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대처 VS 클린턴 리더십

채희봉 지음 | 미래M&B
대처 VS 클린턴 리더십

채희봉 지음

미래M&B / 2007년 4월 / 368쪽 / 15,000원

1부 대처와 클린턴에게 배우는 한국형 리더십



정책 리더십의 성공 모델


이 시기에 왜 대처와 클린턴의 리더십이 중요한 의미를 가질까? 결론부터 말하면 대처와 클린턴은 비전과 정책의 리더십으로 국민들의 지지를 획득하고 성과를 낸 '정책 리더십의 성공 모델'이기 때문이다. 대처는 원칙을 강조하는 리더십의 지도자로 잘 알려져 있다. 노조의 과격한 활동에 대해 법과 원칙으로 대응함으로써 영국의 노동 개혁을 이끌어낸 인물이다. 또한 자신이 강조하는 원칙만큼 정책에 대한 이해가 무척 깊은 리더였다. 민영화 정책, 노동 개혁 정책, 재정 정책, 부동산 정책, 교육 정책 등에 걸쳐 그 세세한 내용을 분석하고 입안했다. 클린턴 역시 마찬가지이다. 클린턴도 정책에 대한 이해가 매우 깊은 인물이었다. 대처와 클린턴이 높이 평가받는 것은 이들이 정책에 대해 이해가 깊었을 뿐 아니라 정책을 성공적으로 수립하고 집행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각각 영국과 미국이 요구하는 문제를 자신들의 정책을 통해 해결했다. 이러한 정책의 성공을 통해 대처는 세 번의 집권을, 클린턴은 재선 당선을 각각 이끌어냈던 것이다.



마거릿 대처는 1975년 히스를 물리치고 여성으로서는 영국 최초로 보수당 당수에 선출되었으며 1979년 노동당의 캘러핸 내각이 의회에서 불신임을 당한 후 치른 총선에서 보수당이 승리함으로써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었다. 대처는 1979년과 1980년에 걸쳐 통화주의에 입각한 통화량 감축과 재정 긴축 정책을 펼침으로써 인플레이션을 해결하고 영국 경제 번영의 기초를 마련했다. 그 후 수천 마일 떨어진 아르헨티나 인근의 포클랜드 섬에서 벌어진 아르헨티나와의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영국의 국가 안보를 굳건하게 지키는 성과도 거두었다. 또한 과격한 노조에 대한 노동 개혁, 민영화 등을 통해 영국병이라고 불리는 영국 경제의 비효율을 개선했다. 대처의 시장 경제와 자본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 재정 정책과 통화 정책의 긴축, 민영화 등의 정책은 그 내용이 뚜렷하고 일관되어서 대처리즘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또한 주식과 주택 보급의 확대 정책, 교육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 강조, 행정 서비스 개선 등 정부 혁신을 통해 정부의 간섭을 축소하고 국민의 자유로운 선택과 소유권을 장려하는 소위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했다.



클린턴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태어난 베이비 부머 세대로서는 최초로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이다. 한 번의 주지사를 역임한 후 재선에 실패했는데, 그 후 재도전하여 주지사에 취임하는 등 주지사 시절부터 정치적 역경을 극복하는 데 탁월한 수완을 보였다. 그 후 중앙 정치 무대로 진출하여 젊은 패기와 미래지향적 비전을 내세워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당시 걸프전 승리로 지지율이 90퍼센트에 달했던 공화당의 부시 대통령을 물리치고 1992년 집권에 성공함으로써 미국 정치사상 대 파란을 일으켰다. 초기에 미숙한 국정운영으로 많은 실패를 경험했고, 심지어 1994년 총선에서 깅리치가 주도한 공화당에 상원과 하원의 과반수를 모두 내주는 시련에 직면했다. 하지만 사회복지 지출을 둘러싼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공화당의 극단적인 조치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감을 등에 업고 클린턴은 정치적 반전에 성공했다. 이 후 클린턴은 초당파적인 입장에서 국민의 대통령으로 다가서는 전략을 통해 재집권했다. 또한 신경제라고 불리는 IT 등 산업기술의 비약적인 발전과 급성장으로 경제 성장을 이룩했고, 수천억 달러에 달했던 고질적인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여 수십 년 만에 재정흑자로 돌아설 수 있도록 했다. 클린턴은 미국의 장기불황이라는 긴 터널을 탈출하면서 오늘날의 미국을 만들어내는 데 크게 기여했다.



대통령 리더십, 왜 벤치마킹해야 하나

물론 단순히 대처와 클린턴으로부터 한국형 리더십의 교훈을 얻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영국과 미국의 정치 환경은 우리나라의 경우와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과 미국에서는 우리나라에 비해 훨씬 오래전부터 비전과 정책의 리더십 대결이 있었다. 이러한 정책 리더십의 치열한 공방 속에서 대처와 클린턴은 승리하였을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장기집권을 구가하는 성과도 누렸다. 게다가 영국과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발전 단계가 앞서 있으며,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문제나 앞으로 다가올 문제를 미리 겪어 본 경험이 있다. 대처와 클린턴이 1980년대와 1990년대를 풍미한 지도자이지만, 그들의 정책은 지금도 벤치마킹할 내용이 많다. 우리나라의 리더들이 대처와 클린턴의 정책 리더십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국민의 가슴에 와닿는 정책들을 제시하여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단순히 이미지가 아닌 준비된 정책으로 국민의 지지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집권 후에도 준비된 정책을 통해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국정운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일반 국민과 유권자들도 우리나라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에는 어떤 것들이 있고, 또 어떤 방식으로 해결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상세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대통령을 선출한다면 정책을 통한 문제 해결 능력이 있는 리더를 선출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진보와 보수 그리고 중도의 대결은 이제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러한 이념의 대결은 구체적인 정책 대결로 발전되어야만 의미가 있다. 구체적인 정책의 뒷받침이 없는 추상적인 이념 논쟁은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이러한 논쟁은 한국 정치를 진전시키지 못하고, 미래의 한국에 번영을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다.

대처와 클린턴에게 배우는 성공하는 리더의 자질

성공한 리더인 대처와 클린턴에게서 배울 수 있는 리더십의 성공 요인, 즉 리더의 자질은 무엇일까? 두 사람은 다른 자질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각 훌륭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따라서 대처와 클린턴의 성공을 가능하게 한 자질은 무엇이며, 이러한 자질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리더십의 성공으로 이어졌는지를 알아보는 것도 의미가 크다고 할 것이다.



대처 리더십의 성공 요인

대처 리더십이 성공할 수 있었던 훌륭한 자질로는 단순하고 명료한 비전 제시, 일관성 있는 신념, 명확한 메시지 전달, 결단력 등을 들 수 있다. 첫째로, 대처는 영국 국민에게 명료한 비전을 제시했다. 1970년대 후반 영국 경제는 암울했다. 높은 실업률, 전투적인 노조, 낮은 생산성 등 이른바 영국병으로 영국 경제는 신음하고 있었다. 노조들의 잦은 파업으로 공공 서비스는 빈번히 마비되었고, 영국 국민은 불만의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이러한 암울한 시대에 대처는 영국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영국을 확고한 시장경제 국가로 바꿀 것이며, 국가의 역할보다는 개인, 기업의 역할을 중요시하고, 영국에 만연된 노동당의 사회주의적 요소를 철폐해 나간다는 명쾌한 비전을 제시했다. 단순하고 명료한 대처의 비전은 영국의 국민과 시장에 확실한 신호를 보냈다. 따라서 영국 국민과 기업들은 앞으로 영국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시장의 예측 가능성도 높아졌다.

둘째로, 대처는 일관성 있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대처는 자신이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아서 스카길이 이끄는 광산노조 파업의 처리 문제였다. 대처 정부의 몇몇 인사들은 광산노조 파업에 대한 대응 과정에서 노조의 요구를 수용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비추기도 했다. 하지만 대처는 자신의 신념에 대한 일관성을 잃지 않았다. 대처는 광산노조의 파업기간 동안 일관되게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고, 결국은 광산노조와의 대결에서 승리했다. 그 승리를 계기로 영국에서 과격한 노조의 파업은 막을 내렸다. 셋째로, 대처는 자신이 영국을 어떠한 방향으로 리드할 것인가에 대해 국민에게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리더는 주요 사안에 대하여 국민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는데, 대처는 이러한 측면에서 성공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1980년의 보수당 회의에서 이야기한 "저는 방향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The lady is not for turning)."라는 유명한 메시지이다. 이 발언은 자신의 일관성 있는 신념을 보수당 내의 인사들, 야당, 언론, 일반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넷째로, 대처의 훌륭한 자질 중의 하나는 결단력이다. 대처가 추진한 정책은 사실 인기가 없는 정책이었다. 특히 재정지출을 억제하는 정책은 결단을 필요로 했다. 국가의 리더는 일반적으로 자신의 비전과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정부 프로그램을 선호하게 마련이다. 국민 또한 자신이 재정지출 프로그램의 수혜자인 경우 그 재정지출의 삭감을 반대할 것이다. 하지만 대처는 이러한 유혹에 굴하지 않고 결단력 있게 재정지출 억제 방안을 실행에 옮겼다.



클린턴 리더십의 성공요인

클린턴의 경우 실패로부터의 회복,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지적인 능력, 고도의 정치적 감각, 과감하게 방향 전환을 할 수 있는 용기, 국민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 등이 훌륭한 자질로 평가되고 있다. 첫째로, 클린턴은 실패로부터의 학습을 통해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클린턴은 어느 대통령보다 실패를 많이 경험한 대통령이다. 클린턴의 대통령직 인수는 실패의 전형적 사례로 평가되었고, 건강보험 개혁의 실패, 화이트워터 스캔들, 1994년 의회선거의 참패, 탄핵 등 굵직한 실패를 경험했다. 하지만 클린턴은 자신의 정치와 대통령직 수행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다. 그는 이러한 실패의 충격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회복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둘째로,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는 지적인 클린턴의 능력을 들 수 있다. 클린턴은 공공정책의 복잡성과 본질을 제대로 이해한 대통령 중의 하나로 평가된다. 대통령들은 대개 어떤 이슈의 정치적 측면인 '이슈의 정치학'에 대해서는 많은 식견을 가지고 있지만, 이슈 자체에 대해서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클린턴은 이슈의 정치학뿐 아니라 이슈 자체에 대한 이해도 깊었고, 그 이슈를 철저하게 파악하고자 노력했다. 클린턴은 최고의 경제팀을 가지고 있었지만 보좌관, 참모, 자문교수들의 생각에 대해 자신이 철저히 이해하지 못할 경우 만족하지 않았다. 클린턴은 복잡한 통계와 전문용어를 직접 분석하고 파악했다. 클린턴은 또한 이슈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청취하는 것에 능했다. 다른 사람들의 견해 중 가장 좋은 점을 골라 통합된 하나의 정책으로 만들어가는 데 능력이 탁월했다.



셋째로, 클린턴의 남다른 자질 중의 하나는 바로 정치적 감각이었다. 클린턴은 유권자들을 포함해서 다양한 사람들의 의중을 파악하는데 능했다. 또한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고 이슈를 제시하면서 청중들에게 연설하는 능력이 뛰어났는데, 그런 면에서 클린턴은 비슷한 세대 중에서 가장 유능한 정치인으로 평가된다. 클린턴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청중들과의 교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청중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설득하는 능력은 그의 선거운동 과정에서 큰 힘이 되었다. 넷째로, 클린턴의 뛰어난 리더십 자질 중의 하나는 과감하게 방향 전환을 할 수 있는 용기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중산층에 대한 조세감면 공약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대신 부유층에 대한 세율을 인상한 것이다. 사실 클린턴의 입장에서 중산층에 대한 조세감면을 포기하는 것은 정치적으로는 치명적인 결단이었다. 하지만 악화되는 재정적자를 감축하는 것이 국가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 클린턴은 자신의 공약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재정적자 감축을 위한 길을 걸었다.



다섯째로, 클린턴의 자질 중 돋보이는 것은 국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라고 할 수 있다. 클린턴은 특정 집단의 복지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흑인, 여성, 빈곤층, 노약자, 장애인, 직업여성, 재해 희생자들은 클린턴이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쏟은 그룹이었다. 클린턴은 정책을 추진하면서 이러한 그룹들을 위한 정책을 보존하고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대처와 클린턴의 리더십의 실패 사례

물론 대처와 클린턴의 리더십이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의 리더십에는 분명히 실패한 부분이 있고 이러한 리더십의 실패에서 얻어지는 교훈도 많다. 대처의 경우, 첫째로, 자신의 정당성을 지나치게 확신하였고, 그 신념에 부합하지 않는 정치세력과 인물들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 결과 대처 집권 당시 영국은 크게 분열되었다. 대표적인 예는 바로 보수주의의 우월성에 대한 확신이다. 대처는 보수주의가 영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다. 반면 노동당과 사회주의는 영국의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생각했다. 노동당과 사회주의에 대한 반감은 거의 경멸에 가까웠다. 둘째로, 국민을 돌보는 지도자로서의 덕망을 갖추지 못했다. 훌륭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임기 중 대처에 대한 일반 국민의 호감은 높지 않았다. 그 이유는 많은 국민이 대처가 영국 국민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실업 문제이다. 대처가 집권한 기간 중 1982년부터 1987년까지 실업률은 10퍼센트를 웃돌았다. 대처는 영국 경제가 본격적으로 회복되면서 실업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대처는 높은 수준의 실업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강력한 자유주의 정책을 구사했고, 경쟁에서 뒤처진 국민들에 대해서는 주목할 만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그 결과 집권기간 동안 소득의 불균형과 지역간 불균형이 더욱 심해졌다. 이것이 대처 리더십의 한계이다. 대처 리더십의 세 번째 문제로는 전제적인 정부 운영을 들 수 있다. 대처는 정부 운영에 이견을 용납하지 않았다.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방식은 매우 중앙집권적이었고 권위주의적이었다. 대처 정부 내에서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특히 심각한 것은 이러한 전제적인 스타일로 인해 자신과 오랫동안 함께해 온 사람들마저 결국은 등을 돌리게 되었다는 점이다.



클린턴의 리더십 중 실패한 사례는, 첫째로, 윤리적 취약성을 들 수 있다. 클린턴 대통령은 2000년 실시된 56명의 역사가와 정치전문가들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경제 관리로서는 역대 대통령 중 다섯 번째로 우수한 대통령으로 뽑혔지만, 도덕적 권위에서는 닉슨 대통령에도 못 미치는 꼴찌를 기록했다. 그는 재임기간 중 크고 작은 스캔들, 실수 등이 끊이지 않았다. 폴라 존스와의 스캔들, 모니카 르윈스키 스캔들, 탄핵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둘째로, 외부의 비난에 대해 자신의 책임을 부인한 것을 들 수 있다. 그가 외부의 비난에 대응하는 방법 중 가장 전형적인 것은 자신에 대한 비난 일체를 부인하는 것이었다. 클린턴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은 언론과 의회 등에 솔직하고 직접적인 대답을 하기보다는 부인으로 일관했다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이다. 셋째로, 클린턴 대통령이 국민들을 상대로 한 직접 화법에는 능숙했지만, 정치시스템 내의 의회, 언론에 대한 설득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대통령으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선거에서 승리하고 토론에 능한 것만으로는 안 되며, 정치시스템 내에서 강력한 의회, 언론, 이익집단, 엘리트 집단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측면에서 클린턴의 정치적 기술은 다소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2부 영국 경제를 회생시킨 대처의 리더십



1장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라

국민은 때로 새로운 리더십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낀다. 특히 현 정권이 국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