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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들의 이야기 2

한홍 지음 | 두란노
왕들의 이야기 2

한홍 지음

두란노 / 2008년 4월 / 448쪽 / 15,000원

1부 - 세우거나 혹은 무너뜨리거나

명군(名君) 여호사밧, 말씀으로 개혁하다

부친 아사의 뒤를 이어 왕이 된 남왕국 유다의 왕 여호사밧은 유다 최고의 성군 중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신실하게 경외했던 인물로서 국가의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인식하고, 국가를 번영케 하고 백성의 안녕과 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해서 신앙 강화를 핵심적인 정책으로 내세웠다. 특히 여호사밧은 국가의 존속과 번영의 관건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확신했기 때문에 백성들의 영성 확립에 집중했다. 먼저 종교개혁을 시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지도함으로써 국가경영에 신앙의 차원으로 접근해갔다.



여호사밧의 과감한 종교개혁과 강력한 교육정책은 백성들의 정신세계를 높은 수준으로 함양시켰고, 백성들의 마음을 일체화시킴으로써 국민총화를 이루어냈다. 또한 백성들의 의식 깊은 곳에 여호와 신앙을 자리 잡게 함으로써 믿음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이 백성들의 저력으로 나타나게 했다. 이 저력은 엄청난 수의 모압과 암몬, 마온 연합군이 유다왕국을 공격해서 국가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질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이 전쟁에 대처한 여호사밧과 백성들의 태도와 자세는 여호사밧이 추진해 왔던 정책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입증해 주었다. 여호사밧은 칙령을 발표하여 온 백성들을 유다왕국의 수도 예루살렘으로 모이게 하여 거국적인 집회를 개최하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으며, 무장하지 않는 거대한 찬양대를 조직하여 군대 앞에 선봉대로 세우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전장으로 나아가게 했다. 여호사밧과 백성들의 의식이 신앙으로 무장되지 않았다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무모한 전략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믿음을 전쟁의 핵심적 전략으로 결정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전장으로 행진해 갔던 여호사밧의 영적 결단에, 위대한 승리로 보상하셨다. 적들은 자중지란을 일으켜서 스스로 자멸하고 만 것이다.



이 기적 같은 승리의 소문은 사방 모든 열국으로 순식간에 번져 나갔고, 모든 열방이 유다와 유다의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으며 감히 유다를 향해 군사적 도발을 할 염두를 내지 못했다. 역대하 20장 30절은 이 사실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여호사밧의 나라가 태평하였으니 이는 그 하나님이 사방에서 저희에게 평강을 주셨음이니라.” 평화는 인간적 술수와 힘으로 지켜지는 게 아니다. 하나님이 주셔야 한다.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는 국가는 사람들이 함부로 하지 못한다.



여호람 왕, 공든 탑을 무너뜨리다

여호람은 공든 탑을 무너뜨린 왕이다. 조부 아사, 부친 여호사밧이 쌓아놓은 위대한 공적의 탑을 허사가 되게 했던 파괴적인 인물로 역사는 그의 사적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여호사밧의 장자였지만 동생 여섯을 살해할 정도로 잔인한 권력의 화신이었으며,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숭배에 몰두함으로써 타락의 극을 달렸던 폭군이었다.



여호람이 이렇게 포악한 왕이 되어 잔인한 살인극을 벌이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신앙을 제대로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호사밧은 자식들에게 재물을 나눠주고 성읍을 나눠주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했다. 특히 왕위를 물려줄 여호람에게는 더욱 그랬어야 했다. 교육이란 결국 놓아줌이고, 내려놓음이다. 그냥 방임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끄실 수 있도록 자식을 놓아주는 것이다. 나의 자녀가 아닌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는 권리 포기다. 하나님이 내게 맡겨 주신 자녀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법대로, 항상 말씀 중심으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면 된다. 그러면 주님이 책임지신다. 우리는 과연 다음 세대를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가? 영적 유산을 제대로 전수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여호사밧처럼 자식 대에 가서 엄청난 재앙의 씨앗을 뿌리게 된다.



또한 여호람이 무도한 악을 행하는 폭군이 된 또 하나의 이유는 잘못된 결혼 때문이었다. “저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 아내가 되었음이라”(대하 21:6)라고 이스라엘 역사는 그 사실을 기술하고 있다. 여호람의 악정은 북이스라엘의 악한 왕 아합의 딸을 아내로 데려온 데서부터 비롯되었다. 남자가 머리라면 여자는 그 머리를 움직이는 목이라고 했던가? 아합 왕과 이세벨의 딸은 그 부모를 닮아서 보통 여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남편 여호람을 조종하여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고, 우상숭배에 푹 빠지게 하며 폭력과 음모의 왕이 되게 한 것이다. 천려일실(千慮一失)이라는 말이 있다. 곧 천 번을 생각하고 고민했건만 단 한 번의 치명적인 실수로 일을 그르쳤다는 사자성어이다. 천하의 명군 여호사밧이 이런 실수를 범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악한 왕 아합의 딸과 아들 여호람을 결혼시켜 혼인동맹을 맺은 것이 바로 그 한 번의 실수였던 것이다. 여호람은 재위 8년에 창자가 썩어 몸 밖으로 빠져나오는 괴질에 걸려 죽음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2부 -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

엘리야와 엘리사, 리더십 승계의 본이 되다

엘리야는 자신의 사역을 엘리사라는 제자에게 승계한 뒤, 산 채로 공중으로 들림을 받아 매우 신비롭게 이 세상을 떠났다. 엘리사가 엘리야의 뒤를 이어 북왕국 이스라엘의 영적인 리더가 된 과정을 살펴보면 영적인 리더십의 조건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첫째는 엘리사는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면 그렇지 않는 사람보다도 사물을 보는 인지능력이 앞서게 된다.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에게 심상치 않은 일이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했던 것이다. 이것이 엘리사가 다른 생도와 다른 차이점이었다. 둘째는 엘리사는 집념의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길갈에서 벧엘로, 벧엘에서 여리고로, 여리고에서 요단강 건너편까지 고독한 여정을 명령하셨지만,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를 집요하게 따라간 것이다. 엘리사의 다음과 같은 고백은 엘리사의 집념이 얼마나 강한가를 보여준다.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왕하 2:2). 셋째는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의 영감을 승계 받고자 했던 꿈과 열망이 있었다. 엘리야가 승천하기 전에 엘리사에게 소원을 묻자 “당신의 영감의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왕하 2:9)라고 대답한 사실은 엘리사에게 분명한 꿈과 간절한 열망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영감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권능, 하나님의 영광, 거룩한 리더십의 능력, 성령의 특별한 기름 부으심이다. 그가 스승 엘리야의 영감의 갑절을 구한 것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리더의 길을 걸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없다면 이스라엘의 영적인 지도자의 일을 성공적으로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엘리사는 알았던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엘리사는 최선을 다했던 지도자이다. 엘리사는 리더가 된 다음에도 항상 하나님 앞에서 겸비한 종이었고, 하나님의 선지자로의 역할을 사력을 다해 감당함으로써 국가와 민족을 위한 봉사자요, 사명자로서의 위치를 훌륭하게 지켜나간 것이다.



엘리사, 역사의 전면으로 나서다

엘리사는 행동주의자였으며, 매우 실천적인 사람이었다. 엘리사가 북왕국의 정사에 관여한 사건들, 백성들 가운데로 뛰어들어서 함께 위기를 극복하고 처리하며, 백성들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헌신해왔던 공익적인 삶의 자세는 진정한 리더의 표상을 보여준다.



엘리사는 남왕국 여호사밧과 북왕국 여호람, 에돔의 동맹군들이 모압과 전쟁을 치를 때 식수난이 발생하는 심각한 위기를 당하자 이 위기 해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위기를 타개하였다.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고, 이 사건을 통해 엘리사는 여호와 신앙이 관념적인 상징물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현장에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굽이치는 체험적인 힘임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엘리사의 행적 중에서 특기할 만한 사실 중의 하나는 당시 북왕국 이스라엘의 적성국이었던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의 문둥병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료하여 두 나라의 적대적 관계를 우호적 관계로 전환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이다.



나아만 장군은 고구려 시대의 살수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던 을지문덕 같은 인물이었다. 성경은 그 사실을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왕하 5:1)라고 기록함으로써 나아만이 아람을 위해 큰 공을 세웠음을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나아만의 몸은 문둥병으로 썩어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매우 절박해진 상황에 놓여있었다. 그때 그에게 희망을 주었던 것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잡아온 나이 어린 포로 계집종의 말이었다.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왕하 5:2). 문틈 사이로 스며들어온 샛바람 같은 말, 웃기는 이야기라고 얼마든지 묵살해 버릴 수도 있었던 말이었지만, 나아만은 이 틈새 바람에 운명을 걸었다. 그 후 나아만은 북이스라엘로 가서 엘리사를 만나 문둥병을 치료받아 하나님의 능력을 생생하게 체험함으로써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인이 되었다.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를 만나서 문둥병을 치료받고 구원을 받는 과정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먼저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자 하는 결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순종하는 결단이 있어야 한다. 엘리사가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했을 때 그 말씀대로 순종했기 때문에 기적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나아만은 나아만의 치료를 돕기 위해 아람 왕이 제공했던 엄청난 선물, 은 10달란트와 금 6,000개, 의복 10벌을 엘리사가 끝까지 사양하는 초연한 자세를 보고 감동을 받아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었다.



엘리사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연결하는 가교역할을 감당하고 하나님을 대변해 사람을 교도하고 회개시켰다. 또한 국가적인 위난의 때, 혹은 백성이 당하는 개인적인 위기 때, 사람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기도하여 그 위난을 타개하고 위기를 해결해주는 봉사자였다. 또한 엘리사는 역사를 내다볼 수 있는 예지력으로 아람 왕 벤하닷 정권을 아람의 군대장관 하사엘이 전복하고 왕이 될 것과 북왕국 이스라엘의 군대장관 예후가 아합 왕조를 무너뜨리고 왕이 될 것을 예언했다. 이 예언대로 하사엘이 아람 왕이 되고, 예후가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이 되자 예언자로서 엘리사의 능력은 왕의 존경을 받을 만큼 인정을 받았다. 엘리사의 영향력은 그만큼 증대되었는데, 그는 이 막강한 영향력을 통해 우상을 타파하고 조국과 민족을 신앙으로 개조하고자 사력을 다했던 것이다.



요아스, 용두사미로 마치다

요아스의 부친 아하시야가 북왕국 왕 여호람을 문병 갔다가 쿠데타를 일으킨 예후에게 죽임을 당하자 아하시야의 모친이자 여호람(북왕국 여호람과 동명이인)의 부인 아달랴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때 아달랴의 딸 여호사브앗은 요아스를 몰래 숨겨 그녀의 남편이자 당시 남왕국 유다의 대제사장이었던 여호야다의 슬하에서 양육하였다. 대제사장 여호야다는 목숨을 담보로 하는 역쿠데타의 모험을 감행함으로써 아달랴를 죽이고 남왕국을 회복시켜 나이 7세인 요아스를 왕위에 세우고 섭정이 되었다. 여호야다는 7세에 왕이 된 요아스의 멘토가 되어 요아스로 하여금 성군의 정치를 하도록 헌신적으로 요아스를 보필했으며, 여호야다의 멘토링은 가장 이상적인 참모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성군 요아스의 치세는 그의 멘토 여호야다가 병사하자 막을 내리고 추락의 길을 걸었다. 우상을 섬기는 방백들이 요아스를 아부와 감언이설로 꼬드기자 요아스는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받아들인 것이다. 요아스는 네비게이션만 의지하다가 네비게이션 없이는 꼼짝도 못하고 길을 헤매는 사람처럼 여호야다를 맹목적으로 의지했던 사람이었다. 요아스가 의지했던 것은 여호야다라는 인물이었지, 그의 가르침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만일 요아스가 여호야다가 요아스를 지도했던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했더라면, 여호야다가 그의 곁을 떠났을지라도 흔들리거나 변질되지 않았을 것이다. 요아스는 정신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미숙한 정신력과 영성은 불법과 불의, 그리고 우상숭배와 악한 자들의 궤계에 의해 모래성처럼 무너져버려 용두사미가 된 것이다. 요아스는 모반자들에 의해 암살을 당하고 불행하게 인생을 마감했다.



요아스의 뒤를 이어 왕이 된 남왕국 유다 왕 아마샤는 재위 초기에는 성군의 자질을 보여주었던 가능성이 풍부한 리더였다. 아마샤는 재임 초기에는 하나님 보시기에 비교적 정직히 행하고 선정을 베풀었다. 하지만 성경은 아마샤가 정직히 행하긴 했으나 그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가 그 조상 다윗에게는 못 미침을 분명히 했다. 역대하 25장 2절은 아마샤에 대해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기는 하였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치 아니하였더라”라고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따르기는 했지만 진심으로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긴 믿지만 자기 생각도 많고 자만심도 강했다는 뜻이다. 아마샤의 가능성은 자만심과 우상숭배라는 덫에 걸려 가능성의 자리에서 거품처럼 꺼져버린 것이다.



아마샤가 에돔과의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잘못된 상황을 만드는 것은 환경이나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 사람 자신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아마샤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에돔을 정복하자 당연한 수순이 되어야 할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행방불명이 되었고, 대신에 에돔 왕이 섬겼던 우상을 전리품으로 가져와서, 그 우상을 섬기고 분향하는 역기능적인 추태를 연출했다. 이 사실은 그가 교만해짐으로써 자아도취에 빠졌다는 명백한 증거인 것이다. 리더가 교만해져서 자아도취에 빠지면 독선과 아집의 사슬에 매이게 되고 현자와 충성파들의 조언에 귀를 막게 된다. 아마샤는 바른 말을 고하는 하나님의 종 선지자를 배척하고, 북왕국 이스라엘에 대해 무모한 전쟁을 도발함으로써 포로가 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포로에서 해방되어 귀환한 다음에는 모반자들에게 암살을 당하는 비참한 종말을 맞았다.



3부 - 멸망당하는 하나님의 백성

웃시야, 뒷심을 잃다

웃시야는 그의 부친 아마샤가 포로로 잡혀간 B.C. 790년부터 불과 16세에 섭정 왕으로 통치를 시작했다. 아직 소년의 나이에 그를 유능한 리더의 자리로 견고하게 서게 한 것은 탁월한 두 사람의 멘토가 완벽한 참모 역할을 감당해주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은 그의 모친 여골리야이고, 또 한 사람은 선지자 스가랴였다. 여골리야는 감성적인 멘토로서 웃시야의 정서와 인성 완성에 기여했던 인물이고, 스가랴는 웃시야의 지성과 영성에 영향을 끼쳤던 인물이다. 웃시야가 국가를 반석 위에 세워 그 위망(威望)을 높이고, 열방이 두려워하는 대상이 된 것은 바로 인성 멘토와 지성과 영성 멘토의 두 날개가 웃시야를 제대로 날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충실한 참모였던 선지자 스가랴가 죽자 웃시야는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고 좌충우돌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힘들고 어려울 때에는 겸손해지지만, 성공의 정상에 오르고, 범사가 형통해지면 교만해지는 경향이 있다. 웃시야는 멘토 스가랴 선지자가 그의 곁을 떠나자 하나님이 자기에게 재어 준 구역을 벗어나서 과욕을 부리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산 것이다.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 성소에 제사장들의 저지를 물리치고 친히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다가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서 문둥병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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