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세상 중심에 서다

한홍 지음 | 두란노
한홍 지음

두란노 / 2007년 2월 / 249쪽 / 12,000원

기도의 크기를 키우라


기원 전 536년 바벨론이 망한 뒤 포로로 끌려간 유대 사람들이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무너진 성전 재건에 성공한다. 이후 기원전 458년 에스라가 이끄는 두 번째 집단이 예루살렘으로 귀향하면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성벽이 세워져야 독립국가의 위상을 천하에 알리고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주위 민족들의 극심한 견제로 성벽 재건은 실패했고 유대인들은 불안하고 힘든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를 모시는 술관원(cup bearer, 왕에게 드리는 음식과 음료를 검사하는 관리)을 하고 있었다. 술관원은 왕을 항상 수행해야 했기에 외모, 지식, 매너, 무예를 겸비한 사람만이 될 수 있는 오늘날의 비서실장에 해당하는 높은 벼슬이다. 왕의 두터운 신임을 한 몸에 받으면서 대제국 페르시아 궁정에서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누리고 있는 그는 어느 날 유대인들이 성벽도 없이 무방비 상태로 주위 민족들의 약탈을 당하며, 하루하루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는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는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느헤미야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아 땅을 치며 울었다. 그리고 수일 동안 금식하고 기도하며 보낸다. 우리는 느헤미야의 이런 모습에서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배울 수 있다.



첫째,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는 사건도 어느 날 갑자기 평범한 순간에 닥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연히 예루살렘에서 돌아온 사람을 만나고 그들을 통해 소식을 들은 것이 느헤미야에게는 일생일대의 전환점이 되어 버린 것이다. 당신도 어느 한순간 전혀 기대치 않았던 시점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둘째, 느헤미야는 성공에 오염되어 영성이 흐려지지도 감정이 메말라 버리지도 않았다. 아무리 돈 많고, 권력 있고, 학식이 있어도 하나님 백성이 고통받고 있어 하나님 마음이 아프다면 자신의 마음도 찢어지게 아플 수밖에 없다. 당신은 어떤가? 자신이 호의호식하고 있다고 고통받고 있는 이들에 대한 사명을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몇 날 며칠 괴로워하던 느헤미야는 마침내 하느님 앞에 일생일대의 기도를 드린다. 현실을 직시했으면 그것을 가슴에 안고 하나님 앞에 나가야 한다. 먼저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위대함을 선언했다.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대제국 페르시아의 위엄을 누구보다 잘 아는 느헤미야가 하나님이야말로 크고 위대하신 분임을 인정한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세상의 그 어떤 어려움이나 장애물도 힘을 쓰지 못한다. 이어 그는 민족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했다.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심히 악을 행하여…" 진정한 부흥은 진정한 회개에서 시작한다. 영성의 깊이는 회개의 깊이다. 모든 기독교의 영적 거인들은 가슴 절절히 참회록을 썼다. 이것이 항상 자기 잘못 아니라고 빠져나가려 하는 세상 지도자와 하나님 지도자의 다른 점이다.



마지막으로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도우심을 구했다.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어떤 문제를 놓고 엄청난 영적 부담을 갖고 간절히 기도했다는 것은 성령의 감동이 있었다는 뜻이다. 이것은 이 일에 대하여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뭔가 시키실 일이 있다는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파송의 노래를 듣게 된다. 그리고 헌신하게 된다. 기도를 시작하는 순간에 느헤미야는 벌써 페르시아 왕궁의 높은 벼슬을 포기하고 민족의 부흥과 재건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 하나님이 부르신 자리가 있다. 느헤미야는 지금까지 많은 노력으로 성공했지만 이제 그 성공의 힘을 이용해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할 시점이 되었음을 알았다. 자신이 쌓아 올린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 길을 갈 때 그는 비로소 하늘의 사람이 되었다. 잘살게 되었다고는 하나 너무나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여러 가지 면에서 총체적인 위기가 느껴지는 오늘날 한국의 현실, 우리 민족의 고통 앞에서 당신은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엎드려 느헤미야처럼 민족을 위한 기도를 드리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은 어떠한가.



상향 리더십을 발휘하라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벽을 재건하는 일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는 왕의 재가라는 현실의 장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가 모시던 왕은 과거 예루살렘 성벽 공사를 중단시키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있다. 이런 그에게 공사를 하러 가겠다는 말을 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아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문제 속에 해답이 있다고 애초에 공사를 중단하게 한 것이 왕이었으니까 이제 공사를 다시 시작하게 하는 유일한 해답도 그에게 있음을 느헤미야는 알았다.



정면 돌파를 결심했지만 느헤미야는 서두르지 않고 넉 달이나 되는 시간을 생각하고 기도하며 때를 기다렸다. 크리스천의 리더십은 기다릴 줄 아는 능력을 요구한다. 하나님은 위대한 일을 하시기 전에 항상 쉼표를 찍으시기 때문이다. 당신이 어떤 일의 실행을 놓고 기도하며 기다릴 때 그냥 세월만 낭비하는 것은 아니다. 그 시간 동안 전능의 하나님이 당신과 당신의 주위 환경을 준비하실 것이다.

느헤미야에게 그때가 넉 달 만에 왔다. 어느 날 왕이 느헤미야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것을 보고 근심이 있는지를 물었다. 왕이 자신을 염려하고 있음을 감지한 느헤미야는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하고 왕에게 말했다.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이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사오니 내가 어찌하여 얼굴에 슬픈 빛이 없사오리이까?" 그의 언어가 얼마나 지혜로운지 보라. "예루살렘을 다시 건설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대신 "조상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라고 표현했다. 이 말이 왕의 공감을 얻었던 것은 페르시아 인들도 조상의 무덤을 소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도하는 느헤미야에게 하나님이 순식간에 준 지혜였음이 분명하다.



느헤미야의 말에 대해 왕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자 느헤미야는 이렇게 시작했다. "왕이 만일 즐겨 하시고 종이 왕의 목적에서 은혜를 얻어…" 왕의 권위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는 이 말은 신하로서의 예의를 넘어 그가 진심으로 자신을 낮출 줄 아는 겸손한 사람임을 보여준다. 느헤미야는 본론을 이야기한다. "나를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읍을 중건하게 하옵소서." 왕은 성벽 재건 공사를 중지시켰던 자신에게 이런 요청을 한 느헤미야의 용기에 감탄하였다. 동시에 자신의 입장을 고려해서 부드럽고 겸손한 표현으로 진실하게 부탁하는 느헤미야, 평소 한 번도 자신을 실망시킨 적이 없던 능력 있고 성실한 느헤미야를 보면서 감동을 받았다. 하나님이 왕의 마음을 터치하신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말로 설득이 안 되는 것도 하나님은 가능하다.

"네가 몇 날에 행할 것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이 말에서 왕이 허락했음을 감지한 느헤미야는 자세한 계획을 고한다. 먼저 각 지방 총독들에게 느헤미야 일행의 여행을 도우라는 내용의 조서를 내려 달라고 부탁했다. 혹시 모를 지방 총독들의 방해를 예방해 두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읍 건축을 위해 쓰일 들보 재목을 왕의 산림에서 베어 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처럼 느헤미야는 넉 달 동안 기도만 한 것이 아니라 성벽 건설에 필요한 사전 조사를 끝내놓고 있었던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만 의지한다는 신앙을 앞세워 해야 할 준비를 게을리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기도의 사람은 동시에 준비하고 일하는 사람임을 보여준다. 믿음은 기도 응답을 전제하고 그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것이다.



강하고 무서워 보이는 세상의 권력자들도 하나님이 원하시면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이 쓰실 도구가 될 준비를 하고 있느냐다. 세상을 변화시킬 리더십, 특히 왕의 마음을 움직일 리더십에는 두 가지 축이 필요하다. 하나는 기도의 준비이며, 또 하나는 철저한 전략과 실력이다.

치밀하게 준비하라

왕의 허락을 얻은 느헤미야는 3개월에 걸친 긴 여행 끝에 예루살렘으로 온다. 페르시아 왕의 총애를 받았던 고위관리인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유대인을 핍박하던 주위의 적들은 그가 뭔가 큰일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두려워했다. 느헤미야는 자신에게 모든 사람의 시선이 집중됨을 알았으나 우쭐하지 않고 예루살렘에 도착한 사흘을 눈에 띄는 일을 하지 않고 침묵 가운데 보낸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은 항상 부지런하나 조급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육체를 충분히 쉬게 하고, 생각을 차분히 정리하고, 하나님 앞에 진지한 기도를 드리는 시간을 타협하지 않는다. 자신의 분주함을 스톱하고 하나님에게 집중할 때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이다.



준비는 조용히 하는 것이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느헤미야는 밤에 몰래 밖으로 나와 폐허가 되어 있는 성벽을 돌면서 파괴 정도와 주변 지리를 열심히 정찰했다. 정찰을 마친 후에도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과 계획을 함부로 발설하지 않았다. 느헤미야가 말을 조심한 것은 대적들의 모함과 방해를 경계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중한 만큼 우리는 정성을 다해 신중해야 한다. 지혜로운 리더는 계획할 때, 말할 때, 행동해야 할 때를 잘 분별하는 사람이다. 제대로 침묵할 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필요한 때에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하나님의 언어를 터뜨릴 수 있다.



비밀리에 철저한 현장답사와 사전준비를 끝낸 느헤미야는 마침내 유다의 지도자들을 모아놓고 성벽 재건 계획을 밝히고 협조를 구한다. "우리의 당한 곤경을 너희도 목도하는 바라.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여 다시 수치를 받지 말자." 수십 년 동안 성벽 재건이 실패하면서 유대인들은 패배주의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느헤미야의 말을 듣고 "일어나 건축하자"고 선뜻 나섰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느헤미야의 눈빛과 목소리에 보통 사람과 다른 진실한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열정을 헬라어로 풀면 "하나님이 그 상황 속에 함께 하신다"라는 뜻이다. 인간적으로 보면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하나님의 지도자는 상황 속에 계시는 하나님을 본다. 그러므로 그는 무모한 모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대로 행할 뿐이다.



열정과 진실함만 가지고 사람을 움직일 수는 없다. 실제로 가능하다는 객관적인 증거를 보여주어야 한다.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고하였더니…" 느헤미야는 자신이 예루살렘의 소식을 듣고 기도한 일부터 왕의 특별한 배려를 받아 예루살렘까지 오게 된 경위를 상세히 간증했다. 감동의 스토리에는 엄청난 설득력이 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사람의 리더십을 따라가면 뭔가 되겠다"는 확신이 유대인들의 마음속에 퍼져나갔다. 아무리 느헤미야가 훌륭하다 해도 사람들이 따라주지 않으면 성벽 재건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모두 일어나 힘을 내어 이 일에 동참하기로 결의한 것이다. 사흘 만에 조직을 장악한 느헤미야. 이것은 백성들의 적극적인 팔로우십(followership)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처럼 리더와 백성들은 서로를 귀한 축복의 존재로 알아 귀히 여겨야 한다.



느헤미야가 성벽 재건 공사를 하기로 했다는 사실에 놀란 적들은 유대 백성들을 협박하기 시작한다. "너희는 왕에게 반란을 일으키자는 것인가?" 십여 년 전 유대인들이 반란을 꾀하려 한다고 모함하여 공사를 중단시킨 경험을 바탕으로 아픈 데를 건드린 것이다. 이들이 쓰는 수법은 오늘날도 하나님의 사람들을 핍박하는 무리들이 즐겨 사용하는 수법이다. 그러나 적들의 공격에 대해 느헤미야는 단호하게 대처한다.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명록도 없다." 이처럼 하나님의 지도자는 사랑과 용서의 사람이어야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을 공격하려는 적들에 대해서는 초반부터 분명한 선을 긋고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적이 아무리 커 보여도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치고 나가면 반드시 후퇴하게 되어 있다.



팀워크로 일하라

열심히 기도하여 왕의 허락을 받아내고,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사전 정찰을 끝낸 느헤미야는 드디어 성벽 재건 대공사의 막을 올린다. 그리고 기가 막힌 용병술로 투입된 모든 병사의 힘을 하나로 모아 공사를 52일 만에 완료하였다. 느헤미야서 3장에서 우리는 유대인을 성벽 곳곳에 배치하여 공사에 참여하게 하는 놀라운 리더십을 볼 수 있다. 주목할 일은 각자 맡은 일의 자리가 분명하며 그 자리에는 다 의미가 있다는 사실이다.



느헤미야는 공사의 시작을 북쪽 양문(sheep gate)에서 시작하였다. 양문은 제사에 바칠 양을 몰고 들어오는 문이기 때문에 제사장들은 이 문을 중수한 다음에 하나님께 봉헌한다. 마치 십일조와 같이 성벽 건축 사역에서 제일 먼저 이룩한 열매라 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 제사를 드리는 양의 문을 공사의 스타트 포인트로 잡은 것은 영적 의미가 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삶의 최우선 순위여야 하고, 인생 모든 것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느헤미야는 사람들을 배치할 때 확실한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 자기 집과 가까운 성벽을 수리하게 했다. 이러한 방식은 일하는 데 오고 가는 시간도 줄이고 기자재나 인력 동원도 수월하기 때문에 효율성도 높았다. 이처럼 당신의 가장 가까운 곳, 당장 손만 대면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라. 그리고 당신이 이끄는 사람들에게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전하고 격려하라.



아무리 헌신하는 사람이라도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잡지 못하면 열정은 식고 만다. 그래서 리더십은 일꾼을 신속히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한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는 느헤미야가 인력배치를 일사분란하게 해치운 것은 성벽을 정찰하면서 미리 어떤 사람들을 어디에 배치하여 작업을 할 것인지를 준비했음을 보여준다. 그가 52일 만에 수십 년을 지체했던 공사를 끝낼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철저하게 준비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30년 준비하시고 3년을 사역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3년을 준비하고 30년 써먹으려고 한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는 조그마한 일이라도 철저히 준비하자.



느헤미야 3장은 성벽 공사에 동참한 일꾼들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하나님에게는 사람 하나하나가 특별하고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함께 하나님의 성벽을 만들어가는 동역자(co-worker)이다. 하나님 나라에는 자기 잘난 체하는 비판자나 방관자들은 없다.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가진 것 다 바쳐 땀 흘리는 일꾼들이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의 가이드를 따라 주어진 장소에서 주어진 재능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일할 때 강하고 웅장한 성벽이 세워진다. 우리 모두 거룩한 팀워크를 이루어 음부의 권세가 침범할 수 없는 반석과 같은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 가자.



일꾼이자 전사가 되라

사마리아 총독 산발랏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 재건 공사를 진행시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분노했다. 철저한 교란 공작으로 성벽 재건을 막아왔는데, 하루아침에 일이 뒤집혔으니 분통이 터진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느헤미야이다 보니 함부로 달려들 수도 없었다. 그래서 군대를 모아 놓고 위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