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술의 달인들
한셩 지음 | 달과소
공제학의 창시자 유방 ; 한 저잣거리 건달의 인재등용 철학유방(劉邦)은 패군(沛郡) 풍읍(豊邑) 사람이었다. 한(漢)의 개국 황제로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황제 중 한 사람이다. 한나라 400년의 기반을 다진 유방은 저잣거리 건달 출신이었다. 그의 문예는 관리가 될 만한 것이 못 되었고, 무예는 성을 공격해서 빼앗을 정도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수많은 기라성 같은 영웅들, 장량, 소하, 한신과 같은 인물들을 자신에게 복종하게 만들었고, 출중한 통치 수완을 발휘하여 한의 400년 기업의 받침대를 마련했던 인물이다. 이에 유방을 진정한 관리학, 공제학(控制學)의 대사라고 부른다.
유방은 인재를 알아보고 포용할 수 있는 통찰력과 웅장한 스케일을 지닌 사람이었다. 당시 유방과 패권을 다투었던 항우라는 인물은 모든 면에서 유방을 능가하는 자질과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항우는 자기의 힘을 과신하고, 자만(自慢)의 울타리에 스스로를 가두어 독선과 아집으로 일관했던 인물이었다. 유방이 식인(識人)의 사람이었다면 항우는 실인(失人)의 사람이었다. 유방은 인간관계가 대업의 가장 기초가 된다는 원리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사람의 가치를 중시하고, 사람 경영에 놀라운 재주를 가진 유방이 천하를 장악한 것은 가장 이상적인 처세관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는 역사의 교훈이다.
유방은 막사 안에서 작전 계획을 짜 천리 밖의 전장에서 승리를 결정짓는 일에서 자방(子房)만 못하고,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위로하며 양식을 공급하는 일에서 소하만 못하고, 백만 대군을 이끌고 싸우면 반드시 승리하고 공격하면 반드시 점령하는 것에서는 한신만 못했지만, 이와 같은 인재들을 경영할 수 있는 인간경영의 고수였다. 그러나 항우는 인재를 등용하는 방법이 극히 비열했다. 왕릉이라는 인재를 끌어오기 위해서 그의 모친을 인질로 삼는 비열한 수단을 감행함으로써 민심을 이반하게 하는 악수를 두기도 했다. 왕릉의 모친은 비밀리 서신을 아들 왕릉에게 보내 한 왕 유방을 섬기라는 부탁을 하고 스스로 항우의 칼에 엎드려 목숨을 끊었다. 또한 항우는 투항한 자들을 잔인하게 처리했다. "항 왕이 지나가면 파괴되어 황폐화되지 않는 곳이 없다"는 당시의 세론은 이를 반증하는 것이다. 범증이라는 유일한 책략가도 항우의 독선을 견디지 못하고 그의 곁을 떠나게 만들었다.
유방은 용인여기(用人如器), 각취소장(各取所長)의 사람이었다. 사람을 쓰는 일은 그릇을 쓰는 것과 같아 각기 그 장점을 취한다는 말이다. 유방은 인재를 알아보고 인재를 끌어 모으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등용된 인재의 역량을 극대화시켰다. 한신은 군사를 지휘하게 했고, 장량은 책략을 짜게 했으며, 소하는 치국을 하게 했다. 유방을 포진하고 있는 인재들의 움직임을 보면, 기이할 정도로 정확한 용도로 기용되고 활동했다. 유방의 용병술의 기술과 역량이 잘 표현되고 있는 장면이 유방의 유언 자리이다. 유방이 임종에 가까워져 후사 문제에 대해서 왕비 여후(呂后)와 나누었던 대화는 이를 잘 보여준다. 여후가 물었다, "만일 황제께서 돌아가신 후, 蕭(소) 상국(相國, 재상)마저 죽으면 누가 그 자리를 대신합니까?" 유방은 조참이라고 했다. 여후는 조참 다음은 누구인지 물었고, 유방은 "조참 다음으로는 왕릉이 좋을 것이오. 그러나 왕릉은 지모가 부족하므로 진평으로 하여금 보좌하게 하는 것이 좋소. 하지만 진평이 지모를 갖추었다고는 하나 큰일을 결단하지는 못할 것이오. 반면 주발은 언변이 뛰어나지는 못하지만 사람됨이 충실하고 온후하오. 유씨 왕조를 안정시키는 데 큰 공을 세울 자는 분명 그일 것이니 그를 태위(太衛, 무관의 최상위)에 삼으면 많은 도움을 받을 것이오."
유방의 인재 경영은 조합(組合)의 예술이었다. 인재의 유형을 살펴보면, '지휘인재(指揮人才)'는 선견지명이 있고, 지모가 뛰어나며 판단이 정확하여 단체를 조직하고 통솔하는 능력을 갖춘 인재이다. '집행인재(執行人才)'는 사람의 뜻을 잘 파악하고 충성스러우며 성실하고, 그 어떤 노고나 원망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재이다. '감독인재(監督人才)'는 인정에 구애됨이 없이 공평무사하고 업무를 파악하며 군중들과 소통을 잘하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다. '참모인재(參謀人才)'는 생각이 활기차고 지식이 풍부하며 종합적 분석력이 강하고 진리를 견지하는 사람이다. 이런 자들은 합리적인 조합을 거쳐 거대 힘으로 거듭나게 된다. 유방에게는 다양한 인재를 한 줄로 엮을 수 있는 조합의 능력이 있었다.
유방은 '의인불용(疑人不用), 용인불의(用人不疑)의 사람이었다. 의심이 가는 사람은 쓰지 않았고, 한 번 사람을 기용하면, 절대로 의심하지 않고 진실하게 대해주었다는 말이다. 진실은 진실을 낳고, 진실은 진실을 견고하게 한다. 유방이 사람을 진실하게 대우했다는 것은 그 인간됨을 신뢰했다는 뜻이다. 유방이 인재를 모으는 방법론 중에 주종을 이루고 있는 것이 투항권고 전략이었기 때문에, 유방 자신의 이와 같은 진솔한 자세는 투항자들로 하여금 투항을 후회하지 않게 만들었고, 투항자들이 수치를 느끼지 않게 만들었다.
그러나 항우는 투항권고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이었다. 항우는 무력지상주의자였다. 무력으로 정벌하고 적은 잔인하게 도살하는 원칙을 고수했다. 이런 항우의 태도는 그를 고립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진나라 거록(巨鹿)의 전쟁에서 장함이 항우에게 투항하자 진나라 군사들도 항우에게 투항하므로 진나라는 멸망을 당했다. 후에 투항한 진나라 군사 20만 명으로 인하여 군량미의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진나라의 제후들의 저항이 일어나자 항우는 진나라 20만 대군을 생매장을 시켜 몰살했다. 이 사건으로 항우는 민심을 크게 잃었으며, 항우에게 투항하는 것은 위험하고 무의미한 일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유방이 남긴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인재를 알아보는 통찰력이다. 둘째, 인재조합의 기술로 인재를 적재적소에 기용하는 기술이다. 셋째, 진솔함이다. 유방은 인재들에게 진실하게 대했다는 것이다. 넷째, 사람에 대한 신뢰이다. 다섯째, 공정성으로 일관된 균형 감각이다. 유방은 논공행사를 공정하게 함으로 분란 소지를 없앴다.
세치의 혀 소진(蕭秦) ; 뛰어난 웅변 능력을 겸비한 가난한 선비전국시대의 유명한 책략가이다. 중국 역사상 언변의 달인으로 유명한 대표 인물인 귀곡자(鬼谷子)의 문하에 들어가서 장의와 함께 귀곡자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서 《음부경陰符經》을 열심히 연구하여 천하의 책사로 거듭났다.
소진은 이론을 실천에 옮기는 데 있어서 매우 도전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다. 소진은 연나라 문후를 찾아가 제(濟), 초(楚), 연(燕), 한(韓), 조(趙), 위(魏) 여섯 나라가 연합해서 강대국 진(秦)을 견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의 문후는 소진의 관점에 동의하였고, 조나라에 가서 조왕을 설득해 줄 것을 요청했다. 조왕은 소진에게 반해서 소진을 무안군(武安君)에 봉했고, 소진의 합종술(合縱術)로 여섯 나라를 연합하게 해 줄 것을 요청했다. 소진은 이 여섯 나라의 공동 승상의 자리에 올랐다. 소진이 육국의 공동 승상으로 있을 때에는 진이 동쪽의 함곡관( 谷關)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 소진이 제안한 정책은 합종 전략이다. 남북으로, 즉 세로로 연결된 위나라, 한나라, 조나라를 중심으로 북쪽으로 초나라와 연합하고, 동쪽으로 제나라와 연합하여 공동으로 진나라에 대항하는 정책이다. 반면에 진에 들어가서 진을 위해서 계책을 베풀었던 장의가 제안한 정책은 연횡정책이다. 연횡정책은 동서로, 즉 가로로 연결된 두 나라 제나라와 진나라가 무력을 이용하여 나머지 약소국이 그들의 명령에 따르도록 하고 제나라가 약해졌을 때 진나라가 나머지 여섯 나라를 점령하는 전략이다.
소진의 언변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을 변론해서 설득할 수 있는 탁월함에 있었다. 설득력은 상대방의 편견이나 고정관념, 상식의 벽을 허물고 자기의 의견을 심어 그 의견을 받아들이게 하는 능력이다. 소진은 이런 능력이 탁월했다. 연소왕은 매우 덕이 높은 왕이었는데 연나라는 제나라에 빼앗겼던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서 소진에게 이 역할을 맡겼다. 소진은 제 왕을 설득해서 연나라의 실지를 회복하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소진은 연소왕의 주문대로 제나라로 하여금 진과 우호적인 송을 공격하게 함으로써 진과 제나라를 이간질하고, 제나라로 토목공사를 과도하게 일으키게 해서 제나라의 국력을 허약하게 하여 일거양득의 이익을 연소왕에게 안겨주었다. 연이 제에게 당했던 피해를 설욕하고자 했던 복수극이었다. 이 모두가 소진의 세치 혀로 이루어진 사건이다.
소진은 권모술수에 능한 재사였다. 소진과 함께 귀곡자의 문하생으로 수학했던 장의가 곤경에 빠진 사실을 확인하고, 사람을 보내서 장의를 조나라로 불렀다. 소진의 합종연합정책이 당시에 불완전한 상태에 있었을 때이다.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할 가능성이 짙었기 때문에,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 고심하고 있었다. 이 역할에 장의라는 인물을 이용한 것이다. 소진은 진나라에 장의를 보내서 진왕의 신임을 받게 함과 동시에 장의로 하여금 조를 공격하지 못하게 한다는 계책이었다. 소진은 조나라로 들어온 장의에게 큰 은혜를 입게 하고 다시 진으로 가도록 획책했다. 장의는 진왕에게 중용되어서 진의 혜왕을 보필하게 되었으나 소진에게 입은 덕을 생각해서 진으로 하여금 조나라를 공격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소진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지피지기가 승리의 관건이라는 것이다. 즉 자기를 알고 남을 아는 것이다. 소진은 지피지기(知彼知己)에 능한 사람이었다. 지피지기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지피(知彼, 상대방을 아는 것)이다. 둘째, 마음을 공략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마음을 열어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고, 그 제시된 의견이 상대방의 이익을 창출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셋째, 그 외의 설득의 방법으로 입실(立實, 사실을 빌려 상대방을 설득하다), 변리(辯理, 변론과 웅병으로 설득하다), 투정(投情, 감정상 상대방과 친해짐), 다유(多維, 다차원 ; 다각적인 방법) 등이 있다. 다각적인 방법 중에서 특히 전파학에는 유명한 공식이 있다. '새로운 소식의 전파=7%의 언어+38%의 목소리+55%의 표정' 언어는 불과 7%밖에 되지 않고 외적 요소가 93%나 된다.
태극고수 송강(宋江) ; 타인의 힘을 빌려 성과를 이뤄낸 고수송강은 산동(山東) 운성( 城) 사람으로 의형제들의 도움에 의존해 개인의 정치적 지위를 유지한 지략가이다. 송강 그 자신은 특별히 훌륭하다 할 만한 재능도 없었고, 자신의 능력으로 조정의 고위직에 오를 수 있는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에, '곡선구국(曲線救國, 간접적인 방법을 통해 나라를 구함)'의 우회전술을 택해 양산(梁山)의 수많은 사람들의 힘을 빌려 벼락출세의 꿈을 달성한다. 이것이 바로 송강의 태극권 추수 차력타력의 고명한 힘이다.
송강은 본래 산동의 부호 출신의 하급 공무원으로 주로 공문서에 관련된 일을 취급했다. 송강은 꿈꾸는 사람이었다. 송강은 투쟁적이고 호방하며 사교적이고 유가의 인애를 지닌 인물이었다. 이런 성품이 사람을 끌어 모으는 힘으로 작용했고, 사람들에게 '급시우(及時雨, 때 맞춰 내리는 비)'라는 명칭을 얻었다. 송강은 불륜을 저지른 처 염파석을 죽이게 되는데, 이 살인사건의 동기는 염파석이 그의 깊은 비밀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걸림돌을 치운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양산으로 들어가 양산 패거리들의 두목으로 추대되었다. 송강은 양산의 무리에게 조정을 구하고 백성을 위한다는 대의명분을 양산의 활동 근거와 동기로 내세우게 함으로써, 양산의 위상을 당당하게 업그레이드시켰다.
송강은 태극권 추수(推手, 권모술수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암투)에 능했던 인물이었다. 당시 양산의 두목은 조개라는 인물이었다. 조개가 송강에게 양산의 두목이 되라고 권유했지만 송강은 두목의 자리를 사양하고 제2인자의 자리를 고수했다. 제1인자가 되기 위해서 주변 조건, 곧 기반이 준비되어야 하는 것이다. 송강은 이것을 파악했다. 송강은 허수아비 두목의 자리를 원치 않았던 것이다. 그는 자기의 사람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이때의 인물들이 시진, 뇌횡, 대종, 장횡, 장순, 이규, 무송, 노지심, 공명, 장청, 손이낭 등이다. 송강이 양산을 자기의 세력 판도로 재구성하고자 했던 이유는 첫째는 밑천을 확보하고자 함이었고, 둘째는 추종자들에게 영향력을 극대화시키고자 함이었고, 셋째는 조개와의 근거리 접촉을 피하고자 함이었다. 조개는 송강의 의도대로 사문공(史文恭)과의 전투에서 전사했다. 존경심과 의리를 유지하면서, 남의 힘을 빌려 조개를 제거한 것이다. 이 전략이 태극권의 추수이다.
송강은 차력타력의 전문가이다. 남의 힘을 빌려 자기의 목적을 쟁취하는 것이다. 송강은 이 차력타력의 전략으로 양산의 두목 조개의 뒤를 이어 두목이 되었다. 문제는 사문공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두목 조개의 유지(遺志)가 '사문공을 사로잡은 자가 두목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송강은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계책을 꾸몄다. 송강의 무력으로는 사문공을 사로잡을 수 있는 실력이 아니었다. 그래서 노준의(盧俊義)라는 인물을 설득해서 양산으로 불러들였다. 노준의는 재물이 많았고, 명성이 높은 고관이었다. 송강은 노준의를 앞장세우되 자기의 사람들로 노준의를 돕게 함으로써 노준의가 사문공을 사로잡도록 했다. 송강이 노준의를 조개의 유훈에 따라서 양산의 두목으로 추대하고자 했을 때, 노준의 자신이 이 두목의 자리를 부담스러워했고, 양산의 무리들이 노준의가 두목이 되는 것을 원치 않고 송강이 두목이 되기를 간망했으므로, 송강은 자연스럽게 양산의 주인으로 추대가 된 것이다. 차력타력의 탁월한 전략이다.
송강은 양두구육으로 자신을 위장한 변장술의 고수였다. 송강이 자기의 야심을 실현하기 위해 사용한 전략이 양두구육(羊頭狗肉, 양머리를 걸고도 개고기를 내다 팔 수 있다)의 변장술이었다. 이 전략이 필요했던 것은 양산의 역량을 빌리면서도, 조정의 미움을 사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시도했던 해법이 첫째가 체천행도(替天行道, 아랫사람에게 아첨하라)이다. 체천행도는 양산의 호걸들을 만족시켰다. 이 체천행도는 수많은 호걸들을 양산으로 끌어 모으는데 주효했다. 둘째가 순천호국(順天護國, 조정에 아첨하라)이다. 송강은 조정의 대군을 세 번이나 격파하는 승리를 철저하게 이용했다. 그 승세를 몰아 추격하지 않고, 조정의 패장들을 예를 다해 끌어 모았다. 조정의 패장들에게 송강의 '조정에 대한 충심'을 각인시켰다. 이 각인 작업은 매우 효과적인 결실을 생산하여 송강이 국가의 부름을 받게 하는데 기여했다. 그는 순천호국을 위해서 체천행도를 포기했다. 다시 말하면 부하들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목적을 성취한 것이다. 고도의 양두구육 전략이다.
송강은 백성이라는 큰 터에 자신의 기반을 마련했다. 송강은 '급시우(及時雨)'라는 별호를 갖고 있었는데, 백성들에 대한 그의 사랑과 관심 때문에 얻은 훈장 같은 별호이다. 송강의 백성에 대한 배려와 관심은 매우 특별하고 강렬한 것이었다. 이는 송강의 기반을 양산을 넘어서, 조정으로, 조정을 넘어서 백성이라는 자리까지 나아가게 한 처세의 달인다운 면모였다. 석용(石勇)이라는 사람의 말이 송강의 현주소를 대변해주고 있다. "오직 두 사람만이 천하를 얻을 수 있다. 하나는 시진이고, 또 하나는 운송현의 압사로 있던 산동의 급시우 송강이다. 이 두 사람을 빼고는 제아무리 송나라 황제라도 나는 두렵지 않다"고 했다.
송강의 처세법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명분을 세우는 것이다. 둘째, 2인자의 철학을 철저히 파악하는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가장 완전하고 확실한 방법으로 1인자의 자리로 비약하는 것이다. 셋째, 태극권 추수를 교묘히 활용해 조직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