.
아무튼 민선 1~3기 장성군수로 11년 동안 일하면서, 하루 24시간 내 머릿속에는 '장성군'밖에 없었다. 한번은 J과장이 나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군수님, 옆에서 보면 군수님은 인생에 마치 장성군밖에 없는 사람처럼 일하십니다. 도대체 무엇이 군수님으로 하여금 그렇게 열심히 일하게 하는 겁니까?" 내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보람과 성취감!" 덧붙이면 환갑을 목전에 둔 나는 인생의 모든 경험과 경력을 고향 장성을 위해 바치기로 마음먹고, 민선군수로 일하는 동안은 오로지 장성의 미래만을 생각하면서 달렸다. 그래서 언제나 "지금 장성의 발전을 위한 방향을 잘 잡았는가? 과연 결정한 방향대로 잘 진행되고 있는가?"와 같은 자기 검증의 질문을 수도 없이 나 자신에게 던져야 했다.
한편 민선군수가 되어 군청에 들어와 보니, 과거 내가 도청에서 근무할 때와 달라진 게 별반 없었다. 예로 서울 중앙부처에서 내려온 공문이 장성군 어느 면사무소에 갈 때까지, 내용은 고이고이 보존된 채 그대로 '하달'되곤 했다. 흔히 중앙부처에서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거나 배려하지 않고 모든 것을 결정한다. 하지만 위에서 내려온 공문을 받은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의 특성에 따라 무언가를 덧붙일 수도 있고, 해당되지 않는 내용은 수정해서 내보내는 것이 당연하다. 나는 '색깔 있는 패션 행정'이란 말은 즐겨 사용한다. 행정서비스는 지역에 따라, 정책에 따라 자기 색깔을 가져야 한다는 것인데, 예로 '봄철 산불 방지' 공문만 하더라도, 장성8경의 하나인 축령산 휴양림이 있는 서삼면이나 북일면에서는 더욱 구체적이고 강화된 내용이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옳지 않다면 옳은 것으로 바꿔라 / 부당한 압력에 굴하지 말고 일하라 / 무엇을 두려워할 것인가민선군수로 취임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장성의료원에 들렸을 때 본 여러 상황들은 여러 모로 적자 운영(년 5억 원 적자)의 이유를 적나라하게 대변하고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자리를 비우는 의사, 불친절한 간호사, 무성의한 직원, 더러운 환경, 낙후된 시설 등등. 나는 의료원의 직원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중보건의들은 이곳에서 적당히 시간만 때우면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병원이라고 생각하고 경영연습을 해보세요. 그러면 공중보건의를 마치고 개업을 해도 여기서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간호사들도 서비스 정신을 갖고 환자들에게 좀 친절하게 대해주세요. 낡은 시설은 꼭 교체하십시오. 그래야 환자들이 믿고 병원을 찾지 않겠습니까? 저도 군민들에게 의료원이 달라졌다는 것을 최대한 홍보하겠습니다"라고 인생의 선배로서 최대한 인간적으로 조언을 했다.
그러자 보건의료원은 서서히 변해갔다. 시설과 서비스가 좋아졌고, 의사와 간호사를 비롯해 직원들의 생각이 바뀌고 태도가 좋아졌다. 그럼으로써 의료원을 믿고 찾는 이들이 늘어났고 적자는 크게 줄었다. 1999년에는 드디어 대부분의 적자가 해결되어 의료원 운영이 정상화되었다. 그때 나는 다시 한 번 의료원장과 직원들에게 "여러분들이 열심히 수고하신 덕분에 적자 운영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의료원 운영을 잘해서 많은 이득을 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보건의료원은 군에서 운영하는 공공 의료기관이기 때문입니다"라고 강조했다. 한때 기업을 경영해본 나로서는 공무원 조직이 돈을 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기업은 치열한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 사람이든 조직이든 모든 시스템이 '이윤'이라는 목적 하나로 정렬되어 있으나, 지방자치단체는 기업과는 존재 목적이 다를 뿐만 아니라 시스템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지방자치단체는 주어진 예산 외에 재정을 늘릴 만한 방법이 전혀 없다는 말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행정 내부를 구석구석 찾아보면 한쪽에서 쿨쿨 잠자고 있는 수익이 꽤 있다. 예로 쓸데없이 새나가는 돈을 줄이는 것도 돈을 벌어들이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제법 긴 시간 동안 묵혀 있는 돈을 똑똑하고 안전하게 굴리는 것도 돈을 버는 것이다.
일례로 민선군수가 되어 군청 회계 장부를 꼼꼼히 들여다보았더니, 일반특별회계, 세 외 현금 등 여유자금이 저이율 단순예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나는 재무과장을 불러 당장 쓰지 않는 돈은 이자가 많은 정기예금 등으로 돌려 최대한 이자수입을 확보하라고 지시했고, 재무과장은 고이율 금융상품으로 전환시켰다. 결과는 놀라웠다. 1994년도 이자수입은 4억 9천만 원에 불과했으나, 1999년도에는 36억 5천만 원으로, 2005년에는 47억 원에 달했다. 아울러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좋은 성적을 받고 큰 상금을 타서 군 재정에 보탬을 주는 것도 가능하다. 장성군은 민간단체, 언론사, 중앙정부, 지방정부 등에서 주최하는 각종 행정서비스 경진대회에서 많은 상을 받아 시상금이나 상 사업비를 확보했는데, 내가 재직했던 11년 동안 100여 개가 넘는 분야에서 100억 원이 넘는 시상금과 상 사업비를 받았다.
아무튼 나는 민선군수로 취임한 이래, '주식회사 장성군'을 내세우며 행정에 기업의 경쟁논리를 도입해 구태의연한 관행을 바로 잡아가는 데 역점을 두었다. 그렇다고 해서 장성군이 기업처럼 이익을 내겠다고 직접적인 경영모델을 만들고 수익사업을 벌이지는 않았다. 단지 경영마인드를 가지고 장성군을 움직였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경영행정의 요체는 행정 내부를 어떻게 바꾸어 나가느냐 하는 것인데, 나는 바로 이것이 21세기형 지방자치단체가 추구해야 할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K과장은 회식자리에서 관선군수 시절 일부 지방신문 주재기자들에게 시달렸던 일을 말하곤 했는데, 그것은 일부 지방언론사들의 횡포이자 나쁜 관행이었다. 예로 기자 말을 안 들어주면 일방적으로 군정을 매도하는 기사를 연속해서 내보내고, 기자들에게 밥값, 술값, 유흥비는 물론이고 소위 '기자단 사업비'라는 근거 없는 돈까지 제공해야 했다. 나아가 기자들은 이권 청탁에 개입해 군정까지 자기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려 들었다. 나는 군청 공무원들에게 "기자 눈치 보지 말고 떳떳하게 소신을 가지고 일하십시오. 정당한 지적이라면 언론의 비판을 달게 받아 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옳지 않은 지적이나 보도는 무시하십시오. 특히 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를 가진 기사라면 저는 열심히 일하고 있는 여러분에게 절대로 책임을 묻지 않겠습니다"라고 엄명을 내렸다.
그러자 기자들 사이에서 군청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돌기 시작했고, 일부 기자들은 군수인 내 뒤를 캐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사화할 만한 '거리'를 찾아내지 못했고, 결국 군청 공무원들은 더 이상 기자들 비위를 맞출 필요가 없게 되었다. 오히려 일방적인 비판을 넘어 비난에 가까운 지적 기사를 내던 한 지역신문을 상대로 단체로 구독을 거부할 만큼 당당해졌다. 그러자 지방신문들은 언론 본연의 자리로 돌아갔고, 그 결과, 군정에 대해 사사건건 문제를 제기하던 신문들도 내가 퇴임할 즈음에는 "군수가 군정을 잘 이끌었다"는 응답이 75%였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내보내기도 했다. 한편 군의회는 군청이 행정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 예산심의와 감사를 통해 견제하고 감독하는데, 군의회와 군청의 관계는 견제와 감독이라는 기능 때문에 항상 원만한 관계일 수만은 없다. 장성군의회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